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가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잉글랜드

잉글랜드 축구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12. 20.
반응형

15위

찰리 조지 잉글랜드

찰리 조지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50년 10월 10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1경기 0골

 

1970년대 아스날의 아이콘과 같던 원조 '하이버리의 왕'. 양발에서 뿜어내는 매혹적인 킥 능력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골도 잘 넣었고 안정적인 연계 플레이를 가지고 있었던 공격형 미드필더 찰리 조지는 20세기 아스날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70년대 상반기 거너스의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며 1970/71 시즌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따내는 '더블'을 이룩, 특히 FA컵 결승 리버풀전에서 골을 넣고 바닥에 드러눕는 셀레브레이션은 아스날의 오랜 팬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술안줏거리입니다. 후에 더비 카운티에서도 유러피언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해 1975/76 시즌 그는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14위

앨런 허드슨 잉글랜드

앨런 허드슨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51년 6월 21일

주요 클럽:스토크 시티 FC

주요 커리어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2경기 0골

 

1970년대 잉글랜드 1부 리그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명이었지만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던 비운의 선수. 재빠른 드리블과 슛팅을 쏘면서 최대 장기인 롱패스를 활용한 찬스메이킹에 도가 텄던 허드슨은,

 

그는 당시 첼시의 핵심 자원으로 뛰며 1970/71 시즌 위너스컵 우승에 당도했고 이를 바탕으로 스토크 시티로 이적해 '노동자의 발레'라 불린 아름다우면서 많이 뛰는 축구를 가능케 해 2연속으로 PFA 올해의 팀에 들어가는 커리어 피크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옵션에도 A매치 소화가 겨우 2경기 밖에 되지 않는건 미스테리입니다.

 

13위

폴 머슨 잉글랜드

폴 머슨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68년 3월 20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21경기 3골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아스날의 전성기를 이끈 공격형 미드필더. 2선과 세컨탑 자리에서 보여주는 훌륭한 발재간과 탁월한 키패스를 뿌리던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였으나 알코올 중독과 도박 중독으로 물의를 빚었고 실제로 그는 정신을 못차리고 이런 비판을 비꼬는 술고래 세레머니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아스날에서 10년을 뛰었던 머슨은 벵거 이전 조지 그레이엄 체제에서 1988/89 시즌 PFA 올해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장, 이안 라이트에게 골을 떠먹이며 2번의 리그 우승, 각 1번의 FA컵, 리그컵, 위너스컵 우승을 견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재능에도 말년부터는 계약 문제와 자기 관리 이슈로 인해 쓸쓸히 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12위

바비 롭슨 잉글랜드

바비 롭슨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33년 2월 18일

주요 클럽:풀럼 FC

주요 커리어

A매치 20경기 4골

 

감독으로 엄청난 명성을 쌓았던 인물이지만 선수로도 당대 잉글랜드 탑티어로 꼽히던 미드필더. 강건한 피지컬과 뛰어난 패스로 게임을 조립하고 위협적인 슛팅을 쏴 커리어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후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바비 롭슨은 풀럼 FC에서 조니 헤인스, 베드포드 제저드와 '판타스틱 트리오'라고 불린 위협적인 공격 삼지창을 구성해 잉글랜드 1부 리그를 풍미했으며 이후에 클럽 레코드를 갈아치우고 WBA로 이적하여 주장도 맡으며 다년간 활약, 1962/63 시즌 다시 친정팀인 풀럼에 복귀했으나 앨런 멀레리, 로드 마니쉬를 팀이 매각하며 우승과는 더욱 더 멀어졌습니다.

 

또한 1958 월드컵은 지역 예선에서 탈락, 62 월드컵은 참가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경기를 못 뛴 아픔도 있었습니다.

