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대표
< Republic of Korea >
홈구장:서울월드컵경기장
최다 득점자:차범근 58골
최다 출장자:홍명보 137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4강 1회(2002)
AFC 아시안컵 우승 2회 (1956, 1960)
역대 최고의 선수:손흥민
주장:홍명보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이운재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73년 4월 26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국대 커리어
1994년 ~ 2010년
A매치 132경기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07 AFC 아시안컵 3위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뚱뚱해보이는 덩치에도 날렵한 다이빙, 똑똑한 위치선정, 수비진을 다잡는 통솔력, K리그 승부차기 승률이 90퍼가 넘어가는 역대급 페널티 선방 능력으로 안정감을 연일 선보일 수 있었고 이런 '거미손' 이운재는,
청백적 유니폼을 입고서 10년 넘게 활약하면서 구단 최전성기를 주도, 4차례의 K리그 우승, 2001/02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을 진두지휘한 바 있습니다. 또 본인은 4회의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8년에는 전무후무한 골키퍼로 리그 MVP. 09 시즌에는 FA컵 MVP, 2004년에는 라이벌인던 김병지의 승부차기를 막아내고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습니다.
한국 국대에서는 라이벌로 평가받던 김병지를 밀어내고 주전자리를 꿰찼고 2000년대의 골문을 책임지며 2002년 월드컵 4강을 확정짓는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와 2007년 아시안컵에서도 승부차기 하드캐리로 3위로 멱살잡고 대표팀을 올린 활약 등을 남겼습니다. 또한 A매치에서 132경기를 출장해 전세계 A매치 역사상 골키퍼 출장 순위 4위에 올라있기도 한 그입니다.
라이트백
박경훈
포지션:RB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61년 1월 19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국대 커리어
1981년 ~ 1990년
A매치 93경기 1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대한민국 축구의 측면 수비수 최초로 공격이라는 문물을 받아들인 '오버래핑의 창시자'. 키는 작아도 미친 활동량과 한혈마 같은 체력, 100m를 11초에 끊는 재빠른 발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측면을 커버했으며 특히 발기술이 워낙 유려해 그의 진가는 공격 가담시에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트백 외에도 리베로,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가능하던 박경훈은,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3번의 K리그 우승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KFA 올해의 팀에 6번 들어간 이력이 있는 그는 1988년 리그 우승 당시 본인이 거부했던 논란이 있긴 했지만 MVP를 수상할 정도로 국내 최고 수준의 수비였고,
대표팀에서도 인상 깊은 활약으로 2차례의 월드컵 본선 진출,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습니다.
센터백
홍명보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1cm
생년월일:1969년 2월 12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2년
A매치 136경기 10골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한국 축구의 '영원한 리베로'로 남아있는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드넓은 시야, 정교한 롱패스, 기습적인 전진 플레이를 바탕으로한 후방 빌드업, 호쾌한 중거리 슛팅 한방이 최대 장점이던 그는 피지컬이나 스피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우수한 예측력과 판단력으로 커팅, 커버링하는 수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홍명보는 K 리그의 포항과 J 리그의 가시와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각 1번의 리그, FA컵,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1992년 데뷔 시즌 최초로 MVP를 수상, 또 K 리그 베스트 11에 5차례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는 10년 넘게 붙박이로 뛰며 4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완장을 차고 뛰어난 폼으로 4강 신화를 써내려갔고 그의 활약상을 인정해 FIFA는 브론즈볼과 대회 올스타팀에 그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특히 스페인전, 4강 진출을 확정짓는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활짝 웃는 장면은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중 명장면입니다.
센터백
김민재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90cm
생년월일:1996년 11월 15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국대 커리어
2017년 ~
A매치 63경기 4골
2020년대를 대표할 대한민국 축구가 낳은 역대급 괴물 센터백. 강골의 몸싸움과 짐승같은 스피드, 지능적인 인터셉팅과 태클까지 선보이면서도 안정적인 빌드업까지 보일 수 있는 그는 이러한 기량들을 통해 아시아인 수비수, 그것도 센터백으로서 유럽 최상위 리그를 씹어먹는 전례없는 활약을 해냈습니다.
전북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2연속 우승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간 김민재는 이런 탈아시아급 활약을 인정받아 베이징 궈안을 거쳐 터키의 페네르바체로 이적해서도 2021/22 시즌 리그 준우승과 올해의 팀에도 선정, 다음 시즌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서도 리그 최우수 수비수 타이틀을 달고서 마라도나 시대 이후 33년만인 스쿠데토를 품에 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대표팀에서의 김민재도 201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 다음해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본인은 대회 올스타팀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이영표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76cm
생년월일:1977년 4월 23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1999년 ~ 2011년
A매치 127경기 5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11 AFC 아시안컵 3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풀백. '헛다리 짚기'로 대표되는 드리블 재간과 지치지 않는 체력, 우수한 축구 IQ로 약점인 힘과 스피드를 커버해내며 상대를 괴롭힐 수 있었던 이영표는,
월드컵에서의 대활약으로 박지성과 함께 히딩크를 따라 PSV로 진출해 3차례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에 오르는 돌풍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후에 그 활약을 바탕으로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 그 곳에서도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127경기 출장으로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3위인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 축구의 좌측면을 책임져줬고 2차례의 아시안컵에서 3위를 달성, 특히나 2002년 월드컵에서는 한국의 16강과 8강행을 확정짓는 결정직인 2차레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4강 신화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
포지션:DM
국적:대한민국
신장:189cm
생년월일:1989년 1월 24일
주요 클럽:스완지 시티 AFC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110경기 10골
2012 하계 올림픽 동메달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종종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선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2010년대 대표팀의 기둥. 안정적인 볼키핑과 조율 능력, 좌우로 벌려주는 환상적인 롱패스와 수비벽을 허무는 키패스 능력이 최대 장점이었던 기성용은,
서울에서 데뷔해 셀틱 FC에서 각 1차례의 리그와 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EPL 무대로 넘어온 이후 스완지, 선덜랜드, 뉴캐슬에 몸담았습니다. 특히 스완지 시티 소속으로 2012/13 시즌에는 리그컵 우승에 성공했고 2014/15 시즌에는 스완지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으며 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KFA 올해의 선수로도 3회 뽑힌 기성용은 2010년대 중후반 붉은 악마 군단의 필수불가결 핵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면서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 대회 베스트 11 수준의 폼을 펼쳤고 2012년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거는 값진 성적을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박지성
포지션:RM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81년 3월 30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2000년 ~ 2011년
A매치 100경기 1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2011 AFC 아시안컵 3위
아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 '두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대변하듯 미친 활동량과 체력, 뛰어난 전술 이해도와 중요할 때 터지는 영웅 본능, 특히 어떠한 악조건에도 빛나는 투지와 헌신적인 플레이로 전국민에게 사랑받았던 선수였습니다.
