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위

풀비오 콜로바티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57년 5월 9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B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A매치 50경기 3골
1982 FIFA 월드컵 우승
이탈리아를 월드컵 우승까지 인도했던 당대 유럽 최고 레벨의 스토퍼. 어메이징한 점프 능력과 공격수를 사정없이 괴롭히는 1대1 마크 실력, 날카로운 태클까지 뽐낼 수 있었던 풀비오 콜로바티의 기량은,
AC 밀란에서 어린 나이에도 다년간 핵심으로서 1976/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78/79 시즌 세리에 우승을 이룸으로서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안가 밀란은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강등되었고 그는 팀에 남아 프랑코 바레시와 다시금 승격을 이끌었으나 1년 만에 인테르로 이적해버렸기 때문에 많은 밀라니스타들에게 아직까지 배신자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콜로바티의 입장에선 조금 억울한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당시 막 승격한 밀란의 부진한 경기력에 밀란의 한 극성팬이 경기 중 던진 돌을 맞고 그가 쓰러지는 사건이 있었고 아마 이 일이 이적 결심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국대에서 콜로바티는 1982년 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을 꺾고 우승에까지 성공했고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는 포효를 내지른 바 있습니다.
14위

아르만도 피키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1cm
생년월일:1935년 6월 20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유러피언컵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12경기 0골
1960년대 '카테나치오'로 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하던 '그란데 인테르'의 주장. 민첩한 발과 뛰어난 판단력, 깔끔한 클리어링과 정확한 태클을 뽐내던 피키는 원래는 라이트백이였으나 당시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지휘 하에 수비 라인에 최후방에 머물며 뒷공간을 커버하는 스위퍼 자리에서 대활약하며, 이탈리아식 리베로의 개념을 완성시켰습니다.
네라주리 유니폼을 입은 피키는 구단의 황금기를 받들며 3차례의 스쿠데토와 각 2차례의 빅이어,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그가 작고하자 그의 고향 리보리노에는 그를 기리기위해 경기장 이름을 '아르만도 피키 스타디움'이라고 바꾼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키는 전술적인 이유로 1966년 월드컵에 뽑히지 못했고 조국은 무려 북한에게 패배하며 이변의 탈락을 경험, 다음 2년 뒤 유로는 황혼을 불태울 그의 승선이 기대되었으나 부상을 당해버렸고 그의 커리어는 그렇게 마감되었습니다.
13위

체사레 말디니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32년 2월 5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라틴컵 우승 1회
A매치 14경기 0골
밀란의 가장 위대한 선수, 파올로 말디니의 친아버지로 1950년대 후반 ~ 1960년대 초반 밀란의 얼굴과도 같던 이탈리안 리베로. 체사레 말디니는 뛰어난 예측 능력과 강한 맨마킹, 우수한 수비라인 통솔으로도 유명했지만 최후방에서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기술과 패스 역시도 선보일 수 있었던 선수였습니다.
아들보다 더 먼저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그는 네레오 로코 감독의 '카테나치오 시스템' 아래 센터백보다 한칸 아래서 최후방 수비 커버를 하는 리베로 혹은 스위퍼 역할을 맡아 1950년대 ~ 60년대를 호령, 4차례의 리그 우승과 주장으로서 1962/63 시즌 밀란 역사상 최초의 빅이어를 드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허나 당시 국가대표팀에서는 암흑기였던 이탈리아의 주장을 맡았으며 1962 월드컵에선 조별탈락에도 본인은 비공식 올스타팀에 드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2위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66년 4월 24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7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5회
UEFA 슈퍼컵 우승 4회
A매치 59경기 2골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
1980 ~ 90년대 유럽 축구계를 넘어 세계 축구의 판도를 뒤집어놓은 '밀란 제너레이션'의 붙박이 중앙 수비수. 뛰어난 공간 제단 능력과 정교한 태클, 빼어난 클리어링 능력, 수비 전지역을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으로 그 역량을 입증했던 코스타쿠르타는,
성골 유스 출신으로 20년이 넘는 밀라노 생활 동안 1년 임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클럽에 헌신했던 인물이며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 스타 수비수들을 뒷받침하며 무려 5번의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포함한 24번의 우승을 가져왔습니다. 덕분에 밀라니스타들에게 사랑받았던 '위대한 빌리'는 1993/94 시즌, 세리에와 챔스 역대 최소 실점 우승(각각 14실점, 2실점)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이어진 1994년 월드컵에서는 대회 초 부상당한 바레시의 공백을 메꾸며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나 아쉽게 본인은 경고 누적으로 결승에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11위

