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Netherland >
홈구장:요한 크루이프 아레나, 필립스 스타디온, 스타디온 페예노르트
최다 득점자:로빈 반 페르시 50골
최다 출장자:웨슬리 스네이더 134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준우승 3회(1974, 1978, 2010)
UEFA 유로 우승 1회 (1988)
역대 최고의 선수:요한 크루이프
주장:뤼트 크롤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에드빈 판데르사르
포지션:GK
국적:네덜란드
신장:199cm
생년월일:1970년 10월 29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5년 ~ 2008년
A매치 130경기
1998 FIFA 월드컵 4강
네덜란드 축구의 얼굴과도 같은 자국 역대 최고의 수호신. 2m에 육박하는 장신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과 안정적인 선방 능력이 최대 장점이었던 선수로,
루이 판할 감독발의 '아약스 제너레이션' 아래 4차례의 리그 우승, 3차례의 컵 대회 우승, 1차례의 UEFA컵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에 달았습니다. 그는 챔스 우승에 성공한 1994/95 시즌엔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상, 97/98 시즌엔 에레디비시 올해의 선수상까지 가져갔습니다. 유베, 풀럼을 거쳐 맨유로 이적해서는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40세가 될 때까지 꾸준한 모습을 보였으며 '녹색 거인' 덕에 맨유는 4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챔스 우승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3차례의 PFA 올해의 팀에 뽑힌 판 데르 사르는 특히 07/08시즌 챔스 결승, 승부차기에서 첼시를 상대로 대단한 선방을 보이며 우승을 이끌었고 08/09 시즌엔 1311분, EPL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갱신하며 UEFA 올해의 골키퍼에 뽑혔습니다.
오랑예 유니폼을 입고도 130경기를 나와 역대 최다 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판데르사르는 6번의 국제 대회에 나와 그중 1998 월드컵에서는 4강, 유로 2008에서는 올스타팀에 들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빔 쉬르비르
포지션:RB
국적:네덜란드
신장:181cm
생년월일:1945년 11월 16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8년
A매치 60경기 3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 당대를 넘어 현대 축구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친 '토탈 풋볼' 네덜란드 대표팀과 AFC 아약스의 오른쪽 수비수. 미친 체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따라가 지워버리면서도 볼을 잡으면 재빠르게 치고 올라가 정확한 오른발 크로스 겸 결정적인 찬스를 창조하던 플레이메이킹형 풀백이었던 수르비어는,
뤼트 크롤과 막강한 좌우측 풀백 콤비를 구성, 고덴조넨의 유니폼을 입고 무려 7회의 에레디비시 우승, 리누스 미헬스를 거쳐 스테판 코바치 감독이 완성한 1970/71 시즌부터 이어진 유러피언컵 3연패를 비롯해 1971/72 시즌의 '트레블'(시즌 단 1패에 그친)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또 509경기 출장 기록은 구단의 역대 최다 출장 2위 기록이기도 합니다.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는 빛이 나던 그의 퍼포먼스에 네덜란드는 1974 월드컵 준우승 - 유로 1976 3위 - 1978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공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센터백
프랑크 레이카르트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90cm
생년월일:1962년 9월 30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8년
A매치 60경기 3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190의 큰 키와 거구를 이용한 피지컬적인 수비에도 능했으며 세밀한 태클과 제공권 장악까지 갖추어 센터백으로도 뛰었었지만 활동량, 볼키핑, 드리블 돌파, 중거리 슛, 패스 같은 부분에서마저 두각을 드러낸 그는 밀란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인물입니다.
아약스에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2차례나 수상하며 AC 밀란에서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와 '오렌지 삼총사'라고 불리는 막강 트리오를 구성했던 레이카르트는 아리고 사키 감독의 지휘 아래 홀딩 미드필더로 뛰며 중원에서 '사키이즘'의 핵심 역할을 잘 이행했고 각 2차례의 스쿠데토와 빅이어를 들어올렸습니다. 특히 유러피언컵 2연패를 하던 1988년과 89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이름을 올렸고 베테랑이 되어 다시 아약스로 돌아온 그는 리베로로 뛰면서 1994/95 시즌의 리그 + 챔스 우승인 '무패 더블'이라는 역사를 작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라녜의 품에서 레이카르트는 각 2차례의 유로와 월드컵에 참가, 1988년 유로에서 올스타에 선정되는 폼으로 유일무이한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로날트 쿠만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81cm
생년월일:1963년 3월 21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1982년 ~ 1994년
A매치 78경기 14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공격력을 지녔던 센터백. 정확한 태클과 민첩한 가로채기, 위치 선점 능력도 유명했지만 그의 진가는 신기에 가까운 킥 능력에서 드러났는데 역대급 미드필더들과 비교해도 안꿇리는 중장거리 롱패스 솜씨, 대포알 중거리슛을 가져 페널티킥부터 프리킥, 코너킥까지 전부 도맡아찼던 쿠만입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수비수로서 커리어 통산 250골을 넣은 수비수 역사상 최다 득점자이기도 합니다.
PSV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트레블'을 이끄는 역대급 임팩트를 남긴 뒤 1990년대 바르샤의 전성기 또한 만들어낸 그는 '크루이피즘'의 핵으로, 팀은 쿠만의 후방 빌드업에 크게 기대며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고 메시 이전 구단 프리킥 최다 득점자이자 93/94 시즌 챔스 득점왕(8골)인 그는 91/92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 당시 188km/h의 프리킥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이끌며 바르셀로나에게 첫 빅이어를 선물한 바 있습니다.
오렌지 군단의 멤버로도 쿠만은 '오렌지 삼총사'와 유로 1988에서 베스트 11에 뽑히는 활약으로 앙리들로네컵 대관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뤼트 크롤
포지션:LB
국적:네덜란드
신장:184cm
생년월일:1949년 3월 24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9년 ~ 1983년
A매치 83경기 4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네덜란드 축구사 최고의 수비수로 추앙받는 이른 바 '후방의 크루이프'. 별명 그대로 크롤은 뛰어난 신체 능력과 스피드, 안정적인 수비력, 경기를 조정하는 사야와 롱패스, 레프트백 외에도 리베로, 미드필더도 겸하며 수비 라인을 조절하는 타고난 전술 이해력 등을 두루 갖춘 팔방미인이었습니다.
