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
박건하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71년 7월 25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5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아시안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21경기 5골
1990년대는 스트라이커로서 2000년대에는 센터백으로서 수원 왕조를 건설했던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 뛰어난 헤딩 능력과 위치선정, 깔끔한 피니싱으로 명망 높았던 ST였지만 말년에는 노련한 수비력까지 가지게 되어 센터백으로 전향한 박건하였습니다.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서 첫시즌부터 리그 신인상을 탔던 그는 이운재, 서정원, 데니스, 고종수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과 클럽의 최전성 시대를 인도했고 2번의 리그 우승과 2연속 아챔 우승, 1999년의 '도메스틱 쿼드러플' 등을 주포로서 이끌었으며 주장 완장도 차면서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한 후기에는 차범근의 백3 체제 하에서 04 시즌 세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큰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집중력.
- 박건하 -
19위
박수덕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48년 7월 7일
주요 클럽:중소기업은행
주요 커리어
A매치 34경기 18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 감각적인 위치선정과 본능적으로 박스 안에서 발을 뻗는 피니셔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박수덕은,
대학 시절부터 주목받는 선수였으며 종소기업은행에서 2차례 KFA 올해의 팀에 뽑히는 등 오랜 기간 활약하다가 변호영 골키퍼와 같이 홍콩 리그로 이적해 뛰기도 했습니다. 1970년 킹스컵에서 득점왕으로 우승을 이끌어 대표팀의 주축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그는 1970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의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고 2년 뒤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에도 이 활약은 이어졌습니다.
18위
조재진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81년 7월 9일
주요 클럽:성남 일화 천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천황배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아시안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40경기 10골
2007 AFC 아시안컵 3위
2006년 월드컵 대한민국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던 인물. 뛰어난 피지컬과 헤더 능력을 위시한 포스트 플레이로 공중볼 따는 능력 하나 만큼은 최고로 불리던 조재진은 허나 결정력이 약하다는 비판과 선천적인 고관절 이형성증으로 인해 선수 시절 내내 고통을 참고 뛰며 이른 나이에 은퇴한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수원에서는 그는 후보였었지만 일본의 시미즈 S펄즈에서는 날아다니며 진지하게 당시 뉴캐슬 입단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안좋았던 몸상태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2008 시즌, 단 1년 뿐이었지만 전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거기다 큰 이적료를 남기고 다시 감바 오사카로 이적해 전북은 그 돈으로 이동국, 김삭싱 등의 선수들을 사 왕조를 만들게 되었으니 당연히 JJJ도 클럽의 레전드로 우대받고 있습니다.
태극 마크를 가슴에 붙이고도 그는 각 1번의 월드컵과 아시안컵에 참여했으며 결정력 부재라는 비판에도 2006년 월드컵에서는 인상깊은 모습으로 프랑스전 박지성의 골을 어시하기도 했습니다.
난 공을 차는게 아니야. 90분간 리듬을 타는거지..
- 조재진 -
17위
조규성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8cm
생년월일:1998년 1월 25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1회
대한민국 K리그 2 우승 1회
덴마크 수페르 리가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A매치 39경기 9골
2020년대 초중반 등장한 대한민국의 정통파 스트라이커. 뛰어난 헤딩과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졌으며 여러 포지션에서 어린 시절부터 굴렀던 경험을 살려 많은 활동량과 수비가담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안양에서 전북의 No.9로 낙점되며 K리그 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그는 2020 시즌의 리그와 FA컵 우승에 바로 기여했으며 김천 상무 복무 후인 22 시즌에는 더 다듬어진 폼으로 리그 득점왕,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FA컵에서 MVP에 뽑히며 2번째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이후 덴마크 리그로 진출하여 23/24 시즌 리그 챔피언에 올랐던 조규성은,
벤투호의 2022 월드컵 예선 가나전, 결정적인 멀티 헤더골을 넣으며 부진했던 황의조를 이을 대표팀의 주포로 여겨졌으나 1년 뒤 아시안컵에서는 끔찍한 폼으로 그 기대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16위
우성용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91cm
생년월일:1973년 8월 18일
주요 클럽:부산 아이콘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4회
A매치 15경기 4골
2007 AFC 아시안컵 3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서 대한민국 K리그의 얼굴과도 같던 장신 공격수. 별명부터가 '우공룡'이었으며 큰 키를 바탕으로 한 헤딩과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골을 넣는데 능했지만 발기술이 별로이며 포스트플레이 역시도 커리어 말미에 가서야 발전했던 인물입니다.
