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Argentina >
홈구장:엘 모누멘탈
최다 득점자:리오넬 메시 98골
최다 출장자:리오넬 메시 172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우승 3회(1978, 1986, 202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5회 - 최다 우승(1921, 1925, 1927, 1929, 1937, 1941, 1945, 1946, 1947, 1955, 1957, 1959, 1991, 1993, 2021)
역대 최고의 선수:리오넬 메시
주장:다니엘 파사레야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우발도 피욜
포지션:GK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1cm
생년월일:1950년 7월 21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5년
A매치 58경기
1978 FIFA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를 넘어 남아메리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일컬어지는 인물. 역사상 최고의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그는 극강의 1대1 선방률과 슈퍼 세이브를 밥먹듯이 연출해냈습니다.
많은 명문을 돌아다녔지만 자국 최고의 클럽 리버 플레이트에서 수년간 활약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한 피욜은 총 4회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메트로폴리타노 우승과 3회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나시오날 우승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1977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 주인공인 피욜은 78년과 83년, 84년에는 각각각 마리오 켐페스, 소크라치스, 엔조 프란세스콜리에 이어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 2위에 이름을 올리며 그 역량을 인정받았으며,
국대에서도 다니엘 파세레야와 철통방어의 요새를 만들어 1978 월드컵 우승에 성공, 본인은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습니다.
라이트백
하비에르 사네티
포지션:R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8cm
생년월일:1973년 8월 10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94년 ~ 2011년
A매치 145경기 5골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팬아메리칸 게임 우승 1회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하나이자 21세기 인테르 최고의 선수. 사네티하면 먼저 떠오르는건 '꾸준함'과 '페어 플레이'인데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과 프로 정신으로 레프트백과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성, 전성기 때 보여주던 스피드와 드리블을 말년까지 선보이던 그는 커리어에서 퇴장이 단 한장 뿐일 정도로 신사적인 플레이로도 많은 이들에게 박수 받았습니다.
사네티는 인테르에 21세부터 40세까지 몸담으며 팀 커리어로는 본인의 결승골로 승리한 UEFA컵 우승, 세리에 5연패, 09/10 시즌 '트레블' 등을 이끌었고 개인으로는 인터 밀란 역대 최다 출장자(858경기), 세리에 최다 출장 순위 2위(615경기), 챔스 주장 역대 최다 출장자(82경기) 등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이와 같은 활약으로 그의 4번은 인터 밀란에서 영구결번 처리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도 9번의 메이저 대회에 참가해 2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 비록 메이저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145경기를 출장해 대표팀 통산 출장 3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센터백
로베르토 페르푸모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0cm
생년월일:1942년 10월 3일
주요 클럽:라싱 클루브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4년
A매치 37경기 0골
1960년대 중후반 ~ 1970년대 초반 남아메리카 축구계에서 S급으로 여겨지던 다니엘 파사레야 다음 가는 아르헨티나의 명품 센터백. '사령관'이라 불리는 훌륭한 수비 통솔 능력과 경기를 운영하는 롱패스 능력부터 시작해 강력한 대인 방어와 볼 차단, 정교한 태클 덕에 센터백은 물론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 가능했던 훌륭한 수비 자원이었습니다.
페르푸모는 오랜 기간 아르헨티나의 빅5인 라싱 클루브의 최전성기를 이끌었고, 특히 당시 팀이 추구하던 극단적인 닥공 전술에도 후방을 공고히 지키며 2번의 리그 우승과 1967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후에 크루제이루와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해서도 6번의 우승 타이틀을 따냈던 페르푸모는 하양 하늘 군단의 캡틴으로도 2번의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센터백
다니엘 파사레야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3cm
생년월일:1953년 5월 2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6년
A매치 70경기 22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중반를 풍미한 남미 역사상 최고의 수비 중 하나. '남미의 베켄바우어'로 불린 파사레야는 과감한 맨마킹, 작은 키를 커버하는 월등한 위치 선정과 도약력, 비상한 수비 조율력 등등에다 수비임에도 프리킥과 PK도 차던 빼어난 왼발 킥능력과 날카로운 오버래핑 감각으로 무장해 3경기당 1골씩 득점하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국의 명문 클럽 리버 플레이트에서 커리어의 초창기를 보내며 총 7차례의 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특히 1976 시즌은 리그에서만 24골을 넣어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1978년은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순위에서 4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후에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 유니폼을 입고도 맹활약한 그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서 역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 1986년에는 부상으로 벤치에만 있었지만 1978년에는 대회 베스트급 폼으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컵을 따냈습니다.
레프트백
실비오 마르솔리니
포지션:L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3cm
생년월일:1940년 10월 4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국대 커리어
1960년 ~ 1969년
A매치 28경기 1골
196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틀림 없는 '라 알비셀레스테'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1960년대 당대 최고의 레프트백 지아친토 파케티, 니우통 산투스와 비견될 만큼의 뛰어난 패스, 드리블로 공격적인 지원과 철저한 지역 방어 능력, 선수단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쉽으로 명망 높았습니다.