이런 비범한 역량으로 그는 미헬스발의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함께 했고 후위에서 요한 크루이프만치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후에 카이제르에게 주장직을 받아 '트레블', 불후의 유러피언컵 3연패 등을 포함해 15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만들어갔습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1978년 발롱도르 6위, 1979년 발롱도르 3위에 오르기도 한 뤼트 크롤은,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서도 플라잉 더치맨호의 최전성 시대 항해를 지휘, 1974년과 78년 월드컵 준우승과 76년 유로 3위를 함께 했고 본인은 세대회 모두 올스타팀급 활약을 남긴 바 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요한 네이스컨스
포지션:DM
국적:네덜란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51년 9월 15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8년
A매치 60경기 3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요한 크루이프의 중앙 미드필더 Ver.인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가운데 하나, '세컨드 요한'. 호쾌한 전진 드리블, 정확한 킥 능력, 공간 침투, 정확한 슬라이딩 태클, 지치지 않는 체력, 총명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중앙 미드필더 외에도 공격형, 수비형, 측면 미드필더와 레프트백까지 필드 위의 여러 포지션을 완숙하게 소화해내며 절친이었던 크루이프의 뒤를 보좌한 바 있는 BTB 미드필더 네이스컨스는,
미헬스 감독에 눈에 띄어 아약스로 이적했고 '토탈 풋볼'의 엔진으로 팀을 움직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아약스가 이룬 유러피언컵 3연패, '트레블' 등의 성적은 네이스컨스가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는 크루이프를 따라서 바르샤로 이적해서도 1977/78 시즌 국왕컵 우승과 다음 시즌 위너스컵 우승을 실현시켰으며 3번의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 선정, 75/76 시즌에는 돈발롱이 선정하는 첫 최우수 외국인 선수로도 뽑혔습니다.
또한 조국 대표팀의 최전성기 역시도 차석으로 이끌었던 그는 2번의 월드컵 준우승에 기여했고 1974년 월드컵 당시에는 5골을 넣어 실버부트를 수상,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5위까지 오르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빌럼 판하네험
포지션:CM
국적:네덜란드
신장:181cm
생년월일:1944년 2월 20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국대 커리어
1968년 ~ 1979년
A매치 52경기 6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공격과 수비 양면에 걸쳐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 선보인 1970년대 최고의 컴플리트 미드필더. 그는 노련한 플레이메이킹, 창의적인 패스, 유연한 볼키핑, 발류의 득점력, 안정적인 수비력까지 두루 겸비했던 미드필더였으며 특유의 왼발 바깥발 킥과 휜 다리 덕에 '오자 다리'로도 불렸습니다.
판하네험은 페예노르트 유니폼을 입고 당시 에레디비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와 라이벌로서 경쟁해 3번의 에레디비시 우승컵을 뺐어냈고 네덜란드 클럽 최초로 1969/70 시즌, 유러피언컵과 73/74 시즌 UEFA컵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약스 소속의 선수들이 줄비했던 네덜란드 국대에서 비아약스인임에도 주전을 차지한 그는 요한 네이스컨스, 빔 얀센과 중원을 구성해 눈부신 활약으로 1974년 WC 결승행과 76년 유로 3위를 견인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루드 굴리트
포지션:CM
국적:네덜란드
신장:190cm
생년월일:1962년 9월 1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1년 ~ 1994년
A매치 66경기 17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역사상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웠던 축구 선수. 190cm의 큰 키와 사기적인 신체 능력 덕에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스피드, 타점 높은 파워 헤더와 수준급의 볼컨트롤, 패스, 슛팅 등을 가지고 있어 리베로로 시작해 공격형 미드필더와 센터포워드 자리에서 꽃을 피웠지만 다른 전지역에서도 어마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멀티성과 축구 지능을 가졌던 선수였습니다.
'검은 튤립' 굴리트는 1987년,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의 활약으로 PSV에서 밀란으로 이적와 '오렌지 삼총사' 커넥션을 형성해 3차례의 세리에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이라는 장거를 이룩했습니다. 당대 같은 세리에의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이벌로 평가받을 정도였으며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해 4대0 승리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완벽한 기량은 레이카르트, 반바스텐과 같이 한동안 뜸하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 유로 우승 트로피라는 선물을 가져왔으며 특히 결승전에서 보여준 파워 헤더골의 임팩트는 그에게 발롱도르 2위라는 보답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아르연 로번
포지션:RW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84년 1월 23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2003년 ~ 2017년
A매치 96경기 37골
2010 FIFA 월드컵 준우승
2014 FIFA 월드컵 3위
2010년대 초중반 황금 시대를 연 바이에른 뮌헨과 네덜란드 역대 최고의 라이트 윙어. 전성기 시절에는 현역선수 중 가장 빨랐다고 평가 받을 정도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안 외모, 특이한 드리블 모션으로 알고도 못막는 일명 '매크로'라고 불린 득점 루트는 많은 수비수들을 곤욕케 했습니다.
로번은 첼시의 리그 2연패를 이끌었으며 레알에서의 실패와 잦은 부상에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커리어 피크를 찍었습니다. 리베리와의 콤비 '로베리 라인'에 힘입어 뮌헨은 8번의 리그, 5번의 컵, 1번의 챔스 우승을 이뤘으며 WK 8번, VDV 올해의 팀에 4번, UEFA 올해의 팀에도 2번 들어간 그는 '트레블' 직전까지 간 2009/10 시즌에는 분데스 올해의 선수상을, '트레블'에 성공한 12/13 시즌 챔스 결승전에선 돌문을 상대로 선제골 어시와 결승골까지 기록했습니다.
한편 국가대표팀에서도 로번은 2010 월드컵 준우승과 14 월드컵 3위라는 호성적을 공격진에서 홀로 캐리했으며 특히나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을 탈탈 털고 브론즈볼까지 받았던 2014년엔 발롱도르 4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요한 크루이프
포지션:LW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47년 4월 25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7년
A매치 48경기 33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아약스, 네덜란드, 더 나아가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크루이프는 마성의 드리블 돌파와 창조적인 패스,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활동량, 독보적 킥 테크닉 외에도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술 이해도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축구라는 스포츠를 재정립한 전술 체계인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토탈 풋볼'을 완벽히 이행해낸 축구계의 혁명가로도 불립니다.
