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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베스트 11/영국

잉글랜드 축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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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잉글랜드 국가대표

< England >

홈구장:웸블리 스타디움

최다 득점자:​해리 케인 55골

최다 출장자:피터 쉴튼 125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우승 1회(1966)

UEFA 유로 준우승 1회 (2020)

역대 최고의 선수:바비 찰튼

주장:바비 무어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잉글랜드 역대 베스트 11 1군 스쿼드

 

골키퍼

고든 뱅크스 잉글랜드 대표팀

고든 뱅크스

포지션:GK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37년 12월 30일

주요 클럽:레스터 시티 FC

국대 커리어

1963년 ~ 1972년

A매치 73경기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19​60년대 중후반과 1970년대 초중반 전세계 골키퍼들의 상징과도 같던 영국 축구의 전설적인 수문장. 그는 당대 최고의 판단력과 위치선정 능력, 우수한 조율력과 킥 능력 등을 가지고 이름값 그대로 '은행'과 같이 골문을 안정적으로 잘 지켜냈던 컴플리트 골키퍼였습니다.

 

뱅크스의 클럽 경력에서는 레스터와 스토크 시티에서의 활약상이 가장 두드러졌는데 당시 두 팀은 비교적 약팀이었음에도 그는 고군분투해 0점대의 실점률, 전자 소속으로 2차례의 FA컵 준우승, 1963/64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뤘고 후자 소속으로는 1971/72 시즌의 리그컵 우승을 만드는 활약으로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받았습니다.하지만 72년 한쪽 눈을 잃는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뱅크스의 선수 생명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삼사자 군단에서 그는 1966 월드컵에서 당시 최장 무실점 기록인 443분을 세우는 뛰어난 방어력으로 월드컵 트로피를 조국으로 가져왔고 70 월드컵 브라질전에서 펠레의 다들어간 헤더를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끄집어내는 장면은 가히 압권으로, 이는 많은 호사가들에게 '세기의 선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월드컵 역대 최다 선방률 89.1%의 그는 FIFA 선정 올해의 골키퍼 6연속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라이트백

지미 암필드 잉글랜드 대표팀

지미 암필드

포지션:​RB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35년 9월 21일

주요 클럽:블랙풀 FC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6년

A매치 43경기 0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영연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측면 수비라도 해도 손색 없는 인물. 당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불리는 그는 섬세한 태클, 촘촘한 대인 수비를 보유했으면서도 공격 지역까지 올라가 크로스를 올리고 지원하는 오버래핑 능력까지 겸비했던 암필드였습니다.

 

그는 무려 17년간 블랙풀 FC에서만 선수 생활을 보냈으며 스탠리 매튜스와 우측에서 날카로운 공격 조합을 구성해 1955/56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최고 순위인 풋볼 리그 2위를 달성했습니다. 우승컵은 없었지만 후에는 주장으로 팀을 끌고가며 총 627경기를 소화해 구단 최다 출장 기록도 수립한 지미 암필드를 위해 블랙풀의 홈구장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당연히 리그 최고의 수비였던 그는 대표팀에서도 주전이자 주장직도 역임했었던 인물이지만 아쉽게도 1966년 월드컵 대회 직전 당한 부상으로 본선에는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하며 트로피 대관식을 벤치에서만 지켜봐야 했습니다.

 

센터백

빌리 라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빌리 라이트​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24년 2월 6일

주요 클럽:울버 햄튼 원더러스 FC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9년

A매치 105경기 3골

 

국제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1940년대 ~ 50년대 영국을 넘은 당대 수비의 아이콘. 작은 키임에도 지능적인 커팅과 맹렬한 투지, 용맹한 리더쉽 등으로 수비를 책임졌던 그는 커리어 중반부터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더 뛰어난 모습을 소화하였습니다.

 

빌리 라이트는 주장으로서 당시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이던 1950년대 울버 햄튼의 전성기에 이바지해 1번의 FA컵 우승과 최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우승 3회를 성공하는 한편, 본인은 1951/52 FWA 올해의 선수상과 1957년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았습니다. 울브스의 홈구장에는 동상까지 있는 그는,

 

대표팀에서도 주장완장을 차고 3번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모두 '축구 종가'라는 이름에 걸맞지 못한 성적으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1959년, A매치 100경기를 출전해 센추리 클럽의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축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센터백

바비 무어 잉글랜드 대표팀

바비 무어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41년 4월 12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3년

A매치 108경기 2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역사상 최고의 수비 중 한명이자 바비 찰튼, 스탠리 매튜스와 함께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 절륜의 태클 감각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터셉팅 능력을 보유했으며 이런 역대급 수비력말고도 미드필더 출신 답게 적극적으로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고 양질의 패스까지 뿌리던 스위퍼였던 바비 무어는 리더쉽까지 뛰어나 클럽, 국대에서 모두 어린 나이부터 주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자리잡기 시작한 백4의 센터백으로 뛰며 전성기를 맞은 그의 활약상에 중하위권이던 웨스트햄은 1963/64 시즌 FA컵 우승에서 우승하며 무어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다음 해에는 위너스컵 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해머스 역대 최다 출장자인 그는 후에 2부인 풀럼을 데리고 FA컵 결승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사자 군단'의 품에서도 MVP급 활약으로 1966년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대활약을 했으며 다음 70 월드컵에서도 월드컵 모든 경기에서 3골 이상씩 넣던 역사상 최강 팀 브라질을 상대로 단 1골만 실점하는 맹수비로 인생경기를 찍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무어는 월드 사커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5차례, 1966년 발롱도르 4위, 1970년은 2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립니다.

 

레프트백

애슐리 콜 잉글랜드 대표팀

애슐리 콜

포지션:​LB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80년 12월 20일

주요 클럽:첼시 FC

국대 커리어

2001년 ~ 2014년

A매치 107경기 0골

 

​첼시 FC와 PL 그리고 잉글랜드 역대 최고 수준의 레프트백. 빠른 발을 바탕으로 예측 불허의 측면 돌파, 크로스도 훌륭했으며 대인마크와 슬라이딩 태클 또한 역대급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때문에 윙어들의 무덤이자 맨유 시절 호날두의 천적이라고까지 불려졌습니다.

 

아스날에서 2003/04 시즌의 전설적인 '무패 우승'을 이끄는 맹활약을 했음에도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팀 첼시로 이적한 탓에 '캐슐리 콜'이라고 거너스들에게 까였지만,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콜은 더 뛰어난 활약으로 첼시의 전성기를 견인했고, 수많은 우승컵 중 기적적인 챔스 우승은 애슐리 콜의 수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는 첼시 소속으로 10/11 시즌 PFA 올해의 팀과 08/09, 10/11 시즌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받았습니다.

