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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베스트 11/북유럽

스웨덴 축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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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가대표

< Sweden >

홈구장:프렌즈 아레나

최다 득점자: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62

최다 출장자:안데르스 스벤손 148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준우승(1958)

UEFA 유로 4강(1992)

역대 최고의 선수:군나르 노르달

주장:닐스 리드홀름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로니 헬스트룀

포지션:GK

국적:스웨덴

신장:192cm

생년월일:1949년 2월 21일

주요 클럽:FC 카이저슬라우테른

국대 커리어

1968년 ~ 1980년

A매치 77경기

 

두말하면 입아픈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우월한 팔길이와 유수의 캐칭 능력을 이용해 월드클래스 골키퍼가 갖추어야 할 역량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로니 헬스트룀은,

 

자국 리그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거기서도 리그 최상위 골키퍼로 활약하면 2차례의 포칼 준우승을 이끌었고 1977/78 시즌에는 공신력있는 독일의 축구 잡지 '키커'가 선정하는 리그 올스타팀과 WK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번의 스웨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한 헬스트룀은,

 

3번의 월드컵에 스웨덴 국가대표로 참여했고 특히나 1978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발롱도르 6위까지 랭크된 바 있습니다.

 

라이트백

오르바르 베리마크

포지션:RB

국적:스웨덴

신장:180cm​

생년월일:1930년 11월 16일

주요 클럽:외레브로 SK

국대 커리어

1951년 ~ 1965년

A매치 94경기 0골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자타가 공인하는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베리마크는 공격수를 앞서는 심리전, '폭주 기관차'라는 별명다운 빠른 발과 강철같은 체력을 이용해 당시로는 단단한 우측면 라인 방어를 보여줬으며 뛰어난 공격 전개 능력까지 갖춘 선수였습니다.

 

주로 그는 자국 리그의 외레브로에서 선수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고 1960년과 61년에는 월드 사커 선정 월드 베스트 XI에 뽑힌 명실상부 월드클래스 풀백이었습니다. 스웨덴 국기를 품고도 1958년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아직까지도 유일한 국제대회 결승 진출을 이뤄낸 베리마크는 그 해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까지 수상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센터백

글렌 히센

포지션:CB

국적:스웨덴

신장:184cm​

생년월일:1959년 10월 30일

주요 클럽:IFK 예테보리

국대 커리어

1981년 ~ 1990년

A매치 68경기 7골

 

1980년대 중후반 스웨덴을 넘어 유럽 전체에서 손꼽히던 센터백. 바이킹의 후예다운 강력한 몸싸움과 터프한 1대1 마킹은 물론, 정교한 태클까지 구사하던 글렌 히센이었습니다.

 

그는 자국의 이름있는 명문 클럽, 예테보리에서 3차례의 리그 우승과 함부르크, 던디 유나이티드 등을 꺾고 2차례 UEFA컵 우승에 성공하는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성적에 맞게 그 활약 또한 대단해 1987년에는 발롱도르 10위, 월드사커 선정 월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으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적극적으로 구애했지만 결국 리버풀로 이적해 리그 우승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90년 월드컵에 스웨덴 대표로 주장완장을 차고 참여한 바 있습니다.

 

센터백

파트릭 안데르손

포지션:​CB

국적:스웨덴

신장:185cm​

생년월일:1971년 8월 18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1992년 ~ 2002년

A매치 96경기 3골

1994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 2000년대 초 분데스리가 최고의 자리에 앉아있던 북유럽 축구 대표 센터백. 공에 대한 불굴의 집념으로 헤딩, 태클, 인터셉팅을 통해 공격수들을 짓누르던 그는 간혹 기막힌 중거리포로 골망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묀헨글라트바흐의 품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슈테판 에펜베르크와 팀을 지탱하며 1994/95 시즌의 컵 대회 우승, 키커 선정 올해의 팀에도 2번 들어간 안데르손의 고군분투에도 구단은 강등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바이언으로 이적해 사무엘 쿠포르, 토마스 링케와 강철 백3를 구성해 2차례의 리그 우승과 2000/01 시즌에는 챔스 우승으로 UEFA 올해의 팀까지 들어갔습니다. 특히 리그 최종전 샬케의 '4분 챔피언' 사건을 만든 것도 바로 이 안데르손의 프리킥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이킹 군단 하에서도 그는 유로 1992와 1994 월드컵에서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핵심으로 가능케했습니다.

