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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잉글랜드

잉글랜드 축구 역대 최고의 윙어 TOP 15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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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대런 앤더튼 잉글랜드

대런 앤더튼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72년 3월 3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30경기 7골

 

손흥민 등장 이전까지 토트넘 핫스퍼 구단 역대 최고의 7번으로 불렸던 인물. 스피드는 평범했짐나 임팩트 있는 감아차기, 중거리슛과 날카로운 크로스, 번뜩이는 드리블 재치를 통해서 이를 커버했던 대런 앤더튼은,

 

포츠머스에서 토트넘으로 무대를 옮기며 닉 밤비, 테디 셰링엄과 같이 삼각편대를 구성하는 등 종합 12년간 화이트 하트 레인을 누비며 전성기를 구가, 1998/99 시즌 리그컵 우승과 2000/01 시즌 리그컵 준우승을 이뤘습니다. 중간에 맨유의 오퍼를 거절하면서까지 팀에 남는 의리를 보이기도 했던 앤더튼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왼쪽의 스티브 맥마나만과 듀오를 형성해 인상깊은 모습으로 유로 1996 4강, 1998 월드컵 16강 당시 열일했습니다.

 

14위

레이 케네디 잉글랜드

레이 케네디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51년 7월 28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6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3회

UEFA컵 우승 1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17경기 3골

 

1970년대 리버풀 FC의 붉은 제국 건설에 크게 힘썼던 윙포워드. 레이 케네디는 본래 스트라이커였으나 리버풀 이적 후 윙어로 뛰면서 장점이던 신속한 침투, 깔끔한 결정력, 양발의 크로스 등은 더 빛이 나게 되었습니다.

 

아스날에서 1970/71 시즌 리그와 컵 우승을 이끌며 리버풀로 이적한 그는 레프트윙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대박을 터트리게 됩니다. 케니 달글리시, 그레이엄 수네스, 스티브 하이웨이 같은 선수들과 공격진에서 합을 맞춘 케네디는 리버풀의 최전성기를 알리며 5번의 리그 우승, 76/77 시즌 UEFA컵 우승, 3번의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대단한 업적을 써내려갔습니다.

 

13위

트레버 스티븐 잉글랜드

​트레버 스티븐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77cm

생년월일:1963년 9월 21일

클럽 커리어

1983년 ~ 1989년

298경기 59골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FA 채리티 실드 우승 4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설명할 필요 없는 ​에버튼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윙어. 그는 빠른 발을 이용한 측면 돌파와 교묘한 드리블 기술, 정교한 얼리 크로스로 우측 윙어말고도 투톱의 한자리와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팀에 수많은 골을 만들어냈던 선수였습니다.

 

'트리키 트레버'로 불린 스티븐과 케빈 쉬디가 양쪽 날개에 존재했던 에버튼은 2차례의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과 3차례의 준우승, 위너스컵 우승 1회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1984/85 시즌 컵위너스컵 결승에서는 한스 크란클의 라피드 빈을 무너트리고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12위

브라이언 더글라스 잉글랜드

브라이언 더글라스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64cm

생년월일:1934년 5월 27일

주요 클럽:블랙번 로버스 FC

주요 커리어

A매치 36경기 11골

 

장미 군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1960년대 잉글랜드의 명 윙어. 피지컬은 부족했지만 화려한 발재간과 빠른 스피드, 첨예한 크로싱으로 먹고 살았던 유형의 선수였던 브라이언 더글라스,

 

그는 모든 커리어를 블랙번 로버스에서만 보냈던 원클럽맨 플레이어였으며 15년을 넘게 헌신하며 1959/60 시즌 FA컵 준우승을 비롯해 리그 상위권 활약을 오랜기간 보였고 이를 기리기 위해 구단은 관중석 한쪽에 더글라스의 이름으로 만든 스탠드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삼사자 군단의 부름을 받아서도 그는 2차례의 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바 있습니다.

 

11위

존 코넬리 잉글랜드

존 코넬리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38년 7월 18일

주요 클럽:번리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A매치 20경기 7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0년대 잉글랜드 퍼스트 디비전의 본좌 윙어. 명민한 드리블 스피드와 발류의 슛팅 감각을 지녔던 존 코넬리는 오른쪽만이 아니라 왼쪽까지 소화했기에 꽤 뛰어난 득점 스탯을 자랑했습니다.

