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위
스탠 피어슨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19년 1월 1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8경기 5골
1940년대 중후반 ~ 50년대 초반 맨유를 상징하던 공격수로 불린 인사이드 레프트. 뛰어난 발재간과 볼컨트롤, 연계에다가 헤딩까지 잘했다고 전해지는 그였습니다.
당시 맨유는 전쟁 적국이었던 독일군의 공습으로 올드 트래포드가 파괴되자 지역팀 맨시티의 홈구장이었던 메인 로드에서 경기를 치뤘는데 그는 특히나 메인 로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잭 로울리와 협업하여 1947/48 시즌 FA컵 우승과 51/52 시즌에는 41년만인 리그 우승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피어슨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기록하기 전까지 리버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유일한 맨유 소속 선수였습니다.
14위
렌 섀클턴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22년 5월 3일
주요 클럽:선덜랜드 AFC
주요 커리어
A매치 5경기 1골
종전 후 혼란스러운 잉글랜드 축구계를 상징했던 '축구계의 광대 왕자'. 보포스 박격포와 비견되던 파워 슛팅과 절묘한 패스 능력, 윙어도 소화하는 현란한 테크닉과 바디 스워브를 통해 공격 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물론 렌 섀클턴은 본인의 기술을 맹신해 상대를 도발하고 볼을 끄는 이기적인 플레이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2부였던 뉴캐슬의 에이스로 팬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그는 선덜랜드로 이적 후, 9시즌간 절대적인 존재로서 로커 파크 위를 날아다녔고 1949/50 시즌에는 리그 3위라는 당시 최고 성적을 마킹, 51/52 시즌에는 종합 22골을 넣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3위
토니 우드콕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52년 12월 6일
주요 클럽:노팅엄 포리스트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2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A매치 42경기 16골
19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 초중반까지 잉글랜드 풋볼 리그의 A급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이. 양발을 이용한 정교한 슛팅력과 뛰어난 테크닉과 연계를 가져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자국의 에이스 케빈 키건에게도 크게 꿇리지 않았던 토니 우드콕은,
노팅엄 소속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슈퍼 루키로서 최전성기에 기여하며 5개의 타이틀에 기여, 1977년 노팅엄 올해의 선수, 리그 우승에 성공했던 77/78 시즌에는 PFA 신인상까지 가져갔습니다. 그는 후에 북런던 연고의 아스날로 이적해 1980년대 초중반을 받들며 거너스의 에이스가 된 기간도 있었습니다. 그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서도 1980년 유로와 82년 월드컵에 참가했습니다.
12위
트레버 프랜시스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54년 4월 19일
주요 클럽:버밍엄 시티
주요 커리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52경기 12골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서 잉글랜드 최고 수준의 활약을 했었던 완성형 포워드. 빼어난 오프사이드 트랩 뚫기와 굴지의 골결정력, 뛰어난 드리블 돌파까지 가져 최전방 외에도 양쪽 윙어로도 뛸 수 있었던 트레버 프랜시스는,
2부이던 버밍엄 시티를 1부로 끌어올리고 2연속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된 초신성이었으며 영국인 최초로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받으며 노팅엄으로 이적해서도 구단의 최절정기에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특히 1978/79 유러피언컵 결승에서는 결승 헤딩골까지 넣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그해 7위까지 올랐고 후에 별들을 모으던 세리에의 삼돌이로 이적해 84/85 시즌 득점왕으로서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까지 드는 포효를 내지릅니다.
11위
재키 밀번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24년 11월 5일
주요 클럽: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아일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3회
아일랜드 컵 우승 1회
A매치 13경기 10골
앨런 시어러 등장 전까지 뉴캐슬 구단 역대 최고의 인물 자리를 공고히 지켰던 거성. 뛰어난 드리블, 연계 플레이는 물론 감각적인 헤더골도 뽑아내던 재키는 1950년대 클럽의 최전성기를 이끈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19세에 데뷔해 12시즌간 맥파이스 유니폼을 입고 뛰며 3시즌을 제외하고 모두 두자릿수 골을 기록할 만큼 꾸준하기도 했던 그의 활약에 뉴캐슬은 무려 3번의 FA컵 우승 트로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1954/55 시즌, 결승전에선 맨시티를 상대로 1분도 안되어서 그림같은 헤더골을 넣기도 했으며 이러한 재키 밀번의 위상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 구장 밖에 있는 그의 동상이 대신 설명합니다.
