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대륙 축구
< Asian Football Associations >
최다 득점자:알리 다에이(이란) 108골
최다 출장자:바데르 알 무타와(쿠웨이트) 196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우승 4강(2002 대한민국)
AFC 아시안컵 우승 4회 (1992, 2000, 2004, 2011 일본)
역대 최고의 선수:손흥민
주장:홍명보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나세르 헤이야지
포지션:GK
국적:이란
신장:185cm
생년월일:1949년 12월 04일
주요 클럽:에스테글랄 FC
국대 커리어
1968년 ~ 1980년
A매치 62경기
1972 AFC 아시안컵 우승
1974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6 AFC 아시안컵 우승
1980 AFC 아시안컵 3위
이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아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로 추앙 받는 사나이. 용수철 같은 점프력과 유연성, 타고난 듯한 반응속도와 다이빙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슈퍼 세이브를 연출하던 나세르 헤이야지는,
주로 이란 리그에서 활약하며 2번의 리그와 1970년의 아챔 우승을 이룬 바 있습니다. 이란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1972년 아시안컵 결승에선 이회택과 차붐 공격 조합의 대한민국을 상대로 승리, 76년 아시안컵에선 무실점으로 우승하는 2연패를 달성해 이란을 아시아 최강팀의 자리에 올려놓았으며 78년엔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비록 죽음의 조에 걸려 탈락하지만 헤이야지의 활약 만큼은 눈이 부셨고 그 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오퍼를 받고 입단 직전까지 갔으나 자국에서 발발한 '이란 혁명'으로 인해 이는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라이트백
메흐디 마다비키아
포지션:RB
국적:이란
신장:172cm
생년월일:1977년 7월 24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9년
A매치 110경기 13골
1996 AFC 아시안컵 3위
2004 AFC 아시안컵 3위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세트피스도 전담할 수 있는 정확한 크로스 배달 능력, 뛰어난 좌측면 질주와 드리블 전진 능력으로 라이트 윙어와 라이트백을 모두 소화하는 공수 전반에 걸쳐 우수한 기량을 자랑했던 마다비키아는,
페르세폴리스의 역대급 신인으로 데뷔해 결국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함부르크로 이적해 주전으로 8년간 활약하며 리그 정상급 모습을 보였고 그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2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02/03 시즌, 14어시로 리그 도움왕을 찍은 그는 2번의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는 알리 다에이, 알리 카리미, 카림 바게리 등과 뛰면서 2차례의 월드컵과 4차례의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한편, 1998 월드컵에선 이란의 숙적 미국을 상대로 아시아 역대 최연소 월드컵 득점을 성공해 군면제를 받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홍명보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1cm
생년월일:1969년 2월 12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2년
A매치 136경기 10골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한국 축구의 '영원한 리베로'로 남아있는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드넓은 시야, 정교한 롱패스, 기습적인 전진 플레이를 바탕으로한 후방 빌드업, 호쾌한 중거리 슛팅 한방이 최대 장점이던 그는 피지컬이나 스피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우수한 예측력과 판단력으로 커팅, 커버링하는 수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홍명보는 K 리그의 포항과 J 리그의 가시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각 1번의 리그, FA컵,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1992년 데뷔 시즌 최초로 MVP를 수상, 또 K 리그 베스트 11에 5차례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는 10년 넘게 붙박이로 뛰며 4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완장을 차고 뛰어난 폼으로 4강 신화를 써내려갔고 그의 활약상을 인정해 FIFA는 브론즈볼과 대회 올스타팀에 그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특히 스페인전, 4강 진출을 확정짓는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활짝 웃는 장면은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중 명장면입니다.
센터백
김민재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90cm
생년월일:1996년 11월 15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국대 커리어
2017년 ~
A매치 63경기 4골
2020년대를 대표할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역대급 괴물 센터백. 강골의 몸싸움과 짐승같은 스피드, 지능적인 인터셉팅과 태클까지 선보이면서도 안정적인 빌드업까지 보일 수 있는 그는 이러한 기량들을 통해 아시아인 수비수, 그것도 센터백으로서 유럽 최상위 리그를 씹어먹는 전례없는 활약을 해냈습니다.