대우 로얄즈의 황금 세대로 데뷔했던 우성용은 마니치, 안정환과 전설적인 공격 트리오를 구성해 1997 시즌의 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 2회를 경험하였으며 이후 포항으로 넘어가서도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서 2004 리그 준우승을, 06년에는 33살의 나이에 성남에서 19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수상하고 팀은 리그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당시 꽤 수준 높은 브라질 용병 공격수들과 경쟁해 넣은 K리그 통산 116골은 이동국 이전 리그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15위
정조국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6cm
생년월일:1984년 4월 23일
주요 클럽:FC 서울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13경기 4골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가 기대했던 스트라이커 재능 중 한명. 스피드나 드리블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간결한 터치와 엄청난 골결정력, 특히 '패트리어트'라고 불린 미사일 슛파워로 임팩트를 선사했습니다.
그는 2003년 신인상을 타면서 데뷔, 박주영이 떠난 자리를 데얀과 투톱으로 뛰며 2010 시즌에는 '분유캄프'라 칭해진 폼으로 리그 우승을 견인했고 때문에 다음 시즌 리그앙 오셰르로 진출까지 합니다. 또한 12시즌 다시 서울에 복귀한 정조국은 한번 더 리그 우승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후에 광주에서 16 시즌 20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왕, MVP로 뽑히는 영예를 누렸으며 말년인 강원 시절에는 포항을 상대로 0대4로 지던 경기를 5대4로 이긴 대역전극의 결승골을 넣은 바 있습니다.
14위
김종부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65년 1월 13일
주요 클럽: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4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25경기 8골
한국 축구사에 손에 꼽힐 만한 천재 스트라이커였으나 스카우트 파동으로 인해 그 날개를 다 펼치지 못했던 비운의 인물. 윙포워드를 소화할 수 있는 발재간과 연계 능력, 물론 중앙에서 피지컬로 버텨주는 플레이도 잘했으며 결정력이야 말할 것 없었던 김종부였습니다.
그는 1983년 세계 청소년 월드컵에서 해외언론도 주목할 만한 엄청난 활약상을 보여 KFA 올해의 선수로 뽑혔으며 고려대에서도 3연속 KFA 올해의 팀에 뽑히는 천의무봉의 기량을 보였으나 본인이 원했던 대우와 고려대가 보내고 싶었던 현대가 그를 두고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계약 쟁탈전을 벌이는 탓에 막 성장할 나이에 수년간 경기를 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와중에 1986년 월드컵에 나가선 멕시코전에서 골까지 넣었지만 결국 뒤늦게 포항에서 데뷔한 그는 기대 만큼 활약하지 못했고 일화를 거쳐 대우에서 쓸쓸히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13위
김용세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92cm
생년월일:1960년 4월 21일
주요 클럽:유공 코끼리
주요 커리어
A매치 18경기 4골
1980년대 K리그를 풍미했던 김재한, 김신욱, 우성용과 같이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장신 스트라이커. 빼어난 기럭지와 힘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짓누르는 포스트플레이를 보였으며 때문에 상대 에이스를 막기 위해 간혹 센터백으로 변칙 기용되기도 했습니다.
제대 이후 1982년 신생팀이던 유공 코끼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1983 시즌의 리그 득점 3위, 다음 시즌에는 12골로 피야퐁과 동률이었지만 경기수 차이로 득점왕을 내줬음에도 리그 성적은 2위를 이끌었으며 총 3차례의 리그 베스트 11에 들었습니다. 김용세는 후에 구단과의 불화로 재계약을 거부하고 일화 천마로 이적했는데, 이는 K리그 최초의 FA 이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6 월드컵 엔트리에도 들었으며 아르헨티나전에서 호르헤 발다노라는 장신 공격수를 막기 위해 선발 출장하기도 했습니다.
