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 Wales >
홈구장:카디프 시티 스타디움
최다 득점자:가레스 베일 41골
최다 출장자:가레스 베일 111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8강(1958)
UEFA 유로 3위(2016)
역대 최고의 선수:존 찰스
주장:라이언 긱스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네빌 사우스올
포지션:GK
국적:웨일스
신장:185cm
생년월일:1958년 9월 16일
국대 커리어
1982년 ~ 1997년
A매치 92경기
1980년대 웨일스와 에버튼의 골문을 듬직하게 지켰던 위대한 슛 스토퍼. 뚱뚱하고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과 반사신경으로 안정적인 키핑을 자랑했던 그는 1980년대 에버튼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17년간 토피스 유니폼을 입고 9개의 우승컵을 쓸어담았습니다.
특히 1984/85 시즌 에버튼은 라이벌 리버풀을 제치고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과 UEFA 컵위너스컵 우승에 성공해 사우스올 본인은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추가로 PFA 올해의 팀에 4연속 뽑힌 그는 750경기 출장으로 에버튼 구단 역사상 최다 출장자이며 에버튼 역사상 최다 클린시트 기록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라이트백
알프 셔우드
포지션:RB
국적:웨일스
신장:174cm
생년월일:1923년 11월 13일
주요 클럽:카디프 시티 FC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6년
A매치 41경기 0골
'드레이기아' 웨일스 축구를 빛낸 영연방 역대 최고의 우측 수비수 중 하나. '슬라이딩 태클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는 알프 셔우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태클링으로 영국 전역에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는 카디프 시티 FC 소속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3부였던 팀을 1부 리그까지 오르는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이런 뛰어난 기량에 대해 당대 최고의 윙어인 잉글랜드의 스탠리 매튜스는 "내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선수."라고 덧붙인 바 있습니다.
센터백
케빈 랫클리프
포지션:CB
국적:웨일스
신장:180cm
생년월일:1960년 11월 12일
주요 클럽:에버튼 FC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6년
A매치 59경기 0골
1980년대 토피스 전성기의 후방에 존재했던 '단단한 사나이'. 발은 느리지만 무서울 정도로 단단한 1대1 마크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레프트백으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결국 센터백에 정착했습니다.
랫클리프는 에버튼 유스 출신으로 1군에서도 대체불가의 존재감을 보여주며 돌풍을 일으켜 2차례의 1부 리그 우승을, 1984/85의 시즌엔 또 구단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인 위너스컵 우승을 이루는 등 여러 타이틀을 따내며 구디슨 파크를 환호성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또 84/85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까지 뽑히며 유러피언컵 티켓에 일등공신이 되었지만 그해 철천지 원수인 리버풀의 '헤이젤 참사'로 인해 그들의 유럽대항전 꿈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센터백
마이크 잉글랜드
포지션:CB
국적:웨일스
신장:188cm
생년월일:1941년 12월 2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4년
A매치 44경기 4골
1960년대와 70년대 중반에 걸쳐 EPL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로 불렸던 명 중앙 수비. 강력한 태클과 굳센 몸싸움, 물 샐 틈 없는 맨 마킹 능력으로 유명했던 마이크 잉글랜드는 이름은 잉글랜드이지만 웨일스인입니다.
