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위

카를로스 바빙톤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0cm
생년월일:1949년 9월 20일
주요 클럽:CA 우라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A매치 13경기 2골
CA 우라칸이라는 아르헨티나 클럽의 역사를 쓴 1970년대의 후안 로만 리켈메. 별명 그대로 느릿느릿한 템포에도 우아하게 볼키핑과 탈압박을 자랑하면서 결정적인 킬패스를 찔렀으며 비교적 약한 팀을 데리고 호성적을 쓴점 역시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우라칸에서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가 이끌던 전성기를 맛본 그는 레네 하우스만, 미겔 브린디시, 오마르 라로사 등과 팀을 이끌어나가며 1973년 자국의 여러 강호들을 제치고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또한 바빙톤은 A매치 경력이 길지는 않지만 1974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며 꽤 괜찮은 활약을 했고 이에 남미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습니다.
14위

아리엘 오르테가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0cm
생년월일:1974년 3월 4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7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A매치 87경기 16골
'제 2의 디에고 마라도나'라는 이름을 가장 처음 수여받았던 1990년대 한 때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로 보이던 초신성. 호나우두와 비견되던 초월적인 드리블 발재간과 높은 수준의 킬패스를 보이면서도 악동적인 멘탈과 볼을 질질 끄는 플레이로 적잖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작은 당나귀' 오르테가는 자국의 강호 리버 플레이트 소속으로는 날아다니며 6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달성, 남미 올해의 팀에는 4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해낸 1996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3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발렌시아, 삼프도리아, 파르마 등 유럽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부진하며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오르테가는 그래도 국대에서 오랜 기간 부름을 받았고 3차례의 월드컵에 참가, 그 중 1998년 대회에선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13위

파블로 아이마르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0cm
생년월일:1979년 11월 3일
주요 클럽:발렌시아 CF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52경기 8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리오넬 메시가 유년 시절 동경했었던 우상. 리베르 플라테와 발렌시아의 선배인 아리엘 오르테가에 이어 '제 2의 마라도나'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났던 적진을 휘젓는 드리블, 이타적인 플레이메이킹 등으로 작은 체구의 단점을 가린 '어릿 광대' 아이마르는,
아리엘 오르테가에 이어서 리버 플레이트에 떨어진 초신성이었으며 발렌시아로 이적, 가이스카 멘디에타라는 에이스가 떠난 팀을 어린 나이에도 구단의 핵심으로서 공격을 이끌어나갔으며 2000/01 시즌 챔스 준우승을 시작으로 2차례의 라리가 우승과 UEFA컵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02/03 시즌 챔스 도움왕을 수상하는 등의 활약상은 어린 메시가 그를 선망하기 충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마르는 부상으로 인해 폼이 많이 떨어졌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후안 로만 리켈메와 경쟁해야했기에 핵심으로 뛰기에는 벅찼었습니다.
12위

호세 아모르 파스토리사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3cm
생년월일:1942년 5월 23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A매치 18경기 1골
1960년대 말 ~ 70년대 초 '컵의 왕' 인데펜디엔테를 대표했던 미드필더. 기막힌 볼컨트롤과 경기를 확실하게 집어내는 시야, 자로 잰듯한 패스를 뿌리면서도 뛰어난 수비력 덕에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롤을 부여받아도 날아다니던 호세 아모르 파스토리사는,
라싱 클루브에서 이적와서 3번의 리그 우승과 197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품에 안았습니다. 후에 감독으로도 대성공한 그는 1971년,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선수와 남미 올해의 선수상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년에 프랑스의 리그앙으로 이적해 3시즌간 뛰면서도 모두 두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면서 그 클래스를 유럽 리그에서도 입증했습니다. 그는 또한 1966 월드컵의 주전 멤버로 8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1위