크루이프는 미헬스의 페르소나로서 강등권이던 아약스를 최전성 시대로 인도해 8차례의 리그, 5차례의 컵,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루었으며 1971/72 시즌 '트레블' 당시 본인도 '득점왕 트레블'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때문에 아약스의 등번호 14번 영구 결번과 홈구장의 이름으로도 남겨진 크루이프는 후에 미헬스를 따라 세계 최고 이적료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엘 클라시코'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5대0으로 박살내버리는 등 73/74 시즌 라리가 우승과 77/78 시즌 국왕컵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오랑예의 일원으로도 시대를 거스르는 경기력을 통솔하며 1974 월드컵, 단일 대회 역대 최다 찬스 메이킹을 기록하는 MVP급의 폼으로 서독에게 패하긴 했지만 결승 진출에 성공, 축구 변방 취급을 받던 네덜란드를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 시켰습니다. 이러한 유산들에 당연히 1971년, 73년, 74년 발롱도르의 주인은 크루이프였습니다.
스트라이커
마르코 반 바스텐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64년 10월 31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2년
A매치 58경기 24골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웠던 스트라이커의 교본. 골결정력, 헤딩, 몸싸움, 침투, 볼 컨트롤, 연계 등 스트라이커에게 요구하는 모든 부분에서 능통했던 선수였던 그는 발리슛, 시저스킥, 터닝슛 등 아크로바틱한 골도 많이 기록해 '위트레흐트의 백조' 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반 바스텐은 아약스의 초특급 유망주로 데뷔해 3번의 리그와 4연속 득점왕을 거머쥐었고 특히 85/86 시즌에는 37골로 유러피언 골든슈까지 수상, 결국 22살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강호, AC 밀란으로 이적합니다. 로쏘네리 유니폼을 입고는 커리어 내내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월드클래스 퍼포먼스를 펼치며 3차례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 중 2번의 우승, 2차례의 리그 득점왕과 1차례의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국대에서도 1988년 유로에 참가해 5경기 5골의 득점왕, MVP로서 앙리들로네컵을 네덜란드 땅에 가져왔고 특히 결승전에서 소련을 상대로 보여준 발리슛은 아직까지도 UEFA 유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일컬어지는 순간입니다. 무려 3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그였지만 결국 부상으로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커리어를 마쳤으며 세간에서는 "반 바스텐이 몇 년만 더 뛰었다면 축구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감독
리누스 미헬스
포지션:MANAGER
국적:네덜란드
생년월일:1928년 2월 9일
국대 커리어
1974년, 1984년 ~ 1985년, 1986년 ~ 1988년, 1990년 ~ 1992년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현대 축구의 아버지'. 수비 가담하는 공격수, 공격 가담하는 수비수, 오프사이드 트랩, 선수들간의 긴밀한 스위칭 플레이, 강력한 전방 압박, 점유율 중시 등 당대 전술적 태동으로 작용하던 것들을 재정립해 현대 축구가 나아가야 할 모델인 '토탈 풋볼'을 설계해낸 미헬스의 축구는 세간으로부터 "그들은 20년 후의 축구를 했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직까지도 그가 남긴 유산은 이렇게 필드 위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1974년 월드컵에 처음으로 자국 국가대표팀에 온 미헬스는 자신의 철학을 입혀 서독에게 결승에서 패하긴 했지만 충격적이고 혁신적인 경기력으로 우승 이상의 준우승을 만들었으며 14년 뒤 다시 돌아와 지휘봉을 잡고서는 1988년 유로 우승으로 아직까지도 유일한 네덜란드의 국제 대회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한스 판브뢰켈런
포지션:GK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56년 10월 4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벤
국대 커리어
1980년 ~ 1992년
A매치 73경기
1988 UEFA 유로 우승
1992 UEFA 유로 3위
네덜란드 프로 리그를 넘어서 1980년대 중후반 ~ 90년대 초반 세계 최고 수준의 골키퍼로 불렸던 인물. 들어가는 각도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쳐내는 선방 능력도 일품이었지만 특히 눈에 띄는건 PK 방어율과 1대1 상황에서 고민없이 튀어나가 볼을 걷어내는 스위핑 기질까지 다분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최전성기를 PSV 시절 맞이했으며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대회 우승, 1987/88 시즌에는 네덜란드 클럽 2번째로 '트레블'을 달성해냈습니다. 네덜란드 올해의 골키퍼 4회 수상의 그는 특히 벤피카와의 유러피언컵 결승 당시 마지막 순간에 승부차기에서 영웅같은 선방에 성공했고 이는 빅이어 획득으로 직결되었습니다.
판브뢰켈런은 오렌지 군단 소속으로도 1988년 유로에 모습을 드러내 대회 최우수 키퍼로 뽑히며 '오렌지 삼총사'와 함께 앙리들로네컵을 들어올린 바 있습니다.
라이트백
다니 블린트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61년 8월 1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86년 ~ 1996년
A매치 42경기 1골
1990년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를 대표하던 수비수 중 한명. 센터백치고는 평범한 신체 조건에도 깔끔한 태클, 뛰어난 위치 선정, 훌륭한 경기 리딩 능력으로 그 약점을 커버했습니다. 또한 엄청난 멀티성을 자랑해 센터맥 뿐만 아니라 측면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던 블린트는,
아약스에서 크루이프의 부름을 받았고 루이 판할 체제 하의 미하엘 라이지거, 프랑크 레이카르트, 프랑크 데부르 등과 수비 라인을 구성해 총 5번의 에레디비시 우승, 4번의 컵 대회 우승, 1번의 챔피언스 리그, 유에파컵, 위너스컵 우승 등을 이뤘습니다. 1994/95 시즌, 95/96 시즌 2연속 ESM 올해의 팀 선정에 빛나는 다니 블린트는 친아들인 데일리 블린트 역시도 아약스의 레전드입니다.
