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 축구
< Union of European Football Associations >
최다 득점자: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133골
최다 출장자: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216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우승 4회(1934, 1938, 1982, 2006 이탈리아 & 1954, 1970, 1990, 2014 독일)
UEFA 유로 우승 4회 (1964, 2008, 2012, 2024 스페인)
역대 최고의 선수:요한 크루이프
주장:파올로 말디니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레프 야신
포지션:GK
국적:러시아
신장:189cm
생년월일:1929년 10월 22일
주요 클럽:FC 디나모 모스크바
국대 커리어
1954년 ~ 1970년
A매치 74경기
1956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 UEFA 유로 우승
1964 UEFA 유로 준우승
1966 FIFA 월드컵 4강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 초월적인 반응속도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체시력으로 들어가는 골도 막아내던 레프 야신은 현역 시절 커리어 절반 이상의 경기를 클린시트로 막아냈으며 1000회의 1대1 상황 중 50여골만을 실점, 페널티킥 선방률 역시 50%를 넘겼다고 전해지며 골키퍼들이 가장 막기 힘든 골대의 구석의 사각지대도 기가막히게 막아내 '야신 존'이라는 용어까지 탄생시킬 정도였습니다.
FC 디나모 모스크바라는 자국 클럽에만 뛰었던 야신은 5번의 리그와 3번의 컵 우승, 리그 베스트 11에 무려 14회 선정, 특히 1963년에는 리그 27경기에서 6골만을 허용해 전인미답의 골키퍼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더해서 소련 축구의 최전성기였던 60년대의 골문을 지키며 유로 1960의 초대 우승, 유로 64의 준우승을 최우수 키퍼로서 쟁취했고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해서도 1966년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이제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대명사가 되버린 그의 이름을 따서 월드컵 최우수 골키퍼와 한해 최고의 키퍼에게는 '야신상'을 수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라이트백
세르히오 라모스
포지션:RB
국적:스페인
신장:184cm
생년월일:1986년 3월 30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2005년 ~ 2021년
A매치 180경기 23골
2008 UEFA 유로 우승
2010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우승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그리고 2010년대 역대 최고의 수비수. 선수 시절 초창기에는 수비력은 떨어지나 강력한 오버랩이 장기였던 라이트백이었지만 2011/12 시즌부터는 센터백으로 포변해 빠른 발과 운동 능력을 이용한 방대한 커버 범위, 정교한 킥을 이용한 빌드업, 뛰어난 점프력과 헤더 등의 장기에 갈수록 수비력까지 상승해 월드 클래스 센터백이 된 라모스였습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 전성기의 주전으로 16년을 뛰며 라리가 5회 우승, 챔스 4회 우승을 포함해 무려 22개의 트로피를 손에 넣는 영광을 누렸으며 본인은 UEFA 올해의 팀에 9번, UEFA 올해의 수비수에 2번 선정돼 그 가치를 입증합니다. 특히 그는 버저비터에 능했는데 13/14 시즌 당시 구단의 염원이던 10번째 빅이어인 '라 데시마' 이룩 당시 결승전에선 동점골의 주인공, 15/16 시즌 '라 운데시마' 결승전에선 선제골을 넣는 영웅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적 함대의 일원으로도 후방을 맡은 라모스는 유로 2008 우승 이후, 대회 최우수 라이트백으로서 10 월드컵을, 대회 최우수 센터백으로 유로 12에서 트로피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무려 A매치를 180경기 소화, 이는 스페인 역대 최다 출장 기록 1위이며 유럽 전체로 쳐도 2위입니다.
센터백
프란츠 베켄바워
포지션:CB
국적:독일
신장:181cm
생년월일:1945년 9월 11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7년
A매치 103경기 14골
1966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 FIFA 월드컵 3위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1976 UEFA 유로 준우승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수비하고 공을 건네주는데서 그치지않고 직접 볼을 몰고 올라가 패스를 뿌리고 슛팅하는 등 적극적으로 공격 가담하는 중앙 수비수의 형태, 수비수가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리베로 스타일을 만든 장본인으로 탁월한 대인 수비, 민첩한 태클, 본래 미드필더 출신인 만큼 세심한 패스와 플레이메이킹, 매서운 전진 드리블, 뛰어난 슛팅 등 공수 양면에 걸쳐 완벽한 모습을 드러냈던 이였습니다.
베켄바워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최고의 명문팀으로 탈바꿈시키는 4차례의 분데스리가와 포칼 우승, 유러피언컵 3연패를 진두지휘했습니다. 그 13년 동안 그는 키커부터 27회의 WK를, 12시즌간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디 만샤프트의 일원으로도 어린 나이부터 핵심으로 뛴 그는 특히 리베로 시스템을 대표팀에서도 접목해 이룬 유로 1972 우승 - 1974 월드컵 우승 - 유로 1976 준우승으로 이어지는 이 기간은 독일 대표팀 역대 최고의 전성기로 평가 받습니다. 더해 본인이 참가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팀에 들었고 발롱도르 3위 1번, 2위 2번, 1972년과 1976년엔 1위까지 했으니 정말 '카이저'라는 이름이 안아까운 업적들입니다.
