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
안익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65년 5월 6일
주요 클럽: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5경기
챔스 3연패에 빛나는 1990년대 K리그를 아시아 정상에 올려놓았던 중앙 수비수. 늦게 축구를 시작해 엄청난 노력을 했던 선수였으며 '터미네이터'라는 별명답게 강력한 몸싸움을 자랑했지만 커리어 말미로 갈수록 뛰어난 볼배급과 수비라인 커맨딩 능력도 갖추며 성장했던 안익수였습니다.
그는 박종환 감독에 눈에 띄어 성남 일화 천마 역대 최고의 전성기의 한 축으로 활약했으며 K리그 3연패와 함께 1995년에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구단을 아시아 정상에 올려놓는데 분명한 공헌을 했습니다. 94년 리그 베스트 11에도 들었던 안익수는 허나 바로 포항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런 어이없는 처사에 박종환 감독은 감독직을 사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항에 가서도 2번을 연속해서 우승하며 3연속 아챔 우승이라는 대업을 움켜쥐었습니다.
19위
조민국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63년 7월 5일
주요 클럽:LG 치타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46경기 5골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를 주무대로 삼았던 대한민국의 원조 리베로. 빼어난 체력과 공수 밸런스를 기반으로 경기장을 휘젓던 조민국은 주포지션은 리베로였으나 워낙 다재다능해 미드필더부터 공격수까지 소화가 가능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모든 프로 선수 생활을 럭키 금성에서만 보낸 원클럽맨이며 대표팀에 발탁될 정도의 그 기량은 클럽의 전성기를 가져왔으며 1990 시즌의 리그 우승을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2차례의 리그 2위를 더 이꾼 조민국은 1986년 K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된 바 있고 88년 컵 대회 결승에선 1골 1도움으로 우승을 도와 MVP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18위
이민성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73년 6월 23일
주요 클럽:부산 아이파크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A매치 67경기 2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후지산을 무너트린 '도쿄 대첩'의 주인공. 이민성은 빠른 발과 거머리같은 대인 방어력, 포지션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를 바탕으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풀백 등을 뛰며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로 평가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김현수와의 센터백 조합으로 대우 로얄즈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97 시즌의 리그와 리그컵 '더블'을 이뤄냈으며 홍명보의 대체자로 이적한 포항에서는 2004년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올스타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국대에선 1997년, 한일전에서 조국을 월드컵 본선에 올리는 결승골을 넣었고 각 2차례의 아시안컵,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17위
박정배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67년 2월 19일
주요 클럽:LG 치타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A매치 36경기 2골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던 중앙 수비수 중 한명. 뛰어난 스피드와 강렬한 태클, 특유의 제공력을 바탕으로 당대 리그 최고의 스토퍼로 평가받던 박정배였습니다.
그의 커리어 시작은 LG 치타스의 드래프트를 받으며 시작되었고 1990 시즌 데뷔하자마자 K리그 우승의 주역, 92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XI에까지 포함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후에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적해서도 명성을 이어갔던 박정배는 1994년 월드컵에서도 최영일, 홍명보와 백3를 구성해 독일의 클린스만을 마크하는 임무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16위
김현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6cm
생년월일:1973년 3월 13일
주요 클럽:성남 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4회
리그컵 우승 5회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3경기 0골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K리그 최강의 센터백으로 불려도 무방한 인물. 킥 능력이 워낙 뛰어난 선수라 대부분의 세트피스를 도맡아찼으며 수비수이지만 커리어에 레드카드가 하나도 없을 만큼 깔끔한 수비를 펼쳤던 김현수였습니다.
김현수는 부산에서 데뷔하여 이민성과 견고한 센터백 듀오를 형성, 주장으로서 1997년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리그컵 우승을 거머쥡니다. 또한 성남에 와서는 역대급 수비진들과 성남 일화 2기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3연속 리그 우승과 2차례의 리그컵 우승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불과 4시즌만 팀에 머물렀지만 그 4시즌을 연속으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위엄을 보였으며 이는 수비수로는 단 2명만 가지고 있는 기록입니다.
이렇게 리그에서는 분명 역대급 수비였던 김현수였지만 안타깝게도 동시대 같은 포지션의 홍명보의 존재에 국대에선 찬밥 신세였습니다.
