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Austria >
홈구장: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최다 득점자:토니 폴스터 44골
최다 출장자: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 121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3위(1954)
UEFA 유로 16강(2024)
역대 최고의 선수:마티아스 진델라
주장:에른스트 오크비르크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루디 하이덴
포지션:GK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09년 3월 9일
주요 클럽:RC 파리
국대 커리어
1928년 ~ 1933년
A매치 20경기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리. 날렵한 다이빙과 기막힌 펀칭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해지는 그는 1920년대 중후반부터 30년대 초중반까지 가장 빼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골키퍼였습니다.
루디 하이덴은 자국에서 뛰다가 프랑스의 RC 파리로 이적해 1번의 리그앙 우승컵과 3번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컵을 들어올린 바 있으며 뛰어난 실력 때문에 당시 아스날의 허버트 채프먼 감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여러 이유로 잉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거부당해 이는 무산되었습니다.
또한 1930년대 '분더 팀'이라 불린 오스트리아 전성기의 일원으로 뛰다가 33년 해외로 이적한 탓에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영광의 1934 월드컵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라이트백

로베르트 자라
포지션:R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3cm
생녀월일:1946년 6월 9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65년 ~ 1980년
A매치 55경기 3골
일말의 여지가 없는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막강한 체력으로 오른쪽을 오르내리며 발군의 공격력, 수비력을 모두 보일 수 있었던 로베르토 자라는,
흔히 오스트리아 프로 리그의 최고 명문, 아우스트리아 빈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일컬어지는 이입니다. 571경기 출장으로 구단 역대 최다 출장이기도 한 그가 그곳에서 이룬 업적은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 9회, 오스트리아 컵 우승 6회 등이 있겠습니다. 자라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코르도바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1978년 월드컵 서독전 승리 당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으며 결국 조국은 8강까지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에른스트 하펠
포지션:C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7cm
생녀월일:1925년 11월 29일
주요 클럽:SK 라피드 비엔나
국대 커리어
1947년 ~ 1958년
A매치 51경기 5골
1954 FIFA 월드컵 3위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모두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던 오스트리아 축구의 큰 별. 은퇴 후 감독으로 보면 역대 최고의 레벨이었으나 선수 시절만 봐도 충분히 훌륭했던 그는 특유의 리더십과 안정성을 통해 팀의 후방을 든든히 잠구던 하펠이었습니다.
라피드 비엔나 소속으로 승승장구를 경험한 그는 무려 6번의 리그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달았고 이 기세를 이어가 1954년 월드컵에서도 오스트리아를 대표해서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게르하르트 하나피 등과 같이 월드컵 3위에 오르는 사상 최고의 성적에 거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센터백

브루노 페차이
포지션:C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8cm
생년월일:1955년 2월 3일
주요 클럽: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국대 커리어
1975년 ~ 1990년
A매치 84경기 9골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걸쳐있는 호수의 이름을 따 별명으로 불리웠던 '보덴 호의 베켄바워'. 타고난 신체조건으로 '전기 철조망'같은 수비를 펼치면서도 뛰어난 특유의 뛰어난 공격 가담까지 겸했던 페차이는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의 리베로로 불렸습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구단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에이스로서 1979/80 시즌의 UEFA컵 우승에 성공, 다음 시즌에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포칼 우승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여기서 그치지않고 페차이는 1981년엔 발롱도르 11위, '키커 랑리스테'의 WK는 3차례나 부여받는 위엄을 보인 바 있습니다. 이후 브레멘에서도 2번의 리그 2위, 다음 85/86 시즌에는 리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으며,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1978년과 82년 월드컵에서 모두 8강 무대에 들어서는 호성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레프트백