10위
레이 카터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69cm
생년월일:1913년 12월 21일
주요 클럽:선덜랜드 A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3회
A매치 13경기 7골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 금자탑을 쌓았던 인물. 볼도 잘다뤘지만 특이점이라면 뛰어난 지시 능력과 아군이 실수하면 관중도 들릴 만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행동은 이른 바 '카터 로어'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아스날의 전성기을 저지하는 선덜랜드의 1935/36 시즌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다음 시즌에는 FA컵 결승에서도 결정적인 활약으로 우승도 따냈으며 전쟁으로 리그가 멈췄다가 돌아온 뒤에는 더비 카운티 소속으로 45/46 시즌 한번 더 FA컵의 왕좌에 앉았습니다.
9위
빌리 워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897년 10월 29일
주요 클럽:아스톤 빌라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18경기 9골
1920년대, 잉글랜드 리그는 물론 유럽 최고 레벨의 공격수. 절륜의 슛팅 능력으로 골을 뽑아내면서도 메이트들에게 전달하는 찬스 메이킹, 단단한 신체까지 겸비했던 빌리 워커는,
아스톤 빌라의 품에서 암흑기에도 고군분투해 비록 리그 우승은 못하고 2위만 2번했으나 1919/20 시즌에는 FA컵 트로피를 탈환하며 이를 달랬습니다. 244골로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 앉아있는 워커의 당시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당시 동료였던 토미 스마트의 다음 말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팀은 빌리 워커와 10명의 들러리들이다."
8위
피터 비어즐리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61년 1월 18일
주요 클럽: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59경기 9골
1990 FIFA 월드컵 4강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최고로 손꼽히던 명 세컨드 스트하이커. 특유의 잔발 드리블과 명민한 연계 플레이, 날카로운 슛팅, 세컨탑 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까지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능력치를 보유했던 비어즐리는 특유의 외모 때문에 '노트르담의 곱추'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런 '콰지모도'는 2부 리그에 있던 뉴캐슬을 곧 바로 승격시키고 1986/87 시즌 PFA 올해의 팀에 드는 등 클럽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다음 시즌 리버풀로 떠나 존 반스와 뛰며 2번의 리그 우승, 88/89 시즌의 FA컵 우승을 만들었습니다. 93년 친정 뉴캐슬에 다시 돌아와서는 앤디 콜, 앨런 시어러와의 조합으로 2차례의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을 이끈 바 있습니다. 총 4번의 PFA 올해의 팀에 들었던 비어즐리는,
대표팀에서도 게리 리네커가 극찬한 파트너로서 1986 월드컵 8강, 1990 월드컵 4강 등의 호성적을 도왔습니다.
7위
데이비드 잭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9cm
생년월일:1898년 4월 3일
주요 클럽:볼턴 원더러스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3회
A매치 9경기 3골
볼턴 원더러스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자 아스날의 황금시대를 이끈 오호대장군 중 한명. 드리블, 패스, 슛 모두 빼어늤다고 전해지는 인사이드 포워드, 즉 지금의 세컨드 스트러이커였으며,
데이비드 잭은 1922/23 시즌과 25/26 시즌, 이렇게 2차례 볼턴을 FA컵 우승으로 인도하였고 특히 두대회 결승에서 모두 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이런 뛰어난 활약에 그는 최초로 1만 파운드라는 이적료를 기록하며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아스날로 이적했고 더 업그레이드된 공격수들과 뛰며 3번의 리그 우승과 1929/30 시즌 FA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6위
스탠 모텐슨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21년 5월 26일
주요 클럽:블랙풀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25경기 23골
스탠리 매튜스라는 레전드와 함께 당당히 블랙풀의 홈구장에 동상으로 남아있는 전설. 모텐슨은 '일렉트릭 힐'이라는 별명처럼 엄청난 스피드와 어느각도에서도 위협적인 슛팅을 쏘던 인물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블랙풀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보냈던 그는 스탠리 매튜스의 도움을 받아 당시 팀의 주포로 활약, 11시즌을 팀 내 최다 득점자로 보냈고 1950/51 시즌에는 30골로 리그 득점왕을 따냈습니다. 2번의 FA컵 준우승과 52/53 시즌 마침내 결승에서 사상 첫 해트트릭 기록자로서 FA컵 우승을 이끈 모텐슨은 마지막 시즌에는 리그 2위도 달성했습니다.
이렇게 당시 잉글랜드 최고로 꼽혔기에 자국의 첫 월드컵인 1950년 대회에도 출전했으나 스페인과 미국한테 패배해 조별예선에서 떨어지는 망신살을 뻗쳤습니다.
5위
찰리 버칸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891년 9월 22일
주요 클럽:선덜랜드 A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A매치 6경기 4골
1910년대 ~ 20년대 잉글랜드 리그 무대를 대표하던 간판 공격수. 시대를 감안하면 굉장히 큰 키였으며 득점력 뿐만 아니라 당시 흔하지 않던 백힐 패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등 테크닉도 휼륭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스날 시절 허버트 채프먼 감독에게 WM 포메이션 창안에 도움를 줄 정도로 전술안도 탁월했던 버칸은,
1차 세계 대전의 여파에도 10년 넘게 팀레 머무르며 선덜랜드 AFC의 초기 전성기를 이끌었고 1912/13 시즌 대망의 1부 리그 우승, 아쉽게 졌지만 FA컵 결승에도 올랐습니다. 22/23 시즌 리그 득점왕에다가 후에 아스날로 이적해서도 34세의 나이까지 높은 수준의 활약을 했던 그였습니다.
