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
"귀공자"
페르난도 레돈도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6cm
생년월일:1969년 6월 6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주요 커리어
1992년 ~ 1999년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년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던 당대 엘레강스함과 우아함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드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 실력과 경기 조율력에다가 강하고 거친 수비력을 보이는 반면 부드러운 탈압박, 유려한 전진 드리블링을 보유했던 그는 특유의 머리 스타일과 수려한 외모 덕에 '왕자' 혹은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레돈도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각 2차례의 라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두번째 빅이어인 99/00 시즌엔 맨유 중원을 박살내는 명경기를 찍는 등 최고점의 폼으로 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해냈습니다. 그러나 레돈도는 이러한 활약에도 페레즈 회장의 '갈락티코스 정책'에 희생양이 되어 팀을 떠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국대에서 그는 1992년 킹파드컵(컨페드컵 전신)에서 MVP로 우승을, 1년 뒤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팀을 남미 챔피언의 왕좌에 앉히는 클래스를 보이나 후에 다니엘 파사레야 대표팀 감독과의 불화로 그의 국대 경력은 너무나도 빠르게 단절되었습니다.
" 그의 축구화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가? 자석이라도 들어있는가? "
- 알렉스 퍼거슨 -
9위
"왕자"
다닐루 아우빙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82cm
생년월일:1920년 12월 3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A매치 25경기 2골
1945,46, 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브라질 전역에 그 명성을 떨치던 당대 탑급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가담에 조금 더 신경을 쓰던 센터하프(수비형 미드필더)로 정교하면서 날카로운 패싱, 적극적인 드리블, 완숙한 커버링 등으로 필드를 지배해 '왕자'라는 별칭으로도 통했습니다.
아우빙은 1940년대 중후반 ~ 50년대 초반 CR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기, 일명 '빅토리아 익스프레스'를 이끌어가며 총 4번의 주 리그 우승과 1948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남미 클럽 챔피언쉽에서의 우승을 일궈내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브라질 대표팀에 소집된 이래, 194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한 아우빙은 다음해 1950년에도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결승전에서 아쉽게 우루과이에게 역전패 당하며 통곡하는 역경을 겪기도 했습니다.
8위
"관리인"
지투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79cm
생년월일:1932년 8월 8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9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5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52경기 3골
1957, 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62 FIFA 월드컵 우승
1960년대 남미 축구계를 지배하던 '산타스치쿠스' 산투스 FC의 주장이자 셀레상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안정적인 볼배급, 빼어난 활동량, 정교한 태클 솜씨, 약삭 빠른 인터셉팅 등으로 초호화 공격진을 뒷받침하던 홀딩 미드필더 지투였습니다.
그는 1952년에 산투스 유니폼을 입으며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업고 갔고 후에 펠레를 비롯한 뛰어난 선수들의 합류와 함께 총 9차례의 주립 리그와 5차례의 전국 리그, 각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쟁취해냈습니다. 727경기를 소화해 산투스 FC 구단 역대 최다 출장 2위의 지투는 팀이 '트레블'에 가까운 성적을 낸 1962년엔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뽑혔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대표로서의 지투는 지지와 중원 콤비를 구성해 팀의 공격력을 잘 보좌하며 월드컵 2연패에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1962월드컵에서는 더 눈부신 활약으로 올스타팀에 선정되기까지 했습니다.
7위
"검은 우두머리"
옵둘리오 바렐라
포지션:DM
국적:우루과이
신장:183cm
생년월일:1917년 9월 20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주요 커리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6회
A매치 45경기 9골
194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파괴자' 라고 불렸던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수비형 미드필더. 별명 그대로 상대 선수들을에게 돌진해 박살내버리는게 그의 수비 스타일이었으며 가끔 가다가는 벼락같은 중거리슛으로 득점도 꽤 기록했고 선수단에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단단한 정신력과 타고난 리더쉽의 소유자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센터하프(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사이의 역할)였던 바렐라는 우루과이 리그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로 우승권이던 페냐롤로 이적, 라이벌 클루브 나시오날을 누르고 총 6번의 자국 리그 우승컵을 얻는 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루과이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서는 '검은 우두머리'라는 별명에 걸맞는 리더십으로 주장완장을 차고 1941 코파 준우승, 42 코파 우승, 1954 월드컵 4강을 이끌었으며 특히 50 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 패색이 짙어보이 팀의 사기를 북돋는 외침으로 주저앉아있던 동료들을 일어서게 했고 이는 역사에 남을 대역전극인 '마라카나조'로 이어졌습니다.
" 게임은 피치에서 이루어진다. 피치에 나오면 관중들을 신경쓰지 마라.
그들은 단지 숲 밖에 있을 뿐이니까. "
- 옵둘리오 바렐라 -
6위
"두개의 날개"
루이스 몬티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신장:169cm
생년월일:1901년 5월 1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A매치 34경기 6골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30 FIFA 월드컵 준우승
1934 FIFA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테르디토레(이탈리아어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지칭하는 용어).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마티아스 진델라도 무릎 꿇은 거칠고 악착같은 맨마킹과 안정적인 볼배급 능력, 뛰어난 활동량 덕에 '두개의 날개'로 불렸던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사이 포지션)이었던 몬티는,
가는 팀마다 공수의 엔진이 되어주며 CA 산 로렌소의 핵심으로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뛰 경제 사정이 안좋던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국적을 귀화하였고 유벤투스와 계약해 전설적인 멤버들과 함께 4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견인하면서 유럽 전역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귀화 전 아르헨티나 국적으로는 1927 코파 우승에도 28 올림픽, 30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으나 이탈리아 국적으로 나간 1934년 월드컵, 마침내 쥘리메컵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개의 국적으로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은 최초이자 마지막 선수이기도 합니다.
