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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베스트 11/동유럽

헝가리 축구 역대 베스트 11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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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국가대표

< Hungary >

홈구장:푸슈카시 아레나

최다 득점자:푸슈카시 페렌츠 84

최다 출장자:벌라주 주자크 109경기

최고 성적:​FIFA 월드컵 준우승(1938, 1954)

UEFA 유로 3위(1964)

역대 최고의 선수:푸슈카시 페렌츠

주장:샤로시 죄르지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그로시치​ 줄러

포지션:GK

국적:헝가리

신장:180cm

생년월일:1926년 2월 4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국대 커리어

1947년 ~ 1962년

A매치 86경기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스위퍼 키퍼라는 포지션의 선구자이자 1950년대 당대 최고의 골키퍼 가운데 한명. 날렵한 민첩성을 이용해 손으로 공을 막는 플레이도 당연 최고였지만 박스 바깥으로 튀어나와 공을 걷어내고 정교한 킥으로 빌드업의 시발점이 되는 현대 축구가 원하는 골키퍼의 이상향을 몇십년 전에 보여줬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로시치는 푸슈카시 페렌츠, 코츠시스 산도르, 보지크 요제프 등의 월드클래스 자국 선수들과 헝가리 군산하의 부다페스트 혼베드 소속으로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헝가리 대표팀의 주전으로도 1952 올림픽 금메달, 1953 중앙 유럽컵 우승, 1954 월드컵에서도 대회 베스트 11 선정, 결승전까지 31경기 무패를 달렸으나 서독에게 결승서 패하면서 '매직 마자르'는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혁명으로 후에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센터백

휘글 카로이

포지션:​CB

국적:​헝가리

신장:​180cm

생년월일:​1895년 1월 19일

주요 클럽:​우이슈페티 FC

국대 커리어

1918년 ~ 1929년

A매치 51경기 2골

 

1910년대 ~ 20년대에 걸쳐 헝가리 축구를 빛낸 위대한 수비수 중 한명. 휘글 카로이는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팬들에게 믿음직한 방어를 연일 선보이던 선수였으며 동생인 휘글 요제프와 함께 뛰면서 '휘귈 게이트'이라 불리는 축구사 최초의 명 수비 듀오를 형성한 것으로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리더십을 갖춰 주장으로도 활약했으며 우이페슈티의 1929/30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도 그는 당시로는 굉장히 많은 50경기를 출장하기도 했습니다.

 

센터백

메스죌리 칼만

포지션:CB

국적:헝가리

신장:181cm

생년월일:1941년 7월 16일

주요 클럽:버셔시 SC

국대 커리어

1961년 ~ 1971년

A매치 61경기 6골

1960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64 UEFA 유로 3위

 

1960년대 동유럽 최고 레벨의 스위퍼로 불린 '황금 바위'. 강력한 대인 방어 능력과 첨예한 태클 능력, 거기다 금빛 머리를 가지고 피치 위를 누볐던 점 때문에 그런 별명을 얻었던 칼만은 발밑 또한 뛰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습니다.

 

그는 버셔시 SC라는 클럽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보낸 원클럽맨으로서 4차례의 리그 우승컵과 3번의 미트로파컵 트로피를 획득, 1962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 67년엔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뽑혔습니다. 마자르 유니폼을 입고도 메스죌리 칼만은 1960년 하계 올림픽, 1964년 유로에 참가해 과도기이던 헝가리 축구에 각 3위라는 호성적을 선사했습니다.

 

센터백

란토스 미할리

포지션:CB

국적:헝가리

신장:​177cm

생년월일:​1928년 9월 29일

주요 클럽:MTK 부다페스트 FC

국대 커리어

1949년 ~ 1956년

A매치 52경기 5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성적을 떠나서 전술적인 부분에서 봐도 축구 역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1950년대 전설의 헝가리 대표팀의 왼쪽 수비수. 레프트 하프, 레프트 풀백 등 현대의 왼쪽 수비형 미드필더나 측면 수비수, 왼쪽 스토퍼 역할을 두루 소화했던 그는 특유의 오버래핑 능력을 바탕으로 수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진해 패스를 뿌리는 오버래핑으로 공격 지원하는 혁신적인 스타일을 소화했습니다.

