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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베스트 11/동유럽

세르비아 축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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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국가대표

< Serbia >

홈구장:스타디온 라이코 미티치

최다 득점자: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55

최다 출장자: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105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조별예선(2006, 2010, 2018, 2022)

역대 최고의 선수:드라간 자이치

주장:벨리보르 바소비치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밀루틴 쇼슈키치

포지션:GK

국적:세르비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37년 12월 24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6년

A매치 50경기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2 FIFA 월드컵 4강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1960년대 초중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든든한 주전 골키퍼. 다람쥐 같은 점프력과 본능적인 세이빙 능력을 토대로 눈부신 선방을 연출하던 쇼슈키치는 당시 세계 최고의 키퍼 레프 야신 다음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르비아 최고의 명문으로 평가받는 파르티잔 소속으로 그는 찬란한 퍼포먼스를 보였고 4차례의 리그 우승에 당도, 거기다 1965/66 시즌에는 맨유를 잡고 유러피언컵 결승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후에 쾰른으로 이적하기도 했던 쇼슈키치는 유고 연방의 품에서도 1960년 유로 준우승, 1960 올림픽 금메달, 62 월드컵 4강 진출에 이바지했습니다.

 

라이트백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포지션:​RB

국적:세르비아

신장:185cm

생년월일:1984년 2월 22일​

주요 클럽:첼시 FC

국대 커리어

2005년 ~ 2018년

A매치 105경기 13골

21세기를 빛낸 EPL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명. ​본래 센터백이었던 만큼 뛰어난 몸싸움과 1대1 대인 마크 능력, 거친 슬라이딩 태클 등을 보여줄 수 있었으나 그의 진짜 역량은 날카롭고 센스있는 오버래핑에서 나왔습니다.

 

이바노비치는 2008/09 시즌 히딩크 밑에서부터 오른쪽 수비로 뛰며 '이바갑' 모드를 펼쳤고 10개의 타이틀을 획득함과 함께 09/10, 14/15 시즌 PFA 올해의 팀에까지 뽑힌 바 있습니다. 절정이던 14/15 시즌에는 챔스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으며 특유의 버저비터 능력으로 12/13 시즌 유로파 결승에선 추가시간 극적인 결승 헤더골을 작렬하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벨리보르 바소비치

​포지션:​CB

​국적:세르비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39년 10월 3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1961년 ~ 1966년

A매치 31경기 2골

네마냐 비디치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유고 연방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 안정적인 대인 수비 능력, 지능적인 오프사이드 트랩 활용 능력과 날카로운 빌드업 실력을 모두 보유해 스토퍼, 리베로 그리고 미드필더까지 모두 겸할 수 있었던 바소비치는,

 

파르티잔을 이끌고 4번의 리그 우승과 1965/66 시즌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끌어냈으며 후에 아약스 소속으로 뛰며 수비진의 리더로서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을 구현, 각 3번의 리그와 컵 우승에 성공했고 1970/71 시즌에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를 꺾으며 유러피언컵에서까지 우승을 이끌어냈습니다. 바소비치는 아약스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으로 선임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지만 1971년, 호흡기 질환 문제로 30세 초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아쉽게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센터백

네마냐 비디치

포지션:​CB

국적:세르비아

신장:190cm

생년월일:1981년 10월 21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대 커리어

2002년 ~ 2011년

A매치 56경기 2골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의 수비력을 선보인 '세르비아산 터미네이터'. 국내팬들에게는 '벽디치' 라는 별명으로 아주 잘 알려져있는 비디치는 190cm라는 큰 키와 탄탄한 체격, 강력한 태클, 압도적인 공중볼 장악 등으로 상대 선수를 부숴버리는 겁이 없고 강인한 수비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디치는 외국인임에도 퍼거슨으로부터 주장 완장까지 받을 정도로 신임을 받으며 8년간 맨유의 수비를 책임졌고 종합 5차례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2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PFA 올해의 팀 4회, ESM 올해의 팀 3회에 빛나는 그는 챔스 결승에 오른 2008/09, 2010/11 시즌, 세계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이며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상까지 탄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2006년과 10년, 세르비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파흐루딘 유수피

포지션:​LB

국적:​세르비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39년 12월 8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7년

A매치 55경기 0골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4강

1950 ~ 60년대를 유럽 리그를 평정했던 유고슬라비아의 역대급 풀백. 라이트백과 레프트백을 모두 소화하는 비상한 수비 지능과 발군의 공격력을 가졌으며 유수피의 최대 장점은 악착같이 상대에게 달려들어 볼을 뺐는 맹렬한 파이터 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이었습니다.