 

107경기로 센추리 클럽 가입자인 그는 3번의 월드컵과 2번의 유로 본선에 참가,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2004년 유로에서 그는 올스타팀에 들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 잉글랜드 대표팀

스티븐 제라드

포지션:DM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80년 5월 30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2000년 ~ 2014년

A매치 114경기 21골

 

콥들이 가장 사랑했던 상징성 짙은 리버풀 FC의 심장. 패스, 수비력, 스태미너, 중거리슛, 피지컬, 헤딩, 볼컨트롤 능력까지 뭐 하나 빠짐 없이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던 '스티비' 제라드는 중앙 미드필더 외에도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뛸 때는 바로 밑 세컨 탑 위치에서, 신체 능력이 떨어진 말년에는 노련함을 살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도 뛴 육각형 미드필더의 결정체였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를 대표하는건 '캡틴'다운 리더쉽인데 23살에 주장직을 이어받아 훌륭한 카리스마로 2004/05 시즌,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유명한 리버풀의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끄는 등 제라드는 17년 동안 안필드에 몸담으며 팀이 12개의 트로피를 드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더해서 PFA 올해의 선수상 1회(05/06), FWA 올해의 선수상 1회씩(08/09), 2005년 발롱도르 3위와 PFA 올해의 팀 9회 선정 등 오랜 기간 월드 클래스 기량을 펼친 제라드였습니다.

 

스티븐 제라드의 국대 커리어는 항상 프랭크 램파드와의 공존 문제에 대한 잡을을 일으켜왔으며 약점으로 불리던 치명적인 실수를 메이저 대회에서도 종종 저질러 탈락의 원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유로 2012에서는 도움왕, 대회 베스트 11에 들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데이비드 베컴 잉글랜드 대표팀

데이비드 베컴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75년 5월 2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9년

A매치 115경기 17골

영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스타 선수로 평가받던 당대 축구계의 아이콘. 뛰어난 브랜드 가치와 스타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축구는 몰라도 베컴은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베컴은 영화배우 같은 외모와 트레이드 마크인 '택배 크로스', 각도기로 잰듯한 프리킥 능력과 롱패스를 가졌었습니다.

 

또 가녀린 이미지와 다르게 미친듯한 활동량과 돌파 능력으도 뛰어났던 그는 '퍼기의 아이들'의 멤버이자 팀의 7번으로 6차례의 리그 우승, 2차례의 컵 우승, 1998/99 시즌 '트레블' 등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PFA 올해의 팀 4회, 리그 도움왕 3회, UEFA 올해의 팀 2회의 그는 역사에 남을 대역전승 결승 경기인 '캄프 누의 기적'을 본인에 발끝에서 시작시켰고, 그 해 99년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습니다. 이어서 '갈락티코' 정책의 레알로 이적한 베컴은 핵심으로서 06/07 시즌 라리가 우승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대만 가면 부진하던 잉글랜드의 황금 세대 선수들과 달리 애국자스러운 고군분투를 했던 에이스였으며 02 월드컵과 06 월드컵 8강행을 견인, 특히 2002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탈락 위기의 조국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는 프리킥골을 성공시킨 후 두팔을 벌리며 포효하는 장면은 베컴 커리어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입니다.

 

중앙 미드필더

바비 찰튼 잉글랜드 대표팀

바비 찰튼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37년 10월 1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58년 ~ 1970년

A매치 106경기 49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영국 축구의 위상을 한단계 드높인,'축구 종가'를 대표하는 위인. 양발에서 나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거리슛, 드넓은 시야를 이용한 정교한 롱패스,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돌파 능력 등을 선보이면서도 뛰어난 수비 가담과 활동량, 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 덕에 '그라운드의 노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찰튼은 잘나가던 팀을 몰락시킨 '뮌헨 참사'라는 끔찍한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런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팀을 3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 1968/69 시즌에는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상대로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이끌어 바닥까지 추락한 맨유의 위상을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맨유 역대 최다 득점, 출장 순위 2위에 빛나는 그는 65/66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도 19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MVP 수준의 퍼포먼스로 왕좌에 앉았고 유로 68에서도 3위에 안착하는 최고의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찰튼은 1967년과 68년엔 발롱도르 2위에 올랐고 1966년엔 영광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라이트 윙어

스탠리 매튜스 잉글랜드 대표팀

스탠리 매튜스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15년 2월 1일

주요 클럽:블랙풀 FC

국대 커리어

1934년 ~ 1957년

A매치 54경기 11골

초대 발롱도르 수상에 빛나는 역대 최고의 윙어이자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 하나. 세간으로부터 '드리블의 마술사'라는 별명의 선조임을 증명하듯 알까기, 바디페인팅, 양발 드리블 등의 돌파 능력, 자로 잰듯한 크로스 등 우리가 아는 윙어 형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범적인 프로 정신, 훌륭한 자기관리로 50살의 나이까지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매튜스는 스토크 시티와 블랙풀이라는 중위권 팀의 공격을 홀로 이끌며 각각의 구단 리그 최고 성적인 4위, 2위에 등극했고 후자의 소속으로는 3차례 FA컵 결승에 올라 1952/53 시즌 '매튜스 파이널'이라 불린 전설적인 경기력으로 FA컵 우승을 이끄는 미친 활약을 남겼습니다. 47/48 시즌 최초로 제정된 FWA 올해의 선수상을 포함해 2차례 상을 수상한 매튜스는 40살의 나이인 1956년 초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또 게오르기우스 십자가를 유니폼에 붙이고도 그는 9번의 브리티쉬 홈 챔피언십 우승과 2번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케빈 키건 잉글랜드 대표팀

케빈 키건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51년 2월 14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국대 커리어

1972년 ~ 1982년

A매치 63경기 21골

​1970년대 잉글랜드 축구를 상징하는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 화려한 드리블, 유능한 기회창출, 매서운 슛 기술 등에 능했으며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처럼 조그마한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헤더와 발리슛 등 포스트플레이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본래 우측 미드필더였던 '마이티 마우스' 키건은 빌 샹클리의 눈에 띄어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 후에 기량을 꽃피웠고 리버풀의 품에서 그는 3차례의 1부 리그 우승, 2차례의 UEFA컵 결승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우승의 수훈갑이 됩니다. 2번의 PFA 올해의 팀, 1번의 FWA 올해의 선수상에 빛나는 키건은 1976/77 시즌, 구단의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며 발롱도르 2위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독일행 비행기를 탄 뒤 함부르크의 시대를 개척하기도 한 그는 각 1차례의 분데스 우승과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견인했습니다. HSV에서의 4년간 키커 선정 4회의 WK, 3시즌의 올해의 팀, 1978년과 79년은 잉글랜드 유일의 발롱도르 2회 수상이라는 역대급 활약을 써내렸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추락하고 있었던 시기의 잉글랜드 국대였던지라 키건의 국대 커리어는 부실한 편입니다.