에르민도 오네가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5cm
생년월일:1940년 4월 3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A매치 30경기 11골
1960년대 CA 리버 플레이트와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책임졌던 핵심 중 핵심. 빼어난 드리블, 아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정교한 플레이메이킹 능력, 섬세한 연계 능력과 직접 마무리할 정도의 능력까지 가져 공격형 미드필더보다 더 올라가 포워드로도 뛸 수 있었습니다.
1940년대 ~ 1950년대 '라 마키나'로 대표되었던 전성기가 끝난 라반다 유니폼을 입고서 활약하며 당시 라이벌인 보카 주니어스의 리그 독주를 멈추는 1957년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페냐롤에게 지긴하나 196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오네가는 이후 페냐롤로 팀을 옮겨서 3번의 리그 준우승과 70년 한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더 경험했습니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서도 오네가는 1960년대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동, 66년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끌어냈습니다.
10위

에르네스토 그리요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0cm
생년월일:1929년 10월 1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A매치 21경기 8골
1955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대활약했던 남아메리카 최정상 미드필더 중 한명. 현란한 바디페인팅과 탈압박, 감각적인 드리블 전진과 양발에서 나오는 기회 창출력이 최장점이었던 에르네스토 그리요는,
CA 인데펜디엔테 유니폼을 입고 200경기 가까이 뛰면서 이름을 날렸고 비록 그 기간 동안 우승이라는 미션은 완수하지 못했지만 1953년, 유럽 투어에서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를 6대0으로 대파하는 등의 쾌거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리요는 결국 1957년 이탈리아의 AC 밀란으로 이적하자마자 유러피컵 준우승, 다음 시즌 세리에 우승을 거뒀고 보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는 3번의 리그 타이틀과 63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라 알비셀레스테의 품에서도 그리요는 1955 코파 우승과 다음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9위

움베르토 마스치오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7cm
생년월일:1933년 2월 20일
주요 클럽:라싱 클루브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미트로파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16경기 12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월드클래스 퍼포먼스를 펼쳤던 공격형 미드필더. 발에 자석을 붙인 듯한 예술적인 볼컨트롤과 터치, 양발에서 뿜어내는 패스와 슛팅 비거리를 자랑했던 선수였으며,
라싱 클루브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세리에로 진출하여 1962/63 시즌 리그 우승을 인테르에서, 65/6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피오렌티나에서 도왔습니다. 하지만 커리어 최고의 폼은 말년에 복귀한 자국 라싱 클루브에서 폭발했으며 66년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과 다음 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탈컵까지 제패하는 위엄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는 귀화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활약하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 국대에서는 '더러운 얼굴을 한 천사들'이라고 불리우며 1957 코파 아메리카에서 6경기 25골을 넣은 팀의 총 9골을 책임지며 우승 트로피와 득점왕을 양손에 안았습니다.
8위

호르헤 부루차가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8cm
생년월일:1962년 10월 9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57경기 13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90 FIFA 월드컵 우승
1986년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에 이은 팀의 차순위 에이스였던 사나이. 쭉쭉 뻗어나가는 슛팅 능력, 뛰어난 패스 앤 무브와 쏜살같은 돌파력으로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있었던 호르헤 부루차가는 커리어의 시작과 끝을 인데펜디엔테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1983년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과 84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특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결승전 결승골과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팀의 마지막 전성기를 빛냈고 중간에 프랑스의 낭트로 이적해서는 7년간 활약, 팀이 부진하던 시기라 트로피는 없었지만 본인 만큼은 뛰어난 활약으로 1985/86 시즌 최우수 외국인상을 수상했습니다.
특히 국대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 다음가는 공격의 에이스로서 각 1번의 월드컵 우승과 준우승을 이룩했고 특히 86년 WC에선 결승전에서 서독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축구 선수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결승전에서 실점한 후 마라도나와 나는 서로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천가지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 호르헤 부루차가 -
7위