 

레프트백

에릭 닐손

포지션:LB

국적:스웨덴

신장:​182cm

생년월일:​1916년 8월 6일

주요 클럽:말뫼 FF

국대 커리어

1938년 ~ 1952년

A매치 57경기 0골

1938 FIFA 월드컵 4강

194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0 FIFA 월드컵 3위

1952 하계 올림픽 동메달

 

스웨덴 축구사 가장 위대한 수비수로도 꼽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전설. 성실한 활동량과 체력, 위협적인 태클과 지능적인 경기 리딩 능력을 보유했다고 전해지는 에릭 닐손은,

 

말뫼에서 모든 클럽 커리어를 보내며 2부였던 팀을 승격시키고는 5차례의 리그, 5번의 컵 우승을 거두는 전성기를 만들었습니다. 또 대표팀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닐손은 1938년 월드컵 4강을 막내로 경험 후, 주축으로는 1948년 올림픽 금메달, 52년 월드컵 동메달을 따냈으며 가장 빛났던 순간은 1950년 월드컵, 스웨덴은 3위까지 등극했고 본인은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쿠르트 함린

포지션:RM

국적:스웨덴

신장:170cm

생년월일:1934년 11월 19일

주요 클럽:ACF 피오렌티나

국대 커리어

1953년 ~ 1965년

A매치 32경기 17골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새'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950년대 ~ 60년대 세계 최고이자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윙어. 별명답게 날렵한 몸놀림과 천재적인 발재간으로 측면을 흔드는 플레이도 좋았지만 그의 최대 장점이라면 직접 중앙으로 파고들어와 득점하는데 있었습니다.

 

쿠르트 함린은 스웨덴인임에도 밀란, 유벤투스 등 세리에 A에서 오랜기간 활약한 역대급 용병으로 기억되며 리그 역대 득점 7위에도 올라있는 그는 특히 피오렌티나에서 불을 뿜어내며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득점왕으로서 1960/61 시즌의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견인한 바 있으니 피오렌티나 역대 최고의 용병은 물론 역대 최고의 선수로까지 추앙받는 사나이입니다. 밀란으로 이적해서도 68/69 시즌 빅이어를 들었던 그는

 

스웨덴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1958 월드컵에 참여해 4골을 기록하며 준우승에 크게 이바지했고 그해 발롱도르 투표에선 4위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보 라르손

포지션:CM

국적:스웨덴

신장:175cm

생년월일:1944년 5월 5일

주요 클럽:말뫼 FF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8년

A매치 70경기 17골

 

1970년대 자국 최고로 여겨지던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보 라르손은 준수한 발밑과 미친 체력을 자랑하던 주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임였음에도 득점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나 센터 포워드로도 기용이 가능했습니다.

 

말뫼 FF라는 스웨덴 최고 명문팀의 GOAT로 불리는 그는 6번의 스웨덴 1부 리그 우승과 4번의 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3번의 리그 득점왕, 289골로 구단 역대 최다 득점 1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또 후에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 1968/69 시즌 MVP까지 거머쥔 그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만 2번, 1978 월드컵에선 주장으로 조국의 8강행을 견인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닐스 리드홀름

포지션:CM​​​

​국적:​스웨덴

​신장:​192cm

​생년월일:​1922년 10월 8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47년 ~ 1958년

A매치 23경기 12골

194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남작'이라는 이명으로 통한 1950년대 당대 유럽 축구계에서도 알아주던 전설적인 미드필더. 큰 키에도 우아한 볼키핑과 볼컨트롤,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가졌었던 리드홀름은 특히 정말 정교한 패스를 뿌렸다고 전해지는데, 심지어는 2년 만에 패스 미스를 범하자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자국에서 밀란으로 와 군나르 그렌,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그레-노-리 삼총사'를 결성하였고 4번의 세리에, 2번의 라틴컵 우승을 주도, 스웨덴 커넥션이 해체된 1957/58 시즌에는 주장으로서 유러피언컵 준우승까지 이끌기도 했습니다.

