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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별 역대 베스트 11/대한민국 K리그

부산 아이파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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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

< Pusan I Park >

홈구장: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연고지:부산광역시

창설년도:​1979년

최다 득점자:이태호 57골

최다 출장자:이장관 362경기

성적:프랑스 리그 1 우승 10회 - 최다 우승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4회

전국축구실업연맹전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3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역대 최고의 선수:김주성

주장:정용환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부산 역대 베스트 11 1군 스쿼드

골키퍼

김풍주 부산

김풍주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91cm

생년월일:1964년 10월 1일

클럽 커리어

1983년 ~ 1996년

181경기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당시 국내 최고봉으로 불렸던 장신 골키퍼. 180 초중반의 선후배 골키퍼들과 달리 190이 넘는 키를 자랑했던 김풍주는 이를 이용한 공중볼 장악과 안정적인 캐칭에 능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13년을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만 활약했던 원클럽맨이었으며 특히 당시 대우의 최전성기 왕조 골문을 지키며 3번의 리그 우승과 1985/86 시즌의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2차례 리그 올스타에다가 무려 181경기 156골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던 '야신 클럽' 키퍼이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이장관 부산

이장관

포지션:​RB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74년 7월 4일

클럽 커리어

1997년 ~ 2007년

362경기 5골

FA컵 우승 1회

부산 아이파크 역대 최다 출장에 빛나는 진정한 Mr. 부산. 뛰어난 체력을 위시하여 오른쪽 측면을 미친듯이 뛰어다니던 이장관은 본래 제2의 이영무 소리를 듣던 공격수 출신 답게 오버래핑 역시 위협적이었습니다.

 

이운재, 전경준, 박성배와 청주상고에서 부산 대우 로얄즈 최고의 시기였던 1997년에 데뷔해 주전급으로서 전설적인 '3관왕'에 기여했으며 부산 아이콘스로 인수된 2000년부터는 주장완장을 차고 팀을 지휘, 04 시즌 포터필드 감독 아래 FA컵 우승과 05 시즌의 아챔 4강 진출 등을 성공시켰습니다.

 

센터백

정용환 부산

정용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0년 2월 10일

클럽 커리어

1984년 ~ 1994년

168경기 9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홍명보 등장 이전까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수비로 여겨지던 인물. 근련 운동은 축구 선수에게 해가 된다는 기성 세대의 잘못된 지도에도 개인 훈련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적극 시도해 얻게 된 초인적인 점프 능력과 철인의 대인 방어력으로 거구의 외국 공격수들 상대로 전혀 안밀렸던 정용환은 이런 성실한 태도와 노력으로 K 리그 원탑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대우 로얄즈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뛴 그는 당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멤버들을 지휘하며 3번의 K리그와 198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더해서 개인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3번의 리그 베스트 11, 1991 시즌의 MVP 등을 이뤘냈습니다.

 

센터백

김현수 부산

김현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6cm

생년월일:1973년 3월 13일

클럽 커리어

1995년 ~ 1999년

110경기 7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K리그 최강의 센터백으로 불려도 무방한 인물. 킥 능력이 워낙 뛰어난 선수라 대부분의 세트피스를 도맡아찼으며 수비수이지만 커리어에 레드카드가 하나도 없을 만큼 깔끔한 수비를 펼쳤던 김현수였습니다.

 

성남 일화 왕조의 2기를 이끌기 전 김현수는 부산에서 데뷔하여 이민성과 견고한 센터백 듀오를 형성, 우성용과 마니치, 안정환 같은 선수들을 보좌했으며 주장으로 1997년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리그컵 우승을 거머쥡니다. 특히 97 시즌에는 3관왕까지 성공한 그였습니다.

 

레프트백

하석주 부산

하석주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73cm

생년월일:1967년 2월 20일

클럽 커리어

1990년 ~ 1997년

187경기 42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2회

 

윙백으로 한정한다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로 불릴 만한 사나이.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탁월한 킥능력, 첨예한 크로스와 직접 프리킥 능력과 뛰어난 스피드, 드리블 전진 능력을 가져 레프트 윙어부터 측면 미드필더, 레프트백까지 보던 하석주였습니다.