 

스트라이커

지미 그리브스 잉글랜드 대표팀

지미 그리브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40년 2월 20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7년

A매치 57경기 44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종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그리브스는 '득점 기계'라는 이명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골결정력과 침투 능력을 비롯해 작은 키에도 감각적인 헤더, 적들의 수비라인을 부수는 드리블 돌파에도 능했던 만능 공격수였습니다.

 

첼시에서 떠서 AC 밀란에서 실패를 겪고 토트넘 소속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의 최전성기를 견인한 그는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뛰면서 2번의 FA컵 우승, 1번의 위너스컵 우승의 지대한 공헌, 더해서 4번의 리그 득점왕을 따냈고 첼시 시절까지 합쳐 6번으로 잉글랜드 풋볼리그 역대 최다 득점왕 수상자, 266골을 넣어 토트넘 역대 최다 2위, 357골로 잉글랜드 1부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라는 파천황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1963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랭크되기도 했습니다.

 

6회로 대표팀 역대 최다 해트트릭 기록 보유자일 정도로 그 득점 본능은 국대에서도 멈출줄 몰랐으나 부상이라는 장애물이 그를 넘어트렸고 조국에서 열린 1966 월드컵에서는 명단에는 들었으나 결국 우승에도 메달은 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감독

알프 램지 잉글랜드 대표팀

알프 램지

포지션:MANAGER

국적:잉글랜드

생년월일:1920년 1월 22일

국대 커리어

1963년 ~ 1974년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두말하면 잔소리인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 온전히 윙어에게만 공격 전개를 의존하던 당시 영국 축구의 암덩어리를 과감하게 잘라내며 윙어가 없는 포메이션인 4-1-3-2 포메이션을 창안, '날개 없는 경이'라고 불린 이 시스템을 사용한 램지의 입스위치 타운은 3부 리그에서 1부 리그 우승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대표팀에 부름을 받은 그는 바비 무어, 바비 찰튼, 고든 뱅크스 등의 멤버들과 함께 뛰어난 경기력으로 1966년 월드컵 우승과 1968년 유로 3위 등의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월드컵 최고 성적으로 당시 바닥까지 추락해있었던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잉글랜드 축구 역대 베스트 11 2군 스쿼드

 

골키퍼

피터 쉴튼 잉글랜드 대표팀

피터 쉴튼

포지션:GK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49년 9월 18일

주요 클럽:노팅엄 포리스트 FC

국대 커리어

1970년 ~ 1990년

A매치 125경기

1990 FIFA 월드컵 4강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공식 경기(1374경기)를 출장한 고든 뱅크스를 잇는 영국 역대 최고의 골키퍼. 뛰어난 반응속도와 세이빙 능력을 이용해 골문을 향한 공을 모조리 쳐내던 그는 선수 경력이 30년에 다다르며 50세가 가까이 될 나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정도로 뛰어난 관리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레스터, 노팅엄, 스토크, 소튼, 더비 등 서로 다른 5개의 클럽에서 100경기를 뛰며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PFA 올해의 팀 10회로 역대 최다 선정자인 쉴튼은 특히 노팅엄 소속으로 18골만을 실점하며 PFA 올해의 선수상과 1977/78 시즌의 리그 우승, 이어진 2년은 연속으로 유러피언컵에서 빅이어를 드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특히 1979/80 시즌 유러피언컵에서는 함부르크의 파상공세를 모조리 막아내며 1대0 승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 그였습니다. 

 

1989년 발롱도르 5위의 쉴튼은 더해서 국대에서도 최다 출장 자리에 앉아있으며 3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역대 최다 클린시트 기록(10경기)을 유지중이며 특히 40살이라는 나이에도 1990년 월드컵에서 몇십년만인 조국의 4강행을 이루게 했습니다.

 

라이트백

게리 네빌 잉글랜드 대표팀

게리 네빌​

포지션:​RB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75년 2월 18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5년 ~ 2007년

A매치 85경기 0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PL을 넘어 영연방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명으로 널리 일컬어지는 인물. 오랜 시간 맨유라는 빅클럽에서 주전으로 활약할 만큼 기복 없는 기량을 유지한 그는 견고한 1대1 대인 마크 능력, 섬세한 태클, 발군의 크로스 특히 오른쪽에서 베컴과의 훌륭한 호흡을 연일 선보였던 이였습니다.

 

네빌은 '퍼기의 아이들'의 일원으로 맨유 황금 유스 라인으로 데뷔해 후에는 주장으로서 선수단을 이끌다 은퇴한 원클럽맨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의 찬란한 황금기를 지탱하며 8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컵 우승, 2번의 챔스 우승, 1998/99 시즌의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트레블', PFA 올해의 팀 6회 선정 등등 자신의 이름을 많은 팬들의 머리에 각인 시킨 바 있습니다.

 

잉글랜드 실패한 황금 세대의 일원이었던 게리 네빌은 신인 시절 1996년 유로 4강을 함께 했지만 이어진 대회에서는 계속된 불운으로 신통치 않는 성적을 내는데 그쳤습니다.

 

센터백

리오 퍼디난드 잉글랜드 대표팀

리오 퍼디난드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89cm

생년월일:1978년 11월 7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7년 ~ 2011년

A매치 81경기 3골

21세기 맨유의 최전성기를 이끈 수비진의 커맨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수비수 월드 레코드를 갱신하며 맨유로 넘어온 그는 파트너 비디치와는 다르게 발이 빠르고 발밑 능력도 우수해 지능적인 수비와 빌드업을 잘했고 경기를 읽는 능력도 뛰어나 수비 라인 커맨딩에도 능했습니다.