센터백
프랑크 더부르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70년 5월 15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4년
A매치 112경기 13골
1992 UEFA 유로 3위
1998 FIFA 월드컵 4강
1990년대 네덜란드와 아약스 황금 세대의 얼굴과도 같던 간판 수비수. 그는 똑똑한 위치 선점, 볼 커팅에 능했으며 자국 선배인 로날드 쿠만처럼 공격력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던 센터백이었습니다. 특히 킥 능력이 좋아 직접 득점을 시도하는 프리킥도 도맡아 찼으며 중장거리 패스로 공격수에게 한번에 연결하는 플레이를 즐겼습니다.
더부르는 아약스 유스 출신으로 1군까지 데뷔에 성공해서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훌륭한 신인 선수들과 90년대 초중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어 1991/92 시즌의 UEFA컵, 94/95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을 더해 14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95/96 시즌 본인은 ESM 올해의 팀에 오르는 영광도 같이했습니다. 이후 바르샤로 이적해서도 바로 우승에 성공한 그는,
국가대표로도 5개의 메이저 대회에 참가했으며 주장으로 참가한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로에서는 4강까지 올라가 올스타팀에 뽑히는 저력을 선보였습니다.
센터백
야프 스탐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91cm
생년월일:1972년 7월 17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4년
A매치 67경기 3골
1998 FIFA 월드컵 4강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당대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던 파이터형 스토퍼. 전성기 호나우지뉴도 지워버리던 야프 스탐은 절대 지지않는 몸싸움, 상대 공격수를 찍어누르는 철저한 맨마킹과 제공권 장악, 괴물같은 스피드 등을 보유해 '캄펜의 바위'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PSV에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로 뽑히며 퍼거슨에 눈에 띈 스탐은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해 리그 3연패 및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3년간 PFA 올해의 팀 3회, 2연속 UEFA 올해의 수비수로까지 선정되는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후에 라치오와 밀란에서 코파 이탈리아 우승, 챔스 준우승을 이끈 그는,
단단한 수비력을 대표팀에서도 연일 선보여 1998 월드컵과 유로 2000 4강행이라는 탁월한 성적을 고취해냈습니다.
레프트백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
포지션:LB
국적:네덜란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75년 2월 5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1996년 ~ 2010년
A매치 106경기 6골
1998 FIFA 월드컵 4강
2010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서 네덜란드 축구를 빛낸 위대한 레프트백. 뛰어난 스피드와 체력, 본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커리어의 절반 가까이를 보냈을 만큼 훌륭한 중거리 슛팅과 패스를 가졌었던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는,
페예노르트, 레인저스, 아스날을 거쳐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으며 주전으로 뛰면서 그를 포함해 2000년대 초중반의 바르샤는 일명 '드림팀 2기'라고 불리는 뛰어난 선수들과 같이 라리가 2연속 우승과 2005/06 시즌, 리그 + 챔스 '더블'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1998년 월드컵 4강 진출 당시에는 황금 세대 멤버들의 쟁쟁함에 밀려서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으나 에드빈 판데르사르에 이어서 주장으로 임명되었던 2010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랐습니다. 특히 4강전 우루과이를 상대로 터트린 중거리슛은 어메이징 그 자체였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에드가 다비즈
포지션:DM
국적:네덜란드
신장:170cm
생년월일:1973년 3월 13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96년 ~ 2010년
A매치 106경기 6골
1998 FIFA 월드컵 4강
당대 최고의 BTB 미드필더로 일컬어지던 '싸움 닭'. 별명 그대로 싸움꾼 기질이 있었던 선수로 폭 넓은 활동량과 미친 체력, 겁 없이 달려드는 투지로 공을 뺐어오면서도 우수한 개인기와 드리블 돌파 능력으로 상대의 수비 라인을 부술 수도 있었던 정말 키만 빼면 완벽에 가까운 미드필더였습니다.
에드가 다비즈는 아약스 골든 제너레이션의 일원으로서 리그 3연패와 1994/95 시즌 챔스 우승에 기여, 후에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의 품에서는 지네딘 지단과 디디에 데샹과 중원을 구성해 3번의 스쿠데토 획득, 2번의 챔스 결승 진출을 이뤄낸 바 있습니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국대에서는 황금기 멤버들과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로에서 4강까지 올랐으며 두대회 모두 베스트 11에 뽑히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여담으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 고글은 녹내장을 앓고 있었기에 FIFA에서 공식 승인을 받고 사용한 특수 보호용 고글이었습니다.
라이트 윙어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포지션:DM
국적:네덜란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76년 4월 1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8년
A매치 78경기 11골
1998 FIFA 월드컵 4강
네덜란드 축구와 AC 밀란이 배출한 월드클래스 전천후 미드필더. 영리한 축구 지능과 전술 이해도, 빌드업, 드리블, 중거리슛, 체력까지 모두 갖추어 피지컬을 줄인 굴리트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던 선수였습니다.
덕분에 미드필더의 전지역을 훌륭히 소화했던 그는 아약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각 1번의 빅이어 사냥에 영향을 끼쳤으며 밀란에서도 피를로, 가투소와 중원을 구성해 2000년대 초중반의 황금기를 이끈 숨은 살림꾼 역할을 해내며 2차례의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 1차례의 컵과 클럽 월드컵 우승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한편 06/07 시즌 UEFA 올해의 미드필더로 뽑힌 세이도르프는 최초로 3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빅이어를 들어올린 최초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허나 대표팀에서는 황금 세대의 막강한 스쿼드와 불화 등의 이유로 클럽에서의 위상을 이어서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웨슬리 스네이더
포지션:AM
국적:네덜란드
신장:170cm
생년월일:1984년 6월 9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2003년 ~ 2018년
A매치 134경기 31골
2010 FIFA 월드컵 준우승
2014 FIFA 월드컵 3위
2010년의 네덜란드 축구와 인터 밀란 FC의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낸 이. 팍 트인 시야와 양발을 바탕으로 정확하면서 강력한 대포알 슛팅, 중장거리 로빙 쓰루패스에 아주 능해 '스나이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스네이더입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실패를 겪고 인테르로 와서는 데뷔 시즌인 09/10 시즌, 미친 퍼포먼스로 훌륭한 멤버들과 이탈리아 최초의 '트레블'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이후 우승 하나를 더 따내며 팀을 떠난 그는 '트레블' 당시 챔스 도움왕, UEFA 올해의 팀, UEFA 올해의 미드필더로 뽑히는 역발산기개세의 포스를 뽐낸 바 있습니다.
