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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베스트 11/남아메리카

브라질 축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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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브라질 국가대표

< Brazil >

홈구장: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최다 득점자:​네이마르, 펠레 77골

최다 출장자:카푸 142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우승 5회 -최다 우승(1958, 1962, 1970, 1994, 2002)

코파 아메리카 우승 7회(1919, 1922, 1949, 1989, 1997, 2007, 2019)

역대 최고의 선수:펠레

주장: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브라질 축구 역대 베스트 11 1군

 

골키퍼

지우마르 브라질

지우마르

포지션:GK

국적:브라질

신장:181cm

생년월일:1930년 8월 22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8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5회

토루네이오 리우 상파울루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7년

A매치 53경기 8골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문장. 골키퍼 치고는 평범한 키와 특출난 능력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볼 처리 능력, 안정적인 키핑 능력, 돌부처 멘탈, 빼어난 리더쉽 능력 등을 가지고 있어 수비를 조율하는 팀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했습니다.

 

지우마르는 코린치안스에서 오랜 기간 뛰다 1961년, 산투스 FC 소속으로 이전해 펠레를 비롯한 막강한 스쿼드에 합류해 브라질 전국 리그 5연속 우승에 성공,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1962년과 63년 우승으로 2연패에 성공하는 등 유수의 커리어를 거머쥐었습니다.

 

국대에서도 역시 지우마르는 골문을 든든히 지키며 3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년, 62년 월드컵 2연패의 수훈갑이었으며 첫 월드컵 우승 직후 17살의 소년 펠레가 지우마르에게 안겨 우는 장면은 전국민들의 감동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라이트백

카푸 브라질

카푸

포지션:​RB

국적:​브라질

신장:​177cm

​생년월일:​1970년 6월 7일

주요 클럽:AS 로마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6년

A매치 142경기 4골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고속 기관차'로 불린 브라질리언 풀백의 정석답게 빼어난 드리블, 폭발적인 스피드, 훌륭한 볼 컨트롤 능력을 비롯한 강력한 오버래핑, 이를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수비력과 남미에선 흔하지 않은 꾸준함과 리더쉽으로 당대 최고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그는 기대받는 유망주로 데뷔해 상파울루 전성기의 일원으로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1994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까지 가져왔으며 후에 AS 로마로 이적해 이런 기량을 제대로 꽃 피우며 00/01 시즌의 역사적인 스쿠데토를 들어올리는데 크디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 더 강팀이었던 밀란으로 이적해 각 1차례의 리그, 챔스 우승과 UEFA 올해의 팀 2차례 등의 성적을 낸 카푸는,

 

셀레상의 일원으로도 142경기의 A매치에 출전해 국대 역대 최다 출장 자리에 올라있으며 6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경험, 특히 월드컵에서는 유일무이한 3연속 대회 결승 출장(1994 ~ 2002)이라는 업적과 함께 2002년에는 주장으로서 브라질의 무려 5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센터백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 브라질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

포지션:​CB

​국적:​브라질

신장:​180cm

생년월일:​1944년 7월 17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5회

북미 사커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토루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1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7년

A매치 53경기 8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공격 가담과 수비 복귀를 자유자재로 하는 현대축구 풀백의 시초 중 하나. 빼어난 스피드, 적극적인 측면 돌파, 주변 아군을 이용한 연계, 중앙으로 들어와 직접 위협적인 슛팅 시도, 정확한 크로스, 롱패스 능력을 이용한 후방 플레이메이킹 등 굉장히 진보적인 스타일의 라이트백이었던 그는 수비력까지 출중해 말년엔 아예 센터백으로 전향하기도 했습니다.

 

플루미넨시에서 브라질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산투스로 이적한 그는 뛰어난 리더쉽으로 주장까지 맡아 5차례의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과 1차례의 전국 리그 우승을 이끈 바 있으며,

 

브라질 국기를 가슴에 달고도 23살에 주장직을 달고 활약했고 특히나 197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사에 남을 가히 압권인 아웃프런트 중거리골을 뽑아내며 쥘리메컵을 들어올리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센터백

도밍구스 다 기아 브라질

도밍구스 다 기아​

포지션:​CB

국적:브라질

신장:186cm

생년월일:1911년 12월 19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클럽 커리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31년 ~ 1946년

A매치 30경기 0골

1938 FIFA 월드컵 3위

1942 코파 아메리카 3위

194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셀레상'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1930년대 중후반 ~ 40년대 초중반에 걸쳐 활약한 도밍구스 다 기아는 당대 독보적인 수비력과 절륜의 발밑 능력을 가져 단순히 공을 걷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볼을 정확히 아군 공격수에게 전달하는 앞서나간 플레이를 구사했으며 그 뛰어난 실력 덕에 '신이 내린 사람'이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명문팀인 클루브 나시오날, 보카 주니어스, 플라멩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3개국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견인한 바 있는 도밍구스는 대표팀에서도 1938년 월드컵에 출전해 대회 베스트급 폼으로 조국의 3위라는 순위를 쟁취했고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결승에 오른 4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MVP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 브라질

니우통 산투스​

포지션:​LB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25년 5월 16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클럽 커리어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48년 ~ 1964년

A매치 75경기 3골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파올로 말디니에 이어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 훌륭한 스피드와 무한한 체력, 철저한 대인 방어력 말고도 적극적인 드리블 시도, 날카로운 크로스와 패스 같이 공수겸장이었던 니우통은 당시로써는 혁신적이던 공격을 나가는 풀백으로 '백과사전'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체력, 기술, 지능의 결정체였습니다.

 

보타포구에서만 모든 클럽 생활을 보낸 그는 본래 왼쪽 윙포워드였지만 후에 왼쪽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대박을 냈고 4번의 리우데자네이루 리그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700회가 넘는 경기를 소화한 이력은 구단 역대 최다 출장 1위이기도 하며 이런 그를 기억하기 위해 구단은 홈구장의 이름을 이스타지우 올림피쿠 니우통 산투스로 명명합니다.

 

또한 대표팀에서는 이른 나이에 1950 월드컵의 '마라카낭의 비극', 54 월드컵의 '베른의 전투' 같은 씻지 못할 흑역사들을 경험했지만 후에 뛰어난 멤버들과 황금기를 맞아 월드컵에서 2연속으로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58 월드컵에서는 풀백 최초로 골도 넣으며 올스타팀 선정, 62년에는 37세의 나이로 최초의 4연속 월드컵 참가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파우캉 브라질

파우캉​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53년 10월 16일

주요 클럽:AS 로마

​클럽 커리어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3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6년

A매치 34경기 6골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브라질 축구사에 길이 남을 육각형 미드필더이자 로마인들에게 '8번째 로마의 왕'으로 칭송받았던 존재. 공수을 넘나드는 뛰어난 활동량과 수비력으로 볼을 따내는 것도 도사였으며 타고난 센스로 볼도 굉장히 이쁘게 차 비단결 같은 트래핑과 정교한 패싱까지 보여주던 파우캉은,

 

진작에 '브라질의 왕'으로 자국 리그를 호령하면서 3차례의 전국 리그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1978년과 79년에는 전국 리그 MVP까지 수상받는 존재감을 뿜어내며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입성, 구단의 최전성 시대라 볼 수 있는 1980년대를 밀고나가며 2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2/83 시즌 세리에 우승과 이듬해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주도했습니다.