데이비드 알라바
포지션:L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92년 6월 24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2009년 ~
A매치 105경기 15골
21세기 오트스트리아 축구가 낳은 월드 클래스 플레이어. 킥, 스피드, 체력, 수비, 패스 능력을 두루 갖추어 본 포지션인 레프트백 외에도 선수 커리어를 진행할 수록 센터백도 기막히게 소화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할 정도로 만능인 자원이었습니다.
알라바는 뮌헨의 유스 출신으로 제롬 보아텡, 마츠 후멜스, 필립 람 등과 수비 라인을 구성해 2010년대 클럽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특히 2012/13 시즌과 2019/20 시즌에는 영광스러운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3차례의 UEFA 올해의 팀 선정, 8차례의 VDV 올해의 팀 선정 등으로 보상받은 바 있습니다. 알라바는 이후 레알로 넘어가서도 각 2번의 라리가와 챔스 우승을 이끌었고,
국대에서도 역대 최다 출장 2위,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도 무려 10번이나 받는 이력을 남겼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포지션:D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26년 3월 7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45년 ~ 1962년
A매치 62경기 6골
1954 FIFA 월드컵 3위
현대 축구에서 흔히 일컫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선구자. 그는 넓게 트인 시야와 그라운드 위를 수놓는 패스로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이 극에 달해있던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근간을 세운 인물로, 195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의 황금기를 지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정교하고 일관된 플레이스타일에 감안해 언론들로부터 '시계 태엽'이라고 불리웠던 오크비르크는 자국 리그에서 뛰면서 5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대회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1956년엔 발롱도르 6위에 안착,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주장까지 맡으며 다년간 뛰면서 당시 구단의 리그 최고 성적인 4위를 찍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가대표로 서서도 뛰어난 스쿼드를 이끌며 1954년 월드컵에서 3위를 달성, 비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된 바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게르하르트 하나피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69cm
생녀월일:1929년 2월 16일
주요 클럽:SK 라피드 비엔나
국대 커리어
1948년 ~ 1962년
A매치 93경기 12골
1954 FIFA 월드컵 3위
축구 역사상 최초의 육각형 미드필더. 명목상으로는 윙하프에 위치에 있었으나 하나피는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고 그라운드 위에서 본인의 장점인 창의성과 기술성을 모두 펼쳤고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 포워드, 윙어, 풀백 등을 모두 원숙히 소화했던 괴물이었습니다.
그는 라피드 비엔나에서 머무르며 7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전성기의 실력파 멤버였으며 때문에 3차례의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과 함께는 1954년 월드컵에서 3위에 올라 자국민들의 자존심을 치켜세웠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55년 8월 8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비엔나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9년
A매치 83경기 10골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치던 명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 뛰어난 시야, 뺴어난 볼컨트롤과 같이 정밀도 높은 패스로 안정적인 게임 조율에 능했던 프로하스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라는 자국의 명문팀에서 오랜기간 머무르며 총 7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4번의 OFB 컵 우승을 이뤘고 후에 세리에의 로마와 인테르로 이적해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후에 이탈리아로 넘어가 인테르와 로마에서 활약, 특히나 로마 소속으로는 1982/83 시즌의 세리에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마티아스 진델라
포지션:A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03년 2월 10일
주요 클럽:FK 오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26년 ~ 1937년
A매치 43경기 26골
1934 FIFA 월드컵 4강
1920년대 중반 ~ 30년대 초중반 세계구급의 스타 플레이어로 불린 오스트리아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 흔힌 '펄스 나인' 혹은 '제로 톱'으로 부르는 현대 축구 가짜 9번의 태동을 일으킨 선구자로서 미드필더로 내려와 볼을 받아주는 플레이를 즐겨했으며 이를 통해 '종이 인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약한 피지컬을 숨기며 장기인 볼테크닉과 플레이메이킹을 구사했습니다.
자국 FK 오스트리아 빈에서 맹활약하며 총 1번의 오스트리아 리그와 5의 컵 우승, 2번의 미트로파컵 우승을 얻었으며 대표팀에서도 무려 승률 68퍼를 찍었던 당대 유럽 최고의 팀 '분더 팀'의 지휘자로서 1934년 월드컵에서 4강 무대를 밟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엄청난 애국자이기도 했던 그는 병합된 나치 독일 대표팀 소집도 거부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인물이었으며 이 때문이었을까 은퇴 후 서른 중반의 이른 나이에 집에서 진델라는 의문사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스트라이커

