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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베스트 11/남아메리카

우루과이 축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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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국가대표

< Uruguay >

홈구장: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최다 득점자:루이스 수아레스 68골

최다 출장자:디에고 고딘 161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우승 2회(1930, 1950)

코파 아메리카 우승 15회 - 최다 우승(1916, 1917, 1920, 1923, 1924, 1926, 1935, 1942, 1956, 1959, 1967, 1983, 1987, 1995, 2011)

역대 최고의 선수:엑토르 스카로네

주장:옵둘리오 바렐라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포지션:GK

국적:우루과이

신장:179cm

생년월일:1945년 2월 14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4년

A매치 36경기

196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70 FIFA 월드컵 4강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골키퍼로는 최악의 약점인 작은 신장을 티 안나게하는 민첩한 반사신경과 날렵한 다이빙, 확실한 볼처리 능력으로 이를 완벽에 가깝게 극복해냈던 선수인 마수르키에비치는 1960년대 ~ 70년대 당대 최고의 키퍼이자 야신의 후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 최고의 클럽이던 1960년대 페냐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 해바라기 유니폼을 입고 총 3번의 리그 우승, 리버 플레이트와 레알 마드리드를 잡고는 1966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일구었습니다. 또한 그는 987분이라는 우루과이 리그 역대 최장 기간 클린시트 기록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

 

더해서 '차루아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6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70년 월드컵에서는 펠레의 브라질에 패해 4강에 그쳤으나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대회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습니다.

 

라이트백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포지션:RB

국적:​우루과이

신장:​179cm

생년월일:​​1901년 11월 22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23년 ~ 1930년

A매치 34경기 1골

192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10년대 ~ 2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 '블랙 마블'. 안드라데는 흑인 특유의 탄력과 피지컬,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필드를 휩쓸면서도 안정적인 패스 능력과 축구 IQ를 통해 공격 전개를 주도하는 진보적인 플레이스타일과 그 기량 덕에 역대 최고의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 그 사이의 역할)으로 평가받습니다.

 

가난한 환경과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실력만으로 이런 역경을 뚫어낸 그는 벨라 비스타, 클루브 나시오날, CA 페냐롤이라는 자국의 명문팀들을 거치며 2번의 리그 타이틀을 얻어냈습니다.

 

이런 그의 위용은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역사상 최고 전성기에서도 이어졌으며 3번의 남미 대륙 대항전 우승(1926년 대회 MVP), 2번의 하계 올림픽 금메달, 최고 수준의 활약으로 1930년 최초의 월드컵 트로피까지 조국으로 가져왔습니다.

 

센터백

호세 나사치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82cm

생년월일:​1901년 5월 24일

주요 클럽:벨라 비스타

국대 커리어

1923년 ~ 1937년

A매치 41경기 0골

192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9 코파 아메리카 3위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36 코파 아메리카 우승

 

명실상부한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우루과이의 유명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에 의해 X선도 뚫지 못할 수비라는 찬사를 받은 호세 나사찌는 당시로는 엄청나게 큰 체구를 이용해 피지컬적인 수비를 즐겼다고 전해지며 리더쉽 또한 뛰어났다고 해서 '위대한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자국의 벨라 비스타에서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린 그는 후에 명문인 클루브 나시오날로 팀을 옮겼고 도밍구스 다 기아와 센터백 듀오를 이루며 1933년과 34년 리그 2연패를 견인한 바 있습니다.

 

그의 진짜 진가는 국대 커리어에서 나타나는데, 나사치가 통솔했던 1920년대 ~ 30년대 우루과이 축구는 적수가 없었으며 4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 중 2번의 MVP, 2번의 올림픽 우승,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도 사실상 MVP로서 쥘리메컵을 들어올리는 괴수같은 포효를 내질렀습니다.

 

센터백

호세 산타마리아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80cm

생년월일:​1929년 7월 23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우루과이 1952년 ~ 1957년

A매치 36경기

A매치 20경기 0골

1954 FIFA 월드컵 4강

1957 코파 아메리카 3위

스페인 1957년 ~ 1962년

A매치 16경기 0골

​​1950년대 중후반 ~ 1960년대 초반까지 당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불렸었던 인물. '벽'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상대 공격수를 꽁꽁 묶어버리는 대인 마크 능력과 빡센 태클 능력, 기가막힌 공중볼 장악력을 보유했던 산타마리아는,

 

자국 리그인 클루브 나시오날을 무려 5차례의 우루과이 1부 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대단한 성적으로 1957/58 시즌, 스페인행 비행기를 타게되었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 레이몽 코파가 버티는 공격진의 뒷문을 단단히 지 총 5번의 라리가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주도했으며 1965/66 시즌, 세대 교체된 'Yé-yé 마드리드'의 일원으로 한번 더 빅이어를 들어올렸습니다.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한 1960년엔 발롱도르 10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스페인으로 귀화하기전 우루과이의 1954년 월드컵 4강, 57년 코파 아메리카 3위를 이끌었고 두대회 모두 베스트 11급 폼을 보인 산타마리아였습니다.

 

레프트백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포지션:LB

국적:우루과이

신장:169cm

생년월일:1927년 5월 2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47년 ~ 1957년

A매치 42경기 0골

1947 코파 아메리카 3위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

 

​명실상부한 우루과이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이라 볼 수 있는 사나이. 19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활약하며 찰거머리같은 대인 마킹 능력을 선보이던 레프트 윙 하프로 포메이션상 오늘날의 왼쪽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있었지만 게임 내에서는 현대 축구의 레프트백과 가까운 모습으로 뛰었던 선수입니다.