 

1982년과 83년 월드 사커 선정 월드 베스트 11에 들어간 그는 해외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1982년 월드컵에는 지쿠가 있는 '황금 사중주'의 한 축으로 포함되어 뛰어난 활약을 했으나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파우캉은 대회 실버볼과 82년, 지쿠에 이은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앙 미드필더

지쿠 브라질

지쿠

포지션:CM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53년 3월 3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7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4회

일본 J리그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6년

A매치 71경기 48골

1978 FIFA 월드컵 3위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디에고 마라도나와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싸웠던 '하얀 펠레'. 탁월한 전진 드리블, 시원시원한 키패스 그에 필적하는 경기 조율력으로 필드 위를 다스렸으며 괴물같은 득점 능력에다 자타공인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킥 능력까지 지녔었던 지쿠는,

 

플라멩구를 이끌고 구단을 7번의 주 리그, 4번의 전국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1981년에는 득점왕과 MVP로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까지 만들었습니다.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당시 유럽 최고로 평가받던 '붉은 제국' 리버풀을 3대0으로 함락시키는 미친 활약을 펼쳤습니다. 1979년 한해에만 89골을 넣기도 한 지쿠는 7차례의 리그 득점왕, 2차례의 리그 MVP에다 남미의 발롱이라 할 수 있는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세번이나 수상하는 위업을 이뤘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셀레상의 품에서 지쿠는 우승과는 연이 없었는데 1978년 월드컵에는 무패 3위, 83 코파에서는 준우승, 특히 1982년 월드컵 당시  '황금 사중주'라는 역대급 중원진과 스쿼드의 리더로 대회에 참가하나 이탈리아의 깜짝 반격을 맞고 탈락한게 통한의 한이겠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지지 브라질

지지

포지션:CM

국적:​브라질

신장:​174cm

​생년월일:​1928년 10월 8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52년 ~ 1962년

A매치 62경기 20골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 펠레가 인정했던 역대 최고이자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지지는 활동량과 신체적인 부분에서 약점을 노출했지만 거대한 수비수들 사이에서도 뚫고 나올 수 있던 우아한 드리블링과 수비벽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날카로운 키패스, 절륜의 경기 조율력 등으로 그 약점을 지워버렸습니다.

 

뚝 떨어지는 프리킥과 사포로 알려진 개인기의 선구자로도 알려진 그는 1960년대 '영광의 보타포구'의 전성기의 두뇌 역할을 하며 3번의 주립 리그 우승을 지휘했습니다. 그 뛰어난 기량을 탐낸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영입하기도 했지만 지지는 디 스테파노와의 불화로 적응에 실패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런 기량은 카나리아 군단의 전성기를 지휘하기도 충분했고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3연속 준우승과 월드컵 2연속 우승을 견인, 특히 1958년 월드컵에서는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펠레를 제치고 대회 최고의 활약을 했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라이트 윙어

가린샤 브라질

가린샤​

포지션:RW

국적:브라질

신장:169cm

생년월일:1933년 10월 28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55년 ~ 1966년

A매치 50경기 12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양쪽 다리가 안팎으로 굽고 길이마저 달랐으며 지적 장애까지 있었지만 그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오히려 그 짝다리를 이용해 종잡을 수 없는 리듬의 드리블과 예측불허의 패턴으로 측면 라인에서 수비수들을 풍비박산 내고 다녔습니다.

 

역대급 드리블 외에도 슛, 크로스, 패스마저 월드클래스였던 가린샤는 보타포구 FR에서 뛰며 산투스 FC의 펠레와 함께 브라질 리그의 쌍두마차를 이루는 스타로 성장했으며 그의 존재에 최전성기를 맞이한 보타포구 FR은 1962년의 마이너 대회까지 포함한 역사상 첫 '6관왕'을 포함해 5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가져간 바 있습니다.

 

국대에서도 펠레와 함께 막강한 공격진을 이루며 1958년, 62년 FIFA 월드컵을 2연속 제패했으며 그 중 62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빠진 펠레의 공백을 커버하며 홀로 공격을 이끌었고 득점왕, 비공식 MVP까지 따내는 절정의 활약으로 인간 승리의 표상을 보였습니다.

 

스트라이커

호나우두 브라질

호나우두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76년 9월 22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클럽 커리어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립 리그 우승 1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코파 두 브라질 우승 2회

KNVB 베이커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요한 크루이프 스할 우승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94년 ~ 2011년

A매치 98경기 62골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타이틀에 가장 가까운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의 축구 황제 '페노메노'. 헛다리 짚기로 유명한 가공할 만한 드리블, 폭발적인 스피드와 몸싸움, 원샷 원킬의 마무리까지 갖춘 그의 충격적인 기량은 곧 전술이며 하나의 현상으로 여겨질 정도 였습니다.

 

바르샤에서 전세계를 놀래킨 1996/97 시즌, 21세에 49경기 47골이라는 기록으로 국왕컵 우승과 최연소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인테르로 이적한 97/98 시즌은 별칭 그대로 경이로운 활약상으로 세리에 A MVP,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와 UEFA컵 우승을 따내는 저력을 보입니다. 이후 2년짜리 큰 부상에도 '갈락티코스'의 일원으로 02/03 시즌의 라리가 우승을 주도한 호나우두는 클럽 커리어 동안 6번의 득점왕 타이틀을 안았습니다. 허나 한가지 흠이 있다면 선수 시절 내내 고질적인 부상으로 인해 그 활약이 꾸준하지는 못했다는 것인데,

 

그런 그이지만 국가대표로는 1997 코파 아메리카를 MVP로서 우승, 1998 월드컵을 골든볼로 준우승, 1999 코파를 득점왕으로 우승, 2002 월드컵을 득점왕으로서 우승을 견인하는 등 메이저 대회마다 펠레, 마라도나와 비견되는 미친 퍼포먼스로 조국과 함께 세계 축구의 최정상 자리에 선 바 있습니다.