4위
비비안 우드워드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89cm
생년월일:1879년 6월 3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A매치 23경기 29골
1908, 1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0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토트넘의 명 센터 포워드 계보의 1호. 직접 골을 넣는 역할과 동료를 도와 골을 만드는 플레이 모두 능통했다고 전해지는 비비안 우드워드입니다.
건축일과 크리켓 선수까지 병합했다고하며 토트넘 소속으로 런던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뛰어난 활약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 1908/09 시즌 공식적인 잉글랜드 풋볼 리그 2부에서 뛰게 되고 그는 구단의 역사적인 첫골도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팀을 1부 리그로 끌어올렸고 같은 연고지의 첼시로 이적해서도 당대 최고의 퍼포먼스를 이어갔습니다.
A매치 경기당 1골이 넘어가는 우드워드는 1908년과 1912년 대회에서 영국의 금메달 획득을 이끈 바 있습니다.
3위
스티브 블루머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874년 1월 20일
주요 클럽:더비 카운티 FC
주요 커리어
A매치 23경기 28골
없었던 초창기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었던 최초의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날렵한 몸놀림과 특유의 낮게 깔린 빠른 슛팅, 세간으로부터 이른 바 '데이지 커터'(미사일의 한 종류)라고 불린 공을 발사하던 스티브 블루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커리어를 더비 카운티라와 미들즈브러라는 팀에서 보내며 셀 수도 없이 수많은 골을 폭격, 특히나 그는 더비 소속으로 332골을 넣어 구단 역대 최다 득점 1위, 314골을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대 득점 2위, 1부 리그 득점왕 5회 수상, 홈구장에 흉상까지 조각되어 있는 그는 대표팀에서도 1경기 1골을 넘는 골순도를 자랑했습니다.
2위
웨인 루니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85년 10월 24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4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1회
A매치 120경기 53골
21세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아이콘. 골 네트를 찢을 정도로 강력한 슛팅, 한 때 '절구통 드리블'로 불렸던 강력한 피지컬과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뛰어난 수비 가담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가져 최전방 외에도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미드필더에 가까운 모습으로 뛰게 되었습니다.
루니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폼으로 각광받았고 그 활약을 오랜 기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품에서 이어가며 총 5번의 리그와 1번의 챔스 우승, 2번의 챔스 준우승을 포함해 16개의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에 달았습니다. 또 루니는 PFA 올해의 팀에 3번 선정, 커리어 하이인 2009/10 시즌엔 올해의 선수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으며 10/11 시즌엔 발롱도르 5위, 후에는 맨유와 잉글랜드의 레전드 선배인 바비 찰튼의 기록을 깨고 253골을 넣어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2004년 유로에서 4골을 넣어 한 때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로 점쳐졌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을 거듭하면서 6번의 국제 대회에서 꼴랑 3골만을 추가로 넣는 그저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53골로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나는 지는 것이 정말 싫고, 그것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 준다.
- 웨인 루니 -
1위
케빈 키건
포지션:CF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51년 2월 14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3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2회
A매치 63경기 21골
1970년대 잉글랜드 축구를 상징하는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 화려한 드리블, 유능한 기회창출, 매서운 슛 기술 등에 능했으며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처럼 조그마한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헤더와 발리슛 등 포스트플레이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본래 우측 미드필더였던 '마이티 마우스' 키건은 빌 샹클리의 눈에 띄어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 후에 기량을 꽃피웠고 리버풀의 품에서 그는 3차례의 1부 리그 우승, 2차례의 UEFA컵 결승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우승의 수훈갑이 됩니다. 2번의 PFA 올해의 팀, 1번의 FWA 올해의 선수상에 빛나는 키건은 1976/77 시즌, 구단의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며 발롱도르 2위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독일행 비행기를 탄 뒤 함부르크의 시대를 개척하기도 한 그는 각 1차례의 분데스 우승과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견인했습니다. HSV에서의 4년간 키커 선정 4회의 WK, 3시즌의 올해의 팀, 1978년과 79년은 잉글랜드 유일의 발롱도르 2회 수상이라는 역대급 활약을 써내렸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추락하고 있었던 시기의 잉글랜드 국대였던지라 키건의 국대 커리어는 부실한 편입니다.
그가 왔을 때, 함부르크의 위대한 시대가 시작 되었습니다.
- 펠릭스 마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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