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위
펠릭스 마가트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53년 7월 26일
주요 소속팀:VfL 볼프스부르크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3회
DFB 포칼 우승 2회
DFL 리가포칼 우승 1회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회
2000년대 독일 프로 축구계를 대표하던 감독 중 한명. 독불장군의 성격, 경직된 뻥축구 전술, 엄격한 규율과 선수단 관리, 구시대적인 정신 주의를 강요하기에 '독재자'로 불리던 감독이었지만 오랜 행정가 생활로 믿음직한 팀 운영을 보이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 흘렙, 필립 람, 케빈 쿠라니 등을 데리고 '마가트 유치원'이라고 불린 강등권 슈투트가르트를 2002/03 시즌 리그 2위까지 올렸던 마가트는 결국 뮌헨으로 이적해서도 2연속 '도메스틱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후에는 경질되었지만 08/09 시즌 볼프스부르크에 부임해선 에딘 제코, 그라피테 등을 필두로 구단 최초의 리그 우승을 이룩하는 위업을 이뤄냈으며 샬케에서도 한번 더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던 그였지만 급변하는 전술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2010년대부터는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14위
데트마어 크라머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25년 4월 4일
주요 소속팀: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유러피언컵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1974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3위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활약했던 독일 축구의 명 지략가. '나폴레옹', '축구 교수'라는 이명에 걸맞는 전술 구사 능력을 보유했으며 커리어 동안 유럽 뿐만 아니라 축구 오지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등 무려 9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수석 코치, 코치, 기술 고문 등의 수많은 경험을 쌓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국 올림픽 대표팀에 부임해서 유럽식 선진 축구를 도입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기존 국내 코치진과의 심한 마찰로 1년 만에 팀을 떠났던 크라머로도 유명한데, 물론 그는 감독으로도 우도 라테크의 후임으로 프란츠 베켄바워가 있는 스쿼드를 물려받아 1974/75 시즌과 75/76 시즌까지 2연속으로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3연속 빅이어 획득이라는 역사의 마침표를 찍기도 했습니다.
13위
한지 플릭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65년 2월 24일
주요 소속팀: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2회
DFB 포칼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바이에른 뮌헨의 2번째 '트레블'을 이룩했던 2020년대 세계 최고 레벨의 감독 중 한명. 4-2-3-1이 주된 포메이션이고 강하고 전방위적인 콤팩트한 전방압박, 신속한 트랜지션으로 뛰어난 공격 축구를 구현하지만 플랜 A만 고집하고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져 항상 후반부에 매듭을 이상하게 짓는 단점이 있는 감독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 월드컵에서 요하임 뢰브의 수석 코치로서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수석 코치 자리를 떠나자 독일 대표팀은 급격히 내리막을 걷기도 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니코 코바치의 수석 코치로 있다가 그가 경질되자 감독 대행으로서 2020년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6관왕'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감독으로 다시 부임한 대표팀에선 2022 월드컵에서 조별 탈락, 유로 2024에서도 아쉽게 탈락하며 조국의 암흑기를 끊지는 못했습니다.
12위
유프 데어발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27년 4월 10일
주요 소속팀: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요 커리어
1980 UEFA 유로 우승
1982 FIFA 월드컵 준우승
1980년대 ~ 90년대 독일 축구의 간판과도 같던 3-5-2를 장착시킨 감독. 선수들의 활동량과 열정을 최우선으로 여겼으며 선굵은 공격과 백3를 단단히 세우는 수비 증진을 주로 삼았습니다.
본래 헬무트 쇤 감독의 수석 코치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기를 보좌한 그는 국가대표팀을 물려받아 카를하인츠 루메니로 대표되는 팀의 유로 1980 우승과 1982 월드컵 준우승을 이룩했습니다. 비록 후자의 대회에선 '히혼의 수치'라는 불명예를 얻었지만 후에 갈라타사라이로 넘어간 데어발은 튀르키예 축구의 선진화에 힘을 쓰기도 합니다.
필요하다면 아버지에게도 태클해야 한다.