센터백
바비 무어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41년 4월 12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3년
A매치 108경기 2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역사상 최고의 수비 중 한명이자 바비 찰튼, 스탠리 매튜스와 함께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 절륜의 태클 감각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터셉팅 능력을 보유했으며 이런 역대급 수비력말고도 미드필더 출신 답게 적극적으로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고 양질의 패스까지 뿌리던 스위퍼였던 바비 무어는 리더쉽까지 뛰어나 클럽, 국대에서 모두 어린 나이부터 주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자리잡기 시작한 백4의 센터백으로 뛰며 전성기를 맞은 그의 활약상에 중하위권이던 웨스트햄은 1963/64 시즌 FA컵 우승에서 우승하며 무어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다음 해에는 위너스컵 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해머스 역대 최다 출장자인 그는 후에 2부인 풀럼을 데리고 FA컵 결승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사자 군단'의 품에서도 MVP급 활약으로 1966년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대활약을 했으며 다음 70 월드컵에서도 월드컵 모든 경기에서 3골 이상씩 넣던 역사상 최강 팀 브라질을 상대로 단 1골만 실점하는 맹수비로 인생경기를 찍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무어는 월드 사커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5차례, 1966년 발롱도르 4위, 1970년은 2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립니다.
레프트백
파올로 말디니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6cm
생년월일:1968년 6월 26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8년 ~ 2002년
A매치 126경기 7골
1990 FIFA 월드컵 3위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
2000 UEFA 유로 준우승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우아하고 환상적인 태클로 대두되는 완벽한 수비력을 구사하면서도 후천적 양발에서 나오는 크로스 능력을 비롯한 오버랩으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중앙과 측면에서 모두 절정의 기량을 보일 수 있었던 말디니였습니다.
밀란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그는 마라도나, 호마리우, 호나우두, 호날두 세대의 선수들을 모두 직접 상대하면서 '밀란 제너레이션'의 핵이자 주장으로 무려 25년간 꾸준한 활약을 해 8번의 리그 우승과 챔스 결승 진출, 그 중 5번의 빅이어를 들어올렸으며 구단 영구결번 3번, AC밀란 역대 최다 출장자(902경기), 세리에 A 역대 최다 출장자(647경기) 등의 위업 또한 달성하는 접근불가의 포스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태리 국기를 가슴에 달고서도 15년 가까이 활약하며 참가한 7번의 대회 중 5번의 대회 베스트 11에 뽑힌 말디니는 1994년 월드컵 준우승과 유로 00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1994년과 2003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까지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로타어 마테우스
포지션:DM
국적:독일
신장:174cm
생년월일:1961년 5월 21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1980년 ~ 2000년
A매치 150경기 23골
1980 UEFA 유로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마라도나가 현역 시절 인정한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마테우스는 빼어난 체력과 활동량, 발군의 중장거리 패스, 유연한 볼 컨트롤과 전진 드리블,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과 뛰어난 득점력, 키는 좀 작지만 완벽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전성기에는 피치 위를 맘껏 누비던 박투박 미드필더였으며 그런 다재다능함을 살려 공격형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해 말년에는 점점 내려와 리베로로 뛰었던 이였습니다.
엠게, 바이언, 인테르에서 모두 역대급 활약을 한 그는 인터 밀란서 9년만에 리그 우승을 이끄는 하드캐리를 선보였고 90/91 시즌에는 리그에서 무려 16골을 넣었으며 UEFA컵 우승까지 견인했습니다. 뮌헨에서도 총 7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챔스 준우승을 이뤘으나 키커 선정 분데스 올해의 팀 4회라는 마테우스 뮌헨 커리어의 아쉬운 점이라면 1998/99 시즌, VDV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10위에까지 오르며 진출한 챔스 결승에서 어이없게 역전패 당한 '캄프 누의 비극'입니다.
독일 국대에서도 2번의 월드컵 준우승과 1번의 유로 우승,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특히 1990년 월드컵 우승 당시 주장으로 실버부츠, 실버볼을 수상했고 그 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며 1990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습니다. 더해서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이기도.
중앙 미드필더
미셸 플라티니
포지션:CM
국적:프랑스
신장:178cm
생년월일:1955년 6월 21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7년
A매치 72경기 41골
1982 FIFA 월드컵 4강
1984 UEFA 유로 우승
1986 FIFA 월드컵 3위
지네딘 지단과 프랑스 최고의 선수 자리를 두고 싸우는 역대 최고의 트레콰르티스타. 그는 우월한 시야와 조율 능력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장거리 패스를 뿌리며 경기를 만드는 선수였으나 이렇게 3선까지 내려와 플레이함에도 뛰어난 연계와 슛팅 능력으로 거의 2경기 1득점을 하는 엄청난 스코어러 본능도 선보이던 괴물이었습니다.
그는 낭시, 생테티엔에서 탈 리게앙의 활약으로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 등 스타들이 줄비하던 당시 세리에 A로 이적, 2번의 스쿠데토와 1번의 빅이어를 포함한 7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플라티니 본인은 미드필더로 무려 세리에 3연속 득점왕,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결승 PK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 1983년부터 85년까지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3년 연속 수상하는 등의 대기록을 작성해갔습니다.
뢰블레의 왕으로도 불린 그는 1982년과 86년 월드컵에 참가해 부상을 달고 있었음에도 올스타팀에 들어 4위와 3위로 조국을 이끌었으며 특히 1984년 유로에서는 5경기 9골을 박는 역대 단일 대회 최다 득점 기록으로 우승을 캐리, 득점왕, MVP, 발롱도르까지 석권해 프랑스 땅으로 최초의 국제 대회 트로피를 가져오는 국민 영웅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
포지션:CM
국적:프랑스
신장:185cm
생년월일:1972년 6월 23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6년
A매치 108경기 31골
1998 FIFA 월드컵 우승
2000 UEFA 유로 우승
2006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중반 당대 최고의 플레이어로 일컬어지던 마에스트로. 지단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환상적인 볼터치, 수비 몇 명이 붙어도 벗겨내는 탈압박, 역대급인 조율 능력과 치명적인 킬패스, 중요할 때 터지는 클러칭 능력 등으로 중원을 지배했던 선수였습니다.