 

'흑진주'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는 자국 명문팀 페냐롤에서 옵둘리오 바렐라, 알시데스 기지아, 후안 스키아피노와 뛰며 2번의 리그 우승을 거두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국가대표로도 페냐롤의 강한 멤버들과 자국을 받들었던 그는 1956 코파 우승 및 1954 월드컵 4강에 기여했으며 대망의 1950 월드컵 우승 당시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지지뉴를 맨투맨하는 특명을 잘 수행해 기적같은 역전승에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옵둘리오 바렐라

포지션:DM

국적:우루과이

신장:​183cm

생년월일:​​1917년 9월 20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39년 ~ 1954년

A매치 45경기 9골

194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파괴자' 라고 불렸던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수비형 미드필더. 별명 그대로 상대 선수들을에게 돌진해 박살내버리는게 그의 수비 스타일이었으며 가끔 가다가는 벼락같은 중거리슛으로 득점도 꽤 기록했고 선수단에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단단한 정신력과 타고난 리더쉽의 소유자로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센터하프(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사이의 역할)였던 바렐라는 우루과이 리그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로 우승권이던 페냐롤로 이적, 라이벌 클루브 나시오날을 누르고 총 6번의 자국 리그 우승컵을 얻는 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루과이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서는 '검은 우두머리'라는 별명에 걸맞는 리더십으로 주장완장을 차고 1941 코파 준우승, 42 코파 우승, 1954 월드컵 4강을 이끌었으며 특히 50 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 패색이 짙어보이 팀의 사기를 북돋는 외침으로 주저앉아있던 동료들을 일어서게 했고 이는 역사에 남을 대역전극인 '마라카나조'로 이어졌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엔조 프란체스콜리

포지션:CM

국적:​우루과이

신장:​181cm

생년월일:1961년 11월 12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1982년 ~ 1997년

A매치 73경기 17골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우승

 

지네딘 지단도 우상으로 동경했던 당대 10번롤의 대명사.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중반을 풍미한 세계 최고의 수준의 미드필더로 뛰어난 드리블과 트릭 플레이, 일류급의 키패스와 감아치기로 무장한 '황태자' 엔조는 수려한 인품으로도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자국의 명문팀 리버 플레이트에서 첫 전성기를 알리며 1985/86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고 팀을 떠났고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1시즌만에 리그 우승과 유러피언컵 4강 등의 성적을 냈으며 후에 이탈리아를 거쳐서도 우수한 폼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노장으로 불려할 33세의 나이에 에이스로서 리베르 플라테로 복귀해 클럽을 4차례의 리그 우승과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으로 인도했습니다. 또 3회의 리그 득점왕, 4회의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 1984년과 95년은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여받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라 셀레스테의 품에서도 엔조는 2번의 월드컵 16강, 3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 중 1983년과 95년 대회에서 MVP로 뽑히는 위엄을 보여줬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

포지션:CM

국적:​우루과이

신장:175cm

생년월일:​1925년 7월 28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우루과이 1946년 ~ 1954년

A매치 21경기 8골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이탈리아 1954년 ~ 1958년

A매치 4경기 0골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봐도 무방한 천재 마에스트로. "발에 손전등이 달렸다."라는 세간의 비유처럼 창의적인 찬스 메이킹 능력과 '마녀'라는 별명처럼 상대를 곤혹케하는 마법같은 드리블, 날카로운 슛팅을 구사했던 선수였습니다.

 

후안 스키아피노는 페냐롤의 1940년대 후반 ~ 50년대 부흥 시대를 창조해내며 4번의 우루과이 리그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허나 1954년, AC 밀란의 끈질긴 구애 끝에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세리에 A에서도 탑클래스 선수로 리그를 지배하며 1957/58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 3번의 스쿠데토와 1번의 라틴컵 트로피를 얻었습니다.

 

대표팀에서의 그는 여전히 핵심으로 1950년 월드컵과 54년 월드컵 각각 우승과 4강행을 견인, 전자의 대회에서는 강적 브라질을 무너트리는 1골 1어시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임팩트있는 언더독의 반란을 만들었습니다.

 

라이트 윙어

페드로 로차

포지션:​RW

국적:우루과이

신장:181cm

생년월일:1942년 12월 3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61년 ~ 1974년

A매치 52경기 17골

196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70 FIFA 월드컵 4강

 

1960년대 중후반 ~ 1970년대 초반까지 활약한 브라질의 펠레에 대한 우루과이의 답변. 시원시원한 전진 드리블과 정교한 키패스 메이킹, 인정사정 없는 슛팅, 불굴의 헤딩 감각 등으로 남미 전역에 '사형 집행인'이라는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는 우루과이의 명문팀인 페냐롤에서 기라성 같은 멤버들과 최전성기를 보냈고 8번의 우루과이 리그 우승과 3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961년과 66년에는 벤피카와 레알마저 꺾고 인터컨티넨탈컵에서도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어서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도 동등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이어가며 2번의 주립 리그 우승과 1977년의 전국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각 1차례의 주 리그, 코파 리베타도레스 준우승과 득점왕도 따낸 로차는 36골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누적 득점 3위에도 올라있으며 펠레가 직접 언급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이 아성은 국가대표로도 이어졌으며 1967년 코파 아메리카 무패 우승 당시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 하지만 아쉽게도 4강까지 오른 70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일찍이 낙마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엑토르 스카로네

포지션:​LW

국적:​우루과이

신장:​169cm

​생년월일:​1898년 12월 26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17년 ~ 1932년

A매치 51경기 31골

191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1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2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9 코파 아메리카 3위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20년대 세계 축구판에서도 먹혔던 우루과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거성.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뛰어난 드리블 기교, 창의적인 패스, 뛰어난 피니싱으로 무장해 골넣는 능력도 탁월하던 그는 우루과이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입니다.

