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 Croatia >
홈구장:스타디온 막시미르
최다 득점자:다보르 슈케르 45골
최다 출장자:루카 모드리치 166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준우승(2018)
UEFA 유로 8강(2008)
역대 최고의 선수:루카 모드리치
주장:루카 모드리치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블라디미르 베아라
포지션:GK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28년 11월 2일
주요 클럽:하이두크 스플리트
국대 커리어
1950년 ~ 1959년
A매치 59경기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레프 야신도 현역 시절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유고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골키퍼. 발레리노 출신이었던 것을 알 수 있는 점프력과 우아한 다이빙, 환상적인 반사신경으로 공을 막아내 '철의 손을 가진 발레리노'라고 언론으로부터 언급되었던 그는,
자국의 하이두크 스플리트, 츠르베나 즈베즈다 소속으로 온갖 최소실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무려 7차례의 1부 리그 우승 타이틀을 자신의 이름에 달았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로는 1952 하계 올림픽에 참가해 결승까지 올랐고 결승에서 세계 최강 헝가리의 푸스카스의 PK를 막기도 했으나 아쉽게 패배해 은메달을 얻었습니다. 여담으로 1963년, 레프 야신이 발롱도르를 수상할 당시 베아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아닙니다. 그건 블라디미르 베아라죠."
라이트백
다리요 스르나
포지션:R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82년 5월 1일
주요 클럽:샤흐타르 도네츠크
국대 커리어
2002년 ~ 2016년
A매치 134경기 22골
21세기 크로아티아 축구의 얼굴마담과도 같은 스타 수비수. 철강왕의 체력으로 이곳 저곳을 쏘다니면서 커버하는 능력에 라이트백 외에도 미드필더로도 기용되던 그의 최대 장기라면 단연코 킥이며 크로스, 로빙패스, 직접 프리킥 등등 정말로 킥 하나 만큼은 세계구급 레벨이었기 때문에 '크로아티아의 베컴'으로도 불렸습니다.
다리요 스르나는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10번의 리그 우승을 포함한 27개의 우승 타이틀을 획득, 또한 2008/09 시즌엔 UEFA컵 우승에 성공했고 다음 시즌엔 로마, 아스날 등을 잡고 챔스 8강에 오르는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공로에 그의 등번호 33번은 구단 최초로 영구결변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리그 MVP만 2번 선정된 그는 14년 동안 6번의 국제 대회에 참가, 134경기를 출장해 현재 대표팀 최다 출장 2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센터백
이비차 호르바트
포지션:C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9cm
생년월일:1926년 7월 16일
주요 클럽:디나모 자그레브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6년
A매치 60경기 0골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40년대 후반 ~ 50년대 중반까지 유고슬라비아 연방 축구의 방패 역할을 했던 사나이. 189cm라는 당시로써는 굉장한 신체조건을 이용해 공격수들을 파괴하는 수비를 펼치던 호르바트는,
디나모 자그레브라는 자국의 명문에서 활약하며 2번의 리그 우승을 따냈고 뛰어난 폼에 결국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의 러브콜을 받아 이적해 분데스리가의 전신인 독일 전국 챔피언십에서 1959년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막강한 국대 스쿼드의 일원으로도 1952년 올림픽에 참가해 주장으로서 결승까지 올랐지만 '매직 마자르' 헝가리의 철퇴를 맞고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센터백
다리오 시미치
포지션:C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75년 11월 12일
주요 클럽:디나모 자그레브
국대 커리어
1996년 ~ 2008년
A매치 100경기 3골
1998 FIFA 월드컵 3위
어린 나이부터 주목 받았던 크로아티아 축구가 배출한 불세출의 천재 수비. 자로 잰듯한 태클 능력과 감각적인 인터셉팅 능력, 축구 IQ 자체가 높아 센터백 외에도 풀백도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였습니다.
