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
케빈 쿠라니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90cm
생년월일:1982년 3월 12일
주요 클럽:FC 샬케 04
주요 커리어
DFL 리가포칼 우승 1회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회
A매치 52경기 19골
2008 UEFA 유로 준우승
한 때였지만 암흑기의 수렁에 빠졌던 독일 축구에 등장한 희망으로 여겨진 스트라이커. 박스 안에서 발휘되는 타점 높은 헤더, 우우한 발리 슛팅, 파괴적인 슛 파워를 자랑했던 쿠라니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어린 나이에 2002/03 시즌 15골을 넣어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다음 시즌도 4위를 주도, 결국 샬케로 이적해서도 5년간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06/07 시즌과 09/10 시즌의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스타팀 선정, 팀도 분데스 2위까지 올라갔습니다. 허나 그는 전성기를 펼칠 나이에 비교적 변방인 러시아로 이적하며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며 대표팀에서도 2차례의 유로에 참가했으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단 이탈하는 사건을 일으키며 요하임 뢰브 감독과의 불화를 겪었고 더 이상 발탁되지 못했습니다.
19위
게랄트 아자모아
주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0cm
생년월일:1978년 10월 3일
주요 클럽:FC 샬케 04
주요 커리어
DFB 포칼 우승 2회
DFL 리가포칼 우승 1회
UEFA 인터토토컵 우승 2회
A매치 43경기 6골
2002 FIFA 월드컵 준우승
2006 FIFA 월드컵 3위
인종차별과 심장병이라는 한계를 모두 이겨내고 최초로 독일 대표팀까지 승선했던 가나 출신의 스트라이커. 강력한 피지컬과 쫄깃한 몸놀림을 이용한 돌파력, 특유의 헤딩 능력을 가져 포스트플레이에도 능했던 아자모아였습니다.
하노버 시절, 이미 심장비대증이라는 난치병 때문에 은퇴를 고려받았음에도 제세동기까지 달고 뛰며 축구의 열정을 보인 그는 샬케의 푸른 유니폼을 장착하곤 무려 10년을 뛰면서 각 2차례의 포칼 우승과 인터토토컵 우승, 4번의 리그 2위를 달성하였습니다. 여담으로 아자모아는 2007년, 레비어 더비에서 돌문의 골키퍼 로만 바이덴펠러와 충돌 후 직접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듣는 피해를 입기도 했으며,
독일 시민권을 통해 대표팀에서도 2002년 월드컵 결승 출장과 06년 월드컵에서도 교체자원으로 4강행에 일조했지만 매번 네오나치를 비롯한 극우 세력들에게 차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자모아가 남긴 족적은 향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다인종 대표팀으로 독일은 결국 월드컵 우승도 차지하게 됩니다.
18위
카르스텐 양커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93cm
생년월일:1973년 8월 20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1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4회
DFB 포칼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33경기 10골
2002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 독일 축구 최고의 장신 스트라이커 중 하나. 헤딩골을 잘보여주지는 못했지만 190이 넘는 큰 키를 활용한 등져주는 플레이로 공을 내줬으며 덩치와 다르게 감각적인 슛팅 센스를 가졌던 인물입니다.
동독 출신으로서 비엔나를 거쳐 뮌헨에 왔던 양커는 조반니 에우베르, 메멧 숄, 마리오 바슬러와 같이 당시 뮌헨의 공격을 이끌며 4번의 리그 우승, 2번의 포칼 우승, 각 1번의 챔스 우승과 준우승을 도왔습니다. 그는 조커로 한일 월드컵에 참가해 2골을 넣어 결승행을 돕기도 했습니다.
