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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20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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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

박남열 한국

박남열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70년 5월 4일

주요 클럽:성남 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6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19경기 1골

신태용과 같이 K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팀을 만들었던 명 미드필더. 부드러운 테크닉과 패스, 뛰어난 체력으로 중원을 꽉 채웠던 박남열은,

 

기대받는 신인으로서 일화 천마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를 신고했고 막강한 멤버들과 같이 바로 리그 3연속 우승 트로피와 1995년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해냈습니다. 그는 박종환 감독이 떠나자 상무에 입대했다가 다시 돌아와 성남 2기 시절의 전성기를 견인해서도 3연속 리그 우승을 맛봤습니다. 여담으로 단짝이었던 파트너 신태용과 만들어낸 듀오 득점 17골은 리그 역대 2순위이기도 합니다.

 

19위

윤빛가람 한국

윤빛가람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90년 5월 7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15경기 3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0년대 초중반 혜성처럼 등장했던 '유럽 못 간 천재'. 우수한 시야를 바탕으로 한 탁월한 킬패스를 뿌리는데 제일 능했던 선수였으며 테크닉과 볼컨트롤 역시 당대 유망주들 중 단연코 최고라는 평가를 들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경남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 허나 선수 동의가 없는 구단끼리의 이적으로 억지로 성남으로 이적하게되었고 윤비트 역시도 태업 의심을 보이는 활약을 하며 비판받았습니다. 허나 클래스는 정말 남달랐는지 제주, 중국을 거쳐서 이적한 울산에서는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2차례의 챔스 베스트 11에 들어갔으며 2020 아챔 우승 당시에는 4골 3어시로 MVP로 뽑혔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국대에 승선해 2011 아시안컵 8강에서 연장전 이란을 잡는 결승골도 넣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후에는 커리어가 꼬이며 오랜 기간 동안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18위

황진성 국대

황진성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84년 5월 5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FA컵 우승 3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2경기 0골

 

2000년대 포항의 프랜차이즈스타로 활약했던 '황카카'. 한국 축구에선 이질적인 별명 그대로 다이나믹한 드리블 돌파와 스피드, 훌륭한 키패스를 자랑해 정말 카카 같은 플레이를 펼쳤으며 잔부상을 달고 살았단 점도 비슷했습니다.

 

그는 따바레즈, 데닐손, 스테보 같은 용병 공격진들을 보좌하면서 포항의 공격을 진두지휘했고 2차례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FA컵, 2009년에는 아챔 우승까지 기여한 바 있습니다. 2008년 FA컵 결승에선 결승골까지 넣었던 황진성은 기복이 있었던 선수였지만 12년에는 K리그 최우수 미드필더, 열댓명에 불과한 40-40 클럽에 가입하기도 한 명실상부 레전드입니다.

 

17위

남태희 한국

남태희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91년 7월 3일

주요 클럽:알 두하일 SC

주요 커리어

카타르 스타스 리그 우승 7회

카타르 컵 우승 5회

A매치 27경기 7골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카타르 리그 역사에 남을 활약을 남긴 테크니션인 '카타르 메시'. 긁히는 날에는 막을 수가 없는 유려한 드리블 돌파와 기회 창출, 가차 없는 왼발 킥 등으로 유명했지만 약한 압박 대응과 공격 전권을 맏겨야 제 몫을 한다는 단점 또한 있었습니다.

 

남태희는 프랑스 리그 1에서 기대를 모으며 어린 나이에 뛰었지만 더 큰 무대로 도전이 아닌 카타르 리그로 이적을 택했으며 그곳에서 엄청난 활약상으로 알 두하일과 알 사다라는 팀에서 뛰면서 7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2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2번의 리그 올스타, 2017년 리그 MVP까지 따냈던 그는,

 

국대에선 2015 아시안컵 준우승에 기여도 하는 등 월드컵 이전까지는 항상 대표팀 감독들의 부름을 받으며 중용되는 듯 했으나 항상 마지막 고비를 넘지못하고 엔트리에서 탈락하여 단 한번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16위

최문식 한국

최문식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71년 1월 6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37경기 9골

 

안정환 이전에 활약했던 1990년대 한국 축구사에 남을 명 테크니션. 개인기만 보면 대한민국 축구사 역대 최고라고 볼 수 있을 만큼 화려하고 우아한 드리블을 선보였으며 특히나 사포에 능했던 최문식은 '효창의 마라도나'라고 불렸습니다.

