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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15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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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신연호 한국

신연호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64년 5월 8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12경기 5골

 

1983년 청소년 월드컵의 기적을 이끌었던 '황색 펠레'. 센스있는 볼컨트롤과 우수한 결정력을 가졌던 포워드였으며 류마티스성 관절염으로 선수 시절 내내 고생했지만 선수 시절 말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변해 활약한 바 있습니다.

 

김상호, 김판근 등과 금호 고등학교의 역대급 황금 세대로 불렸던 신연호는 고려대를 거쳐서 울산에서 데뷔하였으며 최강희, 최영일, 신홍기 등과 뛰어 약진을 이끌었습니다. 1988 올림픽을 기점으로 주로 볼란치로 뛰면서 각 2차례의 리그 준우승, 리그 3위를 만들었던 그의 커리어 하이라이트는 당연 19세의 나이에 이뤘던 청소년 월드컵의 기적인데, 그는 8강 우루과이전에서 선제골과 결승골을 넣으며 2대1 승리를 견인하였고 언론으로부터 '황색 펠레'라는 찬사와 함께 조국을 4강에 올렸습니다.

 

14위

노상래 한국

노상래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71년 1월 11일

주요 클럽:전남 드래곤즈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25경기 6골

 

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거리 슈터 중 한명. 간결한 연계 플레이나 드리블도 빛났으나 뭐니뭐니해도 노상래를 상징하는건 엄청난 파워와 다양한 구질의 중거리, 특히 UFO슛이라 불리는 아웃프런트킥으로 여러차례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95년, 전남의 창단 멤버로 시작했던 그는 데뷔시즌부터 득점왕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7 시즌의 코리아컵에서는 5경기 연속 골을 몰아치며 구단의 첫 메이저 타이틀을 얻는 쾌거를 누렸습니다. 98/99 시즌에도 역시 4골을 넣으며 아시안 위너스컵의 준우승을 MVP로서 견인한 노상래는 구단 역대 최다 출장 3위이자 역대 최다 득점, 도움자이기까지 합니다.

 

13위

정강지 한국

정강지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67cm

생년월일:1943년 10월 5일

주요 클럽:서울신탁은행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36경기 13골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0년대를 수놓은 대한민국 축구 최고급의 세컨드 스트라이커. 뛰어난 드리블과 슛팅, 패스를 보유했다고 전해지는 정강지의 플레이는,

 

제일모직축구단에서 먼저 주목받았으며 당시 국가대표팀급 선수들이라면 다 그랬듯이 양지축구단으로 강제로 이적하여 뛰었습니다. 이회택, 이세연, 박이천, 김호, 김정남 등 막강한 멤버와 뛴 정강지는 1969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결승에 올랐으며 서울신탁은행이라는 강팀에서 뛰며 후에 2차례의 실업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 KFA 올해의 팀에는 1969년과 70년, 2차례에 든 바 있습니다.

 

12위

지동원 한국

지동원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88cm

생년월일:1991년 5월 28일

주요 클럽:FC 아우크스부르크

주요 커리어

A매치 55경기 11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빅리그에서 10년을 뛰었던 대한민국의 2선 공격수. 부족한 득점 능력으로 비판도 받았으나 준수한 드리블 돌파와 연계 능력, 적극적인 스위칭 플레이 등을 지녀, 펄스나인부터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측 윙어까지 땜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었습니다.

 

전남에서의 첫시즌부터 FA컵 득점왕을 따내며 주목받았고 결국 선덜랜드로 이적하며 유럽에 발을 디뎠습니다. 후에 도르트문트에서는 실패했지만 아우쿠스부르크에서는 구자철과 뛰면서 준주전으로 우수한 활약을 보이다가 국내 문대로 다시 리턴한 그였습니다. 지동원은 국대에서도 2011 아시안컵 3위와 12 올림픽 동메달 당시에는 핵심이었지만 이후에는 유럽파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모습으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11위

노수진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2년 2월 10일

주요 클럽:유공 코끼리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A매치 27경기 5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 유공 코끼리의 유일한 리그 우승을 캐리했던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초 K리그의 탑티어 포워드. 노수진은 공격 지역에서 직접 득점 하는 능력과 센스 있는 연계에도 능했지만 중원까지 내려와 볼배급하는 플레이도 잘보였던 선수였습니다.