 

레프트 윙어

펠레 브라질

펠레

포지션:​LW

국적:브라질

신장:173cm

생년월일:1940년 10월 23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10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6회

북미 사커 리그 우승 1회

토루네이오 리우 상파울루 우승 4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57년 ~ 1971년

A매치 92경기 77골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1970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더 나아가 스포츠계의 상징이 되버린 사나이. '축구 황제'라는 별명 답게 당대보다 몇십년은 앞서간 초월적 기량을 보여준 컴플리트 플레이어로 자유자재의 드리블과 신박한 개인기, 완강한 운동 능력, 양발의 탁월한 슛팅 능력, 명석한 플레이메이킹, 타점 높은 헤딩까지 어느부분 빠질 것 없이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는 펠레는,

 

1960년대 산투스를 세계 최고의 위치에 앉혀놓으며 10번의 주립 리그, 6번의 전국 리그,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캐리했습니다.

 

국가대표로는 17세에 참가한 1958 월드컵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해트트릭, 결승전 득점 등으로 조국의 역사적인 첫 우승을 주도했고 다음과 다다음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신음했지만 1970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을 MVP급 폼으로 완벽히 조율해내며 브라질에게 영구히 쥘리메컵을 선사합니다. 펠레는 그 명성에 맞게 진기록이 굉장히 많은데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 비공식 득점이 1200골에 다다르며 산투스 역대 최다 득점 기록, 1962년의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이라 할 수 있는 성적을 견인, 해트트릭 91회 달성, 그의 해외 이적을 막기 위해 브라질 정부의 국보 지정, 프랑스 풋볼에서 진행한 발롱도르 재평가에서는 무려 7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황제의 왕좌에 오랜 기간 앉아있던 펠레입니다.

 

감독

마리우 자갈루 브라질

마리우 자갈루

포지션:MANAGER

국적:브라질

생년월일:1931년 8월 9일

국대 커리어

1970년 ~ 1974년, 1994년 ~ 1998년, 2002년

1970 FIFA 월드컵 우승

1974 FIFA 월드컵 4강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던 브라질 축구사의 명 전술가. 4-2-4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하는 즐겁고 재밌는 공격 축구인 브라질 정신 '징가'의 혼을 감독으로도 이어갔던 자갈루는,

 

보타포구의 선수 출신으로 은퇴 후 곧 바로 팀의 지휘봉을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또한 1970년,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펠레, 토스탕, 히벨리누, 제르송 등 여러 플레이메이커들을 모두 공존시키는 전술로 역사상 최강팀을 잘 조합해내 막강한 경기력으로 조국의 세번째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또한 20여년 뒤 또 대표팀에 부름을 받아 호나우두를 앞세워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월드컵 준우승에 성공하기도 한 자갈루는 프란츠 베켄바워, 디디에 데샹과 함께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우승해본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았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브라질 축구 역대 베스트 11 2군

 

골키퍼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브라질

클라우지우 타파레우

포지션:GK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66년 5월 8일

주요 클럽:갈라타사라이 SK

클럽 커리어

브라질 미나스제이라스 주립 리그 우승 2회

터키 쉬페르 리그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터키컵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88년 ~ 1998년

A매치 101경기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CONCACAF 골드컵 3위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던 골리. 키는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미친 반사신경과 본능적인 다이빙 능력으로 골문을 견실히 지켰던 선수였으며 특히 타파레우는 'PK 막는 귀신'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페널티 선방에 일가견이 있어 엄청난 선방률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자국의 명문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MVP에 선정되는 활약으로 이탈리아로 진출했지만 저조한 성적으로 다시 자국으로 복귀해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30줄의 나이에 이적한 터키의 갈라타사라이에서는 황혼의 나이에도 각성해 미친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고 리그 2연패 및 1999/00 시즌 UEFA컵 우승을 멱살잡고 이끄는 성적을 남겼습니다.

 

타파레우는 셀레상의 품에서도 역사상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 등 좋은 활약을 매번 선보였고 2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98년 월드컵 준우승,1994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적을 일구는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자우마 산투스 브라질

자우마 산투스

포지션:​RB

국적:​브라질

신장:​173cm

생년월일:​1929년 2월 27일

주요 클럽:SE 파우메이라스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3회

토루네이오 리우 상파울루 우승 3회

국대 커리어

1952년 ~ 1968년

A매치 98경기 3골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카푸가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이라고 단정 지을수 없는 이유. 1급의 속도, 힘, 멘탈을 모두 갖춘 소유자로 자우마는 벽을 연상케하는 대인 수비를 펼치다가도 뛰어난 롱패스 솜씨나 투석기와도 같은 장거리 스로인으로 공격의 물꼬를 트는 역할도 도맡아할 수 있었습니다.

 

간혹 중앙 수비수도 보던 그는 파우메이라스의 1960년대의 전성기의 일원으로 각 3번의 상파울루 주립 리그, 전국 리그 우승을, 특히 1961년과 1968년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결승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활약상은 대표팀 전성기에서도 이어졌는데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58년, 62년 2연속 월드컵 우승을 이룩했고 3번의 올스타팀에 든 이 기록은 베켄바워와 둘만이 가진 기록입니다.

 

센터백

루시우 브라질

루시우

포지션:CB

국적:브라질

신장:188cm

생년월일:1978년 5월 8일

주요 클럽:인터 밀란 FC

클럽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3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DFB 리가 포칼 우승 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2000년 ~ 2011년

A매치 105경기 4골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2회

 

21세기 브라질 축구 최고로 꼽히는 파이터형 센터백. 압도적인 피지컬과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공격수를 부서버리던 루시우는 볼을 워낙에 잘다뤄서 탁월한 오버래핑과 빌드업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던 수비입니다.

 

그는 8년간 독일에서 뛰면서 키커 선정 분데스 올해의 팀에 6시즌 들어갈 정도로 우수한 모습으로 레버쿠젠에선 2001/02 시즌 '러너업 트레블'을, 뮌헨에서는 3연속 '더블' 등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후에 네라주리 유니폼을 입고는 09/10 시즌 강철 수비진과 함께 '트레블'이라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노란 셔츠를 입고도 루시우는 어린 나이에 주전으로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고 더해서 2차례의 컨페드컵에서도 우승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센터백

히우데라우두 베우리니 브라질

히우데라우두 베우리니

포지션:​CB

국적:브라질

신장:184cm

생년월일:1949년 1월 22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6년

A매치 51경기 0골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1950년대 카나리아 군단을 대표하던 자국 최고의 센터백. 베우리니는 공만 건드리는 정확도 높은 태클과 안정적인 커버 플레이, 훌륭한 리더쉽 등을 토대로 골문을 지켜내던 선수였습니다.

 

아데미르, 자이르, 다닐루 아우빔 등의 선배격 멤버와 1950년대에도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기 'Express da Vitoria'의 명성을 이어나간 그는 3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컵을 얻은 바 있습니다.