15위
최영일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1cm
생년월일:1966년 4월 25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4회
A매치 55경기 0골
1990년대 한반도 전체를 대표했던 믿음직한 스토퍼. '수갑', '진드기' 등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 선수를 물고 안놔주는 악착 같은 대인 마크가 가장 눈에 띄었으며 최영일은 특히나 당시 일본 최고의 공격수 미우라 카즈요시를 잘 막아냈던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현대 호랑이가 리그 하위권일 때부터 팀에 헌신하며 수비의 멱살을 끌고 갔고 1990년대 들어 개편 후에는 좋은 멤버들을 얻자 1991년 리그 준우승, 95년에는 리그컵 우승, 1년 뒤에는 대망의 K리그 트로피를 품에 안은 바 있습니다. 최영일은 그 과정에서 2차레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클래스를 입증했습니다. 말년에 부산으로 가서 한번 더 리그 우승을 경험한 그는,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도 1994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98년에는 주장 완장을 달았습니다.
14위
곽태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6cm
생년월일:1981년 7월 8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51경기 3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중반 '태극 전사' 한국 대표팀의 주축 센터백. 강력한 피지컬과 태클을 보이면서 뛰어난 공중볼 경쟁력을 내비췄고 말년에는 커맨딩 능력까지 성장했던 곽태휘는 왼쪽눈 실명, 허리 디스크, 평발이라는 악재에도 프로에서 대성한 노력파이기도 했습니다.
전남에서 2007 시즌 FA컵 우승을 만든 그는 울산으로 이적, 2011년에는 9골로 무려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리그 준우승과 다음 시즌 챔스 우승까지 이룩했습니다. 리그 베스트에 2연속 들어간 곽태휘는 알힐랄로 이적해서도 아챔 준우승,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는 40에 가까운 나이에 2016 시즌 리그 우승 트로피에 기여했습니다.
곽태휘는 2번의 월드컵(2010,2014)에선 부상과 후보로 빛을 못봤으나 15 아시안컵에서는 뛰어난 활약상으로 올스타에 들며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땀을 흘리지 않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걸 잘 안다. "
- 곽태휘 -
13위
이정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80년 1월 8일
주요 클럽:알 사드 S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카타르 스타스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카타르 아미르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54경기 5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원정 16강을 이끌었던 주전 센터백. 뛰어난 운동 능력과 빠른 발을 이용한 훌륭한 커버 범위를 보였으며 골문 앞에서 터지는 득점 감각이 눈에 띄던 이정수는,
인천에서 제대로 떴으며 수원으로 이적해 마토, 곽희주와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2008 시즌 리그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일본을 거쳐 이적한 알사드에서는 2011년, 아챔 우승을 이룩하며 챔스 올해의 팀에 2연속 들기도 했던 그는 태극 전사로도 2010년 월드컵에서 수비수이지만 2골을 기록해 대표팀 역사상 첫 원정 16강에 지대한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12위
홍정호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6cm
생년월일:1989년 8월 12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4회
FA컵 우승 2회
A매치 42경기 2골
201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했던 육각형 센터백. 유리몸 기질이 단점이었지만 준수한 스피드와 발밑, 똑똑한 패스 차단 능력과 공중볼 장악 등이 장점이었던 홍정호는,
제주에서 데뷔부터 리그 올스타에 들며 분데스의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던 홍정호는 분데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중국을 거쳐 다시 K리그 최고의 팀이었던 전북으로 복귀,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성기 폼을 다시 찾으며 4연속 리그 우승과 2차례의 K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2019년부터 21년까지 리그 원탑 수비수로서 3연속 리그 베스트에 뽑혔고 21년엔 24년만에 수비수로서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허나 국대에선 부상으로 인해 2012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2014 WC에선 부상이 덜 회복된 상태로 알제리전에 출전해 최악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11위
박성화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55년 5월 7일
주요 클럽:할렐루야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107경기 26골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그 명성을 쌓았던 골넣는 수비수. 박성화는 고등학생 때 축구를 시작해 기본기가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뛰어난 운동 능력과 더불어 수비력, 공격력까지 좋아 미드필더와 공격수로도 많이 기용되었습니다.