'지주'는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 세리에 2연속 우승과 아쉽게 우승은 못했지만 2연속 챔스 결승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2001년, 지단은 '갈락티코 정책'의 타겟이 되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지구방위대' 멤버들과 1차례의 라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01/02 시즌, 챔스 결승에서 보여준 발리 결승골은 아직도 챔피언스 리그를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일컬어집니다.
레알 소속으로 UEFA 올해의 팀에 3연속 선정된 그는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1998 월드컵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트로피를 드는데 성공, 유로 00에서도 MVP로 선정된 뛰어난 퍼포먼스로 우승, 늙은 수탉으로 조롱 받던 2006년의 프랑스를 월드컵 결승에 올리는 캐리력으로 골든볼을 수상했고 이러한 이력에 2000년에는 발롱도르 2위, 1998년엔 발롱도르 1위, 3번의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포지션:RW
국적:포르투갈
신장:187cm
생년월일:1985년 2월 5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2003년 ~
A매치 216경기 133골
2004 UEFA 유로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4강
2016 UEFA 유로 우승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 1회
포르투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리오넬 메시와 21세기 축구계를 양분했던 슈퍼스타. 호날두는 맨유 시절에는 화려한 개인기, 뛰어난 드리블 돌파, 무회전 킥 등으로 이름을 떨친 것과 달리 레알 유니폼을 입고는 뛰어난 골 감각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프 더 볼 움직임을 더 잘 살려 크랙 스타일에서 골게터 유형으로 변모했습니다.
호날두는 은사 퍼거슨 밑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3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휘황찬란한 멤버들과 2번의 라리가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타이틀을 따냈으며, 특히 그 활약상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폭발했습니다. 무려 4번의 빅이어를 들어올린 호날두는 레알 역대 최다 득점 1위(450골),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 2위(311골),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득점 1위(140골), 발롱도르 5회 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 3회 수상, UEFA 올해의 팀 9회 선정, 챔스 득점왕 6회 등의 대기록을 쌓아 올렸습니다.
국가대표로는 A매치 역대 최다 출장자이자 최다 득점자라는 파천황을 이룩했으며 자국 최초의 메이저 트로피인 2016년 유로 우승에도 공헌한 그였습니다.
레프트 윙어
요한 크루이프
포지션:LW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47년 4월 25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7년
A매치 48경기 33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아약스, 네덜란드, 더 나아가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크루이프는 마성의 드리블 돌파와 창조적인 패스,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활동량, 독보적 킥 테크닉 외에도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술 이해도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축구라는 스포츠를 재정립한 전술 체계인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토탈 풋볼'을 완벽히 이행해낸 축구계의 혁명가로도 불립니다.
크루이프는 미헬스의 페르소나로서 강등권이던 아약스를 최전성 시대로 인도해 8차례의 리그, 5차례의 컵,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루었으며 1971/72 시즌 '트레블' 당시 본인도 '득점왕 트레블'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때문에 아약스의 등번호 14번 영구 결번과 홈구장의 이름으로도 남겨진 크루이프는 후에 미헬스를 따라 세계 최고 이적료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엘 클라시코'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5대0으로 박살내버리는 등 73/74 시즌 라리가 우승과 77/78 시즌 국왕컵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오랑예의 일원으로도 시대를 거스르는 경기력을 통솔하며 1974 월드컵, 단일 대회 역대 최다 찬스 메이킹을 기록하는 MVP급의 폼으로 서독에게 패하긴 했지만 결승 진출에 성공, 축구 변방 취급을 받던 네덜란드를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 시켰습니다. 이러한 유산들에 당연히 1971년, 73년, 74년 발롱도르의 주인은 크루이프였습니다.
스트라이커
페렌츠 푸스카스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스페인
신장:172cm
생년월일:1927년 4월 1일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6년
A매치 85경기 84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유럽 축구를 지배하던 당대 최고의 전설적인 공격수. 골대가 흔들리고 골키퍼의 갈비뼈를 뿌러트릴 만한 고통을 주는 강력한 왼발 슛을 쏘던 푸스카스는 득점 능력도 뛰어났지만 우수한 연계, 플레이메이킹, '드래그백'으로 대표되는 볼컨트롤까지 이타적인 플레이까지 지녔었습니다.
그는 잘나가던 헝가리에서 혁명이 일어나 1956년 스페인으로 망명했고 2년의 공백 후인 1958년, 31세라는 늦은 나이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잔디를 밟게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이를 잊게하는 활약으로 39세의 나이까지 뛰며 4차례의 리그 우승, 3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각각 4번, 2번의 라리가와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따낸 그는 1960년 발롱도르 2위에도 올랐으며 유러피언컵 5연패를 확정짓는 59/60 시즌 결승에서는 심지어 4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매직 마자르'라는 당대 최고의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도 푸스카스는 무려 4년 동안 무패행진을 이끌며 195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냈고 54년 월드컵에서도 결승에 올랐으나 서독에게 역전패 당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
포지션:GK
국적:독일
신장:193cm
생년월일:1986년 3월 27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17경기
2010 FIFA 월드컵 3위
2014 FIFA 월드컵 우승
현대 축구에서 원하는 골키퍼 이샹향의 결정체. 분데스와 독일 축구, 나아가 2010년대 최고의 키퍼로 불리는 노이어는 스위퍼 키퍼의 개념를 정립했다고 평가받으며 수비 라인의 넓은 뒷공간을 넓게 커버하면서도 정확한 킥 능력으로 후방 빌드업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골키퍼로서의 세이브 능력만 봐도 역대급인 그는 낭중지추의 활약으로 샬케에서 넘어와 30대 중반의 나이까지 월클 폼을 보이며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에 큰 공을 세웠고 리그 11연패, '트레블'과 '6관왕'을 더해 28개의 우승컵을 알리안츠 아레나에 선사했습니다.