그는 유럽 명문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거의 모든 커리어인 12년을 보카 주니어스에서 머무르며 5번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과 1번의 아르헨티나 컵 우승, 196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끌어내며 보스테로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기를 가슴에 품고도 그는 주장으로 1967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1966년 월드컵 8강행을 주도,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다소 억울한 판정으로 인해 아쉽게 잉글랜드에 탈락했음에도 그 자신만은 비공식 올스타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루이스 몬티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신장:169cm
생년월일:1901년 5월 1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아르헨티나 1924년 ~ 1931년
A매치 16경기 5골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30 FIFA 월드컵 준우승
이탈리아 1932년 ~ 1936년
A매치 18경기 1골
1934 FIFA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테르디토레(이탈리아어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지칭하는 용어).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마티아스 진델라도 무릎 꿇은 거칠고 악착같은 맨마킹과 안정적인 볼배급 능력, 뛰어난 활동량 덕에 '두개의 날개'로 불렸던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사이 포지션)이었던 몬티는,
가는 팀마다 공수의 엔진이 되어주며 CA 산 로렌소의 핵심으로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뛰 경제 사정이 안좋던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국적을 귀화하였고 유벤투스와 계약해 전설적인 멤버들과 함께 4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견인하면서 유럽 전역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귀화 전 아르헨티나 국적으로는 1927 코파 우승에도 28 올림픽, 30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으나 이탈리아 국적으로 나간 1934년 월드컵, 마침내 쥘리메컵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개의 국적으로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은 최초이자 마지막 선수이기도 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스페인
신장:178cm
생년월일:1926년 7월 4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아르헨티나 1947년
A매치 6경기 6골
1947 코파 아메리카 우승
콜롬비아 1949년 ~ 1952년
A매치 4경기 0골
스페인 1957년 ~ 1961년
A매치 31경기 23골
모든 레전드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 당대 최고의 수준의 체력, 스피드, 슛팅, 패스, 리더쉽, 센스, 축구 지능까지 가진 육각형 '금빛 화살' 디 스테파노는 주 포지션은 세컨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실제로 박투박 미드필더 수준으로 필드 모든 지역의 영향을 끼치던 말 그대로 완전체였습니다.
그는 리버 플레이트와 미요나리오스에서의 활약으로 스페인에 도착해 '저승사자 군단'의 전성기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무려 8번의 라리가 우승과 1955/56 시즌부터 59/60 시즌까지 이어진 역사적인 유러피언컵 5연패를 이끌며 현시대 레알의 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거기다 5번의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모두 골을 넣는 진기록을 세운 그는 5번의 라리가 득점왕, 각 2번의 유러피언컵 득점왕과 발롱도르까지 수상했으며 디 스테파노의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프랑스 풋볼에서는 그에게 슈퍼 발롱도르라는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1947년 21세의 나이에 6골 3도움으로 아르헨을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이끌었던 그는 이후 콜롬비아, 스페인 국적으로 귀화를 선택하나 이상하리만치 불운해 월드컵 본선 잔디는 단 한번도 밟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디에고 마라도나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7cm
생년월일:1960년 10월 30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국대 커리어
1977년 ~ 1994년
A매치 91경기 34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역사상 최고 레벨로 거론되고 있는 스포츠를 초월해 종교적 존재로 섬겨졌던 '축구의 신'. 자신보다 배는 큰 수비들을 아류로 만드는 밸런스와 스피드, 신의 경지에 도달한 드리블 돌파와 개인기, 충격적인 킬패스와 플레이메이킹 능력 등 월등한 개인전술 뿐만 아니라 이타적 플레이까지 도가 튼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마라도나는,
10대의 나이부터 아르헨티노스, 보카, 바르샤를 거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나폴리라는 땅에 내려와 마피아 연루, 마약 스캔들이라는 지저분한 잡음에도 실력으로 찬양받으며 리그 하위권이던 팀을 유럽에서도 꿇리지 않는 클럽으로 탈바꿈시켜 염원하던 스쿠데토를 2차례, 1988/89 시즌 UEFA컵 트로피를 드는 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87/88 시즌에는 세리에와 코파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나폴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으며 팀은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 지정, 홈구장 명명을 그의 이름을 딸 정도였습니다.
자국 대표로는 1986년, 단일 대회 역대 최다 드리블 성공, 피파울, 잉글랜드전 드리블골 등 월드컵 역사에 남을 역대급 원맨쇼로 기대도 않던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해 골든볼, 실버슈를 수상, 다음 월드컵에서도 더 약해진 전력의 조국을 브론즈볼을 받는 활약으로 멱살잡고 결승에 올린 마라도나는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범접불가의 구국영웅으로 우러러보이고 있습니다.
라이트 윙어
리오넬 메시
포지션:RW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9cm
생년월일:1987년 6월 24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2005년 ~
A매치 172경기 98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4 FIFA 월드컵 준우승
201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9 코파 아메리카 3위
2021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22 FIFA 월드컵 우승
CONMEBOL-UEFA 컵 오브 챔피언스 우승 1회
발롱도르 8회 수상으로 알 수 있는 21세기 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 단신이라는 단점을 잊게하는 현란한 드리블, 완벽한 왼발의 피니싱 능력, 환상적인 패스, 이제는 노련한 플레이메이킹까지 펼치는 리오넬 메시는,
라 마시아의 특급 유망주로 데뷔해 축구 역사에도 남을 공격 트리오 'HEM', 'MVP', 'MSN' 라인 등 유수의 선수들과 함께 합을 맞추며 21세기 바르샤의 전성기, 10차례의 리그, 7차례의 컵, 4차례의 챔스 우승을 포함한 2차례의 '트레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클럽의 영광과는 다르게 국대에서는 오랜기간 준우승의 늪에 빠졌었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를 MVP,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수상하는 비범한 퍼포먼스로 우승, 22년 월드컵에서도 35세의 나이에 토너먼트 전경기 MOM, 월드컵 역대 최다 공격 포인트(7골 3도움)로 역사에 남을 만한 라스트 댄스를 펼쳐 고대하던 본인의 월드컵 트로피를, 엠블럼에는 세번째 별을 다는데 성공했습니다.또한 기록이랑 기록은 다 갈아치운 메시로도 유명한데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왕과 도움왕 (8회, 6회),단일 클럽과 FC 바르셀로나 역대 최다 득점자, 최다 출장자(672골, 778경기), 단일년도 역대 최다 득점자(91골),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자(474골),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최다 출장자, 월드컵 최초 골든볼 2회 수상 등은 기록이랑 기록은 다 갈아치운 그의 위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레프트 윙어
마리오 켐페스
포지션:LW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4cm
생년월일:1954년 7월 15일
주요 클럽:발렌시아 CF
국대 커리어
1973년 ~ 1982년
A매치 43경기 20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마라도나 없이도 아르헨티나를 첫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한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 남미 최고의 센터 포워드. 뛰어난 '하드워킹 포워드' 유형의 선수로 발군의 몸싸움, 발재간을 토대로 페널티 박스 바깥부터 뚫고 들어오는 황소 드리블을 시전해 골을 만들던 선수였습니다.