134경기 출장으로 네덜란드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스네이더는 아르연 로번과 둘이 공격의 핵심으로서 2번의 월드컵에서 준우승과 3위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고 특히나 2010년 월드컵에서는 실버볼과 브론즈슈까지 받아 32년만인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며 인테르 시절의 '트레블'과 겹쳐 그해 발롱도르 수상이 점쳐졌으나 포디움에도 들지 못했고, 이 말도 안되는 투표는 FIFA 발롱도르 시절의 대표적인 비판 사례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레프트 윙어
로프 렌센브링크
포지션:LM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47년 7월 3일
주요 클럽:RCS 안더레흐트
국대 커리어
1968년 ~ 1979년
A매치 46경기 14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오렌지 군단 역사상 최고의 측면 자원으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 당대 최고 수준의 윙. 이름있는 수비수들도 우롱하는 유연한 드리블로 압박을 벗겨내던 그는 '인간 뱀'으로 불리웠으며 범상치 않은 크로스, 미사일 같은 슛팅 능력을 통해서 골도 자주 넣었던 렌센브링크,
그는 대부분의 커리어를 벨기에 리그에서만 보냈으며 특히 안더레흐트 소속으로 하늘도 뚫을 듯한 기백을 보여 각 2차례의 컵위너스컵과 슈퍼컵 우승을 포함해 10개의 우승을 캐리, 1번의 리그 득점왕과 위너스컵 득점왕 타이틀을 따내기도 한 '로비'는 25골로 UEFA 컵위너스컵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합니다.
국대에서의 그는 요한 크루이프, 요니 레프와 날카로운 3톱을 결성해 1974년 월드컵 준우승과 유로 1976 3위를 이끌었으며 크루이프가 없었던 1978년 WC에서도 크루이프 버금가는 에이스로서 5골을 넣어 준우승, 도움왕과 브론즈부트를 수상했습니다. 더해서 위너스컵 우승이 겹쳤던 1976년과 78년에는 발롱도르 2위, 3위에도 올랐던 렌센브링크였습니다.
스트라이커
데니스 베르캄프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69년 5월 10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0년
A매치 79경기 37골
1992 UEFA 유로 3위
1998 FIFA 월드컵 4강
네덜란드 축구를 대표하는 명 쉐도우 스트라이커. '베르기 턴'으로도 현시대에 여러번 회자되는 환상적인 퍼스트 터치 장인으로, 뛰어난 기회 창출과 드리블, 슛 테크닉에도 일가견이 있던 90년대 후반 ~ 00년대 초반 라울, 델피에로와 함께 쉐도우 스트라이커 3대장 중 한명이었습니다.
고덴조넨의 품에서는 스트라이커나 라이트 윙으로 뛰면서 유럽 최고급 선수로 부상해 1991/92 시즌 UEFA컵 우승, 에레디비시 득점왕 3연패, 1992년 발롱도르 3위, 93년 발롱도르 2위 등의 업적을 낳았고 잉글랜드로 넘어와서는 벵거의 '두두다다' 아래 코어로써 97/98 시즌, '더블' 달성과 함께 PFA 올해의 선수상,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싹쓸이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후에는 이적해온 티에리 앙리와의 전설적인 투톱을 구성해 찰떡 호흡을 보이며 계속 전성기를 구가했고 10개의 우승컵을 하이버리 스타디움으로 가져왔습니다.
주황색 셔츠를 입고도 베르캄프는 1992년 유로와 98년 월드컵 4강행의 주축이었으며 후자의 대회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보여준 3터치 골은 그야말로 베르캄프 그 자체를 설명하는 정수였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비행기 공포증으로 인해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이에 '논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었습니다.
스트라이커
뤼트 판니스텔루이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76년 7월 1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벤
국대 커리어
1998년 ~ 2011년
A매치 70경기 35골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고 불리던 21세기 네덜란드 최고의 스트라이커. 퍼스트 터치, 헤딩, 드리블, 결정력 등 타겟터로써 가져야 될 요소들을 모두 가진 반니는 PSV에서 2연속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한 뒤 맨유로 이적왔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맨유가 잠깐 주춤했던 과도기적 시점의 믿음직한 주포로 활약하며 1차례의 프리미어 리그, FA컵 그리고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본인은 리그 득점왕 1회, 챔스 득점왕 3회, PFA 올해의 팀 2회, PFA 올해의 선수상 1회 등의 개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후에 레알로 이적해 또 다시 득점왕을 따내며 06/07 시즌 라리가 우승을 견인하기도 한 그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로이 마카이,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등의 쟁쟁한 공격수들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해 2004년 유로 올스타팀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
수석 코치
루이 판할
포지션:HEAD COACH
국적:네덜란드
생년월일:1951년 8월 8일
국대 커리어
2000년 ~ 2002년, 2012년 ~ 2014년, 2021년 ~ 2022년
2014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일류급 감독. 뛰어난 선수 보는 안목, 탁월한 전술 이해도 등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를 3-3-3-1 포메이션 위에서 실현시키기도 했었던 그는,
1990년대 수석코치로 있던 아약스에서 네덜란드의 황금 세대를 이끌었던 수장으로서 2000년에 대표팀 감독직도 맡았지만 그런 뛰어난 멤버들을 데리고 유로에서 광탈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허나 2번째 부임할 당시에는 비교적 약소한 스쿼드를 가지고 5백 아래서 뛰어난 용병술을 보이며 흑역사만 거듭하던 네덜란드를 3위의 위치에 올려놓는 성적을 냈습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골키퍼
얀 판베버런
포지션:GK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48년 3월 5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벤
국대 커리어
1967년 ~ 1977년
A매치 32경기
실력 만큼은 의심의 유럽 최고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음에도 크루이프의 절대적인 대표팀 영향력에 희생당했던 비운의 골키퍼. 반사신경, 점프, 민첩성, 모든 부분에서 놀랍고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줬던 판베버런은,
스파르타 로테르담을 거쳐서 PSV 에인트호벤에 입성해 기가 막힌 활약과 함께 구단을 3번의 에레디비시 우승과 2번의 KNVB컵 우승, 1977/78 시즌 UEFA컵 우승, 75/76 시즌 유러피언컵 4강행 등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검증된 실력에도 국가대표팀에서는 요한 크루이프를 필두로 하는 아약스파와 비아약스파의 대립, 정치 싸움으로 인해 엔트리에서 억울하게 밀려났고 결국 '토탈 풋볼' 네덜란드 축구가 걸었던 위대한 길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라이트백
마이클 레이지허르
포지션:RB
국적:네덜란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73년 5월 3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4년
A매치 72경기 1골
1998 FIFA 월드컵 4강
1990년대 중후반 인복이 흘러넘치던 네덜란드의 황금 세대 우측면을 단단히 지켰던 인물. 미이클 레이지허르는 미드필더 출신 다운 테크닉과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 첨예한 크로싱, 또 완고한 대인 마크까지도 잘해 중앙 수비수로도 뛸 정도로 믿음직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데니스 베르캄프,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클라렌스 세이도르프, 에드가 다비즈 등이 있었던 아약스에서 루이 판할 감독 아래 라이트백으로 포변해 1994/95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영광을 같이했으며 은사였던 판할을 따라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도 주전으로 두번의 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도 오른쪽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던 그는 4번의 국제 대회에 참가해서 3번의 대회 4강까지 오르는 준수한 커리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버질 반 다이크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93cm
