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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축구 이야기

노팅엄 포레스트는 어떻게 챔스 우승을 2번이나 한걸까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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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과 1980년을 보자

 역대 챔스 우승팀 기록을 보다보면 눈에 항상 걸리는 팀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 빅클럽들 사이에 무려 2년 연속으로 우승을 한 노팅엄 포리스트 FC입니다. 엠블럼에 있는 2개의 별도 당연히 이 두번의 빅이어를 뜻하는 것인데 2022/23 시즌, 무려 23년만에 다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하기 전까지 2부 리그, 심지어는 3부 리그까지 떨어진 팀이 어떻게 과거에는 이런 영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현실판 FM을 플레이했었던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

 1970년대 중후반 영광의 르네상스 시절을 맞이하기 전까지 노팅엄은 지금과 다를 것 없는 마찬가지로 우승 기록이라고는 2부 리그 우승과 3부 리그 우승이 전부인 1부와 2부 그 사이를 전전하던 그저 그런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팀의 역사는 바로 이 한명의 남자에 의해 뒤바뀝니다. 바로 그의 이름은 브라이언 클러프. 1974/75 시즌 도중 부임한 그는 해당 시즌과 다음 시즌은 2부 리그 16위 - 8위에 그쳤지만 그 다음 76/77 시즌 2부 리그 3위로, 1부로 승격하는데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능력 좋은 감독이 이끈 소정의 성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팀의 만화같은 스토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이 클럽은 한가지만 제외하고 최악의 클럽이야, 그 한가지는 바로 나 브라이언 클러프지"

- 노팅엄포레스트 감독직을 맡은 첫시즌 -

 

1979/80 시즌의 노팅엄 포리스트 FC의 스쿼드

 당시 브라이언 클러프는 영연방 최고 수준의 키퍼 피터 쉴튼,  북아일랜드 역대 최고의 윙어 마틴 오닐,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존 로버트슨, 잉글랜드 대표팀 최초의 흑인이자 당대 리그 최고급 풀백으로 평가받게 될 비브 앤더슨 등을 키워내며 몸집을 키웠고 무려 4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며 1977/78 시즌, 승격하자마자 '붉은 제국' 왕조로 불리던 리버풀을 제치고 승점 7점차로 곧 바로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더불어 리그컵에서도 리버풀을 1대0으로 꺾고 우승, 다음 시즌에는 리그는 리버풀에게 내주며 2위였지만 리그컵 2연패, 그리고 무엇보다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에서 우승하며 빅이어를 드는 대반전을 찍었습니다. 이어진 다음 시즌에도 리그는 5위에 머물렀지만 유러피언컵에서는 독일 최고의 팀이었던 함부르크를 잡고 2연속 우승에 성공하며 엠블럼에 2개의 별을 다는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 80/81 시즌 리그에서도 7위, 유러피언컵에서도 광탈하면서 이 기적같은 질주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2015/16 시즌의 동화 같은 기적을 쓴 레스터 시티가 다음 시즌 이어서 챔스 우승, 그것도 2연속 우승에 성공한 느낌이며 그 전성기는 3년여에 불과하나 그럼에도 챔스 2연패라는 기록은 레알, 리버풀, 아약스, 인테르, 벤피카, 뮌헨, 밀란 등의 명문 중 명문 클럽만이 가진 대기록이며 역사상 최초로 자국 리그보다 챔스 우승이 더 많은 팀이기도 합니다. 아스날, 맨시티, 파리 등의 빅클럽들이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숙원인 빅이어 사냥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2번의 우승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언더독의 반란이 끝난 후에도 클럽은 중위권 순위를 유지하며 리그컵 2연패를 하는 등 호성적을 냈지만 후에는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의 이탈과 세대 교체 실패에 따른 부진, 그리고 구단은 재정난을 겪으며 1992/93 시즌 리그 꼴지로 강등, 브라이언 클러프도 긴 감독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노팅엄은 얼마안가 1부에 또 올라오지만 바로 다시 강등되었고 2004/05 시즌에는 심지어 3부까지 떨어지는 흑역사를, 불과 20년이 막 넘은 시간만에 유럽 최고의 팀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영원한 오른팔이었던 피터 테일러(좌) 코치와 함께 경기를 보는 브라이언 클러프

 그렇다면 이들의 기적 같은 성공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진걸까요? 브라이언 클러프는 사실 전술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감독이었습니다. 특별한 것 없이 그냥 442 포메이션에 단단한 중앙 블럭을 형성하고 공격수와 윙어들에게 공격 전개를 의존하는 역습, 뻥축구만 구사하던 당대 영국 팀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독단적인 자세 때문에 전 소속팀인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선수들과 싸워 겨우 44일만에 경질되는 이례적인 기록을 쓰기도 했습니다.

 

" 전술이란 당신이 팀의 리듬을 망치고 싶을 때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제다. "

 

" 팀이 지는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꿈꾸는 것이 바로 전술 "

 

그러나 그는 선수들의 심리적 요인, 매니지먼팅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서 이적 협상에 겨우 10초 밖에 안걸렸다는 썰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언변술, 완벽한 선수단 장악력과 리빌딩 능력 등으로 그저그런팀을 우승 경쟁권으로 새단장시키는데 도가 텄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미 더비 카운티라는 2부 리그 팀을 승격한지 1시즌만에 1부 리그 우승으로 이끈 이력이 있는 그는 선수보는 안목이 특히 탁월해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스카우팅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전술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었던 클러프였지만 그럼에도 어떤 축구를 보는 시선이나 직관력만큼은 비상했는데, 첫 빅이어를 들었던 1979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주전 오른쪽 윙어이자 에이스였던 마틴 오닐이 부상으로 빠지자 스트라이커였던 트레버 프랜시스를 오른쪽 윙으로 기용했고 이 도박수는 딱 들어맞아 프랜시스의 1골로 1대0 승리에 성공, 심지어는 함부르크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앞두고 알려진 일화가 가관인데 선수단을 데리고 마요르카 휴양지에 놀러갔으며 전술에 대해서는 그냥 공격수인 존 로버트슨에게 패스하라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놀랍게 팀은 존 로버트슨의 결승골로 1대0 신승을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마치 겉보기에는 발전과 변화에 대해 보수적이고 심드렁한 감독인 것처럼 보이지만 화려한 언변술, 뛰어난 통찰력과 과감한 결단력을 가져 마치 FM 같은 게임에서나 가능해보이던 언더독의 반란을 실제 축구판에서 플레이하던 독보적인 매력의  브라이언 클러프에 대해 UEFA는 역대 최고의 감독 10인에 그를 뽑으며 이런 한줄평을 남겼습니다. 

 

축구계의 궁극적 인습 파괴자

" 시즌 목표? 당연히 1위지, 그 아래의 목표를 잡는 팀들도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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