 

고려대 시절부터 이미 아시안 게임 상비군에 발탁되었던 높은 클래스를 보였던 그는 유공 코끼리에서 1986 시즌 프로 데뷔를 알렸고 첫시즌에는 월드컵 승선 등 리그에서 그저그랬으나 다음 시즌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12골 6어시로 리그 베스트 XI 선정, 특히 황보관과 더블 플레이메이커로 대활약하던 1989 시즌에는 무려 16골을 넣으며 리그 MVP, 아직까지도 유일한 구단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활약을 토대로 노수진은 2번의 월드컵에 뽑힌 바 있으며 1988 올림픽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10위

김현석 한국

김현석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7년 5월 5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A매치 23경기 5골

 

울산 현대 FC 역대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Mr.울산'. 우아한 드리블과 퍼스트 터치, 예상못하는 타이밍에 터지는 슛팅 등으로 피지컬을 앞세운 스트라이커들이 대세를 이룰 때 테크닉만으로 리그를 평정했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과한 다혈질 성격으로도 유명했던 김현석은,

 

현대 호랑이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10년 넘게 뛰면서 역대 최다 득점, 출장, 도움이라는 파천황을 이뤘으며 2차례의 리그컵 우승, 1996년에는 최초의 리그 우승을 MVP로서 견인했고 다음 해에는 리그 득점왕을 따냈습니다. 또한 이 '울산의 가물치'는 K리그 사상 최초의 50-50 클럽에 가입 및 무려 6차례의 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리그 내의 압도적인 활약에도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은 정말 없었는데,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같은 확실한 타겟터들을 원하는 대표팀의 전술 때문에 2번의 월드컵(1994, 1998) 엔트리에 모두 발탁되지 못했습니다.

 

9위

정남식 한국

정남식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62cm

생년월일:1917년 2월 16일

주요 클럽:조선방직 축구단

주요 커리어

A매치 84경기 19골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대표했던 인사이드 포워드. 뛰어난 기술과 득점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정남식 선생의 능력은, 

 

1948년에 열린 대한민국의 첫 A매치 경기인 홍콩전에서 4골을 몰아치며 증명되었고 대표팀 최초의 득점이자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1952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은메달을 얻었고 1948 올림픽에서도 16강 멕시코를 잡는 골로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1954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두고 다툰 한일전 1.2차전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월드컵 잔디를 밟는데 공헌했습니다.

 

8위

이근호 한국

이근호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85년 4월 11일

주요 클럽:울산 HD FC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1회

J리그컵 우승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A매치 84경기 19골

2007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0년대 K리그와 대한민국을 빛낸 명 공격수 중 한명. 터치는 좀 투박하지만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막강한 체력으로 엄청나게 뛰어다니면서도 직접 골을 넣거나 찬스를 포착하는 능력으로 파트너를 지원해 윙어와 센터 포워드에서 모두 최고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던 이근호였습니다.

 

대구에서 '태양의 아들'로 불리우며 독보적인 신인이 된 그는 아쉽게 PSG와의 계약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일본을 경유해 군복무를 위해 돌아온 울산에서의 2012년, 당시 이근호의 퍼포먼스는 과장 없이 아시아를 말그대로 씹어먹었으며 김신욱과의 투톱으로 김호곤 감독의 '철퇴 축구'를 가능케 하며 무패로 아시아 챔스 우승을 캐리했습니다. 대회 MVP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까지 따낸 그는 후에 38세까지 뛰며 전북, 제주, 강원, 대구에서 모두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각 1번의 리그와 아챔 우승을 도우며 커리어 총 4번의 리그 베스트 11에 뽑혔습니다.