17위
프레디 보비치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8cm
생년월일:1971년 10월 30일
주요 클럽:VfB 슈투트가르트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1회
A매치 37경기 10골
1996 UEFA 유로 우승
1990년대 중후반 슈바벤의 주포로 활약했던 인물. 큰 신장을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시도하도 공중볼을 따내며 발로 처리하는 득점 기술 역시 우수했던 프레디 보비치는,
지역 라이벌 팀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서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하였고 '마법의 삼각형'을 필드 위에 그리며 조반니 에우베르, 크라시미르 발라코프와 협업했으며 1995/96 시즌에는 리그는 10위에 그쳤지만 본인은 17골을 넣어 득점왕과 키커 선정 베스트 11에 뽑혔고 96/97 시즌 포칼 우승, 97/98 시즌 위너스컵 준우승 당시에도 5골로 결승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그는 전차 군단의 옷을 입고도 1996년과 2004년 유로에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 우승을 도운 바 있습니다.
16위
디터 회네스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8cm
생년월일:1953년 1월 7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5회
DFB 포칼 우승 3회
DFL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6경기 4골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의 전성기를 이뜬 전설, 울리 회네스의 친동생. 디터 회네스 역시도 형 못지 않은 기량을 겸비했던 선수로, 형과 다르게 박스 안에서 조금 더 득점에 치중했던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던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를 2부에서 1부로 승격시킨 뒤 바로 분데스에서 2위를 찍는 활약에 뮌헨으로 이적합니다. 그렇게 팀의 1980년대 부흥을 이끌어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에까지 헌액되어있는 그의 별명은 'Mr. 유로파컵'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번의 리그 우승 경험과 달리 그는 2차례의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각각 아스톤 빌라, 포르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쳐 유럽대항전 우승 경험이 전무후무합니다.
15위
오토 하르더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90cm
생년월일:1892년 11월 25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주요 커리어
독일 북부 챔피언십 우승 9회
독일 전국 챔피언십 우승 2회
A매치 15경기 14골
초창기 독일 축구를 대표했던 파워 포워드. 190cm와 87kg라는 거인같은 피지컬을 이용한 상대 수비수를 부숴버리는 몸싸움과 포스트 플레이, 골문 앞에서의 침착함과 뛰어난 발밑으로 당대 북부 지역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하르더입니다.
그는 아스비요른 할보르센, 알베르트 바이어 등의 뛰어난 선수들과 함부르크의 승리를 책임지며 대활약했고 378경기가 넘는 경기에서 387골을 기록했고 2차례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크고 작은 수많은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그가 넣은 387골을 우베 젤러에 이어서 구단 역대 최다 득점 2위이기도 합니다.
13위
슈테판 쿤츠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0cm
생년월일:1962년 10월 30일
주요 클럽: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1회
A매치 25경기 6골
1996 UEFA 유로 준우승
1980년대와 90년대를 향유했던 분데스리가의 특급 스코어러. 신기의 위치선정 능력과 캥거루 점핑을 이용한 탄력적인 헤더, 수비를 속이는 슛 타이밍을 가졌었던 슈테판 쿤츠였습니다.
그는 보훔, 빌레필트 등의 하위권 팀들에서 뛰었지만 그중 가장 갔던건 카이저슬라우테른 시절이었는데, 1989/90 시즌 포칼 우승, 다음 시즌 리그 우승까지 이끌며 독일 올해의 선수로 뽑혔으며 93/94 시즌도 팀은 리그 2위에 그쳤지만 본인은 득점왕을 안았습니다. 분데스 역대 득점 8위에 있는 쿤츠의 영향력은 팀에서 엄청나 그가 튀르키예로 떠나자 카이저슬라우테른은 바로 강등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로 1996에 낙점받아 주전으로 뛰었고 4강 잉글랜드전에서 결정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승부차기로 승부를 끌고갔고 조국은 결국 결승에서도 승리해 앙리들로네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3위
오트마어 발터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77cm
생년월일:1924년 3월 6일
주요 클럽: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주요 커리어
서독 서부 오버리가 우승 9회
독일 전국 챔피언십 우승 2회
A매치 20경기 10골
독일 축구의 전설 프리츠 발터의 친동생이자 1950년대 독일 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이던 인물. 양발과 머리,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서라도 골망을 흔드는 결정력이 일품, 프리킥 득점 능력마저 뛰어났던 선수였습니다.