전북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2연속 우승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간 김민재는 이런 탈아시아급 활약을 인정받아 베이징 궈안을 거쳐 터키의 페네르바체로 이적해서도 2021/22 시즌 리그 준우승과 올해의 팀에도 선정, 다음 시즌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서도 리그 최우수 수비수 타이틀을 달고서 마라도나 시대 이후 33년만인 스쿠데토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대표팀에서의 김민재도 201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 다음해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본인은 대회 올스타팀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나가토모 유토
포지션:LB
국적:일본
신장:170cm
생년월일:1986년 9월 12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2008년 ~
A매치 142경기 4골
2011 AFC 아시안컵 우승
2019 AFC 아시안컵 준우승
일본을 넘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는 사나이. 상대 수비를 허무는 침투, 발빠른 스피드 등으로 좌측 공격에 많은 힘을 실어주던 나가토모는 중앙으로 들어와 패스를 찔러주거나 끈질긴 수비 스타일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양인 최초로 인테르에 입성했고 2010/1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포함해 오랜 기간 리그에서 경쟁력있는 수준의 클래스를 펼쳤습니다. 오랜 기간 국대에서도 정상급 활약을 남긴 나가토모는 4번의 월드컵 본선에 나가 3번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2011년 아시안컵 우승과 19년 아시안컵 준우승, 특히 후자의 대회에선 베스트 11에 들어갔으며 전자의 대회에선 가히 MVP급의 포스를 드러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하세베 마코토
포지션:DM
국적:일본
신장:180cm
생년월일:1984년 1월 18일
주요 클럽: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국대 커리어
2006년 ~ 2018년
A매치 114경기 2골
2011 AFC 아시안컵 우승
기린컵 우승 3회
대한민국의 에이스 박지성에 대적했던 일본의 '캡틴 하세베'.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일정 기량 이상으로 모두 소화했던 하세베는 발군의 후방 빌드업, 준수한 볼컨트롤, 철저한 대인마킹, 빼어난 활동량을 모두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붐의 아시아 분데스 역대 최다 출장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오랜 기간 뛰며 우수한 모습을 보였는데, 볼프스부르크 소속으로 2008/09 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후에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는 백3의 스토퍼로 뛰며 각 1차례의 포칼과 유로파 우승에 공헌, 18/19 시즌에는 분데스와 유로파 올해의 팀에도 뽑힐 정도였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장으로 팀을 이끈 그는 2차례의 월드컵 16강과 2011년 아시안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박지성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81년 3월 30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2000년 ~ 2011년
A매치 100경기 1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11 AFC 아시안컵 3위
아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 '두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대변하듯 미친 활동량과 체력, 뛰어난 전술 이해도와 중요할 때 터지는 영웅 본능, 특히 어떠한 악조건에도 빛나는 투지와 헌신적인 플레이로 전국민에게 사랑받았던 선수였습니다.
PSV의 네덜란드 리그 독주와 챔스 4강 진출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눈에 띄어 올드 트래포드행을 택하며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으며 그는 본인이 가진 능력들로는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의 선구자로서 맹활약, 당시 세계 최고의 팀이던 맨유에서 조연으로서 수년간 뛰면서 13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에 공헌, 많은 후배들에게 유럽 리그 진출의 꿈이라는 발판을 만들어준 바 있습니다.
한편 클럽 커리어와는 다르게 국대에서는 주연으로서 손흥민, 차범근도 못다가갈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2002년 월드컵의 4강, 2010년 월드컵의 첫 원정 16강 진출 등의 금자탑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박지성은 서로 다른 3개의 월드컵에서 1골씩 기록, 월드컵 본선 4경기 MOM 선정 등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
포지션:CM
국적:일본
신장:175cm
생년월일:1977년 1월 22일
주요 클럽:파르마 FC
국대 커리어
1997년 ~ 2006년
A매치 77경기 11골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아시아 축구를 대표했던 클래시컬 No.10. 걸출한 테크닉, 일본인답지 않은 탄탄한 바디 밸런스와 준수한 피지컬로 버티면서 킬패스를 뿌려대던 나카타의 실력은,
명성이 자자한 당대 최고의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도 통했고 페루자에서 센세이션한 활약으로 AS 로마로 이적, 프란체스코 토티의 백업으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활약을 하면서 2000/01 시즌 스쿠데토 획득에 공을 세웠습니다. 다음 시즌 파르마로 이적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이 동안 2번의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후보 3차례, FIFA 올해의 선수 후보 4차례에 오르는 저력을 보인 바 있습니다.