PSV의 네덜란드 리그 독주와 챔스 4강 진출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눈에 띄어 올드 트래포드행을 택하며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으며 그는 본인이 가진 능력들로는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의 선구자로서 맹활약, 당시 세계 최고의 팀이던 맨유에서 조연으로서 수년간 뛰면서 13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에 공헌, 많은 후배들에게 유럽 리그 진출의 꿈이라는 발판을 만들어준 바 있습니다.
한편 클럽 커리어와는 다르게 국대에서는 주연으로서 손흥민, 차범근도 못다가갈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2002년 월드컵의 4강, 2010년 월드컵의 첫 원정 16강 진출 등의 금자탑을 쌓았고 그 과정에서 박지성은 서로 다른 3개의 월드컵에서 1골씩 기록, 월드컵 본선 4경기 MOM 선정 등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김주성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66년 1월 17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1985년 ~ 1996년
A매치 76경기 14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당대 아시아의 슈퍼 스타.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휘날리며 미친듯이 뛰어다녀 '삼손' 혹은 '야생마'로 불리웠던 김주성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능력으로 윙어로 축구를 시작했으며 패스 센스까지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성기를 보냈고 집념의 수비력으로 말년에는 리베로까지 봤었던 만능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습니다.
후에 분데스리가의 보훔으로 이적해 뛴 것만 제외하면 그는 대우 로얄즈 소속으로 모든 커리어를 보내며 3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리그컵을 주도, 더불어 말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리베로로 뛰면서 김주성은 최초로 K리그에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모두 올스타에 들었던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위대한 활약상에 대우 로얄즈는 리그 최초로 김주성의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그는 특히 차붐이 은퇴한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로 3번의 월드컵에 본선 진출했으며 1988년 아시안컵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회 MVP에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1989년부터 91년까지 받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3연속 제패는 아직까지도 안깨진 불멸의 기록입니다.
레프트 윙어
손흥민
포지션:LM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92년 7월 8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11경기 37골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차범근이라는 아성을 넘어선 아시아 역대 최고이자 2010년대 중후반 ~ 2020년대 초반 PL의 간판 윙포워드 중 한명. 가공할 만한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 좌우를 가리지않고 위협적으로 골대에 꽂히는 양발 감아차기 능력, 우수한 결정력과 오프더볼 움직임까지 갖춘 그는 독일에서 영국 무대로 옮긴 후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며 토트넘의 2010년대 부흥을 함께 했습니다.
특히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해리 케인과의 공격 듀오로 PL에서 수많을 골을 기록하며 듀오 최다골을 기록하기도 했던 손흥민은 개인으로도 아시아 최초의 기록들을 수많이 쌓아갔는데, PL 이달의 선수상 3회, 16/17 시즌 FA컵 득점왕, 20/21 시즌 PFA 올해의 팀 선정, 21/22 시즌 PL 득점왕, 푸스카스상 수상, 빅리그 통산 150골 돌파, 2022년 발롱도르 11위 등의 그의 등장 전까지는 상상치도 못할 믿기 힘든 기록들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쏘니는 태극기를 위해 뛰면서도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2022년 월드컵 16강 진출, 2018년 월드컵 독일전 골 등 우리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이회택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67cm
생년월일:1946년 10월 11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7년
A매치 82경기 21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아시아의 표범'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치던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기린아. 중앙 공격수치고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이를 커버하는 짐승과도 같은 폭발적인 스피드, 탄탄한 떡대, 번뜩이는 연계와 번개같은 슛팅 특히 시그니처 기술인 발리 슛팅 등을 잘 구사했다고 전해지는 이회택이었습니다.
아시아를 호령했던 이회택은 양지 축구단과 포항제철 축구단에서 뛰며 FA컵, K리그의 전신인 대회에서 1회씩 우승을 거두었고 태극 전사 유니폼을 입고서는 1970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72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비롯한 크고 작은 우승 등을 이루었습니다.
KFA 올해의 팀 5회 선정의 그는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득점을 했을 정도이니 그 위상은 유럽 명문 구단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묀헨글라트바흐와 벤피카가 실제로 관심을 표했으나 정작 본인은 유럽 리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거절했다고 합니다.