 

11위

피터 브로드벤트 잉글랜드

피터 브로드벤트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7cm

생년월일:1933년 5월 15일

주요 클럽: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FA 채리티 실드 우승 1회

A매치 7경기 2골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퍼스트 디비전을 빛낸 '그라운드 위의 발레리나'. 별명처럼 우아한 볼터치와 아름다운 플레이메이킹을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필드 위에 그렸던 브로드벤트는,

 

울버햄튼 왕조에 합류하여 최전성 시대를 같이 항해하였고 3번의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959/60 시즌 FA컵 우승을 이뤘고 유러피언컵 창설 전까지 꽤 중요하게 여겨지던 친선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나 부다페스트 혼베드 같은 최강팀들을 무찌른 이력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활약에 대해 당시 잉글랜드 축구 독보적인 입지의 스탠리 매튜스까지 그를 중심으로 대표팀을 짜야한다 주장했지만 이상하리만치 국대에선 기용받지 못했던 브로드벤트입니다.

 

10위

맷 르티시에 잉글랜드

맷 르티시에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68년 10월 14일

주요 클럽:사우스햄튼 FC

주요 커리어

A매치 8경기 0골

나폴리의 마라도나, 삼프도리아의 만치니처럼 '사우스햄튼 FC의 신'으로 불렸던 남자. 부족한 활동량을 가졌지만 우아한 드리블 돌파와 아름다운 킥 능력, 패스까지 뽑아냈던 르티시에는 미드필더 최초로 PL 100호골을 돌파했을 만큼 득점 능력 또한 뛰어났던 트레콰르티스타였습니다.

 

매너와 성품 또한 수려해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는 매번 강등권이던 팀을 멱살잡고 이끌어가며 소튼이 생존왕으로 불리는데에 굉장히 큰 공을 세웠으며 1993/94 시즌엔 리그에서만 25골을 넣으며 당시 팀 득점의 절반 이상(공격포인트는 무려 70%)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94/95 시즌에는 리그 도움왕과 PFA 올해의 팀까지 뽑혔던 그는 이러한 공로 때문에 차비 에르난데스의 우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반박이 불가능한 사우스햄튼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립니다.

 

9위

토니 커리 잉글랜드

토니 커리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50년 1월 1일

주요 클럽:셰필드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A매치 17경기 3골

1970년대 잉글랜드 퍼스트 디비전을 상징했던 공격형 미드필더 및 플레이메이커. 토니 커리는 당시 잉글랜드에 흔하지 않던 테크니션 유형의 선수로 유려한 볼컨트롤을 보였고 특히 박스 근처에서의 위협적인 킥을 통해 만드는 공격 포인트 생산이 빛나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8시즌간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뛰면서 2부라는 수렁에 빠진 팀을 3시즌 만에 건져냈고 1973/74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 선정, 74/75 시즌에는 리그 6위를 찍는 구단의 의미 있는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팀이 강등되며 리즈로 이적했지만 그는 이런 활약상을 바탕으로 셰필드 125주년 행사에서 팬들로부터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도 꼽혔습니다. 리즈 유니폼을 입은 커리는 78/79 시즌 한번 더 PFA 올해의 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8위

트레버 브루킹 잉글랜드

트레버 브루킹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4cm

​생년월일:​1948년 10월 2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2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A매치 47경기 5골

1970년대 초반 ~ 80년대 초반 잉글랜드 리그를 풍미한 공격형 미드필더의 일인자. 타고난듯한 드리블 페인팅, 골대 구석을 노리는 위협적인 슛팅과 날카로운 찬스메이킹을 보였던 인물입니다.

 

트레버 브루킹은 마틴 피터스라는 선배 레전드에게 No.10 역할을 이어받아 망치 군단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1975/76 시즌의 위너스컵 준우승, 2차례의 FA컵 우승, 1980/81 시즌 리그컵 준우승을 달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웨스트햄 올해의 선수상을 5번, 2부 리그 PFA 올해의 팀에 3번, 1부에서는 2번 선정된 진정한 레전드였던 그를 기리기 위해 구단의 홈구장에는 트레버 브루킹 경 스탠드로 불리는 좌석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7위

