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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백 Top 10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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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파비오 칸나바로 이탈리아

"베를린 장벽"

파비오 칸나바로

포지션:CB

신장:​176cm

생년월일:​1973년 9월 13일

주요 클럽:파르마 FC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136경기 2골

2000 UEFA 유로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역사에 단 세명만 있는 수비수 발롱도르 위너 중 하나. 수비수로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인 단신의 키를 가졌으나 괴물같은 점프력, 빠른 발, 아크로바틱한 클리어링, 강철같은 내구성 등의 운동 능력과 절정의 태클 감각과 끈기 있는 대인 마크 실력 등의 수비 지능으로 앞선 단점을 지워버렸던 파이터형 수비의 전형이었습니다.

 

파르마 FC에서 최전성기를 달린 칸나바로는 릴리앙 튀랑, 잔루이지 부폰 등과 수비진을 형성해 1998/99 시즌 UEFA컵과 2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는 등 팀을 다크호스로 부상시켰고 유베로 이적해서도 맹활약해 05/06 시즌의 리그 MVP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국대로는 유로 2000 준우승과 06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돌파 허용 횟수 0회, 옐로 카드 0회, 단 2실점(PK, 자책골)만 내주는 단일 대회 역대급 수비력을 내내 연출한 덕분에 대회 실버볼,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석권하는 유수의 영광을 거머쥐었습니다.

"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 "
- 파비오 칸나바로 -

 

9위

알레산드로 네스타 이탈리아

"성모"

알렉산드로 네스타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76년 5월 19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3회

A매치 76경기 0골

2000 UEFA 유로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우승

21세기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했던 '신의 벽'. 괴수같은 수비력을 뽐내던 선수로 초인적인 슬라이딩 태클 능력, 깔끔한 헤딩, 우수한 클리어링, 심지어 전진성과 빌드업까지 갖춘 선수였습니다.

 

라치오의 유스 출신, 주장으로 팀의 반디에라였던 네스타는 전성기를 이끌며 1998/99 시즌의 위너스컵과 99/00 시즌의 리그 + 컵 '더블'을 진두지휘하는 대업을 달성, 허나 구단의 재정 문제로 인해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며 그곳에서도 부상이 좀 있긴했지만 전성기를 이어가 2차례의 세리에와 챔스 우승을 포함한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무려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상만 4번이나 받았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국대에서는 메이저 대회를 참가할 때마다 귀신 쓰인 듯 부상으로 드러누웠으며 그나마 칸나바로, 말디니, 잠브로타와 강철의 포백을 구성한 유로 2000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으로 준우승을 이끈 적이 있습니다.

" 수비의 목표는 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실점을 하지 않는 것이다. "
 - 알레산드로 네스타 -

 

8위

가에타노 시레아 이탈리아

"Mr. 유베"

가에타노 시레아

포지션:​SW

국적:​이탈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53년 5월 2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7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79경기 2골

1978 FIFA 월드컵 4강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중반의 비안코네리를 빛낸 이탈리안 리베로의 정점. 정확한 태클, 안정적인 커버 플레이, 정교한 롱 패스, 기습적인 돌파, 유려한 커맨딩 능력까지 두루 갖추었던 그는 성실하고 과묵한 수비 라인의 리더였습니다.

 

'Mr. 유베' 시레아는 카피탄으로서 유벤투스의 '철의 포백'을 구축했고 클럽이 7차례의 세리에 우승, 2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차례의 유러피언컵, 유에파컵, 위너스컵 등 UEFA 주관 3개의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총 14번의 우승을 이루는데 혁혁지공한 활약을 했습니다.

 

14년간 554경기를 출장해 구단 최다 출장 4위에 올라있는 시레아는 아주리의 품에서도 1978 WC에서는 파케티의 리베로 자리를 채우며 이탈리아를 4위에 안착시켰고 유로 80에서는 올스타팀 선정, 82 월드컵에선 마침내 44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허나 은퇴 후 유베의 코치를 역임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세계 최고? 수비에서라면 그건 시레아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모든 수비수들은 시레아의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
- 디에고 마라도나 -

 

7위

세르히오 라모스 스페인

"장군"