 

그는 1990년 부산에서 컵 대회에서 득점왕, MVP, 우승을 따내는 화려한 데뷔를 알렸고 후에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며 대우 로얄즈의 레전드로서 1997년의 전설적인 3관왕을 비롯해 2번의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더불어 해당 시즌 그는 리그에서 프리킥으로만 4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조광래 부산

조광래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71cm

생년월일:1954년 3월 19일

클럽 커리어

1982년 ~ 1987년

44경기 3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당대 대표팀의 에이스 노릇을 하던 1980년대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 체력과 피지컬은 그저 그랬던 조광래였지만 탁월한 시야와 자로 잰듯한 패스 능력으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악착같은 수비 능력까지 갖추기도 했습니다.
 
그는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보내며 정해원, 정용환, 박창선 등의 국가대표급 멤버들과 뛰면서
2번의 리그 우승, 1986년의 아챔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더해서 1981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 83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 KFA 올해의 팀에는 무려 8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위엄을 보인 바 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주성 부산

김주성

포지션:DM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6년 1월 17일

클럽 커리어

1987년 ~ 1999년

255경기 35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당대 아시아의 슈퍼 스타.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휘날리며 미친듯이 뛰어다녀 '삼손' 혹은 '야생마'로 불리웠던 김주성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능력으로 윙어로 축구를 시작했으며 패스 센스까지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성기를 보냈고 집념의 수비력으로 말년에는 리베로까지 봤었던 만능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습니다.

 

후에 분데스리가의 보훔으로 이적해 뛴 것만 제외하면 그는 대우 로얄즈 소속으로 모든 커리어를 보내며 3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리그컵을 주도, 더불어 말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리베로로 뛰면서 김주성은 최초로 K리그에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모두 올스타에 들었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위대한 활약상에 대우 로얄즈는 리그 최초로 김주성의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안정환 부산

안정환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76년 1월 27일

클럽 커리어

1998년 ~ 2000년, 2008년

116경기 50골

리그컵 우승 1회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축구의 최전성기를 대표했던 판타지스타. '테리우스','안느' 같이 고급스러운 별명처럼 움직임도 매우 우아했으며 아름다운 볼터치와 드리블 개인기 및 수준 높은 슛팅 기술, 비상한 공간 이해도 등으로 9.5번 자리에 빛이 났던 선수였습니다. 

 

대우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베스트 11 선정, 다음 해인 1999년에는 우성용, 마니치와의 뛰어난 3톱으로 활약해 사상 최초로 비우승팀 리그 MVP까지 따내는 활약으로 구덕운동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결국 2000 시즌 도중 반시즌만 뛰고서 이탈리아의 페루자로 이적하는데 성공했으나 그곳에서는 다들 알겠지만 여러 문제로 잘안풀렸고 2008년 노장이 되서야 팀에 돌아와 1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정해원 부산

정해원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59년 7월 1일

클럽 커리어

1983년 ~ 1991년

147경기 34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1980년대를 풍미했던 K리그 최상위 플레이어이자 대표팀의 에이스로도 불리웠던 남자. 세련된 볼컨트롤과 키핑력, 날카로운 기회 창출 능력과 슛팅 스킬, 빠른 발과 왕성한 수비 가담을 지녀서 세컨 스트라이커부터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정해원은,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만 모든 클럽 커리어를 보내며 구단의 르네상스 시대를 향유하였고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컵 대회 우승, 1986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까지 트로피를 드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개인으로는 2차례의 리그 베스트 XI, KFA 올해의 팀에는 5번 들었으며 1986년에는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하며 득점왕과 다음 시즌에는 MVP까지 뽑힌 정해원이었습니다.

 

스트라이커

이태호 부산

이태호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61년 1월 29일

클럽 커리어

1983년 ~ 1992년

181경기 57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우리나라를 빛냈던 '한국의 게르트 뮐러'. 박스 안에서의 감각적인 슛팅과 빈공간 침투 능력이 최대 장점이었으며 커리어 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뛸 만큼 볼 다루는 능력 역시도 눈부셨던 이태호는 특히나 1987년, 수비수와의 경합 과정에서 오른쪽 눈을 실명당하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이를 극복한 굳센 의지를 가진 이기도 했습니다. 