또 7차례의 VDV 올해의 팀, 4차례의 UEFA 올해의 팀에 들어간 그는 여기서 그치지않고 7개의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며 2010년대 조국의 골문을 수호했고 특히나 2014년에는 골든 글러브로서 독일의 우승을 받쳐주며 발롱도르 투표에선 호날두, 메시에 이어 3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베르티 포크츠
포지션:RB
국적:독일
신장:168cm
생년월일:1946년 12월 30일
주요 클럽: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국대 커리어
1967년 ~ 1978년
A매치 96경기 1골
1970 FIFA 월드컵 3위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1976 UEFA 유로 준우승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상대팀 에이스에게 거머리같이 딱 달라붙어 물고 안놔주는, 별명 그대로 '사냥개' 같은 본능을 지녔던 선수로 테크닉의 무지라는 편견과 다르게 오버래핑 능력도 출중했던 포크츠는,
보루시아의 원클럽맨으로 구단의 최전성기를 주도해 라이너 본호프, 귄터 네처, 알란 시몬센 등과 같이 5번의 리그 우승, 2번의 유에파컵 우승, 1번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팀에 선물했습니다. 키커 올해의 팀 9회, 1975년 발롱도르 4위, 키커 랑리스테는 WK등급만 11회이며 WK가 그보다 많은 선수는 베켄바워, 우베 젤러가 전부입니다.
서독의 1970년대 전성기 '람바참바'의 일원으로도 포크츠는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 요한 크루이프를 맨투맨하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며 우승 타이틀을 가져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어진 유로와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으로 주전으로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11(비공식)에 뽑히는 역량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프랑크 레이카르트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90cm
생년월일:1962년 9월 30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8년
A매치 60경기 3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190의 큰 키와 거구를 이용한 피지컬적인 수비에도 능했으며 세밀한 태클과 제공권 장악까지 갖추어 센터백으로도 뛰었었지만 활동량, 볼키핑, 드리블 돌파, 중거리 슛, 패스 같은 부분에서마저 두각을 드러낸 그는 밀란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인물입니다.
아약스에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2차례나 수상하며 AC 밀란에서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와 '오렌지 삼총사'라고 불리는 막강 트리오를 구성했던 레이카르트는 아리고 사키 감독의 지휘 아래 홀딩 미드필더로 뛰며 중원에서 '사키이즘'의 핵심 역할을 잘 이행했고 각 2차례의 스쿠데토와 빅이어를 들어올렸습니다. 특히 유러피언컵 2연패를 하던 1988년과 89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이름을 올렸고 베테랑이 되어 다시 아약스로 돌아온 그는 리베로로 뛰면서 1994/95 시즌의 리그 + 챔스 우승인 '무패 더블'이라는 역사를 작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라녜의 품에서 레이카르트는 각 2차례의 유로와 월드컵에 참가, 1988년 유로에서 올스타에 선정되는 폼으로 유일무이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프랑코 바레시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60년 5월 8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2년 ~ 1994년
A매치 81경기 1골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3위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
이탈리아와 AC 밀란을 대표하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명. 강력한 태클, 노련한 수비 라인 조절, 기습적인 인터셉팅 등의 수비 능력은 신의 경지에 올라있었으며 패스와 전진성 등 공격 능력까지 갖춘 리베로였던 바레시는,
밀란의 유스 출신으로 1980년대 초반, 구단이 2차례나 강등됨에도 끝까지 남아 상처입은 명문팀의 주장으로 팀을 받들었고 후에 막강한 스쿼드를 구성하게 된 '밀란 제너레이션'의 일원으로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무려 6차례의 스쿠데토와 3차례의 빅이어를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1989년 발롱도르 2위를 자랑하는 그는 20년의 프로 생활을 산 시로에서 행한 원클럽맨, 역대 최다 출장 2위, 영구결번 6번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가에타노 시레아에게 밀려 후보였던 바레시는 주전 자리를 잡고 1990 월드컵에서 3위와 역대 최장 무실점 기록을 경신, 다음 94 월드컵 결승에선 브라질의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싸잡아 묶어버리는 미친 퍼포먼스를 펼치나 본인의 승부차기의 실축으로 준우승에 그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레프트백
자친토 파케티
포지션:LB
국적:이탈리아
신장:191cm
생년월일:1942년 7월 18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63년 ~ 1977년
A매치 94경기 3골
1968 UEFA 유로 우승
1970 FIFA 월드컵 준우승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윙백 중 한명. 긴다리를 이용한 태클 뿐만 아니라 공격수로 축구로 시작했을 만큼 뛰어난 주력과 깔끔한 슛팅 능력, 빼어난 공격가담 능력을 토대로 당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떨쳤던 파케티는 인테르로 이적 후, 에레라 감독의 비대칭 수비 라인 전술인 '카테나치오'의 왼쪽 측면을 맡아 공수를 오가며 '카테나치오'를 실현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는 현대 축구의 윙백에 가까운 역할로, 수비수의 역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와 함께 인테르는 4차례의 리그 우승, 유러피언컵 및 인터콘티넨탈컵 2연속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축구잡지인 '월드 사커'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11에 6차례나 선택되었으며 1965년 발롱도르 2위에 빛나는 파케티는,
그는 11년간 아주리 역대 최장기간 주장을 역임했으며 그 기간 동안 유로 1968 우승, 70 WC 준우승을 이뤄 부진하던 자국의 부활에 공을 세웠고 두 대회에서 모두 베스트 11급의 활약을 보이기도 합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차비 에르난데스
포지션:DM
국적:스페인
신장:170cm