연계도 뛰어났던 발렌시아 역대 최고의 용병이자 득점 랭킹 3위 '도살자' 켐페스는 1976년 구단에 이적하자마자 라리가 득점왕을 2시즌 연속 독식, 1978/79 시즌의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선 멀티골로 마드리드를 침몰시킨 후 우승, 79/80 시즌의 위너스컵 우승 당시에는 득점왕을 차지하며 트로피를,
특히 1978년에는 해외파를 뽑지 않는 대표팀 규칙때문에 1년 동안 귀국해 활약하며 월드컵을 준비했으며 본선에서 6골로 득점왕, MVP와 함께 우승을 쟁취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 일등공신으로 우뚝 선 그는 78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까지 석권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스트라이커
호세 마누엘 모레노
포지션:ST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7cm
생년월일:1916년 8월 3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36년 ~ 1950년
A매치 34경기 19골
194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2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7 코파 아메리카 우승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의 대선배급인 1940년대 세계 축구계 최고의 전설. 화려한 드리블 스킬과 중거리 슛팅, 활발한 2선 침투와 찬스 메이킹 능력을 보유했다고 해 '기병'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렸었습니다.
신인 시절, 디 스테파노마저 우상으로 삼았다는 호세 마누엘 모레노는 여러팀들을 돌아다녔지만 역시 전성기는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맞이, 2차 세계 대전으로 얼룩진 1930년대 중후반 ~ 1940년대 초중반의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신화를 쓴 리버 플레이트의 공격진, '라 마키나'(톱니바퀴라는 뜻으로 5명이 유기적이고 아름다운 공격 연계를 펼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의 필수불가결한 존재감로 구단의 공격을 지휘하여 그들과 함께 총 5번의 아르헨티나 자국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그 위엄이 세계로 뻗지는 못했지만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겪었으며 그중 1942년 대회는 득점왕, 47년 대회는 MVP로 뽑힌 바 있습니다.
감독
카를로스 빌라르도
포지션:MANAGER
국적:아르헨티나
생년월일:1939년 3월 16일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0년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빌라르도 주의'라는 철학으로 통칭되는 철저한 우익 축구의 신봉자. 당시 유행하던 3-5-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리베로의 수비적 배치를 통해 2명 ~ 3명으로만 역습을 전개하는 보수적이고 철저한 실용주의 운영을 구사했으며 아르헨티나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루이스 메노티가 아름답고 재미있는 공격 축구를 이끈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습니다.
디에고 마라도나라는 크랙에게 모든 공격을 의존한다는 비판 또한 존재했지만 그가 지휘봉을 잡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1986년의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 이어진 1990년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에까지 올랐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아마데오 카리소
포지션:GK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8cm
생년월일:1926년 6월 12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54년 ~ 1964년
A매치 20경기
스위퍼 키퍼의 시초 중 한명으로 후대의 많은 공격형 골키퍼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나이. 1940년대 후반 ~ 196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최고의 키퍼로 불린 그는 전략적인 골킥을 이용한 공격 전개와 박스 바깥으로 뛰어나 볼을 차단하는 스타일, 이 외에도 뛰어난 민첩성을 보유해 '타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키핑 능력도 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최초로 글러브를 낀 키퍼로도 알려져있는 그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라 마키나', 디 스테파노같은 공격진을 후방에서 지원하며 전성기를 만들었고 6차례의 리그 우승과 196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여담으로 역대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은 그와 경기 후 자신의 한쪽 장갑을 건네주며 그의 실력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호르헤 올긴
포지션:R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6cm
생년월일:1952년 5월 17일
주요 클럽:CA 산 로렌소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0년
A매치 60경기 0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리그 탑티어 기량을 뽐내던 일류급 수비. 뛰어난 허슬 플레이, 안정적인 수비력을 연일 선보이던 올긴은 클럽 커리어에서는 센터백으로 주로 뛰었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루이스 메노티 감독에 선택에 의해 라이트백에서 뛰며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자국의 산 로렌소,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노 후니오르스, 이 세 클럽에서 모두 맹활약하며 통산 6번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과 1985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끄는데 크나 큰 공헌을 한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는 2번의 월드컵에 주전으로서 참가, 1978년 월드컵에선 마리오 켐페스, 다니엘 파사레야,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우도 피욜 같은 선수들을 도와 사상 첫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센터백
오스카 루헤리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5cm
생년월일:1962년 1월 26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4년
A매치 97경기 7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199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킹파드컵 우승 1회
1980년대 중후반 ~ 90년대 초중반을 걸쳐 뛰어난 모습을 선보이며 남아메리카 축구를 빛낸 최고의 스토퍼. 루게리는 빼어난 등빨과 '대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거대한 머리통, 싸움꾼 기질을 살려 상대 공격수에게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파이터형 수비수로,
자국의 보카 주니어스, 리버 플레이트, 산 로렌조같은 명문 세팀에서 모두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경험이 있으며 특히나 리버 플레이트 소속으로 1986년 리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까지 따내며 그 연도를 리버 플레이트의 해로 만들어냅니다. 88/89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과 함께 라리가 우승도 이끌었던 루헤리는,
라 알비셀레스테 유니폼을 입고서도 당시 짠물 수비를 펼쳐 1986년 월드컵 우승과 90년 월드컵 준우승의 핵심으로 뛰었고 1991년에는 왼손에는 코파 아메리카 우승컵, 오른손에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잡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4cm
생년월일:1984년 6월 8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2003년 ~ 2018년
A매치 147경기 3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4 FIFA 월드컵 준우승
201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하는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센터백. 마스체라노는 완벽한 대인마킹과 패스길 차단, 강력한 태클을 주로 하는 거친 수비를 보여줬던 선수였으며 이런 능력에 국내팬들에게 '마지우개'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리버풀에서 스티븐 제라드, 사비 알론소와 중원 라인을 만들어 대활약했습니다. 후에 바르샤로 이적해 발밑 능력까지 향상해 2010/11 시즌의 '5관왕'과 14/15 시즌의 '트레블'을 포함해 19번의 우승을 경험한 마스체라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공격의 메시만큼이나 중요한 후방의 코어로 단단한 수비 조직을 형성, 3번의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에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4년 월드컵에서도 홀로 수비를 캐리하며 조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4강전 아르연 로번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보인 수비력은 마치 장판파의 장비를 연상시켰습니다.
