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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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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

송주석 한국

송주석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67년 2월 26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A매치 2경기 0골

 

K리그 역대 최다 퇴장에 빛나는(?) 울산 현대의 위대한 원클럽맨.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와 크로스로 이름을 떨쳤으며 득점 능력까지 장착해 커리어 말미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1990년대 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평가받던 송주석은,

 

1990년, 현대 호랑이 유니폼을 입은 첫시즌부터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누적 1차례의 리그 우승과 각 2차례의 리그 준우승,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허나 그는 워낙에 다혈질 성격이라 더티 플레이 및 도발에 잘넘어가 보복성 플레이를 종종 했으며 이 때문에 5회로 역대 최다 퇴장 기록을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19위

최상국 한국

최상국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73cm

생년월일:1961년 2월 15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A매치 18경기 8골

 

1980년대 포항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한국 축구의 수위급 라이트 윙어. 공격의 여러 자리를 봤지만 특유의 페인팅, 드리블 돌파와 크로스를 보이는 윙어에서 빛났고 특히 득점도 꽤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최상국은 포항 유니폼을 입고서만 뛴 원클럽맨이고 총 2번의 리그 챔피언의 자리에 앉았는데 특히 1987년은 리그 준우승에 그쳤지만 태국의 피야퐁에 이은 역대 2번째로 리그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차지한 인물이 되는 커리어 고점을 보였으며 이는 30년이 넘게 지난 아직까지도 안나온 마지막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한 1984 아시안컵과 88 올림픽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18위

최태욱 한국

최태욱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3cm

생년월일:1981년 3월 13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5회

A매치 30경기 4골

 

이천수와 같이 한 때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렸던 라이징 스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스피드와 뛰어난 중거리 슛팅 능력, 우수한 멀티성으로 왼쪽 윙어 외에도 오른쪽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백까지 소화했습니다.

 

안양, 인천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였고 거액으로 J리그에 간 이후에는 실패하며 몰락하는 듯 했으나 전북에서는 2009년 최강희 감독 아래 부활에 성공하며 루이스, 에닝요, 이동국과 '판타스틱 4'로 불리며 구단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서울로 이적해서도 2번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던 최태욱은 어린 나이부터 대표팀에 승선했었지만 이후에는 슬럼프를 거듭하며 멀어지고 말았씁니다.

 

17위

권창훈 한국

권창훈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94년 6월 30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43경기 12골

 

차범근, 박주영, 손흥민에 이어 유럽 리그 단일 시즌 10골을 기록했던 윙포워드.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와 센스있는 볼컨트롤, 연계, 패스와 크로스를 찔러넣는 기막힌 타이밍 등을 토대로 본인의 장점을 살렸던 그는 잦은 부상과 탐욕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매탄고 최고의 아웃풋로 불리는 권창훈은 2015 시즌과 16 시즌의 리그 2연속 베스트 일레븐 선정으로 리그 탑급 선수로 거듭났고 마지막 시즌에는 FA컵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디종으로 떠난 그는 프라이부르크를 거쳐서 후에 군복무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친정팀에 복귀했으나 전역 후 강등당한 팀을 외면하고 전북으로 이적하며 팬들의 금지어가 되버렸습니다.

 

폼이 제일 좋았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부상으로 날려버렸고 다음 카타르 월드컵에선 부진하며 권창훈은 조별예선 가나전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했습니다.

 

16위

박태하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8년 5월 29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11경기 7골

 

포항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2연속 우승의 주역이었던 강철전사의 날개. 빠른 발과 공격수들을 지원하는 정교한 크로스, 그리고 꾸준함과 성실한 자기관리가 가장 빛났던 선수였습니다.

 

박태하는 원래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던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무명 선수 출신이었으나 1991년 이회택 포항 감독의 지명으로 구단에 입단, 비범한 발전으로 그는 1년만인 92년 리그 우승을 이끌며 무려 MVP로 올라섰으며 황선홍, 라데, 홍명보 같은 멤버들과 후에 추가로 FA컵 우승과 2연속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룩하고는 포항이 아니면 의미없다는 말과 함께 원클럽맨으로 은퇴하는 전설을 작성했습니다.

