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놀음인 축구판에서 포메이션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경기의 방향성, 팀의 성향, 게임의 템포가 상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근들어 포지션의 세분화가 더해지면서 더 이상 숫자상 포메이션만으로 어떤 한 팀의 전술을 전부 해부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포메이션은 모든 전략과 전술의 근간이 되며 절대적인 정답은 없고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계속해서 유행처럼 돌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론상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포메이션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 네덜란드 출신의 바르샤 레전드 감독, 요한 크루이프가 창안해낸 3-3-3-1 포메이션입니다.
'토탈 풋볼'을 정립한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크루이프는 감독이 되서도 그의 철학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후에 '크루이피즘'이라 불릴 철학을 내세우는데, 바로 점유율을 중요시하는 빠른 패스 축구였습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고, 골을 넣으려면 공이 있어야하고, 그럼 공을 우리가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골을 넣을 수 있는 찬스가 늘어나고 상대는 그 찬스를 놓친 상태로 수비만하는 확률이 늘어난다는 간단한 이치에서 그의 생각은 시작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점유를 공격으로 이어가려면 짧은 패스를 통해 공을 앞으로 전진시켜야 한다고 사색했고 좁은 공간과 짧은 거리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을 주고 받으려면 세명의 선수가 트라이앵글 형태로 포지셔닝을 해야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삼각형 구도를 가장 많이 이끌어낼 수 있는 형태의 포메이션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4-3-3에서 센터백 한명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올린 3-3-3-1입니다.
이 포메이션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며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최우선이겠습니다. 단순 머릿수로만 계산해도 중앙에 4명의 선수들이 위치하기 때문에 중원을 장악하기 유리하며 볼을 탈취당했을 때의 재압박에 있어서도 공간을 좁게 형성하기에 용이하게 됩니다. 또한 최전방 톱 역시도 골에 집중하는 움직임보다는 볼순환을 위해 아래로 내려오는 펄스나인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그렇게 생긴 중앙의 공간을 양쪽 윙어들이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움직임을 통해 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삼각 패스 워크를 이용한 빠른 공격전개도 가능해 단순히 지공상황 뿐만 아니라 역습 상황에서도 스피디한 공격 전환으로 골문을 위협하는 것 역시도 가능케했습니다. 실제로 크루이프의 90년대 바르샤 외에도 그의 제자인 과르디올라가 바르샤, 뮌헨, 맨시티에서 썼던 전술이며, 비엘사 감독이 빌바오와 리즈에서 반향을 일으킬 당시에도,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2연속으로 잡고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삼파올리의 칠레 대표팀도 3-3-3-1 포메이션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장점들만 놓고본다면 말 그대로 공격, 수비, 점유에서 모두 완벽해 보이는 포메이션이지만 일단 이 포메이션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선수들에게 요구해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힙니다. 기본적으로 볼을 오래 소유하고 있어야하는 전술이기에 공격을 하려 라인을 높이면 뒷공간에 대한 부담이 생길뿐더러 미드필더들 뿐만 아니라 모든 필드 플레이어, 아니 골키퍼에게까지 패스, 탈압박 등의 발밑 능력을 요구하며,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서 90분 내내 압박을 시도해야하는 체력 역시도 필수덕목입니다. 또한 상대가 중원에서 압박을 풀어낼 능력을 어느정도 갖춘 뒤 양쪽 윙어들을 측면으로 벌려서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는 카운터 어택에 특히나 취약하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양쪽 측면 미드필더들에게는 더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해 과부화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0/11 시즌 무적의 바르셀로나가 국왕컵 결승에서 레알의 철퇴 축구에 패배한 유명한 경기도 있습니다.
이런 큰 리스크들과 필요조건 때문에 앞에 언급한 팀들 역시도 이 포메이션을 절대 주력으로 이용하지 않으며 중요 경기에서의 포인트 전술이나 조금 변형을 시킨 비슷한 스탠스의 포메이션을 운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 변형 백3를 이용한 3-2, 2-3 후방 빌드업 등의 시도 역시도 후방에 트라이앵글 형태를 만들어 안정적인 패스 워크를 형성하려는데서 기인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크루이프가 남긴 유산은 이렇게 현대 축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팀에서 골키퍼는 첫번째 공격수이고, 골잡이는 첫번째 수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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