스트라이커
차범근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9cm
생년월일:1953년 5월 22일
주요 클럽: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7년
A매치 136경기 58골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지던 유럽 진출의 장벽을 깨고 세계 최고였던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풍미했던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은 아시아 수준을 넘어선 강철 피지컬과 괴물같은 스피드를 이용한 치달 능력, 양발의 자비없는 슛팅력, 수준급의 연계 플레이와 테크닉, 헤딩 능력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분데스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한명으로 독일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갈색 폭격기'로 불리은 차붐은 군복무 때문에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독일행 비행기를 탔음에도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모두 구단 역사에 남을 역대급 남겼는데, 전자 소속으로 WK를 키커로부터 받는 활약으로 UEFA컵 우승과 DFB 포칼 우승을 이끌었고 후에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는 하위권이던 팀을 중상위권으로 올리며 87/88 시즌 한번 더 UEFA컵에서 우승, 결승전에서는 골까지 넣었습니다. 2번의 키커 선정 올해의 팀에 들어가기도 한 그는,
국대에서도 겨우 24세로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자일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굴려졌으며 전설적인 말레이시아전 6분 해트트릭 및 크고 작은 5개 대회 우승을 견인, 추가로 대표팀 역대 최다득점자(58골)이자 최다 출장자(136경기)이기까지 합니다.
감독
거스 히딩크
포지션:MANAGER
국적:네덜란드
생년월일:1946년 11월 8일
국대 커리어
2001년 ~ 2002년
2002 FIFA 월드컵 4강
네덜란드 축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천재적인 안목과 완벽에 가까운 선수단 장악을 통해 비교적 약팀도 우승 후보로 변모시키던 기적을 펼치던 거스 히딩크는 대한민국 감독직의 지휘봉을 잡고 역대급 성적을 이끌어내 아직까지도 국민들이 그리워하는 2002년을 국가 대축제의 해로 만든 바 있습니다.
특히 긴 합숙 기간과 서열 문화를 철폐시키는 수평 문화를 입혀 단단한 조직력으로 응집시킨 그의 지휘 하에 자랑스런 태극 전사들은 월드컵 본선 첫 승리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내노라하는 축구 강국들을 상대로 승리의 깃발을 들어올려 4강까지 안착하는 대이변을 만들었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김병지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70년 5월 12일
주요 클럽:울산 현대
국대 커리어
1995년 ~ 2008년
A매치 61경기
2002 FIFA 월드컵 4강
대한민국 프로 축구 리그 K리그1 제일의 키퍼. 그리 크지않은 키에도 우수한 반사신경과 똑똑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세이브를 연출하던 김병지는 특유의 꽁지머리와 90년대 여러 괴짜 골키퍼들에 영향을 받은 듯 빠른발로 적극적으로 전진 수비를 펼치고 공격을 시도하는 독특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려 40대 중반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간 우수한 자기관리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울산, 포항, 서울, 경남, 전남 등의 팀들을 거치면서 리그 정상급 활약으로 1차례의 리그와 3차례의 리그컵, 4차례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 더불어 K리그 역대 최다 출장(706경기), K리그 역대 최다 클린시트(229경기), K리그 최고령 출전(45세) 등의 진기록으로 철인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김병지는 이운재와도 국가대표팀 No.1 자리를 두고 경쟁했으며 후에는 주전 자리를 내주긴했으나 1998년 월드컵에서는 흑역사를 남긴 대표팀에서도 빛나는 활약, 네덜란드전에선 5실점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12번의 유효 슛팅을 막아내며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라이트백
송종국
포지션:R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78년 3월 9일
주요 클럽: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국대 커리어
2000년 ~ 2007년
A매치 60경기 3골
2002 FIFA 월드컵 4강
2007 AFC 아시안컵 3위
고점의 임팩트 만큼은 유럽 리그를 상회하던 퍼포먼스를 펼쳤던 라이트백. 뛰어난 대인 수비와 미친 스태미너, 성실한 활동량과 더불어 날카로운 공격 가담과 크로스 능력이 눈에 띄었던 선수로,
송종국은 월드컵이 끝나고 이적했던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말그대로 날아다니며 챔스에서 혼자 유벤투스를 탈탈 터는 인생경기를 찍는 등 약 2시즌간은 독보적인 폼을 보인 바 있습니다. 허나 후에는 여러가지 문제로 그 폼을 잃었고 그래도 K리그로 돌아와 수원 소속으로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도 했습니다.
히딩크호의 황태자라고 까지 불리던 그는 2002년 월드컵에서 교체없는 전경기 출장으로 꾸준히 대표팀의 우측면을 지켜 4강행을 도왔으며 특히 16강 진출을 확정짓게 만든 포르투갈전에서 당대 최고의 윙어 루이스 피구를 완벽히 묶은 게임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경기입니다.
센터백
김정남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43년 1월 28일
주요 클럽:한국외환은행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3년
A매치 66경기 0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한명. 빠른 발을 이용한 영리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 발류의 공격 가담 등이 장점인 스위퍼로 특히 김호와 스위퍼 - 스토퍼 조합의 훌륭한 케미를 발산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3차례의 KFA 올해의 팀, 1971년 KFA 올해의 선수로 뽑힌 김정남은 2번의 컵 대회 우승과 막강한 멤버들이 강제로 모여졌던 양지 축구단 소속으로 1969년 아챔의 전신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그의 수비력에 힘입은 대표팀은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더해서 2010년, 축구 잡지 베스트 일레븐이 뽑은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에 홍명보와 같이 센터백으로 선정된 김정남이었습니다.