 

번리, 맨유, 블랙번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존 코넬리의 활약상은 특히 번리 시절, 1959/60 시즌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과 61/62 시즌 FA컵 결승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성적표 당시 핵심이었기에 구단의 GOAT 중 한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후에 맷 버스비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64/65 시즌 한번 더 리그 우승에 일조했던 코넬리는,

 

1962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으며 다음 66 월드컵에서는 윙어가 없는 포메이션을 택한 알프 램지 감독 때문에 후보로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10위

스티브 코펠 잉글랜드

스티브 코펠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55년 7월 9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42경기 7골

 

과도기에 접어들었던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중반 맨유의 No.7 에이스. 클래식 윙어 타입이었던 코펠은 우측면을 후비는 훌륭한 드리블 돌파 후 크로스를 보였으며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수비 가담을 보인 윙포워드이기도 합니다.

 

그는 1975년 이적와서 7번을 이어받고선 등번호에 무게감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고 1976/77 시즌 숙적 리버풀을 끌어내고 FA컵 우승을 캐리하는 등 PFA 올해의 팀에 2차례 뽑히고 400경기를 가까이 소화하는, 맨유를 넘어 리그 내에서 단단한 입지를 다졌지만 고작 28세의 나이에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고 코펠은 다시 올드 트래포드에 복귀하지 못한 채로 은퇴를 택해야만 했습니다.

 

9위

라힘 스털링 잉글랜드

라힘 스털링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70cm

생년월일:​1994년 12월 8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5회

A매치 82경기 20골

2018 FIFA 월드컵 4강

2020 UEFA 유로 준우승

​펩 과르디올라가 이끌었던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를 대표했던 윙포워드. 빠른 발과 우월한 오프더볼 움직임, 광속의 드리블 돌파, 탁월한 연계를 바탕으로 오른쪽 윙에서 커리어 하이를 맛봤지만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펄스 나인까지 소화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던 스털링이었으나 부족한 결정력이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리버풀 유스 출신으로 2014년 골든 보이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났던 유망주였음에도 시티로 이적해 전성기를 이끌었고 2017/18 시즌의 역대 최다 승점 리그 우승, 18/19 시즌의 '도메스틱 쿼드러플' 등의 대기록을 함께하며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특히 18/19 시즌, PFA 올해의 신인상, PFA 올해의 팀, 버질 반다이크까지 제치고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첼시, 아스날로 이적하면서는 커리어의 내리막을 탔습니다.

 

스털링은 2018 월드컵 4강과 유로 2020 준우승 당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했고 후자의 대회에선 올스타팀까지 석권했습니다.

 

8위

에릭 브룩 잉글랜드

에릭 브룩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07년 11월 27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18경기 10골

1930년대 맨시티와 잉글랜드 축구의 주포. 당대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현재는 레프트 윙어 포지션이었던 브룩은 파워풀한 왼발 슛팅, 근육으로 다져진 막강한 몸싸움, 날렵한 몸놀림으로 왼쪽 라인을 지배했던 이였습니다.

 

당시 아스날의 클리프 바스틴과 포지션까지 겹쳐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그는 피터 도허티, 토미 존슨 등과 공격진을 이루었고 1933/34 시즌의 FA컵, 1936/37 시즌의 구단 첫 리그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그는 꾸준함으로도 유명했는데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경신하기 전까지 177골을 기록하여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 앉아있던 에릭 브룩은 블루문의 품에서 데뷔 시즌과 교통사고로 인해 은퇴하기 전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두자릿수 득점을 해내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7위

스티브 맥마나만 잉글랜드

스티브 맥마나만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72년 1월 11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37경기 3골

  

1990년대 유럽 축구계를 수놓던 잉글랜드의 탑클래스 윙드필더.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으며 창조적인 플레이메이킹과 뛰어난 볼컨트롤, 양발의 슛팅, 긴다리에서 나오는 스피드가 눈이 부시던 맥마나만은,

 

리버풀의 로컬 보이로 데뷔해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언과 공격을 이끌며 각 1번 FA컵, 리그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1995/96 시즌에는 도움왕, 다음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까지 들었습니다. 결국 자유계약으로 레알로 이적한 그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도 뛰어난 활약으로 99/00 시즌의 챔스 우승과 00/01 시즌의 라리가 우승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허나 갈락티코스 정책을 펼치며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 등의 선수들이 들어오자 맥마나만은 자리를 잃고 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1996년 유로에 참가해서 대회 4강을 달성했고 본인은 올스타팀에 들기도 했습니다.

