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

후안 엑토르 기디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5cm
생년월일:1930년 7월 14일
주요 클럽:CA 라누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2부 리그 우승 2회
A매치 37경기 0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당대 아르헨티나 축구계를 섭렵했던 괴물 미드필더. 거대한 피지컬과 터프한 플레이스타일, 노련한 멀티성을 가졌지만 특유의 동안 외모로 인해 '어린 아이'로 불렸던 기디는 1950년대 중후반 ~ 60년대 초반 자국 축구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CA 라누스라는 아르헨티나 프로 리그의 약팀을 데리고서도 2부에서 1부로 끌어올린 뒤 1956년에는 보카 주니어스, 라싱 클루브, 벨레스 사르스필드를 제치고서 리그 준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조국의 부름을 받은 기디는 195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견인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이듬해 월드컵에선 부상으로 인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19위

호세 바수알도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7cm
생년월일:1963년 6월 20일
주요 클럽:CA 벨레스 사르스필드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5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31경기 0골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아르헨티나 축구를 빛낸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부터 수비형, 공격형 미드필더를 싸그리 소화할 정도의 뛰어난 멀티성과 커버 능력을 가진 인물로서 호세 바수알도는,
아르헨티나의 명문팀이었던 보카 주니어스와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전자 소속으로는 2번의 리그 우승과 1994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고 후자 소속으로는 3번의 리그 우승과 200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뤘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분데스의 슈바벤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그는,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서도 1990 월드컵 준우승과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도왔습니다.
18위

로드리고 데 파울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0cm
생년월일:1994년 5월 24일
주요 클럽: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주요 커리어
A매치 75경기 2골
2021, 24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22 FIFA 월드컵 우승
CONMEBOL-UEFA 컵 오브 챔피언스 우승 1회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을 이끌었던 리오넬 메시의 호위 무사. 준수한 테크닉과 기회 창출을 통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처음 각광받았으며 워낙 왕성한 활동량을 가진 탓에 중앙 미드필더에서 커리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우디네세에서 세리에 최상급 미드필더로 점점 팬들에게 인정받았던 그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에게 낙점받아 AT로 이적, 마르코스 요렌테, 코케, 앙투안 그리즈만 등과 공격을 이끌면서 2차례의 리그 3위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데 파울은 리오넬 메시라는 GOAT의 부족한 수비 가담을 커버하는 활약상으로 2022 월드컵 우승, 21년과 2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베스트 11에 들어가는 활약으로 우승, 3연속 메이저 대회 제패를 완성시켰습니다.
17위

에베르 바네가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5cm
생년월일:1988년 6월 29일
주요 클럽:세비야 FC
주요 커리어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3회
A매치 65경기 6골
201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0년대 라리가를 수놓은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명. 뛰어난 탈압박 볼컨트롤과 정교한 패스와 시야를 토대로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줬던 바네가였습니다.
그는 발렌시아에서 2007/08 시즌 국왕컵 우승을 이뤘으며 은사인 우나이 에메리 감독을 따라서 세비야로 이적했고 이반 라키티치라는 에이스의 대체자가 되어 대활약하는데 성공, 2014/15 시즌과 15/16 시즌 유로파 2연속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특히 후자의 시즌 결승에선 리버풀의 중원을 쌈싸먹으며 MOM에 뽑힌 바네가는 인테르로 이적 후엔 다시 부진하나 세비야 리턴 후 폼을 찾으며 세번째 유로파 트로피를 들었습니다. 그 3번의 우승에서 모두 올스타팀에 뽑힌건 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국대에서는 2번의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에 그쳤고 특히 2016년 대회에선 올스타급에 폼을 보였습니다.
16위

마티아스 알메이다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3cm
생년월일:1973년 12월 21일
주요 클럽:SS 라치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40경기 1골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 세계 최고로 불리던 이탈리아 세리에 A 최고 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 가운데 하나. 뛰어난 태클 능력과 활동량을 통해 공도 잘뺐었었으며 발군의 전진 드리블과 슛팅을 통해 공격에 크게 기여하는 플레이도 잘했던 알메이다였습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제패하며 유럽 빅리그에 입성한 그는 세비야, 라치오, 파르마에서 모두 레알도 러브콜을 보낼 정도의 폼으로 전성기를 구가, 특히나 라치오의 황금기를 누리면서는 1999/00 시즌 리그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98/99 시즌 위너스컵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98/99 시즌 리그 MVP로까지 뽑힌 알메이다는 대표팀에서도 2번의 월드컵에 참여했고 98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15위