 

대우 로얄즈의 창단 멤버로서 그는 10년간 모든 프로 커리어를 대우에서만 뛰면서 3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컵 대회, 1986년 아시아 챔스 우승을 이뤘고 본인은 KFA 올해의 팀에 4번, K리그 베스트에 2번, 1985년에는 AFC가 뽑은 아시아 올스타팀에도 든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마니치 부산

마니치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72년 1월 16일

클럽 커리어

1996년 ~ 2002년

117경기 36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바람의 아들'이라 불렸던 대우 로얄즈 역대 최고의 용병. 엄청난 스피드를 통해 뒷공간을 공략하면서도 사이드를 흔들어주는 플레이로 아군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창출하는 플레이도 잘했습니다.

 

마니치는 부산의 유니폼을 입고서 K리그에 데뷔했으며 샤샤, 뚜레와 같이 유고 3인방이자 안정환, 우성용과 공격 트리오를 구성하여 팀의 에이스로서 1997 시즌의 '전관왕', 세레소 오사카로 1년 임대 갔다와서는 99 시즌의 아쉬운 부산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리그 베스트 11에 들어갔습니다.

 

감독

이차만 부산

이차만

포지션:MANAGER

국적:대한민국

생년월일:1950년 9월 30일

클럽 커리어

1987년 ~ 1989년, 1992년, 1996년 ~ 1999년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 대회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1990년대 부산 구덕운동장에 축구의 바람을 일으켰던 명장. 당시 국내에 만연하던 뻥축구 전술과 달리 짧은 패스 위주의 만들어가는 게임을 추구했던 이차만은 지략가인 동시에 훌륭한 육성가이기도 했는데, 그의 손에 탄생한 선수만 무려 안정환, 우성용, 이민성 등이 있습니다.

 

80년대 코치로서 장운수 감독이 이끄는 대우에 합류하였고 이후 바톤을 이어받아 1987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휴식 후에 1996년 다시 복귀하여 본격적대우 로얄즈의 찬란한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97년의 리그 우승을 비롯해 3번의 리그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부산 역대 베스트 11 2군 스쿼드

 

골키퍼

신범철 부산

신범철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85m

생년월일:1970년 9월 27일

클럽 커리어

1993년 ~ 2000년

123경기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대우 로얄즈의 황금 시대를 일궈냈던 주전 골키퍼. 전성기 시절에 뛰어난 다이빙과 안정적인 캐칭이 장점이었던 신범철 골키퍼는,

 

아주대에서 1992년 올림픽에 뽑히는 활약으로 고향팀 부산 대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초창기에는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후에 훌륭히 성장하며 막강한 멤버들과 1997년의 정규 리그,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우승을 일구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다음 시즌과 다다음 시즌엔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을 한번 더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김판근 부산

김판근

포지션:RB

​국적:​대한민국

신장:168cm

생년월일:1966년 3월 5일

클럽 커리어

1987년 ~ 1993년

167경기 11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붉은 악마'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던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4강 신화의 주역. 부족한 피지컬을 채우는 활동량과 특유의 똑똑한 플레이를 바탕으로 라이트백을 뛰었던 김판근은 말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습니다.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 이후 부산 대우 로얄즈에 발탁되어서 전성기 일원으로 활약했던 그는 어린 나이이지만 데뷔한지 얼마 안된 시간에도 빠르게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며 1987년과 1990년의 2차례 케이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1993 시즌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한 그는 LG 치타스로 이적하여서도 1993 시즌에 이어 2번쨰로 95 시즌 리그 베스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박현용 부산

박현용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4년 4월 6일

클럽 커리어

1987년 ~ 1995년

184경기 15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1980년대 중후반 ~ 90년대 초반 K리그를 누볐던 이른 바 '원조 리베로'. 안정적인 태클 실력과 더불어 우수한 시야와 정교한 롱패스가 기반이 되는 빌드업 리딩 실력 덕에 그러한 별명을 얻었던 박현용은,

 

고2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해 아주대 진학 후 리베로로서 본격적으로 활약, 연계되어있던 대우에서 데뷔했습니다. 당시 정용환의 후계자 포지션이었지만 정용환이 워낙에 대표팀에 자주 불려다니자 생각보다 많이 경험치를 쌓아 성장했고 1987년 리그 우승, 91년에도 리그 올스타팀에 이름을 올리는 활약으로 2번째 K리그 트로피을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센터백

