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
“ 검은 튤립 ”
루드 굴리트
포지션:AM
국적:네덜란드
신장:190cm
생년월일:1962년 9월 1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3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66경기 17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역사상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웠던 축구 선수. 190cm의 큰 키와 사기적인 신체 능력 덕에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스피드, 타점 높은 파워 헤더와 수준급의 볼컨트롤, 패스, 슛팅 등을 가지고 있어 리베로로 시작해 공격형 미드필더와 센터포워드 자리에서 꽃을 피웠지만 다른 전지역에서도 어마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멀티성과 축구 지능을 가졌던 선수였습니다.
'검은 튤립' 굴리트는 1987년,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의 활약으로 PSV에서 밀란으로 이적와 '오렌지 삼총사' 커넥션을 형성해 3차례의 세리에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이라는 장거를 이룩했습니다. 당대 같은 세리에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이벌로 평가받을 정도였으며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해 4대0 승리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완벽한 기량은 레이카르트, 반바스텐과 같이 한동안 뜸하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 유로 우승 트로피라는 선물을 가져왔으며 특히 결승전에서 보여준 파워 헤더골의 임팩트는 그에게 발롱도르 2위라는 보답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을 깨부수기 위해서만 플레이를 한다면 그것은 축구의 죽음이다.
- 루드 굴리트 -
9위
“ 오 메스트레 ”
지지뉴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21년 9월 14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A매치 53경기 30골
1945, 46, 53, 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40년대 ~ 50년대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펠레 이전의 셀레상의 아이콘. '마스터'라는 별명답게 시야, 패스, 드리블, 골결정력, 활동량 등 공격에 관한 모든 부분에서 능통했다고 전해지는 지지뉴는 브라질 리그의 플라멩구, 방구, 상파울루에서 대활약하면서 전설을 쓰게 됩니다.
당시 유행하던 WM 포메이션의 '창끝'에서 현대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뛴 그는 커리어 통산 4차례의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에 성공했으나 국대에서 만큼은 불운의 아이콘인데 1949 코파 아메리카를 제외하면 4번의 준우승을 겪었고 특히 1950년 월드컵 대회 MVP 수준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조국을 결승에 올려놓으나 우루과이에게 허무하게 역전패당하는 브라질 축구사 최악의 흑역사 '마라카낭의 비극'에 휩쓸려 평생을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축구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희귀한 그림들이 떠오른다.
8위
“ 나폴레옹 ”
레몽 코파
포지션:AM
국적:프랑스
신장:168cm
생년월일:1931년 10월 31일
주요 클럽:스타드 드 랭스
주요 커리어
프랑스 디비지옹 1 우승 4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유러피언컵 우승 3회
라틴컵 우승 2회
A매치 45경기 18골
1958 FIFA 월드컵 3위
프랑스 축구의 전성기를 불러온 '축구 나폴레옹'. 부드러우면서 현란한 드리블과 넓은 시야, 정확한 쓰루패스가 기반이 되는 기가 막힌 찬스메이킹으로 유명했었던 레몽 코파는,
스타드 드 랭스라는 자국 클럽에서 활약하며 최전성기를 주도, 4번의 프랑스 리그 우승과 1955/56 시즌의 초대 유러피언컵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후에 '저승사자 군단'으로 불렸던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며 중앙에 있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의 존재에 라이트 윙으로 뛰며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로 코파는 쥐스트 퐁텐과 찰떡 호흡을 발산하며 1958년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고 뛰어난 활약으로 발롱도르까지 수상, 더해서 무려 9어시스트를 기록해 도움왕까지 탔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단일 대회 역대 최다 도움 레코드로 남아있습니다.
7위
“ 골든 보이 ”
잔니 리베라
포지션:AM
국적:이탈리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43년 8월 18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
유러피언컵 우승 2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60경기 14골
1968 UEFA 유로 우승
1970 FIFA 월드컵 준우승
2차 세계 대전 이 후 침체 되어있던 이탈리아 축구를 다시 정상에 올려 놓은 '아주리 군단'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당대 최고 수준의 플레이메이킹과 불굴의 드리블 감각, 3번의 득점왕을 따낸 스코어러 본능, 특히 리베라를 대표하는 것은 그런 골만큼 아름다웠다고 평가받는 섬세한 패스 능력이었습니다.
'골든 보이' 리베라는 1960년대 ~70년대에 걸쳐 활약하면서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3번의 스쿠데토, 4번의 컵 대회에서 우승해 산시로를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더불어 2차례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에 성공했던 1963년에는 발롱도르 2위, 69년에는 결국 구단 최초의 발롱도르 위너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도 1968년 유로 우승과 70년 월드컵에서 치열했던 서독과의 경기의 종지부를 찍고 결승행을 이끄는 골을 넣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인테르의 산드로 마촐라와의 공존에 애를 먹으며 자신의 100%를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 또한 있었습니다.