리카르도 지우스티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8cm
생년월일:1956년 12월 11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53경기 0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축구와 인데펜디엔테를 지켜내던 명 파수꾼. 뛰어난 태클과 축구 지능, 타고난 활동량 덕에 주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풀백까지 기용되어서도 그 활약상을 이어가던 지우스티였습니다.
그는 특히나 아르헨티노스 후니오르스에서 이적한 로스 디아블로스 로호의 소속으로 2번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 1984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및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1987년 남미 올해의 팀에 들었던 지우스티는 1986년 월드컵과 90 월드컵에서 라이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면서 우승과 준우승에 공헌했습니다.
14위

아메리코 가예고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0cm
생년월일:1955년 4월 2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73경기 3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순까지 아르헨티나 축구에 큰 족적을 수비형 미드필더. '황소'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강렬한 투지와 터프한 수비 스타일로 공격수들을 날카로운 뿔로 들이받아버렸던 그는,
뉴웰스 올드 보이즈에서의 활약으로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 커리어 정점을 맛보게 됩니다. 특히 1986년은 프리메라 디비시온부터 해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유럽 챔피언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잡고 인터컨티넨탈컵 트로피까지 구단의 진열대로 가져오는 엄청난 업적을 만들었습니다.
라 알비셀레스테의 품에서도 가예고는 호세 발렌시아, 오스발도 아르딜레스와 미들진에서 컨택해 1978년 월드컵에서는 우승에 도달했습니다.
13위

나탈리오 페스치아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8cm
생년월일:1922년 1월 1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A매치 12경기 0골
1945, 46, 47 코파 아메리카 우승
보카 주니어스 역사에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레전드 미드필더. 작은 신장에도 자신보다 훨씬 큰 수비수들 앞에서 주늑들지 않고 덤벼드는 끈질긴 맨마킹을 보여 팬들로부터 '작은 사자'라는 이명을 얻었던 페스치아는,
카를로스 소사, 에르네스토 라자티와 중원 라인을 구성해 철천지원수인 리버 플레이트의 최전성기에 대항했습니다. 프로 리그 창설 후, 안토니오 라틴과 함께 유이한 보카의 원클럽맨인 페스치아는 3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고 특히 1954년에는 동료였던 에르네스토 라자티를 감독으로 해 10년만에 리그 우승컵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라 알비셀레테의 부름을 받아 그는 3연속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12위

후안 바르바스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7cm
생년월일:1959년 8월 23일
주요 클럽:레알 사라고사
주요 커리어
A매치 33경기 0골
1980년대 초중반 라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 뛰어난 드리블과 패스 실력으로 중앙에서 플레이메이킹도 잘했으나 워낙 체력이 좋고 수비 가담도 뛰어나 수비형 미드필더부터 좌우측 풀백을 보는 뛰어난 멀티성을 자랑했습니다.
후안 바르바스는 라싱 클루브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통해 스페인의 라리가까지 진출, 레알 사라고사에서 100경기 가까이 출장하며 리그 탑급 활약을 했는데 '돈발롱'이 선정한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1982/83 시즌과 83/84 시즌 탄 것으로 증명됩니다.
아르헨티나의 부름을 받아서도 1979년 청소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와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1982 월드컵에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11위

세르히오 바티스타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6cm
생년월일:1962년 11월 9일
주요 클럽: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A매치 39경기 0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198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보디가드. 강골의 뼈대를 이용한 어깨 싸움을 즐겼으며 높은 커버 범위, 헌신적인 자세와 물불 안가리는 터프함으로 공격수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플레이를 했습니다.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라는 아르헨티나 리그의 클럽에서 활약한 그는 해당팀 소속으로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985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커리어 종합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3차례(1986년, 1988년, 1989년) 들어간 바 있습니다.
바티스타는 1986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조국의 수비 축구를 가능케 했고 결국 우승에 도달했습니다.
10위

에르네스토 라자티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7cm
생년월일:1915년 9월 25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5회
A매치 4경기 0골
193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30 ~ 40년대에 걸쳐 '제네바'의 우상으로 떠받들여지던 '황금 소년'. 우아한 무브먼트와 정교하고 세심한 온더볼 능력으로 이름을 떨친 에르네스토 라자티는 선수 커리어 동안 한번도 퇴장 당하지 않은 신사적인 플레이스타일까지 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카를로스 소사 - 에르네스토 라자티 - 나탈리오 페스치아로 이어지는 미들진은 구단 최고의 중원진으로 여겨지며 이들의 활약에 팀은 5번의 아르헨티나 자국 리그 우승을 더해 크고 작은 10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의 황금기에 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대표팀의 일원으로는 많이 중용받지 못했지만 193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9위