일본 대표팀에서는 공격을 이끄는 총 지휘자로서 3번의 월드컵에 나가 그 중 한일 월드컵에서 자국 최초의 16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습니다. 그는 세련된 패션 센스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그이지만 29세, 은퇴하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돌연 현역 은퇴를 선언한 뒤 패션업계에서 종사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이트 윙어
마제드 압둘라
포지션:RW
국적:사우디아라비아
신장:188cm
생년월일:1959년 1월 11일
주요 클럽:알 나스르 FC
국대 커리어
1977년 ~ 1994년
A매치 117경기 72골
1984 AFC 아시안컵 우승
1988 AFC 아시안컵 우승
사우디를 넘어 아시아 역대 최고로도 거론되는 이른 바 '오리엔트의 펠레'. 마제드 압둘라는 초월적인 운동 능력과 스피드, 시원시원한 드리블 탄력과 기습적인 양발 슛팅 등 보통 중동권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존재입니다.
그는 알 날스르에서 모든 20년의 모든 커리어를 지내며 266경기 259골을 넣는 전설을 썼으며 각 4차례의 사우디 리그 우승과 사우디 컵 우승을 이뤄냈고 무려 14개의 득점왕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달았으나 당시 사우디 축협의 방침 때문에 이런 기량에도 그는 유럽 생활은 하지는 못했습니다.
허나 국대에서는 아시안컵 본선에도 단 한번도 못올랐던 아시아 최약체 사우디 아라비아 대표팀에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1984년과 88년 아시안컵 2연패를 이끌었고 1994 월드컵에선 주장으로서 최초의 16강행을 주도했습니다. 또한 72골로 사우디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한 그입니다.
레프트 윙어
손흥민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92년 7월 8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31경기 51골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차범근이라는 아성을 넘어선 아시아 역대 최고이자 2010년대 중후반 ~ 2020년대 초반 PL의 간판 윙포워드 중 한명. 가공할 만한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좌우를 가리지않고 위협적으로 골대에 꽂히는 양발 감아차기 능력, 우수한 결정력과 오프더볼 움직임까지 갖춘 그는 독일에서 영국 무대로 옮긴 후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며 토트넘의 2010년대 부흥을 함께 했습니다.
특히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해리 케인과의 공격 듀오로 PL에서 수많을 골을 기록하며 듀오 최다골을 기록하기도 했던 손흥민은 개인으로도 아시아 최초의 기록들을 수많이 쌓아갔는데, PL 이달의 선수상 3회, 16/17 시즌 FA컵 득점왕, 20/21 시즌 PFA 올해의 팀 선정, 21/22 시즌 PL 득점왕, 푸스카스상 수상, 빅리그 통산 150골 돌파, 2022년 발롱도르 11위 등의 그의 등장 전까지는 상상치도 못할 믿기 힘든 기록들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쏘니는 태극기를 위해 뛰면서도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2022년 월드컵 16강 진출, 2018년 월드컵 독일전 골 등 우리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차범근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9cm
생년월일:1953년 5월 22일
주요 클럽: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7년
A매치 136경기 58골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지던 유럽 진출의 장벽을 깨고 세계 최고였던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풍미했던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은 아시아 수준을 넘어선 강철 피지컬과 괴물같은 스피드를 이용한 치달 능력, 양발의 자비없는 슛팅력, 수준급의 연계 플레이와 테크닉, 헤딩 능력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분데스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한명으로 독일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갈색 폭격기'로 불리은 차붐은 군복무 때문에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독일행 비행기를 탔음에도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모두 구단 역사에 남을 역대급 남겼는데, 전자 소속으로 WK를 키커로부터 받는 활약으로 UEFA컵 우승과 DFB 포칼 우승을 이끌었고 후에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는 하위권이던 팀을 중상위권으로 올리며 87/88 시즌 한번 더 UEFA컵에서 우승, 결승전에서는 골까지 넣었습니다. 2번의 키커 선정 올해의 팀에 들어가기도 한 그는,
국대에서도 겨우 24세로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자일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굴려졌으며 전설적인 말레이시아전 6분 해트트릭 및 크고 작은 5개 대회 우승을 견인, 추가로 대표팀 역대 최다득점자(58골)이자 최다 출장자(136경기)이기까지 합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모하메드 알데아예아
포지션:GK
국적:사우디아라비아
신장:192cm
생년월일:1972년 8월 2일
주요 클럽:알 힐랄 SFC
국대 커리어
1993년 ~ 2006년
A매치 178경기
1996 AFC 아시안컵 우승
2000 AFC 아시안컵 준우승
사우디는 물론이요 1990년대를 풍미한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 유난히 긴 팔다리와 동물적인 점프력과 탄력성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세이브를 보여줬던 알데아예아는,
국가대표 선수였던 압둘 알데아예아라는 형의 존재에 밀려있었지만 알타이라는 팀에서 본인의 능력을 알리며 1999 시즌 자국의 강호 알 힐랄로 이적하여 30대 후반까지 대활약, 4번의 리그 우승과 7번의 컵 우승, 99/00 시즌 아시아 챔스 우승까지 성공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1994년 월드컵 16강, 1996 아시안컵 우승과 00 아시안컵 준우승까지 달성, 특히 2번의 아시안컵에서는 모두 대회 최우수 키퍼로 뽑히는 기세를 드러냈습니다. 또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다 출장자이기도 합니다.