오트마어 발터는 친형인 프리츠 발터와 같이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최초이자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무려 9차례의 서부 지역 리그 우승과 같이 5번의 전국 리그 결승에 진출해 1951년과 53년의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그는 337골을 넣어서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 앉아있기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2차 세계 대전에 참전에 얻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선수 시절 내내 고생했으며 결국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12위
디터 뮐러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2cm
생년월일:1954년 4월 1일
주요 클럽:1. FC 쾰른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프랑스 디비지옹 1 우승 2회
DFB 포칼 우승 2회
A매치 12경기 9골
1976 UEFA 유로 준우승
찬란했던 독일 축구의 황금기를 대변하는 또 한명의 뮐러. 바이에른 뮌헨의 게르트 뮐러처럼 뛰어난 위치선정, 민첩성을 가졌었으며 능구렁이같은 골대 앞에서의 마무리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디터 뮐러는 1970년대 중후반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으며 쾰른에서 볼프강 오베라트, 하인츠 플로에 등의 지원을 받아 1977/78 시즌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컵 대회 우승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76/77 시즌과 77/78 시즌은 2연속 리그 득점왕, 2연속 포칼 득점왕을 따냈으며 전자의 시즌 포칼 결승에서는 1.2차전에서 한골씩 넣으며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펼쳤습니다. 또한 그는 6골로 분데스리가 단일 경기 최다 득점자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보르도로 이적해서도 2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A매치 데뷔전을 유로 1976 4강전 후반에서야 가졌는데, 1대2로 지던 경기에서 그는 해트트릭을 성공시키며 유고슬라비아를 잡고 결승에 올랐고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결승에서도 득점으로 득점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뽑힌 바 있습니다.
11위
카를하인츠 리들레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0cm
생년월일:1965년 9월 16일
주요 클럽:SV 베르더 브레멘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42경기 16골
1990 FIFA 월드컵 우승
1992 UEFA 유로 준우승
1990년대 초중반 화려했던 독일 축구의 전성기를 같이 했던 명 스트라이커. '에어 리들레'라는 별명처럼 엄청난 점핑력과 위치선정을 토대로 헤더골을 터트리는데 능했던 선수였으며 이런 카를하인츠 리들레는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로도 뛸 수 있었습니다.
오토 레하겔의 러브콜을 받아 브레멘 계약서에 사인을 한 그는 주포로서 첫 시즌부터 18골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89/90 시즌에는 유에파컵 4강 진출에 큰 공을 세우는 활약은 대회 득점왕으로 이어졌습니다. 도르트문트로 보금자리를 옮겨서는 더 큰 물에서 2차례의 분데스 우승, 1996/97 시즌 챔스 결승에서는 멀티골을 넣으며 구단 사상 첫 빅이어의 일등공신으로 거듭났습니다.
전차 군단 하에서 리들레는 후보로 1990 월드컵 우승을 경험 후, 2년 뒤 유로에서 3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10위
울프 키르슈텐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72cm
생년월일:1965년 12월 4일
주요 클럽:바이어 04 레버쿠젠
주요 커리어
DFB 포칼 우승 1회
사족이 필요없는 바이어 04 레버쿠젠 역사상 최고의 선수.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다부진 체구와 괴물같은 점프력으로 올라오는 크로스를 족족 헤딩골로 연결했으며 뛰어난 위치선정을 토대로 발로 넣는 골도 당연히 잘했습니다.
키르슈텐은 동독 출신으로 통일 후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며 1992/93 시즌의 포칼 결승에서 결승골로 우승컵을 따냈으며 이후 3차례의 리그 득점왕과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 각 1번의 유에파컵과 위너스컵 득점왕까지 따내며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허나 우승복은 더럽게 없어 리그 2위만 4번, 막강한 멤버들과 동행했던 2001/02 시즌은 리그부터 컵, 챔스까지 한해 준우승만 3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동독 출신이었던 그는 통일 이후에도 독일 대표팀에 뛰면서 100경기를 소화, 허나 워낙 막강한 강자들에 밀려 후보로 2번의 월드컵에 참여했습니다.