노르베르토 알론소
포지션:C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6cm
생년월일:1953년 1월 4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19경기 4골
1978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중후반까지 남아메리카 리그 최고의 엔간체. 창의적인 찬스 메이킹, 빼어난 드리블 스킬, 정교한 데드볼 처리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간혹 리버 플레이트 최고의 선수로 꼽히기도 합니다.
노르베르토 알론소는 총 세차례 팀에 머무르며 각 3번의 메트로폴리타노, 나시오날 우승과 1번의 통합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8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트로피까지 손에 넣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선 콜롬비아의 아메리카 데 칼리를 상대로 1골을 넣기도 한 그는 1975년에는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 순위 2위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국 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그였음에도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던 루이스 세사르 메노티 감독은 1978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 당시 그를 그저 서브로만 기용했습니다.
6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6cm
생년월일:1975년 3월 9일
주요 클럽:SS 라치오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73경기 9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00년대 초중반, 국내에선 '세계 4대 미드필더'로 불리며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와 함께 묶여 언급되던 인물. 넓디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정교하면서도 날카로운 장거리 쓰루패스 능력과 공격전개 능력을 보여줬었던 '작은 마녀' 베론은 남미스러운 볼컨트롤과 타고난 피지컬을 보유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세리에 7공주 시절의 파르마와 라치오에서 맹활약했으며 파르마에선1998/99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 우승, 라치오 소속으로는 절정의 퍼포먼스로 1999/00 시즌의 '도메스틱 더블'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슈퍼컵에서 맨유를 상대로 알렉스 퍼거슨에 눈에 띄어 맨유로 이적했으나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활약을 했고 인테르로 돌아와서야 그 폼을 찾았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98년 월드컵 도움왕을 따냈고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 진출에 도달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한달이라도 희망을 주고싶다.
내 평생 애국할 유일한 기회이다.
-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
5위

리카르도 보치니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8cm
생년월일:1954년 1월 25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4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28경기 0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70년대 ~ 80년대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도 평가받은 인데펜디엔테를 이끌었던 월드클래스 엔간체. 뛰어난 볼키핑과 테크닉, 광활한 시야, 특히 수비 라인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킬패스는 언론으로부터 '보치니식 패스'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킬 정도였습니다.
무려 19년 동안 공격을 이끌어나갔었던 엘 로호의 품에서 보치니는 각 4번의 자국 리그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번의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83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 3위에 빛나는 그는 1973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결승골까지 넣으며 '컵의 왕'의 자존심을 드세운 바 있습니다.
그러나 씁슬하게도 국대에서는 1978년 월드컵 당시 경쟁자가 놀베르토 알론소였기에 발탁되지 않았고, 86년 당시 경쟁자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호르헤 부루차가였기에 벤치 신세에 그쳤습니다.
4위

후안 로만 리켈메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83cm
생년월일:1978년 6월 24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5회
코파 아르헨티나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3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51경기 17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빠른 템포의 전환, 강한 압박 등의 현실의 흐름을 거스르고 낭만을 택했던 현대 축구의 반역자. 이른 바 '느림의 미학'을 살린 역대급인 탈압박, 볼키핑을 구사하다 대지를 가르는 킬러 패스로 골을 떠먹이던 최후의 클래식 플레이메이커였던 리켈메는 시대를 역행한 스타일 때문에 안풀리는 날도 있었지만 잘되는 날에는 팀 하나를 혼자서 다 박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졌었습니다.
보카 주니어스 전성기의 공격을 혼자 만들어내며 2차례의 리그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3회를 이끌었으며 후에 노란 잠수함의 함장으로서 돌풍을 만들며 2004/05 시즌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 05/06 시즌 챔스 4강 진출 등의 대업을 쌓았습니다.
남미 올해의 팀에 5번,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에 4번 뽑힌 리켈메는 국대에서도 2000년대 중반 아르헨의 핵심으로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200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다른 축구선수를 부러워 할때 그 선수는 이미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 나는 나를 믿는다.
- 후안 로만 리켈메 -
3위