포항 제철 축구단에서 축구를 시작해 1979년 K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할렐루야 독수리로 이적한 그는 원년 멤버로 1983 시즌 초대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MVP까지 한번 더 수상받았습니다. 86 시즌 포항으로 이적해서 또 다시 리그 타이틀을 거머쥔 박성화는 KFA 올해의 팀 7회 선정,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2년 뒤 아시안컵 준우승에 기여하지만 86 월드컵엔 부상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10위
조영증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54년 8월 18일
주요 클럽:포틀랜드 팀버스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A매치 113경기 1골
1978, 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등이 뛰던 동시대 북미 리그 최고의 수비로까지 여겨졌던 남자. '코끼리'라 불렸을 만큼의 뛰어난 몸싸움과 지능적인 커팅, 후배 홍명보에 버금가는 롱패스, 오버래핑 실력을 보여 잠깐 공격수로 뛰며 K리그에서 6경기 연속골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77년 KFA 올해의 선수상을 타며 81년 포틀랜드 팀버스라는 미국 클럽으로 진출한 조영증은 당시 베켄바워, 조지 베스트, 요한 크루이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등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황혼기를 끌어모으던 북미 리그에서 82 시즌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후에 국내로 복귀해선 어나더 클래스로 럭키 금성의 85년 리그 우승을 도왔던 그는,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도 2번의 아시안게임 우승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끌었고 86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9위
김호곤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51년 3월 26일
주요 클럽:서울신탁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120경기 5골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FIFA에서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오세아니아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린 전설적인 수비수. 김호곤은 키는 좀 작았지만 엄청난 스피드와 빼어난 공격 가담, 대인 마크 능력, 특히 불굴의 정신력을 자랑했었습니다.
실업 리그의 서울신탁은행에서 주로 활약했던 그는 1975년 FA컵의 전신인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며 KFA 올해의 선수로 뽑혔으며 커리어 총합 무려 KFA 올해의 팀에 8시즌이나 뽑히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붉은 악마 군단의 품에서 김호곤은 1972 아시안컵 준우승,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냈으며 여담으로 후자의 대회에선 북한과 공동 우승으로 시상대에 올랐는데, 북한 선수 한명이 밀어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음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올라가 어깨동무하는 대단한 멘탈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8위
김태영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70년 11월 8일
주요 클럽:전남 드래곤즈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105경기 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맹활약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명. 겁없는 파이터 기질로 공격수를 사냥하는 스타일 때문에 미국 원주민 부족인 '아파치'라는 이명도 얻었던 김태영은 빠른 발과 양발 사용 능력으로 인해 윙백까지 볼 수 있었던 보물같은 자원이기도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고향팀이자 신생팀인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모든 커리어를 보낸 그는 부진하던 팀 상황에도 끝까지 남아 1997년 구단 최초의 FA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99 시즌의 위너스컵 준우승, 02년과 03년에 본인은 K리그 베스트 11에까지 드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1998 WC와 02 WC에 참가했던 김태영은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 최진철, 홍명보와 백3 라인을 구성해 조국의 4위라는 성적을 이끌었으며 특히 16강에서 코뼈가 뿌러지는 부상에도 다음 경기에서 타이거 마스크를 끼고 출전을 감행한 투혼은 곧 그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가 되기도 했습니다.
7위
최진철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7cm
생년월일:1971년 3월 26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3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65경기 4골
2002 FIFA 월드컵 4강
홍명보, 김태영과 같이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책임졌던 듬직이 센터백. 최대 장점은 장신을 이용한 헤더와 포스트플레이, 특히 헤딩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며 발이 느렸음에도 날카로운 태클과 영리한 위치선정으로 이를 커버했습니다.
대학 진학 후 상무로 군입대 때문에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로 데뷔했지만 최진철은 전북 현대의 방패로서 12년간 원클럽맨으로 헌신한 터에 클럽은 3차례의 FA컵 우승. 1차례의 리그컵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3차례의 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6년 아챔 우승 당시에는 MVP까지 선정되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2002 월드컵에서도 전설을 써내려갔던 최진철은 크리스티안 비에리,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을 상대로 준수한 수비력을 보였으며 다음 06 월드컵에서도 36세라는 최고참의 나이로 참가해 원정 첫승에 이바지한 바 있습니다.
6위
김영권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90년 2월 27일
주요 클럽:광저우 에버그란데
주요 커리어
중국 슈퍼 리그 우승 5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중국 슈퍼컵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111경기 7골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탑레벨의 중앙 수비수. 준수한 주력, 매우 뛰어난 왼발을 이용한 빌드업 능력을 가졌고 지적받던 수비력도 뛰어난 각좁히기, 맹렬한 태클 등 후에는 비약적으로 상승했었습니다.