 

비디치와는 서로의 장단점을 잘 보완하며 '통곡의 벽'을 이뤘고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퍼디치' 조합이라는 당대 최고의 센터백 듀오로 불리며 6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비롯해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맨유에게 안겼습니다. 6번의 PFA 올해의 팀에 들어간 퍼디난드는 특히 리그 + 챔피언스 리그 '더블'을 달성한 2007/08 시즌엔 그 활약을 인정받아 ESM 올해의 팀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국대에서는 센터백 듀오였던 존 테리와 마찬가지로 클럽에서만큼의 최고의 활약은 하지 못했으며 3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퍼디는 그래도 2002년 월드컵과 06 월드컵에서는 8강을 이끌며 개인의 활약만큼은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존 테리 잉글랜드 대표팀

존 테리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87cm

생년월일:1980년 12월 7일​

주요 클럽:첼시 FC

국대 커리어

2003년 ~ 2012년

A매치 78경기 6골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첼시 FC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PL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 존 테리는 훌륭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과 특유의 걸레수비를 펼치는 파이터 기질, 뛰어난 위치선정, 태클, 경기리딩 능력과 리더쉽, 비상한 수비 지능의 커맨딩 성향도 갖춘 2000년대 최고의 수비수를 논하자면 꼭 거론되는 이름입니다.

 

득점 능력도 좋아 EPL 역대 최다 득점 수비수(41골)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테리는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스탬포드 브릿지에 머무르며 블루스의 최전성기를 받들었고 각각 5번의 리그, 컵 우승과 1번의 챔스와 유로파 우승 트로피를 주장완장을 차고 들어올렸습니다. 더해서 4차례의 PFA 올해의 팀, 3차례의 UEFA 올해의 수비수, 2004/05 시즌에는 몇 없는 수비수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국가대표로는 주장으로서 2006년 월드컵에 참가해 8강에서 떨어짐에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 불륜 사건으로 인해 주장직도 박탈당하고 본인도 부진하며 잉글랜드 축구의 암흑기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레프트백

케니 샌섬 잉글랜드 대표팀

케니 샌섬

포지션:​LB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58년 9월 26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1979년 ~ 1988년

A매치 86경기 1골

1980년대 잉글랜드를 상징하던 레프트백이자 어쩌면 영국 프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강렬한 방어력과 감출 수 없는 공격 본능을 가졌던 그는 3부 리그였던 크리스탈 팰리스를 1부로 승격시키는 활약으로 아스날로 이적해 그 기량을 이어갔습니다.

 

케니 샌섬은 아쉽게도 아스날의 암흑기에 뛰었던 선수라 우승컵은 달랑 1987년의 리그컵 우승이 다지만 그의 당대 탑클래스 역량을 입증하는 것은 개인 커리어인데, 팰리스에서의 한시즌을 포함해 79/80 시즌부터 86/87 시즌까지 8회 연속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유일무이한 대기록을 써냈습니다. 1985년 '헤이젤 참사' 전까지 잉글랜드가 최고 수준의 리그로 평가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의 샌섬도 A매치 37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는 등 닥주전으로서 4번의 메이저 대회에 당당히 참여했습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웨인 루니 잉글랜드 대표팀

웨인 루니

포지션:RM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85년 10월 24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2003년 ~ 2018년

A매치 120경기 53골

21세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아이콘. 골 네트를 찢을 정도로 강력한 슛팅, 한 때 '절구통 드리블'로 불렸던 강력한 피지컬과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뛰어난 수비 가담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가져 최전방 외에도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미드필더에 가까운 모습으로 뛰게 되었습니다.

 

루니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폼으로 각광받았고 그 활약을 오랜 기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품에서 이어가며 총 5번의 리그와 1번의 챔스 우승, 2번의 챔스 준우승을 포함해 16개의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에 달았습니다. 또 루니는 PFA 올해의 팀에 3번 선정, 커리어 하이인 2009/10 시즌엔 올해의 선수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으며 10/11 시즌엔 발롱도르 5위, 후에는 맨유와 잉글랜드의 레전드 선배인 바비 찰튼의 기록을 깨고 253골을 넣어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2004년 유로에서 4골을 넣어 한 때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로 점쳐졌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면서 6번의 국제 대회에서 꼴랑 3골만을 추가로 넣는 그저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53골로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브라이언 롭슨 잉글랜드 대표팀

브라이언 롭슨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57년 1월 1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80년 ~ 1991년

A매치 90경기 26골

1990 FIFA 월드컵 4강

스램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박투박 미드필더 중 하나이자 1980년대 암흑기에 빠져있던 맨유를 황금기로 이끈 No.7 캡틴. 그는 경기장을 휩쓸고 다니던 박투박 스타일의 미드필더였고 드리블, 슛, 패스, 체력, 수비 등 전체적으로 우수한 능력치로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활력소같은 존재였습니다.

 

리버풀의 러브콜에도 이를 거절하고 데빌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퍼거슨 감독과 함께 부진하던 클럽에 부흥기를 가져왔습니다. 맨유 역대 최장 기간 주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캡틴 마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롭슨은 1992/93 시즌, 클럽의 26년만의 리그 우승을 포함해 2번의 EPL 우승과 3번의 FA컵 우승, 1번의 위너스컵 우승을 실현시켰으며 무려 6차례의 PFA 올해의 팀 선정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의 대표로도 다년간 캡틴을 맡았던 그, 3차례 월드컵 본선의 잔디를 밟았으며 그 중 1990년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오르는 오래간만의 호성적을 경험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프랭크 램파드 잉글랜드 대표팀

프랭크 램파드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78년 6월 20일

주요 클럽:첼시 FC

국대 커리어

1999년 ~ 2014년

A매치 106경기 29골

 

21세기 EPL과 첼시 축구를 빛냈던 월드 클래스 '미들라이커'. 램파드는 빼어난 슛팅 능력, 강철 체력, 발군의 수비력, 정확한 패스 등 뛰어난 피지컬을 위시해 육각형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특히 미드필더로서 역대급 득점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탁월한 공격 가담과 2선 침투 덕에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첼시 FC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211골), 10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 심지어는 PL 역대 최다 득점, 도움 순위 상위권에까지 랭크되어 있습니다.