" 게임의 엔진. 몬티는 무섭도록 단단한 수비와 롱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선수이다. "
- 루이스 몬티 -
5위
"시계 태엽"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포지션:D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26년 3월 7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주요 커리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5회
오스트리아 컵 우승 3회
A매치 62경기 6골
1954 FIFA 월드컵 3위
현대 축구에서 흔히 일컫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선구자. 그는 넓게 트인 시야와 그라운드 위를 수놓는 패스로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극에 달해있던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근간을 세운 인물로, 195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의 황금기를 지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정교하고 일관된 플레이스타일에 감안해 언론들로부터 '시계 태엽'이라고 불리웠던 오크비르크는 자국 리그에서 뛰면서 5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대회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1956년엔 발롱도르 6위에 안착,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주장까지 맡으며 다년간 뛰면서 당시 구단의 리그 최고 성적인 4위를 찍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가대표로 서서도 뛰어난 스쿼드를 이끌며 1954년 월드컵에서 3위를 달성, 비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된 바 있습니다.
4위
"메트로놈"
안드레아 피를로
포지션:DM
국적:이탈리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79년 5월 19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6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116경기 13골
2006 FIFA 월드컵 우승
2012 UEFA 유로 준우승
현대 축구가 진정으로 원했던 레지스타(딥라잉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운 롤을 지칭하는 이탈리아어)의 정석이자 정점. '축구 도사' 안드레아 피를로는 훌륭한 경기 조율력과 후방에서도 직접 박스를 타격하는 전매특허인 신기에 가까운 로빙 쓰루패스로 찬스를 만드는데에 아주 능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AC 밀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변해 전성기를 누리며 필수불가결의 척수로서 총 2차례의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까지 성공했고 2007년, 챔스 우승에 성공했을 때는 발롱도르 5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또 황혼기에는 유벤투스로 이적해 리그 4연패와 2014/15 시즌의 챔스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최초로 3시즌 연속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피를로는 2006년 월드컵 우승과 부진하던 팀을 유로 2012 준우승으로 이끌 당시 지네딘 지단,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나란히 대회 최고의 미드필더 수준의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 바 있습니다.
" 살면서 가장 행복한 때는 모든 걸 이룰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이다. "
- 안드레아 피를로 -
3위
"쿠쿠"
보지크 요제프
포지션:DM
국적:헝가리
신장:173cm
생년월일:1925년 11월 28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주요 커리어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우승 5회
A매치 101경기 11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매직 마자르'라는 역대급 국가대표팀의 두뇌이자 195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하며 수비에만 치중하던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안정적인 볼배급, 조율로 적극적으로 공격 전개에 크게 기여하면서 우수한 슛팅, 드리블도 선보였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자국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부다페스트 혼베드라는 팀에서 무려 5번의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1952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탔습니다. 헝가리 국기를 가슴에 달고는 역대 2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으며 1952 올림픽 금메달, 1954 월드컵에서는 비공식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면서 준우승을 차지해 마자르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습니다.
2위
"블랙 마블"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포지션:DM
국적:우루과이
신장:179cm
생년월일:1901년 11월 22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주요 커리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A매치 34경기 1골
1923, 24, 2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10년대 ~ 2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 '블랙 마블'. 안드라데는 흑인 특유의 탄력과 피지컬,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필드를 휩쓸면서도 안정적인 패스 능력과 축구 IQ를 통해 공격 전개를 주도하는 진보적인 플레이스타일과 그 기량 덕에 역대 최고의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 그 사이의 역할)으로 평가받습니다.
가난한 환경과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실력만으로 이런 역경을 뚫어낸 그는 벨라 비스타, 클루브 나시오날, CA 페냐롤이라는 자국의 명문팀들을 거치며 2번의 리그 타이틀을 얻어냈습니다.
이런 그의 위용은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역사상 최고 전성기에서도 이어졌으며 3번의 남미 대륙 대항전 우승(1926년 대회 MVP), 2번의 하계 올림픽 금메달, 최고 수준의 활약으로 1930년 최초의 월드컵 트로피까지 조국으로 가져왔습니다.
1위
"허리케인"
프랑크 레이카르트
포지션:DM
국적:네덜란드
신장:190cm
생년월일:1962년 9월 30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5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KNVB 베이커 우승 3회
유러피언컵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60경기 3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190의 큰 키와 거구를 이용한 피지컬적인 수비에도 능했으며 세밀한 태클과 제공권 장악까지 갖추어 센터백으로도 뛰었었지만 활동량, 볼키핑, 드리블 돌파, 중거리 슛, 패스 같은 부분에서마저 두각을 드러낸 그는 밀란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인물입니다.
아약스에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2차례나 수상하며 AC 밀란에서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와 '오렌지 삼총사'라고 불리는 막강 트리오를 구성했던 레이카르트는 아리고 사키 감독의 지휘 아래 홀딩 미드필더로 뛰며 중원에서 '사키이즘'의 핵심 역할을 잘 이행했고 각 2차례의 스쿠데토와 빅이어를 들어올렸습니다. 특히 유러피언컵 2연패를 하던 1988년과 89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이름을 올렸고 베테랑이 되어 다시 아약스로 돌아온 그는 리베로로 뛰면서 1994/95 시즌의 리그 + 챔스 우승인 '무패 더블'이라는 역사를 작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라녜의 품에서 레이카르트는 각 2차례의 유로와 월드컵에 참가, 1988년 유로에서 올스타에 선정되는 폼으로 유일무이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최고의 미드필더다. 그는 그의 포지션에서 꿈꿀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난 레이카르트 외에 어떤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가운데서도 그만한 피지컬을 본적이 없다. "
- 프랑코 바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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