이민성 부산

이민성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73년 6월 23일

클럽 커리어

1996년 ~ 2002년

77경기 6골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후지산을 무너트린 '도쿄 대첩'의 주인공. 이민성은 빠른 발과 거머리같은 대인 방어력, 포지션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를 바탕으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풀백 등을 뛰며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로 평가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이차만 감독에 의해서 아주대에서 캐스팅 되었으며 김현수와의 센터백 조합으로 대우 로얄즈에서 전성기를 보내 1997 시즌의 리그와 리그컵 '더블'을 이뤄내는 르네상스 시대를 같이 향유했습니다. 이민성은 후에 홍명보의 대체자로 이적한 포항에서는 2004년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올스타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장외룡 부산

장외룡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59년 4월 5일

클럽 커리어

1982년 ~ 1987년

67경기 0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하석주와 같이 부산 대우 로얄즈 역대 최고의 좌측면 수비수로 불리는 사나이. 중2라는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음에도 뛰어난 노력과 끈기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리그 상위권 수비력을 보유하게 된 장외룡은,

 

그는 연세대 졸업 후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여 정용환, 박노봉 같은 뛰어난 수비진과 성벽을 구축해 최전성기를 보냈습니다. 1984 시즌과 87 시즌의 리그 우승과 1986 시즌에는 아챔의 전신이었던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트로피를 손에 얻는 활약을 했던 장외룡은 2차례 리그 베스트 11에도 들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30살에 이르게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조덕제 부산

조덕제

포지션:DM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65년 10월 26일

클럽 커리어

1988년 ~ 1995년

213경기 9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1980년대 말 ~ 90년대 중순 K리그의 수위급 미드필더로 평가받던 대우 로얄즈의 원클럽맨 플레이어. 악바리 같은 대인 마킹과 더불어 우수한 볼줄기가 되는 발밑을 가졌던 그는,

 

데뷔 후부터 당시 팀의 핵심으로 빠르게 활약하게 되었으며 1989년과 90년에 빠르게 2차례 코리아컵 전신인 대회에서 챔피언에 올랐으며 1991 시즌에는 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모든 선수생활을 부산에서만 지냈던 조덕제는 89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하기도 했습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정재권 부산

정재권

포지션:RM

국적:대한민국

신장:168cm

생년월일:1970년 11월 5일

클럽 커리어

1994년 ~ 1999년

99경기 20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하석주와 같이 좌석주 - 우재권 라인을 구축했던 당대 리그 탑급의 우측 날개. 작은 신장을 커버하는 매우 빠른 민첩성과 가속력으로 수비를 뚫어냈으며 이러한 플레이 때문에 제트기를 뜻하는 '쌕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습니다.

 

정재권은 한양대 졸업 후에 대우와 계약하며 K리그 최초의 억대 신인 선수가 되었으며 좌석주 - 우재권 라인으로 활약해 우성용, 샤샤, 마니치 등의 타겟터를 정확히 조준하며 1997 시즌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전설적인 '3관왕'에 기여하였습니다. 결국 이 좋은 활약으로 포르투갈 리그의 비토리아로 임대가기도 했으나 에이전트의 무능력함과 구단의 압박으로 인해 다시 리그로 복귀한 바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박창선 부산

박창선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54년 2월 2일

클럽 커리어

1987년 ~ 1993년

43경기 6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IFA 월드컵 본선 대한민국 제1호골의 주인공. 박창선은 양발로 뿌리는 정확한 패스와 슛팅 능력, 감각적인 드리블 탈압박, 저돌적인 돌파 등으로 당대 한국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인물입니다. 

1983년 할렐루야 축구단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다음 해에는 대우로 이적해 짧은 기간이지만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는데, 첫 시즌인 84년엔 28경기 6골 7도움을 찍으며 구단의 사상 첫 리그 타이틀 획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에 리그 MVP로까지 선정되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뚜레

포지션:C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2cm

생년월일:1972년 6월 17일

클럽 커리어

1996년 ~ 2001년

70경기 8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1990년대 후반 멈출 수 없는 모터를 가동했던 대우 로얄즈의 용병 미드필더.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과 결정적인 어시스트 능력을 가져 '해결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던 제바드 투르코비치, K리그 등록명 뚜레는,

 

디나모 자그레브라는 크로아티아 명문팀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마니치와 함께 팀의 핵심 용병으로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에 구단은 1997년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리그컵 우승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뛰어난 실력에 당연 한국 축구 협회는 뚜레의 귀화를 노렸으나 여러 이유로 실패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변병주 부산

변병주

포지션:LM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61년 4월 26일

클럽 커리어

1983년 ~ 1989년

97경기 22골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총알'이라 불렸던 1980년대 한국 축구의 얼굴과도 같던 스피드 러너. 100m를 11초에 끊는 엄청난 가속력과 민첩한 드리블 전환, '컴퓨터 발'로 불렸을 만큼 뛰어난 크로스와 슛으로 이름을 날린 변병주였습니다.