생년월일:1991년 7월 8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국대 커리어
2015년 ~
A매치 56경기 6골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전반까지 압도적인 포스를 보였던 센터백. 현대 축구에서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비수로 거대한 피지컬, 웬만한 스프린터만큼 빠른 발,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과 맨마킹, 빼어난 빌드업 및 날카로운 태클 그리고 비상한 수비 라인 조율마저 가진 선수입니다.
반 다이크는 사우스 햄튼에서의 활약으로 17/18 시즌, 겨울에 리버풀로 이적했고 수비가 약점으로 지적받던 팀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모시키며 1차례의 PL 우승과 FA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에서 2차례의 준우승과 1차례의 우승으로 이끌며 팀을 명실상부한 유럽 최강으로 부상시켰습니다. 3번의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된 그는 18/19 시즌엔 PFA 올해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2위에까지 선정되는 역대급 퍼포먼스를 내뿜었습니다.
센터백
리뉘스 이스라엘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42년 3월 19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4년
A매치 47경기 3골
페예노르트의 최전성기의 대들보 역할을 하던 붙박이 주전 수비수. 철옹성같은 방어력, 특히 물 샐 틈 없는 맨 마킹 능력을 구사해 '철의 리뉘스'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그는 정교한 롱패스도 구사하며 흔히 구단 역대 최고의 수비로 평가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대활약을 연일 선보였고 4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유러피언컵, UE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데 카위프 홈구장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1970년과 1975년에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이스라엘은 빅이어를 들어올린 1969/70 시즌 발롱도르 10위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레프트백
아드리 판 티헬런
포지션:LB
국적:네덜란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57년 6월 16일
주요 클럽:RSC 안더레흐트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2년
A매치 56경기 0골
1980년대 '시계태엽 오렌지' 네덜란드 대표팀의 얼굴과도 같았던 주전 레프트백. 별명부터가 '못'이었을 정도로 송곳같은 슬라이딩 태클 능력을 장착했었으며 양발잡이었기에 능수능란한 크로스 지원으로 골도 많이 어시하던 아드리 판 티헬런이었습니다.
그는 스파르타 로테르담, 흐로닝언, PSV 같은 이름있는 네덜란드 리그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나 커리어의 최전성기는 벨기에의 클럽, 안더레흐트 소속으로 눈부셨으며 각 2차례의 벨기에 리그, 벨기에 컵, 벨기에 슈퍼컵 우승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기를 가슴에 풉고도 판 티헬런은 1988년 유로에서 주전으로서 앙리들로네컵 탈취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요니 렙
포지션:RM
국적:네덜란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51년 11월 25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73년 ~ 1981년
A매치 42경기 12골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네덜란드 국가대표 월드컵 최다 득점 순위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 '금빛의 천사' 요니 레프는 본업인 측면 돌파와 정교한 크로스도 뛰어났지만 번뜩이는 득점 감각을 지니고 있어 골도 꽤 넣는 센터 포워드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약스에서 데뷔해 당시 아약스의 간판 스타 중 한명이었던 스바르트의 노쇠화를 채웠고 피트 케이저르, 요한 크루이프와 3톱을 구성해 2차례씩의 리그, 컵 대회, 유러피언컵과 슈퍼컵 우승컵을 획득했습니다. 1972/73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에선 유베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3연속 우승의 도전을 완결 짓기도 했습니다. 후에 그는 더 좋은 조건의 해외로 나가 발렌시아, 바스티아, 생테티엔 소속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국기를 가슴에 달고도 렙은 화려한 공격진에 스며들에 2번의 월드컵 준우승을 주전으로 도왔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아리에 한
포지션:CM
국적:네덜란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48년 11월 16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72년 ~ 1980년
A매치 35경기 6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 아약스와 네덜란드의 전성기를 이끈 볼란치. 지능적인 차단, 안정적인 빌드업 능력과 원더골을 만드는 매서운 중거리포를 지녔던 아리에 한은 '봄바리 아리에'라는 별명으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수비 라인 조율력이 뛰어나 당시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이 원하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상대를 농락할 수 있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뿐이 아니라 리베로로도 그 기량을 유지했던 아리에 한은 아약스 소속으로 1969년부터 75년까지 6년을 뛰면서 3번의 리그, 3번의 컵, 유러피언컵 3연패, '트레블' 등에 성공했으며 안더레흐트와 스탕다르 리에주 같은 벨기에 클럽으로 이적해서도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컵위너스컵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오렌지 군단의 일원으로 한은 1974년 월드컵에서는 리베로로, 78년 월드컵에서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차례 조국을 월드컵 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빌리 판 더 케르크호프
포지션:CM
국적:네덜란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51년 9월 16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벤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5년
A매치 63경기 5골
1976 UEFA 유로 3위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서는 자국 최고봉의 자리에 오랜 기간 앉아있었던 명 박투박 미드필더. 공수 전반에 걸쳐서 막대한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었던 활동량과 패스, 수비, 슛팅까지 겸비했었던 판 더 케르크호프는,
15년간 적백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네덜란드 1부 리그를 씹어먹는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대회 우승, 1번의 UEFA컵 우승까지 실현시켰습니다. 특히나 은퇴를 코 앞에 두던 1987/88 시즌,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해 '트레블'이라는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함께한 바 있습니다.