디나모 자그레브의 유스 출신으로 무려 17세의 나이에 1군에 들만큼 폭풍성장을 이루며 5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결국 인테르로 이적에 성공합니다. 허나 당시 팀의 암흑기에 뛰어서 트로피도 들지못했고 결국 주전에서 밀려 AC 밀란으로 이적한 시미치는 2002/03 시즌과 06/07 시즌에는 주전으로서 챔스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19살에 국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시미치는 1998년 월드컵에선 라이트백으로서 3위를 경험했으며 노장이된 2008년 유로에서도 한번 더 8강이라는 대회 자국 최고 성적을 같이 했습니다.
레프트백
브란코 제베치
포지션:L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29년 3월 17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51년 ~ 1961년
A매치 65경기 17골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필수불가결 자원. 훌륭한 크로스와 돌파로 주 포지션인 레프트 윙어 외에도 센터 포워드, 중앙 미드필더, 수비력까지 갖춘 후기에는 레프트백까지 봤었던 팔방미인 그 자체 브란코 제베치였습니다.
그는 FK 파르티잔 소속으로 1950년대의 전성기를 함께 해 3번의 리그 우승에 당도했으며 유고 연방의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서도 스체판 보벡, 베르나르드 부카스와 공격을 구성해 무려 7골을 넣어 득점왕으로서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유로 1960에서도 준우승을 거머쥐는 등 국가대표로도 빼어난 모습을 선보인 그였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포지션:D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64cm
생년월일:1923년 11월 24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5년
A매치 55경기 7골
194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유고슬라비아 연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당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당대 최고 수준의 하프백(오늘날의 수미)으로 믿음직한 1대1 방어와 날쌘 태클, 안정적인 패스 능력을 가졌었습니다.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유고의 양대 산맥이었던 파르티잔이라는 클럽 아래서 2차례의 유고 리그와 3번의 컵 우승을 달성했으며 완성된 기량으로 유고의 방패 역할을 소화해 1948 하계 올림픽과 1952 하계 올림픽에서 2위에 올라 훗날 유럽에서도 꽤 위협적으로 성장할 자국 전성기의 초석을 다진 바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즈보니미르 보반
포지션:C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5cm
생년월일:1968년 10월 8일
주요 클럽:AC 밀란
국대 커리어
1988년 ~ 1999년
A매치 56경기 13골
1998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황금 세대를 상징하는 크로아티아의 축구 영웅. 뛰어난 피지컬과 활동량을 갖춘데다가 정교한 킥 능력으로 키패스도 뽑아내면서 테크닉까지 뛰어나 공격형 미드필더말고도 윙어로도 가용되었던 그였습니다.
이런 '조로' 즈보니미르 보반은 자국의 디나모 자그레브 시절부터 이미 유망했으며 크로아티아의 독립 전쟁을 피해 1991년 밀란으로 넘어가서는 80년대 '밀란 제너레이션' 1기와 2000년대 2기를 잇는 No.10으로 가교 역할을 해내며 4차례의 스쿠데토와 93/94 시즌의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등 90년대 세리에 최고의 미드필더로 군림했었습니다.
그는 독립에 성공했던 크로아티아의 믿음직한 주장으로서도 1998년 월드컵에서 3위까지 조국을 견인했습니다. 특히 보반은 축구 외적으로도 엄청난 애국자였는데 전쟁의 전조가 스물스물 보이던 1990년, 세르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가 맞붙었던 경기가 과열되자 자그레브의 서포터들을 과잉진압하던 세르비아 경찰들을 상대로 겁없이 발차기를 날리는 행동으로 범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
포지션:C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85년 9월 9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국대 커리어
2006년 ~
A매치 166경기 24골
2018 FIFA 월드컵 준우승
2022 FIFA 월드컵 3위
2010년대 중후반 ~ 202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불린 '발칸반도의 요한 크루이프'. 현시대 가장 완벽한 미드필더로 칭해지는 모드리치는 감탄을 연발케하는 탈압박, 기민한 드리블 돌파, 창의적인 키패스, 부지런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을 두루 갖추었던 선수였습니다.