 

15위

정규풍 한국

정규풍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47년 8월 2일

주요 클럽:국민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A매치 42경기 19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60년대 후반 ~ 70년대 초중반 한국 축구의 왼쪽 공격을 책임진 바람돌이 윙어. 매우 빠른 스피드와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 후에 올리는 양발잡이 크로스, 슛팅이 뛰어났다고 전해지며,

 

국민은행과 양지 축구단에서의 활약이 도드라졌던 정규풍은 실제로 대한축구협회가 뽑는 KFA 올해의 팀에 1971년과 73년, 명단에 포함되는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박이천, 김재한, 이회택 등과 호흡을 맞췄던 그는 1970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으며 1974 WC 예선에서는 최종전까지 갔으나 아쉽게 호주에게 패해 월드컵에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14위

김대의 한국

김대의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74년 5월 30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3회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13경기 3골

 

2000년대 초중반 K리그의 얼굴과도 같았던 왼쪽 윙어. 강력한 몸싸움과 폭발적인 스피드로 왼쪽 측면을 파는 플레이에다가 직접 골넣는 감각이나 활동량도 워낙 뛰어나 중앙 포워드나 레프트백까지 봤던 선수였습니다.

 

대학교 4학년 당시 드래프트 거부로 인해 연맹으로부터 프로 자격 3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음에도 실업 리그와 J리그를 돌며 실력을 쌓고 다시 성남 일화로 프로에 복귀한 김대의는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며 리그 3연속 우승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2002년 당시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MVP로 까지 뽑혔던 그는 후에 수원으로 이적해서도 바로 리그 우승을 하면서 최초로 K리그 4연속 우승, 한번 더 리그 베스트 11에까지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2008년의 리그 우승을 더해 5개의 트로피를 더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13위

정병탁 한국

정병탁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3cm

생년월일:1942년 3월 14일

주요 클럽:서울신탁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A매치 39경기 11골

1964 AFC 아시안컵 3위

 

대한민국 축구 명 윙포워드 계보의 시작과도 같은 남자. 빠른 발을 이용한 좌측면 질주와 크로스를 지녔으며 특히 그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는 연구파 축구선수의 센스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결성한 당시 한국 축구 최고의 팀 양지 축구단의 멤버로 스카우팅되었던 정병탁은 1969년의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결승행에 일조했으며 서울신탁은행 축구단으로 소속을 옮겨서도 71년의 실업 리그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그는 1964 아시안컵 3위를 함께 했던 멤버이기도 했으며 1970년엔 국가대표 1진 청룡의 초대 주장에 선임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12위

김진국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65cm

생년월일:1951년 9월 14일

주요 클럽:중소기업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A매치 97경기 27골

 

차범근에 이어서 2번째로 독일에 진출했던 한국의 명 윙포워드. 체구는 굉장히 작아 약점으로 꼽혔지만 양발을 이용한 심리전과 슛 페인팅, 재빠른 드리블 돌파를 보여줬던 1970년대 중반 한국 최고의 윙어였습니다.

 

2번의 실업축구연맹전 우승을 이끌었던 김진국은 특히 75년에는 리그 MVP 선정, 후에 2차례의 KFA 올해의 팀에 더 들었으며 결국 1980/81 시즌, 차범근이라는 용병의 맛을 봤던 2부에 있던 다름슈타트가 그를 영입해 한시즌간 뛰기도 했습니다. 김진국은 대표팀에서도 1972 아시안컵 준우승에 기여, 뛰어난 리더십으로 주장완장도 몇차례 찬 바 있습니다.

 

11위

이상윤 한국

이상윤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79cm

생년월일:1967년 4월 10일

주요 클럽: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29경기 12골

 

'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1990년대 일화 천마의 명 윙포워드. 피지컬은 일반인으로 봐도 왜소한 편이었지만 무지막지한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특히나 박스 안에서의 센스 있는 움직임과 위치 선점 능력 덕에 골도 많이 기록했던 인물이었습니다.

 

1990년에 프로 데뷔를 성남 소속으로 시작했으며 10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던 이상윤은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최전성기 공격의 한 축으로서 3연속 리그 우승과 각 1번의 FA컵, 리그컵,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경험했던 그였습니다. 이상윤은 1993년 리그 MVP, 2차례의 리그 베스트 11에 들었지만 이적 요청을 했다가 박종환 감독에게 찍혀 한동안 주전에서 밀려나 있기도 했습니다.