12위
김은중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79년 4월 8일
주요 클럽:대전 하나 시티즌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15경기 5골
대전 하나 시티즌 역사상 최고이자 K리그 역사에 남을 스트라이커. 중학교 때 공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는 사고에도 특유의 끈기와 프로 의식으로 K리그 데뷔에 성공했으며 날카로운 움직임과 결정력으로 '샤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연계까지 잘했던 그는,
IMF로 인해 스폰서들이 파산하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도 어린 나이에 리그 최약체였던 당시 대전을 이관우와 함께 이끌었고 2001 시즌 기적 같은 FA컵 우승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결승골을 넣기까지했던 그였지만 워낙 안좋은 상황에 대전은 그를 J리그로 보낼 수 밖에 없었고 후에 한국에 복귀해 08 시즌은 FC 서울에서 리그 2위, 10 시즌은 제주에서 리그 준우승을 이끌어 MVP를 수상했습니다. 이후 친정팀인 대전에 복귀해 2부이던 구단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승격시켰던 김은중은,
분명 이렇게 K리그에선 최고의 스타였지만 공격수의 화양연화 시절에 뛰었던 탓에 대표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11위
윤상철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5년 6월 14일
주요 클럽:LG 치타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1경기 0골
FC 서울 구단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자 199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피지컬도 보통이고 속도도 느렸으나 허를 찌르는 슛팅 센스와 수비라인 침투가 예술이었으며 연계에도 두각을 드러내던 선수였습니다.
'얼룩 치타' 윤상철은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목되어 당시 럭키 금성 황소에서 데뷔를 알렸고 3년만인 1992 시즌, 득점왕을 따내며 팀에게 우승을 안겼습니다. LG 치타스 시절에는 하위권이던 팀을 짊어지며 신예 최용수와의 투톱으로 94년엔 21골로 2번째 득점왕을 타냈습니다. 더불어 프로 축구 사상 최초의 300경기 출장자이자 100골 고지에 오른 전설이었지만 잠깐의 부진과 리빌딩이라는 이유로 구단은 이런 레전드를 토사구팽하고 말았습니다.
" 한마디로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는 꾸준한 슈터. "
10위
김신욱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98cm
생년월일:1988년 4월 18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2회
중국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56경기 16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0년대 K리그를 넘어 아시아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장신 공격수. 2m에 준하는 큰 키를 이용한 헤더 능력과 보기와는 다르게 연계나 볼테크닉을 이용해 골을 창출하는 플레이도 능했던 선수였습니다.
이런 김신욱은 울산에서 프로 데뷔해 김호곤 감독 전술의 핵심이 되며 2011년 리그컵 득점왕으로서 우승, 12시즌엔 이근호와 투톱을 이뤄 '철퇴 축구'로 아시아 챔스를 먹었으며 다음 해에는 리그 MVP로서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5년 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한 울산 역대 최다 득점 2위, 출장 3위의 김신욱이었지만 이 해를 마지막으로 재계약이 불발되고 라이벌인 전북으로 이적해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지만 그는 전북 유니폼을 입고서도 16 시즌 아챔과 2차례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허나 국대에서는 큰 키 때문에 많은 감독들의 구미를 당기게 했지만 부족한 활동량과 포스트플레이 이해도 때문에 2014 월드컵을 제외하면 그닥 좋은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9위
황의조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92년 8월 28일
주요 클럽:FC 지롱댕 드 보르도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62경기 19골
2010년대 후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1진 스트라이커. 느린 발을 커버하는 지능적인 오프더볼 움직임과 포스트플레이, 특히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을 연상케하는 어마무시한 발목힘으로 꽂아넣는 슛팅 능력이 최대 장기였던 황의조였습니다.
그는 성남에서 은사 김학범 감독 아래 포텐을 터트리며 J리그로 진출, 암흑기를 맞고 있었던 감바 오사카에서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나며 2018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11에까지 들었고 결국 프랑스의 보르도로 이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곳에서는 2시즌 연속 리그 두자릿수 득점을 하는 등 아시아 최초의 리그 1 해트트릭, 최다 득점 등의 기록을 쌓았지만 이후에는 커리어가 꼬이고 말았습니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선 여론에 비판에도 불구하고 와일드카드에 뽑혀 역대급 하드캐리로 금메달을 따냈지만 2019 아시안컵과 22 월드컵을 거치면서는 그 폼을 잃었습니다.