모드리치는 토트넘에서 EPL 탑티어 미드필더로 거듭난 뒤 스페인으로 넘어가 1년 만에 '라 데시마'를 이룬 것을 시작으로 토니 크로스, 카세미루와 '크카모' 중원 조합을 구성해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3연패와 30대 후반에 무려 구단의 14번째, 15번째 빅이어를 선사하는 등 수많은 트로피를 쟁취했습다.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에 7번, UEFA 올해의 팀에 3번 이름을 올린 모들치는,
바트레니 군단을 이끌고 2018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를 결승까지 올려놓는 자국 역대 최고 성적에 대회 골든볼을 받았고 이는 발롱도르 수상까지 이어지며10년을 이어진 메날두 발롱도르 독식을 깨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37세의 나이에 그는 다음 월드컵에서도 3위에 안착, 브론즈볼 수상으로 개인 커리어에 한줄을 더 추가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스체판 보벡
포지션:RW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23년 12월 3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6년
A매치 63경기 38골
194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헝가리의 전설, 페렌츠 푸스카스도 우상으로 우러러봤던 종전 직후 유럽 탑티어의 특급 포워드. 뛰어난 테크닉과 센스, 혼자서 골도 넣을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사이드 포워드였던 스체판 보벡이었습니다.
FK 파르티잔이라는 자국 클럽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지내며 무려 425골을 기록해 역대 최다 득점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2번의 유고 리그와 4번의 유고 컵 우승, 2번의 리그 득점왕까지 달성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품에서도 보벡은 수많은 골을 넣어 1948년, 52년 올림픽 은메달에 크나 큰 기여, 본격적인 자국 전성기의 초석을 다졌고 유고슬라비아 시절로 한정한다면 그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넣은 38골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입니다.
레프트 윙어
베르나르드 부카스
포지션:LW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0cm
생년월일:1927년 5월 1일
주요 클럽:하이두크 스플리트
국대 커리어
1948년 ~ 1957년
A매치 59경기 22골
194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모드리치 등장 전까지 크로아티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당대 한손에 꼽히던 윙어. 베르나르드 부카스는 날카로운 킥과 매우 빠른 드리블 스피드를 바탕으로 본업인 레프트 윙 외에도 공격 지역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는 자국의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3번의 리그 우승을 캐리했으며 특히 1950년의 경우 무패 우승이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품에서 부카스는 중흥기를 창조해냈고 각 2번의 월드컵과 하계 올림픽에 참가, 1948년과 52년 올림픽에서 모두 은메달을 들어올리며 유고슬라비아 엠블럼의 별을 더 밝게 빛낸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다보르 슈케르
포지션:ST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68년 1월 1일
주요 클럽:세비야 FC
국대 커리어
1992년 ~ 2002년
A매치 71경기 46골
1998 FIFA 월드컵 3위
크로아티아 축구를 처음으로 전세계에 알렸던 유고 연방이 낳은 역대 최고의 최전방 공격수. 천의무봉의 날카로운 왼발 킥 능력과 골냄새를 잘맡는 위치 선정, 발군의 테크닉으로 '오시예크의 마법사'로 불리웠던 슈케르는,
라리가의 세비야와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고공행진을 펼쳤고 후자 소속으로는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와 투톱을 구성해 각 1차례의 라리가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세비야 시절까지 6시즌 연속으로 리그 두자릿수 골을 기록하기도 했었던 그는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상만 6번을 수상했습니다.
유고 내전으로 인해 독립한지 얼마 안된 '신데렐라 군단'의 공격 리더로서도 슈케르는 유로 1996 대회 베스트 11 선정, 폼이 정점에 섰던 98년 월드컵에선 3위까지 팀을 올리는 돌풍을 이끌었고 본인은 6골로 득점왕, 실버볼, 발롱도르 2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거머쥐었습니다. 또한 A매치 45골로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도 앉아있기도 한 그입니다.