 

특히 드록바와의 찰떡 호흡으로 손흥민, 케인이 갱신 전까지 PL 듀오 최다골(36골) 기록도 있었던 '푸른 심장' 램파드는 블루스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13개의 월계관을 머리에 썼고, 수많은 우승의 주역으로 3회의 PFA 올해의 팀에 선정, 특히 2005년에는 발롱도르 2위와 FWA 올해의 선수로 뽑히는 위엄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 프리미어 리그 탑클래스 선수들이 그렇듯 램파드 역시도 대표팀만 가면 죽을 쒔는데, 스티븐 제라드와의 공존 문제를 야기해 감독들의 골머리를 앓게했으며 2010년 월드컵에서는 독일의 상대로 원더골을 뽑아냈음에도 오심으로 인정되지 않는 억울한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톰 피니 잉글랜드 대표팀

톰 피니

포지션:LM

국적:​잉글랜드

신장:172cm

생년월일:1922년 4월 5일

주요 클럽: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8년

A매치 76경기 30골

축구 종가의 명성을 이어가게 했던 스탠리 매튜스에 이은 당대 최고의 측면 윙어. 매서운 속도와 민첩성으로 순식간에 사이드를 돌파하는데 능했던 그는 후천적인 양발에서 나오는 크로스와 슛팅 능력도 탁월해 골도 상당히 많이 넣었습니다.

 

적은 수입에 투잡을 뛰던 피니는 '프레스턴의 배관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프레스턴에 엄청난 충성심을 보인 그는 사실상 원클럽맨으로 1차례의 2부 리그 우승, 각 2차례의 1부 리그 2위, FA컵 준우승을 견인했습니다. 1953/54 시즌, 56/57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피니의 원맨팀이었던 프레스턴 노스 엔드는 '피니와 10명의 떨거지들'이라는 멸칭있을 정도였고 그가 떠나자 팀은 바로 강등, 아직까지도 프리미어 리그에 못올라오는 중입니다.

 

덧붙여 1950년대 잉글랜드의 간판 스타였던 그는 조국을 이끌고 3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딕시 딘 잉글랜드 대표팀

딕시 딘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07년 1월 22일

주요 클럽:에버튼 FC

국대 커리어

1927년 ~ 1931년

A매치 16경기 18골

 

영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역사상 최초의 9번. 고환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도 끝까지 뛰는 금강불괴의 신체와 맹렬한 투지, 축구사에서도 손에 꼽는 차원이 다른 헤더 및 득점 감각으로 딕시 딘은 에버튼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잉글랜드 1부 리그를 빛낸 최고의 공격수로 널리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에버튼 FC 소속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FA컵 우승을 따내는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395골을 넣으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클럽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2번의 리그 득점왕 수상자이자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대 득점 3위인 그는 특히 1927/28 시즌, 한 시즌 동안에만 60골을 넣어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잉글랜드 역대 한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우는 괴물같은 기력을 자랑했습니다.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 잉글랜드 대표팀

해리 케인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93년 7월 28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2015년 ~

A매치 82경기 55골

2018 FIFA 월드컵 4강

2020 UEFA 유로 준우승

 

2010년대 중후반부터 현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토트넘, PL, 잉글랜드 축구의 아이콘. 현대 축구에서 말하는 다재다능함을 모두 갖춘 이로 강력하고 날카로운 킥, 우수한 공중볼 능력, 빼어난 수비 가담과 압박, 미드필더 뺨치는 플레이메이킹까지 가졌던 이였습니다.

 

이런 해리 케인은 토트넘 핫스퍼의 유스 시스템에서 자라 2014/15 시즌 허리 케인같은 등장으로 1군 주전으로 자리매김해 팀의 약진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토트넘 역대 최다 득점자, 5번의 PFA 올해의 팀, 3번의 득점왕에 올랐으며 20/21 시즌엔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수상했고 손흥민과 PL 역대 최다 듀오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관에 그친 케인은 16/17 시즌 리그 2위와 18/19 챔스 준우승이 그나마 우승과 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똑같이 국대에서도 에이스이자 주장, 대선배들의 기록을 경신한 최다 득점자로서 2018년 월드컵 4강과 2020 유로 준우승을 이끌었고 전자 대회에서는 득점왕까지 땄으나 그에게 우승 트로피 앞에서는 이는 아무 의미 없을 터입니다.

 

수석 코치

바비 롭슨 잉글랜드 대표팀

바비 롭슨

포지션:HEAD COACH

국적:잉글랜드

생년월일:1933년 2월 18일

국대 커리어

1982년 ~ 1990년

1990 FIFA 월드컵 4강

영국 축구계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한 거장. 뛰어난 포용력과 바른 성품, 뛰어난 지도력 등으로 해외 그리고 강팀, 약팀에 상관없이 여러 클럽들을 돌아다니면서도 수많은 트로피를 따냈던 인물입니다.

 

1982년, 유망한 감독으로 평가받았던 바비 롭슨은 잉글랜드 대표팀에 부임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중요한 순간에 미끄러지며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에는 브라이언 롭슨, 게리 리네커, 폴 개스코인, 피터 쉴튼 등 뛰어난 멤버들에 힘입어 기회를 잡게 되었고 결국 그 해 월드컵에서 무려 24년만에 4강에 올랐습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잉글랜드 축구 역대 베스트 11 3군

 

골키퍼

레이 클레멘스 잉글랜드 대표팀

레이 클레멘스

포지션:GK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48년 8월 5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1972년 ~ 1984년

A매치 61경기

1970 ~ 80년대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 축구를 호령한 리버풀의 최전성기, 이른바 '붉은 제국'을 지켰던 당대 최고급의 No.1. 그는 평범한 키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다이빙, 선방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리버풀은 최강 수비진, 앨런 한센 - 마크 로렌슨 센터백 듀오와 골키퍼 클레멘스의 활약 덕에 1978/79 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16골만 실점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레이 클레멘스는 리버풀에서 10년 가까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5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유러피언컵, 2번의 유에파컵 우승을 포함해 무려 17개의 트로피를 따냈고 1차례의 PFA 올해의 팀, 리버풀 경력 665경기 중 335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는 진기록도 세웠습니다. 후에 토트넘으로 무대를 옮겨서도 각 1번의 FA컵과 유에파컵을 우승한 클레멘스는,

 

이런 어마무시한 활약상과 커리어에도 이름값이 밀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동시대 같은 리그와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피터 쉴튼의 존재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그에게 밀려 벤치 신세였으며 1980년 유로에서 따낸 주전자리만이 그나마 남아있는 클레멘스의 메이저 대회 모습입니다.