센터백
정용환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60년 2월 10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1983년 ~ 1993년
A매치 86경기 3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홍명보 등장 이전까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수비로 여겨지던 인물. 근련 운동은 축구 선수에게 해가 된다는 기성 세대의 잘못된 지도에도 개인 훈련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적극 시도해 얻게 된 초인적인 점프 능력과 철인의 대인 방어력으로 거구의 외국 공격수들 상대로 전혀 안밀렸던 정용환은 이런 성실한 태도와 노력으로 K 리그 원탑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대우 로얄즈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뛴 그는 당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멤버들을 지휘하며 3번의 K리그와 198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더해서 개인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3번의 리그 베스트 11, 1991 시즌의 MVP 등을 이뤘냈습니다. 이런 정용환은 국대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가 2차례의 월드컵 본선 진출, 1988 아시안컵에서 올스타팀에 드는 모습으로 팀을 결승에 올린 바 있습니다.
레프트백
하석주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68년 2월 20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1년
A매치 94경기 2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윙백으로 한정한다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로 불릴 만한 사나이.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탁월한 킥능력, 첨예한 크로스와 직접 프리킥 능력과 뛰어난 스피드, 드리블 전진 능력을 가져 레프트 윙어부터 측면 미드필더, 레프트백까지 보던 하석주였습니다.
그는 1990년 부산에서 컵 대회에서 득점왕, MVP, 우승을 따내는 화려한 데뷔를 알렸고 후에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며 대우 로얄즈의 레전드로서 1997년의 전설적인 3관왕을 비롯해 2번의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대에서도 그는 무려 23골을 넣었으며 1998년 월드컵 멕시코전 당시에 사상 최초로 선제골을 그것도 프리킥으로 성공시키는 역사를 작성했으나 얼마안가 잘못된 백태클로 퇴장당했고 이는 결국 역전패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허정무
포지션:DM
국적:대한민국
신장:174cm
생년월일:1953년 12월 19일
주요 클럽:PSV 에인트호번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6년
A매치 101경기 30골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 평가해도 손색 없는 인물. 도저히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악바리 근성, 터프한 태클 능력 등을 겸비했던 허정무는 본래 공격수로 축구를 시작한 이유 때문인지 본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 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풀백까지 소화하는 만능맨이었습니다.
'진돗개'라는 이명으로 통했던 그는 후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 1호로 진출해 3시즌간 주전급으로 뛰면서 81/82 시즌의 리그 준우승을 이루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84년 KFA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팀에도 무려 7차례 뽑혔던 허정무는,
78년, 86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6년에는 32년만인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짓는 지역 예선 결승골을 넣은 바 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으려다 '태권 축구'를 선보이기도 하거나 반대로 리그에선 요한 크루이프를 막다 팔꿈치에 찍혀 코가 부러지기도 한 웃픈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조광래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71cm
생년월일:1954년 3월 19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1974년 ~ 1986년
A매치 100경기 15골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당대 대표팀의 에이스 노릇을 하던 1980년대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 체력과 피지컬은 그저 그랬던 조광래였지만 탁월한 시야와 자로 잰듯한 패스 능력으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악착같은 수비 능력까지 갖추기도 했습니다.
그는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보내며 정해원, 정용환, 박창선 등의 국가대표급 멤버들과 뛰면서 2번의 리그 우승, 1986년의 아챔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더해서 1981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 83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 KFA 올해의 팀에는 무려 8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위엄을 보인 바 있습니다.
특히 대표팀에서는 10년간 독보적인 핵심으로 활약했던 조광래는 1980년 아시안컵 준우승과 86년 아시안 게임 결승에선 당대 아시아 최고의 팀 사우디를 완벽히 요리하며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이러한 활약에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베르더 브레멘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유상철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71년 10월 18일
주요 클럽:울산 현대 호랑이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5년
A매치 124경기 18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한국의 굴리트'라 불린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천후 플레이어. 필드 위를 망라하는 활동량, 강철과도 같은 운동 능력, 대포알 중거리 슛팅도 꽂을 수 있었던 그는 특유의 유틸리티 덕에 정말로 골키퍼 빼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유비' 유상철은 울산 현대 호랑이 소속으로 총 9년간 리그 최상위 플레이어로 군림하며 2번의 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94년엔 데뷔하자마자 수비수로, 98년엔 득점왕까지 따내며 공미 프리롤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2002년엔 공격수로 총 3번 리그 베스트 11 들어갔으며 레코드는 K리그에서 유상철과 김주성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태극 전사로도 그는 팀의 여러 포지션의 공백을 땜빵하며 헌신했고 특히 히딩크호의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해 중앙 미드필더로서 인상깊은 활약을 남겨 홍명보와 함께 아시아 최초로 공식적인 대회 베스트 11에 뽑히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최순호
포지션:AM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62년 1월 10일
주요 클럽:포항제철 아톰즈
국대 커리어
1980년 ~ 1991년
A매치 96경기 30골
1980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유벤투스 FC가 알아봤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희대의 재능. 처진 공격수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최순호는 우월한 신체조건과 부드러운 터치, 트래핑, 드리블로 해외파 수비수들을 상대로도 볼을 안정적으로 키핑할 수 있었으며 아군과 볼의 흐름을 캐치해 킬패스를 찔러주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워풀한 슛팅마저 장착한 이 '아시아의 호랑이'는 포항제철과 럭키금성 소속으로 뛰며 4차례의 리그 우승을 주도, KFA 올해의 팀에 4번, KFA 올해의 선수에 1990년 선정된 바 있습니다.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단 최순호는 1980년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 7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86년, 90년 월드컵에서도 눈에 띄는 퍼포먼스로 1골 3도움을 기록해 대한민국 선수로는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탈아시아급 기량은 유럽에서도 주목했고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그의 영입에 심여를 기울였을 정도였으나 당시 병역법 때문에 유럽 진출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최정민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30년 8월 30일