 

세르비아의 명문, 파르티잔에서 활약했던 그는 총 4번의 자국 리그 우승을 비롯해 1965/66 시즌엔 레알에게 지긴 했지만 유러피언컵에서 준우승하는 등 팀을 유럽 고수준으로 올려놓았으며 유수피 본인은 분데스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서도 그 기량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1962년, 63년과 68년에 월드 사커 선정 월드 베스트 11에 들어갔었던 그의 활약상은,

 

유고슬라비아가 1960 올림픽 금메달, 유로 1960 준우승, 1962 월드컵 4강 등의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데얀 스탄코비치

포지션:DM

국적:세르비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78년 9월 11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국대 커리어

1998년 ~ 2013년

A매치 103경기 15골

2000년대 세리에 A의 잔뼈가 굵은 네임드 미드필더. 스탄코비치는 정교하면서도 통쾌한 킥력을 지녔으며 활동량이나 멀티성이 좋아서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를 모두 뛸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황금 세대로서 주목받으며 1998년,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입성했고 베론, 파벨 네드베드와 중원을 구성해 1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포함한 7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스탄코비치는 재정 위기를 맞은 라치오를 떠나 인테르로 이적해서도 에스테반 캄비아소와 합을 맞춰 2009/10 시즌의 영광의 '트레블'을 이룩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서로 다른 3개의 국적으로 월드컵에 나간 유일무이한 선수인데, 1998 월드컵에선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으로, 유고 연방의 해체 후에는 06 월드컵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소속으로, 몬테네그로의 분리 독립 이후엔 세르비아 소속으로 주장완장을 차고 참가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드라고슬라프 세큘라라치

포지션:​CM

국적:세르비아

신장:171cm

생년월일:1937년 11월 30일

주요 클럽: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국대 커리어

1956년 ~ 1966년

A매치 41경기 6골

1956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4강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전성 시대를 밀고나갔던 환상의 크랙. 당대 최고의 드리블러라고 봐도 무방한 현란한 드리블, 탈압박과 더불어 수비진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내는 킬패스 능력으로 명망을 떨쳤습니다.

 

그는 자국의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같은 명문팀에서도 에이스 노릇을 하며 8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획득했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막강한 멤버들과 같이 1956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60년 유로 준우승,1 962년 월드컵 4강 등을 이끌며 유고슬라비아를 축구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큘라라치는 1960년 유로에서는 올스타팀, 62년에는 발롱도르 4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포지션:​CM

국적:세르비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65년 3월 3일

주요 클럽: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국대 커리어

1983년 ~ 2001년

A매치 84경기 15골

1984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80년대 후반 ~ 90년 초반 세계구급의 면모를 드러냈던 유고슬라비아 축구 최후의 항성. 마라도나로 언급될 만큼의 드리블 돌파 능력과 창의적인 킬패스 능력을 가졌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스토이코비치는 아쉽게도 잦은 부상과 다혈질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았으며 자국의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에서 2차례 리그 MVP를 타며 최강 부호가 있었던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이적했고 부상으로 신음하면서도 각 1차례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희한하게도 J리그로 이적해 무려 7년간 활약하기도 했던 '픽시' 스토이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어린 나이에 1984 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으며 1990년 월드컵에서는 올스타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8강까지 진출, 이후 내전으로 인해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이어지는 신 유고 연방을 지휘하면서도 1998 WC의 16강행을 만들었습니다.