 

스웨덴 국대에서도 삼총사와 같이 1948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리드홀름은 해외 진출 선수들을 대표팀으로 부르지 않는 룰로 인해 국대에선 공백기간이 길었지만 36살의 나이에 주장으로 복귀한 1958 WC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준우승, 그는 결승에서 골까지 넣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레나르트 스코일룬

포지션:LM

국적:스웨덴

신장:170cm

생년월일:1929년 12월 24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50년 ~ 1964년

A매치 11경기 1골

1950 FIFA 월드컵 3위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이탈리아 세리에를 풍미한 최고의 외인 윙어이자 '블라굴트'의 전성기를 이끈 당대 최고의 레프트 윙어. 개인 플레이와 자기기만적인 성격으로 이기적인 행동도 많이 했지만 이를 커버하는 굉장히 감각적이고 화려한 볼 다루는 능력을 가졌으며 강력하면서 매우 정확한 왼발킥 능력을 가져, 당시 언론에서는 그의 휘날리는 금발 머리와 드리블하는 모습을 빗대어 스코일룬을 '흔들리는 옥수수대'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스웨덴에서 넘어와 네라주리 유니폼을 입고 본격적인 전성기를 달렸고 리그 최고 용병으로 이름을 날리며 1952/53 시즌, 53/54 시즌의 리그 2연패를 이끈 대활약은 인테르 팬들의 환호성을 받기 충분했습니다. 스웨덴의 1950 월드컵 3위를 이끌고 인테르로 이적한 탓에 한동안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개정된 규칙 덕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1958년의 자국 월드컵, 펠레의 브라질에게 패하긴했으나 결승까지 올랐고 본인은 많은 언론으로부터 대회 베스트 11로 언급되었습니다.

 

스트라이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95cm

생년월일:1981년 10월 3일

주요 클럽:파리 생제르맹 FC

국대 커리어

2001년 ~ 2023년

A매치 122경기 62골

'세리에A의 제왕'이자 ​'우승 청부사'라고 불렸던 21세기 스웨덴 축구의 대명사. 뛰어난 결정력, 우월한 피지컬, 아크로바틱한 유연성, 천재적인 볼컨트롤과 키핑 능력, 독보적인 에고 등 엄청난 임팩트를 주며 데뷔한 선수 시절 초기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위치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하는데 주력했으며 말년에는 타겟터로 변모해 무려 40살까지 뛴 즐라탄이었습니다.

 

그는 아약스, 인테르, 바르샤, 밀란, PSG, 맨유 등의 걸출한 클럽에서 월드 클래스급 퍼포먼스로 무려 12번의 정규 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종합 30개의 우승 타이틀, 4번의 UEFA 올해의 팀, 6번의 리그 MVP, 5번의 리그 득점왕, 무려 10번의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포효를 내질렀습니다. 2013년 발롱도르 4위에 빛나는 즐라탄은 여담으로 챔스 데뷔전, 세리에 A 데뷔전, 라리가 데뷔전, 리그앙 데뷔전, EPL 데뷔전에서 모두 골을 득점하는 진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국대에서도 62골로 역대 최다 득점자인 이브라히모비치는 스웨덴을 수차례 메이저 대회 본선으로 이끌었고 유로 2012에선 조별 탈락에도 불구하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군나르 노르달

포지션:ST​

국적:​스웨덴

​키:​185cm

​생년월일:​1921년 10월 19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42년 ~ 1948년

A매치 33경기 43골

1948 하계 올림픽 금메달

스웨덴은 물론이요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는 파워 포워드. 185cm의 키에 90kg의 육중한 거구를 가진 그는 피지컬로 상대 수비수들을 압도하는 타겟터였으며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집중력 높은 결정력으로 수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소방수' 노르달은 1950년대 밀란의 '그레-노-리 삼총사'의 일원으로 뛰며 부흥기를 만들어내었고 2번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셀 수 없는 골들로 세리에 A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는데, 5회로 세리에 A 최다 득점왕, 210골로 세리에A 득점 순위 3위이자 세리에 A 외국인 최다 득점자, 221골로 AC 밀란 역대 최다 득점자, 13회로 세리에A 최다 해트트릭 기록자라는 유수의 타이틀들을 전부 독식하고 있는 그입니다.