라이트백
우치다 아쓰토
포지션:RB
국적:일본
신장:176cm
생년월일:1988년 3월 27일
주요 클럽:FC 샬케 04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5년
A매치 74경기 2골
2011 AFC 아시안컵 우승
나가토모 유토와 2010년대 일본 축구의 부흥을 이끌어갔던 명 풀백. 빠른 발과 날카롭고 정확하게 올라오는 크로스가 최대 무기인 공격형 풀백으로 약점이었던 수비력도 발전했었던 그는,
가시마 앤틀러스 소속으로 구단의 리그 3연패를 이끌어 분데스리가의 샬케로 이적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도 리그 상위권의 선수로 평가받으며 2010/11 DFB 포칼 우승, 챔스 4강행을 이끄는 등의 훌륭한 기여를 남겼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품에서도 우치다는 나가토모와 풀백 콤비로서 맹활약을 남기며 2번의 월드컵 본선 진출, 2011년 아시안컵에서는 우승의 주역으로 우뚝 선 바 있습니다.
센터백
살레 알뉘에이메흐
포지션:CB
국적:사우디아라비아
신장:186cm
생년월일:1960년 6월 24일
주요 클럽:알 힐랄 SFC
국대 커리어
1978년 ~ 1989년
A매치 99경기 2골
1984 AFC 아시안컵 우승
1988 AFC 아시안컵 우승
서아시아와 중동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로 추앙받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황제'. 베켄바워 같은 드리블과 패스 실력, 탈아시아급의 태클과 대인 방어력을 자랑하면서도 뛰어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살레 알뉘에이메흐는,
자국 최고의 명문 알 힐랄을 이끌고서도 6번의 리그 우승을 비롯해 수많은 우승을 이끄는 저력을 보였으며 특히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차고도 1984년과 88년 2연속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어냈고 두 대회 모두 대회 최우수 수비수로 뽑혔습니다. 특히 88년 결승에선 김주성과 황선홍의 총공격을 막아내고 승부차기 끝에 대한민국을 꺾고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센터백
이하라 마사미
포지션:CB
국적:일본
신장:181cm
생년월일:1967년 9월 18일
주요 클럽:요코하마 F. 마리노스
국대 커리어
1988년 ~ 1999년
A매치 122경기 5골
1992 AFC 아시안컵 우승
기린컵 우승 3회
1990년대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였던 '열도의 홍명보'. 항상 약점으로 평가받던 일본 대표팀의 몸싸움을 채워준 선수로 강인한 피지컬과 스피드, 기습적인 롱패스 등이 빛이 나던 리베로였던 이하라였습니다.
그는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뛰면서 1995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어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또한 리그 베스트 11에 5회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122경기를 사무라이 블루 유니폼을 입고 뛰어 역대 최다 출장 2위에도 랭크되어 있는 이하라 마사미는 1992 아시안컵 우승과 주장으로서 1998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최초를 모두 함께 했습니다.
레프트백
이영표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77년 4월 23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99년 ~ 2011년
A매치 127경기 5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11 AFC 아시안컵 3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풀백. '헛다리 짚기'로 대표되는 드리블 재간과 지치지 않는 체력, 우수한 축구 IQ로 약점인 힘과 스피드를 커버해내며 상대를 괴롭힐 수 있었던 이영표는,
월드컵에서의 대활약으로 박지성과 함께 히딩크를 따라 PSV로 진출해 3차례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에 오르는 돌풍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후에 그 활약을 바탕으로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 그 곳에서도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127경기 출장으로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3위인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 축구의 좌측면을 책임져줬고 2차례의 아시안컵에서 3위를 달성, 특히나 2002년 월드컵에서는 한국의 16강과 8강행을 확정짓는 결정직인 2차레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4강 신화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주성
포지션:DM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6년 1월 17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1985년 ~ 1996년
A매치 76경기 14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당대 아시아의 슈퍼 스타.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휘날리며 미친듯이 뛰어다녀 '삼손' 혹은 '야생마'로 불리웠던 김주성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능력으로 윙어로 축구를 시작했으며 패스 센스까지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성기를 보냈고 집념의 수비력으로 말년에는 리베로까지 봤었던 만능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습니다.