9위
마리오 고메스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9cm
생년월일:1985년 7월 10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3회
튀르키예 쉬페르 리그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78경기 31골
2008 UEFA 유로 준우승
2010 FIFA 월드컵 3위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초반 분데스리가를 상징했던 자국의 대표 타겟터. 황소 같은 파워와 위협적인 공중볼 타격, 'Mr.신뢰'라는 별명에 맞는 우수한 결정력을 바탕으로 오랜시간 분데스 최상급 스트라이커였던 마리오 고메스는,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고공행진을 펼치며 2006/07 시즌 리그 우승을 견인함과 함께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결국 뮌헨 유니폼을 입게되었고 각 2차례의 분데스와 포칼 우승, 12/13 시즌에는 빅이어까지 품에 안았습니다. VDV 올해의 팀 3회, 리그 득점왕 1회, WK 2회 등의 업적을 낸 그는 아쉽게도 국대에서는 전성기 시절임에도 클로제, 포돌스키에게 밀렸으며 우승했던 14 월드컵에선 부상, 다음대회에서는 조별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8위
올리버 비어호프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91cm
생년월일:1968년 5월 1일
주요 클럽:우디네세 칼초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A매치 70경기 37골
1996 UEFA 유로 우승
2002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역사상 최고의 헤더 스페셜리스트 가운데 하나. 스피드도 느리고 발기술도 둔탁한 편이었으나 장신 수비수들 가운데서도 머리로 볼을 따내는 헤딩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었던 비어호프는,
희한하게도 자국 분데스리가에서는 실패만 맛봤으나 세리에 A의 우디네세 칼초 소속으로는 2부로 강등된 팀을 승격시킨 뒤, 1997/98 시즌 리그 득점왕과 독일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는 커리어 피크를 찍었으며 다음 시즌, 밀란으로 이적하자마자 곧 바로 스쿠데토를 들며 클럽 커리어 유일의 우승 트로피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후에는 부진하며 다시 내리막을 걸었던 그였지만 중고 신인으로서 대표팀에 합류한 1996년 유로에서는 결승전에서 2골을 넣으며 우승의 수훈갑이 되었으며 6년 뒤 월드컵 준우승 역시도 경험한 바 있는 비어호프입니다
그의 머리로 공을 올려라
- 알베르토 자케로니, 前 AC 밀란 감독 -
7위
호르스트 흐루베슈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8cm
생년월일:1951년 4월 17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3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A매치 21경기 6골
1980 UEFA 유로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중반 서독 축구와 함부르크 구단의 부흥을 만든 장신 스트라이커. 뛰어난 골 센스, 파워풀한 힘, '헤딩 야수'라는 이명에 걸맞는 역대급 헤더 능력으로 박스 안을 공포로 몰아넣던 흐루베슈는,
24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 무대에 발을 딛였으나 로트바이스 에센에서 터트린 포텐을 함부르크로 가져와 대활약합니다. 만프레트 칼츠의 크로스, 케빈 키건와의 투톱 듀오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 3차례의 리그, 1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이라는 성적으로 보답한 그는 각 1차례의 포칼, 리그 득점왕과 키커 선정 올해의 팀, 유러피언컵 준우승, 유로에서 6골을 넣으며 우승했던 1980년에는 발롱도르 6위까지 올랐습니다.
6위
클라우스 피셔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79cm
생년월일:1949년 12월 27일
주요 클럽:FC 샬케 04
주요 커리어
DFB 포칼 우승 2회
A매치 45경기 32골
2002 FIFA 월드컵 준우승
2006, 10 FIFA 월드컵 3위
2014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게르트 뮐러에 후광에 가려진 분데스리가의 역대급 스트라이커. 기막힌 위치 선정과 'Mr. 바이시클킥'이라 불릴 정도의 역대급 오버헤드킥 능력을 장착한 그는,
샬케로 이적해 포텐을 터트리며 미친듯한 폭격을 시작, 강등당해 쾰른으로 가기 전까지 디 쾨니스블라우엔의 2차례의 리그 준우승과 1차례의 포칼 우승을 선도했습니다. 1975/76 시즌, 분데스 득점왕의 주인공인 피셔는 당시 칼하인츠 루메니게, 게르트 뮐러, 유프 하인케스 등과 경쟁해 키커 베스트 11에 1차례, 포칼 득점왕에 2차례 올랐고 182골로 샬케 분데스 역대 최다 득점, 268골로 분데스 역대 득점 3위이며,
스위스와의 A매치서 역대급 바이시클킥을 넣고 리그 2위까지 오른 1977년에는 발롱도르 6위에 오르는 날파람을 보였습니다. 또한 그는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서도 주전으로서 결승행에 이바지했습니다.