요제프 비찬
포지션:ST
국적:오스트리아,체코
신장:178cm
생년월일:1913년 9월 25일
주요 클럽:SK 슬라비아 프라하
국대 커리어
오스트리아
1933년 ~ 1936년
A매치 30경기 19골
1934 FIFA 월드컵 4강
체코슬로바키아
1938년 ~ 1949년
A매치 14경기 12골
펠레, 게르트 뮐러, 호마리우 같은 거물들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던 축구사 최고의 득점 괴수. 시대를 앞서는 슛팅 테크닉과 양발의 정확도에 더불어 100m를 10초만에 주파하는 파괴적인 스피드, 묘기에 가까운 개인기를 펼쳤다고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생이지만 후에 체코슬로바키아계의 부모님을 따라서 슬라비아 프라하로 이적했고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워나갔습니다. 5번의 리그 우승, 11번의 리그 득점왕이라는 독보적인 골기록을 세우며 FIFA가 인증한 공식경기 총 803골이라는 고지를 세운 요제프 비찬의 기록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에 이은 3위에 올라있습니다. 여담으로 펠레가 비공식 경기를 포함해 1000골을 넘겼다는 주장에 동료인 프란츠 빈더는 "그렇게 따지면 내 친구 비찬은 5000골을 더 넣을 거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귀화 전 오스트리아 국대에서는 어린 나이에도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원더 팀'의 멤버로 활약, 조국의 4강행을 결정 지은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한스 크란클
포지션:ST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53년 2월 14일
주요 클럽:SK 라피트 빈
국대 커리어
1973년 ~ 1985년
A매치 69경기 34골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 축구를 달궜던 월클 스트라이커. 간결한 드리블, 볼컨트롤 능력과 박스 근처만 가면 발현되는 치명적인 피니싱 능력으로 이름을 떨치던 선수였습니다.
크란클은 자국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총 2차례의 리그와 4차례의 컵 우승을 이끈 바 있으며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넘어간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에선 1978/79 시즌 득점왕과 각 1번의 국왕컵, 위너스컵 우승을 실현시켰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를 대표해서는 1978년 월드컵에 참가해 4골을 넣으며 8강행을 이끌었고 특히 숙적 독일을 상대로 멀티골을 뽑아내기도 했습니다.
감독

우고 마이슬
포지션:MANAGER
국적:오스트리아
생년월일:1881년 11월 16일
국대 커리어
1919년 ~ 1937년
1934 FIFA 월드컵 4강
1936 하계 올림픽 은메달
중앙 유럽컵 우승 1회
오스트리아를 유럽 축구의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던 당대 최고의 감독 중 한명. 그의 끈질기고 열정적인 연구가 기질은 빠른 숏패스와 스위칭 플레이를 중요시했던 이른 바 '다뉴브 학파'를 세우고 당시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이끌었으며,
오스트리아 대표팀 지휘봉을 오랜 시간 잡고 마이슬은 특히 기술은 좋지만 피지컬이 약한 마티아스 진델라르를 위해 그를 센터 포워드 자리에서 한칸 내리는, 현대의 제로톱에 가까운 운영을 가장 처음 보여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그의 지휘 아래 '분더 팀'이라고 불리는 최전성기를 누리며 1934년 월드컵 4강, 1936 올림픽 은메달 등의 찬란한 성적표를 가져왔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발테르 제만
포지션:GK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27년 5월 1일
주요 클럽:SK 라피트 빈
국대 커리어
1945년 ~ 1960년
A매치 41경기
1954 FIFA 월드컵 3위
루디 하이덴과 같이 오스트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슛스토퍼. 안정적인 캐칭과 더불어 날렵한 몸놀림으로 다이빙을 연출했었던 발테르 제만은 국제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부다페스트의 호랑이', '글래스고의 표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그는 라피드 비엔나라는 팀에서 무려 8번의 리그 타이틀을 얻었으며 특히 3번의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받은 바 있습니다. 월드컵에서도 그는 1954년 대회에 참가했으나 후보로 있다가 주전 키퍼의 부상으로 나갔던 4강전에서는 무려 6골을 실점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칼 세스타
포지션:R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65cm
생녀월일:1906년 3월 18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32년 ~ 1945년
A매치 44경기 1골
1934 FIFA 월드컵 4강
1930년대 초창기 오스트리아 축구의 간판 수비수. 라이트 풀백으로서 현대로치면 측면 스토퍼에 가까운 롤이었지만 빠른 발과 명민한 두뇌로 절절한 타이밍에 공격에 올라가서 기여를 하는 플레이를 하는 영향력을 보였다고 전해지는 칼 세스타였습니다. 이런 뛰어난 태클 능력에 '칼'이라는 별명도 얻었던 그는,
아우스트리아 빈 소속으로 10년 가까이 뛰며 커리어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대에서는 1934년 월드컵의 '분더 팀' 일원으로서 4강 진출으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발테르 나우쉬
포지션:C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0cm
생녀월일:1907년 2월 5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29년 ~ 1937년
A매치 39경기 1골
1934 FIFA 월드컵 4강
'경이로운 팀(Wunderteam)'이라고 불리웠던 오스트리아 축구의 화양연화를 돋군 척추. 강골의 피지컬과 뛰어난 발밑 능력, 다재다능함을 내세우며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대부분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던 센터 하프 발테르 나우쉬는,
오스트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클럽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뒤면서 3번의 오스트리아 컵 대회 우승, 1933년과 36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달성하는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는 다스 팀의 품에서도 이런 위엄을 드러내면서 1934년 월드컵에서 4위에 랭크되는 위업을 보였습니다.
센터백