그는 블랙번 로버스에서 토트넘 핫스퍼로 보금자리를 옮겼고 그 곳에서 각 1차례의 FA컵 우승, 2차례의 풋볼 리그컵 우승을 이뤘습니다. 특히 1971/72 시즌, 울버햄튼을 잡고 UE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2년 뒤인 1973/74 시즌 결승에서 마이크 잉글랜드는 골을 기록했지만 페예노르트에게 패배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레프트백
조이 존스
포지션:LB
국적:웨일스
신장:179cm
생년월일:1955년 3월 4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1975년 ~ 1986년
A매치 72경기 1골
1970년대 후반 리버풀의 최전성시대를 열어제낀 주전 레프트백. 뛰어난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추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사용해 레프트백 외에도 라이트백까지 소화가 가능했던 존스는,
1975년 리버풀로 이적해 케빈 키건, 이안 캘러한, 케니 달글리시 같은 엄청난 선수들과 같이 1차례의 리그 우승과 UEFA컵 우승, 2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함께 하는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붉은 제국'의 초석을 다진 그는 후에 첼시로 이적해서도 2부였던 팀을 1부로 승격하는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게리 스피드
포지션:DM
국적:웨일스
신장:178cm
생년월일:1969년 9월 8일
주요 클럽:리즈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4년
A매치 85경기 7골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20년간 변함없이 EPL 탑클래스 퍼포먼스를 꾸준히 이어갔던 미드필더. '철강왕'이라는 단어가 잘어울리는 체력왕인 선수로 미드필더 지역의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지만 주로 중앙, 좌측면 미드필더, 레프트백으로 뛰며 훌륭한 공수 밸런스로 헌신적인 플레이을 해내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리즈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2부에 승격한 팀을 1991/92 시즌 1부 리그 우승과 95/96 시즌 리그컵 준우승으로 이끄는 돌풍을 만들었고 1992/93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까지 들어갔습니다. 후에는 뉴캐슬로 이적해서 앨런 시어러를 도와 2차례의 FA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던 게리 스피드는 안타깝게도 은퇴한지 얼마 안된 2011년, 의문의 자살로 축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라이트 윙어
빌리 메레디스
포지션:RM
국적:웨일스
신장:175cm
생년월일:1874년 7월 30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895년 ~ 1920년
A매치 48경기 11골
'웨일스의 마법사'로 불렸던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타 플레이어. 별명답게 당대 최고의 윙어로 뛰어난 드리블, 재빠른 턴 동작, 정교한 패스, 날카로운 크로스와 슛팅에 모두 능통했다고 전해집니다.
맨체스터의 두팀, 맨유와 맨시티에서 모두 역대급 활약을 남긴 메레디스는 전자 소속으로는 1907/08 시즌의 구단 역사상 첫 메이저 트로피인 1부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종합 5개의 트로피를 들며 맨유 최초의 전성기를 구단에 선물했으며 후자 소속으로는 2번의 강등에도 팀을 다시 승격시켰고 1903/04 시즌 FA컵 결승에선 볼턴을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 구단 첫 컵 대회 우승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더해서 그는 무려 50세까지 프로로 뛰다가 은퇴한 철강왕이기도 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가레스 베일
포지션:AM
국적:웨일스
신장:184cm
생년월일:1989년 7월 16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7년
A매치 111경기 41골
2016 UEFA 유로 3위
존 찰스, 라이언 긱스의 자리를 위협하는 2010년대 영연방 최고의 선수 중 하나. 치달 장인으로 불리는 어마무시한 스프린트, 강력하고 날카로운 왼발 킥, 훌륭한 연계 능력까지 갖췄었으며, 본래 레프트이었으나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신의 한수 이후, 미친 퍼포먼스로 당시 토트넘을 캐리했습니다.
중상위이던 팀을 챔스에 보내고 당시 최고의 수비 마이콘을 박살내는 등 본인은 10/11 시즌부터 3연속 PFA 올해의 팀에 뽑혔고 특히 12/13 시즌, 26골 10도움을 기록하며 PFA, FWA,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역대급 폼을 선보였습니다. 후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나이로 불리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는 부상 빈도도 심해져 먹튀로 불리기도 했지만 3차례의 라리가와 5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중 몇번은 그의 활약상이 결정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는 웨일스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서 역대 최다 출장과 득점 기록을 다시 썼으며 미친 경기력으로 유로 2016에서 4강행을 이끌어 UEFA 올해의 선수 3위까지 올랐고 2022년에는 지역예선에서 엄청난 캐리로 64년만에 웨일스를 월드컵 본선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썼습니다.
레프트 윙어
라이언 긱스
포지션:LM
국적:웨일스
신장:178cm
생년월일:1973년 11월 29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7년
A매치 64경기 12골
웨일스 축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명. 가공할 만한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뛰어난 왼발 슛과 크로스 정확도 등 '조지 베스트의 재림'이라 불리며 화려하게 커리어의 시작을 알렸고 그냥 축구를 잘해 나이가 찬 30대부터는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중앙 미드필더로도 기복없는 활약을 하며 그 기량을 유지했습니다.