레프트백
알베르토 타란티니
포지션:L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9cm
생년월일:1955년 12월 3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2년
A매치 61경기 1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아르헨티나와 보카 주니어스의 왼쪽을 견실히 지켜냈었던 인물. 툭 튀어나온 앞니와 복실복실한 머리 덕에 '토끼'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그런 별명과 다르게 시원시원한 공격력, 다혈질의 성격과 싸움꾼 기질이 있었던 수비스타일을 가진 열혈남아였습니다.
타란티니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17살에 데뷔해 2번의 리그 우승과 1977년 브라질의 크루제이루를 잡고 구단 최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이라는 영광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얼마안가 계약 분쟁으로 클럽을 떠나 잉글랜드로 진출했고 1년간 머무르다 후에 보카의 라이벌인 리베르로 이적해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타란티니는 대회 베스트 11과 월드사커 선정 월드 베스트 11에 드는 활약을 하며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도 레돈도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6cm
생년월일:1969년 6월 6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1992년 ~ 1999년
A매치 29경기 1골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킹파드컵 우승 1회
1990년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던 당대 엘레강스함과 우아함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드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 실력과 경기 조율력에다가 강하고 거친 수비력을 보이는 반면 부드러운 탈압박, 유려한 전진 드리블링을 보유했던 그는 특유의 머리 스타일과 수려한 외모 덕에 '왕자' 혹은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레돈도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각 2차례의 라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두번째 빅이어인 99/00 시즌엔 맨유 중원을 박살내는 명경기를 찍는 등 최고점의 폼으로 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해냈습니다. 그러나 레돈도는 이러한 활약에도 페레즈 회장의 '갈락티코스 정책'에 희생양이 되어 팀을 떠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국대에서 그는 1992년 킹파드컵(컨페드컵 전신)에서 MVP로 우승을, 1년 뒤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팀을 남미 챔피언의 왕좌에 앉히는 클래스를 보이나 후에 다니엘 파사레야 대표팀 감독과의 불화로 그의 국대 경력은 너무나도 빠르게 단절되었습니다.
라이트 윙어
오마르 시보리
포지션:RM
국적: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신장:163cm
생년월일:1935년 10월 2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아르헨티나 1956년 ~ 1957년
A매치 19경기 9골
1956 코파 아메리카 3위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탈리아 1961년 ~ 1962년
A매치 9경기 8골
'1960년대의 마라도나'. 첨예한 왼발 슛과 패스, 특유의 알까기 기술과 마라도나 버금가는 드리블 스킬로 수비수들을 털고 다니던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던 그는 엄청난 승부욕과 다혈질로도 알려져있습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리그 3연패를 이끌며 이탈리아 무대로 넘어가 존 찰스, 잔피에로 보니페르티와 함께 '트리오 마지코' 삼각편대를 구성해 5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시보리는 3번의 스쿠데토를 가슴에 붙였으며, 후에 이탈리아 국적으로까지 귀화한 1959/60 시즌, 세리에 득점왕을 차지하며 리그 우승, 이듬해인 1961년은 이탈리아 국적 최초이자 칼초계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덧붙여 라 알비셀레스테의 품에서도 움베르토 마스치오, 오마르 코르바타, 오스발도 크루스와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 불린 악명높은 공격진을 형성해 1957년 남미 대륙 챔피언십에서는 MVP에 선정되는 포스로 우승컵을 조국에 바쳤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아돌포 페데르네라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1cm
생년월일:1918년 11월 1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40년 ~ 1946년
A매치 21경기 7골
194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2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우승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마에스트로 중 한명. 디 스테파노가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선수로 빼어난 볼컨트롤, 정확한 패스, 발군의 연계 등에 능했던 그였습니다.