세르히오 라모스

포지션:​RB

국적:스페인

신장:184cm

생년월일:1986년 3월 30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5회​

프랑스 리그 1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4회

UEFA 슈퍼컵 우승 3회

A매치 180경기 23골

2008 UEFA 유로 우승

2010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우승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그리고 2010년대 역대 최고의 수비수. 선수 시절 초창기에는 수비력은 떨어지나 강력한 오버랩이 장기였던 라이트백이었지만 2011/12 시즌부터는 센터백으로 포변해 빠른 발과 운동 능력을 이용한 방대한 커버 범위, 정교한 킥을 이용한 빌드업, 뛰어난 점프력과 헤더 등의 장기에 갈수록 수비력까지 상승해 월드 클래스 센터백이 된 라모스였습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 전성기의 주전으로 16년을 뛰며 라리가 5회 우승, 챔스 4회 우승을 포함해 무려 22개의 트로피를 손에 넣는 영광을 누렸으며 본인은 UEFA 올해의 팀에 9번, UEFA 올해의 수비수에 2번 선정돼 그 가치를 입증합니다. 특히 그는 버저비터에 능했는데 13/14 시즌 당시 구단의 염원이던 10번째 빅이어인 '라 데시마' 이룩 당시 결승전에선 동점골의 주인공, 15/16 시즌 '라 운데시마' 결승전에선 선제골을 넣는 영웅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적 함대의 일원으로도 후방을 맡은 라모스는 유로 2008 우승 이후, 대회 최우수 라이트백으로서 10 월드컵을, 대회 최우수 센터백으로 유로 12에서 트로피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무려 A매치를 180경기 소화, 이는 스페인 역대 최다 출장 기록 1위이며 유럽 전체로 쳐도 2위입니다.

" 이보게 회장, 새로운 말디니가 나타났소. "
- 아리고 사키 -

 

6위

호세 나사치 우루과이

"위대한 사령관"

호세 나사치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82cm

생년월일:​1901년 5월 24일

주요 클럽:벨라 비스타

주요 커리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A매치 41경기 0골

1923, 24, 26, 3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9 코파 아메리카 3위

1930 FIFA 월드컵 우승

 

명실상부한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우루과이의 유명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에 의해 X선도 뚫지 못할 수비라는 찬사를 받은 호세 나사찌는 당시로는 엄청나게 큰 체구를 이용해 피지컬적인 수비를 즐겼다고 전해지며 리더쉽 또한 뛰어났다고 해서 '위대한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자국의 벨라 비스타에서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린 그는 후에 명문인 클루브 나시오날로 팀을 옮겼고 도밍구스 다 기아와 센터백 듀오를 이루며 1933년과 34년 리그 2연패를 견인한 바 있습니다.

 

그의 진짜 진가는 국대 커리어에서 나타나는데, 나사치가 통솔했던 1920년대 ~ 30년대 우루과이 축구는 적수가 없었으며 4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 중 2번의 MVP, 2번의 올림픽 우승,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도 사실상 MVP로서 쥘리메컵을 들어올리는 괴수같은 포효를 내질렀습니다.

" X선도 그의 수비는 뚫지 못할 것. "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5위

다니엘 파사레야 아르헨티나

"위대한 주장"

다니엘 파사레야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3cm

​생년월일:​​1953년 5월 2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7회

A매치 70경기 22골

1978, 86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중반를 풍미한 남미 역사상 최고의 수비 중 하나. '남미의 베켄바우어'로 불린 파사레야는 과감한 맨마킹, 작은 키를 커버하는 월등한 위치 선정과 도약력, 비상한 수비 조율력 등등에다 수비임에도 프리킥과 PK도 차던 빼어난 왼발 킥능력과 날카로운 오버래핑 감각으로 무장해 3경기당 1골씩 득점하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국의 명문 클럽 리버 플레이트에서 커리어의 초창기를 보내며 총 7차례의 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특히 1976 시즌은 리그에서만 24골을 넣어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1978년은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순위에서 4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후에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 유니폼을 입고도 맹활약한 그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서 역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 1986년에는 부상으로 벤치에만 있었지만 1978년에는 대회 베스트급 폼으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컵을 따냈습니다.

 

4위

엘리아스 피게로아 칠레

"붉은 장벽"

엘리아스 피게로아

포지션:​CB

국적:칠레

신장:186cm

생년월일:1946년 10월 25일

주요 클럽:SC 인테르나시오나우

주요 커리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A매치 47경기 2골

197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붉은 장벽'으로 불리웠던 남미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바이시클킥 클리어링으로 대표되는 유연성과 제공권 장악, 공만 보는 정확한 슬라이딩 태클과 유려한 수비 리딩, 볼도 잘다뤄 팀의 빌드업까지 도맡던 모든 부분에서 능통한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수였던 피게로아는,

 

페냐롤에서 활약하며 1967년과 68년 우루과이 1부 리그 무패 우승, 7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끌고 리그 MVP만 3번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로 이적하고서의 활약은 더 대단했는데 2번의 전국 리그 우승 타이틀을 따냈으며 개인으로는 남미 올해의 수비수로 6연속, 세계 올해의 수비수로 4연속,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3연속 수상하는 절대존엄의 포스를 드러냈습니다. 