8위

김도훈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70년 7월 21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72경기 23골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한국의 앨런 시어러'. 훤칠한 키와 단단한 피지컬로 등을 지고 볼을 받으면 빠르게 돌아서는 퍼스트 터치나 반박자 빠른 슛팅으로 골문을 위협하던 김도훈은 1990년대 K리그 최고의 타겟맨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신생팀 전북에서 국대급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그는 오랜기간 뛰며 특히 2000년 K리그 득점왕, 베스트 11에 들며 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후에 김도훈은 30줄의 나이에 성남으로 이적했으며 오자마자 샤샤와 투톱을 구성해 2003년 리그 우승으로 3연속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팀을 완성시켰습니다. 또한 본인은 28골로 당시 단일시즌 리그 최다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리그 MVP, 다음 시즌에는 챔스 준우승을 이끌며 국내 최초의 아챔 득점왕 트로피를 따기도 했습니다.
국대에선 항상 황선홍, 최용수와 경쟁해야했으며 1998 월드컵에선 주전으로 나왔으나 다음 월드컵에서는 결국 뽑히지 못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99년 친선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아시아 최초의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7위

최용수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73년 9월 10일
주요 클럽:FC 서울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69경기 27골
2002 FIFA 월드컵 4강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얼굴과도 같던 간판 스트라이커. 미드필더의 지원을 받느냐에 따라서 기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성기 때는 준수한 피지컬과 스피드, 예리한 공중볼 능력과 날카로운 슛팅으로 파괴적인 임팩트를 보였던 원톱 자원입니다.
최용수는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자마자 1994년 신인상을 따냈으며 98 시즌 FA컵 우승, 99 시즌 FA컵 득점왕과 2000 시즌 리그 우승을 캐리하면서 리그 MVP로까지 선정되었습니다. 역시 그는 이러한 활약에 J리그에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이적해서도 대활약했습니다.
1998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혼자 7골을 폭격한 그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본선에서는 그저그런 모습을 보였으며 다음 월드컵에서도 히딩크의 부름을 받아 승선했지만 팬들에게 인상을 남긴건 미국전 전설의 홈런 장면 뿐이었습니다.
6위
김재한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91cm
생년월일:1947년 4월 1일
주요 클럽:한국주택은행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홍콩 FA컵 우승 1회
A매치 57경기 35골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0년대에 활약했던 아시아 정상급의 타겟터. 김재한은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해 기본기는 좀 떨어졌지만 강한 정신력, 뛰어난 운동신경과 축복받은 신체조건을 활용한 헤딩으로 동료에게 떨궈주는 플레이를 보였습니다.
한국주택은행 축구단에서 1972년의 '4관왕'(춘계 실업리그, 추계 실업리그, 대통령배, 국무총리배 대회)이라는 역사적인 성적을 주축으로 이끌었던 그는 KFA 올해의 팀에 4차례, 78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당대 대표팀에서도 핵심이었으며 가끔 주장완장도 차며 활약, 1972년에는 차범근, 박이천과 3톱을 형성해 아시안컵에서 결승에 올랐습니다.
" 찼다 찼다 차범근 센터링 올렸다. 떴다 떴다 김재한 헤딩슛 골인 "
5위
이태호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61년 1월 29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80경기 24골
1980, 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우리나라를 빛냈던 '한국의 게르트 뮐러'. 박스 안에서의 감각적인 슛팅과 빈공간 침투 능력이 최대 장점이었으며 커리어 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뛸 만큼 볼 다루는 능력 역시도 눈부셨던 이태호는 특히나 1987년, 수비수와의 경합 과정에서 오른쪽 눈을 실명당하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이를 극복한 굳센 의지를 가진 이기도 했습니다.
대우 로얄즈의 창단 멤버로서 그는 10년간 뛰면서 3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컵 대회, 1986년 아시아 챔스 우승을 이뤘고 본인은 KFA 올해의 팀에 4번, 리그 베스트에 2번, 1985년에는 AFC가 뽑은 아시아 올스타팀에도 든 바 있습니다. 국대에서는 특히 최순호와의 엄청난 케미로 투톱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 1980년 아시안컵에서 결승에 올랐으며 8년 뒤에 이태호는 3골로 득점왕, 대회 최우수 공격수로 뽑히는 활약에 다시 한번 아시안컵 준우승을 달성했습니다.