 

그는 국가대표로도 주장완장을 차고 1958년 월드컵에 참가해 올스타팀급의 퍼포먼스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그가 처음 시작한 시상식에서 쥘리메컵을 들어올리는 세레머니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자국을 대표하는 경기장 마라카낭 스타디움에는 그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습니다.

 

레프트백

호베르투 카를루스 브라질

호베르투 카를루스

포지션:LB

국적:​브라질​

​신장:​168cm

​생년월일:1973년 4월 10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4회

토루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3회

쉬페르 쿠파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92년 ~ 2006년

A매치 125경기 11골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2 FIFA 월드컵 우승

2004 코파 아메리카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축구 역사상 가장 괴랄스러운 오버래핑 실력을 펼치던 레프트백. 쾌속의 스피드와 빈공간 침투, 예측 불가능한 날카로운 크로싱과 현란항 발기술, 특히 'UFO 슛'으로 현대에도 여러번 회자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왼발 슛팅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던 카를루스였습니다.

 

파우메이라스에서의 성공으로 인테르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의 부동의 좌측 풀백 주전이 된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라울과 함께 90년대 중후반을 받들었고 2001년부터는 초호화 멤버들과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4차례의 리그 우승, 3차례의 챔스 우승, 1차례의 슈퍼컵 우승 등 수많은 우승컵을 따냈던 그는 ESM 올해의 팀에 7차례, UEFA 올해의 팀에 2차례 올랐고,

 

셀레상의 대표로도 10년 넘게 활약하며 전성기를 이끈 그는 2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98 월드컵 준우승, 2002 월드컵 우승을 이룩했습니다. 두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팀에 든 그는 02년에는 챔스 + 월드컵 우승 덕에 발롱도르 2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지투 브라질

지투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79cm

생년월일:​1932년 8월 8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9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5회

토루네이오 리우 상파울루 우승 4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55년 ~ 1964년

A매치 52경기 3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1960년대 남미 축구계를 지배하던 '산타스치쿠스' 산투스 FC의 주장이자 셀레상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안정적인 볼배급, 빼어난 활동량, 정교한 태클 솜씨, 약삭 빠른 인터셉팅 등으로 초호화 공격진을 뒷받침하던 홀딩 미드필더 지투였습니다.

 

그는 1952년에 산투스 유니폼을 입으며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업고 갔고 후에 펠레를 비롯한 뛰어난 선수들의 합류와 함께 총 9차례의 주립 리그와 5차례의 전국 리그, 각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쟁취해냈습니다. 727경기를 소화해 산투스 FC 구단 역대 최다 출장 2위의 지투는 팀이 '트레블'에 가까운 성적을 낸 1962년엔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뽑혔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대표로서의 지투는 지지와 중원 콤비를 구성해 팀의 공격력을 잘 보좌하며 월드컵 2연패에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1962월드컵에서는 더 눈부신 활약으로 올스타팀에 선정되기까지 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자이르지뉴 브라질

자이르지뉴

포지션:RM

국적:​브라질

신장:​173cm

​생년월일:​1944년 12월 25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64년 ~ 1982년

A매치 81경기 33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1974 FIFA 월드컵 4강

​가린샤 다음으로 평가받는 셀레상의 역대급 오른쪽 날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헛다리와 바디 페인팅, 뛰어난 가속의 드리블 돌파 능력과 함께 득점 감각 또한 뛰어나 골도 많이 넣었던 그는,

 

가린샤의 후계자로 점쳐지며 마찬가지로 보타포구에서 데뷔했고 초창기에는 가린샤의 존재에 중앙이나 왼쪽에서 뛰었지만 나중에는 부상당한 그를 밀어내고 우측서 대활약을 보여주며 총 4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과 1968년 전국 리그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전국 리그 MVP에도 2번이나 선정된 자이르지뉴는 1976년에는 크루제이루에서 1년을 뛰며 12골을 넣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국기를 가슴에 품고도 1970년 월드컵에서 펠레, 토스탕, 히벨리누 등의 역대급 공격진의 주포로서 6경기 7골, 대회 전경기 득점이라는 미친 레코드로 '월드컵 폭풍'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지지뉴 브라질

지지뉴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21년 9월 14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42년 ~ 1957년

A매치 53경기 30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0년대 ~ 50년대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펠레 이전의 셀레상의 아이콘. '마스터'라는 별명답게 시야, 패스, 드리블, 골결정력, 활동량 등 공격에 관한 모든 부분에서 능통했다고 전해지는 지지뉴는 브라질 리그의 플라멩구, 방구, 상파울루에서 대활약하면서 전설을 쓰게 됩니다.

 

당시 유행하던 WM 포메이션의 '창끝'에서 현대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뛴 그는 커리어 통산 4차례의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에 성공했으나 국대에서 만큼은 불운의 아이콘인데,

 

1949 코파 아메리카를 제외하면 4번의 준우승을 겪었고 특히 1950년 월드컵 대회 MVP 수준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조국을 결승에 올려놓으나 우루과이에게 허무하게 역전패당하는 브라질 축구사 최악의 흑역사 '마라카낭의 비극'에 휩쓸려 평생을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레프트 윙어

호나우지뉴 브라질

호나우지뉴

포지션:LM

국적:브라질

신장:181cm

생년월일:1980년 5월 15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클럽 커리어​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주립 리그 우승 1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립 리그 우승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99년 ~ 2013년

A매치 97경기 33골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축구 역사에 다신 없을 굵고 짧은 포스를 풍겼던 전대미문의 슈퍼 크랙. 그가 한참 잘나갔던 2000년대 초중반 2~3년간의 퍼포먼스 만큼은 역사상 최고라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메이징 그 자체였습니다. 눈이 즐거워지는 개인기와 드리블을 구사하면서도 훌륭한 신체 능력 활용과 창조적인 패스같이 팀플레이에도 도를 텄던 인물로 이런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그의 외모를 감안해 세간에서는 그를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었습니다.