데이비드 플랫 잉글랜드

데이비드 플랫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66년 6월 10일

주요 클럽:아스톤 빌라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62경기 27골

1990 FIFA 월드컵 4강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달렸던 유수의 공격형 미드필더. 프랭크 램파드 이전에 미들라이커라는 칭호에 어울리던 1선 침투 능력과 득점 감각, 발군의 연계 플레이가 장점이던 선수였던 데이비드 플랫,

 

그는 4부리그였던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다년간 활약하던 선수였지만 1987/88 시즌 2부였던 빌라로 이적해 팀의 승격을 도왔으며 스텝업을 거듭해 에이스로서 다음 시즌의 리그 2위, 다다음 시즌, 무려 리그 19골을 넣어 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다음 시즌 세계 최고 리그이던 세리에에 입성하여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93/9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97/98 시즌에는 국내로 복귀해 아스날의 '더블'에도 일조했으며,

 

대표팀 멤버로는 1990 월드컵 4강 당시 3골을 넣었고 유로 96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습니다.

 

6위

윌프 매니언 잉글랜드

윌프 매니언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18년 5월 16일

주요 클럽:미들즈브러 FC

주요 커리어

A매치 26경기 11골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서 전설을 써내려갔던 당대 잉글랜드 리그와 미들즈브러의 태양. 주로 인사이드 포워드 위치에서 뛰어난 경기 시야와 정교한 드리블,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창의적인 패스를 뿌리는 선수로서 금발을 날리며 뛰어다녀 '골든 보이'라는 이명으로 불렸습니다.

윌프 매니언은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368경기에서 99골을 기록하는 등 맹렬히 활약하며 전쟁으로 리그가 수차례 중단되었지만 꾸준한 폼 유지와 특유의 겸손하고 헌신적인 태도로 팬들의 믿음을 한몸에 샀습니다. 결국 이러한 위인을 기리기 위해 미들즈브러 구단은 홈구장 앞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1950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조별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이를 마무리 했습니다.

 

5위

마틴 피터스 잉글랜드

마틴 피터스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4cm

생년월일:1943년 11월 8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풋볼 리그컵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67경기 20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잉글랜드 최초의 월드컵 우승에 있어서 바비 찰튼 만큼 중요했던 1960년대 유럽 최고 수준의 공격형 미드필더. 마틴은 양발에서 조준되는 정교한 패스 솜씨와 뛰어난 드리블 실력, 박스 침투로 골을 넣는 능력까지 뛰어나 윙어, 중앙 미드필더, 센터 포워드까지 소화했었던 선수였습니다.

피터스는 토트넘과 노리치 시티 소속으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특히 웨스트햄 유니폼을 입고서는 1964/65 시즌 최초의 유럽 대회 우승인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다음 시즌에는 리그컵 준우승까지 이룩해냈습니다. 토트넘 소속으로도 리그컵 우승 2회, 유에파컵 준우승 1회 등을 만든 그는 1968년과 69년 월드 사커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삼사자 군단 아래 알프 램지 감독의 4-1-3-2 포메이션에서 3의 측면 자리, 현대로 따지면 메짤라, 하프윙에 가까운 역할로 뛰면서 공격을 풀어나갔고 그의 덕에 잉글랜드는 유로 1968에서 3위, 66 월드컵에서는 우승 트로피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4위

글렌 호들 잉글랜드

글렌 호들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57년 10월 27일

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프랑스 디비지옹 1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UEFA컵 우승 2회

A매치 53경기 8골

1980년대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축구의 얼굴마담과도 같던 월클 공격형 미드필더. 날렵한 몸놀림, 우아하고 부드러운 드리블 테크닉을 이용해 돌파하는데 능했던 호들은 더불어 공격 지역에서의 연계와 위협적인 킬패스도 매우 잘 뿌리던 No.10 유형의 선수였습니다.