 

오늘날의 세컨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이던 스카로네는 클루브 나시오날 역대 최다 득점에 빛나며 볼소 유니폼을 입고 1910년대 ~ 20년대 구단의 최전성기를 주도해 리그 독주를 형성, 총 8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뱌르샤, 인테르, 팔레르모에서 잠깐 뛰었음에도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인 스카로네는,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다시는 안올 절정기를 이끌어나가며 4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 2번의 올림픽 우승을 이끌었으며 1930년 월드컵에서 베스트 일레븐급 폼으로 트로피를 들며 세계 최초의 챔피언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트라이커

루이스 수아레스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83cm

생년월일:1987년 1월 24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2007년 ~

A매치 137경기 68골

2010 FIFA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1세기 축구를 빛낸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명. 현대판 무결점 스트라이커인 수아레스는 라인 브레이킹, 퍼스트 터치, 이타적 플레이, 골 결정력, 민첩성, 밸런스 뭐하나 부족한게 없는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리버풀에서 2013/14 시즌, 득점왕과 FWA, PFA 올해의 선수상을 따내는 역대급 단일 시즌을 보내며 팀을 멱살잡고 2위로 끌어올린 그는 바르샤로 이적하자마자 14/15 시즌 네이마르-수아레즈-메시로 이어지는 역대 최고의 3톱 'MSN' 라인을 구성, 화끈한 공격 축구를 보여줬고 '트레블'이라는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59득점을 기록하며 6년만에 메날두가 아닌 피치치 수상자이자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자가 되며 팀의 '더블'을 이끌었습니다. 더해서 2015 발롱도르 5위, 2016 발롱도르 4위, 라리가 3연속 도움왕, 구단 역대 득점 3위 등의 대기록을 작성해낸 수아레스였습니다. 후에 아틀레티코로 쫓겨나듯 옮겼지만 20/21 시즌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된 그는,

 

대표팀에서도 디에고 포를란과 합을 맞춰 2010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MVP로서 트로피를 품에 안았습니다.

 

감독

오스카르 타바레스

포지션:MANAGER​

국적:우루과이

생년월일:1947년 3월 3일

국대 커리어

1988년 ~ 1990년, 2006년 ~ 2021년

2010 FIFA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침체기에 허우적대던 우루과이 축구에 다시 중흥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감독. 우루과이 축구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장인 타바레스는 조직적인 수비 축구를 자신의 팀에 잘 새길 수 있는 능력이 있던 남자였습니다.

 

2006년에 부임한 그는 초창기 루이스 수아레스, 디에고 포를란, 디에고 고딘, 에딘손 카바니 등의 꽤 괜찮은 멤버들에 힘입어서 15년간 대표팀을 이끌었으며 2010년에는 무려 40년만인 월드컵 4강 진출과 다음 해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16년만에 우승컵을 획득해 한 때나마 코파 아메리카 역대 최다 우승 국가 자리를 지켜냈었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로케 마스폴리

포지션:GK

국적:우루과이

신장:189cm

생년월일:1917년 10월 12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5년

A매치 40경기 1골

1950 FIFA 월드컵 우승

 

'마라카낭의 비극'을 이끌어낸 1930년대 중후반 ~ 50년대 초중반까지 우루과이 축구를 대표했던 골키퍼. 타고난 긴 기럭지가 민첩한 반사신경과 더해져 되는 날에는 날아다니며 환상적인 선방쇼를 보여주던 마스폴리는,

 

본래 클루브 나시오날이라는 우루과이의 또 다른 명문 클럽에서 데뷔하고 3차례의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으나 1940년, 페냐롤로 이적했고 옵둘리오 바렐라,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 등의 선수들과 함께 페냐롤의 우루과이 리그 독주를 이끌었습니다.

 

국대에서도 1950 월드컵에 참가해 20년만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결승전 브라질의 파상공세를 모두 훌륭히 막아냈으며 결국 그의 노력은 '마라카낭의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라이트백

슈베르트 감베타​

포지션:​RB

​국적:​우루과이

신장:172cm

생년월일:1920년 4월 14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41년 ~ 1952년

A매치 37경기 3골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7 코파 아메리카 3위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40 ~ 50년대 남미 축구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라이트 하프. 포메이션상 오른쪽 수비형 미드필더에 위치했지만 그가 실제로 움직였던 롤은 오늘날의 라이트백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특유의 외모 덕분에 얻은 별명인 '원숭이'처럼 민첩하게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열심히 뛰어다니던 감베타는 선수생활 20년 중 15년을 자국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냈으며 총 10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크고 작은 23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자국을 대표해서는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7 코파 3위를 이끌었으며 1950년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맹활약을 이어갔고 특히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아데미르를 꽁꽁 묶어 승리에 기여하는 모습에 자국민들의 무한한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센터백

우고 데 레온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89cm

생년월일:​1958년 2월 27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79년 ~ 1990년

A매치 48경기 0골

198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0년대 남아메리카 최강의 리베로로 불리웠던 인물. 파워풀한 어깨 싸움, 타이밍을 잡아내는 기가 막힌 태클 능력, 뛰어난 시야와 롱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조립하는 능력도 굉장히 컸었던 선수로,

 

비상한 경기 리딩까지 겸비한 우고 데 레온은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세차례에 걸쳐 8년간 머무르며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특히 1988년에는 인터컨티넨탈컵 트로피도 품에 안으며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2위에 오르는 장거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데 레온은 브라질 리그 그레미우의 레전드이기도 하며 81년 전국 리그 우승과 8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끝까지 투지를 발휘해 결국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가슴을 찡한 명장면을 찍기도 했습니다.

 

우루과이 국대에서도 1989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0년 월드컵 16강 당시에도 든든한 기둥이었던 그였습니다.