 

더해서 대표팀에서도 압도적인 포스의 득점왕(7골)으로서 1948 올림픽 우승을 이끌었으나 당시 스웨덴 축구 협회에서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하며 프로 선수들을 대표팀에서 배척하는 규정으로 인해 사실상 국대 커리어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것만 아니었다면 1950년대 축구사는 바이킹들이 지배하던 시대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예상해봅니다.

 

감독

조지 레이너

포지션:MANAGER​

국적:잉글랜드

생년월일:1907년 1월 13일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4년, 1956년 ~ 1958년, 1961년

194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0 FIFA 월드컵 3위

1952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스웨덴 축구 역사상 다시는 안올지도 모르는 황금기를 만든 누가 뭐래도 바이킹 군단 최고의 명장. 축구 종가 영국에서 넘어온 그는 스웨덴의 여러 클럽들과 대표팀을 겸직하며 당시 변방이던 스웨덴에 선진적인 훈련과 시스템을 수입해왔습니다. 특유의 냉철한 판단력까지 가졌던 조지 레이너는,

 

'그레-노-리' 삼총사를 주축으로 1948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1950 월드컵 3위에 올랐으나 이후 프로 진출 선수들을 배제하고 아마추어로만 대표팀을 구성하라는 스웨덴 축구 협회의 정책에 부침을 겪다가 1958년 규정이 바뀌면서 상술했던 막강한 멤버들을 데리고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파천황을 이뤄냈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토마스 라벨리

포지션:GK

국적:스웨덴

신장:186cm

생년월일:1959년 8월 13일

주요 클럽:IFK 예테보리

국대 커리어

1987년 ~ 1997년

A매치 143경기

1994 FIFA 월드컵 3위

 

​칼레 스벤손, 로니 헬스트룀과 같이 스웨덴 축구를 대표하는 골키퍼 3인방. 토마스 라벨리는 기민한 다이빙 실력과 반응속도, 안정감있는 수비 조율 실력으로 1990년대 스웨덴 부흥기의 골문을 단단히 지켰던 골키퍼였습니다.

 

22살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골키퍼로 수상할 만큼 뛰어난 실력으로 오랜 기간 예테보리에서 뛰면서 6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한 그는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역대 최다 출장 2위일 정도로 오랜 기간 맹활약, 유로 1992에서는 4강과 1994 월드컵의 3위라는 대업을 같이 했습니다. 8강 루마니아전에서 4강을 확정짓는 승부차기 선방은 단연코 라벨리 커리어 최고의 장면이겠습니다.

 

라이트백

롤란드 닐손

포지션:RB

국적:스웨덴

신장:179cm​

생년월일:1963년 11월 27일

주요 클럽:셰필드 웬즈데이

국대 커리어

1986년 ~ 2000년

A매치 116경기 1골

1994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스웨덴 축구를 온세상에 알렸던 자국 최고의 라이트백. 성실한 자기관리와 무지막지한 체력, 날카로운 태클들을 비롯해 오른쪽 라인을 통제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올라가는 오버랩에 그 포인트가 있었던 선수로,

 

롤란드 닐손은 3차례의 리그 우승과 1986/87 시즌의 UEF컵 우승을 예테보리 소속으로 이뤄냈으며 셰필드 웬즈데이로 이적하고서는 바로 강등당했던 팀에 남아 승격을 도왔고 1990/91 시즌의 리그컵 우승과 93/94 시즌의 FA컵 준우승을 경험했던 구단의 짧은 돌풍을 같이 했습니다. 1996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닐손은 유로 1992와 1994 월드컵 4강행에 모두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비외른 노르드크비스트

포지션:CB

국적:스웨덴

신장:185cm​

생년월일:1942년 10월 6일

주요 클럽:PSV 아인트호번

국대 커리어

1963년 ~ 1978년

A매치 115경기 0골

 