 

라이트백

필 닐 잉글랜드 대표팀

필 닐​​

포지션:​RB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51년 2월 20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3년

A매치 50경기 5골

 

리버풀 FC 구단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리버풀의 최전성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붙박이 주전으로 지킨 필 닐은 중앙 수비도 소화 가능한 막강한 수비력과 매서운 킥 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체력과 내구성 역시 아주 탄탄한 철강왕이었는데 더 레즈 유니폼을 입고 무려 417경기를 연속으로 출전했을 경험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무려 8번의 리그 우승과 4번의 유러피언컵 우승, 1번의 유에파컵 등으로 빛나는 커리어를 가진 그는 수비수지만 네번 중 첫번째(76/77 시즌)와 마지막(83/84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1골씩 넣는 수비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그의 기량은 실로 대단했다고 전해지는데 당대 최고의 선수인 코임브라 지쿠가 여러번 직접 언급하며 인정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센터백

잭 찰튼 잉글랜드 대표팀

잭 찰튼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91cm

생년월일:1935년 5월 8일

주요 클럽:리즈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0년

A매치 35경기 6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화이츠' 리즈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바비 찰튼의 친형으로 동생과는 다르게 길쭉길쭉한 신장으로 중앙 수비수로 뛰었으며 맨유의 라이벌팀인 리즈 유나이티드에 모든 클럽 커리어를 바친 원클럽맨이었습니다. 뛰어난 헤딩 능력, 정교한 학다리 태클, 간헐적인 전진 드리블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리즈가 2부와 1부를 떠돌 때 그는 기둥으로서 풍파를 버텨주며 팀은 돈 레비발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고 수어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았습니다. 잭 찰튼은 1966/67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로 선정 되었으며 1968/69 시즌 첫 리그 우승 당시의 활약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랭크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삼사자 군단의 품에서 찰튼은 바비 무어와 파트너십을 맺어 1966년 월드컵에서는 쥘리메컵을 획득해 웸블리 스타디움을 환호성으로 채운 바 있습니다.

 

센터백

닐 프랭클린 잉글랜드 대표팀

닐 프랭크린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22년 2월 24일

주요 클럽:스토크 시티 FC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0년

A매치 26경기 0골

 

1940년대 후반 ~ 50년대 초반 사이에 유럽 최고의 수비로 칭송 받았던 잉글랜드의 간판 디펜더.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던 시기이기 때문에 별다른 타이틀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닐 프랭클린은 예술같은 태클 솜씨, 훌륭한 볼 배급 능력으로 이름을 날리며,

 

10년 넘게 당시 스토크 시티 수비의 마침표이자 공격의 시발점 같은 존재로 군림했습니다. 1946/47 시즌, 아직도 스토크 시티 역대 최고 리그 순위인 1부 4위를 이끌었던 닐 프랭클린의 역량은 동료였던 스탠리 매튜스를 포함해 당대 영국 최고의 선수들인 톰 피니, 빌리 라이트 등이 직접 언급하며 칭찬한데서 엄청난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허나 그는 1950년, 엄청난 투자를 가하던 '축구계 엘도라도'로 불린 콜롬비아 리그로 이적하며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그의 이력에서 월드컵 출전은 전무후무하게 되었습니다.

 

레프트백

에디 햅굿 잉글랜드 대표팀

에디 햅굿

포지션:​LB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08년 9월 24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1933년 ~ 1939년

A매치 30경기 0골

아스날 FC 구단의 첫 전성기를 받들었던 '황금 시대' 아스날의 전설적인 주장이자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축구사 최고의 왼쪽 풀백으로 불렸던 인물. 당시 채프먼 감독의 WM 포메이션의 왼쪽 풀백을 맡은 그는 본래 채식주의자로 헤딩 훈련 중 기절할 정도로 몸이 허약했으나 꾸준한 트레이닝 끝에 강력한 신체 능력과 뛰어난 헤딩 능력, 훌륭한 패스 능력 등을 가지게 되다고 전해집니다.

 

특유의 리더쉽으로 채프먼의 백3 전술의 시스템을 조율한 햅굿이 없었다면 아스날의 1부 리그 3연패을 포함한 12개의 우승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A매치도 30경기를 나갔던 그는 1934년, 월드컵 챔피언이었던 이탈리아와 펼친 명경기, '하이버리의 전투' 현장에도 직접 뛰었던 선수입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앨런 볼 잉글랜드

앨런 볼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68cm

생년월일:1945년 5월 12일​

주요 클럽:에버튼 FC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5년

A매치 72경기 8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활약한 잉글랜드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 견실한 체력, 번뜩이는 득점 본능, 센스 있는 패스, 세밀한 드리블 테크닉, 또 미드필더의 전지역을 소화할 수 있는 당대 영국 최고의 만능 미드필더로 위용을 떨쳤습니다.

 

블랙풀, 아스날, 사우스햄튼에서도 뛰어났으나 볼은 특히 에버튼에 최전성기를 보여줬고 하워드 켄달, 콜린 하비와 함께 중원의 삼각편대를 이루며 '성스러운 삼위일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각 1차례의 리그와 컵 우승을 지휘한 그는 1967/68 시즌엔 무려 20골을 기록하는 역대급 폼을 선보였습니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도 당시 알프 램지 감독의 4-1-3-2 전술의 없어서는 안될 코어로 군림했던 그는 1966 월드컵 우승 - 유로 1968 3위 - 1970 월드컵 8강 등의 고공행진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특히나 갓스물을 넘긴 1966년에는 그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8위에까지 오를 정도로 잘했던 선수였습니다.

 

라이트 윙어

조니 헤인스 잉글랜드

조니 헤인스

포지션:RM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34년 10월 17일

주요 클럽:풀럼 FC

국대 커리어

1954년 ~ 1962년

A매치 56경기 18골

 

런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 펠레가 직접 본 선수 중 가장 패스를 잘했다고 극찬한 양발에서 나오는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컨트롤 능력을 가졌었던 희대의 플레이메이커 헤인스는,

 

1950년대 ~ 60년대 풀럼 FC를 책임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서 20년 가까이 클럽에서만 뛰면서 구단 통산 역대 최다 출장 1위,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그의 혈혈단신에도 아쉽게 약팀이던 풀럼은 트로피를 얻지는 못했으나 그의 활약상 만큼은 엄청나 1961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까지 오르는 선 굵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풀럼 홈구장에 동상까지 있는 헤인스는 또한 축구 역사상 최초로 주급 100파운드를 받은 선수로, 삼사자 군단의 일원으로서 3번의 월드컵에 참가했고 빌리 라이트의 주장완장을 이어받기도 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폴 개스코인 잉글랜드

폴 개스코인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67년 5월 27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88년 ~ 1998년

A매치 57경기 10골

1990 FIFA 월드컵 4강

잉글랜드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재능, 최고의 악동, 최고의 테크니션. 떡 벌어진 떡대를 이용한 단단한 피지컬과 밸런스, 그와 다르게 섬세한 전진 드리블로 필드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돌격대장이었던 그는 키패스, 프리킥, 지능적인 플레이까지 잘했습니다.