에리히 오베르마이어
포지션:C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2cm
생녀월일:1953년 1월 23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75년 ~ 1985년
A매치 50경기 1골
오스트리아 축구 프로 리그 역사상 최고봉으로 꼽히는 거물 센터백. 완고한 대인 마킹과 강렬한 어깨 싸움을 펼치면서도 유연한 드리블과 패스를 통해 볼을 전진시키는데도 능통했었도 오베르마이어는 리더십까지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그는 15년이 넘는 모든 커리어를 아우스트리아 빈에서만 보내면서 무려 8차례의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우승과 5차례의 오스트리아 컵 우승,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7/78 시즌 위너스컵 결승 진출과 78/79 시즌 유러피언컵 4강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낳았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셔츠를 입고서도 브루노 페차이와 자국 최고의 센터백 조합을 결성하여 1978 월드컵에서 8강 안에 입성하였고 다음 월드컵에서도 주장완장을 차고 참여해 2차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레프트백

요세프 블룸
포지션:LB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7cm
생년월일:1898년 2월 4일
주요 클럽:퍼스트 비엔나 FC
국대 커리어
1920년 ~ 1932년
A매치 51경기 3골
192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의 대들보격 역할을 했던 중앙 수비수. 강철과도 같은 대인 수비 솜씨와 첨예한 태클 감각으로 똘똘 뭉친 그는 당대 오스트리아 리그의 탑 클래스 수비수였습니다.
퍼스트 비엔나 FC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요세프 블룸은 그 곳에서 2차례의 오스트리아 1부 리그 우승,1차례의 중앙 유럽컵 대회였던 미트로파컵의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바 있습니다. 국대에서도 꽤 오랜 기간 활약했으며 이런 그의 활약에 오스트리아 국대는 193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요세프 스미스티크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05년 11월 28일
주요 클럽:SK 라피드 비엔나
국대 커리어
1928년 ~ 1936년
A매치 39경기 2골
1934 FIFA 월드컵 4강
1930년대 초반 경이로운 경기력을 보였던 오스트리아 대표팀, 'Wunderteam'의 캡틴. 타고난 리더십까지 겸비했던 스미스티크는 완강한 수비력과 정밀도 높은 패싱 능력으로 '분더 팀'이 지향하는 패스게임의 시발점같은 존재로 군림했습니다.
라피드 비엔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3번의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 2번의 미트로파컵 준우승과 1930년에는 기어코 미트로파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영예를 누렸던 스미스티크는 대표팀에서도 10경기 무패를 이어가는 등 조국 축구의 첫 전성 시대를 지휘하며 1934년 월드컵에서 4위에 올라섰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카를 콜러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29년 2월 9일
주요 클럽:퍼스트 비엔나 FC
국대 커리어
1952년 ~ 1965년
A매치 86경기 5골
1954 FIFA 월드컵 3위