 

라이트 윙어

밀로스 밀루티노비치

포지션:RW

국적:세르비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33년 2월 5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53년 ~ 1958년

A매치 33경기 16골

 

1950년대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도 원했던 마성의 윙어. 수비수들을 혼란케하는 아름다운 드리블을 구사하면서 머리에 배달하는 정교한 크로스까지 뽑았던 '금발의 버저' 밀로스 밀루티노비치는,

 

자국의 파르티잔 소속으로 활약했고 2차례의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 트로피를 든 뒤 1955/56 시즌의 초대 유러피언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그 이름을 유럽 전역에 알렸습니다. 레알, 인테르에 구애도 받았으며 결국 뮌헨, RC 파리 유니폼을 입기도 한 그는 1954년과 58년 월드컵에 참가해 자국을 빛냈으나 폐 질환으로 인해 국대 커리어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레프트 윙어

드라간 자이치

포지션:LW

국적:유고슬라비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46년 5월 30일

주요 클럽: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국대 커리어

1964년 ~ 1973년

A매치 85경기 23골

1968 UEFA 유로 준우승

 

자타가 공인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윙어이자 축구사 최고의 레프트 윙 가운데 한명.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크로스 정확도와 펠레마저 현혹시켰던 드리블 스킬, 절륜의 득점 감각과 수비 가담까지 탑재했던 윙포워드의 이상향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매직 드라간'은 츠르베나 즈베즈다라는 유고슬라비아 클럽에서 13년을 뛰면서 615경기 370골로 구단 역대 최다 출장, 득점 기록 1위를 찍었으며 클럽에 5개의 리그 우승컵과 4개의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컵을 바쳤습니다. 후에 프랑스의 바스티아라는 약팀에서도 비슷한 폼을 이어갔던 자이치는,

 

플라비 유니폼을 입고서도 월드클래스인 것을 증명하며 2번의 유로에서 올스타로 선정, 그중에 1968년 대회에서는 MVP와 득점왕까지 석권하며 발롱도르 포디움을 밟고 올라서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스트라이커

라이코 미티치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73cm

생년월일:1922년 11월 19일

주요 클럽:FK 레드 스타

국대 커리어

1946년 ~ 1957년

A매치 59경기 32골

1948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2 하계 올림픽 은메달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지도자 티토마저 홀렸던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초반 유고 연방 축구의 아이콘. 수준급의 드리블 기교와 다이나믹한 오른발 슛에 능했던 라이코 미티치는 당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레드 스타에서 뛰며 무려 4차례의 유고슬라비아 리그와 3차례의 유고슬라비아 컵을 우승했고 국가대표로도 스체판 보벡과 콤비를 이뤄 두차례의 하계 올림픽에서 조국에게 은메달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195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6차례 골망을 흔들어 득점왕까지 차지한 그였습니다.

 

감독

이비차 오심

포지션:MANAGER

국적: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생년월일:1941년 5월 6일

국대 커리어

1986년 ~ 1992년

 

유고슬라비아의 황금 세대를 지휘했던 카리스마 명장. 4-4-2 포메이션을 토대로 한 롱볼 빌드업과 선굵은 공격을 주로했던 그는 특히나 선수들에게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전술을 만들었습니다.

 

즐라트코 부요비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다르코 판체프, 사페트 수시치 등등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그는 드디어 1990년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올랐고 스페인까지 잡아내며 8강행을 이끌었습니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던 그는 2년 뒤 유로를 도모했으나 내전으로 폭격당한 가족들을 안위를 위해 감독직을 사임하는 선택을 내렸고 유고슬라비아는 얼마안가 참가 자격 박탈을 당하게 됩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페타르 라덴코비치

포지션:GK

국적:세르비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34년 10월 1일

주요 클럽:TSV 1860 뮌헨

국대 커리어

1956년

A매치 3경기

1956 하계 올림픽 은메달

 

당시에는 괴짜로 평가받았지만 현대에는 스위퍼 키퍼의 시초격 인물로 재평가받는 골키퍼. 선방 능력도 분명 우수했지만 그를 빛나게 했던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골문을 버리고 튀어나와 뒷공간 커버를 하고 전진 드리블로 나아가는 플레이를 했던 라덴코비치는,

 