 

굵고 투박하기만 하던 잉글랜드 축구의 최초이자 마지막 판타지스타로 평가받는 '가자'는 다혈질적인 성격과 또라이 기질, 부상 등이 발목을 잡아 그 재능을 오래 선보이지 못했지만 토트넘에선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대활약하며 1990/91 시즌, FA컵 우승으로 팀을 인도합니다. 해당 시즌 FA컵 득점왕과 PFA 올해의 팀도 선정되었으며 후에 라치오, 레인저스로 넘어가서도 맹활약, 특히 후자 소속으로 리그 2연패를 이끌며 95/96 시즌 SP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삼사자 엠블럼을 달고 공격의 핵 of 핵으로써 활약한 개스코인은 1990년에 대회 베스트 일레븐급 활약으로 4강을 이끌어 발롱도르 4위에 올랐으며 유로 1996에서도 베스트 11에 들어 대회 4위를 이끌었습니다.

 

레프트 윙어

클리프 배스틴 잉글랜드

클리프 배스틴

포지션:LM

국적:잉글랜드

신장:167cm

생년월일:1912년 3월 14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1931년 ~ 1938년

A매치 21경기 12골

1930년대 허버트 채프먼 감독의 현대 축구의 주춧돌이 된 전술 혁명, 'WM 포메이션'으로 엄청난 명성을 떨치던 '황금 시대' 아스날의 왼쪽 날개. 1997년 이언 라이트가 경신하기 전까지 178골로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의 보유자였던 배스틴은 아웃사이드 레프트(현대의 레프트 윙어)임에도 측면 플레이에 국한되지 않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침착한 결정력으로 직접 득점하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보이는 특유의 마스크 때문에 '소년(The Boy) 배스틴'으로 통칭된 그는 특히 왼쪽 인사이드 포워드 알렉스 제임스와의 호흡이 잘맞았다고 전해지며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리그 3연패 등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스트라이커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게리 리네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60년 11월 30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84년 ~ 1992년

A매치 80경기 48골

1990 FIFA 월드컵 4강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 초중반 유럽 축구를 대표하던 최고의 스트라이커. 골 냄새를 잘 맡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로 테크닉, 피지컬은 엄청 뛰어나지 못했지만 재빠른 민칩성과 기막힌 볼터치, 완벽한 결정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리네커는 레스터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서 에버튼, 바르샤,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펼치며 득점 본능을 발현시켰습니다. 이 팀들을 돌아다니면서 2번의 컵 대회, 1번의 위너스컵 우승을 포함해 6번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으며 개인으로는 각 3차례의 잉글랜드 리그 득점왕(최초로 서로 다른 클럽에서), PFA 올해의 팀과 2차례의 FWA 올해의 선수상, 1차례의 PFA 올해의 선수상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달았습니다.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국대에서도 리네커는 1986년 월드컵에서 6골을 터트려 득점왕으로 뽑혔으며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습니다. 또한 다음 월드컵에서도 4골로 조국의 4강행을 이끌었던 그는 여담으로 선수 시절, 레드는 물론 옐로카드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 '그라운드 위의 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 잉글랜드

앨런 시어러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70년 8월 13일

주요 클럽:뉴캐슬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2년 ~ 2000년

A매치 63경기 30골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파이널 서드 어느 위치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파워풀한 슛팅력, 97%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완벽한 PK 처리, 블랙번 시절에는 뛰어난 돌파력과 연계를 보인 컴플리트 포워드였으며 부상 후인 뉴캐슬 시절에는 든든한 포스트 플레이, 탁월한 공간 창출 능력을 가진 타겟터로 변모했습니다.

 

블랙번 로버스에서 그는 크리스 서튼과 'SAS' 투톱을 구성해 1994/95 시즌 PL 우승을 이끌었으며 후에 뉴캐슬로 이적해 불멸의 존재로 군림하며 우승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팀을 각 2차례의 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으로 인도, 시어러 본인은 PFA 올해의 팀 7회, 리그 득점왕 3회, PFA 올해의 선수상 2회, 뉴캐슬 역대 최다 득점(206골), PL 역대 최다 득점(260골),PL 단일 시즌 역대 최다골(34골)이라는 범접불가의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 국대에서 3번의 국제 대회에 나간 그는 그중 1996년 유로에서 5골로 득점왕,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배하지만 4강까지 올랐으며 그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로 선정되었습니다.


4) 선 외 7인

7 players other than selection

잉글랜드 축구 역대 베스트 11 선 외 7인

 

폴 스콜스 잉글랜드

폴 스콜스

포지션:DM

국적:​잉글랜드

신장:​168cm

​생년월일:​1974년 11월 16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7년 ~ 2004년

A 매치 66경기 14골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사령관. 투박함과 힘 밖에 없던 정교함의 불모지 잉글랜드의 미드필더들 사이에서 유연한 볼컨트롤, 우아하고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와 중거리 슛으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로 특히 좌우로 벌려주는 롱 패스는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세컨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역할부터 시작해 갈수록 내려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까 오갔던 스콜스는 '퍼기의 아이들'의 원년 멤버부터 시작해 약 20년간 맨유에만 헌신해 총 11번의 리그와 3번의 컵, 2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 바 있습니다. PFA 올해의 팀에도 2번 이름을 올린 그는 2011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지만 퍼거슨의 권유로 12년 다시 복귀해 2012/13 시즌, 구단의 20번째 리그 우승을 돕기도 했습니다.

 

허나 국대에서는 램제와 마찬가지로 아쉬웠으며 2004년 유로가 끝난 시점에 일찍이 은퇴를 선언한 그입니다.

 

마틴 피터스 잉글랜드

마틴 피터스

주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4cm

생년월일:1943년 11월 8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4년

A매치 67경기 20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잉글랜드 최초의 월드컵 우승에 있어서 바비 찰튼 만큼 중요했던 1960년대 유럽 최고 수준의 공격형 미드필더. 마틴은 양발에서 조준되는 정교한 패스 솜씨와 뛰어난 드리블 실력, 박스 침투로 골을 넣는 능력까지 뛰어나 윙어, 중앙 미드필더, 센터 포워드까지 소화했었던 선수였습니다.