1970년대 '바이킹 군단' 스웨덴 축구의 얼굴과도 같았던 명 스토퍼. 완강한 대인마크 능력과 타고난 리더십으로 유명했던 노르드크비스트는,

 

자국의 IFK 노르쾨핑에서 1968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등 활약하다가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팀을 옮겼고 1973/74 시즌의 컵 대회와 다음 시즌의 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며 꽃을 피웠습니다. 또한 그는 주장직을 오랫동안 수행하며 무려 3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는데, 스웨덴 대표팀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인 노르드크비스트의 115경기 A매치 기록을 한 때 A매치 역사상 최다 출장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벵트 구스타브손

포지션:CB

국적:스웨덴

신장:182cm​

생년월일:1928년 1월 13일

주요 클럽:아탈란타 BC

국대 커리어

1951년 ~ 1963년

A매치 57경기 0골

1952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스웨덴 축구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든 당대 유럽 한손에 꼽힐 만한 센터백. 강철 같은 대인 마크 능력과 예리한 스탠딩 태클을 자랑하면서도 정확한 롱패스를 뿌리곤 했던 인물입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활약하던 벵트 구스타브손은 자국 리그에서 3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는 이태리의 아탈란타로 이적해서도 그 전성기 폼을 유지했으며 1953년의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쥔 그는 블라굴트 유니폼을 입고서도 1952 올림픽 동메달, 1958년 WC에선 MVP 후보로 언급될 활약상으로 스웨덴을 결승에 올렸지만 브라질에게 무려 5실점을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레프트백

슈테판 슈바르츠

포지션:LB

국적:스웨덴

신장:180cm​

생년월일:1969년 4월 18일

주요 클럽:SL 벤피카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1년

A매치 69경기 9골

1994 FIFA 월드컵 3위

 

유수의 선수들을 쏟아내던 1990년대 바이킹 군단의 자랑 같았던 멀티 플레이어. 무한한 체력과 가끔씩 터지는 중거리포, 성실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중앙/수비형 미드필더까 주전공이었지만 센터백과 풀백, 레프트윙까지 소화하던 만능이었습니다.

 

슈테판 슈바르츠는 말뫼에서 시작해 벤피카에서 2차례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아스날에서 1994/95 시즌 위너스컵 준우승, 피오렌티나에서 95/9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98/99 시즌 발렌시아에서의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까지 가져가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그는 요나스 테른과 중원을 맞춰서도 1992년 유로 4강과 94 월드컵 3위에 기여했으나 후자의 대회 8강에선 뼈아픈 퇴장을 당했고 결국 스웨덴은 4강전 브라질전에서 중요한 핵심을 한명을 잃고 임해야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글렌 스트룀베리

포지션:DM

국적:스웨덴

신장:191cm

생년월일:1960년 1월 5일

주요 클럽:아탈란타 BC

국대 커리어

1982년 ~ 1990년

A매치 52경기 7골

 

1980년대 세리에 최고 수준의 BTB 미드필더로 거론되던 '금발의 바이킹'. 마라톤 선수를 연상케하는 체력으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면서도 거구를 이용한 헤더 플레이, 수비력으로 유명했던 그는,

 

예테보리에서 1981/82 시즌 유에파컵 우승을 이끄는 활약상으로 세리에로 이적, 아탈란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거론될 정도의 모습으로 1986/87 시즌, 약팀이던 구단을 코파 이탈리아 결승까지 인도했고 85년엔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국대에선 80년대 암흑기가 도래해 국제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90 월드컵에선 본선 진출을 이룬 바 있습니다.

 

라이트 윙어

군나르 그렌

포지션:RM

국적:스웨덴

신장:175cm

생년월일:1920년 10월 31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40년 ~ 1958년

A매치 57경기 32골

194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AC 밀란과 스웨덴 축구를 이끌어가던 '그레-노-리' 삼총사 중 한명. 군나르 그렌은 동료였던 군나르 노르달의 득점력, 닐스 리드홀름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두루 가지고 공격을 만들어가던 훌륭한 인사이드 포워드였습니다.