 

6위

크리스 워들 잉글랜드

크리스 워들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87cm

생년월일:1960년 12월 14일

주요 클럽: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주요 커리어

프랑스 리그 1 우승 3회

A매치 62경기 6골

1990 FIFA 월드컵 4강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잉글랜드 축구의 뻥축구를 거슬렸던 명품 테크니션. 훨칠한 신체조건,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와 정교한 킥 능력 덕에 좌우측 윙어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뛴 적도 있는 워들입니다.

 

그는 스퍼스 유니폼을 입고 86-87시즌 리그 3위, FA컵 준우승, 리그컵 준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으며 '헤이젤 참사'의 여파로 당시 엄청난 이적료로 마르세유로 이적,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포카이아인들로부터 '매직 크리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3연속 리그앙 우승과 90/9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말년에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92/93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었던 워들은,

 

1990년 FIFA 월드컵에서는 벨기에, 카메룬을 잡고 4강까지 올라갔으나 아쉽게도 3.4위전 패배로 동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습니다.

 

5위

존 반스​ 잉글랜드

존 반스​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82cm

생년월일:1963년 11월 7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2회

A매치 79경기 11골

1990 FIFA 월드컵 4강

 

스티븐 제라드의 우상이었던 ​1990년대 리버풀의 아이콘격 존재로 군림했던 No.10. 빠릿빠릿한 스피드와 어릿광대를 연상시키는 드리블 감각, 수비를 혼란시키는 정교한 크로스와 패스로 유명했던 그는 뛰어난 활약으로 인종차별까지 견뎌내고 당대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습니다.

 

2부였던 왓포드를 1982/83 시즌 리그 2위와 다음 시즌 FA컵 준우승으로 이끌어 리버풀로 이적,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로 침체기가 온 구단의 진흙 속 진주였던 반스는 피터 비어즐리, 존 올드리지와 함께 뛰며 각 2차례의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달성했고 1987년 발롱도르 6위, FWA 올해의 선수상 2회,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습니다. 1989/90 시즌의 마지막 리그 우승 이후 리버풀은 다시 PL 우승 트로피를 드는데 30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커리어 끝물인 1994년 즈음부터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신체 능력이 예전같지 않았지만 노련함을 살려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습니다.

 

반스는 또 게리 리네커, 크리스 워들, 폴 개스코인과 뛰어난 공격진을 형성해 1990년에는 월드컵에서 4강에 들기도 했습니다.

애정 없이 남의 리더가 되느니 보다는 남의 뒤를 따르는 편이 더 낫다.
- 존 반스 -

 

4위

클리프 배스틴 잉글랜드

클리프 배스틴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67cm

생년월일:1912년 3월 14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A매치 21경기 12골

 

1930년대 허버트 채프먼 감독의 현대 축구의 주춧돌이 된 전술 혁명, 'WM 포메이션'으로 엄청난 명성을 떨치던 '황금 시대' 아스날의 왼쪽 날개. 1997년 이언 라이트가 경신하기 전까지 178골로 아스날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의 보유자였던 배스틴은 아웃사이드 레프트(현대의 레프트 윙어)임에도 측면 플레이에 국한되지 않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침착한 결정력으로 직접 득점하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보이는 특유의 마스크 때문에 '소년(The Boy) 배스틴'으로 통칭된 그는 특히 왼쪽 인사이드 포워드 알렉스 제임스와의 호흡이 잘맞았다고 전해지며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리그 3연패 등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3위

데이비드 베컴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75년 5월 2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6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프랑스 리그 1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115경기 17골

 

영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스타 선수로 평가받던 당대 축구계의 아이콘. 뛰어난 브랜드 가치와 스타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축구는 몰라도 베컴은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베컴은 영화배우 같은 외모와 트레이드 마크인 '택배 크로스', 각도기로 잰듯한 프리킥 능력과 롱패스를 가졌었습니다.