당대 최전성기던 리버 플레이트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서 현대의 펄스 나인과 제로톱에 가까운 역할, 전방에서 아래로 내려와 경기를 푸는 플레이스타일로 뛰었습니다. '라 마키나'로 불렸었던 낭만주의 축구의 공격진을 가동시키는, 톱니바퀴의 윤활유 역할을 해낸 페데르네라에 팀은 종합 5번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컵을 들어올려 당시 남아메리카 리그를 CA 리버 플레이트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2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번의 준우승으로 아르헨티나를 지휘했던 페데르네라는 1946년 대회에서는 MVP로 뽑히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라이문도 오르시
포지션:LM
국적:아르헨티나,이탈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01년 12월 2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아르헨티나 1924년 ~ 1928년, 1936년
A매치 13경기 3골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8 하계 올림픽 은메달
이탈리아 1929년 ~ 1935년
A매치 35경기 13골
1934 FIFA 월드컵 우승
중부 유럽 인터내셔널컵 우승 2회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기적을 만들어낸 193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왼쪽 윙어. 오르시는 빠른 주력과 우아하면서 환상적인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대 측면 수비진을 쑥대밭을 만들어놓을 수 있는 선수였으며 킥능력도 워낙 정확해 프리킥, 코너킥도 도맡아 찼는데, 왼발로 감아차는 코너킥으로는 종종 집적 골을 넣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리운디(스페인, 이탈리아 혈통의 남미 이민자)였던 오르시는 자국 인데펜디엔테에서 2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유벤투스에 눈에 띄었고, 이탈리아 대표팀까지 뛰게 되면서 유벤투스 소속으로 역사적인 세리에 A 5연패를 이끌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적일 때는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28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이탈리아 국적일 때는1934 월드컵에서 대회 최고의 윙어로서 활약했고 특히 결승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바나나슛 동점골 덕에 아주리는 연장전 끝에 월드컵 우승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스트라이커
앙헬 라브루나
포지션:ST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6cm
생년월일:1918년 9월 28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42년 ~ 1958년
A매치 37경기 17골
194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6 코파 아메리카 3위
리베르 플라테르와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에 남을 역대급 골게터. 라브루나는 동료를 보는 정확한 연계의 전술안, 뛰어난 스피드와 깔끔한 마무리 능력으로 9번과 10번의 역할를 다 소화하며 남미 전역에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번민의 기사들' 중 하나로 뛰며 전성기를 누렸고 재정 부족으로 핵심들이 떠나갈 때도 꾸준한 관리를 통해 팀에 남아 불혹의 나이인 40세까지 약 20년을 뛰어 종합 9개의 리그 우승 트로피를 엘 모누멘탈로 가져왔습니다. 라브루나는 317골과 17골로 CA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와의 더비, 수페르클라시코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아르헨티나 리그 누적 득점 랭킹 2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1946년과 5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남미 정상에 서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포지션:ST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5cm
생년월일:1969년 2월 1일
주요 클럽:AFC 피오렌티나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2년
A매치 78경기 56골
199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킹파드컵 우승 1회
1990년대 정통파 스트라이커의 로망이자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로 불린 사나이. 재빠른 퍼스트 터치로 수비를 벗겨내는데다가 어마무시한 발목힘으로 인정사정 없이 꽂아버리는 파괴스러운 골 결정력으로 캐스터가 그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골망을 흔든다고 해 사람들로부터 '바티 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피렌체의 남자로 모든 애정을 팀에 쏟아부으며 1994/95 시즌 세리에 득점왕, 다음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99년 발롱도르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허나 구단의 재정 약화로 인해 비교적 강팀인 로마로 이적할 수 밖에 없었고 오자마자 2000/01 시즌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클래스를 보였습니다. 더욱이 해당 시즌, 친정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골을 넣고 흘린 뜨거운 눈물은 오직 돈으로만 돌아가던 축구판에 얼마 안남은 낭만의 한방울이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로 바티는 1991년 코파에서 득점왕으로 32년만인 우승을 이끌었고 다음 대회까지 득점왕으로 2연패를 견인했습니다. 또한 월드컵 2연속 해트트릭 기록 보유자이자 1998 WC에선 실버부츠를 타기도 했습니다.
수석 코치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포지션:MANAGER
국적:아르헨티나
생년월일:1938년 11월 5일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3년
1978 FIFA 월드컵 우승
'메노티 주의'라는 재밌고 화려한 공격 축구를 추종했던 아르헨티나의 명 사상가. 재밌고 공격적인 축구를 좌파, 지루하고 수비적인 축구를 우파에 처음 비유해 우익 축구를 혐오하고 좌익 축구를 신봉했었던 인물로,
아르헨티나 우익 독재 군부 아래 선임되었음에도 자신의 좌파적 정치 성향을 숨기지 않았던 메노티였으니 자신의 철학을 필드 위에서 숨길리 만무했으며 다니엘 파사레야, 마리오 켐페스, 우발도 피욜 등의 선수들과 메노티의 공격 축구에 힘입은 아르헨티나는 1978년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바 있습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포지션:GK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5cm
생년월일:1963년 10월 17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87년 ~ 1994년
A매치 44경기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199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킹 파드컵 우승 1회
1980년대와 90년대를 걸쳐 아르헨티나를 대표했었던 명 골키퍼. 뛰어난 반사신경과 똑똑한 예측력, 빼어난 심리전을 겸비했었으며 특히 페널티킥 선방을 기가 막히게 잘해 'PK 막는 귀신'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세르히오 고에코체아는 남미의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고 그중 리버 플레이트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며,
흰색 하늘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는 1990 월드컵에서 선배인 네리 품피도의 부상을 틈타 주전 자리를 꿰찼고, 8강 유고전과 4강 이태리전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을 계속 연출하며 결승행에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1991년 코파와 93년 코파 2연속 우승, 덧붙여 후자의 대회에서는 MVP까지 선정되는데 아직까지도 코파 아메리카 역사에서 골키퍼가 최우수 선수로 뽑힌 사례는 단 세번뿐입니다.
라이트백
카를로스 소사
포지션:R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4cm
생년월일:1919년 7월 21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국대 커리어
1942년 ~ 1946년
A매치 12경기 0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0년대 ~ 50년대 전반에 걸쳐 월드클래스급의 존재감을 발산하던 당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 기술적이고 과감한 드리블 시도와 미친 체력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한발짝씩 더 뛰어댕기며 오른쪽 라인을 지배했다고 전해지는 인물로 그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1943년, 44년 리그 2연패에 성공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여담으로 카를로스 소사는 1952년에 보카 주니어스에서 프랑스 리그의 라싱 파리로 이적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초의 유럽 리그 진출 사례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국가대표로도 주전으로 대활약하며 1946년과 47년 코파 아메리카를 2연속으로 제패하는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센터백
로베르토 아얄라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7cm
생년월일:1973년 4월 14일
주요 클럽:발렌시아 CF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7년
A매치 115경기 7골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팬 아메리칸 게임 우승 1회
1990년대 중후반 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구급 면모를 드러냈던 명 중앙 수비. '생쥐'라는 별명에 걸맞는 교활한 태클과 공격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얄미운 수비 스타일을 자랑하면서도 작은 키에도 뛰어난 점프력으로 빼어난 제공권 장악을 보였던 아얄라는,
여러팀들 돌아다녔지만 2000년, 많은 투자를 하던 박쥐 군단의 품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2번의 라리가 우승, 뮌헨에게 패하긴 했지만 2000/01 시즌의 챔스 준우승과 03/04 시즌의 UEFA컵 우승을 견인하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00/01 시즌은 UEFA 올해의 수비수 선정, 03/04 시즌은 ESM 올해의 팀 선정과 UEFA컵 결승 MOM으로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100경기를 넘게 뛰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아얄라는 3번의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으며 2004년,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까지 도달한 바 있습니다.