 

1948 올림픽에서의 활약으로 스웨덴에서 밀란으로 넘어간 그렌은 상기한 트리오를 구성해 1950/51 시즌의 무려 44년만인 세리에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는데 성공했으며 라틴컵에서도 또한 우승해냈습니다. 46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인 그는 후에 피렌체, 제노아를 거쳐 은퇴했으며,

 

국대에서는 1948 올림픽 금메달, 외국에 나가서 뛰었기 때문에 한동안 유니폼을 입지 못했지만 1958 월드컵에선 38살이라는 노장의 나이에도 불을 뿜으며 결승행에 공헌, 여러 매체로부터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토마스 브롤린

포지션:AM

국적:​스웨덴

신장:​178cm

생년월일:​1969년 11월 29일

주요 클럽:파르마 FC

국대 커리어

1990년 ~ 1995년

A매치 47경기 27골

1994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바이킹 군단의 전성기를 대표했던 에이스, '스웨덴의 마라도나'. 딴딴한 체구를 이용한 드리블 돌파, 감각적인 볼키핑, 창의적인 킬패스를 겸비한 공격형 미드필더 브롤린은 이런 뛰어난 재능에도 체중관리 실패와 부상으로 29세라는 나이에 이르게 커리어를 마감한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스웨덴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파르마로 이적한 그는 당시 '미라클 파르마'라고 불린 팀의 전성기의 핵심 멤버로서 1991/92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92/93 시즌의 위너스컵, 94/95 시즌의 UEFA컵 우승 등을 견인했습니다. 허나 그는 후에 부상으로 인해 여러 클럽들을 전전하다가 그 폼을 잃고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스웨덴의 노란 유니폼을 입고는 1990년 월드컵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유로 1992의 4강, 1994년 월드컵에서는 결국 3위까지 오르는 사고를 치며 대회 베스트 11,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안착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스벤 리델

포지션:AM

국적:​스웨덴

신장:177cm

생년월일:1905년 1월 14일

주요 클럽:외리뤠테 IS

국대 커리어

1923년 ~ 1932년

A매치 43경기 49골

1924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20년대 존재했던 스웨덴 축구 신화 속의 괴물 공격수. 절륜한 발재간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슛팅력으로 세컨 탑의 위치에서 날아다니던 그는 스웨덴 풋볼 리그를 정말 말그대로 휩쓸었습니다.

 

1924년에 열렸던 하계 올림픽에서도 6골로 동메달을 선사한 이런 스벤 리델의 활약상은 대표팀에서만 무려 49골을 기록했으며 거기다 해트트릭만 무려 아홉번. 이 기록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등장 전까지 80년간 쭉 자국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었습니다.

 

스트라이커

헨릭 라르손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75cm

생년월일:1971년 9월 20일

주요 클럽:셀틱 FC

국대 커리어

1993년 ~ 2009년

A매치 106경기 37골

1994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서 스웨덴 축구의 태양으로 군림하던 '매그니피센트'. 예술같은 퍼스트 터치와 드리블 기교, 작은 키에도 교과서 같은 헤딩과 능수능란한 슛팅 스킬로 문전 앞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던 라르손은 빅리그는 경험이 적어 저평가를 받곤 해 '그늘 속의 히어로' 혹은 '작은 연못에 사는 큰 물고기'라 불렸습니다.

 

그는 셀틱 FC에서 말 그대로 전설을 써내려갔고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한편 5번의 리그 득점왕, SFWA, SPFA 올해의 선수상을 2회, 2001/02 시즌에는 무려 53골을 기록해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수상받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여담으로 UEFA컵 역대 최다 득점자인 그는 02/03 시즌에는 팀을 대회 결승전까지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바르샤로 이적해 05/06 시즌의 챔스 우승 당시 결승전 2어시를 기록, 맨유로 이적해서도 임대의 전설을 쓰며 리그 우승을 만들었습니다.