 

센터백

디에고 고딘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87cm

생년월일:1986년 2월 16일

주요 클럽: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국대 커리어

2005년 ~

A매치 161경기 8골

2010 FIFA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0년대 남아메리카 전체를 대표했던 센터백 중 한명. 고딘은 '갓딘'(God in)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을 만큼 공격수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끈질긴 맨마킹, 지능적인 태클링, 뛰어난 수비 리딩, 수준급의 오버래핑까지 구사하는 부정할 수 없던 월클이었고,

 

아틀레티 유니폼을 입고는 시메오네의 두줄 수비의 코어가 되어 전성기를 견인, 1차례의 라리가 우승과 국왕컵 우승, 2차례의 유로파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쟁취했습니다. 1차례씩 UEFA 올해의 팀과 라리가 최우수 수비에 뽑혀본 고딘은 2013/14 시즌 챔스 결승에선 골도 넣었으며 해당시즌 라리가 최종전에서도 우승을 결정짓는 헤더를 성공시키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차루아스의 품에서 무려 161경기를 출장해 역대 최다 출장 1위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고딘, 그는 2010 WC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 당시에는 로테이션 멤버였으나 2018년 월드컵 당시에는 부정할 수 없는 퍼포먼스로 8강 탈락에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 멤버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리카르도 파보니

포지션:​LB

국적:우루과이

신장:​167cm

생년월일:​1943년 8월 7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4년

A매치 13경기 2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5회라는 대업적이 말해주는 남아메리카 축구의 위대한 레프트백. 강철과도 같은 대인 마크와 태클도 뛰어났지만 리카르도 파보니의 가장 무서운 점이라면 무수히 많은 골을 양산한 매서운 왼발 킥으로, 페널티킥과 프리킥도 도맡아 찰 정도였습니다.

 

남미 전체에 자신의 유명세를 알리던 그는 우루과이에서 온 용병임에도 아르헨티나의 명문 인데펜디엔테의 1960년대 중후반 ~ 70년대 중반까지의 전성기 주장으로서 무려 3번의 자국 리그 우승과 5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973년의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실현시키는 위업을 이룩했습니다.

 

이렇게 남미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였음에도 파보니는 해외에서 뛰고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으나 다행히 1974년 월드컵 본선에는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미첼레 안드레올로

포지션:DM

국적:우루과이, 이탈리아

신장:​169cm

생년월일:​​1912년 9월 6일

주요 클럽:​볼로냐 FC

국대 커리어

우루과이 1935년

A매치 0경기 0골

1935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탈리아 1936년 ~ 1942년

A매치 26경기 1골

1938 FIFA 월드컵 우승

 

1930년대 당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가운데 하나. 무서운 파이터형 하프백으로 강력한 태클과 대인 마킹을 펼치면서도 안정적인 볼운반과 배급 능력까지 모두 가지고 있었던 선수로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안드레올로는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 국적으로 귀화하며 볼로냐 FC에 입성, 구단의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1930년대 중후반 ~ 40년대 초 전성기를 구가하며 무려 4개의 스쿠데토를 획득한 바 있습니다.

 

그는 우루과이 국적으로는 1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1935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멤버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탈리아 국적으로는 1938년 월드컵에서 대회 올스타팀급 활약을 선보이며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알시데스 기지아

포지션:​RM

국적:우루과이

신장:169cm

생년월일:1926년 12월 22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우루과이 1950년 ~ 1952년

A매치 12경기 4골

194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이탈리아 1957년 ~ 1959년

A매치 5경기 1골

브라질 전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재앙을 가져온 '마라카낭의 사신'. 정통 윙어가 원하는 스피드, 드리블, 크로스 능력을 두루 겸비하고 있었던 기지아는,

 

엄청난 멤버들 사이에 있었던 페냐롤에서 주전을 차지해 2번의 리그 우승에 성공합니다. 허나 1952년, 판정에 불만을 품은 심판 폭행으로 인해 8개월 징계를 먹자 기지아는 페냐롤을 떠나 이탈리아 세리에의 AS 로마로 이적했고 1960/61 시즌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견인, 덧붙여 구단의 최초의 외국인 주장직을 맡는 등 로마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후에는 국적까지 이탈리아로 귀화까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루과이의 No.7으로서 1950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을 이끈 기지아는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올스타팀에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언급되었으며 특히 결승전,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보여준 강적 브라질을 주저앉게 만든 역전골은 아직도 브라질 올드비들의 치를 떨게 만들 정도입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앙헬 로마노

포지션:​AM

국적:​우루과이

신장:​172cm

​생년월일:​1893년 8월 2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11년 ~ 1927년

A매치 70경기 28골

191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1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1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21 코파 아메리카 3위

1922 코파 아메리카 3위

192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6 코파 아메리카 우승

6회 우승으로 코파 아메리카 역대 최다 우승 기록에 빛나는 1910년대 ~ 20년대 우루과이 축구 전성기의 주력 멤버. 뛰어난 드리블과 연계, 굉장히 빠른 주력에 공격진의 여러 역할을 모두 소화가 가능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이기도 한 앙헬 로마노는,

 

나시오날 소속으로 무려 8번의 우루과이 리그 우승을 더해서 마이너 대회까지 포함해 22개의 우승 트로피를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에게 선사했으며 1925년 열린 유럽 투어에서는 26승 7무 5패의 성적을 내며 유럽인들에게 본인들의 이름을 각인 시킨 바 있습니다.