플라잉 더치맨 호를 탄 그는 1976년 유로와 1978년 월드컵에서 각각 3위와 2위에 등극했으며 여담으로 그의 쌍둥이 형인 레네 판 더 케르크호프 역시도 주전 윙어로 뛰며 그와 같이 이 영광을 함께 했습니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
피트 케이저르
포지션:LM
국적:네덜란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43년 6월 14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4년
A매치 34경기 11골
1974 FIFA 월드컵 준우승
요한 크루이프와 스야크 스바르트에 버금가는 아약스의 전성기의 프랜차이즈 스타. 효과적인 드리블 능력, 세밀한 터치, 수준급의 왼발 킥, 우수한 연계와 스위칭 플레이로 이름을 떨쳐 '좌익의 천재'로 묘사되던 그는 크루이프의 조력자로 이른 바 '로얄 페어'로 불리는 공격 라인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침체기를 걷어내고 피에트 카이제르 - 요한 크루이프 - 스야크 스바르트로 이어지는 삼지창을 구성한 아약스의 축구는 총 6차례의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및 4차례의 KNVB 베이커 우승, 3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 등의 트로피를 암스테르담으로 가져왔습니다. 아약스 원클럽맨인 카이제르는 주장으로서 팀이 '트레블'을 기록한 1972년에는 발롱도르 5위에까지 랭크되기도 했습니다.
허나 국대에서는 페예노르트의 쿤 마울레인에게 밀려 한동안 후보 신세였으며 1974년 우승 당시에도 미헬스 감독과 불화로 인해 주전자리를 렌센브링크에게 내줬습니다.
스트라이커
아베 렌스트라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70cm
생년월일:1920년 11월 27일
주요 클럽:SC 헤렌벤
국대 커리어
1940년 ~ 1959년
A매치 47경기 33골
19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네덜란드 축구를 수놓은 역대급 골잡이. 프로 경력에서 나선 700경기에 중에 무려 730골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어마무시한 스코어러였던 렌스트라는,
자신이 살던 지역팀인 헤렌벤에서만 뛰며 네덜란드 북부 리그(에레디비시 창단 이 전) 우승컵을 9번이나 따냈고 각 2차례의 1부 리그 득점왕, 네덜란드 올해의 스포츠 선수상을 수상하는 자국 축구를 상징하는 심볼로까지 여겨지던 이였습니다.
대표팀에서도 이런 미친 골순도를 이어가던 그를 당시 해외 빅클럽들은 눈독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렌스트라는 많은 오퍼들 단호히 거절하며 헤렌벤에 잔류하는 선택을 했고 이에 '우리들의 아베'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파스 빌케스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23년 10월 13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46년 ~ 1961년
A매치 38경기 35골
1959년부터 1998년까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5경기)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자국 최고의 해외파 스타. 주로 오른쪽 인사이드 포워드로 뛰었던 그는 화려한 드리블 감각으로 중앙으로 돌파해 골을 넣는데 아주 능했던 선수로 전해집니다.
그는 당대 네덜란드 리그의 탑클래스 선수들과 달리 그 역량을 해외에서도 발산했었는데, 이 파스 빌케스는 세리에 A의 인테르 아래서는 1950/51 시즌 리그 준우승을 주도했으며 라리가의 발렌시아에서 뛰면서도 리그 3위를 이끈 53/54 시즌 스페인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아냈습니다.
4) 선 외 7인
7 players other than selection
배리 훌쇼프
주 포지션:CB
국적:네덜란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46년 9월 30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71년 ~ 1973년
A매치 16경기 6골
1970년대 아약스 최전성기의 공격진을 지탱해주던 강철 센터백. 뛰어난 스피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인 마킹, 섬세한 태클링, 그와 다르게 정확한 전진 드리블이나 롱패스 등 빌드업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던 훌쇼프는 '토탈 풋볼'이 원하는 스토퍼의 전형으로서 자신의 기량을 여감없이 발휘,
당시 팀의 호르스트 블랑켄부르크와 짝짜꿍의 센터백 듀오를 이루어 7차례의 리그, 4차례의 컵, 역사상 2번째 유러피언컵 3연속 우승을 이끄는 등 구단의 르네상스 시대에 큰 공헌을 해냈습니다. 특히 폼이 최고이던 1972년엔 발롱도르 7위, 73년에는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퍼크 판힐
주 포지션:CM
국적:네덜란드
신장:181cm
생년월일:1904년 1월 21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국대 커리어
1925년 ~ 1938년
A매치 64경기 0골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축구를 빛낸 오랑예 최초의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주로 하프백(오늘날의 수비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에 가까운 롤)에 위치했으나 뛰어난 시야나 기회 창출 능력을 가진 공격적인 패서 기질 또한 가지고 있어서 간혹 포워드로 기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국의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으며 네덜란드 에레지비시의 공식 출범 이전인 1920년대부터 30년대의 전성기를 이끌어 자국 리그 우승을 5번, 컵 우승을 2번 이루는 대업에 성공하게 됩니다.
더해 판힐은 축구 변방으로 평가받던 당대 네덜란드의 2차례의 월드컵(1934, 1938) 본선행을 이끈 이력도 있습니다.