센터백
왈테르 사무엘
주 포지션:C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3cm
생년월일:1978년 3월 23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94년 ~ 2011년
A매치 56경기 5골
21세기 인터 밀란의 전성 시대를 함께 한 붙박이 스토퍼. 완고한 대인마크 능력과 강력한 피지컬, 제공권 장악에도 능한 부족함이 없는 만능 수비력을 갖춰었던 사무엘이었습니다.
로마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고 레알로 이적했지만 스페인에서 실패를 맛보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2005년부터 7년간 활약하며 팀의 전성기를 받들었고 리그 5연패 및 '트레블' 등 14회의 우승을 경험한 그는 특히 09/10 시즌, 키부 - 사무엘 - 루시우 - 마이콘으로 이어지는 막강의 수비력의 백4를 구성하며 팀의 챔스 우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09/10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도 뽑힌 바 있는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리만치 운이 없어 대표팀과는 인연이 적었습니다.
레프트백
후안 파블로 소린
포지션:LB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3cm
생년월일:1976년 5월 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95년 ~ 2006년
A매치 76경기 12골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00년대 초중반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하던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나 윙어로 뛸 정도로 막강한 오버래핑 능력으로 각광받았으나 본업인 수비 가담에 있어서는 많이 뒤떨어져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는 별칭으로 통하기도 했습니다.
후안 파블로 소린은 아르헨티나의 역사깊은 클럽인 리버 플레이트에서 4차례의 리그 우승 타이틀과 1996년 남미의 챔스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거머쥐는 활약으로 소린 본인은 남미 올해의 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크루제이루에서도 4개의 우승컵을 안았고 2000년과 2001년에는 또 다시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까지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진가를 더 올린 그는 유럽 진출 후에 라치오, PSG, 바르셀로나 등을 돌아다녔고 그 중에 비야레알 소속으로 대표팀 동료 리켈메와 챔스 4강을 이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표팀에서도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과 06 월드컵 8강행 당시 주역이기도 했던 소린이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네스토르 로시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5cm
생년월일:1925년 5월 10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46년 ~ 1961년
A매치 26경기 0골
194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30년대 중후반 ~ 1940년대 초중반 축구계를 주름잡은 당대 최고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CA 리버 플레이트의 중심부. 훌륭한 피지컬을 사용해 빡센 수비 스타일로 공격수들을 때려잡았다고 전해지는 공격형 하프백으로 필드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동료들을 다잡는게 다반사였기에 '울부짖는 남미 대륙의 짐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커리어 중반에 미요나리스에 갔다 온 것을 제외하면 리베르 플라테에서만 뛰며 앙헬 라브루나,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 남미 최고의 스타들이 줄비했었던 공격진을 뒤에서 힘껏 밀어주었고 총 5번의 리그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라 알비셀레스테의 일원으로도 로시는 뛰어난 공격진을 업고서 2번의 코파 아메리카(1947,1957) 우승 트로피를 아르헨티나 땅으로 가져왔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안토니오 사스트레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6cm
생년월일:1911년 4월 27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국대 커리어
1933년 ~ 1941년
A매치 34경기 6골
193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3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30년대와 40년대 남미 축구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봉으로 불리웠던 아르헨티나의 거물. 정교한 패스와 빼어난 드리블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플레이메이킹을 그려내던 그는 세간으로부터 '인간 오케스트라'라고까지 불렸으며 그가 당시 전성기를 맞았던 클럽, 인데펜디엔테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사스트레는 같이 호흡을 맞추던 아르세니오 에리코, 비센테 데 라마타 등과 함께 상대 수비수들을 현혹시키며 2번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컵을 포함해 많은 트로피를 사냥한 바 있습니다.
또 라이벌인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제치고 1937년과 1941년, 2연속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인도해 라 알비셀레스테의 자존심을 드세운 그이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9cm
생년월일:1952년 8월 3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75년 ~ 1982년
A매치 63경기 8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까지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했던 중앙 미드필더이자 토트넘 역사상 최고의 남미 선수.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를 커버하는 활동량과 체력, 굴지의 키패스 능력, 또 아르딜레스하면 드리블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드리블, 탈압박에 세간에서는 그를 '비단 뱀'이라고 불렸습니다.
당시로는 이례적인 사례로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영국땅을 밟은 이 이방인은 토트넘 핫스퍼에서 데뷔하자마자 PFA 올해의 팀에 뽑혔고 FA컵 2연속 우승을 이끌며 커리어 피크를 찍습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잠시 팀을 떠나지만 얼마안가 돌아와 UEFA컵을 우승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197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의 우승 당시 핵심 미드필더였던 오시는 82년 월드컵에서는 알파벳 순서로 등번호를 배정받아 필드 플레이어이지만 1번을 달고 뛰는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앙헬 디 마리아
포지션:RW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0cm
생년월일:1988년 2월 14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2008년 ~ 2024년
A매치 137경기 31골
2014 FIFA 월드컵 준우승
201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21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22 FIFA 월드컵 우승
CONMEBOL-UEFA 컵 오브 챔피언스 우승 1회
2010년대 중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메시 만큼이나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윙어. 약점으로 지적받던 피지컬에도 엄청난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 창의적인 찬스 메이킹과 날카로운 왼발 킥을 통해서 좌우측 윙어와 메짤라로 대활약했던 그였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2011/12 시즌의 라리가 우승과 13/14 시즌의 '라 데시마'의 일등공신이 되어 UEFA 올해의 팀에 들었던 디마리아는 맨유로 기대를 받으며 이적했으나 실패로 끝났고 파리 생제르맹에서 다시 불을 살려 7년간 5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18개의 트로피를 손에 넣었습니다.