오스트리아 축구를 빛낸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 뛰어난 맨 마킹, 안정적인 볼 배급, 대포알 같은 장거리 슛, 효과적인 공격 가담 등 뛰어난 공수 수평성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습니다.
카를 콜러는 자국의 퍼스트 비엔나에서 각 1차례의 리그와 컵 우승을 이끌었고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는 에른스트 오크비리크, 게르하르트 하나피와 짱장한 미들진을 형성해 1954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조별 탈락하긴 했지만 잉글랜드전에서 통쾌한 중거리슛을 성공 시키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68년 9월 10일
주요 클럽:SV 베르더 브레멘
국대 커리어
1988년 ~ 2003년
A매치 103경기 26골
1990년대 팀의 에이스 노릇을 했던 브레멘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날카롭고 위협적인 왼발킥을 바탕으로 하는 기회창출과 중거리슛에 능했던 안드레아스 헤어초크는 드리블 역시도 별명처럼 우아했던 선수입니다.
그는 SV 브레더 브레멘에서 활약하며 구단의 90년대 돌풍의 핵심으로 우뚝 섰고 첫시즌부터 리그 우승과 다음 시즌의 포칼 우승,
다음 시즌에는 뮌헨으로 이적했지만 1년 만에 다시 복귀해 1번 더 포칼을 얻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개인으로 보면 1994/95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들어갔으며 1992년에는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 1993년 발롱도르 18위에 들어갔던 그입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안톤 샬
포지션:A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0cm
생년월일:1907년 6월 22일
주요 클럽:FC 아드미라 바커
국대 커리어
1927년 ~ 1934년
A매치 28경기 27골
1934 FIFA 월드컵 4강
중앙 유럽컵 우승 1회
오스트리아 축구가 배출한 1920년대 중후반 ~ 30년대 초반 유럽 최상위 레벨의 인사이드 포워드. 안톤 샬은 가공할만 한 스피드와 드리블, 훌륭한 득점 감각까지 겸비했던 선수로서 당시 오스트리아 리그를 씹어먹었던 이였습니다.
오스트리아 리그 통산 285경기 231골을 집어 넣은 그는 커리어 동안 아드리라 바커라는 클럽을 이끌고 득점왕도 5회나 수상하였고 3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10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또 샬 역시도 전성기 '분더 팀'의 구성원으로 1932년 중부 유럽컵 우승과 1934년 월드컵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프란츠 빈데르
포지션:ST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90cm
생년월일:1911년 12월 1일
주요 클럽:SK 라피드 비엔나
국대 커리어
1933년 ~ 1947년
A매치 19경기 16골
1934 FIFA 월드컵 4강
당대 오스트리아 축구를 빛냈던 역대급 스트라이커. 그는 큼지막한 키와 다부진 체구를 바탕으로 박스 안에서 보여주는 포스트 플레이, 원샷 원킬의 대포알 슛팅이 일품이었다고 전해지는 선수였습니다.
그런 프란츠 빈데르는 자국의 라피드 비엔나에서 뛰며 4번의 리그 트로피를 들었으며 1938년에는 DFB 포칼까지 얻었습니다. 또한 분더팀의 아래서도 그는 주포로서 1934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팀과 준우승팀인 이탈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각 1골씩 기록하며 4강 신화를 쓰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스트라이커