 

스웨덴 국대의 오랜 기간 에이스였던 라르손은 1994년 월드컵에서 어린 나이에 조국의 3위라는 영광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오베 킨드발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76cm

생년월일:1943년 5월 16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클럽 커리어

1966년 ~ 1974년

A매치 43경기 16골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2회

1969/70 시즌 페예노르트 유로피언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구단 최고의 외국인 선수. 빠른 발과 드리블 센스, 월등한 피니싱 능력의 오베 킨드발은,

 

자국 스웨덴 리그에서 득점왕을 따내는 활약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보금자리을 옮겼고 미친 활약으로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컵 우승은 물론이거니, 1969/70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에 성공했니다. 3차례의 에레디비시 득점왕을 얻기도 한 킨드발은 1969년 라이벌이었던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와 공동으로 발롱도르 4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

 

칼레 스벤손

주 포지션:GK

국적:스웨덴

신장:178cm

생년월일:1925년 11월 11일

주요 클럽:헬싱보리 IF

국대 커리어

1948년 ~ 1958년

A매치 73경기

194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2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스웨덴 축구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이끌었던 국보급 수문장. 날렵한 점프력과 뛰어난 판단력으로 골문을 지키던 칼레 스벤손은,

 

헬싱보리라는 클럽에서 활약하며 비록 우승컵은 따내지 못했지만 자국 최고의 키퍼로 긴시간 동안 군림했고 그 위상은 구단 경기장의 바깥에 조각되어있는 동상이 증명합니다. '그레-노-리' 삼총사가 이끌던 당시 바이킹 군단의 품에서도 역시 그는 날아다니며 1948 올림픽 금메달, 52 올림픽 동메달로 1952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을 가져갔으며 자국에서 열린 1958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에게 패하긴 했지만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을 이룩해냈습니다.

 

요나스 테른

주 포지션:DM

국적:스웨덴

신장:178cm

생년월일:1967년 3월 20일

주요 클럽:SL 벤피카

국대 커리어

1987년 ~ 1997년

A매치 75경기 6골

1994 FIFA 월드컵 3위

 

바이킹의 시대를 도래하게 했던 1990년대 블라굴트의 위대한 캡틴. 수비형 미드필더와 리베로 위치를 오가며 뛰어난 전진 드리블, 패스를 자랑했고 강건한 수비력 역시 말안해도 최고였던 요나스 테른이었습니다.

 

그 커리어의 시작은 스웨덴의 엘리트 선수들이 그렇듯이 말뫼에서 시작되었고, 5차례의 리그 우승을 하고는 곧장 포르투갈 최고의 명문인 벤피카로 이적해 1989/90 시즌의 유러피언컵 준우승, 90/91 시즌의 리그 우승으로 도래했습니다. 후에 나폴리, 로마, 레인저스에서도 활약했던 그는 주장으로 1990년대 초중반 스웨덴의 성공 시대를 받들었고 유로 1992 4강, 1994 월드컵 3위 등을 달성했습니다.

 

프레디 융베리

주 포지션:RM

국적:스웨덴

신장:175cm

생년월일:1977년 4월 16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1998년 ~ 2008년

A매치 75경기 24골

지치지 않는 활동량, 우수한 스피드, 미친 투지와 승부욕 등으로 고삐 풀린 것처럼 필드 위를 헤집던 '적토마'. 물론 융베리는 테크닉, 슛팅, 연계까지 훌륭했던 선수였던지라 많은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아스날에서 당시 피레스와 양날개, 앙리-베르캄프와 화려한 공격진을 구성했고 그들이 창출한 공간을 파고드는 스프린트로 2차례의 리그, 3차례의 컵 대회 우승을 이끈 그는 특히 2000/01 시즌, 17골을 넣는 커리어 하이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상과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아그네 시몬손

주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82cm

생년월일:1935년 10월 19일

주요 클럽:외리레테 IS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7년

A매치 51경기 27골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1958년 월드컵에서 스웨덴의 결승 진출을 공헌했던 스트라이커. 필살의 슛팅 능력과 전방에서의 버터주는 능력도 있었지만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내려와서 연계를 받아주는 플레이를 하던 시몬손은,

 

스웨덴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월드컵 활약과 1959년 발롱도르 4위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저승사자 군단'이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존재에 벤치만 달궜지만 2차례의 라리가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표팀에서 1958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해 군나르 그렌, 레나트 스코일룬, 쿠르트 함린 같은 유수의 공격진의 득점력을 살려주는 플레이로 각광받았고 거기다 본인도 4골을 넣으며 준우승에 공헌했습니다.