리오넬 메시와 같이 아르헨티나 공격의 에이스로도 활약하며 2014 월드컵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했고 그는 2번의 코파 준우승에도 2021 코파 우승에 드디어 성공했으며 22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깜짝 선발해 PK 획득과 득점까지 뽑아내며 우승에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레프트 윙어
마누엘 세오아네
주 포지션:LW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0cm
생년월일:1902년 3월 19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국대 커리어
1927년 ~ 1929년
A매치 19경기 14골
192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60cm의 키에 80kg의 과체중으로 인해 '돼지'로 불렸었던 당대 아르헨티나의 명 포워드. 축구 선수치고는 다소 뚱뚱한 신체 스펙으로 스피드는 느렸지만 머리로 축구하는 유형의 선수였던 그는 뛰어난 볼다루는 기술과 강력한 킥력으로 자신과 동료의 플레이를 모두 살릴 수 있었던 이였습니다.
이런 마누엘 세오아네는 붉은 악마의 품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3번의 리그 득점왕과 인데펜디엔테를 2차례의 아르헨티나 챔피언 자리에 앉혀놓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22년 55골을 넣어 아르헨티나 리그 한시즌 역대 최다골을 기록을 수립한 그는,
코파 아메리카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친 선수이기도 한데, 무려 3연속 대회 우승을 이끌며 축구 강국으로서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특히나 1925년 코파에서는 득점왕, MVP를 수상했고 27년 대회에서도 최우수 선수는 그의 차지였습니다.
스트라이커
루이스 아르티메
포지션:ST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2cm
생년월일:1938년 12월 2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61년 ~ 1967년
A매치 25경기 24골
196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0년대 중후반 ~ 70년대 초, 아르헨티나와 남미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골잡이였던 인물. 뛰어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수비 뒷공간 공략과 날 때부터 달랐던 본능적인 위치 선정, 치명적인 피니싱 능력으로 수많은 골을 기록했던 아르티메는,
비공식 경기까지 포함해 무려 1000골을 넘게 넣었다고 전해지며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와 인데펜디엔테에서 무려 4번의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최전성기를 맞아 각 3번의 리그 우승과 리그 득점왕, 1971년에는 득점왕과 함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샤냥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런 장엄한 포스를 보여줬으니 당시 아르헨티나 국대에서도 공격의 전부인게 당연지사, 5골로 1967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끌었던 루이스 아르티메는 1966년 월드컵에 참가해서도 3골로 8강행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4) 선 외 7인
7 players other than selection
리카르도 보치니
주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8cm
생년월일:1954년 1월 25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국대 커리어
1973년 ~ 1986년
A매치 28경기 0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 80년대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도 평가받은 인데펜디엔테를 이끌었던 월드클래스 엔간체. 뛰어난 볼키핑과 테크닉, 광활한 시야, 특히 수비 라인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킬패스는 언론으로부터 '보치니식 패스'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킬 정도였습니다.
무려 19년 동안 공격을 이끌어나갔었던 엘 로호의 품에서 보치니는 각 4번의 자국 리그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번의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83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 3위에 빛나는 그는 1973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결승골까지 넣으며 '컵의 왕'의 자존심을 드세운 바 있습니다.
그러나 씁슬하게도 국대에서는 1978년 월드컵 당시 경쟁자가 놀베르토 알론소였기에 발탁되지 않았고, 86년 당시 경쟁자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호르헤 부루차가였기에 벤치 신세에 그쳤습니다.
후안 로만 리켈메
주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3cm
생년월일:1978년 6월 24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국대 커리어
1997년 ~ 2008년
A매치 51경기 17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빠른 템포의 전환, 강한 압박 등의 현실의 흐름을 거스르고 낭만을 택했던 현대 축구의 반역자. 이른 바 '느림의 미학'을 살린 역대급인 탈압박, 볼키핑을 구사하다 대지를 가르는 킬러 패스로 골을 떠먹이던 최후의 클래식 플레이메이커였던 리켈메는 시대를 역행한 스타일 때문에 안풀리는 날도 있었지만 잘되는 날에는 팀 하나를 혼자서 다 박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졌었습니다.
보카 주니어스 전성기의 공격을 혼자 만들어내며 2차례의 리그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3회를 이끌었으며 후에 노란 잠수함의 함장으로서 돌풍을 만들며 2004/05 시즌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 05/06 시즌 챔스 4강 진출 등의 대업을 쌓았습니다.
남미 올해의 팀에 5번,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에 4번 뽑힌 리켈메는 국대에서도 2000년대 중반 아르헨의 핵심으로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오레스테 코르바타
주 포지션:RW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5cm
생년월일:1936년 5월 11일
주요 클럽:라싱 클루브
국대 커리어
1956년 ~ 1962년
A매치 43경기 18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우승
경우에 따라 아르헨티나 축구 역대 최고의 윙어라는 평가도 받는 '아르헨티나의 가린샤'. 별명 그대로 상대를 무아지경으로 만드는 드리블 기술과 측면에서 올리는 크로스, 중앙에서 때리는 슛팅 능력 모두 높은 정확도를 자랑했었던 인물입니다.