 

상술했듯이 무려 6번이나 남아메리카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로마노는 1917년과 20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을 수상, 1924 하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으며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들 수 있는 트로피는 정말 다 들었던 그였습니다. 또한 1927년 세계 최초로 70경기를 소화해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엑토르 카스트로

포지션:​LM

국적:​우루과이

신장:​??cm

​생년월일:​1904년 11월 29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23년 ~ 1935년

A매치 25경기 18골

192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7 코파 아메리카 3위

19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35 코파 아메리카 우승

세계 최초의 챔피언 자리를 이끌었던 당대 손에 꼽을만한 우루과이의 거물 공격수. 뛰어난 드리블과 슛팅으로 골도 많이 넣었으며 연계 능력까지 출중해 여러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그는 어린 시절 공사 현장에서 오른손을 잃었던 사고 때문에 '외팔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전성기를 누린 선수이며 페드로 페트로네와 주전 경쟁을 펼치며 3번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타이틀을 거머쥐는데 성공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페트로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했으며 2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1928년 올림픽 금메달 당시에 인상깊은 모습을 내비췄고 이에 1930년 월드컵에서는 부상당한 페트로네의 자리를 채워 우승컵에 지대한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페르난도 모레나 우루과이

페르난도 모레나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77cm

생년월일:1952년 2월 2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71년 ~ 1983년

A매치 53경기 22골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60년대 알베르토 스펜서의 아성을 이어나갔던 70년대 남아메리카의 특급 스트라이커. 엄청난 골 감각과 슛팅력 외에도 아래로 내려와 받아주고 뿌리는 공격 전개에도 크게 기여하던 완성형 포워드였던 그는,

 

페냐롤의 전성기를 진두지휘, 약 15년간 팀의 전성기를 진두지휘하며 6번의 리그 우승과 198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컵을 들어올립니다. 또한 1975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 3위에 든 그는 CA 페냐롤 역대 최다 득점자(440골), 우루과이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230골)이자 우루과이 단일 시즌 최다골(36골) 우루과이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역대 최다 득점왕 수상(각각 7회, 3회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국대에서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모레나였지만 은퇴 무대였던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2골을 넣어 우승해 무관을 깨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페드로 페트로네 우루과이

페드로 페트로네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73cm

생년월일:1905년 5월 11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23년 ~ 1930년

A매치 28경기 24골

192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20년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가운데 한명. '포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페트로네는 말 그대로 대포알 같은 슛팅으로 쏘면서도 굉장히 빠른 발을 지녔었으며 뿐만 아니라 하프 라인까지 내려와 볼을 받아주며 플레이메이킹하는 현대 축구에서나 할 법한 스트라이커의 역할도 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란 파르케 센트랄에 입성 후 커리어 하이를 맛본 페트로네는 앙헬 로마노, 엑토르 스카로네와 합을 맞춰 각 2차례의 우루과이 1부 리그 우승 2회를 달성했으며 이런 활약으로 후에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기도 했습니다. 구단 최초의 용병이었던 그는 곧 바로 리그 득점왕을 따내거나 유벤투스를 상대로 최초의 승리를 이끄는 등의 굵직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페트로네 경력의 별미는 국대에서였는데 2차례의 의 코파와 올림픽 우승 당시 3번의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24년 대회에서는 MVP, 올림픽에서도 득점왕 타이틀까지 가져갈 정도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격력을 뽐냈지만 1930년 열린 1회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일찍이 이탈하며 화룡점정에는 실패했습니다.

 

수석 코치

알베르토 수피시

포지션:MANAGER​

국적:우루과이

생년월일:1898년 11월 20일

국대 커리어

1928년 ~ 1932년, 1935년 ~ 1941년

1929 코파 아메리카 3위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37 코파 아메리카 3위

194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30년 제 1회 월드컵에서 쥘리메컵을 들어올렸던 감독. 이미 세계 최고이던 대표팀을 첫 월드컵 우승이라는 영광으로 이끌었던 그는 일찍이 선수 생활을 접고 만 29세에 감독의 길을 걸었습니다.

 

강력한 선수단을 가지고 그는 1930년에 열린 월드컵에 참가했고 라이벌이자 유일하게 동등한 경기력을 펼치던 아르헨티나를 4대2로 잡고 우승에 성공, 겨우 만 31세에 달성한 월드컵 최연소 우승 감독이라는 이 기록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못할 축구사 불멸의 기록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골키퍼

로돌포 로드리게스

포지션:GK

국적:우루과이

신장:191cm

생년월일:1956년 1월 20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76년 ~ 1986년

A매치 79경기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0년대 남아메리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골키퍼. 길다란 팔과 안정적인 캐칭 실력, 한템포 빠른 뛰어난 예측과 적극적으로 뛰쳐나가 볼을 커팅해내는 것으로도 유명해 '표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기량은 당대 최고의 키퍼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우발도 피욜과 비견될 정도였습니다.

 

로돌포 로드리게스는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최전성기를 달리며 3번의 리그 우승, 1980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끄는 활약을 선보였고 산투스로 이적해서도 1984년에는 엄청난 활약상으로 팀의 6년만인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했으며 이에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 순위에서 무려 4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우루과이 국기를 가슴에 품은 로돌포는 198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핵심으로서 우승 트로피 대관식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라이트백

루이스 우비냐

포지션:RB

국적:우루과이

신장:​178cm

생년월일:​1940년 6월 7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3년

A매치 331경기 1골

1970 FIFA 월드컵 4강

 

1960년대 중후반 ~ 70년대 초, 남아메리카 탑티어 라이트백으로 분류되었던 사나이. 뛰어난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춘 밸런스형 풀백으로 특유의 무브먼트로 인해 '투우사'로 불리웠던 루이스 우비냐는,

 

람플라 후니오르스라는 팀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여 강팀인 나시오날로 이적, 1969년부터 72년까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4연속으로 메달을 목에 걸었고 1971년에는 영광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트로피 사냥에도 성공했습니다.

 

라 셀레스테의 일원으로도 그는 부상으로 이탈한 페드로 로차의 주장직을 건네받아 로베르토 마토사스, 아틸리오 안체타, 후안 무히카와 수위급 백4를 결성해 조국을 1970 월드컵 4위까지 올려놓았습니다.