 

연세대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히고 1981년에는 KFA 올해의 팀까지 들었던 그는 졸업 후 대우 로얄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한 변병주는 막강한 멤버들, 이를 테면 정용환, 조광래, 이태호 같은 구단 최전성기의 일원이었으며 2차례의 K리그 우승, 1986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따내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우성용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91cm

생년월일:1973년 8월 18일

클럽 커리어

1996년 ~ 2002년

217경기 54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서 대한민국 K리그의 얼굴과도 같던 장신 공격수. 별명부터가 '우공룡'이었으며 큰 키를 바탕으로 한 헤딩과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골을 넣는데 능했지만 발기술이 별로이며 포스트플레이 역시도 커리어 말미에 가서야 발전했던 인물입니다.

 

대우 로얄즈의 황금 세대로 데뷔했던 우성용은 마니치, 안정환과 전설적인 공격 트리오를 구성해 1997 시즌의 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 2회를 경험하였으며 대우 인수 이후의 부산 아이콘스 이후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으며 2001년에는 1골 차이로 아쉽게 득점왕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수석 코치

장운수 부산

장운수

포지션:HEAD COACH

국적:대한민국

생년월일:1928년 11월 19일

클럽 커리어

1981년 ~ 1983년, 1984년 ~ 1986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차범근을 발굴한 1980년대 대한민국 프로 축구 초창기의 선지적 감독. 축구는 신체조건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며 선수들의 기술 발전에 힘썼던 장운수 감독은,

 

연세대 감독을 거쳐서 대우 로얄즈의 2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차범근 이외에도 클럽에서 조광래, 이태호, 정해원, 정용환, 장외룡 등의 어린 새끼용들을 전부 대표팀급 선수들로 성장시켰고 이러한 이들의 활약이 발판이 되어 1984 시즌에는 리그 우승으로 K리그 감독상 수상, 85/86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정상에 오른 바 있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

부산 역대 베스트 11 리저브 7인

 

김용대 부산

김용대

주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89cm

생년월일:1979년 10월 11일

클럽 커리어

2002년 ~ 2005년

110경기

FA컵 우승 1회

 

2010년대 초중반 아시아 최고 레벨의 키퍼. 안정적인 선방과 키핑 능력을 가져 팬들로부터 '용대사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김용대는,

 

성남, 그리고 서울에서 전설적인 커리어슬 쓴 선수로 유명하지만 연세대 졸업 후 커리어를 시작한 팀은 부산 아이콘스였습니다. 당시 포터필드 감독 아래서 수비 축구를 구사하던 팀의 핵심으로 어린 나이에 구단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김용대는 2004 시즌 골키퍼이지만 MVP에 뽑히며 우승에 성공했고 챔스 4강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범영 부산

이범영

주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97cm

생년월일:1989년 4월 2일

클럽 커리어

2008년 ~ 2015년

163경기

 

부산 아이파크의 마지막 1부 리그 시절을 지켰던 장신 키퍼. 2m에 다다르는 큰 장신을 이용한 공중볼 장악, 정확한 롱볼 빌드업, 특출난 페널티킥 선방 능력을 보였으며,

 

이러한 장점들을 토대로 최현, 전상욱 등의 주전 경쟁 키퍼들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올라섰고 2009 시즌과 11 시즌 리그컵 결승 진출과 2010 시즌의 FA컵 준우승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후에도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갈 만큼 이범영은 뛰어난 폼을 보였지만 결국 팀은 2015년 강등되었고 그는 결국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이정효 부산

이정효

주 포지션:​RB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75년 5월 15일

클럽 커리어

1998년 ~ 2008년

232경기 14골

FA컵 우승 1회

대우 로얄즈,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파크 시절을 모두 거친 4명 중 한명이자 그중 유일한 원클럽맨. 뛰어난 멀티성과 악바리 정신의 허슬 플레이로 인해 인해 주포지션은 라이트백이었으나 미드필더나 윙포워드까지 소화했던 그였습니다.