생년월일:1980년 1월 25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2000년 ~ 2014년
A매치 133경기 13골
2008 UEFA 유로 우승
2010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우승
스페인 축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축구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역대 최고의 '패스 마스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기 조율력, 뛰어난 시야와 두 말하면 입 아픈 패스 능력, 360도 도는 턴 동작인 '카라콜레스'로 유명한 부드러운 탈압박과 볼키핑, 명석한 축구 지능까지 겸비했던 차비는 21세기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평가 받습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최전성기를 이끈 점유율 패스 축구 '티키 타카'의 가장 중요한 두뇌로 10년 넘게 꾸준히 활약하며 8차례의 리그 우승컵, 4차례의 빅이어를 포함해 세기도 힘들만큼 많은 타이틀을 구단에 선물했습니다. 그는 위엄은 5번의 UEFA 올해의 팀 선정,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발롱도르 투표에서 3연속 3위를 달성, 특히 08/09 시즌, 팀이 6관왕을 먹었던 해에 95%에 다다르는 패스 성공률과 36어시라는 괴물같은 기록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적 함대의 찬란한 항해 당시 가장 중요한 조타수였던 차비는 국대에서도 패스 축구를 가능케하며 유로 2008 - 2010 월드컵 - 유로 2012로 이어지는 사상 최초의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룩, 세대회 모두 올스타팀 선정에 특히 유로 08 에서는 대회 공식 MVP로까지 일컬어졌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포지션:CM
국적:스페인
신장:171cm
생년월일:1984년 5월 11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2006년 ~ 2018년
A매치 131경기 13골
2008 UEFA 유로 우승
2010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우승
21세기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축구의 전성기를 주도한 역대급 미드필더. 작은 키에도 신기의 탈압박과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양질의 패스를 자유자재로 뿌리던 바르샤맨 기질의 선수로, 강인한 멘탈과 중요 경기에서 해내는 버저비터 기질까지 다분했던 이였습니다.
'티키 타카'라는 전술을 가능케 한 그의 역량은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고 그 유명한 '세 얼간이' 중원 라인과 환상의 패스 호흡을 선보이며 2008/09 시즌의 6관왕과 10/11 시즌의 5관왕을 이끌었고 차비의 은퇴 후엔 역대급 공격진 'MSN 라인'을 보좌하며 막강한 공격력으로 14/15 시즌의 '트레블'을 가능케했습니다. UEFA 올해의 팀 6회 선정, 11/12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등 빛나는 개인 커리어가 그의 진가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2008년 유로 우승 - 2010년 월드컵 우승 - 2012년 유로 우승으로 이어지는 스페인 축구가 발견한 엘도라도의 일등공신이었으며 10 월드컵 결승의 결승골, 유로 12 MVP, 2010년 발롱도르 2위, 12년 3위 등이 이를 또 다시 증명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바비 찰튼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37년 10월 1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58년 ~ 1970년
A매치 106경기 49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영국 축구의 위상을 한단계 드높인,'축구 종가'를 대표하는 위인. 양발에서 나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거리슛, 드넓은 시야를 이용한 정교한 롱패스,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돌파 능력 등을 선보이면서도 뛰어난 수비 가담과 활동량, 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 덕에 '그라운드의 노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찰튼은 잘나가던 팀을 몰락시킨 '뮌헨 참사'라는 끔찍한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런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팀을 3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 1968/69 시즌에는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상대로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이끌어 바닥까지 추락한 맨유의 위상을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맨유 역대 최다 득점, 출장 순위 2위에 빛나는 그는 65/66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도 19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MVP 수준의 퍼포먼스로 왕좌에 앉았고 유로 68에서도 3위에 안착하는 최고의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찰튼은 1967년과 68년엔 발롱도르 2위에 올랐고 1966년엔 영광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주세페 메아차
포지션:AM
국적:이탈리아
신장:169cm
생년월일:1910년 8월 23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클럽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30년 ~ 1939년
A매치 53경기 33골
1934 FIFA 월드컵 우승
1938 FIFA 월드컵 우승
중앙 유럽 인터내셔널컵 우승 2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1930년대 축구계를 대표하는 위대한 전설. 수비수 뿐만 아니라 골키퍼까지 드리블로 제치며 골을 넣는 '메아차식 골'이라는 용어도 만들어낼 만큼 뛰어난 테크닉의 소유자였던 메아차는 패스, 드리블 그 외에도 284골로 인테르 구단의 최다 득점자일 정도로 득점 능력에까지 일가견이 있는 당대 최고의 포워드였습니다.
인테르에서 3번의 리그, 1번의 컵 대회 우승을 진두지휘한 그는 3차례의 리그 득점왕, 세리에 A 초대 득점왕, 한경기 6골, 3분만에 해트트릭 등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며 더해서 인테르의 홈구장의 이름인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오'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것입니다.
아주리 유니폼을 입고도 1934년과 38년 월드컵에 참가한 그는 전자의 대회에서는 비공식 MVP로서 우승을,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서 조국의 2연속 우승을 견인하며 이탈리아 민족의 자존심을 드세웠습니다.