감독
즐라트코 달리치
포지션:MANAGER
국적:크로아티아
생년월일:1966년 10월 26일
국대 커리어
2017년 ~
2018 FIFA 월드컵 준우승
2022 FIFA 월드컵 3위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지는 크로아티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지휘하고 있는 명장. 공격력이 답답하다는 비판은 듣지만 많이 뛰는 선수들의 적극 압박을 요구하며 단단한 선수비 후역습 축구 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평을 듣는 즐라트코 달리치입니다.
그는 2017년 부임한 뒤, 1년 뒤 열린 러시아 월드컵에서 루카 모드리치 - 마르셀로 브로조비치 - 이반 라키티치로 이어지는 황금 중원 라인을 필두로 한 늪축구를 펼치며 수많은 강적들을 무찌르고 결승까지 오르는 이변을 만들었으며 다음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3위까지 오르는 기대 이상의 경력을 써내려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프라뇨 글라세르
포지션:GK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13년 1월 13일
주요 클럽:HSK 그라단스키
국대 커리어
1933년 ~ 1940년
A매치 35경기
'철의 주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유고슬라비아의 명 골키퍼 계보의 시작점. 1930년대 ~ 40년대 유럽 최고의 골키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던 글라세르는 어마무시한 선방을 뽐냈던 것으로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94번의 PK 중 73번을 선방했다는 전설적인 기록도 낳았던 그는,
무려 20년간 프로 생활을 유지했으며 1933년부터 49년까지 16년간은 비공식을 포함해 무려 1200경기가 넘는 경기를 출장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는 BSK 베오그라드와 그라단스키 자그레브, 파르티잔 소속으로 총 4번의 리그 우승컵을 품에 안았습니다.
라이트백
이반 불얀
포지션:R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49년 12월 11일
주요 클럽:함부르크 SV
국대 커리어
1973년 ~ 1981년
A매치 36경기 2골
2018 FIFA 월드컵 3위
1970년대 중후반 유고슬라비아와 함부르크의 축구를 이끌었던 믿음직한 수비수. 뛰어난 리더십과 점프력, 단단한 대인 수비를 바탕으로 센터백 외에도 라이트백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던 자원이었습니다.
이반 불얀은 자국의 강호,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1975년 무려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받는 성적으로 정부의 허락을 받아 독일 함부르크에 입성했으며 1978/79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 다음 시즌에는 유러피언컵 결승까지 오르는 대업을 같이한 바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유명 언론 키커가 뽑은 올해의 용병 Top3에 2시즌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그는 1974년 월드컵에서도 2차 결선 리그 진출, 2년 뒤 유로에서도 4강 진출을 견인했습니다.
센터백
로베르트 코바치
포지션:C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74년 4월 6일
주요 클럽:바이어 04 레버쿠젠
국대 커리어
1999년 ~ 2009년
A매치 84경기 0골
2000년대 크로아티아 축구를 대표했었던 얼굴마담 센터백. 현시대 감독으로 유명한 니코 코바치의 동생이며 악바리같은 투지와 정신력, 굳센 태클 등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수비수였습니다.
로베르토 코바치는 2부였던 뉘른베르크에서의 활약으로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 팀의 1990년대 중후반 약진의 핵심으로서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3차례의 리그 준우승을 경험합니다. 2001/02 시즌에 팀을 떠나 챔스 결승행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결국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2차례의 '도메스틱 더블'을 경험해 그 한을 풀었던 코바치입니다. 크로아티아 대표로도 그는 2008년 유로에서 독일을 꺾고 조별울 1위로 뚫고 8강까지 오르는 돌풍을 함께 했습니다.