유스부터 은퇴하기까지 24년 동안 오직 맨유에서만 뛰며 많은 데빌스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긱스는 리그 우승 13회(PL 역대 개인 최다 우승), 컵 우승 4회, 챔스 우승 2회 등등 어마무시한 성적을 쌓았습니다. 162회로 PL 역대 최다 도움, 2008/09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 6차례의 PFA 올해의 팀에 뽑힌 그는 경기 내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모범적인 귀감이 되지만 역대급 불륜 스캔들이라는 사생활은 아직도 안좋은 쪽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덧붙여 클럽 커리어에선 부귀를 누린 것과 다르게 웨일스 대표팀에선 항상 부족한 팀의 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단 한번의 월드컵 무대에 나서지 못했던 긱스였습니다.
스트라이커
존 찰스
포지션:ST
국적:웨일스
신장:188cm
생년월일:1933년 12월 27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50년 ~ 1965년
A매치 38경기 15골
웨일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존 찰스는 타고난 헤딩, 볼컨트롤 능력에 스트라이커와 중앙 수비수, 두 포지션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 자랑했던 선수로, 188cm의 큰 키와 험상궂은 외모에도 깔끔한 플레이를 펼쳐 '신사 거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당시 2부 리그이던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스트라이커로 포변한 뒤 더 뛰어난 활약으로 팀의 승격과 다음 시즌 1부 리그에서 38골로 득점왕을 따낸 뒤 발롱도르 6위까지 올랐으며 영국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고 해외로 이적한 2번째 영국 선수가 되었습니다. 올드 레이디의 품에서는 찰스는 오마르 시보리,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와 함께 '마법의 삼총사'를 결성해 총 3개의 스쿠데토, 2개의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획득, 세리에 데뷔 시즌에는 득점왕을 수상했고 1959년은 발롱도르 3위에 올랐습니다.
웨일스를 대표해서도 찰스는 에이스로서 1958년 월드컵에서 8강까지 조국을 올리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이안 러시
포지션:ST
국적:웨일스
신장:180cm
생년월일:1961년 10월 20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1980년 ~ 1996년
A매치 73경기 28골
의심의 여지가 없는 웨일스와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346골을 넣어 리버풀 FC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러시는 준족의 스피드, 따라할 수 없는 위치 선정, 천부적인 퍼스트 터치 또 그의 별칭처럼 '귀신'같은 골감각으로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리버풀 '붉은 제국' 왕조에 기여했습니다.
페이즐리의 지휘 아래 케니 달글리시와 스트라이커 - 세컨드 스트라이커 조합의 정석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투톱을 구성했고 득점본능이 발현된 러시의 질주에 팀은 5차례의 리그와 3차례의 FA컵 우승 트로피, 2차례의 빅이어를 들어올렸습니다. 5시즌을 PFA 올해의 팀에 들어간 그는 특히 1983/84 시즌,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한 47골을 박는 괴랄한 퍼포먼스에 PFA,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타냅니다. 후에 유베로 이적하지만 적응에 실해하고 다시 돌아와 주장완장을 차고 1996년까지 안필드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감독
크리스 콜먼
포지션:MANAGER
국적:웨일스
생년월일:1970년 6월 10일
국대 커리어
2012년 ~ 2017년
2016 UEFA 유로 3위
웨일스 국가대표팀을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렸던 감독. 3-5-2를 바탕으로 한 조직적인 수비 체계와 당시 축구 트렌드였던 단단한 중앙 블럭 형성을 필두로 한 역습 축구를 펼쳤던 크리스 콜먼 감독은,
2012년부터 웨일스 대표팀의 감독으로 들어와 뛰어난 팀을 만들었으며 조 앨런, 애슐리 윌리엄스, 가레스 베일, 아런 램지 등의 선수들의 활약 덕에 팀은 유로 2016에서 벨기에을 잡고 4강까지 오르는 이변으로, 이는 아직도 웨일스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입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잭 켈시
포지션:GK
국적:웨일스
신장:182cm
생년월일:1929년 11월 19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1954년 ~ 1962년
A매치 41경기
토니 아담스와 함께 아스날 FC 구단 역사상 유이의 원클럽맨으로 남아있는 인물. 훌륭한 반사신경과 핸들링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잭 켈시는,
1949년부터 63년까지 모든 프로 선수 커리어를 아스날을 위해 보낸 원클럽맨으로 거너스의 품에서 1952/53 시즌의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을 이룬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웨일스 국기를 가슴에 달고도 1958년 월드컵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8강행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프레드 키너
포지션:RB
국적:웨일스
신장:170cm
생년월일:1894년 7월 31일
주요 클럽:카디프 시티 FC
국대 커리어
1920년 ~ 1932년
A매치 32경기 2골
웨일스의 대표 축구 클럽, 카디프 시티를 대표하는 구단 최고의 레전드. 프레드 키너는 굴지의 태클 솜씨와 탄탄한 맨마킹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중앙 수비와 우측 수비를 모두 원숙히 소화했으며,
카디프 시티 FC에서 최고의 활약을 연일 선보인 그의 활약에 팀은 웨일스 출신 클럽 최초로 1926/27 시즌에 '황금 시대' 아스날을 꺾고서 잉글리시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이러한 업적들에 또한 카디프 시티 FC의 홈구장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기도 합니다.