 

포항의 믿을맨으로 오랜 기간 활약했던 그는 스틸야드 개장 후 첫골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그의 활약 덕에 포항은 1992년 리그 트로피와 96년의 FA컵 트로피를 구단의 진열장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상주 상무의 군복무로 인해 첫 아챔 우승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제대 후 1997/98 시즌엔 2번째 챔스 우승을 도우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팀을 떠났습니다.

 

전남으로 이적해서도 활약한 그는 국가대표팀의 품에서 1994 월드컵에도 참여했으나 아무래도 쓰기 힘든 유형의 선수였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15위

김보경 한국

김보경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89년 10월 6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EFL 챔피언십 우승 1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FA컵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38경기 4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박지성의 후계자로 불리며 EPL 진출까지 이뤄냈던 테크니션. 볼을 굉장히 잘다뤄 좁은 지역에서 빠져나오는 탈압박 스킬과 동료를 포착하는 공간패스 배급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던 김보경이었습니다.

 

그는 J리그에서 2부였던 카디프 시티로 소속팀을 옮긴 뒤 2012/13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후 저무는듯 했으나 K리그로 돌아와서는 전성기를 다시 알리며 전북 소속으로 각 2번의 리그와 컵, 2016년의 아챔 우승을 얻어냈으며 한시즌 임대갔던 2019 시즌의 울산 시절에는 리그 MVP까지 받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허나 대표팀에서는 영 시원찮은 활약만 보이며 2014 월드컵의 부진의 큰 주역 중 한명으로 대차게 까여 국대와는 멀어졌습니다.

 

14위

이흥실 한국

이흥실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68cm

생년월일:1961년 5월 28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A매치 9경기 0골

 

테크닉의 불모지였던 1980년대 한국 축구가 자랑하던 공격형 미드필더. 작은 신장을 커버하는 굉장한 수준급의 드리블과 스피드, 좌우로 벌려주는 훌륭한 롱패스와 본인이 직접 득점하는 능력까지 장착했었던 이흥실은 '탱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1985년 포항의 유니폼을 입자마자 바로 신인상을 거두었으며 총 3차례의 리그 우승과 5번의 K리그 올해의 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89년 도움왕에 빛나는 그는 특히 1986년에는 구단에게 첫 리그 트로피를 선사하며 리그 전체 MVP를 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허나 리그 내 명성에 비해서 대표팀에서 중용받지 못한 이흥실은 1990 월드컵에 나와 1경기를 출장한 바 있습니다.

 

13위

박병철 한국

박병철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54년 11월 25일

주요 클럽:해군 축구단

주요 커리어

A매치 55경기 7골

조광래라는 전설적인 미드필더에 앞서서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던 미드필더. 정교한 킥을 바탕으로 위협적인 패스와 슛을 쏘던 터에 세트피스를 도맡아찼던 인물이며 피지컬이 좋아 롱스로인에도 능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K리그 창설 이전인 실업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KFA 올해의 팀에 3차례나 들어갔던 박병철은 이런 뛰어난 실력에 보루시아 베를린이라는 당시 분데스 팀이 그를 노렸지만 아쉽게 군문제로 이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홍콩 리그에 가서도 활약했던 그는 특유의 독불장군적인 성격 때문에 숙소 무단이탈 등 대표팀에선 감독과의 마찰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못했습니다.