 

비록 데뷔 시즌에는 부상으로 한해를 날렸지만 다음 1999 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을 주전으로 도왔으며 모기업 대우의 부도로 인해 과도기를 겪게되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팀에 계속해서 남아 헌신, 2004년의 FA컵 우승이라는 호성적 당시에도 이정효는 묵묵히 궂은 일을 해냈습니다.. 또한 그는 부상으로 은퇴하게 되는 마지막 시즌에는 주장완장까지 차기도 했습니다.

 

우르모브

주 포지션:​LB

국적:세르비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77년 8월 30일

클럽 커리어

1999년 ~ 2003년

81경기 12골

 

2000년대 초중반 K리그를 수놓은 공격형 윙백. 윙포워드도 소화할 만큼의 뛰어난 드리블 돌파와 왼발 킥이 장점이었전 우르모브는 한 때 수비가 약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지적받던 점을 고쳐 공수겸장이 되었습니다.

 

1999년 유고에서 한국에 오자마자 리그 준우승을 도왔으며 2001 시즌에는 특히 마니치, 우성용 같은 톱들에게 많은 골들을 떠먹이며 11어시로 리그 도움왕, 케이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까지 포함되는 저력을 보입니다. 03년엔 포터필드 감독 부임에 힘입어 윙어로서 더 훌륭한 폼으로 날아다녔지만 결국 수비 문제로 수원으로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수원에서 바르샤를 상대로 1대0 승리를 이끄는 프리킥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박종우 부산

박종우

주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89년 3월 10일

클럽 커리어

2010년 ~ 2013년, 2019년 ~ 2023년

201경기 12골

 

2010년대 부산 아이파크를 대표했던 리그 수위급 미드필더. 세트피스를 담당할 수 있는 우수한 킥 능력과 더불어 에너지틱한 활동량으로 압박을 이어가던 박종우는,

 

2010년 부산에 드래프트로 입성하여 어린 나이에 안익수 감독의 질식 수비 축구를 가능케하며 핵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에 2012년 올림픽 멤버로도 뽑혔던 그는 후에 광저우 푸리로 이적하며 팀을 떠났지만 19년 다시 2부였던 부산에 복귀하여 경남을 꺾고 K리그1 복귀를 도운 바 있습니다.

 

호물로 부산

호물로

주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69cm

생년월일:1995년 10월 27일

클럽 커리어

2017년 ~ 2020년

129경기 34골

 

수렁에 빠진 부산 아이파크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던 용병. 공격형 미드필더의 위치에서 아름다운 왼발을 가감없이 발휘했으며 브라질리언 다운 뛰어난 테크닉도 물론 어메이징, 엄청나게 빠른 적응 속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POP의 많은 애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하부 리그를 돌아다니던 그가 축구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던 곳은 다름아닌 한반도의 부산이었으며 에이스로서 2부에 있었던 팀을 매번 승격권에 도달, 특히 2019년에는 승격 성공으로 비로소 1부에 팀을 올려놓은 바 있습니다. 특히 경남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골을 넣고서 카메라를 보고 '마 이게 부산이다!'를 외치는 장면은 본인의 심장을 진정으로 아시아드주경기장에 묻는 순간이었습니다.

 

샤샤 드라큘리치 부산

샤샤

주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90cm

생년월일:1972년 11월 5일

클럽 커리어

1995년 ~ 1998년

92경기 26골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해 부산, 수원, 성남의 전성기를 모두 이끌었던 외인 폭격기. 발은 느리지만 거대한 덩치와 키를 이용해 헤더를 꽂고 발로 골문을 위협하던 샤샤는 특히 활동량의 부재를 클러치 능력으로 메꾸는데 능했습니다.

 

샤샤 드라쿨리치는1995년 로얄즈 왕조에 입성했으며 김주성, 안정환, 우성용, 마니치 등과 공격을 이끌면서 97년의 정규 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우승으로 3관왕을 달성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허나 후에 99 시즌 수원으로 이적해 챔피언 결정전에서 친정팀인 대우와 맞붙게 되는데, 오심인 핸들링으로 골든골을 넣는 '신의 손' 사건 이후 대우 팬들에게는 악당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수비수

일리치

윤희준

이재희

박노봉

최영일

류웅렬

김창수

송종국

김문환

최준

미드필더

아미르

김상문

김재영

한지호

임상협

 

공격수

이춘석

이기부

뽀뽀

이정협

이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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