1860 뮌헨의 약진을 함께 하며 1963/64 시즌의 포칼 우승, 다음 시즌의 컵위너스컵 결승 진출, 65/66 시즌에는 대망의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손에 넣으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렇게 초창기 분데스리가를 빛내며 키커 올해의 팀에도 2시즌 들었던 라덴코비치는 1956 올림픽에선 은메달에 기여하기도 했으나 안정감 문제로 인해 감독들에게 기피되었고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라이트백

블라디미르 두르코비치

포지션:​RB

국적:​세르비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37년 11월 6일

주요 클럽: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6년

A매치 50경기 0골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4강

1960년대 초반 동유럽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명망 높았던 선수. 뛰어난 체력과 성실한 수비 자세, 발군의 오버래핑으로 오른쪽을 꽉꽉 채웠었던 블라디미르 두르코비치,

 

그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품에서 전성기를 맞이해 뛰어난 멤버들과 5차례의 리그, 3차례의 컵, 1차례의 미트로파 컵 획득에 일조했으며 후에 분데스의 묀헨글라트바흐를 거쳐 AS 생테티엔 소속으로도 리그 1 3연속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 2연속 우승을 이뤄 엄청난 인기도를 얻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최전성 시대를 함께 했던 두르코비치는 1960년 유로에서 올스타에 드는 폼으로 준우승, 1962 월드컵에서는 4강에 안착했습니다.

 

센터백

밀루틴 이브코비치

포지션:​CB

국적:세르비아

신장:188cm

생년월일:1906년 3월 3일

주요 클럽:SK 유고슬라비야

국대 커리어

1925년 ~ 1934년

A매치 39경기 0골

1930 FIFA 월드컵 4강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초창기를 대표했던 레전드 수비수. 요새와 같은 난공불락의 1대1 마크 능력을 비롯해 일품의 태클링까지 겸비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었던 밀루틴 이브코비치입니다.

 

SK 유고슬라비야에서 뛰면서 2차례의 자국 리그 챔피언에 올랐던 이브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국대 유니폼을 입고도 대활약해  1930년 초대 월드컵 4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30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군에 포로로 끌려가 총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센터백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포지션:​CB

국적:세르비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69년 2월 20일

주요 클럽:SS 라치오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3년

A매치 63경기 9골

 

축구사를 빛낸 역대 최고의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가운데 한명으로 추앙받는 수비수. 뛰어난 대인마킹과 악착같은 파이터 기질의 투지를 바탕으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던 그는 28골로 세리에 A 역대 최다 프리킥 득점자, 4대 리그에서 유일한 한경기 프리킥 해트트릭 기록자 등 자타가 공인할 만한 프리킥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때문에 '미사일로비치'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21세의 나이에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1990/91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고 1년 뒤 내전을 피해 세리에로 진출, 로마와 삼프도리아를 거쳐서 라치오의 품으로 오게 되었고 막강한 멤버들과 구단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며 각 1차례의 위너스컵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 ESM 올해의 팀에 들며 1999/00 시즌의 '도메스틱 더블'을 만들어낸 바 있습니다. 

 

시니샤 미하일로비치는 내전으로 인해 한동안 국제대회에 못나오다 햐얀 독수리 군단의 1998년 월드컵의 16강행을 함께 했습니다.

 

레프트백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포지션:LB

국적:세르비아

신장:187cm

생년월일:1985년 11월 10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국대 커리어

2008년 ~ 2020년

A매치 94경기 11골

 

'세르비아산 각도기'로 불렸던 2010년대 프리미어 리그와 세리에 A 수위급 레프트백. 풀백임에도 스피드는 느리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공격 능력이 최대 장점으로 적절한 타이밍의 전진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땅볼 크로스, 기가 막힌 프리킥 능력을 통해 많은 감독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콜라로프는 라치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신흥 강호인 맨시티에 합류했으며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서 각 2차례의 PL, 리그컵 우승과 2010/11 시즌에는 FA컵 우승으로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까지 타냈습니다. 후에 로마로 이적해서도 뛰어난 폼을 보였으며 2018/19 시즌에는 세리에 A 올해의 팀에까지 선정되었습니다. 더해서 그는 2018년 월드컵에 주장으로 참가해 프리킥골도 넣은 바 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포지션:DM

국적:세르비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69년 8월 30일

주요 클럽:유벤투스 FC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2년

A매치 41경기 3골

 