 

2014 월드컵에서 군인 신분으로 아킨페프의 기름손 골을 만들었고 15 아시안컵에서도 준우승을 도왔고 18 월드컵을 앞두고까지 좋은 폼으로 손흥민과 투톱 주전이 유력해보였으나 부상을 당하며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7위

황희찬 한국

황희찬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96년 1월 26일

주요 클럽: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주요 커리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3회

A매치 66경기 14골

 

손흥민 이후 2번째인 PL의 아시아 리거 두자릿수 득점자. 부상이 좀 잦았다는게 흠이지만 '황소'라는 이명에 걸맞게 남다른 피지컬과 저돌적인 돌파 능력을 보였으며 특히 특기인 슛페인팅 접기 능력으로 월드클래스 수비수 버질 반다이크도 속이는 명장면을 낳기도 했습니다.

 

미나미노 타쿠미, 엘링 홀란드와 삼각편대를 구성해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며 3차례의 리그 우승을 만들어낸 황희찬은 분데싈가에서는 실패했지만 울버햄튼 원더러스 소속으로 포텐을 터트리며 2023/24 시즌 리그에서만 12골을 뽑아내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국대에서도 그는 2018 월드컵과 19 아시안컵에서 부진만 보였지만 22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조별예선 2경기를 날리고도 최종 포르투갈전 극적인 결승골을 넣으며 사상 2번째 원정 16강을 견인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 기계야, 기계. "
- 위르겐 클롭 -

 

6위

정해원 한국

정해원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59년 7월 1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65경기 22골

1980 AFC 아시안컵우승

1988 AFC 아시안컵우승

 

1980년대를 풍미했던 K리그 최상위 플레이어이자 대표팀의 핵심으로 불리웠던 남자. 세련된 볼컨트롤과 키핑력, 날카로운 기회 창출 능력과 슛팅 스킬, 빠른 발과 왕성한 수비 가담을 지녀서 세컨 스트라이커부터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정해원은,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만 모든 클럽 커리어를 보내며 구단의 르네상스 시대를 향유하였고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컵 대회 우승, 1986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까지 트로피를 드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개인으로는 2차례의 리그 베스트 XI, KFA 올해의 팀에는 5번 들었으며 1986년에는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하며 득점왕과 다음 시즌에는 MVP까지 뽑힌 정해원은,

 

국가대표팀에서도 2차례의 아시안컵 준우승과 1990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고 특히 1980년 아시안컵 4강전에서는 북한을 상대로 80분에 극적인 동점골과 역전골을 뽑아내며 결승행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5위

조윤옥 한국

조윤옥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40년 2월 25일

주요 클럽:대한중석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A매치 55경기 25골

1960 AFC 아시안컵 우승

1962 아시안 게임 은메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아시안컵 우승을 견인했던 1960년대 아시아의 1티어 공격수.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로, 현대의 처진 공격수 위치에 해당하며 폭발적인 드리블과 강력한 슛팅을 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모직 축구단, 대한중석 축구단에서 클럽 커리어를 보내며 총 4번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그는 대표팀에선 어린 나이에도 월반해 1960 아시안컵에 막내로 합류, 무려 4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을 따내 제 2회 대회 우승을 캐리했으며 62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본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은메달에 큰 일조를 했습니다. 그는 1965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AFC가 뽑은 아시아 올스타에 3회 뽑힌 명실상부 당대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였습니다.

 

4위

안정환 한국

안정환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76년 1월 27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주요 커리어

일본 J1리그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71경기 17골

2002 FIFA 월드컵 4강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축구의 최전성기를 대표했던 판타지스타. '테리우스','안느' 같이 고급스러운 별명처럼 움직임도 매우 우아했으며 아름다운 볼터치와 드리블 개인기 및 수준 높은 슛팅 기술, 비상한 공간 이해도 등으로 9.5번 자리에 빛이 났던 선수였습니다. 