치로 페라라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67년 2월 11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클럽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7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87년 ~ 2000년
A매치 49경기 0골
2000 UEFA 유로 준우승
19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탈리아 탑급 퍼포먼스를 선보인 국보급 수비수. 그는 키는 평범하나 섬세한 대인 수비, 깔끔한 태클, 부드러운 발밑까지 전부 갖추어 풀백, 리베로까지 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폴리의 로컬보이로 이곳에서 자라나 구단 유스로 1군에까지 데뷔, 디에고 마라도나를 도와 팀의 전성 시대를 이끌어갔고 2차례의 세리에 우승과 1차례의 코파 우승에 성공했으며 1988/89 시즌 UEFA컵 결승 2차전에서는 골을 넣어 구단 최초로 유럽대항전을 우승하는 대업을 이룩했습니다. 후에 스승인 리피를 따라 비안코네리의 일원으로 합류했고 심각한 부상에도 고령의 나이에 한번 더 일어서며 5번의 리그 우승과 무려 4회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본인은 ESM 올해의 팀에도 2차례 선정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페라라도 발들이기 힘들었던 워낙 쟁쟁한 수비진들이 포진한 이탈리아 국가대표였기 때문에 국대에서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질겼던 수비수.
- 라이언 긱스 -
10위

로베르토 로사토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43년 8월 18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37경기 0골
1968 UEFA 유로 우승
1970 FIFA 월드컵 준우승
196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헌신적인 수비 자세, 명민한 압박 스탠스, 뛰어난 신체 밸런스 등이 장점이었만 뛰어난 신체 능력에서 나오는 포악한 사냥꾼 기질과 더티 플레이로 공격수에게 덤벼드는 무서움도 보이던 이였습니다.
빌드업마저 뛰어났던 로사토는 뛰어난 폼으로 밀란의 전사 역할을 소화, 1967/68 시즌의 스쿠데토와 다음 시즌의 빅이어, 2차례의 위너스컵 트로피를 포함한 8회의 우승에 모두 크게 이바지한 바 있습니다. 로사토는 국대에서도 1968년 유로 우승과 70 월드컵 준우승의 핵심으로 함께 했으며 특히 후자 대회의 4강 서독전, 결정적인 슛팅을 온몸을 날려 막아내는 장면은 '세기의 경기'를 빛내기 충분했습니다.
9위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59년 4월 6일
주요 클럽:UC 삼프도리아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45경기 2골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3위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가 현역시절 가장 무서워했던 존재. 무지하게 빠른 발과 헐크같은 저돌성과 파워풀한 몸싸움으로 상대 공격수를 비명횡사케 했던 비에르코보드는 반 바스텐, 바티스투타도 잡아낼 수 있던 스토펴였습니다.
AS 로마에서 리그 우승과 MVP를 타는 활약으로 삼돌이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구단의 최전성기를 밀고나가며 4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90/91 시즌 세리에 우승, 다음 시즌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끈 그는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스토퍼에 6차례 선정된 바 있습니다.
허나 아쉽게도 비에르코보드는 1982년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인해서, 1990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있었어서 아주리의 영광를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8위

렌조 데 베키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63cm
생년월일:1894년 2월 3일
주요 클럽:제노아 C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A매치 43경기 0골
많은 스타 수비수들을 배출한 '아주리 군단' 최초의 월드 클래스 수비수. 왜소한 체격에도 야무지게 뛰어댕기며 상대 공격수에게 달라붙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던 마킹과 정교한 태클, 스피드를 보였고 킥도 공격수 만큼 뛰어나 PK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고작 16살에 국대에 데뷔할 정도로 특별한 기량을 가져 '신의 아들'이라고까지 불리웠던 렌조 데 베키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제노아 소속으로 리그 3회 우승, 1922년의 28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우는 등 구단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견인한 인물입니다.
국가대표팀 하에서도 3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만 16세로 이탈리아 국대 역대 최연소 출장, 만 20세로 이탈리아 국대 역대 최연소 주장 역임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7위