 

지뉴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며 2005/06 시즌에 리그와 챔스 우승을 이끌며 '더블'을 달성, 한번은 엘클 원정에서 3대0 승리를 견인해 레알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2005년 발롱도르 1위, 2004년부터 06년까지 UEFA 올해의 팀 선정 등 유수의 영광을 거머쥐었고,

 

국가대표로는 히바우두, 호나우두와 '3R'을 구성해 2002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으며 특히 잉글랜드전에서의 원맨쇼 덕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까지 들었었던 그였습니다. 허나 이런 그는 2007년여경부터 소홀한 자기관리로 급내리막길을 걷게 되어 예전을 폼을 찾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스트라이커

히바우두 브라질

히바우두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7cm

생년월일:1972년 4월 19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립 리그 우승 1회

그리스 수페르리가 엘라다 우승 3회

우즈베키스탄 슈퍼 리그 우승 3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그리스컵 우승 2회

우즈베키스탄컵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93년 ~ 2003년

A매치 74경기 35골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추앙받았던 선수. 또한 역사상 최고의 왼발 스페셜리스트 중 한명으로 '악마의 왼발'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어메이징한 슛팅, 패스, 크로스와 환상적인 바디 밸런스, 아크로바틱한 테크닉을 갖춰 눈이 즐거운 여러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히밥은 1990년대 데포르티보의 에이스로 팀을 부양하다 바르샤에서 전성기를 맞았고 1997/98 시즌, 리그+컵 '더블', 98/99 시즌에도 리그 24골을 기록하며 리그 2연패를 이끈 활약에 1999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했습니다. 특히 00/01 시즌, 챔스 티켓이 걸려있던 리그 최종 발렌시아전에서 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대2 승리를 이끈 경기야말로 히바우두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로 가서도 챔스서 강팀들을 때려잡았던 그는 브라질의 10번 유니폼을 입고 1998 월드컵 준우승, 99 코파 우승, 02 월드컵 우승에 성공, 순서대로 각 대회 올스타, MVP + 득점왕, 실버슈 + 올스타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스트라이커

호마리우 브라질

호마리우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68cm

​생년월일:​1966년 1월 29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3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KNVB 베이커 우승 2회

카타르컵 우승 1회

요한 크루이프 스할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87년 ~ 2005년

A매치 70경기 55골

1988 올림픽 금메달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또라이짓만큼 강력했던 임팩트를 세계에 각인시켰던 스트라이커. 통산 1000골에 가까운 골을 기록할 만큼 허를 찌르는 슛팅 능력과 초월적인 결정력을 지녔고 '박스 안의 여우'라고 불렸을 만큼 빠른 주력과 현란한 드리블로로 수비진을 허무는 라인 브레이킹에 최적화 되있던 선수였습니다.

 

2선에서의 연계 능력 역시 탁월했던 호마리우는 이렇게 재능은 뛰어났으나 게으르고 방탕한 사생활에 커리어 내내 문제를 일으켰지만 바스쿠 다 가마, PSV, 바르셀로나 등을 거치며 1차례의 전국 리그, 3차례의 에레디비시, 1차례의 라리가 우승과 챔스 준우승 등을 실현시켰습니다.

 

더해서 무려 20번의 득점왕 타이틀을 얻은 호마리우는 국대에서도 사고치는 이미지로 인해 불참도 잦았지만 베베투와 투톱으로 1989 코파 아메리카를, 호나우두와 투톱으로 97 코파를 우승했으며 특히 1994년 월드컵, 브라질의 공격을 선두에서 이끌며 결승전 제외 전경기 공격포인트라는 엄청난 임팩트로 우승해 골든볼,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얻는 월드컵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수석 코치

루이스 필리피 스콜라리 브라질

루이스 필리피 스콜라리

포지션:HEAD COACH​

국적:브라질

생년월일:1948년 11월 9일

국대 커리어

2001년 ~ 2002년, 2012년 ~ 2014년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브라질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다 들어본 남자. 스콜라리는 자국 리그의 그레미우, 파우메이라스, 크루제이루 등 명문팀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따냈고 그 활약을 토대로 지옥의 지역 예선에 빠져 허우적대던 대표팀에 부임해 전통의 4-2-4 포메이션을 버리고 3-4-3 포메이션의 실리적인 축구를 선택,

 

2002 월드컵 본선 전까지는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막강한 3톱이었던 '3R' 라인에 힘입어 대회 모든팀들을 상대로 전승하며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엠블럼에 무려 다섯번째 별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2014년 월드컵의 감독으로도 활약했던 스콜라리는 대회 4강전 독일에게 1대7로 패배하는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흑역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브라질 축구 역대 베스트 11 3군

 

골키퍼

에메르송 레앙 브라질

에메르송 레앙

포지션:GK

​국적:브라질

신장:179cm

생년월일:1949년 7월 11일

주요 클럽:SE 파우메이라스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5회

국대 커리어

1969년 ~ 1986년

A매치 80경기

1970 FIFA 월드컵 우승

1974 FIFA 월드컵 4강

1978 FIFA 월드컵 3위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70년대 세계를 풍미했었던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명. 골키퍼치고는 심한 단신임에도 뛰어난 반사신경과 PK 방어력, 더불어 뛰어난 롱패스 능력과 여유로운 발기술, 능숙한 수비진 조율을 바탕으로 후방 빌드업을 시도하던 스위퍼 키퍼 기질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에메르송 레앙은 자국의 명문인 바스쿠 다 가마, 그레미우, 특히 전성기를 팔메이라스에서 맞이했고 3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전국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구단 역대 최다 출장 2위인 그는 1975년 코린치안스전에서는 한경기 페널티킥 3선방이라는 전설적인 일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레앙은 월드컵 방어률 87.9%, 본선 14경기 8클린시트라는 대기록을 자랑하며 후보로 월드컵 우승, 주전으로는 1974 월드컵 4강과 78 월드컵 3위를 주도했으며 때문에 혹자는 그를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키퍼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라이트백

다니 아우베스 브라질

다니 아우베스

포지션:​RB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83년 5월 6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클럽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6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프랑스 리그 1 우승 2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쿠프 드 라리가 우승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5회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

UEFA컵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4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3회

국대 커리어

2006년 ~

A매치 126경기 8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14 FIFA 월드컵 4강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21 코파 아메리카 우승 준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2회

FC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측면 수비수이자 2010년대를 빛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형 풀백. 뛰어난 드리블 돌파, 미친 체력, 감각적인 볼컨트롤, 정교한 크로스와 키패스 능력 등 아우베스는 당대 내노라하는 월드클래스 수비수였습니다.

 

세비야의 2연속 UEFA컵 우승을 주도한 그는 바르샤에서 역대 최절정기의 한 축으로 구가하며 총 리그 6회, 챔스 3회 우승을 이끌었고 이어진 유베와 파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5회의 ESM 올해의 팀과 UEFA 올해의 팀에 들어가기도 한 아우베스이지만,

 

클럽 대비 국대에서는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었으나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3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놀라운 활약으로 국대의 통산 40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 MVP까지 타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축구 역사상 제일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수비수이기도 하며 이는 말디니, 베켄바워보다 높은 우승 횟수입니다.