 

센터백

윌리암 마르티네스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92cm

생년월일:1928년 1월 13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50년 ~ 1965년

A매치 54경기 2골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뛰었던 남아메리카 리그의 잔뼈가 굵은 중앙 수비. 당시로써는 굉장히 압도적인 큰 키와 거구를 이용한 피지컬적인 수비가 빛났으며 42세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었을 만큼의 철강왕과 자기관리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그는 페냐롤의 라이벌팀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2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지만 최전성기는 페냐롤에서 보냈으며 1958년부터 1962년까지의 리그 5연패와 1960년, 1961년에는 클루브 올림피아와 파우메이라스를 잡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2년 연속으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로스 차루아스에서 마르티네스는 어린 나이에 1950 WC에서 '마라카낭의 기적'을 같이 했으며 후에 54 월드컵 4강, 56 코파 우승 당시에도 주축으로 활약했습니다.

 

센터백

안틸리오 안체타

포지션:​CB

​국적:​우루과이

신장:185cm

생년월일:1948년 7월 19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69년 ~ 1971년

A매치 20경기 2골

1950 FIFA 월드컵 우승

1954 FIFA 월드컵 4강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70년대 남미 리그를 풍미한 우루과이의 명 센터백. 빠른 주력과 부드러운 슬라이딩 태클 능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프력에서 나오는 완벽한 공중볼 장악으로 명망 높았던 안체타는,

 

자국의 명문팀인 클루브 나시오날과 브라질 리그의 그레미우에서 커리어 하이를 누렸습니다. 전자 소속으로는 3차례의 리그 우승과 1971년의 코파 리베르타 도레스 우승을 이뤘고 후자 소속으로는 2번의 주립 리그 우승과 1번의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습니다.

 

안체타는 그리 기간이 길지 않지만 우루과이 대표로 국제 대회에 나서서도 1970년 월드컵에 참가, 장기인 압도적 공중볼 경합 능력을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자랑하며 자국의 16년만인 4강행을 주도했습니다.

 

레프트백

파올로 몬테로

포지션:​LB

국적:​우루과이

신장:183cm

생년월일:1971년 9월 3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5년

A매치 61경기 5골

2004 코파 아메리카 3위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우루과이 축구를 대표했던 수비수. 레프트백과 센터백에서 모두 정상급 폼을 자랑할 수 있었던 몬테로는 수비 능력만큼은 인정 안할 수가 없었으나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격한 수비 스타일 덕에 반칙도 많이 저질렀던 전형적인 카드 캡터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리에 A의 명문인 유벤투스에서 맹활약했고 치로 페라라, 마르크 율리아노와 철옹성의 수비 라인을 건설해 팀의 전성기를 만들었습니다.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우승, 1996년의 인터컨티넨탈컵까지 거머쥔 그였으나 아쉽게도 챔스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어 준우승만 3차례 맛보기도 했습니다.

 

국대에서도 15년 가까이 부름을 받았던 몬테로는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네스토르 곤칼베스

포지션:DM

국적:우루과이

신장:​178cm

생년월일:​​1936년 4월 27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8년

A매치 50경기 1골

1957 코파 아메리카 3위

​1960년대 남미 리그를 넘어 세계 축구의 챔피언 자리에 발을 들여놓던 페냐롤의 전설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발은 느렸지만 노련한 위치 선정과 전술 이해도, 강력한 맨 마킹과 발류의 패스 솜씨라는 재능으로 이를 커버했던 곤살베스는,

 

알베르토 스펜세르와 페드로 로차같은 에이스들을 뒤에서 밀어주며 자국 리그 우승만 9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3회를 포함해 15개의 트로피를 캄페온 델 시글로에 바쳤습니다. 1966년 월드 사커 선정 월드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한 그는 페냐롤의 원클럽맨이며 무려 574경기를 출전해 구단 누적 출장 순위 1위에 안착해 있습니다.

 

더해서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도 1957년 코파 아메리카 3위와 1966년 월드컵 8강 진출 등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루이스 쿠비야

주 포지션:​RW

국적:우루과이

신장:180cm

생년월일:1940년 3월 28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59년 ~ 1974년

A매치 38경기 11골

1970 FIFA 월드컵 4강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60년대 중후반과 70년대 초반 당대 남미 리그의 최고봉으로 꼽히던 윙어 중 한명. '검은 날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화려한 드리블과 특유의 돌파력으로 상대 측면을 털고 다니던 루이스 쿠비야는,

 

CA 페냐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20대 초반의 나에 리그 4연속 우승, 2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번의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등을 경험한 바 있으며 후에 바르샤, 리버플레이트로 이적해 좋은 활약을 이어가다 다시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 돌아와 4차례의 리그 우승과 1971년에는 에스투디안테스와 피나티아코스를 잡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및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루는 나시오날의 해를 만들었습니다. 

 

1970년 월드컵에도 참가했었던 쿠비야는 부상당한 페드로 로차의 공백을 홀로 공격진에서 메꾸며 뛰어난 활약을 발산, 4강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알바로 레코바

포지션:​AM

국적:우루과이

신장:178cm

생년월일:1976년 3월 17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95년 ~ 2007년

A매치 68경기 10골

 

'왼발의 지단'이라는 이명으로 수식되었던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왼발 스페셜리스트 중 한명. 우아한 드리블 돌파와 수비수들에게 이지선다를 걸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왼발 감아차기 능력과 천부적인 크로스, 패스 능력으로 무장했었던 레코바는 이런 뛰어난 재능에도 게으른 태도와 유리몸 기질로 인해 생각만큼 대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래도 인테르에서 호나우두와 같이 공격을 이끌어나가며 1997/98 시즌 UEFA컵 우승, 후에 각 2차례의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거를 이룩했습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레코바는 침체기였던 조국을 데리고 2002년과 06년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이사벨리노 그라딘