 

12위

이차만 한국

이차만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50년 9월 30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50경기 6골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0년대 초중반 한국 축구 제일의 공격형 미드필더. 영리한 연계 플레이와 움직임으로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도 이차만은 뛰어난 체력과 악바리 근성을 가져 방한했던 에우제비우나 펠레를 대인 마크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와서 상대 에이스를 묶는 플레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포항제철 축구단이 주요 클럽인 그는 각 1번의 실업 리그와 컵 대회 우승을 주도했으며 1971년과 72년에는 KFA 올해의 팀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고재욱, 황재만 같은 당시 뛰어났던 선수들과 중원에서 손발을 맞춰봤으며 이차만은 1972 아시안컵에서 이란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결승에 오르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11위

윤정환 한국

윤정환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73년 2월 16일

주요 클럽:부천 SK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40경기 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축구를 수놓았던 천재 플레이메이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킥 감각과 더불어 훌륭한 패스와 시야를 가졌고 테크닉까지 뛰어났던 윤정환이었으나 피지컬이 약하다는 단점이 커리어 내내 발목을 잡아왔습니다.

 

그는 당시 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해 당시 리그 내 다른 클럽들과 다르게 센세이션하고 재밌는 패스 축구를 했던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1996년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후에 세레소 오사카 이적했으나 노정윤에 밀려서 후보 신세, 결국 2003년 성남으로 돌아와서 역대급 포스의 팀의 리그 우승을, 전북에서 05 시즌 FA컵 우승을 돕고 은퇴했습니다.

 

허나 국대에서는 1990년대 후반 크로스 위주의 실리적인 축구를 하던 당시 대표팀 중원을 꿰차기엔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그의 자리는 없었고 이는 2002년 월드컵 히딩크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0위

김두현 한국

김두현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82년 7월 14일

주요 클럽:성남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FA컵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62경기 12골

2007 AFC 아시안컵 3위

2000년대 한국 축구 최고의 미드필더 가운데 한명. 완벽에 가까운 양발에서 나오는 정교한 패스와 대포알 중거리를 쏘면서도 많이 뛰어다니며 필드를 커버해 공격형 미드필더 외에도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뛸 수 있었습니다.

 

'꾀돌이' 김두현은 수원 삼성의 최전성기 당시 고종수의 서브로 활약했으며 그의 장기 부상 이후에는 주전 자리를 뺐고 2004년 리그 올해의 팀에도 들었습니다. 차범근 감독 밑에서는 측면만 뛰었기에 불만을 표하며 성남으로 무대를 옮기고서도 2006년 리그 우승, 본인은 MVP까지 타는 기염을 토했고 결국 잉글랜드의 WBA로 임대가는데 성공했지만 초반 좋은 활약에도 부상과 군문제로 얼마안가 다시 복귀하고 말았습니다.

 

국대에서도 그는 2006 월드컵과 07 아시안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김정우, 이호 등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에 밀려 선발자리를 뺐기고 말았습니다.

 

9위

신태용 한국

신태용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69년 5월 26일

주요 클럽:성남 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6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23경기 3골

대한민국 K리그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로 꼽히는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은 발군의 볼컨트롤과 패스 센스를 통해서 어시스트를 창출하면서도 영리한 움직임을 통해 직접 득점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던 공격형 미드필더였습니다.

 

사실상 모든 커리어를 성남 일화에서만 보낸 그는 최전성기 당시의 에이스로서 엠블럼의 페가수스와 함께 날아올랐고 1기 시절의 신의손, 고정운, 이상윤 등과 함께 3연속 리그 우승, 1995 시즌 아챔 우승을 이뤘으며 2기 시절에는 김도훈, 샤샤, 김상식 등과 함께 3연속 리그 우승, 2회의 리그컵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K리그 역대 최고의 팀을 만든 신태용은 2번의 리그 MVP, 1번의 득점왕, K리그 최초의 60-60 클럽 가입, 그리고 리그 베스트 11 9회 선정은 아직까지도 안깨진 전무후무의 대기록입니다.