 

MKT 헝가리아라는 클럽에서 총 3번의 리그와 1번의 컵 우승을 달성했던 란토스 미할리는 마자르 유니폼을 입고도 막강한 멤버들과 1954년의 월드컵 준우승을 비롯한 수많은 영광을 함께 누린 바 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샤로시 죄르지

포지션:DM

국적:헝가리

신장:181cm

생년월일:1912년 8월 5일

주요클럽:페렌츠 바로시 TC

국대 커리어

1947년 ~ 1962년

A매치 62경기 42골

1938 FIFA 월드컵 준우승

 

1938년 월드컵 결승에 헝가리 축구를 올려놓았던 마자르의 대장군. 뭐 하나 부족한게 없었던 완벽에 가까운 문무겸비의 선수로 드리블, 패스, 전술 이해도, 피지컬, 스피드, 슛 심지어는 수비까지 잘해서 주 포지션인 인사이드 포워드 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자국의 강호, 페렌츠바로시라는 클럽에서만 모든 커리어를 보내며 무려 450경기 420골, 5번의 헝가리 리그 우승, 4번의 헝가리컵 우승, 1937 시즌의 미트로파컵 우승을 거머쥔 바 있습니다. 미트로파컵 역대 최다 득점자인 샤로시 죄르지는 또 마자르의 일원으로는 1938년 월드컵에 참가해 8강부터 결승까지 연속골로 준우승에 도달했고 비공식 대회 베스트 11에 이름까지 올리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보지크 요제프

포지션:DM

국적:​헝가리

신장:​173cm

생년월일:​​1925년 11월 28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국대 커리어

1947년 ~ 1962년

A매치 101경기 11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매직 마자르'라는 역대급 국가대표팀의 두뇌이자 1950년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하프백(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하며 수비에만 치중하던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안정적인 볼배급, 조율로 적극적으로 공격 전개에 크게 기여하면서 우수한 슛팅, 드리블도 선보였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자국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부다페스트 혼베드라는 팀에서 무려 5번의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1952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탔습니다. 헝가리 국기를 가슴에 달고는 역대 2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으며 1952 올림픽 금메달, 1954 월드컵에서는 비공식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면서 준우승을 차지해 마자르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습니다.

 

라이트 윙어

알베르트 플로리안

포지션:RM

국적:헝가리

신장:181cm

생년월일:1941년 9월 15일

주요 클럽:페렌츠 바로시 TC

국대 커리어

1959년 ~ 1974년

A매치 75경기 31골

1960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64 UEFA 유로 3위

 

페렌츠 푸스카스도 하지못한 헝가리 축구사 유일무이한 발롱도르 위너. 뛰어난 드리블 돌파와 민첩한 페인팅 동작, 직접 골을 넣으면서도 결정적인 킬패스를 뿌리기까지 하던 선수로 최전성기 이후 주춤대던 헝가리를 다시 유럽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선수입니다.

 

'황제' 알베르트 플로리안은 자국 페렌츠 바로시의 원클럽맨으로 팀에 4차례의 리그, 1964/65 시즌의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컵을 선사했습니다. 더불어 3번의 리그 득점왕, 1번의 유러피언컵 득점왕, 2번의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탔던 선수이며 1967년에는 아직까지도 마지막인 자국 최후의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대표팀의 일원으로도 그는 1962 월드컵의 신인상, 득점왕과 8강 진출을, 유로 1964에서는 대회 올스타팀과 3위 달성을, 1966년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더 비공식 올스타팀에 드는 매우 우수한 활약을 남긴 바 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페렌츠 푸스카스​

포지션:AM

국적:헝가리, 스페인

신장:172cm

생년월일:1927년 4월 1일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6년

A매치 85경기 84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유럽 축구를 지배하던 당대 최고의 전설적인 공격수. 골대가 흔들리고 골키퍼의 갈비뼈를 뿌러트릴 만한 고통을 주는 강력한 왼발 슛을 쏘던 푸스카스는 득점 능력도 뛰어났지만 우수한 연계, 플레이메이킹, '드래그백'으로 대표되는 볼컨트롤까지 이타적인 플레이까지 지녔었습니다.

 

그는 잘나가던 헝가리에서 혁명이 일어나 1956년 스페인으로 망명했고 2년의 공백 후인 1958년, 31세라는 늦은 나이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잔디를 밟게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이를 잊게하는 활약으로 39세의 나이까지 뛰며 4차례의 리그 우승, 3차례의 유러피언컵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각각 4번, 2번의 라리가와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따낸 그는 1960년 발롱도르 2위에도 올랐으며 유러피언컵 5연패를 확정짓는 59/60 시즌 결승에서는 심지어 4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매직 마자르'라는 당대 최고의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도 푸스카스는 무려 4년 동안 무패행진을 이끌며 195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냈고 54년 월드컵에서도 결승에 올랐으나 서독에게 역전패 당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히데구티 난도르

포지션:AM

국적:헝가리

신장:179cm

생년월일:1922년 3월 3일

주요 클럽:MTK 부다페스트 FC

국대 커리어

1945년 ~ 1958년

A매치 69경기 39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초중반 유럽 톱클래스의 공격 자원이자 축구 역사상 최초의 펄스나인. 뛰어난 드리블을 가진 라이트 윙어였으나 뛰어난 전술 이해도, 몸싸움, 플레이메이킹 기질 덕에 셰베시 구스타브 감독의 선구안에 띄어 현대의 '가짜 9번', '제로톱'으로 불리는 미끼형 센터 포워드 역할을 소화했던 그였습니다.