조르조 키엘리니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84년 8월 14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9회
이탈리아 세리에 B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5회
A매치 117경기 8골
2012 UEFA 유로 준우승
2020 UEFA 유로 우승
수비 명문 이탈리아 축구의 명맥을 이어간 2010년대 '카테나치오'의 혼. 상대 선수들 뚜들겨패는 강력한 몸싸움과 대인 마킹, 우수한 협동 수비와 넓은 커버 범위, 준수한 빌드업 능력까지 갖춘 키엘리니는 본래 레프트백이었지만 성공적으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바르찰리, 보누치와 'BBC 라인'으로 2010년대의 전성기를 함께 하며 세리에 A 9연속 우승, 5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콘테 체제 하에 11/12 시즌, 무패 우승과 알레그리 체제 아래서 2차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이뤘습니다. 특히 키엘리니는 이기간 동안 세리에 A 올해의 팀 5번,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상을 3번 타기도 했습니다.
201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영혼의 단짝 레오나르도 보누치와 대활약했던 키엘리니는 2012년 유로 결승에선 부상으로 우승을 내줬지만 2021년 유로에서는 조국의 43년만에 앙리들로네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중앙 수비수가 되는 법에 대해 하버드에서 강의해도 될 정도였다.
- 주제 무리뉴 -
6위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01년 6월 26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5회
A매치 59경기 0골
1928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34 FIFA 월드컵 우승
당대 유럽 최고의 팀이었던 아주리 군단을 지켰던 든든한 방패. 투지 넘치는 태클 능력과 불멸의 1대1 방어 능력을 가졌고 스피드, 점프력까지 뛰어나 이른 바 '검투사'로 불리웠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는,
카살레에서의 활약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하였으며 비르지니오 로세타, 잔피에로 콤비와 같이 철벽의 성벽을 구성하여 리그 5연속 우승이라는 유수의 영광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을 갱신했었던 그는 마찬가지로 1928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들어올리는 등 전성기를 지휘했던 인물이지만 1934년 월드컵 당시에는 벤치에서 밀려났고 결국 후보로 우승을 경험하였습니다.
5위

비르지니오 로세타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2cm
생년월일:1902년 2월 2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8회
A매치 59경기 2골
1928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34 FIFA 월드컵 우승
중앙 유럽컵 우승 2회
1920년대 중후반 ~ 1930년대 초중반 이탈리아와 유벤투스를 대표했던 간판 수비. 당대 유럽 최고의 수비력을 선보임과 함께 안정적인 볼 배급에도 능했던 그는 수비수 파트너인 반대편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골키퍼인 잔피에로 콤비와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수비를 이뤘다고 전해집니다.
로세타는 고향팀 베르첼리에서 2번의 스쿠데토를 따냈고 토리노의 유벤투스로 이적해 구단 최초의 전성기를 만들며 1930년대의 역사적인 리그 5연패를 포함한 6번의 리그 우승컵을 획득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국대에서도 1928 올림픽 동메달, 2번의 중앙 유럽컵 우승, 주장임에도 후에 후보로 밀리긴 했지만 1934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4위

파비오 칸나바로
포지션:CB
신장:176cm
생년월일:1973년 9월 13일
주요 클럽:파르마 FC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136경기 2골
2000 UEFA 유로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역사에 단 세명만 있는 수비수 발롱도르 위너 중 하나. 수비수로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인 단신의 키를 가졌으나 괴물같은 점프력, 빠른 발, 아크로바틱한 클리어링, 강철같은 내구성 등의 운동 능력과 절정의 태클 감각과 끈기 있는 대인 마크 실력 등의 수비 지능으로 앞선 단점을 지워버렸던 파이터형 수비의 전형이었습니다.
파르마 FC에서 최전성기를 달린 칸나바로는 릴리앙 튀랑, 잔루이지 부폰 등과 수비진을 형성해 1998/99 시즌 UEFA컵과 2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는 등 팀을 다크호스로 부상시켰고 유베로 이적해서도 맹활약해 05/06 시즌의 리그 MVP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국대로는 유로 2000 준우승과 06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돌파 허용 횟수 0회, 옐로 카드 0회, 단 2실점(PK, 자책골)만 내주는 단일 대회 역대급 수비력을 내내 연출한 덕분에 대회 실버볼,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석권하는 유수의 영광을 거머쥐었습니다.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
- 파비오 칸나바로 -
3위