스트라이커
에우제비우
포지션:ST
국적:포르투갈
신장:175cm
생년월일:1942년 1월 25일
주요 클럽:SL 벤피카
국대 커리어
1961년 ~ 1973년
A매치 64경기 41골
1966 FIFA 월드컵 3위
남미의 펠레에 대한 유럽의 대답. '축구 황제'에 대적할 만한 연계와 드리블, '흑표범'이라는 별명 그대로 짐승 같은 스피드와 운동 능력, 날카로운 마무리와 파괴적인 슛팅으로 473골을 넣어 벤피카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자에 올라있는 에우제비우는,
신인 때부터 괴수같은 퍼포먼스로 구단의 공격을 지휘, 1972/73 시즌의 '무패 우승'을 포함한 11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5번의 포르투갈컵 우승, 4번의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과 1번의 우승 등을 실현시키며 벤피카를 유럽에서도 통하는 명문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추가로 리그 득점왕 7번, 유러피언컵 득점왕 3번, 1962년과 66년 발롱도르 2위, 1965년 발롱도르 1위 등을 성취한 그는 빅이어를 든 61/62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20세의 나이에 디스테파노와 푸스카스의 레알을 상대로 결승 2골을 뽑은 날은 그의 인생 경기로 여러번 회자됩니다.
또한 유럽 최약체로 평해지던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이끈 에우젭은 무려 9골을 뽑아내며 팀을 1966 WC 월드컵 3위에 올리고 득점왕까지 석권하는 단일 대회 역대급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게르트 뮐러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76cm
생년월일:1945년 11월 3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4년
A매치 62경기 68골
1970 FIFA 월드컵 3위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독일 축구가 배출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명. 타고난 위치선정과 빼어난 헤딩 능력, 천부적인 골 감각을 앞세워 어마무시한 득점 기록을 세운 '폭격기'였던 게르트 뮐러는 주워먹기를 잘한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는 드리블, 연계, 수비 능력도 우수해 간혹 미드필더로도 뛸 정도로 다능한 선수였습니다.
뮐러는 바이언을 최전성기로 이끌며 유러피언컵 3연패로 대표되는 12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더해서 본인은 분데스 득점왕 7회, 유러피언컵 득점왕 4회, 분데스 역대 최다 득점자(566골), 뮌헨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365골) 등 엄청난 기록들을 수두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72/73 시즌에는 메시에게 깨지 전까지 단일 시즌 최다 골 기록인 66골을 득점한 바 있으며 이러한 폭격 능력에 힘입어 당시 '람바참바' 서독 대표팀은 전성기를 맞이, 70 월드컵 3위 당시에는 10골로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유로 72에선 득점왕으로 우승을 주도, 대망의 74 월드컵에서는 결승전 네덜란드를 상대로 환상적인 결승골을 기록하며 월드컵까지 석권하는 눈부신 커리어를 작성했습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
포지션:GK
국적:이탈리아
신장:192cm
생년월일:1978년 1월 28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97년 ~ 2018년
A매치 176경기
2006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준우승
21세기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이자 유벤투스 FC와 이탈리아 대표팀 최고의 수문장 자리를 디노 조프와 양분하고 있는 인물. 큰 키를 바탕으로 한 훌륭한 공중볼 장악, 수비 조율력, 발군의 반사신경으로 안정적인 키핑, 슈퍼 세이브도 자주 연출하던 부폰입니다.
그는 1999/98 시즌 UEFA컵 우승을 파르마에서 이룬 뒤 유벤투스로 넘어가 승부조작 스캔들과 부상의 여파에도 40대의 나이까지 활약해 이탈리아 클럽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습니다. 총 10개의 스쿠데토를 유베에 바치고 3번의 챔스 결승에 올랐던 부폰은 세리에 A 역대 최다 우승자, 세리에 A 역대 최다 출장자, 세리에 A 올해의 골키퍼 10회 수상, 키퍼 유일의 UE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키퍼 최다 발롱도르 입후보(11회) 등의 기록을 썼습니다.
무려 176경기로 이탈리아 축구 역대 최다 출장자이기도 한 그는 아주리 국대에서 2006 월드컵 우승과 2012 유로 준우승을 일궜고 특히 06년 대회에서는 통곡의 벽을 보이며 야신상, 발롱도르 2위까지 석권하게 됩니다.
라이트백
릴리앙 튀랑
포지션:RB
국적:프랑스
신장:185cm
생년월일:1972년 1월 1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8년
A매치 142경기 2골
1998 FIFA 월드컵 우승
2000 UEFA 유로 우승
2006 FIFA 월드컵 준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센터백과 라이트백에서 양면에 걸쳐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했던 유니버셜 클래스 수비수. 중앙에서는 기막힌 대인 방어와 태클, 깔끔한 공중볼 처리와 빌드업을, 오른쪽에서는 괴물같은 활동량과 스피드, 전진 능력까지 보일 수 있었던 튀랑은 축구 지능마저 뛰어나 '철학자'로도 불렸습니다.
모나코를 거쳐 파르마에서 파비오 칸나바로와 난공불락의 센터백 듀오를 만들어 1998/99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 트로피를 드는 부흥을 이끈 그는 후에 같이 유벤투스로 이적해서도 2차례의 리그 우승과 02/03 시즌의 챔스 준우승을 함께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프랑스의 황금기를 받추어줬었던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는 클럽과 달리 주로 라이트백으로 활약했는데 1998 월드컵, 유로 2000 우승과 2006 월드컵 준우승 당시 모두 대회 베스트 11로 선정되는 역량을 선보였고 특히나 98년 WC에서는 호나우두도 지우는 절정의 기량으로 브론즈볼까지 수상 받았습니다.