후에 분데스리가의 보훔으로 이적해 뛴 것만 제외하면 그는 대우 로얄즈 소속으로 모든 커리어를 보내며 3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리그컵을 주도, 더불어 말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리베로로 뛰면서 김주성은 최초로 K리그에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모두 올스타에 들었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위대한 활약상에 대우 로얄즈는 리그 최초로 김주성의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그는 특히 차붐이 은퇴한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로 3번의 월드컵에 본선 진출했으며 1988년 아시안컵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 MVP에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1989년부터 91년까지 받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3연속 제패는 아직까지도 안깨진 불멸의 기록입니다.
중앙 미드필더
나카무라 슌스케
포지션:CM
국적:일본
신장:178cm
생년월일:1978년 6월 24일
주요 클럽:셀틱 FC
국대 커리어
1998년 ~ 2010년
A매치 98경기 24골
2000 AFC 아시안컵 우승
2004 AFC 아시안컵 우승
유럽에서도 통하던 왼발을 가졌던 '기적의 판타지스타'. 피지컬과 스피드에서는 약점을 드러냈지만 뛰어난 킥과 기민한 탈압박 스킬로 살아남았던 전형적인 일본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나카무라 슌스케는 특히 전세계에서도 한손에 꼽힐만한 왼발 데드볼 처리 능력이 빛났었습니다.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셀틱 소속으로 전성기를 누린 그는 특히 셀틱에서 6번의 메이저 타이틀에 공헌, 특히 '더블'을 이룬 2006/07 시즌에는 PFA 올해의 선수부터 시작해 올해의 팀까지 개인상 6관왕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2000년과 2004년 아시안컵 2연패의 주역이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MVP, 출전한 3번의 아시안컵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11에 포함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카가와 신지
포지션:CM
국적:일본
신장:175cm
생년월일:1989년 3월 17일
주요 클럽: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97경기 31골
2011 AFC 아시안컵 우승 1회
2010년대 초반을 풍미한 유럽 최정상 공격형 미드필더. 과감한 전진패스를 찔러넣는 능력과 탁월한 볼컨트롤 스킬, 본인 뿐만 아니라 아군 공격수들을 빛낼 수 있는 환상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공격을 풀어가던 카가와 신지의 천재적인 재능은,
분데스리가의 명문 도르트문트에서도 통했으며 최전성기를 맞이해 각 2차례의 리그 우승과 포칼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특히나 '더블'을 이룬 2011/12 시즌엔 VDV, ESM, 키커 선정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 특히나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로부터 WK를 부여받는 엄청난 임팩트를 보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맨유 이적 후부터는 전술적인 문제나 부상 등으로 커리어가 꼬이며 앞서 말한 고점의 폼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도 전성기 시절임에도 클럽에서 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하며 혼다와 경쟁한 턱에 중앙이 아닌 윙어로도 뛰기도 했지만 2011년 아시안컵에선 베스트 11급 폼으로 우승을 주도했고 2018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도왔습니다.
라이트 윙어
가마모토 쿠니시게
포지션:RW
국적:일본
신장:181cm
생년월일:1944년 4월 15일
주요 클럽:얀마 디젤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7년
A매치 76경기 75골
1968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
대한민국 차범근의 대항마이자 자국 최고로 평가받는 일본 축구의 정이대장군. 폭발력 있는 스피드와 당시로는 상당한 수준의 신체 조건으로 밀어붙이는 드리블 돌파, 벼락과도 같은 중거리포를 쏘며 수비들을 겁먹게하던 쿠니시게는,
얀마 디젤이라는 자국 리그에서 뛰면서 7번의 득점왕, 3번의 도움왕, 14번의 올해의 팀, 7번의 MVP, 일본 리그 역대 최다 득점, 도움자로도 남아있으며 클럽의 10번의 우승을 캐리한 바 있습니다.
특히 그 능력은 세계 무대에서도 여실히 통했는데 당시 아시아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던 일본 대표팀을 데리고 1968년 올림픽에 참가해서는 7골을 넣으며 득점왕으로 동메달을 조국에 바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쿠니시게가 A매치서 넣은 75골은 아직도 대표팀 역대 최다 골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레프트 윙어
오쿠데라 야스히코
포지션:LW
국적:일본
신장:177cm
생년월일:1952년 3월 12일
주요 클럽:SV 베르더 브레멘
국대 커리어
1972년 ~ 1987년
A매치 32경기 9골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초의 유럽 리거. 차범근보다 2년이나 빨리 분데스리가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는 빠른 발과 매서운 킥 능력 등으로 왼쪽의 윙포워드와 수비수부터 중앙에서 미드필더로도 기용되기도 하는 멀티성을 자랑했습니다.