센터백
도마고이 비다
포지션:C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89년 4월 29일
주요 클럽:디나모 키이우 FC
국대 커리어
2010년 ~
A매치 103경기 4골
2018 FIFA 월드컵 3위
2018년 월드컵 크로아티아의 깜짝 준우승 당시 열연했던 센터백. 파이팅 넘치는 대인 마크와 우수한 태클 능력, 빠른 주력 등을 이용해 작은 키에도 센터백 혹은 풀백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비다는,
자국 최고의 명문인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뛰면서 결국 디나모 키이우로 이적해 2차례의 리그 우승을 이룬 바 있습니다. 2018/19 시즌부터는 월드컵 활약을 바탕으로 베식타쉬로 이적하기도 했던 비다는 크로아티아 국기를 위해 뛰면서도 한동안은 별 성과가 없었지만 2018년 월드컵에서는 엄청난 활약상으로 뛰어난 멤버들과 준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레프트백
로베르트 야르니
포지션:LB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68년 10월 26일
주요 클럽:레알 베티스
국대 커리어
1990년 ~ 2002년
A매치 87경기 2골
1998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중후반, 전성기는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비견되었던 크로아티아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무지막지한 스피드와 공격시 치고나가는 센스를 이용해 크로스로 득점도 많이 만들었으며 정말 카를루스처럼 박스 바깥에서 때리는 슛팅이 무서운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로베르트 야르니는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떠서 유베까지 이적, 허나 그곳에서는 실패를 맛보게되지만 라리가의 레알 베티스 소속으로는 3시즌간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하기 까지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데렐라 군단의 품에서도 그는 풀타임 주전으로 1998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대표팀이 동화를 쓰는데 일조했으며 8강에서는 장기인 중거리로 결승골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반 라키티치
포지션:D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88년 3월 10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2007년 ~ 2019년
A매치 106경기 15골
2018 FIFA 월드컵 준우승
2010년대 스페인 라리가의 탑티어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를 봤었던 수준급의 기회 창출 능력과 개처럼 뛰어다니는 활동량과 체력, 비상한 축구 지능 등으로 중원을 꽉꽉 채웠었던 이반 라키티치는,
세비야의 공격 대장으로 활약하면서 2013/14 시즌의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곧 바로 다음 시즌,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는 차비의 주전 자리를 대체하며 원래보다 아래의 위치에서 MSN이라는 역대급 공격라인의 후위를 보좌, 14/15 시즌의 '트레블'을 포함해 4번의 리그와 컵 우승을 같이 했습니다. 또한 후에 친정팀인 세비야로 돌아와 주장으로 22/23 시즌의 유로파 리그 우승을 한번 더 이끌었던 그는,
크로아티아의 체크 무늬 유니폼을 입고도 루카 모드리치와 함께 중원을 받들며 2018년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오르는 공을 세웠습니다.
라이트 윙어
이반 페리시치
포지션:R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6cm
생년월일:1989년 2월 2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2011년 ~
A매치 129경기 33골
2018 FIFA 월드컵 준우승
2022 FIFA 월드컵 3위
2010년대 중후반 ~ 20년대 초반 크로아티아 축구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점을 상징하는 윙포워드. 화려한 온더볼은 없었지만 준수한 스피드, 양발로 올리는 질 높은 크로스와 뛰어난 활동량과 피지컬을 지녔던 윙였으며 이러한 점 때문에 말년에는 윙백으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하기도 했던 페시리치입니다.
그는 볼프스부르크와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맞았으며 2019/20 시즌에는 1시즌 뮌헨으로 임대가서 '트레블'을 돕기했고 다시 팀에 돌아와서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 아래서 윙백으로 20/21 시즌의 세리에 A 우승, 21/2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룩했습니다.