포지션:​LM

국적:우루과이

신장:172cm

생년월일:1897년 7월 8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15년 ~ 1927년

A매치 23경기 10골

191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1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1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축구 역사상 최초의 오리지널 흑인 스타이자 우루과의 초창기 전성기를 이끈 감베타. 현역 시절 축구 선수와 육상 선수를 병행할 정도로 폭발적인 스피드가 장점이었던 그는 실제로 남미 챔피언쉽 200m와 400m 부문에서 6차례나 금메달을 따낼 정도로 실력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뛰어나 스피드로 수비수들을 제치고 강력한 슛팅을 뽑아냈던 그라딘은 페냐롤 소속으로 100골 넘게 넣으며 2차례의 우루과이 리그 우승을 견인한 바 있습니다. 그런 그라딘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빠르게 은퇴하는데 그 이유는 육상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뚫어냈던 그의 역량은 1916년, 우루과이의 첫 국제 대회 우승 당시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MVP와 득점왕까지 석권해 빛을 발했으며 다음 대회에서도 2연속으로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스트라이커

디에고 포를란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80cm

생년월일:1979년 5월 19일

주요 클럽: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국대 커리어

2002년 ~ 2015년

A매치 112경기 36골

2004 코파 아메리카 3위

2010 FIFA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루이스 수아레스와 우루과이 축구를 빛낸 위대한 공격수. 뛰어난 위치 선정과 연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마무시한 슛팅 감각으로 득점을 하던 선수로 특히 발리슛에 굉장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포를란은 맨유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비야레알과 아틀레티코에서 대활약을 했으며 전자 소속으로는 리켈메와 뛰며 2004/05 시즌의 라리가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후자 소속으로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투톱을 결성해 생애 두번째로 피치치와 유러피언 골든슈, 09/10 시즌 유로파 우승까지 성공했습니다. 

 

부진하던 대표팀의 주워먹기 원툴 공격수라는 꼬리표에도 그는 2010년 월드컵에 참가해 악명 높은 공인구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 경악스러운 활약상을 연발했던 '자블라니 마스터'이자 플레이메이커로 조국의 40년만인 4강을 캐리, 사상 최초로 4위팀 국가에서 대회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5위까지 오르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스트라이커

호세 피엔디베네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81cm

생년월일:1890년 6월 5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09년 ~ 1922년

A매치 43경기 22골

191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1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0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1 코파 아메리카 3위

 

1910년대 축구계를 대표했던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자 남아메리카 축구 역사상 최초의 컴플리트 포워드. 뛰어난 골 결정력, 타고난 신체 조건은 물론이거니와 완숙한 플레이메이킹까지 갖춘 육각형의 플레이스타일을 보이며 당대 남미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었던 그였습니다.

 

'공격의 지배자' 호세 피엔디베네는 1908년부터 28년까지 20년간 모든 선수 생활을 페냐롤에서만 보내며 총 4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해 11개의 크고 작은 트로피를 구단의 진열대로 가져오는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더해서 아우리네그로스의 품에서 넣은 253골은 페르난도 모레나, 알베르토 스펜세르에 이은 클럽 누적 득점 3위 기록입니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품에서도 그는 그 공격력을 이어가며 첫 우승 당시 MVP 수상을 포함해 3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4) 선 외 7인

7 players other than selection

 

파블로 벵고에체아

주 포지션:CM

국적:우루과이

신장:​175cm

생년월일:​​1965년 6월 27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86년 ~ 1997년

A매치 43경기 6골

198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까지 우루과이 축구를 대표했던 플레이메이킹 미드필더. 팍 트인 시야를 바탕으로 뿌리는 롱 패스, 깔끔한 데드볼 처리 능력, 훌륭한 경기 조립 능력에다가 뛰어난 공수 밸런스 덕에 공격형, 중앙, 수비형, 측면 미드필더까지 전부 소화 가능했던 전천후 성향의 미드필더이기도 했습니다.

 

벵고에체아는 세비야 FC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5시즌간 라리가의 수위급 미드필더로 군림했으며 28세의 나이에 자국의 페냐롤로 돌아와 또 한번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10년간 뛰며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리그 5연속 우승을 포함해 7차례의 리그 타이틀을 가져갔습니다.

 

아르티가스기를 가슴에 달고는 엔조 프란체스콜리의 후방을 커버하면서 2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붙박이 주전으로 경험했습니다.

 

페드로 세아

주 포지션:​CF

국적:​우루과이

신장:​172cm

​생년월일:​1900년 9월 1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23년 ~ 1932년

A매치 26경기 13골

192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4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8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29 코파 아메리카 3위

1930 FIFA 월드컵 우승

1920년대 ~ 30년대 초까지 전세계에서 적수가 없었던 역대 최고의 국가대표팀 중 하나였던 우루과이 공격진의 한 축. 우수한 슛테크닉으로 골도 자주 넣으면서 센스있는 패스로 어시스트까지 겸할 수 있는 당대 최고의 인사이드 레프트였던 세아는,

 

아틀레티코 리토라는 리그 하위권팀에서 오랜 기간 고군분투하면서 군계일학의 모습으로 명문이었던 클루브 나시오날로 보금자리를 옮기는데 성공, 결국 325경기에 나와서 138골을 기록하는 한편 2차례의 우루과이 1부 리그 우승을 포함한 3개의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에 달 수 있었습니다.

 

로스 차루아스 유니폼을 입고서 세아는 엑토르 스카로네, 페드로 페트로네, 엑토르 카스트로, 앙헬 로마노 등과 손발을 맞춰 2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30 월드컵에서도 무려 5골을 넣으며 조국의 사상 첫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세베리노 바렐라

주 포지션:CF

국적:우루과이

신장:176cm

생년월일:1913년 9월 14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35년 ~ 1942년

A매치 24경기 19골

1937 코파 아메리카 3위

193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30년대 중후반 ~ 40년대 초반 우루과이 축구의 아이돌. 유려한 볼컨트롤, 깔끔한 헤딩 능력에다가 항상 흰색 베레모를 꾹 눌러쓰고 경기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해 '유령의 베레모'라는 별명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페냐롤 소속으로 4차례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진두지휘했으며 후에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서도 2번의 우승을 이끈 바렐라는 백지 수표로 재계약을 요청한 보카의 오퍼를 거절하고 다시 페냐롤에 돌아와 뛰다 은퇴합니다.