 

대우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베스트 11 선정, 다음 해인 1999년에는 사상 최초로 비우승팀 리그 MVP까지 따내는 활약으로 이탈리아의 페루자로 임대가는데 성공했지만 에이전트, 구단주의 기행, 월드컵 활약의 여파로 이탈리아에서 꾸준한 활약을 할 상황이 되지 못했고 결국 J리그로 팀을 옮겨 그곳에서 준수한 활약으로 3번의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도 2002년 월드컵 당시 16강 이탈리아를 좌절시키는 골든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하며 4강행이라는 기적의주역이었으며 06 월드컵에서도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사상 첫 월드컵 원정 승리를 주도, 손흥민, 박지성과 같이 3골로 월드컵 최다 득점자 자리에까지 앉아있으니 재능에 비해 운이 없었던 선수로 왜 항상 그가 언급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이탈리아 골대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를 왜 빼겠는가? "
- 거스 히딩크 -

 

3위

최순호 한국

최순호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62년 1월 10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주요 커리어

대한민국 K리그1 우승 2회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96경기 30골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유벤투스 FC가 알아봤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희대의 재능. 처진 공격수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최순호는 우월한 신체조건과 부드러운 터치, 트래핑, 드리블로 해외파 수비수들을 상대로도 볼을 안정적으로 키핑할 수 있었으며 아군과 볼의 흐름을 캐치해 킬패스를 찔러주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워풀한 슛팅마저 장착한 이 '아시아의 호랑이'는 포항제철과 럭키금성 소속으로 뛰며 4차례의 리그 우승을 주도, KFA 올해의 팀에 4번, KFA 올해의 선수에 1990년 선정된 바 있습니다.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단 최순호는 1980년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 7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86년, 90년 월드컵에서도 눈에 띄는 퍼포먼스로 1골 3도움을 기록해 대한민국 선수로는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탈아시아급 기량은 유럽에서도 주목했고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그의 영입에 심여를 기울였을 정도였으나 당시 병역법 때문에 유럽 진출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 우리 축구사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싶은 걸출한 공격수. "

 

2위

이회택 한국

이회택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67cm

생년월일:1946년 10월 11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축구단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A매치 82경기 21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아시아의 표범'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치던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기린아. 중앙 공격수치고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이를 커버하는 짐승과도 같은 폭발적인 스피드, 탄탄한 떡대, 번뜩이는 연계와 번개같은 슛팅 특히 시그니처 기술인 발리 슛팅 등을 잘 구사했다고 전해지는 이회택이었습니다.

 

아시아를 호령했던 이회택은 양지 축구단과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뛰며 FA컵, K리그의 전신인 대회에서 1회씩 우승을 거두었고 태극 전사 유니폼을 입고서는 1970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72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비롯한 크고 작은 우승 등을 이루었습니다.

 

KFA 올해의 팀 5회 선정의 그는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득점을 했을 정도이니 그 위상은 유럽 명문 구단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묀헨글라트바흐와 벤피카가 실제로 관심을 표했으나 정작 본인은 유럽 리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거절했다고 합니다.

" 내가 축구를 하던 때는 저기 앉아 있는 이회택 선배의 시대였다. "
- 차범근 -

 

1위

차범근 한국

차범근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9cm

생년월일:1953년 5월 22일

주요 클럽: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주요 커리어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1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1회

UEFA컵 우승 2회

A매치 136경기 58골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지던 유럽 진출의 장벽을 깨고 세계 최고였던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풍미했던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은 아시아 수준을 넘어선 강철 피지컬과 괴물같은 스피드를 이용한 치달 능력, 양발의 자비없는 슛팅력, 수준급의 연계 플레이와 테크닉, 헤딩 능력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분데스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한명으로 독일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갈색 폭격기'로 불리은 차붐은 군복무 때문에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독일행 비행기를 탔음에도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모두 구단 역사에 남을 역대급 남겼는데, 전자 소속으로 WK를 키커로부터 받는 활약으로 UEFA컵 우승과 DFB 포칼 우승을 이끌었고 후에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는 하위권이던 팀을 중상위권으로 올리며 87/88 시즌 한번 더 UEFA컵에서 우승, 결승전에서는 골까지 넣었습니다. 2번의 키커 선정 올해의 팀에 들어가기도 한 그는,

 

국대에서도 겨우 24세로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자일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굴려졌으며 전설적인 말레이시아전 6분 해트트릭 및 크고 작은 5개 대회 우승을 견인, 추가로 대표팀 역대 최다득점자(58골)이자 최다 출장자(136경기)이기까지 합니다.

" 포기하면 이미 승패는 결정난다.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없다. "
- 차범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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