주요 클럽:특무부대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53년 ~ 1961년
A매치 47경기 22골
1954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56 AFC 아시안컵 우승
1958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60 AFC 아시안컵 우승
이회택, 차범근,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 명 공격수 계보의 시작. 1950년대 ~ 60년대 아시아권을 호령했던 최정민은 그 당시로써는 훌륭한 신체 조건과 100m를 11초만에 주파하는 스피드, 날카로운 슛팅 등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고 전해집니다.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 옹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수십차례 골망을 흔들며 한국을 아시아의 강호로 만든 엄청난 업적을들 쌓아올렸는데, 1954년 지역예선 한일전에서 일본을 격파하며 아시아 국가 최초로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으며 1956년 초대 아시안컵과 60년 차기 대회까지 우승, 아시안컵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54년, 58년 아시안 게임 2연속 준우승에도 크게 기여한 그는 여담으로 한일전 역대 최다골 기록(6골)의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스트라이커
황선홍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68년 7월 14일
주요 클럽:포항 스틸러스
국대 커리어
1988년 ~ 2002년
A매치 103경기 50골
1988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FIFA 월드컵 4위
다이너스티컵 우승 1회
10년 넘게 대한민국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진 만능 스트라이커. 준수한 신체조건과 굴지의 슛팅 기술, 명석한 연계 능력과 박스 안에서의 침착함으로 수많은 골을 생성하던 '황새' 황선홍은,
커리어 동안 2번이나 십자인대가 파열됨에도 K리그 역대 최고의 용병 라데와의 투톱으로 리그컵 우승에 성공했으며 후에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연패를 이끄는 포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2연속 아챔 득점왕, 리그 8연속 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고 1995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들어갔던 황선홍은 후에 일본의 세레조 오사카로 이적해 한국인 최초로 J 리그 득점왕을 따내는 대활약을 해냈습니다.
14년간 조국의 품에서 뛴 그는 차범근에 이어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순위 2위에 안착해 있으며 특히 한일전에 강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1994 월드컵은 본인의 부진, 98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하는 불운을 겪음에도 35살의 나이에 참가한 한일 월드컵, 첫경기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월드컵 4강 신화에 기여하며 그 한을 풀었습니다.
수석 코치
김용식
포지션:HEAD COACH
국적:대한민국
생년월일:1910년 7월 25일
국대 커리어
1953년, 1954년, 1959년, 1960년 ~ 1961년, 1969년
1960 AFC 아시안컵 우승
식민 지배와 전쟁에도 기어이 축구라는 희망의 씨앗을 태풍 속에서 품어냈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인 중 한명. 축구는 둘째 치고 입에 풀칠 하기 바뻤던 당대 제로에 가까운 인프라에도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후진 양성에 힘썼던 김용식 선생은,
축구화와 선수단복도 맞추기 힘들었던 당시 대표팀을 이끌고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둬 1954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으며 2년 뒤 아시안컵에서는 우승에 성공하며 아직까지도 마지막인 아시안컵 트로피를 품에 안았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쌓은 그의 정신은 월드컵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에게 남긴 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다 져도 좋다. 그러나 한 골만이라도 넣자. 그래야만 전쟁 때문에 헐벗고 힘든 우리 국민들 조금이라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겠나?"
3) 리저브 베스트 11
Reserve Best 11
골키퍼
이세연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75cm
생년월일:1945년 7월 11일
주요 클럽:서울신탁은행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3년
A매치 81경기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세기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는 한국의 레프 야신. 뛰어난 선방력과 키핑은 물론 상대 공격수와 의도적인 신체접촉, 트래시토크를 즐겨해 '아시아의 폭군'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이세연은 70년대 한국 축구의 뛰어난 스타였으며 실업 리그의 양지 축구단과 신탁은행 소속으로 맹활약을 펼쳤고 1969년에는 아챔 전신인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이뤘습니다.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도 1970년 아시안겜 금메달과 72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내한한 산투스 FC와의 친선경기에서 펠레의 슛을 멋지게 쳐냈던 장면은 아직도 올드비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합니다.
라이트백
차두리
포지션:RB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80년 7월 25일
주요 클럽:FC 서울
국대 커리어
2001년 ~ 2015년
A매치 76경기 4골
2002 FIFA 월드컵 4강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강철같던 하드웨어를 보유했었던 2010년대 대표팀의 믿음직한 붙박이 라이트백. 차범근이라는 레전드의 DNA는 못속이는 폭발력을 가진 스피드와 미친 피지컬에 '차미네이터'라는 인간미 없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포워드로는 부족한 기본기를 항상 지적받았으나 클롭 감독 아래서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 후 더 큰 빛을 봤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여러팀을 돌아다니다 셀틱을 거쳐 서울에 돌아온 차두리는 리그를 씹어먹으며 2013년 챔스 준우승과 15년 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14 시즌과 15 시즌 2연속 리그 올해의 팀에 뽑힌 그는 국가대표로도 2010년 월드컵 16강, 2011년 아시안컵 3위,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 당시에 모두 뛰어난 활약을 남긴 바 있으며 특히 마지막 대회 8강 우즈벡전에서 보여준 70m 드리블 어시스트는 정말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센터백
김호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77cm
생년월일:1944년 11월 24일
주요 클럽:제일모직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65년 ~ 1973년
A매치 84경기 0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김정남과 함께 한국 축구사에 남을 수비 파트너십을 선보였던 일류급 센터백. 원래는 빠른 발을 가져 라이트백으로 뛰었으나 김용식 감독 아래서 김정남과 같이 센터백 듀오를 보게 된 그는 장기이던 헌신 있는 수비 스타일과 송곳 같은 슬라이딩 태클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K리그 창단 이전, 실업 리그에서 뛰며 1969년에는 우수한 모습으로 KFA 올해의 선수상까지 탔던 김호는 호랑이 군단의 믿음직한 방패로 상대 공격수들을 처단하면서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년 뒤 아시안컵에서는 결승까지 오른 바 있습니다.