 

랄프 에드스트룀

주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91cm

생년월일:1952년 10월 7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번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7년

A매치 51경기 27골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같은 위상을 지녔던 당대 스웨덴 축구의 주포. 191cm라는 큰 키로 수비수들을 등지면서도 장기인 볼컨트롤과 연계 능력으로 아군을 지원, 물론 직접 바이시클킥과 발리슛 등의 아크로바틱한 플레이를 통해 득점하는데도 능했던 정말 후배 즐라탄과 비슷한 플레이스타일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랄프 에드스트룀은 자국 리그에서 1973년 네덜란드 리그의 에인트호번으로 넘어와 전성기를 구가했고 에레디비시 2연속 우승과 2번의 KNVB컵을 추가로 우승했습니다.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 2회의 그는 1973년 발롱도르 9위, 75년엔 월드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들어가는 위엄을 선보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1974년 월드컵에서 서독을 상대로 아름다운 발리슛을 넣은 것을 포함해 4골을 기록하며 2차 결선 리그에서 아쉽게 탈락했고 대회 최종 5위라는 호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케네트 안데르손

주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93cm

생년월일:1967년 10월 6일

주요 클럽:볼로냐 FC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0년

A매치 83경기 31골

1994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를 수놓은 스웨덴 축구의 명 타겟터. 발도 느리고 테크닉도 별로였으나 큰 체구를 이용한 전방에서의 포스트 플레이와 탁월한 위치 선정, 골문 앞에서 증폭되는 슛팅 센스로 먹고살던 선수였습니다.

 

케네트 안데르손은 예테보리에서 스웨덴 리그인 알스벤스칸을 대표하는 공격수로서 2번의 타이틀을 가져갔고 월드컵 활약 이후에는 세리에로 나가 바리, 볼로냐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특히 1997/98 시즌에는 볼로냐 소속으로 인터토토컵 우승도 경험했습니다. 그의 커리어 피크는 1994 월드컵에서 나왔는데, 조별예선 막경기 브라질전에서의 원더골을 시작으로 종합 5골을 몰아친 그는 브론즈부트를 받았고 조국은 3위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틴 달린

주 포지션:​ST

국적:스웨덴

신장:184cm

생년월일:1968년 4월 16일

주요 클럽: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국대 커리어

1991년 ~ 1997년

A매치 60경기 29골

195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4년 월드컵 3위라는 돌풍을 이끈 당대 최고의 스웨디시 스트라이커. 베네수엘라 혈통으로 강력한 피지컬을 이용한 플레이와 여지 없는 헤더, 슛팅과 부드럽게 빠져들어가는 침투 능력을 가진 타겟터였습니다.

말뫼에서 고작 20살의 나이에 리그 득점왕을 따내며 주목받은 마르틴 달린은 얼마안가 독일의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해 그 활약상을 연장시켰고 1994/95 시즌의 포칼을 따내는데 아바지했습니다. 특히 개인으로는 93/94 시즌 후반기의 '키커 랑리스테' WK 선정, 95/96 시즌엔 분데스 베스트 11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

 

그는 1994 월드컵 예선에서 7골을 넣으며 본선에 스웨덴을 올렸으며 본선에서도 토마스 브롤린, 케네트 안데르손과 삼지창을 구성해 3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경험합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지그프리드 린베리

토르스텐 린베리

안드레아스 이삭손

 

중앙 수비수

오케 요한손

페테르 라르손

올로프 멜베리

 

측면 수비수

하게 바리

잉게마르 에란트손

니클라스 알렉산데르손

 

중앙 / 수비형 미드필더

수네 안데르손

로베르트 프리츠

클라스 잉게손

안데르스 스벤손

킴 셸스트룀

 

공격형 미드필더

토르비에른 욘손

페르 제테르베리

에밀 포르스베리

 

윙어

로저 마그누손

롤란트 산베리

코니 토르스텐손

 

센터 포워드

헨리 칼손

해리 빌트

베니 벤트

토르비에르 닐손

요한 엘만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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