1990년대 유럽 축구계를 풍미한 '유고슬라비아의 지단'. 깔끔한 탈압박 개인기와 뛰어난 체력을 토대로 한 압박, 정교한 패스 능력을 자랑해 중앙부터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 스트라이커까지 두루 소화하던 유고비치였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당시 돌풍을 일으키던 레드 스타의 1990/91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 멤버였던 1991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MVP로 뽑히기까지 했고 그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빅리그로 도전하게 되어 삼프도리아, 유벤투스, 라치오에서 모두 메이저 타이틀을 따낸 바 있습니다. 특히 유베 소속으로 1995/96 시즌 챔스 우승에 이바지한 그는 각 1번의 월드컵과 유로에서 토너먼트 진출을 이뤘습니다.

 

라이트 윙어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

포지션:RM

국적:세르비아

신장:171cm

생년월일:1907년 9월 9일

주요 클럽:BSK 베오그라드

국대 커리어

1926년 ~ 1938년

A매치 58경기 37골

1930 FIFA 월드컵 4강

 

유고슬라비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폭격기 가운데 한명. 선수생활 초창기에는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뛰었으나 온몸을 이용한 어마무시한 득점 능력을 페널티 박스 안에서 발휘할 수 있어 스트라이커로 대성한 이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명문 클럽들을 거치면서 6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컵 대회 우승을 이끄는 한편, 무려 700골을 넣었던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는 자국의 국가대표로도 막강한 축구 강국들을 상대로 호성적을 내면서 2차례의 발칸컵 우승과 1930 월드컵 4강행을 실현시킨 바 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포지션:AM

국적:세르비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55년 7월 1일

주요 클럽:첼시 FC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48경기 2골

 

세르비아 축구사 최고의 명문팀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밝게 빛내고 있는 여섯 별 중 하나. 페트로비치는 우아한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유려한 드리블 능력, 골망을 뚫는 중거리 능력으로 이름을 날린 1980년대 세계구급 레벨의 공격형 미드필더였습니다.

 

'비둘기'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10년간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서 활약하면서 4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컵, 1978/79 시즌 UEFA컵 우승, 1981년 발롱도르 16위에 빛나는 성적들을 쌓아갔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라이코 미티치, 드라간 자이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등이 올라가있는 구단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있는 6명 중 한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보라 코스티치

포지션:LM

국적:세르비아

신장:184cm

생년월일:1930년 6월 14일

주요 클럽:FK 츠르베나 즈베즈단

국대 커리어

1956년 ~ 1964년

A매치 33경기 26골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의 전성기의 핵심멤버로 자리 잡았던 유럽 최고의 윙어 중 한명. 정교한 크로스와 왼발 슛팅 능력, 센스 있는 드리블 돌파와 볼컨트롤로 정평이 나있던 보라 코스티치는,

 

자국의 명문팀 레드 스타 소속으로 유고슬라비아 리그 우승 5회,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 3회, 리그 득점왕 2회, 1958년의 미트로파 컵 우승 등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전성기 대표팀의 일원으로도 올스타팀에 선정되며 유로 1960에서 준우승을 이끌었고 1960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발칸 반도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스트라이커

밀란 갈리치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73cm

생년월일:1938년 3월 8일

주요 클럽:FK 파르티잔

국대 커리어

1959년 ~ 1965년

A매치 51경기 37골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60 UEFA 유로 준우승

1962 FIFA 월드컵 4강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넘어 유럽에서도 알아줬던 명 공격수.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발군의 득점 능력을 보유했으면서도 이타적인 플레이까지 잘했던 밀란 갈리치는,

 

자국 FK 파르티잔의 최전성기를 이끄는 에이스로 성장한 그는 4번의 리그 우승과 1965/66 시즌 레알에게 패하긴 했으나 유러피언컵 결승까지 오르는 역대급 성적을 냈습니다. 후에 벨기에 리그로 이적해서도 2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역시 공격대장으로서 1960년의 유로 준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당시 득점왕의 왕좌에 앉았고 2년 뒤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최고 성적을 낼 당시에도 뛰어난 모습에 발롱도르 8위라는 순위로 자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스트라이커