센터백
로이 폴
포지션:CB
국적:웨일스
신장:185cm
생년월일:1920년 4월 18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국대 커리어
1949년 ~ 1956년
A매치 33경기 1골
당대 최고의 센터백 잉글랜드의 빌리 라이트와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웨일스의 명인. '공격수들의 묘지'로 불릴 만큼 뛰어난 대인 방어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부드러운 발밑과 패스 스킬을 가져 하프백(현대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뛰었습니다.
스완지 시티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10년 넘게 활약했더 그는 이 활약상을 바탕으로 맨시티로 이적하는데 성공, 그곳에서도 레스 맥도웰 감독의 애정을 받고 주장까지 역임해 그 폼을 이어갔으며 특히 1955/56 시즌 FA컵에서 우승 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은 아직도 구단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센터백
멜 찰스
포지션:CB
국적:웨일스
신장:170cm
생년월일:1894년 7월 31일
주요 클럽:스완지 시티 AFC
국대 커리어
1955년 ~ 1962년
A매치 31경기 6골
웨일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존 찰스의 친동생. 주포지션은 커리어 초창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며 1960년대 들어서는 주로 센터 포워드를 소화, 이에 그치지 않고 멜 찰스는 형처럼 센터백까지 소화하는 청난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는 주로 스완지 시티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후에 아스날, 카디프 시티에서도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남긴 바 있습니다. 특히 1958년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월드컵에 참가해 8강이라는 성적에 매우 큰 일조를 했습니다.
레프트백
팻 반 덴 하우에
포지션:LB
국적:웨일스
신장:180cm
생년월일:1960년 12월 16일
주요 클럽:에버튼 FC
국대 커리어
1985년 ~ 1989년
A매치 13경기 0골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웨일스 축구를 대표했던 명 라이트백. EPL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팻 바 덴 하우에는 특유의 거친 플레이 덕에 '싸이코 팻'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오른쪽 뿐만 아니라 중앙 수비와 왼쪽 수비도 능숙히 소화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에버튼, 버밍엄, 토트넘 등에서 훌륭한 폼을 보여줬고 특히 우수한 선수들과 같이 1980년대 중후반 에버튼 전성기 하에 뛰면서 2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위너스컵 우승을 일궜습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마크 휴즈
포지션:RM
국적:웨일스
신장:178cm
생년월일:1963년 11월 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84년 ~ 1999년
A매치 72경기 16골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초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지휘했던 스타 플레이어. 마크 휴즈는 발군의 세컨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훌륭한 패스, 군더더기 없는 결정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르샤에서는 실패했으나 2년 만에 돌아와 퍼거슨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2번의 EPL 우승, 3번의 FA컵 우승, 1번의 리그컵 우승과 위너스컵 우승을 포함해 마크 휴즈는 총 11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혁혁한 활약상으로 맨유를 잉글랜드 절대강자로 만들었고 1990/91 위너스컵 결승 바르샤전에선 2골을 넣어 2대1 승리를 이끌어 자신을 방출한 팀에 복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4시즌을 PFA 올해의 팀에 포함된 휴즈는 88/89 시즌, 90/91 시즌엔 PF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는 활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이보르 올처치
포지션:CM
국적:웨일스
신장:178cm
생년월일:1929년 10월 16일
주요 클럽:스완지 시티 AFC
국대 커리어
1950년 ~ 1966년
A매치 68경기 23골
스완지 시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인물. 발군의 득점력과 창의적인 찬스 메이킹,허를 찌르는 중거리포 등이 최대 장기였던 전설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그는,
무려 14년간 스완지 시티에 머무르며 리그 탑급 기량을 연출, 그 덕에 '골든 보이'라는 이명으로 불렸었습니다. 올처치는 팀에 2차례의 웨일스 컵 트로피를 선사했고 이러한 활약에 현재 스완지 시티의 구장 앞에서는 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드레이기아의 품에서 올처치는 존 찰스와 같이 1958년 월드컵 8강행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아론 램지