그는 당시 아시아의 맨시티로 불리던 광저우에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무한 신임을 받아 6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아챔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5년의 경우 챔스 올해의 팀과 함께 KFA 올해의 선수로 뽑혔습니다. 이후 일본을 거쳐 울산에서도 리그 2연속 우승을 견인하고 23 시즌 리그 MVP까지 받은 김영권은,
국대에서도 한 때 자동문으로 불리며 안좋은 폼만 보였지만 2018년 월드컵에서는 각성하며 통곡의 벽을 보였고 독일전 승리의 결정적 골을 기록, 다음 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전 결정적인 골로 16강행에 아주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 김영권은 레알-맨유-바르샤 급이다. 절대 이적시킬 수 없다. "
- 마르첼로 리피 -
5위
김호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44년 11월 24일
주요 클럽:제일모직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A매치 84경기 0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김정남과 함께 한국 축구사에 남을 수비 파트너십을 선보였던 일류급 센터백. 원래는 빠른 발을 가져 라이트백으로 뛰었으나 김용식 감독 아래서 김정남과 같이 센터백 듀오를 보게 된 그는 장기이던 헌신 있는 수비 스타일과 송곳 같은 슬라이딩 태클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K리그 창단 이전, 실업 리그에서 뛰며 1969년에는 우수한 모습으로 KFA 올해의 선수상까지 탔던 김호는 호랑이 군단의 믿음직한 방패로 상대 공격수들을 처단하면서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년 뒤 아시안컵에서는 결승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 준비가 99%, 운이 1%다. "
- 김호 -
4위
김정남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43년 1월 28일
주요 클럽:한국외환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A매치 66경기 0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한명. 빠른 발을 이용한 영리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 발류의 공격 가담 등이 장점인 스위퍼로 특히 김호와 스위퍼 - 스토퍼 조합의 훌륭한 케미를 발산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3차례의 KFA 올해의 팀, 1971년 KFA 올해의 선수로 뽑힌 김정남은 2번의 컵 대회 우승과 막강한 멤버들이 강제로 모여졌던 양지 축구단 소속으로 1969년 아챔의 전신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그의 수비력에 힘입은 대표팀은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더해서 2010년, 축구 잡지 베스트 일레븐이 뽑은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에 홍명보와 같이 센터백으로 선정된 김정남이었습니다.
3위
정용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0년 2월 10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86경기 3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홍명보 등장 이전까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수비로 여겨지던 인물. 근련 운동은 축구 선수에게 해가 된다는 기성 세대의 잘못된 지도에도 개인 훈련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적극 시도해 얻게 된 초인적인 점프 능력과 철인의 대인 방어력으로 거구의 외국 공격수들 상대로 전혀 안밀렸던 정용환은 이런 성실한 태도와 노력으로 K 리그 원탑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대우 로얄즈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뛴 그는 당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멤버들을 지휘하며 3번의 K리그와 198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더해서 개인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3번의 리그 베스트 11, 1991 시즌의 MVP 등을 이뤘냈습니다. 이런 정용환은 국대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가 2차례의 월드컵 본선 진출, 1988 아시안컵에서 올스타팀에 드는 모습으로 팀을 결승에 올린 바 있습니다.
2위
김민재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90cm
생년월일:1996년 11월 15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A매치 63경기 4골
2020년대를 대표할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역대급 괴물 센터백. 강골의 몸싸움과 짐승같은 스피드, 지능적인 인터셉팅과 태클까지 선보이면서도 안정적인 빌드업까지 보일 수 있는 그는 이러한 기량들을 통해 아시아인 수비수, 그것도 센터백으로서 유럽 최상위 리그를 씹어먹는 전례없는 활약을 해냈습니다.
전북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2연속 우승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간 김민재는 이런 탈아시아급 활약을 인정받아 베이징 궈안을 거쳐 터키의 페네르바체로 이적해서도 2021/22 시즌 리그 준우승과 올해의 팀에도 선정, 다음 시즌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서도 리그 최우수 수비수 타이틀을 달고서 마라도나 시대 이후 33년만인 스쿠데토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대표팀에서의 김민재도 201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 다음해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본인은 대회 올스타팀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 무너지지도 않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벽 "
- 나폴리 매거진 -
1위
홍명보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1cm
생년월일:1969년 2월 12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J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136경기 10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한국 축구의 '영원한 리베로'로 남아있는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드넓은 시야, 정교한 롱패스, 기습적인 전진 플레이를 바탕으로한 후방 빌드업, 호쾌한 중거리 슛팅 한방이 최대 장점이던 그는 피지컬이나 스피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우수한 예측력과 판단력으로 커팅, 커버링하는 수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홍명보는 K 리그의 포항과 J 리그의 가시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각 1번의 리그, FA컵,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1992년 데뷔 시즌 최초로 MVP를 수상, 또 K 리그 베스트 11에 5차례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는 10년 넘게 붙박이로 뛰며 4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완장을 차고 뛰어난 폼으로 4강 신화를 써내려갔고 그의 활약상을 인정해 FIFA는 브론즈볼과 대회 올스타팀에 그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특히 스페인전, 4강 진출을 확정짓는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활짝 웃는 장면은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중 명장면입니다.
" 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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