11위
토마스 투헬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73년 8월 29일
주요 소속팀:첼시 FC
주요 커리어
프랑스 리그 1 우승 1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1회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쿠프 드 라리가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2010년대 중후반부터 유럽 축구 전체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한 전술 천재. UEFA A 라이센스 이론 시험을 최초로 만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감각으로 매번 팀의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줄이는 해결책을 제시하던 투헬은 탁월한 수적 우위,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자신의 전술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독특한 성격과 괴팍한 인격 때문에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항상 보드진과 마찰을 빚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마인츠에서 위르겐 클롭의 후임으로 팀의 상승세를 만들어 도르트문트로 이적, 2015/16 시즌 VDV 올해의 감독상 수상과 다음 시즌 포칼 우승을 주도했으며 파리에서도 2연속 리그 우승, 첼시에서는 마침내 2020/21 시즌 챔스 트로피는 드는 피크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첼시에서 경질되고 이적한 뮌헨에서는 안좋은 경기력으로 레버쿠젠에게 마이스터 샬레를 내줘 사실상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정상은 아니다.
- 구자철 -
10위
프란츠 베켄바워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45년 9월 11일
주요 소속팀:독일 국가대표팀
주요 커리어
프랑스 디비지옹 1 우승 1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1986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 FIFA 월드컵 우승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모두 조국의 월드컵 우승을 진두지휘했던 인물. 선수 시절 역사상 최고의 수비라 평가받았던 베켄바우어는 뛰어난 선수단 장악력, 특유의 단단하고 탄탄한 조직력 축구의 3-5-2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그가 만든 독일 대표팀은 1986년과 1990년 월드컵 결승에 올랐고 처음에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 아쉽게 분패했지만 차기 대회에서는 그 아르헨티나를 다시 만나 신승하며 복수하는데 성공하며 그는 역사상 두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끈 인물이 되었습니다. 또 후에는 잠시 친정팀인 뮌헨 감독을 맡아 1차례의 리그와 유에파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9위
요아힘 뢰브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60년 2월 3일
주요 소속팀:독일 국가대표팀
주요 커리어
2008 UEFA 유로 준우승
2010 FIFA 월드컵 3위
2014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2010년대 전차 군단의 자존심을 다시 드세웠던 당대 최고의 국가대표팀 감독. 당시 바이언의 전성기를 이끈 하인케스의 철퇴 축구와 펩의 점유율 축구를 적절히 채택해 대표팀에 이식시켰으며,
토니 크로스, 토마스 뮐러, 메수트 외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필립 람 등의 자원들을 적절히 기용해 세대 교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2008년 유로와 2010년 월드컵, 2012년 유로까지 천적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에게 자꾸 한끝 차이로 탈락했으나 2014년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잡고 우승에 성공, 조국의 통산 4번째 우승을 만들며 축구 강국으로의 자존심을 드높였습니다.
8위
제프 헤어베어거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897년 3월 28일
주요 소속팀: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요 커리어
1954 FIFA 월드컵 우승
1958 FIFA 월드컵 4강
'베른의 기적'에 도달했던 독일 축구의 아버지. 발 빠르게 주류였던 WM 포메이션을 국내에 도입했으며 기존의 영국식 뻥축구를 버리고 당시 샬케가 펼치던 '크라이셀'이라 불린 빠르고 짧은 숏패스 게임을 도입하여 선진 축구를 펼치던 제프 헤어베어거는,
1954년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와 멀었던 조국에게 트로피를 안겼으며 특히 결승전에선 '매직 마자르'라 불린 당대 최강의 팀 헝가리를 꺾는 '베른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이 우승은 몇몇 사회학자들에 의해 독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힐 만큼 의미 있는 일로 평가 받습니다.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이나 진행된다.