토니 폴스터
포지션:ST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8cm
생년월일:1964년 3월 10일
주요 클럽:SK 라피드 비엔나
국대 커리어
1982년 ~ 2000년
A매치 95경기 44골
오스트리아 축구 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스트라이커. 뛰어난 피지컬과 정확한 헤더 타점, 발등에 임팩트를 갖다대는 확실한 슛팅폼으로 이름를 날렸습니다.
1986/87 시즌 유러피언 골든슈를 받는 등 자국 오스트리아 리그를 폭격하는 활약으로 토리노로 이적해 한시즌을 뛰었던 그는 세비야에서도 고작 3시즌이었지만 전성기급 폼을 보였는데 특히 89/90 시즌엔 리그에서 33골을 넣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93년에는 뮝게르스도르퍼 슈타디온에 도착해 중하위권이던 팀을 이끌고 매시즌 두자릿수 골을 득점하는 책임감을 보입니다. 93/94 리그 올해의 팀, 97년에는 리그 득점 2위로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쥔 폴스터였지만 다음 시즌 13골의 기록에도 쾰른의 강등은 막지 못했습니다.
토니 폴스터는1990년과 98년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기도 했는데, 특히 A매치에서 넣은 44골은 역대 최다 득점 1위로 남아있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


프란츠 하실
주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44년 7월 28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국대 커리어
1963년 ~ 1974년
A매치 21경기 2골
빌럼 판 하네험, 빔 얀센과 함께 유럽 최강의 미들진을 구성했던 오스트리아인. 뛰어난 활동량과 수비를 펼치면서도 우수한 패스웍을 지닌 프란츠 하실은 당시 최전성기였던 페예노르트의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착실히 해냈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수위급의 폼을 내뿜던 그는 라피드 빈이라는 자국 명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샬케로 이적했으나 그저 그런 활약을 남겼고 이를 본 페예노르트는 얼른 하실을 데려와 팀의 적절한 퍼즐 조각으로 맞췄습니다. 결국 팀은 1969/70 시즌 빅이어를 들어올렸고 그 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유효표를 받아 24위에 오른 바 있는 그였습니다.

마르셀 자비처
주 포지션:C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94년 3월 17일
주요 클럽:RB 라이프치히
국대 커리어
2012년 ~
A매치 87경기 20골
이제는 21세기 오스트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더. '오스트리아의 베컴'이라고 불렸을 정도의 고감도 오른발 킥과 미친 하드워커 기질을 통해서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로 뛰면서 필드 위를 채웠던 마르셀 자비처,
그는 2015/16 시즌 2부이던 라이프치히를 승격시키며 구단의 돌풍에 기여했고 다음 시즌 바로 리그 준우승, 2018/19 시즌 포칼 결승 진출, 19/20 시즌에는 리그와 챔스 올해의 팀, 20/21 시즌엔 한번더 포칼과 리그 준우승을 이뤘습니다. 이후 바이언과 맨유에서는 부침을 겪었지만 도르트문트로 돌아와서는 23/24 시즌 올스타팀급 활약으로 챔스 결승에 팀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이비차 바스티치
주 포지션:A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69년 9월 29일
주요 클럽:SK 슈투름그라츠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8년
A매치 50경기 14골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중후반까지 오스트리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활약했던 플레이메이커. 최대 장기는 화려한 드리블 돌파와 창의적인 찬스메이킹, 클럽 통산 300골을 기록할 만큼의 득점력 때문에 센터 포워드로 활약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비차 바스티치는 본래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으나 오랜 무명생활을 끝내고 1994년 슈투름그라츠로 이적하면서 전성기를 구가, 2번의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우승을 달성했고 팀을 2차례 챔스 본선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활약에 당시 국가대표팀에 승선해서도 에이스 노릇을 했었던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까지 황혼을 불태우며 총 4번의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08년 유로를 앞두고는 만 39세의 나이에 발탁되는 기적을 쓰기도 했습니다.