피터스는 토트넘과 노리치 시티 소속으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특히 웨스트햄 유니폼을 입고서는 1964/65 시즌 최초의 유럽 대회 우승인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다음 시즌에는 리그컵 준우승까지 이룩해냈습니다. 토트넘 소속으로도 리그컵 우승 2회, 유에파컵 준우승 1회 등을 만든 그는,

삼사자 군단 아래 알프 램지 감독의 4-1-3-2 포메이션에서 3의 측면 자리, 현대로 따지면 메짤라, 하프윙에 가까운 역할로 뛰면서 공격을 풀어나갔고 그의 덕에 잉글랜드는 유로 1968에서 3위, 66 월드컵에서는 우승 트로피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글렌 호들 잉글랜드

글렌 호들

주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57년 10월 27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79년 ~ 1988년

A 매치 53경기 8골

1980년대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축구의 얼굴마담과도 같던 월클 공격형 미드필더. 날렵한 몸놀림, 우아하고 부드러운 드리블 테크닉을 이용해 돌파하는데 능했던 호들은 더불어 공격 지역에서의 연계와 위협적인 킬패스도 매우 잘 뿌리던 No.10 유형의 선수였습니다.

 

그는 당시 토트넘이 아끼는 특급 유망주로 데뷔했고 2부로 강등된 팀을 1977/78 시즌, PFA 신인상을 타는 활약으로 토트넘을 다시 1부에 올려놓았습니다.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이후 80/81 시즌, 81/82 시즌 2연속 FA컵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이끌고 무려 5차례나 PFA 올해의 팀에 들어가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그이지만 '헤이젤 참사'의 여파로 잉글랜드 팀들이 유럽 대회에 못나가자 아쉽게 팀을 떠나는 선택을 했던 호들입니다.

 

그렇게 모나코로 가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과 리그 트로피를 가져온 그는 1986년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마라도나의 전설적인 2골을 얻어맞고 아쉽게 8강에서 떨어졌습니다.

 

크리스 워들 잉글랜드

크리스 워들

주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87cm

생년월일:1960년 12월 14일

주요 클럽: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국대 커리어

1985년 ~ 1991년

A매치 62경기 6골

1990 FIFA 월드컵 4강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잉글랜드 축구의 뻥축구를 거슬렸던 명품 테크니션. 훨칠한 신체조건,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와 정교한 킥 능력 덕에 좌우측 윙어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뛴 적도 있는 워들입니다.

 

그는 스퍼스 유니폼을 입고 86-87시즌 리그 3위, FA컵 준우승, 리그컵 준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으며 '헤이젤 참사'의 여파로 당시 엄청난 이적료로 마르세유로 이적,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포카이아인들로부터 '매직 크리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3연속 리그앙 우승과 90/9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말년에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92/93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었던 워들은,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벨기에, 카메룬을 잡고 4강까지 올라갔으나 아쉽게도 3.4위전 패배로 동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습니다.

 

존 반스 잉글랜드

존 반스​

주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63년 11월 7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5년

A매치 79경기 11골

 

스티븐 제라드의 우상이었던 ​1990년대 리버풀의 아이콘격 존재로 군림했던 No.10. 빠릿빠릿한 스피드와 어릿광대를 연상시키는 드리블 감각, 수비를 혼란시키는 정교한 크로스와 패스로 유명했던 그는 뛰어난 활약으로 인종차별까지 견뎌내고 당대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습니다.

 

2부였던 왓포드를 1982/83 시즌 리그 2위와 다음 시즌 FA컵 준우승으로 이끌어 리버풀로 이적,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로 침체기가 온 구단의 진흙 속 진주였던 반스는 피터 비어즐리, 존 올드리지와 함께 뛰며 각 2차례의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달성했고 1987년 발롱도르 6위, FWA 올해의 선수상 2회,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습니다. 1989/90 시즌의 마지막 리그 우승 이후 리버풀은 다시 PL 우승 트로피를 드는데 30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커리어 끝물인 1994년 즈음부터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신체 능력이 예전같지 않았지만 노련함을 살려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습니다.

 

반스는 또 게리 리네커, 크리스 워들, 폴 개스코인과 뛰어난 공격진을 형성해 1990년에는 월드컵에서 4강에 들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블루머 잉글랜드

스티브 블루머

주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874년 1월 20일

주요 클럽:더비 카운티 FC

국대 커리어

1895년 ~ 1907년

A매치 23경기 28골

 

없었던 초창기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었던 최초의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날렵한 몸놀림과 특유의 낮게 깔린 빠른 슛팅, 세간으로부터 이른 바 '데이지 커터'(미사일의 한 종류)라고 불린 공을 발사하던 스티브 블루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커리어를 더비 카운티라는 팀에서 보내며 수많은 골을 폭격, 314골로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대 득점 2위, 득점왕 5회 수상, 홈구장에 흉상까지 조각되어 있는 그는 대표팀에서도 1경기 1골을 넘는 골순도를 자랑했습니다.

 

냇 로프트하우스 잉글랜드

냇 로프트하우스

주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25년 8월 27일

주요 클럽:볼턴 원더러스 FC

국대 커리어

1950년 ~ 1958년

A매치 33경기 30골

 

​볼턴에서 나고 볼턴에서 자라 볼턴을 위해 살고 볼턴에서 세상을 떴었던 볼턴 그 자체인 남자. 자타가 공인하는 볼턴 원더러스 FC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로프트하우스는 뛰어난 포스트플레이와 감각적인 헤딩 능력, 타고난 위치선정으로 수많은 골을 터트리던 선수였으며,

 

약 500경기에 나와서 300골 가량을 기록했고 아직까지도 구단의 제대로 된 마지막 메이저 트로피인 1957/58 시즌 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는 준우승에 그쳤었던 1952/53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바 있었습니다.

 

로프트하우스는 조국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골 순도를 자랑하며 그의 명성을 유지했고 1952년 오스트리아 원정에서는 역사적인 멀티골을 뽑아내며 '빈의 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5)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샘 하디

해리 힙스

프랭크 스위프트

론 스프링겟

데이비드 시먼


측면 수비수

레이 윌슨

비브 앤더슨

스튜어트 피어

카일 워커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중앙 수비수

브라이언 라본

엠린 휴즈

콜린 토드

토니 아담스

솔 캠벨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던컨 에드워즈

노비 스타일스
콜린 벨
앨런 멀레리
레이 윌킨스
폴 인스

주드 벨링엄


공격형 미드필더
윌프 매니언
찰리 조지
토니 커리
트레버 브루킹
데이비드 플랫

윙어
에릭 브룩
존 코넬리
스티브 코펠
스티브 맥마나만
라힘 스털링

센터 포워드
찰리 부찬
레이 카터
스탠 모텐슨
로저 헌트
제프 허스트
트레버 프랜시스
피터 비어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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