- 제프 헤어베어거 -
7위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19년 12월 5일
주요 소속팀: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2회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위대한 감독 중 한명. 뛰어난 맞춤 전술 준비, 재능을 골라내는 특별한 눈, 풋내기 선수들을 수위급으로 성장시키는 지도 능력까지 갖췄었던 헤네스 바이스바일러는,
글라트바흐의 유스팀을 재정비하 귄터 네처, 유프 하인케스, 베르티 포크츠 등의 라이징 스타들을 발굴해 화끈한 공격 축구를 펼쳐 구단을 세계 최고이던 바이언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키웠고 분데스 최초의 리그 2연패를 포함해 총 3번의 마이스터 샬레와 1번의 포칼, UE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후에 쾰른으로 이적해서도 자신의 능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1977/78 시즌 리그와 컵 '더블'을 이루는 구단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이름으로 설립된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는 위르겐 클롭, 한지 플릭, 토마스 투헬, 율리안 나겔스만 등 아직도 수많은 명장들을 배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6위
유프 하인케스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45년 5월 9일
주요 소속팀: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4회
DFB 포칼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21세기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게르만식 축구의 수장. 강한 압박과 빠른 템포의 선 굵은 공격 축구를 강조하면서도 유동적인 전술 유연성과 디테일한 부분 전술까지 터치하는 유형의 감독인 하인케스는,
1987년 바이언의 감독으로 부임해 2번의 마이스터샬레를 얻었고 1997/98 시즌엔 레알 소속으로 챔스 우승을 이끌었지만 리그에서는 4위에 그치며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여러팀을 돌아다니며 그저 그런 커리어를 쌓고 은퇴하는 듯 했지만 2011년 뮌헨의 감독직을 맡아 말년에 불을 뿜게 되는데, 2011년엔 '러너업 트레블'이라는 아쉬움에도 그 다음 12/13 시즌, 분데스 역대 최다승(29승), 역대 최소패(1패), 역대 최다 승점(91점), 역대 최단기간 우승 확정(28라운드), 2위와의 최다 승점차(25점), 역대 최소실점(18실점)등의 별에 별 기록을 다 깨부시며 리그 우승에 성공했으며 챔스에서도 바르샤를 4강에서 종합 7대0으로 박살내는 등 독일 축구 최초의 '트레블'을 이루는 파천황을 이뤘습니다.
5위
오토 레하겔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38년 8월 9일
주요 소속팀:SV 베르더 브레멘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3회
DFB 포칼 우승 3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2004 UEFA 유로 우승
클럽, 국대를 가리지 않고 언더독들을 우승자의 자리에 앉혔던 실리주의 축구의 장인. 어찌보면 답답한 승리를 위해서라면 경기력 따위는 과감히 포기하는 '빌라르도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레하겔은 단단한 방벽을 가진 백5 포메이션을 이용했으며 그리스 대표팀 시절에는 백4 앞에 무려 수비형 미드필더를 3명 두는 트리플 볼란치 전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2분에서 막 승격한 구단의 감독으로 와서는 10년 넘게 브레멘을 상위권팀으로 탈바꿈 시켰으며 루디 푈러, 윈톤 루퍼, 마르코 보데, 디터 아일츠 등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 기용한 덕에 2차례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3차례의 컵 우승에 성공했으며 1991/92 시즌 위너스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뮌헨에선 실패했지만 2부이던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승격시키자마자 97/98 시즌 바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끄는 기적을 만들었고 다음 시즌에도 챔스 8강에 올랐습니다. 레하겔은 여기서 그치지않고 2004년, 그리스 대표팀에 지휘탑에 앉아서도 최약체였던 팀을 3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는 극단적 수비 전술을 통해 우승에 도달, 그리스에서는 그를 '오토 레하클레스'라는 이명으로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4위
우도 라텍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35년 1월 16일
주요 소속팀: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8회
DFB 포칼 우승 3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최정상에 올렸던 1970년대 바이언의 수장. 당시 유행하던 '토탈 풋볼'과 독일 대표팀의 베켄바워를 '리베로'로 기용하는 혁신적인 전술들을 차용해 클럽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용시켰던 그는
파울 브라이트너,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등을 발굴하였고 기존의 게르트 뮐러, 프란츠 베켄바워 등을 데리고서 1970년대 뮌헨의 최전성기를 지휘, 6번의 분데스 우승과 1973/74 시즌의 빅이어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러나 다음 시즌 경질당한 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해선 유프 하인케스, 울리 슈틸리케, 베르티 포크츠 등과 함께 뮌헨을 잡고 2번의 리그 우승, 78/79 시즌의 유에파컵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나중에 바르샤에서 위너스컵 우승까지 경험하며 최초로 UEFA 주관 3대 대회를 모두 우승한 감독이 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3위