에스테반 캄비아소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7cm
생년월일:1980년 8월 18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2000년 ~ 2021년
A매치 52경기 5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아르헨티나 축구의 명 수비형 미드필더 계보를 잇는 2000년대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가운데 한명. 활발한 활동량과 활동 반경을 자랑하며 교활한 인터셉팅, 태클 등 수비력도 뛰어났으나 공격 포인트도 꽤 쌓을 만큼 뛰어난 패스, 강력한 슛팅 등 공격 전개에도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입니다.
캄비아소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적와 2000년대 중후반 인테르의 전성기 중추로 베론, 스탄코비치, 레코바, 스네이더르와 중원에서 파트너쉽을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유럽 최정상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대활약으로 세리에 5연패, '트레블'을 포함한 15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유수의 영광을 거머쥐었으며 05/06 시즌, ESM 올해의 팀에 뽑힌 적도 있습니다.
대표팀에서 그는 2006 월드컵 8강과 07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달성했으나 2010 월드컵에선 최고의 폼에도 마라도나 감독의 의아한 선수 선발의 희생양이 되어 캄비아소가 없는 팀은 독일에게 박살나버리고 말았습니다.
8위

디에고 시메오네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0cm
생년월일:1970년 4월 28일
주요 클럽: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106경기 11골
1991, 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년대 활약했던 아르헨티나의 명 인떼르디또레. 전형적인 5번형 선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불독과도 같은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을 바탕으로 뛰어다니면서 터프한 태클, 과격한 몸싸움으로 볼을 따오는데 주력했던 선수입니다.
디에고 시메오네는 선수 시절 많은 클럽들을 돌아다닌 편이며 그중 최전성기를 꼽으라면 당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라치오 시절입니다. 그는 아틀레티코에서 1995/96 시즌의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더블'이라는 영광을, 라치오의 셔츠를 입고 파벨 네드베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중원을 구성했고 이들의 막강함 덕에 팀은 1999/20 시즌의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도멕스틱 더블'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대표팀 하에서 그는 2번의 코파 아메리카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살면서 머리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결정을 따른 경우가 더 많다.
때론 내가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 디에고 시메오네 -
7위

안토니오 라틴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90cm
생년월일:1937년 5월 16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코파 아르헨티나 우승 1회
A매치 34경기 1골
1959, 6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6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를 받들던 허리의 버팀목. '들소'라는 별명에 맞게 강렬한 태클과 190cm의 큰 키, 떡 벌어져있는 어깨를 바탕으로 돌진해버리는 수비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해서 안정적인 패스 실력과 라커룸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져 주장도 맡았던 라틴은,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 보카 주니어스에서만 모든 선수 생활을 보낸 원클럽맨으로 영원한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를 밀어내고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4번의 리그 우승컵과 1번의 컵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고 196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결승 진출에까지 성공했습니다.
1959년과 67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1966년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에서 어이없는 오심으로 퇴장당하며 잉글랜드와의 질긴 악연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6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4cm
생년월일:1984년 6월 8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5회
코파 델 레이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147경기 3골
2007, 15, 1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14 FIFA 월드컵 준우승
201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하는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센터백. 마스체라노는 완벽한 대인마킹과 패스길 차단, 강력한 태클을 주로 하는 거친 수비를 보여줬던 선수였으며 이런 능력에 국내팬들에게 '마지우개'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리버풀에서 스티븐 제라드, 사비 알론소와 유럽 최강의 중원을 만들어 2008/09 시즌 리그 준우승을 이끈 그는 후에 바르샤로 이적해 발밑 능력까지 향상해 2010/11 시즌의 '5관왕'과 14/15 시즌의 '트레블'을 포함해 19번의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트레블' 시즌에는 발롱도르 19위와 같이 챔스 올스타팀에 들어갔던 마스체라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공격의 메시만큼이나 중요한 후방의 코어로 단단한 수비 조직을 형성, 3번의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에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4년 월드컵에서도 홀로 수비를 캐리하며 조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4강전 아르연 로번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보인 수비력은 마치 장판파의 장비를 연상시켰습니다.
5위