빌리 판 데르 카일런
주 포지션:AM
국적:네덜란드
신장:181cm
생년월일:1946년 12월 6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벤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7년
A매치 22경기 7골
말할 필요가 없는 PSV 에인트호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천재적인 볼컨트롤과 실제로 골망도 찢곤 했던 자비 없는 폭발적인 슛팅, 감각적인 찬스메이킹을 토대로 자국 리그에서는 요한 크루이프 만큼의 영향력을 드러냈던 판데르카일런은,
당대 유럽 축구의 1티어 미드필더이자 1970년대 구단의 약진의 에이스로서 3번의 리그와 2번의 컵, 1977/78 시즌의 UEFA컵 우승 등을 견인했습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득점왕 3회, 에레디비시 역대 최다 득점 1위(311골), 에인트호벤 역대 최다 출장(648경기)기록 등등 그의 위업은 PSV 홈구장에 있는 그의 동상이 대신합니다.
그러나 판데르카일런은 당시 대표팀의 초월체였던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좋았고 자연스레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 결국 국제 대회 잔디는 커리어 내내 단 한번도 밟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스야크 스바르트
주 포지션:RW
국적:네덜란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38년 7월 3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0년 ~ 1972년
A매치 31경기 10골
17년간의 프로 커리어를 모두 AFC 아약스에 바쳤던 'Mr. 아약스'. 탁월한 드리블 능력, 통쾌한 슛팅 능력을 바탕으로 구단의 간판 윙어로 자리매김한 스바르트는,
아이아스의 품에서 1950년대 후반 데뷔해 1960년대 초중반 부진하던 아약스의 침체기를 이겨냈으며 황혼의 나이에는 빼어난 선수진과 1970년대 황금기를 일구는 희노애락을 다 겪어냈습니다. 헹크 그루트, 요한 크루이프, 피트 케이저르 등의 선수와 공격진을 이뤄본 원클럽맨 스바르트는 8차례의 에레디비시, 5차례의 KNVB컵, 3연속 유러피언컵 등의 수많은 우승을 경험, 클럽 커리어 종합 603경기 228골을 넣어 아약스 역대 득점 랭킹 3위, 역대 출장 순위 1위에 올라가있습니다.
코엔 물린
주 포지션:LW
국적:네덜란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37년 2월 15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국대 커리어
1956년 ~ 1969년
A매치 38경기 4골
'머위스의 클럽' 페예노르트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 또한 1960년대 중후반 ~ 70년대 초반 유럽 최고의 윙어이기도 했던 코엔 물린, 그는 뛰어난 전방 드리블 돌파에 이후 올리는 정확한 크로스에 능했던 선수였습니다.
스탠리 매튜스, 기린샤랑도 비교되었던 실력에 근면성실하기도 했던 그의 헌사에 힙입어 페예노르트는 17년간 크루이프의 아약스를 제치고 5번의 에레디비지에 우승, 2번의 KNVB컵 우승 2회, 각 1번의 유러피언컵 우승과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루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더해서 홈구장인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습니다.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주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76년 7월 1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4년
A매치 76경기 40골
1998 FIFA 월드컵 4강
'검은 반바스텐'으로 까지 불렸던 한 때 유럽 축구 전체를 대표하던 명 타겟터. 클루이버르트는 뛰어난 위치선정, 강력한 몸싸움과 양발 슛팅력, 타점 높은 파워 헤더, 준수한 테크닉 등으로 중무장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아약스의 1994/95 시즌 '무패 더블' 당시 챔스 결승에서 밀란을 상대로 골까지 넣은 주역이었던 그는 바르샤로 이적해서 루이스 피구, 히바우두와 막강한 3톱을 형성해 맹활약했고 1998/99 시즌 라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게으른 멘탈 때문에 이러한 임팩트를 연장시키지 못하고 2000년대부터는 내리막길만 탔습니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도 역시 1998 WC와 유로 2000에 참가해 네덜란드의 4강행을 이끌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득점왕과 올스타팀까지 선정되었습니다.
로빈 반 페르시
주 포지션:ST
국적:네덜란드
신장:187cm
생년월일:1983년 8월 6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국대 커리어
2005년 ~ 2017년
A매치 102경기 50골
2010 FIFA 월드컵 준우승
2014 FIFA 월드컵 3위
2010년대 초중반 EPL 무대를 대표하던 월드 클래스 스트라이커. 매섭고 날카로운 왼발의 슛 퀄리티와 우월한 유연성과 밸런스를 보유했던 반 페르시는 벵거의 지속적인 지도 아래 유리몸이었던 내구성도 고치고 연계까지 장착하며 완전체 스트라이커로 거듭났습니다.
기량이 만개했던 2011/12 시즌, 반 페르시는 팀을 멱살잡고 끌고 가는 역대급 퍼포먼스로 득점왕, PFA 올해의 팀, PFA 올해의 선수상,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쓸어담는 풀페르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시즌, 그는 곧바로 라이벌인 맨유로 이적하는 통수를 갈겼고 염원하던 리그 우승과 2연속 득점왕까지 결국 얻어낸 바 있습니다
또한 이런 판페르시는 오랑예의 일원으로도 2010월드컵 준우승, 2014 월드컵 3위의 주역이 되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 보여준 스페인전 역대급 다이빙 헤더골은 2014년을 대표하는 골이 되기도 했습니다.
5)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에디 피터스 그라플란트
핌 되스뷔르흐
얀 용블루트
피트 슈레이버르스
피트 더 후이
측면 수비수
코어 벨트호엔
위고 호벤캄프
벤 바인스테커스
얀 포르트플리트
베리 판 아를러
중앙 수비수
빔 라이스베르헌
아드리 판 크라이
휘프 스테번스
에르니 브란츠
마테이스 더리흐트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빔 얀센
프란스 테이선
얀 바우터스
아론 빈터르
필립 코쿠
마르크 판 보멀
나이젤 더 용
공격형 미드필더
로날트 더부르
게리 뮈렌
테오 더 용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윙어
마누스 브라우브도인트
레네 판 더 케르크호프
아르놀트 뮈렌
헤랄트 바넨뷔르흐
마르크 오버르마르스
센터 포워드
헹크 그루트
뤼트 헤일스
빔 키프트
지미 플로이트 하셀바잉크
로이 마카이
디르크 카윗
클라스얀 훈텔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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