 

황선홍, 서정원, 고정운 등의 짱짱한 멤버에 밀려 대표팀에서는 주전은 아니었지만 그는 2차례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기도 합니다.

 

10위

염기훈 한국

염기훈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83년 3월 30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3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57경기 5골

2007 AFC 아시안컵 3위

 

대한민국 프로 축구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윙으로 평가받는 일명 '왼발의 지배자'. 떨어지는 오른발 능력치와 평범한 스피드, 돌파력을 가졌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왼발킥으로 만들어내는 크로스, 슛팅과 뛰어난 볼키핑으로 플레이메이킹을 하는데 능했던 선수였습니다.

 

전북에서 2006년 아챔 우승을 이끌며 수원으로 넘어왔던 그는 구단 역대 최다 득점, 출장, 도움 1위를 찍으며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과도기를 겪던 당시 구단의 에이스 중 에이스로서 활약하며 2차례의 리그 준우승과 3차례의 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시즌, FA컵 MVP에 2회 선정된 염기훈은 수원 역대 최장 기간 주장까지 역임했으며 40세까지 현역을 유지하며 K리그 전체 레전드 반열까지 올라있습니다.

 

2010 월드컵에서는 준수한 활약으로 16강행에 기여했지만 팬들에게는 아르헨티나전의 '왼발의 맙소사' 이미지가 각인되어있으며 18 월드컵을 앞두고도 황혼의 나이에 본선행을 노렸지만 부상으로 이탈하는 아쉬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9위

변병주 한국

변병주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61년 4월 26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68경기 10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총알'이라 불렸던 1980년대 한국 축구의 얼굴과도 같던 스피드 러너. 100m를 11초에 끊는 엄청난 가속력과 민첩한 드리블 전환, '컴퓨터 발'로 불렸을 만큼 뛰어난 크로스와 슛으로 이름을 날린 변병주였습니다.

 

연세대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히고 1981년에는 KFA 올해의 팀까지 들었던 그는 졸업 후 대우 로얄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한 변병주는 막강한 멤버들, 이를 테면 정용환, 조광래, 이태호 같은 구단 최전성기의 일원이었으며 2차례의 K리그 우승, 1986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따내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국가대표팀의 품에서도 그는 1986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었으며 같은 해 아시안 게임 금메달 당시 결승골을, 1988년 아시안컵 조별예선 이란전에서의 멀티골로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의 업적을 낳았습니다. 

 

8위

이천수 한국

이천수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81년 7월 9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2회

KNVB 베이커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A매치 78경기 10골

2002 FIFA 월드컵 4강

2007 AFC 아시안컵 3위

 

아시아 축구를 씹어먹고 다녔던 한국 축구 최고의 풍운아. 아시아 역대 최고 수준의 데드볼, 직접 프리킥 처리 능력과 우수한 드리블 전환과 가속을 가졌던 이천수는 2000년대 초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여겨지던 기간도 있었습니다. 물론 소홀한 자기관리와 기행적인 멘탈로 기대만큼 성장이 안되었지만,

 

2002년 울산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신인상, 도움왕, 베스트 11에 포함되는 엄청난 폭격을 보였으며 03시즌 도중 소시에다드로 갔다가 실패해 2005년 시즌 하반기에 돌아오지만 리그 반만 뛰고도 말 그대로 '사기 유닛'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리그 우승과 MVP에 뽑히는 위엄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후에 다시 한번 유럽 진출에 실패하며 전성기는 끝났지만 06년 A3 챔피언스컵에서 후반 교체출전해 해트트릭을 박으며 감바 오사카를 상대로 6대0 승리를 이끄는 경기는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막내로서 2002 월드컵 4위에 기여했으며 06 월드컵과 07 아시안컵에서의 이천수는 절정의 폼으로서 박지성 만큼이나 중요한 에이스로 활약했고 특이 전자의 대회 예선 토고전에선 기막힌 프리킥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 나는 언제나 경쟁과 함께 했다.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경쟁은 곧 삶이다. "
- 이천수 -

 

7위

고정운 한국

고정운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6년 6월 27일

주요 클럽:성남 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77경기 10골

 

1990년대 아시아 축구계 최고의 윙어이자 K리그 당대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하나였던 '적토마'. 별명다운 미친 스피드와 강인한 피지컬,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왼쪽 라인을 오르내렸고 특히 가히 한국 축구사 최고로 꼽힐 만한 러닝 크로스를 선보이던 고정운은 그 기량 또한 뛰어나 독일의 레버쿠젠 이적이 성사 직전까지 가기도 했던 선수였습니다.