위르겐 클롭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67년 6월 16일
주요 소속팀: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2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1회
현시대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명 전술가. 높은 팀 전체의 라인과 선수들의 빼어난 활동량, 강력한 전방 압박을 바탕으로 볼을 뺐겨도 미친듯이 달려들어 다시 볼소유권을 탈취해오는 '게겐 프레싱'을 잘썼던 감독입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마인츠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재정난과 성적 부진으로 중하위권을 멤돌던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와 클롭은 뛰어난 리빌딩 능력으로 자신의 철학을 팀에 입혔고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게 된 팀은 전성기를 맞아 라이벌인 뮌헨을 제치고 리그 2연패 및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일궈냈습니다. 독일을 떠나 리버풀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팀에 부임한 클롭은 모하메드 살라, 사디오 마네,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버질 반다이크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사오거나 키워내는 안목으로 한번 더 스쿼드를 다졌고 도르트문트 시절 만큼의 강력한 압박은 잠시 치워두고 유연성 있는 전술까지 보이며 2018/19 시즌 빅이어 획득으로 구단의 부활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19/20 시즌에는 염원하던 PL 트로피를 콥들에게 안긴 공로는 빌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 바로 아래에 위치하기 충분한 위업입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Normal One)입니다.
- 위르겐 클롭 -
2위
헬무트 쇤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15년 9월 15일
주요 소속팀:독일 국가대표팀
주요 커리어
1966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 FIFA 월드컵 3위
1972 UEFA 유로 우승
1974 FIFA 월드컵 우승
1976 UEFA 유로 준우승
1970년대 서독 축구의 최전성기 지휘했던 국보급 명장. 미드필더에 가까웠던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처음 '독일식 리베로'(전까지 있었던 이탈리안 리베로는 단순히 수비라인 뒷공간을 커버하는데 그쳤으나 이와 다르게 게르만 리베로는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프리롤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했다)로 기용했으며 그가 고안해낸 이 리베로의 중요성은 세계 축구계 전술적 흐름에서 1990년대까지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군림했었습니다.
헬무트 쇤의 지휘에 힘입어 서독은 짱짱한 멤버들과 1966년 월드컵 준우승, 1970년 월드컵 3위를 달성했고 1972년부터 본격적인 '리베로 시스템'과 공격적인 패스 축구를 도입해 유로 1972, 1974 월드컵 우승과 유로 1976 준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25경기 16승으로 월드컵 최다 출장 및 최다 승리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헬무트 쇤의 팀은 축구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독일인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어떤 교과서에도 없는 움직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1위
오트마어 히츠펠트
포지션:MANAG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49년 1월 12일
주요 소속팀: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7회
DFB 포칼 우승 3회
DFB 리가포칼 우승 4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말이 필요없는 독일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 1.2차 세계 대전에서 군단장을 맡은 오토 히츠펠트의 친조카인데다가 특유의 뛰어난 구단 장악력을 가진 것에 기인하여 세간에서는 그에게 '장군'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리베로를 활용하는 백3 시스템으로 강한 압박과 수비적인 축구를 펼치던 히츠펠트는,
중하위권이던 돌문을 성장시켜 분데스리가 2연패, 최초의 챔스 우승 등을 달성하며 라이벌 바이언을 누르고 독일 최고, 아니 유럽 최고의 자리에 팀을 앉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챔스 우승 직후 구단 프런트와의 불화로 인해 바로 라이벌인 뮌헨으로 떠났고 슈테판 에펜베르크를 필두로 한 멤버들과 5차례의 분데스 우승, 3차례의 포칼 우승, 1차례의 챔스 우승을 진두지휘했습니다. 2000/01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뮌헨은 25년만 염원하던 빅이어를 안았으며 히츠펠트는 UE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최초로 서로 다 분데스리가 클럽에서의 챔스 우승을 이끈 감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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