센터백
김영권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5cm
생년월일:1990년 2월 27일
주요 클럽:광저우 에버그란데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11경기 7골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탑레벨의 중앙 수비수. 준수한 주력, 매우 뛰어난 왼발을 이용한 빌드업 능력을 가졌던 지적받던 수비력도 뛰어난 각좁히기, 맹렬한 태클 등 후에는 비약적으로 상승했었습니다.
그는 당시 아시아의 맨시티로 불리던 광저우에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무한 신임을 받아 6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아챔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5년의 경우 챔스 올해의 팀과 함께 KFA 올해의 선수까지 들어갔습니다. 이후 일본을 거쳐 울산에서도 리그 2연속 우승을 견인하고 23 시즌 리그 MVP까지 받은 김영권은,
국대에서도 한 때 자동문으로 불리며 안좋은 폼만 보였지만 2018년 월드컵에서는 각성하며 통곡의 벽을 보였고 독일전 승리의 결정적 골을 기록, 다음 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전 결정적인 골로 16강행에 아주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레프트백
김태영
포지션:LB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70년 11월 8일
주요 클럽:전남 드래곤즈
국대 커리어
1992년 ~ 2004년
A매치 105경기 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맹활약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명. 겁없는 파이터 기질로 공격수를 사냥하는 스타일 때문에 미국 원주민 부족인 '아파치'라는 이명도 얻었던 김태영은 빠른 발과 양발 사용 능력으로 인해 윙백까지 볼 수 있었던 보물같은 자원이기도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고향팀이자 신생팀인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모든 커리어를 보낸 그는 부진하던 팀 상황에도 끝까지 남아 1997년 구단 최초의 FA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99 시즌의 위너스컵 준우승, 02년과 03년에 본인은 K리그 베스트 11에까지 드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1998 WC와 02 WC에 참가했던 김태영은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 최진철, 홍명보와 백3 라인을 구성해 조국의 4위라는 성적을 이끌었으며 특히 16강에서 코뼈가 뿌러지는 부상에도 다음 경기에서 타이거 마스크를 끼고 출전을 감행한 투혼은 곧 그를 상징하는 아이덴티티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
포지션:DM
국적:대한민국
신장:183cm
생년월일:1977년 5월 1일
주요 클럽:전남 드래곤즈
국대 커리어
1998년 ~ 2013년
A매치 98경기 2골
2002 FIFA 월드컵 4강
'진공 청소기'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대한민국 역대 최고 수준의 수비 전문 미드필더. 뛰어난 지구력과 활동량, 대인 마크 능력을 바탕으로 필드를 휩쓸고 다녔고 공을 따내오는 수비 능력 만큼은 한국 축구사에서도 손에 꼽았으며 센스있게 전진 패스를 찌르는 능력 역시 탁월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전남에서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쳤었던 그는 2003년에는 FA컵 준우승과 함께 리그 베스트 11에 들기도 했으며 이후 수원에서도 맹활약 후에 인천, 전북, 교토를 거쳐서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3차례 월드컵 무대를 밟은 이런 김남일의 대체 불가 존재감은 2002년 월드컵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으며 유상철과 중원을 장악하며 4강까지 오르는데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박창선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54년 2월 2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1979년 ~ 1986년
A매치 32경기 8골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
FIFA 월드컵 본선 대한민국 제 1호골의 주인공. 박창선은 양발로 뿌리는 정확한 패스와 슛팅 능력, 감각적인 드리블 탈압박, 저돌적인 돌파 등으로 당대 한국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인물입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전성기를 뒤늦게 봤었던 그는 1983년 포항 소속으로 리그 도움왕과 베스트 11에 들었고 대우로 이적한 다음해, 리그 MVP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KFA 올해의 팀 3회 선정에 빛나는 그는 1986년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월드컵 무대에 들어섰고 아르헨티나전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폼으로 FIFA가 선정한 세계 올스타에 들기도 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구자철
포지션:CM
국적:대한민국
신장:184cm
생년월일:1989년 2월 27일
주요 클럽:FC 아우크스부르크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76경기 19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10년 가까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었던 21세기 한국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화려한 볼터치 능력과 탈압박, 감각적인 찬스 메이킹 능력, 많은 활동량과 2선 침투로 골까지 집어넣던 그는,
어린 나이에 K리그를 씹어먹는 모습으로 제주를 리그 2위에 올려놓은 뒤 분데스리가로 진출, 볼프스부르크와 마인츠를 거쳐 클럽 레코드로 이적한 아우쿠스부르크에서는 정말로 구단 역대 베스트 XI에 들어갈 만한 활약을 보이며 하위권이던 팀의 호성적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2015/16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키커 랑리스테 선정 공격형 미드필더 5위의 평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도 구자철은 2011년 아시안컵에서 5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1년 뒤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참가했고 3.4위전 골을 비롯한 뛰어난 활약으로 동메달을 목에 거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라이트 윙어
이청용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80cm
생년월일:1988년 7월 2일
주요 클럽:볼턴 원더러스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89경기 9골
2011 AFC 아시안컵 3위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 박지성 만큼이나 뛰어난 활약상을 남겼던 프리미어 리거. 부드러운 볼터치와 개인 기술, 지능적인 연계 플레이와 재빠른 드리블 돌파로 전성기를 보냈었던 윙포워드 이청용은,
기성용과 쌍용 듀오로 어린 나이에 서울을 먹여살리며 2009년 결국 EPL의 볼턴 원더러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바로 해당시즌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미친 활약상으로 공격을 이끌어 갔습니다. 하지만 11/12 시즌을 앞두고 살인 태클을 당했고 이청용의 전성기 폼은 이렇게 끝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길었던 유럽 생활을 마치고 울산에서는 2020년의 아챔 우승, 2연속 리그 우승과 22시즌에는 MVP까지 수상하는 저력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는 붉은 악마의 응원 아래 2010년 월드컵에서 정점의 모습으로 2골을 기록, 세계 여러 언론으로부터 16강 진출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은 바 있습니다.