 

센터백

마우루 하무스 브라질

마우루 하무스

포지션:​CB

​국적:​브라질

신장:180cm

생년월일:1930년 8월 30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5회

토루네이오 리우 상파울루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48년 ~ 1965년

A매치 28경기 0골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8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가운데 한명. 기술적인 태클과 믿음직한 수비 라인 리딩으로 당대 탑급 수비수로 널리 소문난 마우루 하무스는,

 

상파울루 FC의 레전드 출신으로 후에 펠레가 이끄는 당대 최고의 클럽인 브라질의 산투스 FC에 합류해서도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하였고 상파울루 주립 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인 브라질 세리에 A 5연속 우승, 각각 2차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등 15개가 넘어가는 크고 작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산투스 FC가 남미를 넘어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꽤 오랜 기간 대표팀에 부름을 받았었던 그는 아쉽게도 주전으로 나온 대회는 손에 꼽았으나 1962년에는 드디어 그 기량을 인정받아 주장 완장을 차고 조국의 월드컵 2연패에 공헌할 수 있었습니다.

센터백

치아구 시우바 브라질

치아구 시우바

포지션:​CB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84년 9월 22일

주요 클럽:파리 생제르맹 FC

클럽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프랑스 리그 1 우승 7회

코파 두 브라지우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쿠프 드 프랑스 우승 6회

쿠프 드 라 리그 우승 6회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2008년 ~ 2022년

A매치 113경기 7골

2014 FIFA 월드컵 4강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21세기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는 센터백. 신장은 평범하나 칼같은 태클, 엄청난 순발력과 민첩성, 총명한 판단력, 가공할 만한 점프력, 뛰어난 발밑과 커맨딩 등으로 문제없이 본인의 수비력을 뽐내던 시우바는,

 

AC 밀란에서 네스타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팀의 재정난으로 인해 파리로 이적했고 곧 바로 구단의 믿음직한 수비의 핵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며 구단을 유럽 최고 수준 팀으로 성장시킵니다. 그는 7번의 리그 1 우승과 6번의 쿠프 드 프랑스 우승, 2019/20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등을 비롯해 24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그의 꾸준한 활약상은 UNFP 올해의 팀에 7시즌 연속 선정된 엄청난 개인 커리어가 대신 설명해줍니다. 후에 첼시로 이적해서도 40대가 다 되어가는 나이까지 팀의 믿을맨으로 20/21 시즌 챔스 우승까지 이룬 시우바는,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2014 월드컵 4강과 19 코파 우승, 21 코파 준우승 등에 빼놓을 수 없는 기둥으로 활약, 그 영향력의 반증은 그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한 '미네이랑의 비극'의 끔찍함이었습니다. 

 

레프트백

주니오르 브라질

주니오르

포지션:​LB

국적:브라질

신장:​174cm

생년월일:​1954년 6월 29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6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4회

코파 두 브라질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79년 ~ 1992년

A매치 70경기 9골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0년대를 통틀어 세계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펼치던 왼쪽 수비수. 공격수 수준의 빼어난 드리블 돌파에 이은 양발에서 나오는 정확한 크로스와 패스에 페널티와 프리킥도 전담했으며 타고난 플레이메이킹 능력 역시 가져 커리어 세리에A 시절부터는 아예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뛰던 그였습니다.

 

물론 수비도 잘한 주니오르는 1980년대 플라멩구의 최전성기를 지탱해주며 1번의 코파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포함한 13번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플라멩구 역대 최다 출장자인 그는 40살 가까이까지 현역을 이어가며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팀에 5번, 1992년에는 38살에 MVP까지 수상했고 특히 81년에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위에까지 선정됩니다.

 

주니오르는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 등이 있었던 국가대표팀 역대 최고 수준팀의 일원으로 각 1번의 코파 3위와 준우승,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서는 올스타팀에 들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다닐루 아우빙 브라질

다닐루 아우빙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82cm

생년월일:1920년 12월 3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3년

A매치 25경기 2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0년대 브라질 전역에 그 명성을 떨치던 당대 탑급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가담에 조금 더 신경을 쓰던 센터하프(수비형 미드필더)료 정교하면서 날카로운 패싱, 적극적인 드리블, 완숙한 커버링 등으로 필드를 지배해 '왕자'라는 별칭으로도 통했습니다.

 

아우빙은 1940년대 중후반 ~ 50년대 초반 CR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기, 일명 '빅토리아 익스프레스'를 이끌어가며 총 4번의 주 리그 우승과 1948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남미 클럽 챔피언쉽에서의 우승을 일궈내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브라질 대표팀에 소집된 이래, 194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한 아우빙은 다음해 1950년에도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결승전에서 아쉽게 우루과이에게 역전패 당하며 통곡하는 역경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지르송 브라질

지르송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41년 1월 11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3회

국대 커리어

1961년 ~ 1972년

A매치 70경기 14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FIFA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팀, 1970년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 역할을 했던 지지의 후계자. '황금의 왼발'이라는 이명다운 탁월한 시야와 자로 잰듯한 환상적인 롱패스, 우수한 볼키핑 능력을 구사했으며 거기다 한창 시절에는 빼어난 활동량까지 갖추고 있는 미드필더였던 그는 동료들의 위치를 쉴새 없이 지시한다하여 '앵무새'로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의 명문인 플라멩구, 보타포구, 상파울루, 플루미넨시에서 모두 핵심으로 활약한 그는 6번의 주립 리그 우승, 1968년의 전국 리그 우승을 포함한 많은 우승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에 달았습니다. 2번의 월드컵에도 참가한 지르송은 특히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1970년 월드컵, 최초의 전승 우승을 견인해 비공식 실버볼이라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호베르투 히벨리누 브라질

호베르투 히벨리누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71cm

​생년월일:​1946년 1월 1일

주요 클럽:SC 코리치안스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2회

킹스컵 우승 1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8년

A매치 92경기 26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1974 FIFA 월드컵 4강

1978 FIFA 월드컵 3위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이어받은 1970년대 초중반 셀레상 최고의 에이스. '플리 플랩'이라는 유명한 개인기의 원조격 인물로 유명한 그는 기술있는 드리블 돌파와 골 네트를 찢어버리는 파워풀한 킥 능력에 '원자폭탄 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었습니다.