미겔 앙헬 브린디시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5cm
생년월일:1950년 10월 8일
주요 클럽:CA 우라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A매치 46경기 17골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아르헨티나 축구 사상 최고의 인쿠르소레 중 한명. 중앙 미드필더이지만 순두부 같은 볼터치 능력과 엄청난 슛팅 스킬과 패스를 모두 가져 공격 상황에서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자국의 CA 우라칸에서 데뷔하여 10년 가까이 활약하며 1973년 구단 최초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역사를 쓰며 같은 해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 남미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후에 스페인 라리가의 라스 팔마스로 이적해 1977/78 시즌 코파 델 레이 준우승을 이끌었고 다음 시즌에는 '돈발롱' 선정 라리가 MVP로까지 올라서는 클래스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당시 해외에서 뛴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소집을 받지 못했고 아르헨티나의 1978 월드컵 우승을 브린디시는 TV로만 지켜봐야 했습니다.
4위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9cm
생년월일:1952년 8월 3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2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63경기 8골
1978 FIFA 월드컵 준우승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까지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했던 중앙 미드필더이자 토트넘 역사상 최고의 남미 선수.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를 커버하는 활동량과 체력, 굴지의 키패스 능력, 또 아르딜레스하면 드리블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드리블, 탈압박에 세간에서는 그를 '비단 뱀'이라고 불렸습니다.
당시로는 이례적인 사례로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영국땅을 밟은 이 이방인은 토트넘 핫스퍼에서 데뷔하자마자 PFA 올해의 팀에 뽑혔고 FA컵 2연속 우승을 이끌며 커리어 피크를 찍습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잠시 팀을 떠나지만 얼마안가 돌아와 UEFA컵을 우승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3차례 선정된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일원으로 승부조작 논란이 있는 대회이긴 하지만 1978 월드컵에서 결정적인 찬스들을 만들어내며 첫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3위

네스토르 로시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5cm
생년월일:1925년 5월 10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5회
콜롬비아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코파 콜롬비아 우승 1회
A매치 26경기 0골
194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30년대 중후반 ~ 1940년대 초중반 축구계를 주름잡은 당대 최고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CA 리버 플레이트의 중심부. 훌륭한 피지컬을 사용해 빡센 수비 스타일로 공격수들을 때려잡았다고 전해지는 공격형 하프백으로 필드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동료들을 다잡는게 다반사였기에 '울부짖는 남미 대륙의 짐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커리어 중반에 미요나리스에 갔다 온 것을 제외하면 리베르 플라테에서만 뛰며 앙헬 라브루나,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 남미 최고의 스타들이 줄비했었던 공격진을 뒤에서 힘껏 밀어주었고 총 5번의 리그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라 알비셀레스테의 일원으로도 로시는 뛰어난 공격진을 업고서 2번의 코파 아메리카(1947,1957) 우승 트로피를 아르헨티나 땅으로 가져왔습니다.
2위

페르난도 레돈도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6cm
생년월일:1969년 6월 6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29경기 1골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년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던 당대 엘레강스함과 우아함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드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 실력과 경기 조율력에다가 강하고 거친 수비력을 보이는 반면 부드러운 탈압박, 유려한 전진 드리블링을 보유했던 그는 특유의 머리 스타일과 수려한 외모 덕에 '왕자' 혹은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였습니다.
레돈도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각 2차례의 라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두번째 빅이어인 99/00 시즌엔 맨유 중원을 박살내는 명경기를 찍는 등 최고점의 폼으로 UE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해냈습니다. 그러나 레돈도는 이러한 활약에도 페레즈 회장의 '갈락티코스 정책'에 희생양이 되어 팀을 떠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국대에서 그는 1992년 킹파드컵(컨페드컵 전신)에서 MVP로 우승을, 1년 뒤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팀을 남미 챔피언의 왕좌에 앉히는 클래스를 보이나 후에 다니엘 파사레야 대표팀 감독과의 불화로 그의 국대 경력은 너무나도 빠르게 단절되었습니다.
저 녀석 신발 안에 뭐가 있는거야? 자석이야?
- 알렉스 퍼거슨 -
1위

루이스 몬티
포지션:DM
국적: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신장:169cm
생년월일:1901년 5월 15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A매치 34경기 6골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30 FIFA 월드컵 준우승
1934 FIFA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테르디토레(이탈리아어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지칭하는 용어).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마티아스 진델라도 무릎 꿇은 거칠고 악착같은 맨마킹과 안정적인 볼배급 능력, 뛰어난 활동량 덕에 '두개의 날개'로 불렸던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사이 포지션)이었던 몬티는,
가는 팀마다 공수의 엔진이 되어주며 CA 산 로렌소의 핵심으로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끈 뛰 경제 사정이 안좋던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국적을 귀화하였고 유벤투스와 계약해 전설적인 멤버들과 함께 4차례의 리그 우승, 1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견인하면서 유럽 전역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귀화 전 아르헨티나 국적으로는 1927 코파 우승에도 28 올림픽, 30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으나 이탈리아 국적으로 나간 1934년 월드컵, 마침내 쥘리메컵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개의 국적으로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은 최초이자 마지막 선수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엔진. 몬티는 무섭도록 단단한 수비와 롱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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