 

또 가녀린 이미지와 다르게 미친듯한 활동량과 돌파 능력으도 뛰어났던 그는 '퍼기의 아이들'의 멤버이자 팀의 7번으로 6차례의 리그 우승, 2차례의 컵 우승, 1998/99 시즌 '트레블' 등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PFA 올해의 팀 4회, 리그 도움왕 3회, UEFA 올해의 팀 2회의 그는 역사에 남을 대역전승 결승 경기인 '캄프 누의 기적'을 본인에 발끝에서 시작시켰고, 그 해 99년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습니다. 이어서 '갈락티코' 정책의 레알로 이적한 베컴은 핵심으로서 06/07 시즌 라리가 우승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대만 가면 부진하던 잉글랜드의 황금 세대 선수들과 달리 애국자스러운 고군분투를 했던 에이스였으며 02 월드컵과 06 월드컵 8강행을 견인, 특히 2002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탈락 위기의 조국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는 프리킥골을 성공시킨 후 두팔을 벌리며 포효하는 장면은 베컴 커리어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냥 달려. 내가 패스할테니.
- 데이비드 베컴 -

 

2위

톰 피니 잉글랜드

톰 피니

포지션:LW

국적:​잉글랜드

신장:172cm

생년월일:1922년 4월 5일

주요 클럽: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2부 리그 우승 1회

A매치 76경기 30골

 

축구 종가의 명성을 이어가게 했던 스탠리 매튜스에 이은 당대 최고의 측면 윙어. 매서운 속도와 민첩성으로 순식간에 사이드를 돌파하는데 능했던 그는 후천적인 양발에서 나오는 크로스와 슛팅 능력도 탁월해 골도 상당히 많이 넣었습니다.

 

적은 수입에 투잡을 뛰던 피니는 '프레스턴의 배관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프레스턴에 엄청난 충성심을 보인 그는 사실상 원클럽맨으로 1차례의 2부 리그 우승, 각 2차례의 1부 리그 2위, FA컵 준우승을 견인했습니다. 1953/54 시즌, 56/57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피니의 원맨팀이었던 프레스턴 노스 엔드는 '피니와 10명의 떨거지들'이라는 멸칭있을 정도였고 그가 떠나자 팀은 바로 강등, 아직까지도 프리미어 리그에 못올라오는 중입니다.

 

덧붙여 1950년대 잉글랜드의 간판 스타였던 그는 조국을 이끌고 3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플레이했던 가장 위대한 선수.
심지어 오버코트를 착용했을 지라도 어떤 팀, 어느 시합에서든 위대할 수 있다.
- 빌 샹클리 -

 

1위

스탠리 매튜스 잉글랜드

스탠리 매튜스

포지션:RW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15년 2월 1일

주요 클럽:블랙풀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2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54경기 11골

 

초대 발롱도르 수상에 빛나는 역대 최고의 윙어이자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 하나. 세간으로부터 '드리블의 마술사'라는 별명의 선조임을 증명하듯 알까기, 바디페인팅, 양발 드리블 등의 돌파 능력, 자로 잰듯한 크로스 등 우리가 아는 윙어 형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범적인 프로 정신, 훌륭한 자기관리로 50살의 나이까지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매튜스는 스토크 시티와 블랙풀이라는 중위권 팀의 공격을 홀로 이끌며 각각의 구단 리그 최고 성적인 4위, 2위에 등극했고 후자의 소속으로는 3차례 FA컵 결승에 올라 1952/53 시즌 '매튜스 파이널'이라 불린 전설적인 경기력으로 FA컵 우승을 이끄는 미친 활약을 남겼습니다. 47/48 시즌 최초로 제정된 FWA 올해의 선수상을 포함해 2차례 상을 수상한 매튜스는 40살의 나이인 1956년 초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또 게오르기우스 십자가를 유니폼에 붙이고도 그는 9번의 브리티쉬 홈 챔피언십 우승과 2번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습니다.

우리에게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사람.
- 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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