사보 밀로셰비치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86cm

생년월일:1973년 9월 2일

주요 클럽:레알 사라고사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8년

A매치 102경기 37골

 

1990년대 후반 발칸 반도의 혼란한 시기를 대표했던 유고 연방 최후의 스타. 뛰어난 헤딩 능력과 송곳 같은 왼발 슛팅, 강인한 피지컬로 버티는 플레이도 잘하던 밀로셰비치는 간혹 쉬운 찬스도 날려버려 'Milosevic'가 아닌 'Miss a lot evic'라는 언어유희의 오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파르티잔에서 본격적으로 주가를 올렸던 그는 PL의 아스톤 빌라로 이적해 1995/96 시즌의 EFL컵 우승을 이끄는 약진을 함께 했고 특히 레알 사라고사에서는 커리어 피크를 찍으며 21골로 1999/00 시즌 리그 4위를 견인합니다. 그는 후에 파르마, 셀타비고, 오사수나 등의 클럽을 거치면서도 준수했던 인물이며 특히 대표팀에선 2000년 유로의 5골로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와 대회 득점왕, 06 월드컵에선 주장 완장까지 찼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

 

미로슬라프 주키치

주 포지션:​CB

국적:세르비아

신장:185cm

생년월일:1966년 2월 19일

주요 클럽: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국대 커리어

1991년 ~ 2001년

A매치 48경기 2골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라리가를 풍미했던 유고슬라비아산 명 리베로. 깔끔한 볼커팅과 날카로운 태클, 냉철한 경기 리딩을 바탕으로 후방에서 팀을 휘어잡는 리딩을 해내던 미로슬라프 주키치였습니다.

 

1990/91 시즌 스페인 비행기를 타고 데포르티보 유니폼을 입게된 그는 팀의 핵심으로서 레알, 바르샤를 위협하던 '수페르 데포르'라 불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1992/93 시즌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 94/95 시즌의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보답 받았습니다. 후에 발렌시아로 이적해서도 2000/01 시즌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챔스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국대에서도 주전으로 유로 2000 8강을 달성했습니다.

 

네마냐 마티치

주 포지션:DM

국적:세르비아

신장:194cm

생년월일:1988년 8월 1일

주요 클럽:첼시 FC

국대 커리어

2008년 ~ 2019년

A매치 48경기 2골

 

2010년대 중반부터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명. 빼어난 활동량과 안정적인 포백 보호, 긴 다리를 이용한 학다리 태클, 깔끔한 패싱과 발밑까지 지닌 그는,

 

벤피카에서 친정팀인 첼시의 부름을 받고서 은골로 캉테,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과 중원에서 협업해 2차례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2014/15 시즌 PFA 올해의 팀에 들었떤 마티치는 후에 맨유, 로마로 이적해서도 나름 괜찮았으며 후자 소속으로는 대회 베스트에 들며 22/23 시즌 유로파 준우승에 성공했습니다. 2014년과 15년은 세르비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주 포지션:CM

국적:​세르비아

신장:192cm

생년월일:​1995년 2월 27일

주요 클럽:SS 라치오

국대 커리어

2017년 ~

A매치 47경기 7골

2010년대 중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라치오를 넘어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 가운데 하나. 190이 넘는 신체 조건을 이용한 경합 능력과 유연성을 이용해 박스 내에서 위협적이었으며 발군의 탈압박, 패스, 슛팅 실력을 가져 미들진에서도 그 존재감은 여전했습니다.

 

시모네 인자기 감독의 사랑을 받으며 어린 나이부터 팀의 핵심으로 성장했던 밀린코비치사비치는 구단의 약진을 이끄는데 잇어서 치로 임모빌레, 루이스 알베르토와 같이 가장 중요한 선수였으며 2차례의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8/19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같이 세리에 올해의 미드필더로까지 선정되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알렉산다르 타르나니치

주 포지션:RW

국적:세르비아

신장:168cm

생년월일:1910년 7월 15일

주요 클럽:BSK 베오그라드

국대 커리어

1929년 ~ 1940년

A매치 50경기 12골

1930 FIFA 월드컵 4강

 

1930년대 발칸 반도의 축구를 상징했던 윙포워드. 화려한 개인기 기술과 뛰어난 스피드로 오른쪽에서의 질주를 보이며 윙플레이의 달인이던 타르나니치는 당대 자국의 초창기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였습니다.