 

허나 이런 K리그의 전설임에도 국대에서는 플레이스타일상 대표팀의 조직력에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는지 1994 월드컵을 후보로 경험한 뒤부터는 아예 부름을 받지 못하고 국대 커리어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 "
- 신태용 -

 

8위

황보관 한국

황보관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5년 3월 1일

주요 클럽:유공 코끼리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37경기 10골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국대의 대표 미드필더로 불리운 '캐논 슈터'. 별명 그대로 어마무시한 파워의 중거리 슛팅, 프리킥 골에 능했으며 당연 준수한 드리블과 패스로 어시스트도 잘했습니다.

 

황보관은 서울대 출신으로 1988년에 유공 코끼리 소속으로 데뷔했으며 마수걸이 시즌에 신인상과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다음 시즌 유일한 구단의 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94년에 한번 더 리그컵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이후 J리그의 오이타 트리니타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다 은퇴한 황보관은,

 

국가대표팀의 붉은 셔츠를 입고서 1988 아시안컵 준우승, 1990 월드컵에서는 스페인의 안도니 수비사레타 골키퍼를 상대로 한 때 월드컵 역대 최고 시속골이었던 114km/h짜리 중거리포로 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7위

고종수 한국

고종수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79년 10월 30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4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38경기 6골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해 한국 축구를 이끌어나갈 천재로 평가받았던 '앙팡테리블'. '고종수 존'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정교한 프리킥 실력과 첨예한 패스, 교묘한 드리블 기술과 준수한 득점 능력 등으로 많은 팬들을 모았던 선수입니다.

 

당시 K리그 최고의 스타로 이동국, 안정환과 '트로이카'를 구성했던 고종수는 수원의 황금 시대를 밀고나가며 3번의 리그 우승과 2연속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 2연속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한편, 1998 시즌에는 만 20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MVP까지 따내며 역대 최연소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허나 2001 시즌 도중 당한 십자인대 부상과 부족했던 자기관리로 인해 폼이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고 수원을 떠나면서 그 불꽃은 완전히 꺼지고 말았습니다.

 

국대 역대 최연소 골의 주인공이자 실패한 1998 월드컵에서도 분투했었으며 '히딩크의 황태자'라 불린 그였지만 상술한 부상으로 인해 02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집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실패라는 상처 위에 인내라는 약을 발라 노력이라는 붕대를 감는다면 성공이라는 흉터가 남는다. "
- 고종수 -

 

6위

박상인 한국

박상인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52년 11월 15일

주요 클럽:할렐루야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71경기 16골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한국의 요한 크루이프'라 불리웠던 당대 국내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뛰어난 드리블 테크닉과 더불어 탄탄한 몸싸움, 우수한 패스길을 보는 시야를 가졌었던 박상인이었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뛰면서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기여와 더불어 무려 KFA 올해의 팀에 5차례나 뽑혔던 분명 탑클래스 선수였고 이에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와 이적 직전까지 갔지만 취업비자가 발급이 안되며 무산되었고 결국 분데스의 뒤스부르크로 이적해서도 부상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30대가 넘는 나이에 국내 리그에 복귀해서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1983 시즌 초대 리그 우승을 주도, 85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5위

이영무 한국

이영무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65cm

생일:1953년 7월 26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85경기 27골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박지성에 버금가는 왕성한 체력을 자랑했던 당대의 A급 공격형 미드필더. 특출난 테크닉이나 피지컬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스태미너 만큼은 정말 역대에서도 손에 꼽힐 수준이었으며 스트라이커 바로 한칸 아래에서 뛰던 미드필더였지만 사실상 박스 투 박스 수준의 영향력을 보였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기도 셀레브레이션'을 시그니쳐로 삼았던 이영무는 KFA 올해의 팀만 6번, 대표팀에서도 무려 85경기를 소화해냈으며 1978 아시안 게임의 금메달과 1980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올스타 선정, KFA 올해의 선수상 등으로 그 보상을 받았습니다.