안토니오 사스트레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6cm
생년월일:1911년 4월 27일
주요 클럽:CA 인데펜디엔테
주요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3회
A매치 34경기 6골
193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37, 41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30년대와 40년대 남미 축구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봉으로 불리웠던 아르헨티나의 거물. 정교한 패스와 빼어난 드리블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플레이메이킹을 그려내던 그는 세간으로부터 '인간 오케스트라'라고까지 불렸으며 그가 당시 전성기를 맞았던 클럽, 인데펜디엔테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사스트레는 같이 호흡을 맞추던 아르세니오 에리코, 비센테 데 라마타 등과 함께 상대 수비수들을 현혹시키며 2번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컵을 포함해 많은 트로피를 사냥한 바 있습니다. 상파울루에서도 3번의 리그 타이틀을 따냈던 그는 또 라이벌인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제치고 1937년과 1941년, 2연속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인도해 라 알비셀레스테의 자존심을 드세운 그이기도 했습니다.
2위

아돌포 페데르네라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71cm
생년월일:1918년 11월 15일
주요 클럽:CA 리버 플레이트
국대 커리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6회
코파 콜롬비아 우승 1회
A매치 21경기 7골
1941, 42, 46 코파 아메리카 우승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마에스트로 중 한명. 디 스테파노가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선수로 빼어난 볼컨트롤, 정확한 패스, 발군의 연계 등에 능했던 그였습니다.
당대 최전성기던 리버 플레이트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서 현대의 펄스 나인과 제로톱에 가까운 역할, 전방에서 아래로 내려와 경기를 푸는 플레이스타일로 뛰었습니다. '라 마키나'로 불렸었던 낭만주의 축구의 공격진을 가동시키는, 톱니바퀴의 윤활유 역할을 해낸 페데르네라에 팀은 종합 5번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컵을 들어올려 당시 남아메리카 리그를 CA 리버 플레이트의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2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번의 준우승으로 아르헨티나를 지휘했던 페데르네라는 1946년 대회에서는 MVP로 뽑히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내 축구 인생에 있어 최고로 기억되고 있는 선수는 바로 아돌포 페데르네라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1위

디에고 마라도나
포지션:AM
국적:아르헨티나
신장:167cm
생년월일:1960년 10월 30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91경기 34골
1986 FIFA 월드컵 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 FIFA 월드컵 준우승
역사상 최고 레벨로 거론되고 있는 스포츠를 초월해 종교적 존재로 섬겨졌던 '축구의 신'. 자신보다 배는 큰 수비들을 아류로 만드는 밸런스와 스피드, 신의 경지에 도달한 드리블 돌파와 개인기, 충격적인 킬패스와 플레이메이킹 능력 등 월등한 개인전술 뿐만 아니라 이타적 플레이까지 도가 튼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마라도나는,
10대의 나이부터 아르헨티노스, 보카, 바르샤를 거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나폴리라는 땅에 내려와 마피아 연루, 마약 스캔들이라는 지저분한 잡음에도 실력으로 찬양받으며 리그 하위권이던 팀을 유럽에서도 꿇리지 않는 클럽으로 탈바꿈시켜 염원하던 스쿠데토를 2차례, 1988/89 시즌 UEFA컵 트로피를 드는 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87/88 시즌에는 세리에와 코파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나폴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으며 팀은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 지정, 홈구장 명명을 그의 이름을 딸 정도였습니다.
자국 대표로는 1986년, 단일 대회 역대 최다 드리블 성공, 피파울, 잉글랜드전 드리블골 등 월드컵 역사에 남을 역대급 원맨쇼로 기대도 않던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해 골든볼, 실버슈를 수상, 다음 월드컵에서도 더 약해진 전력의 조국을 브론즈볼을 받는 활약으로 멱살잡고 결승에 올린 마라도나는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범접불가의 구국영웅으로 우러러보이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뛸 땐 삶도 사라져요. 문제들도 사라지고, 모든 게 잊히죠.
- 디에고 마라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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