5위
미로슬라프 클로제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4cm
생년월일:1978년 6월 9일
주요 클럽:SV 브레더 브레멘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2회
DFB 포칼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DFL 리가포칼 우승 1회
A매치 137경기 71골
2002 FIFA 월드컵 준우승
2006, 10 FIFA 월드컵 3위
2014 FIFA 월드컵 우승
FIFA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자에 빛나는 21세기 게르만의 다이브 봄버. 빠른 발로 무기를 삼는 뒷공간 공략과 본능적인 위치 선정 능력, 깔끔한 연계와 역대급 헤딩 능력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플레이 능력까지 장착한 어드밴스드 포워드였던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분데스리가의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의 활약으로 브레멘에서 포텐을 제대로 터트렸고 뛰어난 활약상을 이어갔으며 특히 2005/06 시즌, 분데스리가 MVP,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싹쓸이하는 역대급 해를 보냈으며 월드컵 활약까지 겹쳐 발롱도르 순위에서 7위에 올랐습니다. 후에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활약이 좋지는 않았지만 라치오로 이적해 2012/1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돕기도 했습니다.
독일 대표로도 4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해 모두 3위 이상의 성적을 낸 클로제는 2002 월드컵 사우디전, 헤딩 해트트릭도 하며 준우승에 기여, 06 월드컵에서는 5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3위, 14 월드컵에서는 16번째 골을 넣으며 월드컵 역대 최다골을 갱신해 독일의 24년만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또한 2차례 월드컵 올스타팀에 뽑힌 클로제는 71골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137경기로 역대 최다 출장 2위에도 올라있습니다.
실패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실패에 안주하는 것이 부끄러울 뿐.
- 미로슬라프 클로제 -
4위
루디 푈러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0cm
생년월일:1960년 4월 13일
주요 클럽:SV 브레더 브레멘
주요 커리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90경기 47골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 FIFA 월드컵 우승
1992 UEFA 유로 준우승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 유럽 축구를 수놓은 서독의 대표 공격수. 그는 천부적인 위치선점 본능과 깔쌈한 골 결정력의 소유자로 특히 다이빙 헤더에 일가견이 있어서 '날아다니는 독일인'으로 불렸습니다.
특유의 콧수염과 뽀글머리로 인해 '케테의 아주머니'라는 별명도 있던 푈러는 브레더 브레멘의 품에서 최절정의 기량을 뽐냈고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 83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 차지를 포함해 3번의 분데스 준우승에 크나 큰 공헌, 후에 로마에서도 90/91 시즌의 득점왕으로 코파 이탈리아 우승, UEFA컵에서 준우승을 만들며 득점왕, 다음 소속팀인 마르세유에서도 92/93 시즌 초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끄는 힘을 보였습니다.