센터백
가에타노 시레아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53년 5월 2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75년 ~ 1986년
A매치 79경기 2골
1978 FIFA 월드컵 4강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중반의 비안코네리를 빛낸 이탈리안 리베로의 정점. 정확한 태클, 안정적인 커버 플레이, 정교한 롱 패스, 기습적인 돌파, 유려한 커맨딩 능력까지 두루 갖추었던 그는 성실하고 과묵한 수비 라인의 리더였습니다.
'Mr. 유베' 시레아는 카피탄으로서 유벤투스의 '철의 포백'을 구축했고 클럽이 7차례의 세리에 우승, 2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차례의 유러피언컵, 유에파컵, 위너스컵 등 UEFA 주관 3개의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총 14번의 우승을 이루는데 혁혁지공한 활약을 했습니다.
14년간 554경기를 출장해 구단 최다 출장 4위에 올라있는 시레아는 아주리의 품에서도 1978 WC에서는 파케티의 리베로 자리를 채우며 이탈리아를 4위에 안착시켰고 유로 80에서는 올스타팀 선정, 82 월드컵에선 마침내 44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허나 은퇴 후 유베의 코치를 역임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센터백
알렉산드로 네스타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76년 5월 19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6년
A매치 76경기 0골
2000 UEFA 유로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우승
21세기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했던 '신의 벽'. 괴수같은 수비력을 뽐내던 선수로 초인적인 슬라이딩 태클 능력, 깔끔한 헤딩, 우수한 클리어링, 심지어 전진성과 빌드업까지 갖춘 선수였습니다.
라치오의 유스 출신, 주장으로 팀의 반디에라였던 네스타는 전성기를 이끌며 1998/99 시즌의 위너스컵과 99/00 시즌의 리그 + 컵 '더블'을 진두지휘하는 대업을 달성, 허나 구단의 재정 문제로 인해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며 그곳에서도 부상이 좀 있긴했지만 전성기를 이어가 2차례의 세리에와 챔스 우승을 포함한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무려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상만 4번이나 받았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국대에서는 메이저 대회를 참가할 때마다 귀신 쓰인 듯 부상으로 드러누웠으며 그나마 칸나바로, 말디니, 잠브로타와 강철의 포백을 구성한 유로 2000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으로 준우승을 이끈 적이 있습니다.
레프트백
파울 브라이트너
포지션:LB
국적:독일
신장:176cm
생년월일:1951년 9월 5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1971년 ~ 1982년
A매치 48경기 10골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 활약했던 서독 축구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중앙 미드필더 중 한명. 수준급의 운동 능력과 발기술, 스피드를 지닌 이 '폭탄 머리'는 커리어 초기에는 단단한 수비와 활발한 공격 가담이 장점이었던 레프트백이었으나 후에 출중한 기본기, 패스, 득점력을 바탕으로 무서운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는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습니다.
레프트백으로 데뷔해 3차례 리그 우승과 1차례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끈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다시 뮌헨에 돌아와 미드필더로 뛰며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니게'라 불리는 듀오를 구축, 리그 2연패와 81/82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만들었습니다. 키커 선정 베스트 11에 7시즌이나 뽑힌 브라이트너는 1981년에는 발롱도르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디 만샤프트 유니폼을 입고도 레프트백으로는 1972 유로와 1974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끌고 올스타에 선정, 미드필더로는 82년 월드컵 준우승을 지휘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두번의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넣은 몇 안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스탠리 매튜스
포지션:RM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15년 2월 1일
주요 클럽:블랙풀 FC
국대 커리어
1934년 ~ 1957년
A매치 54경기 11골
초대 발롱도르 수상에 빛나는 역대 최고의 윙어이자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 하나. 세간으로부터 '드리블의 마술사'라는 별명의 선조임을 증명하듯 알까기, 바디페인팅, 양발 드리블 등의 돌파 능력, 자로 잰듯한 크로스 등 우리가 아는 윙어 형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범적인 프로 정신, 훌륭한 자기관리로 50살의 나이까지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매튜스는 스토크 시티와 블랙풀이라는 중위권 팀의 공격을 홀로 이끌며 각각의 구단 리그 최고 성적인 4위, 2위에 등극했고 후자의 소속으로는 3차례 FA컵 결승에 올라 1952/53 시즌 '매튜스 파이널'이라 불린 전설적인 경기력으로 FA컵 우승을 이끄는 미친 활약을 남겼습니다. 47/48 시즌 최초로 제정된 FWA 올해의 선수상을 포함해 2차례 상을 수상한 매튜스는 40살의 나이인 1956년 초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또 게오르기우스 십자가를 유니폼에 붙이고도 그는 9번의 브리티쉬 홈 챔피언십 우승과 2번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잔니 리베라
포지션:CM
국적:이탈리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43년 8월 18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4년
A매치 60경기 14골
1968 UEFA 유로 우승
1970 FIFA 월드컵 준우승
2차 세계 대전 이 후 침체 되어있던 이탈리아 축구를 다시 정상에 올려 놓은 '아주리 군단'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당대 최고 수준의 플레이메이킹과 불굴의 드리블 감각, 3번의 득점왕을 따낸 스코어러 본능, 특히 리베라를 대표하는 것은 그런 골만큼 아름다웠다고 평가받는 섬세한 패스 능력이었습니다.