알렉산드로 네스타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76년 5월 19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3회
A매치 76경기 0골
2000 UEFA 유로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우승
21세기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했던 '신의 벽'. 괴수같은 수비력을 뽐내던 선수로 초인적인 슬라이딩 태클 능력, 깔끔한 헤딩, 우수한 클리어링, 심지어 전진성과 빌드업까지 갖춘 선수였습니다.
라치오의 유스 출신, 주장으로 팀의 반디에라였던 네스타는 전성기를 이끌며 1998/99 시즌의 위너스컵과 99/00 시즌의 리그 + 컵 '더블'을 진두지휘하는 대업을 달성, 허나 구단의 재정 문제로 인해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며 그곳에서도 부상이 좀 있긴했지만 전성기를 이어가 2차례의 세리에와 챔스 우승을 포함한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무려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상만 4번이나 받았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국대에서는 메이저 대회를 참가할 때마다 귀신 쓰인 듯 부상으로 드러누웠으며 그나마 칸나바로, 말디니, 잠브로타와 강철의 포백을 구성한 유로 2000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으로 준우승을 이끈 적이 있습니다.
수비의 목적은 볼을 뺏는 것이 아니라 골을 먹히지 않는 것이다.
- 알레산드로 네스타 -
2위

가에타노 시레아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53년 5월 2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7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79경기 2골
1978 FIFA 월드컵 4강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중반의 비안코네리를 빛낸 이탈리안 리베로의 정점. 정확한 태클, 안정적인 커버 플레이, 정교한 롱 패스, 기습적인 돌파, 유려한 커맨딩 능력까지 두루 갖추었던 그는 성실하고 과묵한 수비 라인의 리더였습니다.
'Mr. 유베' 시레아는 카피탄으로서 유벤투스의 '철의 포백'을 구축했고 클럽이 7차례의 세리에 우승, 2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차례의 유러피언컵, 유에파컵, 위너스컵 등 UEFA 주관 3개의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총 14번의 우승을 이루는데 혁혁지공한 활약을 했습니다.
14년간 554경기를 출장해 구단 최다 출장 4위에 올라있는 시레아는 아주리의 품에서도 1978 WC에서는 파케티의 리베로 자리를 채우며 이탈리아를 4위에 안착시켰고 유로 80에서는 올스타팀 선정, 82 월드컵에선 마침내 44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허나 은퇴 후 유베의 코치를 역임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레아는 충실하고 영리하다. 상대했던 몇몇 선수들과 함께 '가치있음'의 예시.
- 주세페 베르고미 -
1위

프랑코 바레시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60년 5월 8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6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81경기 1골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3위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
이탈리아와 AC 밀란을 대표하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명. 강력한 태클, 노련한 수비 라인 조절, 기습적인 인터셉팅 등의 수비 능력은 신의 경지에 올라있었으며 패스와 전진성 등 공격 능력까지 갖춘 리베로였던 바레시는,
밀란의 유스 출신으로 1980년대 초반, 구단이 2차례나 강등됨에도 끝까지 남아 상처입은 명문팀의 주장으로 팀을 받들었고 후에 막강한 스쿼드를 구성하게 된 '밀란 제너레이션'의 일원으로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무려 6차례의 스쿠데토와 3차례의 빅이어를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1989년 발롱도르 2위를 자랑하는 그는 20년의 프로 생활을 산 시로에서 행한 원클럽맨, 역대 최다 출장 2위, 영구결번 6번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가에타노 시레아에게 밀려 후보였던 바레시는 주전 자리를 잡고 1990 월드컵에서 3위와 역대 최장 무실점 기록을 경신, 다음 94 월드컵 결승에선 브라질의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싸잡아 묶어버리는 미친 퍼포먼스를 펼치나 본인의 승부차기의 실축으로 준우승에 그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바레시가 최고의 수비수다. 그와 교환한 이 셔츠는 평생 가지고 다닐 기억이다.
- 디에고 마라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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