이런 푈러는 국가대표로도 메이저 대회 본선 총 12골을 넣으며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투톱으로 1986 WC 준우승을, 위르겐 클린스만과 투톱으로 1990 WC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3위
위르겐 클린스만
주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83cm
생년월일:1964년 7월 30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UEFA컵 우승 2회
A매치 108경기 47골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 FIFA 월드컵 우승
1992 UEFA 유로 준우승
1996 UEFA 유로 우승
1980년대와 90년대에 거쳐서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인물. 클린스만은 뛰어난 점프력, 유연성을 바탕으로 박스 안에서 신체 어느 부위를 사용해서라도 골 네트를 흔드는데 아주 능했으며 득점뿐만 아니라 발밑, 판단력, 제공권, 기술적으로도 모두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저니맨 유형의 선수로 많은 클럽들을 돌아다녔고 슈투트가르트에서 UEFA컵 준우승과 리그 득점왕을, 인테르로 넘어가 '게르만 삼총사'를 구성해 1990/91 시즌 UEFA컵 우승, 이어진 토트넘에서의 94/95 시즌은 총 30골을 넣으며 PFA 올해의 팀, FWA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습니다. 97/98 시즌 후반기에는 당시 강등이 유력해보이던 토트넘에 다시 임대와 미친 골폭풍으로 팀을 잔류 순위까지 건져내기도 했던 그는 키커 통산 WK가 8회,
국가대표팀에서도 공격의 절대적 에이스로 각 1차례의 월드컵과 유로서 우승과 준우승을 모두 경험했으며 세계 챔피언이 된 1990 WC에선 올스타팀, 94 WC에선 실버슈를 수상받았습니다.
2위
우베 젤러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70cm
생년월일:1936년 11월 5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주요 커리어
서독 북부 오버리가 우승 9회
독일 전국 챔피언십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1회
A매치 72경기 43골
1958 FIFA 월드컵 4강
1966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 FIFA 월드컵 3위
함부르크 SV 구단 역사상 최고이자 1960년대 서독 축구의 간판 스타. 작은 키에도 뛰어난 밸런스, 유연성을 바탕으로 펼치는 시저스킥, 다이빙 헤더 등의 아크로바틱 플레이, 번뜩이는 기회 창출, 치명적인 마무리로 당대 최고의 퍼포먼스를 연출하던 완성형 공격수였습니다.
'우리들의 우베' 젤러는 함부르크 소속으로 북부 오버리가 우승 9회, 발롱도르 3위에 오르는 활약으로 1959/60 시즌의 독일 통합 리그 우승과 결승전 해트트릭으로 62/63 시즌의 포칼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또 그는 베켄바워에 이은 키커 랑리스테 역대 2위(WK 14회)일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임에도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다 거절한 뒤 약 20년을 팀에 헌사하며 507골로 구단 역대 최다 득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서독 국가대표팀에서도 월드컵 4대회 연속 2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젤러는 1958 월드컵 4강, 70 월드컵 3위, 66 월드컵은 올스타팀에 들며 준우승까지 올랐습니다.
축구의 비밀은 공이다.
- 우베 젤러 -
1위
게르트 뮐러
포지션:ST
국적:독일
신장:176cm
생년월일:1945년 11월 3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4회
DFB 포칼 우승 3회
유러피언컵 우승 3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62경기 68골
1970 FIFA 월드컵 3위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독일 축구가 배출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명. 타고난 위치선정과 빼어난 헤딩 능력, 천부적인 골 감각을 앞세워 어마무시한 득점 기록을 세운 '폭격기'였던 게르트 뮐러는 주워먹기를 잘한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는 드리블, 연계, 수비 능력도 우수해 간혹 미드필더로도 뛸 정도로 다능한 선수였습니다.
뮐러는 바이언을 최전성기로 이끌며 유러피언컵 3연패로 대표되는 12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더해서 본인은 분데스 득점왕 7회, 유러피언컵 득점왕 4회, 분데스 역대 최다 득점자(566골), 뮌헨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365골) 등 엄청난 기록들을 수두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72/73 시즌에는 메시에게 깨지 전까지 단일 시즌 최다 골 기록인 66골을 득점한 바 있으며 이러한 폭격 능력에 힘입어 당시 '람바참바' 서독 대표팀은 전성기를 맞이, 70 월드컵 3위 당시에는 10골로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유로 72에선 득점왕으로 우승을 주도, 대망의 74 월드컵에서는 결승전 네덜란드를 상대로 환상적인 결승골을 기록하며 월드컵까지 석권하는 눈부신 커리어를 작성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볼품 없는 공격수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그는 전술이 통용되지 않는 선수였다.
- 게르트 뮐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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