'측면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가졌었던 코르바타는 하지만 이런 기량에도 아쉬운 자기관리로 알코올 중독자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보카 주니어스, 인데펜디엔테 등 아르헨티나의 명문팀을 모두 거쳤으며 특히 라싱 클루브 소속으로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커리어 총 4번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컵을 획득했다.
흰색 하늘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는 막강한 멤버들과 일명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이라는 별명을 얻어 코파 아메리카 2연패에 성공했으며 1958년 월드컵에서는 3골을 뽑아내기도 한 코르바타였습니다.
리날도 마르티노
주 포지션:CF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1cm
생년월일:1921년 11월 6일
주요 클럽:CA 산 로렌조
국대 커리어
1942년 ~ 1948년
A매치 20경기 15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하던 고대 괴수. 뛰어난 드리블, 슛 테크닉의 소유자이지만 플레이메이킹 또한 뛰어나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뛰면서도 수많은 골을 넣었던 아르헨티나의 명 포워드, 리날도 마르티노는 특히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킥 솜씨 덕에 '벨벳 다리'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산 로렌소에서 오랜 기간 뛰며 르네 폰토니, 아르만도 파로와 위협적인 트리오를 구성해 남미 전역에 이름을 알린 그는 구단의 10년만인 1946년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유벤투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했습니다.
또한 국가대표로도 비센테 데 라마타, 노르베르토 멘데스, 앙헬 라브루나와 발을 맞추며 1945년과 46년의 2년 연속 코파 아메리카 챔피언 왕도에 기여한 마르티노이기도 했습니다.
호세 산필리포
주 포지션:CF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8cm
생년월일:1935년 5월 4일
주요 클럽:CA 산 로렌소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2년
A매치 30경기 21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년대 후반기부터 60년대 초까지 아르헨티나 최고로 분류되던 탑클래스 포워드. 자유자재의 드리블과 뛰어난 기회 창출 능력, 결정적인 순간에 골망을 흔들수 있는 득점 능력을 모두 보유했었던 호세 산필리포는 현대로 따지면 9번의 역할과 10번의 역할을 모두 해낼 수 있는 우수한 공격 자원이었습니다.
그는 CA 산 로렌소라는 아르헨티나 클럽의 역대 최고 선수로 평가받으며 200골을 넘게 넣고 클럽의 3번의 리그 우승을 주도, 본인은 1958년부터 61년까지 4연속 리그 득점왕에 오른 바 있습니다. 나중에는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 7골로 탑 스코어러로서 196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만들기도 한 산필리포,
대표팀에서도 그의 전성기는 이어졌고 1957 - 1959 코파 아메리카로 2연패로 이어지는 시기의 핵심으로 부상했으며 59년 대회에서는 득점왕도 따냈습니다.
펠릭스 로스타우
주 포지션:LW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4cm
생년월일:1922년 12월 2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2년
A매치 28경기 10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0년대 ~ 50년대 '라 알비셀레스테' 아르헨티나 축구를 빛낸 벤티라도르 윙어. 당대 최고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버 플레이트의 '선풍기 날개'라 알려진 역할로 로스타우는 측면만 주구장창 파지 않고 중앙으로 침투 혹은 스위칭 플레이를 빈번히 시도하는 미드필더 역할로 중원에 바람을 일으키던 선수였습니다.
로스타우는 리베르 플라테르 유니폼을 입고 앙헬 라브루나,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 후안 카를로스 무뇨즈와 함께 좌익 축구의 '라 마키나' 라인의 한 축으로 뛰었고 50년대까지 팀에 남아 전부 합해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컵을 8번 들어올렸고 1번의 남미 챔피언쉽 준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더해서 아르헨티나가 3년 연속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룰 당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주 포지션:ST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3cm
생년월일:1988년 6월 2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국대 커리어
2006년 ~ 2021년
A매치 101경기 41골
2014 FIFA 월드컵 준우승
201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9 코파 아메리카 3위
2021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10년대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구단 역대 최고의 공격수. 칼같은 피니싱, 재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바디 밸런스로 상대 수비라인을 부수는 유형의 어드밴스드 포워드였으며 과르디올라 감독 아래에선 타고난 볼터치, 연계, 수비가담 능력까지 살려 딥라잉 포워드로 활용되던 아구에로입니다.
그는 2011/12 시즌 이적와서 QPR전,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기적적인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후에 더 뛰어난 활약으로 4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FA컵 우승, 6차례의 리그컵 우승을 추가로 이끌며 팀을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 수준의 팀으로 만들었습니다. 260골로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인 그는 14/15 시즌 득점왕, 2차례의 PFA 올해의 팀에도 뽑힌 바 있습니다.
41골로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3위에 빛나는 그이기도 하지만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항상 부상과 부진으로 기대에 못미쳐 3년 연속 준우승에만 그쳤으나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드디어 우승컵을 쟁취하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5)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아메리코 테소리에레
로젤리오 도밍게스
안토니오 로마
우고 가티
네리 품피도
측면 수비수
호르헤 카라스코사
엔리케 올프
앙헬 바르가스
훌리오 올라르티코에체아
오스카르 가레
중앙 수비수
루도비코 비도글리오
호세 살로몬
페드로 델라차
로베르토 센시니
오스발도 피아차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에르네스토 라자티
나탈리오 페스치아
안토니오 라틴
미겔 앙헬 브린디시
아메리코 가예고
디에고 시메오네
에스테반 캄비아소
공격형 미드필더
에르네스토 그리요
움베르토 마스치오
노르베르토 알론소
호르헤 부루차가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윙어
엔리케 가르시아
오스카르 마스
레네 오우세만
다니엘 베르토니
센터 포워드
로베르토 체로
프란시스코 바라요
비센테 데 라 마타
노르베르토 멘데스
클라우디오 카니히아
카를로스 테베스
스트라이커
알베르토 오아코
레네 폰토니
카를로스 비앙키
에르난 크레스포
곤살로 이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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