레프트 윙어
설기현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87cm
생년월일:1979년 2월 4일
주요 클럽:RSC 안데를레흐트
국대 커리어
2000년 ~ 2009년
A매치 82경기 19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2 FIFA 월드컵 4강
유럽 리그에서도 통했던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한 윙포워드. 탄탄한 체격과 큰 키, 빠른 스피드와 양발에서 올리는 정확한 크로스, 스나이핑 슛팅력과 시그니처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슛페인팅을 보여주었던 설기현은 히딩크로부터 유일하게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몸싸움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는 선수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명문인 안데를레흐트로 이적 후에 미친 활약상을 이어가면서 한국 최초의 챔피언스 리거이자 발롱도르 후보 선정된 바 있으며 리그 우승을 이끈 후에는 EPL로 넘어가 레딩 소속으로 2006/07 시즌 파워 랭킹 11위까지 오르는 최고의 폼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감독과의 마찰, 특유의 고집으로 인해 커리어의 내리막을 맛봤고 K리그에서는 최악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2번의 월드컵에 참가, 2002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의 발판이 된 후반의 기적적 동점골을 넣은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안정환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78cm
생년월일:1976년 1월 27일
주요 클럽:부산 대우 로얄즈
국대 커리어
2001년 ~ 2012년
A매치 71경기 17골
2002 FIFA 월드컵 4강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축구의 최전성기를 대표했던 판타지스타. '테리우스','안느' 같이 고급스러운 별명처럼 움직임도 매우 우아했으며 아름다운 볼터치와 드리블 개인기 및 수준 높은 슛팅 기술, 비상한 공간 이해도 등으로 9.5번 자리에 빛이 났던 선수였습니다.
대우에서 데뷔하자마자 리그 베스트 11 선정, 다음 해인 1999년에는 사상 최초로 비우승팀 리그 MVP까지 따내는 활약으로 이탈리아의 페루자로 임대가는데 성공했지만 에이전트, 구단주의 기행, 월드컵 활약의 여파로 이탈리아에서 꾸준한 활약을 할 상황이 되지 못했고 결국 J리그로 팀을 옮겨 그곳에서 준수한 활약으로 3번의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도 2002년 월드컵 당시 16강 이탈리아를 좌절시키는 골든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하며 4강행이라는 기적의주역이었으며 06 월드컵에서도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사상 첫 월드컵 원정 승리를 주도, 손흥민, 박지성과 같이 3골로 월드컵 최다 득점자 자리에까지 앉아있으니 재능에 비해 운이 없었던 선수로 왜 항상 그가 언급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4) 선 외 7인
7 players other than selection
홍덕영
주 포지션:GK
국적:대한민국
신장:170cm
생년월일:1926년 5월 5일
주요 클럽:조선방직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47년 ~ 1954년
A매치 25경기
1954 아시안 게임 금메달
대한민국 명 골키퍼 계보의 시작. 크지 않은 신장에도 뛰어난 반사신경과 PK 선방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해지는 홍덕영은 우리나라 축구 골키퍼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1948년 하계 올림픽 16강에서 멕시코를 꺾는 대이변을 시작으로 한국 최고의 No.1 키퍼로 불리기 시작했던 그는 1954년 아시안 게임 은메달, 2년 뒤에는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한일전 승리로 이뤄냈으며 물론 본선에서는 세계의 벽을 체감하며 일찍이 탈락하고 말았지만 9골을 먹혔던 당대 최고의 팀 헝가리와의 경기에서는 오히려 뛰어난 활약으로 전세계 언론의 유수한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최진철
주 포지션:CB
국적:대한민국
신장:187cm
생년월일:1971년 3월 26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국대 커리어
1997년 ~ 2006년
A매치 65경기 4골
2002 FIFA 월드컵 4강
홍명보, 김태영과 같이 200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책임졌던 듬직이 센터백. 최대 장점은 장신을 이용한 헤더와 포스트플레이, 특히 헤딩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며 발이 느렸음에도 날카로운 태클과 영리한 위치선정으로 이를 커버했습니다.
대학 진학 후 상무로 군입대 때문에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로 데뷔했지만 최진철은 전북 현대의 방패로서 12년간 원클럽맨으로 헌신한 터에 클럽은 3차례의 FA컵 우승. 1차례의 리그컵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3차례의 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6년 아챔 우승 당시에는 MVP까지 선정되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2002 월드컵에서도 전설을 써내려갔던 최진철은 크리스티안 비에리,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을 상대로 준수한 수비력을 보였으며 다음 06 월드컵에서도 36세라는 최고참의 나이로 참가해 원정 첫승에 이바지한 바 있습니다.
박이천
주 포지션:LW
국적:대한민국
신장:168cm
생년월일:1947년 7월 26일
주요 클럽:국민은행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69년 ~ 1974년
A매치 89경기 36골
1970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2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 이회택과의 원투펀치로 대한민국 축구를 먹여살렸던 일류급 포워드. 육상 선수 출신 다운 어마무시한 주력과 더불어 칼같은 슛팅을 쏘던 박이천은 윙어와 센터 포워드를 전부 역임할 수 있었습니다.