 

4위

박창선 한국

박창선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54년 2월 2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3회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32경기 8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FIFA 월드컵 본선 대한민국 제1호골의 주인공. 박창선은 양발로 뿌리는 정확한 패스와 슛팅 능력, 감각적인 드리블 탈압박, 저돌적인 돌파 등으로 당대 한국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인물입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전성기를 뒤늦게 봤었던 그는 포스코에서 2번의 리그 MVP 수상과 1980년 실업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슈퍼리그 창설 이후에도 할렐루야 축구단의 초대 우승을 도움왕으로서, 다음 시즌 대우의 리그 우승을 MVP로서 견인한 바 있습니다. 85/86 시즌의 아챔 우승, KFA 올해의 팀 3회 선정에 빛나는 박창선은,

 

1986년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월드컵 무대에 들어섰고 아르헨티나전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폼으로 FIFA가 선정한 세계 올스타에 들기도 합니다.

 

3위

이재성 한국

이재성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92년 8월 10일

주요 클럽:1. FSV 마인츠 05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4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90경기 11골

 

201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2선 미드필더라고 볼 수 있는 인물. 박지성처럼 뛰면서 이청용처럼 드리블한다라는 표현에 더불어 A급의 탈압박과 패스, 영리한 축구 지능으로 여러 포지션을 다 소화가 가능한 이재성은,

 

전북 현대에서 프로로 데뷔해 2015년 신인상을 시작으로 전북셀로나라고 불린 구단 최전성기의 에이스로 부상하였고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016년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대업까지 이뤄냈습니다. 리그 베스트에 3연속으로 뽑히고 2017년에는 MVP에 뽑히는 기염을 토한 그는 결국 독일 2부였던 홀슈타인 킬을 거쳐 1부의 마인츠에서 핵심으로 다년간 뛰고 있습니다.

 

이재성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품에서도 10번을 달고 2차례의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2022년에는 2번째 원정 16강에 공헌했습니다.

" 이재성 없는 마인츠 05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는 팀에 꼭 필요한 선수여서 우리는 재계약을 시도할 것이다. "
- 마인츠 감독, 보 스벤손 -

 

2위

구자철 한국

구자철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89년 2월 27일

주요 클럽:FC 아우크스부르크

주요 커리어

A매치 76경기 19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10년 가까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었던 21세기 한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화려한 볼터치 능력과 탈압박, 감각적인 찬스 메이킹 능력, 많은 활동량과 2선 침투로 골까지 집어넣던 그는,

 

어린 나이에 K리그를 씹어먹는 모습으로 제주를 리그 2위에 올려놓은 뒤 분데스리가로 진출, 볼프스부르크와 마인츠를 거쳐 클럽 레코드로 이적한 아우쿠스부르크에서는 정말로 구단 역대 베스트 XI에 들어갈 만한 활약을 보이며 하위권이던 팀의 호성적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2015/16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키커 랑리스테 선정 공격형 미드필더 5위의 평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도 구자철은 2011년 아시안컵에서 5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1년 뒤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참가했고 3.4위전 골을 비롯한 뛰어난 활약으로 동메달을 목에 거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 지금까지 달려온 내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내 자신도 믿는거야. "
- 구자철 -

1위

김주성 한국

김주성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6년 1월 17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독일 2. 분데스리가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3회

A매치 76경기 14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당대 아시아의 슈퍼 스타.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휘날리며 미친듯이 뛰어다녀 '삼손' 혹은 '야생마'로 불리웠던 김주성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능력으로 윙어로 축구를 시작했으며 패스 센스까지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성기를 보냈고 집념의 수비력으로 말년에는 리베로까지 봤었던 만능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습니다.

후에 분데스리가의 보훔으로 이적해 뛴 것만 제외하면 그는 대우 로얄즈 소속으로 모든 커리어를 보내며 3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리그컵을 주도, 더불어 말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리베로로 뛰면서 김주성은 최초로 K리그에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모두 올스타에 들었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위대한 활약상에 대우 로얄즈는 리그 최초로 김주성의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그는 특히 차붐이 은퇴한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로 3번의 월드컵에 본선 진출했으며 1988년 아시안컵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 MVP에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1989년부터 91년까지 받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3연속 제패는 아직까지도 안깨진 불멸의 기록입니다.

" 제 이름을 지우기 시작한 선수예요. "
- 최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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