6위
“ 환영술사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포지션:AM
국적:스페인
신장:171cm
생년월일:1984년 5월 11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9회
코파 델 레이 우승 6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4회
UEFA 슈퍼컵 우승 3회
A매치 131경기 13골
2008, 12 UEFA 유로 우승
2010 FIFA 월드컵 우승
21세기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축구의 전성기를 주도한 역대급 미드필더. 작은 키에도 신기의 탈압박과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양질의 패스를 자유자재로 뿌리던 바르샤맨 기질의 선수로, 강인한 멘탈과 중요 경기에서 해내는 버저비터 기질까지 다분했던 이였습니다.
'티키 타카'라는 전술을 가능케 한 그의 역량은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고 그 유명한 '세 얼간이' 중원 라인과 환상의 패스 호흡을 선보이며 2008/09 시즌의 6관왕과 10/11 시즌의 5관왕을 이끌었고 차비의 은퇴 후엔 역대급 공격진 'MSN 라인'을 보좌하며 막강한 공격력으로 14/15 시즌의 '트레블'을 가능케했습니다. UEFA 올해의 팀 6회 선정, 11/12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등 빛나는 개인 커리어가 그의 진가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2008년 유로 우승 - 2010년 월드컵 우승 - 2012년 유로 우승으로 이어지는 스페인 축구가 발견한 엘도라도의 일등공신이었으며 10 월드컵 결승의 결승골, 유로 12 MVP, 2010년 발롱도르 2위, 12년 3위 등이 이를 또 다시 증명합니다.
나는 너에게 밀려 은퇴하지만, 너는 안드레스에게 밀려 은퇴할 것이다.
- 펩 과르디올라가 차비에게 -
5위
“ 그라운드의 노동자 ”
바비 찰튼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37년 10월 1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A매치 106경기 49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영국 축구의 위상을 한단계 드높인,'축구 종가'를 대표하는 위인. 양발에서 나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거리슛, 드넓은 시야를 이용한 정교한 롱패스,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돌파 능력 등을 선보이면서도 뛰어난 수비 가담과 활동량, 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 덕에 '그라운드의 노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찰튼은 잘나가던 팀을 몰락시킨 '뮌헨 참사'라는 끔찍한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런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팀을 3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 1968/69 시즌에는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상대로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이끌어 바닥까지 추락한 맨유의 위상을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맨유 역대 최다 득점, 출장 순위 2위에 빛나는 그는 65/66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도 19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MVP 수준의 퍼포먼스로 왕좌에 앉았고 유로 68에서도 3위에 안착하는 최고의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찰튼은 1967년과 68년엔 발롱도르 2위에 올랐고 1966년엔 영광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려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은 없다.
- 바비 찰튼 -
4위
“ 하얀 펠레 ”
지쿠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53년 3월 3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7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4회
일본 J리그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71경기 48골
1978 FIFA 월드컵 3위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디에고 마라도나와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싸웠던 '하얀 펠레'. 탁월한 전진 드리블, 시원시원한 키패스 그에 필적하는 경기 조율력으로 필드 위를 다스렸으며 괴물같은 득점 능력에다 자타공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킥 능력까지 지녔었던 지쿠는,
플라멩구를 이끌고 구단을 7번의 주 리그, 4번의 전국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1981년에는 득점왕과 MVP로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까지 만들었습니다.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당시 유럽 최고로 평가받던 '붉은 제국' 리버풀을 3대0으로 함락시키는 미친 활약을 펼쳤습니다. 1979년 한해에만 89골을 넣기도 한 지쿠는 7차례의 리그 득점왕, 2차례의 리그 MVP에다 남미의 발롱이라 할 수 있는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세번이나 수상하는 위업을 이뤘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셀레상의 품에서 지쿠는 우승과는 연이 없었는데 1978년 월드컵에는 무패 3위, 83 코파에서는 준우승, 특히 1982년 월드컵 당시 '황금 사중주'라는 역대급 중원진과 스쿼드의 리더로 대회에 참가하나 이탈리아의 깜짝 반격을 맞고 탈락한게 통한의 한이겠습니다.
나는 프리킥과 페널티킥의 차이를 모르겠다.