 

그는 BSK 베오그라드라는 자국 클럽에서 블라고예 마르야노비치와 괴물 공격 듀오를 협성해 527경기에서 500골을 넣는 전설을 썼습니다. 타르나니치는 1930년에 열린 초대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랐으며 예선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사상 첫번째 골을 넣었고 이는 브라질의 월드컵 역사상 첫 실점이기도 했습니다.

 

두샨 타디치

주 포지션:CF

국적:세르비아

신장:181cm

년월일:1988년 11월 20일

주요 클럽:AFC 아약스

국대 커리어

2008년 ~

A매치 104경기 22골

2010년대 중후반 ~ 2020년대 초반 아약스와 세르비아의 공격을 지휘하는 선봉장. 유려한 볼 다루는 기술, 탁월한 왼발 킥에서 나오는 찬스 메이킹, 슛팅 능력이 최대 장점인 타디치는,

 

2018년 소튼에서 아약스로 이적해 10번을 부여받고 대활약하기 시작했고 그의 활약 덕에 팀은 3차례의 리그 우승과 2차례의 컵 우승을 이뤘습니다. 아약스에 오고 4연속 도움왕을 차지한 그는 특히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진출한 돌풍의 18/19 시즌엔 디펜딩 챔피언 레알를 박살내며 평점 10점을 부여받았고 리그 득점왕, 챔스 도움왕, 챔스 올해의 스쿼드에 뽑히는 인생 시즌을 보냈습니다.

 

토도르 베셀리노비치

주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72cm

생년월일:1930년 10월 22일

주요 클럽:FK 보이보디나

국대 커리어

1953년 ~ 1961년

A매치 37경기 28골

1956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날라다니던 유고산 명 스트라이커 계보 중 하나. 수비 라인을 농락하는 오프사이드 트랩 뚫기 능력과 깔끔한 퍼스트 터치, 부드러운 결정력을 바탕으로 폭격을 감행하던 토도르 베셀리노비치의 능력은,

 

모이보디나라는 비교적 약한 클럽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별들이 활약하던 당시 유고슬라비아 리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4차례의 리그 득점왕 타이틀을 가져갔으며 대표팀에서도 이 감각을 이어가 1956년 올림픽에서 4골로 은메달, 득점왕까지 수상받았습니다.

 

다르코 코바체비치

주 포지션:ST

국적:세르비아

신장:188cm

생년월일:1973년 11월 18일

주요 클럽:레알 소시에다드

국대 커리어

1994년 ~ 2004년

A매치 59경기 10골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라리가를 주름 잡았던 세르비아산 공중 폭격기. 박스 안에서의 똑똑한 위치 선정과 위력적인 헤딩 능력, 뛰어난 포스트 플레이를 바탕으로,

 

라치오와 유벤투스에서는 실패했지만 스페인 소시에다드에서 니하트 카베치와 투톱을 결성했고 특히 우측과 좌측의 발레리 카르핀과\, 하비에르 데 포로의 크로스를 받는 공격패턴으로 커리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소시에다드의 2002/03 시즌 라리가 준우승을 이끌었고 본인은 UEFA컵에서 최초로 2연속 득점왕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일리야 판텔리치

이반 추르코비치

드라간 판텔리치

 

중앙 수비수

네냐드 스토이코비치

블라고예 파우노비치

네벤 수보티치

 

측면 수비수

밀란 다미아노비치

페타르 크리보쿠차

드고슬라프 스테파노비치

 

중앙 / 수비형 미드필더

밀로라드 아르세니예비치

부야딘 보슈코프

요반 아치모비치

미로슬라프 파블로비치

블라디슬라프 보기체비치

 

공격형 미드필더

프로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즈보니미르 부키치

 

윙어

드라간 요바노비치

일리야 페트코비치

즈베즈단 페비야츠

 

센터 포워드

조르제 부야디노비치

이반 베크

블라디미르 코바체비치

마테야 케즈만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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