 

'코리치안스 파크의 왕'으로 팀을 통솔하며 뚜렷한 우승 타이틀이 없음에도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릴 만한 활약을 남겼었던 히벨리누는 후에 플루미넨시로 이적해서도 '삼색의 기계장치'라 불린 공격진이 있는 팀의 전성기를 이끌며 리우데자네이루 주 리그 2연패를 이끈 바 있습니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도 펠레, 토스탕, 자이르지뉴와 공격진을 구성해 1970 WC 우승을 대회 베스트 일레븐급 모습으로 이끈 그는 후에 펠레가 은퇴한 국대의 에이스로, 차기 대회 4위와 차차기 대회에서 3위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네이마르 브라질

네이마르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75cm

생년월일:1992년 2월 5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프랑스 리그 1 우승 5회

코파 두 브라질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3회

쿠프 드 프랑스 우승 3회

쿠프 드 라 리그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2회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24경기 77골

2014 FIFA 월드컵 4강

202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21세기의 펠레가 될 브라질 축구의 차세대 에이스. 눈호강을 시켜주는 화려한 개인기와 드리블 돌파, 스타일리쉬한 무브먼트, 뛰어난 연계, 날카로운 피니싱, 원숙한 플레이메이킹 능럭까지 갖추게 된 그는 메시, 호날두 다음의 왕자에 앉을 현시대 최고의 공격수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브라질 역대급 초신성으로 평가받던 네이마르는 2011년, 남미의 챔스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MVP로 이끌며 어마무시한 금액으로 스페인 바르샤로 이적, 메시와 수아레스랑 3톱을 구성해 이른 바 'MSN 라인'으로 불리며 2014/15 시즌 '트레블', 15/16 시즌 '더블'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3000억에 가까운 월드레코드로 PSG로 이적해서는 잦은 부상에도 팀의 전성기를 이끌어 4번의 리그, 2번의 컵, 19/20 시즌엔 '도메스틱 쿼드러플'과 챔스 결승 진출까지 이뤘습니다.

 

2015년과 17년 발롱도르 3위의 네이마르는 브라질의 대선배 펠레의 대표팀 역대 최다골 기록을 넘기는 활약에도 아직까지 월드컵, 코파 우승이 전무하며 특히 2021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4년 월드컵에서는 4골 1어시로 4강행을 이끄나 부상으로 조국의 탈락을 필드 밖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스트라이커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브라질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5cm

생년월일:1913년 9월 6일

주요 클럽:상파울루 FC

클럽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5회

국대 커리어

1932년 ~ 1946년

A매치 19경기 21골

1938 FIFA 월드컵 3위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삼바 축구'를 빛내던 1930년대 ~ 40년대 브라질 축구의 별. 강력한 슛팅과 플레이메이킹이 장점으로 최전방 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모습으로 뛰기도 했던 그는 펠레, 가린샤, 지지뉴 등의 브라질 레전드들도 우상으로 삼았던 인물입니다.

 

거기다 유연성과 탄력까지 갖춰 바이시클 킥을 최초로 시도한 여러명 중 하나라고까지 전해지는 '고무 인간' 레오니다스는 브라질 리그의 여러 명문을 돌아다니는 저니맨 생활을 하다 플라멩구, 상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무려 8번의 리그 타이틀을 쟁취했습니다.

 

카나리아 군단의 품에서 레오니다스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를 맛보는데 7골을 넣어 득점왕과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 3위라는 쾌사를 달성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브라질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892년 7월 18일

주요 클럽:CA 파울리스타누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7회

국대 커리어

1914년 ~ 1925년

A매치 23경기 10골

191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브라질 명 스트라이커 계보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자 축구 역사상 최초의 흑인 스타 플레이어. 마르고 작은 신체였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양발의 슛팅력 등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무려 1300여골을 기록해 축구 역사상 비공식 기록 최다 득점자로 잘 알려져있는 프리덴라이히입니다.

 

또한 당시 극심했던 인종차별을 견뎌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한 그는 CA 파울리스타누와 상파울루 FC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7번의 주 리그 우승과 9번의 득점왕을 차지, 프랑스 원정 투어길에 오른 팀의 10경기를 모두 승리시켰다는 기록 또한 존재합니다.

 

더해서 2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어 '호랑이'라 불렸던 그는 특히 1919년 대회에서 조국의 사상 첫 트로피를 득점왕과 MVP로서 차지하는, 축구 강국의 탄생을 알리는 효를 내지른 바 있습니다.


4) 선 외 7인

7 players other than selection

브라질 축구 역대 베스트 11 선 외 7인

 

토니뉴 세레주 브라질

토니뉴 세레주

주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55년 4월 21일

주요 클럽:UC 삼프도리아

클럽 커리어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립 리그 우승 1회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1977년 ~ 1985년

A매치 57경기 7골

1978 FIFA 월드컵 3위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0년대 ~ 90년대 브라질 축구가 배출한 역대급 수비형 미드필더. 뛰어난 피지컬과 체력으로 상대의 공을 따내고 이어지는 우수한 볼키핑과 테크닉, 아군을 바라보는 시야와 패스 능력으로 찬스까지 창출하던 무결점의 미드필더였던 세레주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AS 로마에서 뛰어난 활약을 연이어갔으며 특히나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개척하며 1990/91시즌의 스쿠데토와 91/92 시즌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룩해냈습니다. 뛰어난 자기관리로 말년인 상파울루 시절까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2연패에 공헌한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황금 사중주' 라인을 구성해 1978 WC 3위, 1979 코파 3위, 1983 코파 준우승 등을 달성한 바 있습니다.

 

둥가 브라질

둥가

주 포지션:DM

국적:​브라질

신장:​176cm

생년월일:1963년 10월 31일

주요 클럽:AFC 피오렌티나

클럽 커리어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일본 J리그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87년 ~ 1998년

A매치 91경기 6골

1984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1990년대 브라질의 황금기를 진두지휘한 리더. 전천후 성향의 미드필더로 브라질스러운 테크닉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비력과 탁월한 볼 배급, 믿음직한 경기 운영 능력, 대포알같은 중거리 슛 등을 최고로 내세웠던 둥가였습니다.

 

거기다 팀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그는 상술한 기량을 바탕으로 인테르나시오나우, 피오렌티나, 슈투트가르트에서 전성기를 달리며 믿음직한 팀의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비록 많은 트로피를 얻지는 못했지만 기량 하나 만큼은 분명히 월클이었던 둥가는,

 

카나리아 군단 아래서도 주장으로 1989년, 9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94년, 98년 월드컵 2연속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모두 대회 올스타에 선정, 특히 1994년 대회에서는 이례적이었던 브라질의 실리축구를 가능케하며 빼어난 활약으로 우승해 국민들을 믿음에 보답했습니다.

 

소크라치스 브라질

소크라치스

주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92cm

생년월일:1954년 2월 19일

주요 클럽:SC 코리치안스

클럽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79년 ~ 1986년

A매치 60경기 22골

1979 코파 아메리카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 크나 큰 체구를 이용하면서도 자유자재의 볼 컨트롤과 뛰어난 유연성으로 유기적인 플레이메이킹, 드리블을 구사해 자신의 사상인 낭만 주의를 필드에서 전파하던 그는 전매특허인 힐패스로도 유명했습니다.