국대에서도 그는 크로아티아 공격의 에이스로 3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2018년 월드컵에선 정말 미친듯이 뛰어다녔고 특히 4강에서 1골 1도움의 미친 활약으로 조국을 첫 결승에 올려놓았습니다. 또한 2022 WC에서도 도움왕으로서 3위를 같이 한 바 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포지션:A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69년 1월 2일
주요 클럽: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국대 커리어
1989년 ~ 2002년
A매치 64경기 14골
1998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많고 많은 천재들 중에서도 빛났던 크로아티아의 보물. '동유럽의 마술사'로 불린 안정적인 볼키핑과 부드러운 드리블 스킬, 발군의 패스와 '발칸의 황금총'으로 빼어난 중거리포까지 탑재했던 프로시네츠키는 괴팍한 성격과 인성, 골초이기까지 했던 악마의 재능이었습니다.
그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황금 세대와 같이 1990/91 시즌의 빅이어를 들어올리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안착, 후에 라리가로 진출해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1992/93 시즌의 코파 델 레이 우승에 성공했으며 레알 오비에도, 바르셀로나, 세비야 소속으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1990 월드컵의 신인상 수상자였던 그는 바트레니의 일원으로 즈보니미르 보반, 다보르 슈케르와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하며 1998 WC의 동메달을 쟁취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요시프 스코블라르
포지션:L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41년 3월 12일
주요 클럽: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국대 커리어
1961년 ~ 1967년
A매치 32경기 11골
1962 FIFA 월드컵 4강
'달마시아 해변의 독수리'로 불리웠던 프랑스 리그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하나. 본래 탄탄한 스피드와 드리블 돌파로 측면을 파던 레프트 윙어였으나 다재다능함과 헤더 실력으로 인해 프랑스 리그로 이적 후부터는 센터포워드로 기량이 터졌던 스코블라르였습니다.
자국 베오그라드에서 2번의 리그를 따내며 리그앙의 마르세유로 소속팀을 옮겼으며 그는 2연속 리그 우승, 1971/72 시즌의 '더블', 여기서 그치지않고 2차례의 리그 MVP, 3차례의 득점왕 중 1971년은 44골을 넣어 프랑스 리그 한시즌 역대 최다골 기록을 수립, 유러피언 골든슈와 발롱도르 6위까지 오르는 기개의 불꽃을 토했습니다. 마르세유 역대 최다 득점 3위인 스코블라르는 대표팀에서도 1962 월드컵 4강행을 같이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드라잔 예르코비치
포지션:ST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6cm
생년월일:1936년 8월 6일
주요 클럽:디나모 자그레브
국대 커리어
1960년 ~ 1964년
A매치 21경기 11골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4강
국제 축구 역사상 월드컵과 유로에서 모두 득점왕을 따낸 단 세명 중 하나. 드라잔 예르코비치는 대포알을 보는 듯한 파워풀한 슛팅과 186이라는 당시로는 엄청난 장신을 이용한 박스 안에서의 위협적인 헤더, 바이시클킥이 최대 장기로 꼽히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자국 리그의 디나모 자그레브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약 300경기 300골을 넣는 미친 골순도로 1차례의 리그 득점왕을 거머쥐었고 국대에서도 밀란 갈리치, 드라고슬라프 세큘라라치, 보라 코스티치 같은 자국 최고의 공격수들의 지원을 받으며 1960년 유로 준우승, 1962 월드컵 4위를 달성, 2골과 4골로 두대회 모두 공동 득점왕에 올랐던 예르코비치였습니다.
스트라이커
마리오 만주키치
주 포지션:ST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90cm
생년월일:1986년 5월 21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국대 커리어
2007년 ~ 2018년
A매치 89경기 33골
2018 FIFA 월드컵 준우승
2010년대 크로아티아를 넘어 유럽 빅리그를 대표했었던 수비형 포워드. 결정력은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었으나 성실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 뛰어난 연계 센스를 통해 2선 미드필더들과 윙어들의 공격력을 살리는 플레이를 했으며 커리어 후반부에는 심지어 아예 윙어 자리에서 와이드 타겟맨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는 볼프스부르크를 거쳐서 바이에른 뮌헨에 입성, '로베리' 라인의 공격력을 살려주는 경기력으로 2012/13 시즌 바로 '트레블'의 주전 멤버가 되었으며 후에 유벤투스에서는 알레그리 감독의 지시에 따라 왼쪽 윙으로 뛰며 4차례의 리그 우승과 3차례의 컵 우승, 16/17 시즌 챔스 준우승을 이뤘습니다.