실업 리그의 양지와 국민은행 소속으로 뛰며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2번의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1969년에는 아챔 준우승을 만들었습니다.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2년뒤 아시안컵에서는 차범근의 존재에 중앙으로 포지션을 옮겼고 결승전까지의 4경기 연속골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덕분에 1972년 KFA 올해의 선수로 뽑혔던 박이천은 KFA 올해의 팀에도 5년 연속 뽑힌 이력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서정원
주 포지션:RW
국적:대한민국
신장:173cm
생년월일:1970년 12월 17일
주요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1년
A매치 88경기 16골
'날쌘돌이'로 불리웠던 한국 축구 최고의 스피드스터. 100m를 11초대에 끊는 어마무시한 치달 능력과 부드러운 볼컨트롤 능력을 가져 측면을 후벼파는 클래식 윙어의 스타일과 중앙으로 들어와 득점을 따내는 역할 모두 훌륭히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본래 서정원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수준급의 유럽 빅클럽으로부터 관심을 받았으며 심지어 벤피카와는 이적 직전까지 갔으나 아쉽게 여러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쎄오는 친정팀 안양에 돌아오겠다는 합의를 어기고 라이벌 수원에서 미친 퍼포먼스로 2번의 리그 올해의 팀과 더불어 각 2차례의 리그 우승과 아챔 우승 당시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때문에 안양팬들을 뒷목을 잡게 해 K리그에서 제일 치열한 더비 슈퍼매치에 본격적으로 장작을 넣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말년에는 오스트리아 리그로 이적해 2년 연속으로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까지 받은 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1994년 월드컵 스페인전, 1대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린 바 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언급되는 대표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월드컵 골이기도 합니다.
조윤옥
주 포지션:CF
국적:대한민국
신장:172cm
생년월일:1940년 2월 25일
주요 클럽:대한중석 축구단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7년
A매치 55경기 25골
1960 AFC 아시안컵 우승
1962 아시안 게임 은메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아시안컵 우승을 견인했던 1960년대 아시아의 1티어 공격수.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로, 현대의 처진 공격수 위치에 해당하며 폭발적인 드리블과 강력한 슛팅을 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모직 축구단, 대한중석 축구단에서 클럽 커리어를 보내며 총 4번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그는 대표팀에선 어린 나이에도 월반해 1960 아시안컵에 막내로 합류, 무려 4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을 따내 제 2회 대회 우승을 캐리했으며 62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본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은메달에 큰 일조를 했습니다. 그는 1965년에는 K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AFC가 뽑은 아시아 올스타에 3회 뽑힌 명실상부 당대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였습니다.
이동국
주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7cm
생년월일:1979년 4월 29일
주요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
국대 커리어
1998년 ~ 2017년
A매치 105경기 33골
2000 AFC 아시안컵 3위
2007 AFC 아시안컵 3위
역대 최다 득점에 빛나는 명실상부 K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이동국은 박스 안에서의 허를 찌르는 득점 포착 능력,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마무시한 발리 슛팅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1998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아챔에서 우승을 이끄는 초특급 유망주로 전국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으나 이후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국가대표팀과 프리미어 리그 미들즈브러 시절을 거치며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허나 2009년 전북으로 이적하고서는 부활에 성공하며 무려 41세까지 현역 생활을 지속하여 총 9번의 리그 우승과 2011년의 MVP로서 아챔 준우승, 16년의 챔스 우승, 5번의 리그 올스타팀, 4번의 K리그 MVP로 선정된 이동국은 곧 전북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선 2002년 월드컵 명단 제외, 2006년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 2010년 월드컵 우루과이전에서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등 불운만 가득했습니다. 그나마 2000년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따낸 것이 대표팀에서의 가장 큰 수확입니다.
박주영
주 포지션:ST
국적:대한민국
신장:182cm
생년월일:1985년 7월 10일
주요 클럽:AS 모나코 FC
국대 커리어
2005년 ~ 2014년
A매치 68경기 24골
2012 하계 올림픽 동메달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초반 대한민국 축구를 빛낸 천재 공격수. 똑똑한 빈공간 침투 능력과 우수한 돌파, 뛰어난 점프력과 연계, 기가 막힌 프리킥 능력을 가졌던 박주영은 포처, 타겟터, 플레이메이커의 성향을 모두 보일 수 있었던 육각형 스트라이커였습니다.
박주영은 서울에서 2005년 프로 데뷔 해에 바로 신인상과 리그 베스트 11에 들며 천재의 탄생을 알렸고 다음해 리그컵 우승을 이끄는 등 결국 해외로 진출했습니다. 모나코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면서 결국 아스날이라는 명문 클럽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후에는 극심한 부진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만 30세라는 나이에 다시 상암으로 돌아온 그는 팀의 핵심으로 뛰면서 2015년 FA컵 우승, 16년 우승에 결정적이었던 전북전 골로 리그 트로피를 따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2010년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에서 천금같은 프리킥골로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으며 특히 2년 뒤 런던 올림픽 3.4위 한일전에서는 각시탈에 빙의한 듯한 엄청난 움직임으로 승리를 이끌어 하계 올림픽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거는 역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5)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조병득
최인영
함흥철
정성룡
김승규
측면 수비수
김정석
황재만
최강희
김판근
김진수
중앙 수비수
김호곤
조영증
박성화
최강희
홍정호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김용식
이을용
노정윤
김정우
정우영
공격형 미드필더
이영무
황보관
고종수
신태용
이재성
이강인
윙어
변병주
고종수
이천수
염기훈
이근호
센터 포워드
김재한
이태호
정해원
최용수
김도훈
황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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