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스포츠들이 으레 그렇듯 축구 역시도 역사적으로 감정의 골이 깊은 팀들이나 나라 사이에서의 경기에서 보여주는 치열함과 피 튀김으로, 간혹 언론으로부터 전쟁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정말로 축구로 인해 전쟁을 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1969년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벌인 100시간 동안의 전투, 이른 바 '축구 전쟁'입니다.
1960년대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인구 대비 좁은 면적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농업으로 먹고사는 농업 국가인데, 농사 지을 땅은 없고 그마저도 독재 정권과 일부의 특권층이 대부분의 농작지를 독점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온두라스로 넘어가 불법으로 경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문제는 굉장히 뜨거운 감자였는데 엘살바도르의 약 30만명의 농업인들이 온두라스 전체 농지의 20%를 무단 점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근접국가인데다가 언어도 같고, 연안에 있는 무인도에 대한 지역 분쟁,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며 생긴 국경선 정리 등으로 인해 이미 곪아 있었던 두 국가의 사이는 이 일로 인해 더 틀어집니다. 더욱이 엘살바도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태도도 가지지 않았으며 온두라스는 결국 새로운 토지개혁법으로 엘살바도르를 강제 추방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앙금이 절정이던 1969년, 1970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두고 지역 예선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하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경기가 매치되어 있었습니다. 온두라스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는 온두라스 관중들이 엘살바도르 선수들 숙소 옆에서 밤새 축제를 벌이는가 하면, 반대로 2차전 엘살바도르에서는 팬들은 온두라스 선수들 숙소 창문에 돌과 죽은 쥐를 던져댔습니다. 그렇게 펼쳐진 1.2차전은, 1차전 온두라스의 1대0 승리, 2차전 엘살바도르의 3대0 승리로 합계 3대1. 그러나 당시에는 다득점, 원정 다득점 제도가 없었고 결국 이들은 마지막 대망의 3차전으로 승부를 봐야했습니다.
심지어 1차전 엘살바도르의 패배 후, 자국에서는 한 소녀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일이 발생, 이 어린 양을 위한 국가적인 추모가 이어졌고 국가대표팀과 대통령까지 이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엘살바도르는 3차전에서 온두라스에게 패하면 외교 단절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마찰은 더욱 더 심해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FIFA에서는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분명 3차전에서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 3자인 국가 멕시코에서 경기를 진행했고, 10만명 수용이 가능한 경기장에 2만명의 관중만 들어여보냈으며 심지어 배치된 경찰의 수는 관중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던져진 운명의 추,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는 결국 엘살바도르의 3대2 승리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온두라스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고 자국 내에 있는 엘살바도르인들을 골라 대규모 린치를 벌이는데..
1969년 7월 14일, 결국 이를 명분으로 엘살바도르는 폭격기로 온두라스의 공군 기지를 선제 공격,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기습 공격에 온두라스 군대는 제대로 된 대비를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싸우는 족족 밀려나서 후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전쟁을 지켜보던 미국은 당연히 엘살바도르에 제재를 가하려했으나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내의 자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멈출 수 없다는 핑계를 둘러댑니다. 미국이 결국 외교 압력을 가하자 그제서야 꼬리를 내린 엘살바도르는 종전을 선언, 7월 18일 100시간 동안 일어난 이 어이없는 전쟁을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이 전쟁은 1년 전부터 엘살바도르가 극비리 준비해온 전쟁이었으며 축구는 결정적인 트리거라기 보다는 단순 기폭제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버린 국토를 공허히 바라보며 농업 국가였던 양국은 더 큰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에서 추방된 30만명의 난민들과 실업자들에 경제는 더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토지개혁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결국 내전까지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상자와 농작지를 잃은 온두라스 역시도 부패한 정부로 인해 경제난은 더 악화되었고 결국 들고일어난 쿠데타로 인해 군사정권의 독재가 나라를 집어삼켰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은 또 수만명의 부랑자, 과부, 고아들만을 낳을 뿐이었습니다.
한 세기 반 전까지도 하나의 공화국에 속했던 중앙아메리카의 두 나라가 축구 때문에 적이 되어 싸운다.
작은 농업 국가인 온두라스는 소수의 대지주들에 의해 지배된다.
작은 농업 국가인 엘살바도르는 소수의 대지주들에 의해 지배된다.
온두라스는 쿠데타로 태어난 군사 독재 정권이 통치한다.
엘살바도르는 쿠데타로 태어난 군사 독재 정권이 통치한다.
전쟁을 하는 동안
온두라스 민중은 자신들의 적이 엘살바도르 민중이라고 생각하고
엘살바도르 민중은 자신들의 적이 온두라스 민중이라고 생각한다.
1주일간 지속된 두 나라의 전쟁은 4천명의 죽은 자를 남겼다.
우루과이의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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