크로아티아를 대표해서는 노장의 나이에 2018년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오르는 역대급 성적에 일조했으며 특히 4강 잉글랜드전에는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는 인생골을 넣은 바 있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s
젤리코 페루시치
주 포지션:D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64cm
생년월일:1937년 3월 23일
주요 클럽:TSV 1860 뮌헨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4년
A매치 27경기 0골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년대 초중반 동유럽이나 분데스리가를 넘어서 세계구급의 위엄을 뽐내던 수비형 미드필더. 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커버할 만큼 뛰어난 시야와 스태미너를 장착했던 젤리코 페루시치,
그는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1차례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결국 뛰어난 실력에 1965년, 1860 뮌헨으로 이적해 맹활약해 65/66 시즌의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따내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당시 2시즌을 키커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들었던 젤리코 페루시치는 1960년의 유로에서 준우승, 하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즈보니미르 솔도
주 포지션:D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9cm
생년월일:1967년 11월 2일
주요 클럽:VfB 슈투트가르트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1년
A매치 61경기 3골
1998 FIFA 월드컵 3위
1990년대 중후반 슈투트가르트의 약진을 만든 당시 팀의 중추. 솔도는 와성한 활동량과 더불어 강인한 몸싸움, 제공권 장악 등을 자랑해 말년에 리베로로서 뛰기도 했던 당대 분데스 탑급 수비형 미드필더였습니다.
크로아티아 리그를 평정하고 29세의 나이에 슈바벤 유니폼을 입게 된 그는 얼마안가 팀의 핵심이 되어 에우베르, 프레디 보비치, 크라시미르 발라코프의 '매직 트라이앵글'을 받들며 1996/97 시즌의 포칼 우승, 97/98 시즌의 위너스컵 우승을 가능케 했습니다. 또 구단 외국인 역대 최다 출장자인 솔도는 02/03 시즌 분데스 준우승 당시 키커 올해의 팀에도 뽑혔습니다. 더불어 솔도는 1998 월드컵 3위의 돌풍 당시에도 묵묵히 공격진을 커버한 바 있습니다.
이비차 쉬라크
주 포지션:R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90cm
생년월일:1953년 3월 23일
주요 클럽:하이두크 스플리트
국대 커리어
1973년 ~ 1982년
A매치 129경기 33골
197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자랑했던 토탈 풋볼러. 키가 190cm인데다가 스피드도 무지하게 빠르며 매우 좋은 공수 밸런스를 지녀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센터 포워드, 레프트 윙어, 레프트백에서도 모두 수준 높은 기량을 발산했던 쉬라크였습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에이스로서 3차례의 리그 우승과 5차례의 컵 우승을 선물했던 그는 후에 파리 생제르맹과 우디네세, 레알 사라고사에서도 활약했고 1981/82 시즌 프랑스컵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쉬라크는 팀의 에이스로서 유로 1976의 4강행을 견인, 그해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유리차 예르코비치
주 포지션:AM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5cm
생년월일:1950년 2월 25일
주요 클럽:하이두크 스플리트
국대 커리어
1970년 ~ 1982년
A매치 43경기 6골
1970년대 유고슬라비아와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에이스였던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의 플레이메이커. 자로 잰듯한 롱패스로 어시스트를 쌓으면서 뛰어난 볼컨트롤로 수비수를 홀리는 플레이 또한 뛰어났던 예르코비치였습니다.