포지션:CM
국적:웨일스
신장:177cm
생년월일:1990년 12월 26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2008년 ~
A매치 84경기 21골
2016 UEFA 유로 3위
21세기 웨일스 축구를 대표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주로 공격형, 중앙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까지 소화했던 아론 램지는 뛰어난 체력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돌아다니며 번뜩이는 찬스메이킹과 2선 침투 등을 보이며 공격에 가담하는 훌륭한 재능을 지녔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더딘 성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르센 벵거의 사랑을 받으며 메수트 외질, 산티 카솔라, 잭 윌셔 등과 중원을 구성해 2010년대 중반 아스날의 미들진을 책임졌으며 무려 3차례의 FA컵 우승 당시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세라는 웨일스 역대 최연소 주장 기록도 가진 아론 램지는 유로 2016 3위 당시에도 뛰어난 활약으로 올스타에 올랐고 6년 뒤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클리프 존스
포지션:LM
국적:웨일스
신장:170cm
생년월일:1935년 2월 7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54년 ~ 1969년
A매치 59경기 16골
가레스 베일, 손흥민보다 훨씬 이전인 1960년대 토트넘 핫스퍼 FC의 전성 시대를 이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윙어. 왼쪽 뿐만 아니라 오른쪽도 소화가 가능했으며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민첩성과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 후 정확히 머리나 발에 떨궈주는 크로스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던 선수입니다.
당시 토트넘 감독 빌 니콜슨이 애증하기도 했던 그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1960/6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리그와 FA컵에서 우승해 '더블'을 달성했고 그는 19골을 기록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유러피언컵 4강까지 진출, 이런 활약에 유벤투스는 그에게 세계 최고 이적료를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 후 팀에 잔류해 다음 해에 위너스컵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웨일스 국가대표팀 용 군단 아래서 클리프 존스는 1958 월드컵 8강행을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론 데이비스
포지션:ST
국적:웨일스
신장:183cm
생년월일:1942년 5월 25일
주요 클럽:사우스햄튼 FC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4년
A매치 29경기 9골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이름을 날렸던 영국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 훌륭한 신체 능력과 센스 있는 결정력, 특히 기가 막힌 타점의 헤더 감각으로 수많은 골망을 흔들었던 론 데이비스,
그는 2부였던 노리치 시티를 캐리하면서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6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하는 빼어난 활약을 오랜 기간 연출, 특히 첫시즌이었던 1966/67 시즌에는 무려 37골을 넣어 지미 그리브스를 제치고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안았습니다. 또한 다음 시즌까지 득점왕을 따냈고 이 2회 수상은 자국의 존 찰스, 이언 러시도 해내지 못한 기록입니다.
스트라이커
존 토샥
포지션:ST
국적:웨일스
신장:185cm
생년월일:1949년 3월 22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1969년 ~ 1980년
A매치 43경기 13골
1970년대 중반부터 유럽을 통치하기 시작했던 '붉은 제국' 리버풀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존 토샥은 파워풀한 슛팅 능력과 박스 안에서의 뛰어난 몸싸움, 독보적인 헤더 능력으로 공중을 지배했습니다.
그는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로 일컬어지던 케빈 키건과 환상의 '빅 앤 스몰' 투톱을 구성해 리버풀에서 무려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UEFA컵 우승, 1976/77 시즌에는 최초로 유러피언컵에서 빅이어까지 획득하는 대업을 이뤄냈습니다. 스완지로 이적해서는 부상을 앓기도 했지만 4부 리그이던 팀을 1부까지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한 토샥이었습니다.
3)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 수비수
데이 데이비스
게리 스프레이크
스튜어트 윌리엄스
애슐리 윌리엄스
크리스 건터
미드필더
론 버제스
로이 버논
로비 제임스
브라이언 플린
테리 요라스
공격수
트레버 포드
테리 메드윈
딘 사운더스
존 하트슨
크레이그 벨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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