'골든 보이' 리베라는 1960년대 ~70년대에 걸쳐 활약하면서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3번의 스쿠데토, 4번의 컵 대회에서 우승해 산시로를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더불어 2차례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에 성공했던 1963년에는 발롱도르 2위, 69년에는 결국 구단 최초의 발롱도르 위너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도 1968년 유로 우승과 70년 월드컵에서 치열했던 서독과의 경기의 종지부를 찍고 결승행을 이끄는 골을 넣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인테르의 산드로 마촐라와의 공존에 애를 먹으며 자신의 100%를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 또한 있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루드 굴리트
포지션:CM
국적:네덜란드
신장:190cm
생년월일:1962년 9월 1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1년 ~ 1994년
A매치 66경기 17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역사상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웠던 축구 선수. 190cm의 큰 키와 사기적인 신체 능력 덕에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스피드, 타점 높은 파워 헤더와 수준급의 볼컨트롤, 패스, 슛팅 등을 가지고 있어 리베로로 시작해 공격형 미드필더와 센터포워드 자리에서 꽃을 피웠지만 다른 전지역에서도 어마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멀티성과 축구 지능을 가졌던 선수였습니다.
'검은 튤립' 굴리트는 1987년,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의 활약으로 PSV에서 밀란으로 이적와 '오렌지 삼총사' 커넥션을 형성해 3차례의 세리에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이라는 장거를 이룩했습니다. 당대 같은 세리에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이벌로 평가받을 정도였으며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해 4대0 승리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완벽한 기량은 레이카르트, 반바스텐과 같이 한동안 뜸하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 유로 우승 트로피라는 선물을 가져왔으며 특히 결승전에서 보여준 파워 헤더골의 임팩트는 그에게 발롱도르 2위라는 보답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레몽 코파
포지션:LM
국적:프랑스
신장:168cm
생년월일:1931년 10월 31일
주요 클럽:스타드 드 랭스
국대 커리어
1952년 ~ 1962년
A매치 45경기 18골
1958 FIFA 월드컵 3위
프랑스 축구의 전성기를 불러온 '축구 나폴레옹'. 부드러우면서 현란한 드리블과 넓은 시야, 정확한 쓰루패스가 기반이 되는 기가 막힌 찬스메이킹으로 유명했었던 레몽 코파는,
스타드 드 랭스라는 자국 클럽에서 활약하며 최전성기를 주도, 4번의 프랑스 리그 우승과 1955/56 시즌의 초대 유러피언컵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후에 '저승사자 군단'으로 불렸던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며 중앙에 있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의 존재에 라이트 윙으로 뛰며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로 코파는 쥐스트 퐁텐과 찰떡 호흡을 발산하며 1958년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고 뛰어난 활약으로 발롱도르까지 수상, 더해서 무려 9어시스트를 기록해 도움왕까지 탔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단일 대회 역대 최다 도움 레코드로 남아있습니다.
처진 스트라이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포지션:SS
국적:독일
신장:182cm
생년월일:1955년 9월 25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6년
A매치 95경기 45골
1980 UEFA 유로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
'Mr. Europe'으로 통했던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 유럽 축구계를 지배한 왕. 세컨 탑과 라이트 윙어의 위치에서 뛰면서 준수한 피지컬과 스피드, 섬세한 드리블, 날카로운 슛팅과 창의적인 패스, 연계로 팀의 공격을 주도하면서도 몸이 유연해 시저스킥, 바이시클킥 혹은 강력한 파워 헤더까지 구사하던 선수였습니다.
'킹 칼레'는 브라이트너와 콤비를 구성해 대활약, 베켄바워 시대가 지난 뮌헨은 일명 '브라이트니게'를 중심으로 분데스리가를 평정했으며 각 2차례의 리그와 포칼 우승, 81/82 시즌의 유러피언컵 준우승도 이뤘습니다. 그의 위상은 7차례의 키커 선정 분데스 올해의 팀, 3차례의 분데스 득점왕, 1차례의 유러피언컵 득점왕과 1980년도와 81년도의 2연속 발롱도르 1위 등극 등이 입증합니다.
더해서 후에 인테르로 이적해서도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했던 루메니게는 당대 서독 대표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기도 했으며 브론즈볼과 실버슈로 1982 월드컵, 1986월드컵에서 준우승, 1980년 유로에서는 가히 MVP에 가까운 포스로 앙리들로네컵을 가져왔습니다.
스트라이커
마르코 반 바스텐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64년 10월 31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2년
A매치 58경기 24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웠던 스트라이커의 교본. 골결정력, 헤딩, 몸싸움, 침투, 볼 컨트롤, 연계 등 스트라이커에게 요구하는 모든 부분에서 능통했던 선수였던 그는 발리슛, 시저스킥, 터닝슛 등 아크로바틱한 골도 많이 기록해 '위트레흐트의 백조' 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반 바스텐은 아약스의 초특급 유망주로 데뷔해 3번의 리그와 4연속 득점왕을 거머쥐었고 특히 85/86 시즌에는 37골로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수상, 결국 22살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강호, AC 밀란으로 이적합니다. 로쏘네리 유니폼을 입고는 커리어 내내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월드클래스 퍼포먼스를 펼치며 3차례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 중 2번의 우승, 2차례의 리그 득점왕과 1차례의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국대에서도 1988년 유로에 참가해 5경기 5골의 득점왕, MVP로서 앙리들로네컵을 네덜란드 땅에 가져왔고 특히 결승전에서 소련을 상대로 보여준 발리슛은 아직까지도 UEFA 유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일컬어지는 순간입니다. 무려 3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그였지만 결국 부상으로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커리어를 마쳤으며 세간에서는 "반 바스텐이 몇 년만 더 뛰었다면 축구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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