 

비교적 약체이던 칠레를 데리고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3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피게로아는 특히 1974년 월드컵에서 팀이 조별예선에서 광탈함에도 경이로운 수비력을 보이며 많은 언론으로부터 대회 베스트 11로 언급되었으며 특히 당시 우승팀이던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는 칠레와 경기 후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유럽의 피게로아다."
- 프란츠 베켄바워 -

 

3위

프랑코 바레시 이탈리아

"피스치느"

프랑코 바레시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60년 5월 8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6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81경기 1골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3위

1994 FIFA 월드컵 준우승

이탈리아와 AC 밀란을 대표하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명. 강력한 태클, 노련한 수비 라인 조절, 기습적인 인터셉팅 등의 수비 능력은 신의 경지에 올라있었으며 패스와 전진성 등 공격 능력까지 갖춘 리베로였던 바레시는,

 

밀란의 유스 출신으로 1980년대 초반, 구단이 2차례나 강등됨에도 끝까지 남아 상처입은 명문팀의 주장으로 팀을 받들었고 후에 막강한 스쿼드를 구성하게 된 '밀란 제너레이션'의 일원으로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무려 6차례의 스쿠데토와 3차례의 빅이어를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1989년 발롱도르 2위를 자랑하는 그는 20년의 프로 생활을 산 시로에서 행한 원클럽맨, 역대 최다 출장 2위, 영구결번 6번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가에타노 시레아에게 밀려 후보였던 바레시는 주전 자리를 잡고 1990 월드컵에서 3위와 역대 최장 무실점 기록을 경신, 다음 94 월드컵 결승에선 브라질의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싸잡아 묶어버리는 미친 퍼포먼스를 펼치나 본인의 승부차기의 실축으로 준우승에 그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 모든 리베로와 스위퍼들에게 있어서 최종 진화형. "

 

2위

바비 무어 잉글랜드

"삼사자 군단의 캡틴"

바비 무어

포지션:​CB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41년 4월 12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108경기 2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역사상 최고의 수비 중 한명이자 바비 찰튼, 스탠리 매튜스와 함께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 절륜의 태클 감각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터셉팅 능력을 보유했으며 이런 역대급 수비력말고도 미드필더 출신 답게 적극적으로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고 양질의 패스까지 뿌리던 스위퍼였던 바비 무어는 리더쉽까지 뛰어나 클럽, 국대에서 모두 어린 나이부터 주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자리잡기 시작한 백4의 센터백으로 뛰며 전성기를 맞은 그의 활약상에 중하위권이던 웨스트햄은 1963/64 시즌 FA컵 우승에서 우승하며 무어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다음 해에는 위너스컵 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해머스 역대 최다 출장자인 그는 후에 2부인 풀럼을 데리고 FA컵 결승에 오르기도 합니다.

 

'삼사자 군단'의 품에서도 MVP급 활약으로 1966년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대활약을 했으며 다음 70 월드컵에서도 월드컵 모든 경기에서 3골 이상씩 넣던 역사상 최강 팀 브라질을 상대로 단 1골만 실점하는 맹수비로 인생경기를 찍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무어는 월드 사커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5차례, 1966년 발롱도르 4위, 1970년은 2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립니다.

" 최고의 수비수, 1966년의 영웅, 영국의 국보, 웸블리의 주인,
축구의 통달자, 상상 이상의 주장, 역대 최고의 신사. "
- 웸블리 스타디움에 새겨진 글귀 -

 

1위

프란츠 베켄바워 독일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포지션:​CB

국적:독일

신장:181cm

생년월일:1945년 9월 11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4회

DFB 포칼 우승 4회

유러피언컵 우승 3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103경기 14골

1966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 FIFA 월드컵 3위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1976 UEFA 유로 준우승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수비하고 공을 건네주는데서 그치지않고 직접 볼을 몰고 올라가 패스를 뿌리고 슛팅하는 등 적극적으로 공격 가담하는 중앙 수비수의 형태, 수비수가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리베로 스타일을 만든 장본인으로 탁월한 대인 수비, 민첩한 태클, 본래 미드필더 출신인 만큼 세심한 패스와 플레이메이킹, 매서운 전진 드리블, 뛰어난 슛팅 등 공수 양면에 걸쳐 완벽한 모습을 드러냈던 이였습니다.

 

베켄바워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최고의 명문팀으로 탈바꿈시키는 4차례의 분데스리가와 포칼 우승, 유러피언컵 3연패를 진두지휘했습니다. 그 13년 동안 그는 키커부터 27회의 WK를, 12시즌간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디 만샤프트의 일원으로도 어린 나이부터 핵심으로 뛴 그는 특히 리베로 시스템을 대표팀에서도 접목해 이룬 유로 1972 우승 - 1974 월드컵 우승 - 유로 1976 준우승으로 이어지는 이 기간은 독일 대표팀 역대 최고의 전성기로 평가 받습니다. 더해 본인이 참가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팀에 들었고 발롱도르 3위 1번, 2위 2번, 1972년과 1976년엔 1위까지 했으니 정말 '카이저'라는 이름이 안아까운 업적들입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 프란츠 베켄바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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