 

1989년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탄 그는 당시 아시아 제일의 클럽이던 일화 천마의 공격대장으로서 구단에 3차례의 리그 우승컵과 1995년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선사한 바 있습니다. 1994년엔 리그 MVP, 리그 올해의 팀만 4시즌에 들었던 고정운은 K리그 최초 단일시즌 공격포인트 20점 돌파, 리그 최초의 40-40 클럽 가입자, 고액의 연봉을 받고 세레소 오사카로 넘어간 최초의 J리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도 따냈던 그의 에이스급 활약은 1994 월드컵에서도 이어졌고 스페인, 독일전에서도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으나 다음 월드컵 직전의 도쿄대첩에서는 크나 큰 실수를 저지르며 최종명단에서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6위

박이천 한국

박이천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68cm

생년월일:1947년 7월 26일

주요 클럽:국민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A매치 89경기 36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 이회택과의 원투펀치로 대한민국 축구를 먹여살렸던 일류급 포워드. 육상 선수 출신 다운 어마무시한 주력과 더불어 칼같은 슛팅을 쏘던 박이천은 윙어와 센터 포워드를 전부 역임할 수 있었습니다.
 
실업 리그의 양지와 국민은행 소속으로 뛰며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2번의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1969년에는 아챔 준우승을 만들었습니다.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2년뒤 아시안컵에서는 차범근의 존재에 중앙으로 포지션을 옮겼고 결승전까지의 4경기 연속골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덕분에 1972년 KFA 올해의 선수로 뽑혔던 박이천은 KFA 올해의 팀에도 5년 연속 뽑힌 이력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5위

설기현 한국

설기현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87cm

생년월일:1979년 2월 4일

주요 클럽:RSC 안데를레흐트

주요 커리어

벨기에 프로 리그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82경기 19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유럽 리그에서도 통했던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한 윙포워드. 탄탄한 체격과 큰 키, 빠른 스피드와 양발에서 올리는 정확한 크로스, 스나이핑 슛팅력과 시그니처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슛페인팅을 보여주었던 설기현은 히딩크로부터 유일하게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몸싸움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는 선수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명문인 안데를레흐트로 이적 후에 미친 활약상을 이어가면서 한국 최초의 챔피언스 리거이자 발롱도르 후보 선정된 바 있으며 리그 우승을 이끈 후에는 EPL로 넘어가 레딩 소속으로 2006/07 시즌 파워 랭킹 11위까지 오르는 최고의 폼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감독과의 마찰, 특유의 고집으로 인해 커리어의 내리막을 맛봤고 K리그에서는 최악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2번의 월드컵에 참가, 2002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의 발판이 된 후반의 기적적 동점골을 넣은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4위

서정원 한국

서정원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73cm

생년월일:1970년 12월 17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4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UEFA 인터토토컵 우승 2회

A매치 88경기 16골

 

'날쌘돌이'로 불리웠던 한국 축구 최고의 스피드스터. 100m를 11초대에 끊는 어마무시한 치달 능력과 부드러운 볼컨트롤 능력을 가져 측면을 후벼파는 클래식 윙어의 스타일과 중앙으로 들어와 득점을 따내는 역할 모두 훌륭히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본래 서정원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수준급의 유럽 빅클럽으로부터 관심을 받았으며 심지어 벤피카와는 이적 직전까지 갔으나 아쉽게 여러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쎄오는 결국 프랑스에 갔다가 친정팀 안양에 돌아오겠다는 합의를 어기고 라이벌 수원에서 미친 퍼포먼스로 2번의 리그 올해의 팀과 더불어 각 2차례의 리그, 아챔 우승 당시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때문에 안양팬들을 뒷목을 잡게 해 K리그에서 제일 치열한 더비 슈퍼매치에 본격적으로 장작을 넣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말년에는 오스트리아 리그로 이적해 2년 연속으로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까지 받은 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1994년 월드컵 스페인전, 1대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린 바 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언급되는 대표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월드컵 골이기도 합니다.