1977년, 당시 선례가 없었던 분데스리가의 쾰른으로 이적한 야스히코는 77/78 시즌의 리그+컵 '더블'과 다음 시즌의 유러피언컵 4강을 함께 했고 아시아인 최초로 챔스에서 득점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후에 베르더 브레멘에서도 3번의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던 그의 족적은 후에 많은 후배 분데스리거들에게 큰 양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대표로는 유럽 진출과 암흑기라는 당시 상황 때문에 한번도 메이저 대회 무대를 밟은 적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
포지션:ST
국적:이란
신장:192cm
생년월일:1969년 3월 21일
주요 클럽:페르세폴리스 FC
국대 커리어
1993년 ~ 2006년
A매치 149경기 109골
1996 AFC 아시안컵 3위
2004 AFC 아시안컵 3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갱신하기 전까지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의 주인공었던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명. 타고난 득점 센스, 강력한 몸싸움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헤더 능력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내던 알리 다에이,
그는 자국의 명문 페르세폴리스에서 떠서 분데스에 진출해 빌레필트에서도 준수한 활약으로 뮌헨까지 이적했으며 비록 백업이긴 했지만 1998/99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경험하기도 해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받았습니다. 후에는 실패로 끝난 유럽 도전이었지만 그의 진가라면 국가대표팀에서 발휘되었는데,
1996년 아시안컵에선 8골로 득점왕으로서 이란의 3위를 이끌었으며 특히 8강, 대한민국을 상대로 무려 4골을 몰아쳐 국내팬들에게는 사신과도 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14골로 아시안컵 통산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109골로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2위 자리를 사수하고 있기도 합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골키퍼
이운재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73년 4월 26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국대 커리어
1994년 ~ 2010년
A매치 132경기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07 AFC 아시안컵 3위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뚱뚱해보이는 덩치에도 날렵한 다이빙, 똑똑한 위치선정, 수비진을 다잡는 통솔력, K리그 승부차기 승률이 90퍼가 넘어가는 역대급 페널티 선방 능력으로 안정감을 연일 선보일 수 있었고 이런 '거미손' 이운재는,
청백적 유니폼을 입고서 10년 넘게 활약하면서 구단 최전성기를 주도, 4차례의 K리그 우승, 2001/02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을 진두지휘한 바 있습니다. 또 본인은 4회의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8년에는 전무후무한 골키퍼로 리그 MVP. 09 시즌에는 FA컵 MVP, 2004년에는 라이벌인던 김병지의 승부차기를 막아내고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습니다.
한국 국대에서는 라이벌로 평가받던 김병지를 밀어내고 주전자리를 꿰찼고 2000년대의 골문을 책임지며 2002년 월드컵 4강을 확정짓는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와 2007년 아시안컵에서도 승부차기 하드캐리로 3위로 멱살잡고 대표팀을 올린 활약 등을 남겼습니다. 또한 A매치에서 132경기를 출장해 전세계 A매치 역사상 골키퍼 출장 순위 4위에 올라있기도 한 그입니다.
라이트백
쑨지하이
포지션:RB
국적:중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77년 9월 30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8년
A매치 80경기 1골
2004 AFC 아시안컵 준우승
대륙의 기적과도 같은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중국인 축구 선수. 좌우측 풀백과 센터백을 다 소화할 수 있던 쑨지하이는 뛰어난 공수 밸런스와 같이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인 수비자세, 또한 성실한 자기관리와 겸손한 인품으로 팬들의 많은 애정을 받았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중국 리그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아직 석유 자본이 들어서기 이전인 2000년대 중하위권팀 맨시티로 이적한 그는 6시즌간 팀의 핵심 선수 활약하면서 수차례 잔류를 이끌었고 부상으로 말미에 고생하기도 했지만 PL에서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풀럼과의 경기에서 빈 골대를 지키는 인생 클리어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허나 대표팀에선 2002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1경기만에 부상으로 아웃되었고 2004년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결승까지 올랐지만 여러 편파 판정으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센터백
나카자와 유지
포지션:CB
국적:일본
신장:187cm
생년월일:1978년 2월 25일
주요 클럽:요코하마 F. 마리노스
국대 커리어
1999년 ~ 2010년
A매치 110경기 17골
2000 AFC 아시안컵 우승
2004 AFC 아시안컵 우승
종종 일본 축구 역사상 최강의 수비로도 불리는 '재패니즈 말디니'. 187의 장신을 이용한 공중볼 경합, 강력한 몸싸움, 공만 건드리는 태클, 특유의 폭탄머리를 휘날리며 맹활약하던 나카자와는 30대 후반까지 폼을 이어가는 꾸준함 역시도 겸비했던 선수입니다.