 

골도 많이 넣던 소크라치는 자국의 코리치안스에 몸 담으며 3번의 주 리그 우승을 만들었으며 1982년부터 84년까지 3연속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 선정, 특히나 1983년에는 52경기 36골이라는 괴랄한 기록으로 남미 올해의 선수로도 뽑힌 적이 있습니다.

 

후에 피오렌티나에서도 활약한 그는 주장으로서 지쿠, 파우캉, 토니뉴 세레주와 함께 '황금 사중주'를 구성해 1983 코파 준우승, 24경기 무패 기록 등을 세웠으나 월드컵에서는 항상 아쉽게 한끝 차이로 탈락하는 고비를 마셨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의과 대학 출신으로 은퇴 후 의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카카 브라질

카카

포지션:AM​​

국적:​브라질

신장:186cm

생년월일:1982년 4월 22일

주요 클럽:AC 밀란

클럽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회

토르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2002년 ~ 2016년

A매치 92경기 29골

2002 FIFA 월드컵 우승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2회

2000년대 초중반까지 AC 밀란과 브라질 축구를 빛낸 슈퍼 크랙. 경악을 금치못하는 어마무시한 스피드로 유명한 치달과 드리블 돌파, 그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킬러 패스와 결정력까지 있던 카카였습니다.

 

카카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줄비한 스쿼드 사이에서도 빛나는 활약으로 '밀란 제너레이션 2기'를 주도하며 5개의 트로피를 팀에 선사했습니다. 마드리드로 떠나 먹튀로 전락하기 전까지 밀란 소속으로 3번의 UEFA 올해의 팀과 2번의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특히 2006/07 시즌, 전성기가 저물고 있는 '노인정 밀란'이라고 조롱받던 팀을 멱살 잡고 맨유, 리버풀 등을 박살내며 챔스 우승을 견인, 챔스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서도 카카는 2번의 컨페드컵 우승을 MVP급으로 캐리했으나 그가 에이스로 있던 2000년대 중후반 브라질은 부진했고 결국 2006년, 10년 월드컵 월드컵은 8강에 그쳤습니다.

 

줄리뉴 브라질

줄리뉴

주 포지션:RW

국적:브라질

신장:180cm

생년월일:1929년 7월 29일

주요 클럽:AFC 피오렌티나

​클럽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토루네이우 리우 상파울루 우승 3회

국대 커리어

1952년 ~ 1965년

A매치 27경기 13골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

​역사상 최고의 윙어라는 타이틀로 불릴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친 비운의 인물. 창의성을 겸하는 빠릿빠릿한 드리블 돌파와 정확한 킥 등에 능했던 그는 1950년대 ~ 6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윙어였습니다.

 

줄리뉴는 자국 브라질 리그에서 당시 유럽에 흔하지 않았던 용병으로 이적왔고 피렌체 소속으로 역사적인 1955/56 시즌, 스쿠데토를 들어올렸고 56/57 시즌엔 바로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끌어내는 등 뛴 기간이 단 4시즌으로 짧은 편이지만 구단의 역대급 선수로 평가받으며 뒤파우메이라스 유니폼을 입고도 3번의 주 리그, 1번의 전국 리그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허나 줄리뉴는 국대에서는 비운의 아이콘인데, 당시 해외에서 뛰는 선수를 뽑지 않는 브라질 대표팀의 운영방침 때문에 그는 월드컵 2연속 우승 멤버에 들지 못했습니다. 1953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54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에이스였던 선수였기에 만약 그가 국대에 들었다면 지금의 가린샤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토스탕 브라질

토스탕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47년 1월 25일

주요 클럽:크루제이루 EC

클럽 커리어

미나스제라이스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2년

A매치 54경기 32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플레이스타일로보나 재능으로 보나 가장 축구 황제에 근접해있었던 '하얀 펠레'. 자국의 역대급 재능으로 체구도 작고 발도 느렸지만 부드럽고 깔끔한 탈압박과 드리블, 창의적인 키패스와 괴랄한 득점 스탯을 쌓는 능력 등등에 최전방, 윙어, 심지어 현대의 메짤라에 가까운 미드필더로도 뛴 바 있습니다.

 

토스탕은 1960년대 후반 ~ 70년대 초반 크루제이루 EC의 약진을 이끌어 5연속 주립 리그 우승과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1966년 전국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이름을 브라질 전역에 알렸습니다.

 

71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 초대 수상자이자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한 그는 1970년 월드컵에서도 펠레와 투톱을 결성해 적국들을 박살내며 우승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1969년, 안면에 공을 강하게 맞아 망막박리라는 심각한 눈 부상으로 인해 후에 26살이라는 젋은 나이에 안타깝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아데미르 브라질

아데미르

주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6cm

​생년월일:​1922년 1월 8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클럽 커리어

브라질 페르남부쿠 주립 리그 우승 1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5회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쉽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3년

A매치 39경기 32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0 ~ 50년대 브라질 축구의 얼굴과도 같던 세계 정상급의 기념비적인 공격수. 브라질 최초의 No.9으로 평가받는 그는 양발을 토대로하는 뛰어난 골 결정력과 훌륭한 침투 능력, 왼쪽 윙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만큼 빠른 스피드를 가졌고 또 유난히 큰 턱 때문에 '턱돌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주로 브라질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 맹활약했고 다닐루 아우빙, 자이르 다 호사 등의 멤버와 클럽 최전성기 핵심 멤버로 1948년 남미 클럽 챔피언쉽을 포함해 크고 작은 수여개의 우승을 주도, 1950년에는 주립 리그 득점왕과 함께 리그 챔피언으로 우뚝 서기도 한 아데미르였습니다.

 

국가대표로도 194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주도, 50 월드컵에서도 6경기에서 8골을 뽑아내며 득점왕을 석권하나 우승이 달린 결승 리그에서는 우루과이전에서는 철퇴를 맞아 패배하는 눈물을 삼켜야했습니다.


 5)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카스틸류

망가

지다

줄리우 세자르

알리송

측면 수비수

마리뉴 샤가스

레안드루

조르지뉴

마이콩

마르셀루

중앙 수비수

오를란두 페사냐

루이스 페헤이라

에지뉴

카를루스 모제르

아우다이르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카를루스 바우에르

디노 사니
윌송 피아짜
클로두아우두
마우루 시우바
이메르송
카제미루

공격형 미드필더

자이르 다 호사

지르세우 로페스
아데미르 다 기아
지르세우

하이

윙어

치쿠
카누테이루
주제 마시아 페페
마리우 자갈루
자이르 다 코스타

센터 포워드

콰렌치냐
아마리우두
레이비냐
뮐레르
베베투

 

스트라이커

바바
쿠치뉴
주제 아우타피니
호베르투 지나미치
카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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