 

3위

이청용 한국

이청용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88년 7월 2일

주요 클럽:볼턴 원더러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슴 2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89경기 9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 박지성 만큼이나 뛰어난 활약상을 남겼던 프리미어 리거. 부드러운 볼터치와 개인 기술, 지능적인 연계 플레이와 재빠른 드리블 돌파로 전성기를 보냈었던 윙포워드 이청용은,

 

기성용과 쌍용 듀오로 어린 나이에 서울을 먹여살리며 2009년 결국 EPL의 볼턴 원더러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바로 해당시즌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미친 활약상으로 공격을 이끌어 갔습니다. 하지만 11/12 시즌을 앞두고 살인 태클을 당했고 이청용의 전성기 폼은 이렇게 끝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길었던 유럽 생활을 마치고 울산에서는 2020년의 아챔 우승, 2연속 리그 우승과 22시즌에는 MVP까지 수상하는 저력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는 붉은 악마의 응원 아래 2010년 월드컵에서 정점의 모습으로 2골을 기록, 세계 여러 언론으로부터 16강 진출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은 바 있습니다.

" 이름은 잘 기억 안 나는데 볼턴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 플레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
- 티에리 앙리 -

 

2위

박지성 한국

박지성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81년 3월 30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2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4회

풋볼 리그컵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100경기 1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11 AFC 아시안컵 3위

 

아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 '두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대변하듯 미친 활동량과 체력, 뛰어난 전술 이해도와 중요할 때 터지는 영웅 본능, 특히 어떠한 악조건에도 빛나는 투지와 헌신적인 플레이로 전국민에게 사랑받았던 선수였습니다. 

 

PSV의 네덜란드 리그 독주와 챔스 4강 진출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눈에 띄어 올드 트래포드행을 택하며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으며 그는 본인이 가진 능력들로는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의 선구자로서 맹활약, 당시 세계 최고의 팀이던 맨유에서 조연으로서 수년간 뛰면서 13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에 공헌, 많은 후배들에게 유럽 리그 진출의 꿈이라는 발판을 만들어준 바 있습니다.

 

한편 클럽 커리어와는 다르게 국대에서는 주연으로서 손흥민, 차범근도 못다가갈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2002년 월드컵의 4강, 2010년 월드컵의 첫 원정 16강 진출 등의 금자탑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박지성은 서로 다른 3개의 월드컵에서 1골씩 기록, 월드컵 본선 4경기 MOM 선정 등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 "
- 박지성 -

 

1위

손흥민 한국

손흥민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92년 7월 8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A매치 111경기 37골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차범근이라는 아성을 넘어선 아시아 역대 최고이자 2010년대 중후반 ~ 2020년대 초반 PL의 간판 윙포워드 중 한명. 가공할 만한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좌우를 가리지않고 위협적으로 골대에 꽂히는 양발 감아차기 능력, 우수한 결정력과 오프더볼 움직임까지 갖춘 그는 독일에서 영국 무대로 옮긴 후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며 토트넘의 2010년대 부흥을 함께 했습니다.

 

특히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해리 케인과의 공격 듀오로 PL에서 수많을 골을 기록하며 듀오 최다골을 기록하기도 했던 손흥민은 개인으로도 아시아 최초의 기록들을 수많이 쌓아갔는데, PL 이달의 선수상 3회, 16/17 시즌 FA컵 득점왕, 20/21 시즌 PFA 올해의 팀 선정, 21/22 시즌 PL 득점왕, 푸스카스상 수상, 빅리그 통산 150골 돌파, 2022년 발롱도르 11위 등의 그의 등장 전까지는 상상치도 못할 믿기 힘든 기록들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쏘니는 태극기를 위해 뛰면서도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2022년 월드컵 16강 진출, 2018년 월드컵 독일전 골 등 우리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 오늘 먼저 값을 치른다.
후불은 없다. 지금의 나를 자제하고 훈련하며 꿈을 향해 달린다. "
- 손흥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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