 

또한 그는 3차례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서 각 3위, 2위, 1위를 모두 이끌어냈으며 모두 5골씩 득점, 다 더해서 15골을 넣어 코파 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우루과이인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루벤 소사

주 포지션:​CF

국적:​우루과이

신장:​172cm

​생년월일:​1966년 4월 25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84년 ~ 1995년

A매치 46경기 15골

198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 축구의 간판과도 같았던 '골의 시인'. 감각적인 드리블 볼운반 능력과 번뜩이는 연계 플레이, 기가 막힌 프리킥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루벤 소사였습니다.

 

그는 레알 사라고사에서 1985/86 시즌 바르샤를 침몰시키는 골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탈리아 세리에 A로 무대를 옮겨 라치오와 인테르에서도 이어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특히 후자 소속으로는 1993/94 시즌 UEFA컵 트로피까지 들어올렸으나 분데스의 도르트문트로 이적 후에는 리그 우승에도 내리막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말했다시피 전성기 시절에는 엔조 프란체스콜리 만큼이나 우루과이 대표팀의 핵심이었으며 2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거두었고 준우승에 그쳤던 1989년 코파 아메리카마저도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위엄을 보였던 그였습니다.

 

아틸리오 가르시아

주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76cm

생년월일:1914년 8월 26일

주요 클럽:클루브 나시오날

국대 커리어

1945년

A매치 5경기 5골

 

남아메리카 축구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역대급 골잡이. 우루과이 1부 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인 그는 자비 없는 골결과 수비 라인을 허무는 번개 스피드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가르시아는 나시오날의 '황금의 다섯 해'라 불린 전설적인 5톱의 주포로, 8회의 리그 트로피를 포함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클루브 나시오날 역대 최다 득점자(465골), 페냐롤과의 더비전인 우루과이안 클라시코 역대 최다 득점자(35골), 우루과이 1부 리그 역대 최다 득점왕 수상자(8회)의 타이틀을 모두 가지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오스카르 미게스

주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76cm

생년월일:1927년 12월 5일

주요 클럽:CA 페냐롤

국대 커리어

1950년 ~ 1958년

A매치 39경기 27골

1954 FIFA 월드컵 4강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년대 우루과이 축구를 대표했던 퍼스트 탑. 천부적인 위치선 정과 감각적인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타겟 플레이에도 능했으며 '라보나 킥'을 최초로 화려한 발기술까지 구사하던 테크니션 성향까지 장착한 오스카르 미게스는 1950년대 페냐롤 전성 시대의 일원으로 자국 리그 독주를 이끌었습니다.

 

알시데스 기지아,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 등과 화려한 공격진을 구성해 6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그는 우루과이 국적으로 8골을 기록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우루과이를 위해 뛰어서도 골 폭풍을 멈추지 않았던 오스카르 미게스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한 1954년 월드컵 4강에 기여, 2년 뒤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MVP를 수상하는 포스로 우승컵을 획득했습니다.

 

에딘손 카바니

주 포지션:​ST

국적:우루과이

신장:184cm

생년월일:1987년 2월 14일

주요 클럽:파리 생제르맹  FC

국대 커리어

2008년 ~

A매치 136경기 58골

2010 FIFA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리그 1과 PSG의 역사를 새로 써냈던 2010년대의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완성형의 피지컬과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하는 볼 경합 및 오프 더 볼 움직임, 돌파에서 매우 뛰어난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절륜의 헤더 감각과 슛팅, 헌신적인 수비 가담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팔레르모에서 떠서 나폴리 소속으로 2011/12 코파 우승과 다음 시즌 리그 득점왕, MVP를 타며 구단의 약진을 이끈 그는 파리로 이적해 즐라탄, 네이마르, 음바페 등과 뛰며 2010년대 프랑스 리그의 압도적인 독주와 함께 6차례의 리그, 5차례의 컵 챔피언에 오르는 한편 UNFP 올해의 팀에 3회 들어갔고 200골을 넣어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하며 16/17 시즌엔 리그 득점왕, MVP까지 차지해 발롱도르 11위에도 랭크된 바 있습니다.

 

우루과이 국대 유니폼을 입은 그는 수아레스와 투톱을 맞춰 2010년 월드컵 4강, 2018년 월드컵 8강 당시 주역이었으며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트로피를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로 가져온 바 있습니다.


5)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안드레스 마잘리

엔리케 바예스테로스

아니발 파스

페르난도 알베스

페르난도 무슬레라

측면 수비수

후안 무히카

파블로 포를란

빅토르 디오고

알폰소 도밍게스

막시 페레이라


중앙 수비수

알프레도 포글리노

마티아스 곤살레스

에우세비오 테헤라

로베르토 마토사스

다리오 페레이라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알프레도 지베치

로렌소 페르난데스

훌리오 세사르 코르테스

알도 마네이로

훌리오 몬테로 카스티요

오마르 카에타노

페데리코 발베르데

공격형 미드필더

훌리오 페레스

하비에르 암브로이스

루벤 파스

호세 살라사

구스 포예트


윙어

산토스 우르디나란

카를로스 보르헤스

리오 세사르 아바디에

빅토르 에스파라고

호세 사시아

센터 포워드

로베르토 포르타

아니발 시오카

왈테르 고메스

훌리오 모랄레스

안토니오 알사멘디

왈데마르 빅토리노

카를로스 아길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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