페터 슈퇴거
주 포지션:AM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66년 4월 11일
주요 클럽:FK 아우스트리아 빈
국대 커리어
1988년 ~ 1999년
A매치 65경기 15골
199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를 이끌어갔던 넘버 텐. 정교한 패스, 드리블을 보이면서도 뛰어난 2선 침투 능력과 득점력까지 겸비했으며 분데스리가 같은 빅리그에 진출했었던 동시대 같은 국적의 같은 포지션 안드레아스 헤어초크와 달리 페터 슈퇴거는 국내에서만 뛰었었습니다.
아우스트리아 비엔나에서 3번의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과 3번의 오스트리아 컵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이후 라피트 빈으로 이적해서도 1995/96 시즌 오스트리아 리그 우승에 더해서 위너스컵에서 꽤 쟁쟁한 팀들을 꺾고 결승전 진출까지 달성했습니다. 슈퇴거는 오스트리아 유니폼을 입고서도 1998년 월드컵 지역예선을 캐리하면서 조국을 월드컵 본선으로 인도하는 업적을 낳은 바 있습니다.

발테르 샤흐너
주 포지션:RW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80cm
생녀월일:1957년 2월 1일
주요 클럽:AC 체세나
국대 커리어
1976년 ~ 1994년
A매치 64경기 23골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 센세이션했던 오스트리아 축구의 주요 공격수. 번개 같은 스피드와 깔끔한 마무리, 저돌적인 돌파 능력으로 센터 포워드와 라이트 윙어의 자리에서 수많은 득점을 올렸던 발테르 샤흐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뛰면서 3연속 리그 우승과 1979/80 시즌의 컵 우승, 2연속 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했고 이에 당시 별들을 모으던 세리에로 이적에까지 성공했습니다. 체세나 소속으로 1981/82 시즌, 리그 올스타팀 선정과 다음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까지 따내는 퍼포먼스를 보인 그는,
이런 전성기 시절, 한스 크란클과 오스트리아 국대의 공격을 이끌어가며 1978년 월드컵과 82년 월드컵에 출전해 모두 2차 라운드(8강) 진출을 달성했습니다.

쿠르트 야라
주 포지션:LW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7cm
생녀월일:1950년 10월 14일
주요 클럽:MSV 뒤스부르크
국대 커리어
1971년 ~ 1985년
A매치 59경기 14골
1970년대 후반 유럽 상위권 윙포워드 중 한명. 엄청난 속도의 드리블 돌파, 귀신 같이 감아지는 크로스, 감탄을 자아내는 슈퍼골을 터트리는데 능했던 쿠르트 야라는,
스페인 라리가 소속의 발렌시아 CF에서 2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에서 5시즌을 뛰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는 1977/78 시즌 리그 6위, 78/79 시즌 UEFA컵 진출에 성공해 4강까지 오르는 이변을 달성했습니다. 이후 스위스 리그에서도 리그 3연패를 이끈 야라는 국대에서도 한스 크란클, 발테르 샤흐너와 3톱을 구성하여 1978 월드컵 7위, 82 월드컵 8위라는 성적을 쟁취했습니다.

에리히 호프
주 포지션:CF
국적:오스트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36년 8월 3일
주요 클럽:비너 스포르트 클럽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8년
A매치 37경기 28골
1934 FIFA 월드컵 4강
자국의 전설적인 선수의 이름을 따 '작은 진델라르'라고 불리웠던 196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의 에이스. 명민한 드리블 돌파와 더불어 동료를 이용하는 뛰어난 패스 연계 등이 빛나던 크랙이었기에 진짜 인텔리전들에게만 붙여지는 별명인 '축구계의 교수'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에리히 호프는 자국의 비너 스포르트 클럽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2부로 강등된 팀에 구세주처럼 등장해 승격 시킨 후 2차례의 1부 리그 우승을 이끈 바 있습니다. 더불어 호프는 2번의 득점왕을 따내기도 합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게르노트 프라이틀
프리드리히 콘질리아
미카엘 콘젤
측면 수비수
파울 할라
베른트 크라우스
크리스티안 푸흐스
중앙 수비수
윌리볼드 슈마이어스
카를 슈토츠
헤리베르트 베버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레오폴트 호프만
요한 에트마이어
요제프 히커스베르거
율리안 바움가르틀링거
공격형 미드필더
만프레트 린츠마이어
안드레아스 이반쉬츠
윙어
카를 지스체크
발터 슐레거
마르틴 하르니크
센터 포워드
에른스트 스토야스팔
프리츠 그슈바이들
에리히 프로브스트
테오도르 바그너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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