- 지쿠 -
3위
“ 뢰블레의 왕 ”
미셸 플라티니
포지션:CM
국적:프랑스
신장:178cm
생년월일:1955년 6월 21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프랑스 디비지옹 1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72경기 41골
1982 FIFA 월드컵 4강
1984 UEFA 유로 우승
1986 FIFA 월드컵 3위
지네딘 지단과 프랑스 최고의 선수 자리를 두고 싸우는 역대 최고의 트레콰르티스타. 그는 우월한 시야와 조율 능력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장거리 패스를 뿌리며 경기를 만드는 선수였으나 이렇게 3선까지 내려와 플레이함에도 뛰어난 연계와 슛팅 능력으로 거의 2경기 1득점을 하는 엄청난 스코어러 본능도 선보이던 괴물이었습니다.
그는 낭시, 생테티엔에서 탈 리게앙의 활약으로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 등 스타들이 줄비하던 당시 세리에 A로 이적, 2번의 스쿠데토와 1번의 빅이어를 포함한 7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플라티니 본인은 미드필더로 무려 세리에 3연속 득점왕,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결승 PK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 1983년부터 85년까지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3년 연속 수상하는 등의 대기록을 작성해갔습니다.
뢰블레의 왕으로도 불린 그는 1982년과 86년 월드컵에 참가해 부상을 달고 있었음에도 올스타팀에 들어 4위와 3위로 조국을 이끌었으며 특히 1984년 유로에서는 5경기 9골을 박는 역대 단일 대회 최다 득점 기록으로 우승을 캐리, 득점왕, MVP, 발롱도르까지 석권해 프랑스 땅으로 최초의 국제 대회 트로피를 가져오는 국민 영웅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모든 선수가 완벽하게 플레이를 한다면 스코어는 영원히 0:0이다.
- 미셸 플라티니 -
2위
“ 지주 ”
지네딘 지단
포지션:AM
국적:프랑스
신장:185cm
생년월일:1972년 6월 23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108경기 31골
1998 FIFA 월드컵 우승
2000 UEFA 유로 우승
2006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중반 당대 최고의 플레이어로 일컬어지던 마에스트로. 지단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환상적인 볼터치, 수비 몇 명이 붙어도 벗겨내는 탈압박, 역대급인 조율 능력과 치명적인 킬패스, 중요할 때 터지는 클러칭 능력 등으로 중원을 지배했던 선수였습니다.
'지주'는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 세리에 2연속 우승과 아쉽게 우승은 못했지만 2연속 챔스 결승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2001년, 지단은 '갈락티코 정책'의 타겟이 되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지구방위대' 멤버들과 1차례의 라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01/02 시즌, 챔스 결승에서 보여준 발리 결승골은 아직도 챔피언스 리그를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일컬어집니다.
레알 소속으로 UEFA 올해의 팀에 3연속 선정된 그는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1998 월드컵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트로피를 드는데 성공, 유로 00에서도 MVP로 선정된 뛰어난 퍼포먼스로 우승, 늙은 수탉으로 조롱 받던 2006년의 프랑스를 월드컵 결승에 올리는 캐리력으로 골든볼을 수상했고 이러한 이력에 2000년에는 발롱도르 2위, 1998년엔 발롱도르 1위, 3번의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나에게 지단과 나무토막 열 조각을 달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선사하겠다.
- 알렉스 퍼거슨 -
1위
“ 축구의 신 ”
디에고 마라도나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7cm
생년월일:1960년 10월 30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91경기 34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역사상 최고 레벨로 거론되고 있는 스포츠를 초월해 종교적 존재로 섬겨졌던 '축구의 신'. 자신보다 배는 큰 수비들을 아류로 만드는 밸런스와 스피드, 신의 경지에 도달한 드리블 돌파와 개인기, 충격적인 킬패스와 플레이메이킹 능력 등 월등한 개인전술 뿐만 아니라 이타적 플레이까지 도가 튼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마라도나는,
10대의 나이부터 아르헨티노스, 보카, 바르샤를 거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나폴리라는 땅에 내려와 마피아 연루, 마약 스캔들이라는 지저분한 잡음에도 실력으로 찬양받으며 리그 하위권이던 팀을 유럽에서도 꿇리지 않는 클럽으로 탈바꿈시켜 염원하던 스쿠데토를 2차례, 1988/89 시즌 UEFA컵 트로피를 드는 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87/88 시즌에는 세리에와 코파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나폴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으며 팀은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 지정, 홈구장 명명을 그의 이름을 딸 정도였습니다.
자국 대표로는 1986년, 단일 대회 역대 최다 드리블 성공, 피파울, 잉글랜드전 드리블골 등 월드컵 역사에 남을 역대급 원맨쇼로 기대도 않던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해 골든볼, 실버슈를 수상, 다음 월드컵에서도 더 약해진 전력의 조국을 브론즈볼을 받는 활약으로 멱살잡고 결승에 올린 마라도나는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범접불가의 구국영웅으로 우러러보이고 있습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펠레다. 왜냐하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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