그는 요코하마의 고목으로써 팀을 받들며 2003, 04 리그 2연패와 6번의 리그 올해의 팀 선정, 04년에는 일본 올해의 축구 선수로까지 꼽혔습니다. 국대에서도 세번의 아시안컵에 참가한 그는 2000년과 04년 대회에서 우승을 견인, 04년과 07년에는 대회 올스타팀에까지 이름을 올리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센터백
요시다 마야
포지션:CB
국적:일본
신장:189cm
생년월일:1988년 8월 24일
주요 클럽:사우스햄튼 FC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25경기 12골
2011 AFC 아시안컵 우승
2019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0년대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센터백. 일본에선 드물었던 장신에서 나오는 공중볼 다툼 능력, 재빠른 태클 능력, 깔끔한 빌드업 기술 등으로 요시다는 몇 안되는 유럽 리그에서 통했던 아시아 센터백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간혹 민첩성이 부족해 굵직굵직한 실수들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프리미어 리그 사우스햄튼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이며 200경기 가까이 출전한 이력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는 2011 아시안컵 우승, 올스타팀에 뽑히는 활약으로 2019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뤘고 2번의 월드컵(2018년, 2022년)에서 16강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레프트백
허정무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53년 12월 19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번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6년
A매치 101경기 30골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 평가해도 손색 없는 인물. 도저히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악바리 근성, 터프한 태클 능력 등을 겸비했던 허정무는 본래 공격수로 축구를 시작한 이유 때문인지 본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 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풀백까지 소화하는 만능맨이었습니다.
'진돗개'라는 이명으로 통했던 그는 후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 1호로 진출해 3시즌간 주전급으로 뛰면서 81/82 시즌의 리그 준우승을 이루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84년 KFA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팀에도 무려 7차례 뽑혔던 허정무는,
78년, 86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6년에는 32년만인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짓는 지역 예선 결승골을 넣은 바 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으려다 '태권 축구'를 선보이기도 하거나 반대로 리그에선 요한 크루이프를 막다 팔꿈치에 찍혀 코가 부러지기도 한 웃픈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혼다 케이스케
포지션:RM
국적:일본
신장:182cm
생년월일:1986년 6월 13일
주요 클럽:CSKA 모스크바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8년
A매치 98경기 37골
2011 AFC 아시안컵 우승
2010년대 일본 축구의 전성기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에이스 플레이어. 환상적인 무회전 프리킥으로 대표되는 슛팅 능력, 부드러운 발기술, 기회 창출과 훌륭한 신체 능력을 이용할 수 있었던 혼다 케이스케는,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에서 커리어의 전성기를 보내며 4개의 트로피를 들었고 후에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은퇴까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시아, 유럽, 남미, 북미, 오세아니아 리그를 다 경험해본 그는,
2010년대 일본 국대의 선봉장 역할로 팀을 이끌며 2010 월드컵 조별예선 3경기 전부 MOM이라는 기록으로 16강 진출, 2011년 아시안컵에서는 MVP에 뽑히는 퍼포먼스로 우승 트로피를 조국에 안겼습니다. 덧붙여 혼다는 4골 3도움으로 아시아 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다 공격 포인트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89cm
생년월일:1989년 1월 24일
주요 클럽:스완지 시티 AFC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110경기 10골
2012 하계 올림픽 동메달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종종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선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2010년대 대표팀의 기둥. 안정적인 볼키핑과 조율 능력, 좌우로 벌려주는 환상적인 롱패스와 수비벽을 허무는 키패스 능력이 최대 장점이었던 기성용은,
서울에서 데뷔해 셀틱 FC에서 각 1차례의 리그와 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EPL 무대로 넘어온 이후 스완지, 선덜랜드, 뉴캐슬에 몸담았습니다. 특히 스완지 시티 소속으로 2012/13 시즌에는 리그컵 우승에 성공했고 2014/15 시즌에는 스완지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으며 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KFA 올해의 선수로도 3회 뽑힌 기성용은 2010년대 중후반 붉은 악마 군단의 필수불가결 핵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면서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 대회 베스트 11 수준의 폼을 펼쳤고 2012년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거는 값진 성적을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알리 파르빈