 

그는 당시 토트넘이 아끼는 특급 유망주로 데뷔했고 2부로 강등된 팀을 1977/78 시즌, PFA 신인상을 타는 활약으로 토트넘을 다시 1부에 올려놓았습니다.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이후 80/81 시즌, 81/82 시즌 2연속 FA컵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이끌고 무려 5차례나 PFA 올해의 팀에 들어가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그이지만 '헤이젤 참사'의 여파로 잉글랜드 팀들이 유럽 대회에 못나가자 아쉽게 팀을 떠나는 선택을 했던 호들입니다. 벵거의 부름을 받아서 간 모나코에선 87/88 시즌 리그 우승과 90/91 시즌 컵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3위

조니 헤인스 잉글랜드

조니 헤인스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34년 10월 17일

주요 클럽:풀럼 FC

주요 커리어

1954년 ~ 1962년

A매치 56경기 18골

 

런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 펠레가 직접 본 선수 중 가장 패스를 잘했다고 극찬한 양발에서 나오는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컨트롤 능력을 가졌었던 희대의 플레이메이커 헤인스는,

 

1950년대 ~ 60년대 풀럼 FC를 책임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서 20년 가까이 클럽에서만 뛰면서 구단 통산 역대 최다 출장 1위,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그의 혈혈단신에도 아쉽게 약팀이던 풀럼은 트로피를 얻지는 못했으나 그의 활약상 만큼은 엄청나 1961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까지 오르는 선 굵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풀럼 홈구장에 동상까지 있는 헤인스는 또한 축구 역사상 최초로 주급 100파운드를 받은 선수로, 삼사자 군단의 일원으로서 3번의 월드컵에 참가했고 빌리 라이트의 주장완장을 이어받기도 했습니다.

 

2위

폴 개스코인 잉글랜드

폴 개스코인

포지션:AM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67년 5월 27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스코티시컵 우승 1회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57경기 10골

1990 FIFA 월드컵 4강

잉글랜드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재능, 최고의 악동, 최고의 테크니션. 떡 벌어진 떡대를 이용한 단단한 피지컬과 밸런스, 그와 다르게 섬세한 전진 드리블로 필드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돌격대장이었던 그는 키패스, 프리킥, 지능적인 플레이까지 잘했습니다.

 

굵고 투박하기만 하던 잉글랜드 축구의 최초이자 마지막 판타지스타로 평가받는 '가자'는 다혈질적인 성격과 또라이 기질, 부상 등이 발목을 잡아 그 재능을 오래 선보이지 못했지만 토트넘에선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대활약하며 1990/91 시즌, FA컵 우승으로 팀을 인도합니다. 해당 시즌 FA컵 득점왕과 PFA 올해의 팀도 선정되었으며 후에 라치오, 레인저스로 넘어가서도 맹활약, 특히 후자 소속으로 리그 2연패를 이끌며 95/96 시즌 SP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삼사자 엠블럼을 달고 공격의 핵 of 핵으로써 활약한 개스코인은 1990년에 대회 베스트 일레븐급 활약으로 4강을 이끌어 발롱도르 4위에 올랐으며 유로 1996에서도 베스트 11에 들어 대회 4위를 이끌었습니다.

즐기는 것을 잊지마라.
- 폴 개스코인 -

 

1위

바비 찰튼 잉글랜드

바비 찰튼

포지션:CM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37년 10월 11일

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A매치 106경기 49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영국 축구의 위상을 한단계 드높인,'축구 종가'를 대표하는 위인. 양발에서 나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거리슛, 드넓은 시야를 이용한 정교한 롱패스,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돌파 능력 등을 선보이면서도 뛰어난 수비 가담과 활동량, 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 덕에 '그라운드의 노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찰튼은 잘나가던 팀을 몰락시킨 '뮌헨 참사'라는 끔찍한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런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팀을 3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 1968/69 시즌에는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상대로 결승에서 2골을 넣으며 유러피언컵 우승으로 이끌어 바닥까지 추락한 맨유의 위상을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맨유 역대 최다 득점, 출장 순위 2위에 빛나는 그는 65/66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도 19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MVP 수준의 퍼포먼스로 왕좌에 앉았고 유로 68에서도 3위에 안착하는 최고의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찰튼은 1967년과 68년엔 발롱도르 2위에 올랐고 1966년엔 영광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바비찰튼 명언자기 자신을 이기려는 것 보다 더 큰 도전은 없다.
- 바비 찰튼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