4위
이동국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7cm
생년월일:1979년 4월 29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9회
FA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105경기 33골
2000, 07 AFC 아시안컵 3위
2007 AFC 아시안컵 3위
역대 최다 득점에 빛나는 명실상부 K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이동국은 박스 안에서의 허를 찌르는 득점 포착 능력,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마무시한 발리 슛팅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1998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아챔에서 우승을 이끄는 초특급 유망주로 전국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으나 이후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국가대표팀과 프리미어 리그 미들즈브러 시절을 거치며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허나 2009년 전북으로 이적하고서는 부활에 성공하며 무려 41세까지 현역 생활을 지속하여 총 9번의 리그 우승과 2011년의 MVP로서 아챔 준우승, 16년의 챔스 우승, 5번의 리그 올스타팀, 4번의 K리그 MVP로 선정된 이동국은 곧 전북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선 2002년 월드컵 명단 제외, 2006년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 2010년 월드컵 우루과이전에서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등 불운만 가득했습니다. 그나마 2000년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따낸 것이 대표팀에서의 가장 큰 수확입니다.
" 난 실패라 쓰고 경험이라 읽는다. 실패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경험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한다. "
- 이동국 -
3위
박주영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85년 7월 10일
주요 클럽:AS 모나코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 1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잉글리시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68경기 24골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초반 대한민국 축구를 빛낸 천재 공격수. 똑똑한 빈공간 침투 능력과 우수한 돌파, 뛰어난 점프력과 연계, 기가 막힌 프리킥 능력을 가졌던 박주영은 포처, 타겟터, 플레이메이커의 성향을 모두 보일 수 있었던 육각형 스트라이커였습니다.
박주영은 서울에서 2005년 프로 데뷔 해에 바로 신인상과 리그 베스트 11에 들며 천재의 탄생을 알렸고 다음해 리그컵 우승을 이끄는 등 결국 해외로 진출했습니다. 모나코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면서 결국 아스날이라는 명문 클럽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후에는 극심한 부진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만 30세라는 나이에 다시 상암으로 돌아온 그는 팀의 핵심으로 뛰면서 2015년 FA컵 우승, 16년 우승에 결정적이었던 전북전 골로 리그 트로피를 따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2010년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에서 천금같은 프리킥골로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으며 특히 2년 뒤 런던 올림픽 3.4위 한일전에서는 각시탈에 빙의한 듯한 엄청난 움직임으로 승리를 이끌어 하계 올림픽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거는 역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닮고 싶은 사람은 있지만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 박주영 -
2위
황선홍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68년 7월 14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103경기 50골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02 FIFA 월드컵 4위
10년 넘게 대한민국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진 만능 스트라이커. 준수한 신체조건과 굴지의 슛팅 기술, 명석한 연계 능력과 박스 안에서의 침착함으로 수많은 골을 생성하던 '황새' 황선홍은,
커리어 동안 2번이나 십자인대가 파열됨에도 K리그 역대 최고의 용병 라데와의 투톱으로 리그컵 우승에 성공했으며 후에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연패를 이끄는 포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2연속 아챔 득점왕, 리그 8연속 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고 1995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들어갔던 황선홍은 후에 일본의 세레조 오사카로 이적해 한국인 최초로 J 리그 득점왕을 따내는 대활약을 해냈습니다.
14년간 조국의 품에서 뛴 그는 차범근에 이어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순위 2위에 안착해 있으며 특히 한일전에 강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1994 월드컵은 본인의 부진, 98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하는 불운을 겪음에도 35살의 나이에 참가한 한일 월드컵, 첫경기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월드컵 4강 신화에 기여하며 그 한을 풀었습니다.
" 정신력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는걸 말하는게 아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정신력이다. "
- 황선홍 -
1위
최정민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30년 8월 30일
주요 클럽:특무부대 축구단
주요 커리어
A매치 47경기 22골
1956 AFC 아시안컵 우승
1960 AFC 아시안컵 우승
이회택, 차범근,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 명 공격수 계보의 시작. 1950년대 ~ 60년대 아시아권을 호령했던 최정민은 그 당시로써는 훌륭한 신체 조건과 100m를 11초만에 주파하는 스피드, 날카로운 슛팅 등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고 전해집니다.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 옹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수십차례 골망을 흔들며 한국을 아시아의 강호로 만든 엄청난 업적을들 쌓아올렸는데, 1954년 지역예선 한일전에서 일본을 격파하며 아시아 국가 최초로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으며 1956년 초대 아시안컵과 60년 차기 대회까지 우승, 아시안컵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54년, 58년 아시안 게임 2연속 준우승에도 크게 기여한 그는 여담으로 한일전 역대 최다골 기록(6골)의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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