포지션:CM
국적:이란
신장:169cm
생년월일:1947년 9월 25일
주요 클럽:페르세폴리스 FC
국대 커리어
1970년 ~ 1980년
A매치 76경기 8골
1972 AFC 아시안컵 우승
1974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6 AFC 아시안컵 우승
1970년대 이란 축구의 전설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추앙받던 '팀 멜리'의 술탄. 아름다운 볼컨트롤로 공을 지키다가 허를 찌르는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거나 직접 프리킥으로 골망을 흔드는 능력이 빛났던 그는 자국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알리 파르빈은 페르세폴리스라는 클럽을 당시 이란 최고의 팀으로 이끄는 퍼포먼스로 3차례 리그 트로피를 팀에 선사했고 이란 대표팀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멤버들과 1차례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2연속 아시안컵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1976년 아시안컵 결승에선 결승 프리킥골을 넣으며 대회 MVP이자 이란의 3연속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본인의 발로 완성시켰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박두익
포지션:AM
국적:북한
신장:171cm
생년월일:1936년 12월 17일
주요 클럽:모란봉 체육단
국대 커리어
1965년 ~ 1966년
A매치 5경기 2골
북한을 FIFA 월드컵 8강으로 이끌며 서구권으로부터 '동양의 진주'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얻었던 남자. 야생마를 보는 듯한 스피드와 회심의 슛팅력을 가졌던 박두익은 북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비록 클럽 커리어는 북한이라는 사회적 고립 국가에서 활약했던 탓에 알 수 없지만 그가 1966년 월드컵에서 '천리마 축구단'을 데리고 해냈던 업적만으로도 그는 아시아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데,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박두익은 그들의 빗장을 해체시키는 결승골을 넣으며 8강행을 견인했고 이는 아직도 월드컵 역사에 남을 대이변 경기로 손꼽힙니다. 이 충격에 1980년대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인을 3명 꼽으라하면 칭기즈 칸, 석가모니, 마지막으로 박두익이 거론된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질 정도였습니다.
스트라이커
리후이탕
포지션:ST
국적:중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05년 10월 16일
주요 클럽:사우스 차이나 AA
국대 커리어
??년 ~ ??년
A매치 ??경기 ??골
서독의 한 축구 잡지로부터 '축구사 5대 천황'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던 중화권 축구사의 가장 전설적인 존재. 골대 옆에 있던 관중이 그의 맞고 26시간을 기절하고 심지어 썰로는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파워 슛과 엄청난 득점력에도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도 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고 전해지는 리후이탕은,
당시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났던 대만인으로서 홍콩 리그에서만 1부 리그 우승을 8번을 이끌었고 무려 1260골을 넣으며 말 그대로 고공폭격을 가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잉글랜드 리그와 프랑스 리그에서도 러브콜을 보냈다는 썰이 있는 그는 비록 필리핀 출신의 파울리노 알칸타라처럼 너무 오래 전 선수라 영상도 남아있지않고 불분명한 기록도 많으나 은퇴 후 FIFA 부회장까지 맡은 이력은 역시 그의 선수 시절, '아시아의 축구왕'이라고 칭송받던 명성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트라이커
미우라 카즈요시
포지션:ST
국적:일본
신장:177cm
생년월일:1967년 2월 26일
주요 클럽:도쿄 베르디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0년
A매치 89경기 55골
1992 AFC 아시안컵 우승
일본 축구를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으로 올려놓았던 '사무라이 블루'의 왕. 박스 안에서 자비 없이 꽂아버리는 피니싱 능력과 특유의 수비수들을 농락하는 특유의 '카즈 페인트'를 보여주던 미우라 카즈요시는,
브라질 리그에서 활약하다 J 리그 출범 후에는 도쿄 베르디의 전신 팀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4번의 리그 우승을 비롯한 11개의 트로피를 얻었습니다. J 리그 베스트 11에 3번, 리그 MVP로 1993년 선정된 그의 특이한 점은 2023년 현재까지도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는 점이며 역대 최고령 현역 선수이자 종전 스탠리 매튜스의 최고령 득점 기록도 갱신하기도 했습니다.
'킹 카즈'는 '도쿄 대첩', '도하의 비극' 등으로 월드컵 무대는 한번도 들어선 적이 없으나 '공한증'을 이겨내고 일본 축구를 경쟁력있게 만들었으며 특히 1992년에는 아시안컵에서는 MVP이자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로서 최초의 메이저 트로피를 자국에 바치는 위업을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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