그는 하이두크 스플리트라는 크로아티아 최고의 클럽을 찬란한 황금기로 인도했으며 3차례의 리그 우승과 5차례의 컵 우승에 당도했습니다. 예르코비치는 또한 후에 스위스 리그로 넘어가서도 1981년 '더블'을 달성하는 등 올해의 용병만 3시즌 뽑혔으며 이러한 뛰어난 폼은 국대에서도 마찬가지, 3번의 메이저 대회에 참가했고 76년 유로에선 4강에 올랐습니다.
이비차 올리치
주 포지션:CF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79년 9월 14일
주요 클럽:하이두크 스플리트
국대 커리어
2002년 ~ 2015년
A매치 104경기 20골
마리오 만주키치에 앞서서 크로아티아 축구를 책임졌던 공격수. 직속 후배인 만주키치와 비슷한 플레이스타일로 드리블이 특출나거나 골을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전방압박으로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또한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었던 올리치였습니다.
CSKA 모스크바, 함부르크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낙점받은 그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에 성공했고 2009/10 시즌엔 마리오 고메스, 루카 토니,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을 제치고 공격의 주포로서 챔스에서 7골을 몰아치며 9년만의 결승 진출을 주도했습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부상으로 인해 주전 자리를 내주고 떠나게 되었지만 볼프스부르크에서도 준수했던 올리치는 유로 2008 8강 진출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즐라트코 부요비치
주 포지션:ST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79cm
생년월일:1958년 8월 26일
주요 클럽:하이두크 스플리트
국대 커리어
1979년 ~ 1990년
A매치 70경기 25골
1980년대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상징하는 스타 공격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와 박스 앞에서 발현되는 센스 있는 마무리를 바탕으로,
당시 자국 리그를 주름잡았던 부요비치는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금방 주축으로 성장하였고 몇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1981년에는 리그 MVP까지 당도했습니다. 이어서 1986/87 시즌, 지롱댕 보르도로 이적하여 바로 리그앙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의 '더블'을 이뤘습니다. 후에 칸, 파리에서도 활약했던 그는 1990년 월드컵에선 주장으로 대회에 참가하며 후에 열릴 황금 세대를 잡아주는 베테랑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알렌 보크시치
주 포지션:ST
국적:크로아티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70년 1월 21일
주요 클럽: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국대 커리어
1993년 ~ 2002년
A매치 40경기 10골
1990년대 크로아티아 축구의 발전에 다보르 슈케르 만큼 중요했던 모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도 좋아 포스트플레이도 잘했지만 엄청난 스피드와 드리블로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플레이에도 능했으며 연계까지하던 만능 보크시치는 비록 결정력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던 선수입니다.
하이두크 스플리트라는 자국 팀에서 떠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넘어온 그는 곧 바로 1992/93 시즌 리게앙 득점왕을 따냈으며 특히 초대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보여준 덕에 보크시치는 1993년 발롱도르 4위에 오르는 영광을 품에 안았습니다. 후에 승부조작 여파로 라치오로 이적해서도 뛰어난 폼을 유지, 유베로 이적해 96/97 시즌 리그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허나 이후에 부상으로 인해 동기인 다보르 슈케르, 즈보니미르 보반과 달리 1998년의 월드컵 3위를 함께 하지 못했고 다시 라치오로 복귀해서도 구단의 역사적 리그 우승을 TV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토미슬라프 이브코비치
드라젠 라디치
스티페 플레티코사
측면 수비수
빌손 조니
다니옐 프라니치
베드란 촐루카
중앙 수비수
토마슬라프 츠른코비치
이고르 스티마치
데얀 로브렌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안테 자네티치
드라젠 무지니치
니코 코바치
마르셀로 브로조비치
마테오 코바치치
공격형 미드필더
실비오 마리치
마리오 스타니치
마리오 파샬리치
윙어
슬라벤 잠바타
니코 크란차르
안테 레비치
센터 포워드
프라네 마토시치
보리슬라프 츠베트코비치
고란 블라오비치
니콜라 칼리니치
안드레이 크라마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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