 

히데구티 난도르는 MTK 헝가리아에서 득점왕으로서 1955년의 미트로파컵 우승을 비롯한 3번의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1950년대를 호령한 '매직 마자르'의 핵심 멤버로도 그는 1952년 올림픽 금메달, 비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는 활약으로 1954년 월드컵 준우승 등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그의 커리어 하이라이트라면 6대3으로 대승을 거두며 잉글랜드의 홈 무패 기록을 깬 1953년, 히데구티는 해당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웸블리 스타디움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레프트 윙어

라슬로 쿠발라

포지션:LM

국적:헝가리, 스페인, 체코슬로바키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27년 6월 10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체코슬로바키아 1946년 ~ 1947년

A매치 6경기 4골

헝가리 1948년

A매치 3경기 0골

스페인 1953년 ~ 1961년

A매치 19경기 11골

 

마드리드의 디 스테파노에게 대적하던 대항마이자 20세기 바르샤 최고의 선수. 쿠발라는 눈을 즐겁게 하는 개인기와 톡톡 튀는 드리블, 뛰어난 패스, 발군의 득점력, 당시로써는 보기 힘든 휘어지는 프리킥 등으로 당대 바르셀로나의 아이돌격 존재로 여겨졌었습니다.

 

본국이던 헝가리의 억압된 환경과 병역 의무에서 도망쳐 스페인 바르샤로 망명온 그는 1950년대 바르샤의 전성기, '친코 코파스 바르셀로나'(친코 코파스는 라리가, 국왕컵, 라틴컵, 코파 에바 두아르테를 포함한 5개의 트로피를 뜻하는 스페인어) 세대의 에이스로 4번의 리그, 5번의 국왕컵, 2번의 인터 시티 페어스컵을 들어올렸습니다. 1960/6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1957년엔 발롱도르 5위에 올랐으며 FC 바르셀로나의 경기장인 캄프 누에는 쿠발라를 기리기 위한 동상까지 세워져있습니다.

 

스트라이커

코츠시스 산도르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신장:177cm

생년월일:1929년 9월 21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국대 커리어

1948년 ~ 1956년

A매치 68경기 75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당대를 풍미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매직 마자르'의 득점을 책임진 '황금 머리'. 별명처럼 가공할 만한 점프력과 위치 선점 능력을 바탕으로 파워 헤더를 내리꽂는데 능했으며 물론 발로 골을 넣는것 역시 아주 뛰어났던 선수였습니다.

 

산도르 코츠시스는 페렌츠바로시, 부다페스트 혼베드 등의 헝가리 클럽에서 뛰면서 3차례의 리그 우승을 거두었으며 또 헝가리 혁명 후에는 스페인으로 귀화해 바르샤에서 뛰면서도 2차례의 라리가 우승과 1960/61 시즌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으로 선수 생활을 전성기를 구가한 바 있습니다.

 

국가대표로는 1952 올림픽에서 6골로 득점왕과 금메달을 얻었으며 2년 뒤 월드컵에서도 부상당한 푸스카스의 공백을 메꾸며 무려 11골을 폭격해 대회 득점왕과 MVP로까지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국은 아쉽게 서독에게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감독

셰베시 구스타브

포지션:MANAGER

국적:헝가리

생년월일:1906년 1월 22일

국대 커리어

1949년 ~ 1957년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매직 마자르'의 위대함을 이룩해냈던 '소셜리스트 풋볼'의 창제자. MM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삼고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에 국한되어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패스를 주고받고 위치를 바꾸는 스위칭 플레이로 경기를 푸는 스타일을 이끌어내 축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푸슈카시 페렌츠로 대표되는 당시 헝가리의 뛰어난 멤버들도 강력했지만 보지크 요제프에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히데구티 난도르에겐 펄스나인의 프로토타입 같은 롤을 부여하고 수비수들의 오버랩을 지시하는 그의 공격적인 전술의 영향도 당시 헝가리의 전성기에 당연히 주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덕분에 조국은 무려 31경기 무패라는 괴랄한 퍼포먼스로 세계를 집어삼켰고 1952 올림픽 금메달, 1954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낳았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플라트코 페렌츠

포지션:GK

국가:헝가리

신장:188cm

생년월일:1898년 12월 2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1917년 ~ 1923년

A매치 6경기

 

주제프 사미티에르, 파울리뇨 알칸타라와 함께 1920년대 바르셀로나를 책임진 골리. 스페인 최고의 골키퍼로 불렸던 리카르도 사모라라는 전설적인 골키퍼의 후임으로 왔음에도 그 공백이 허전하지 않았다고 평가 받았을 정도의 선방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페렌츠 플라트코의 활약 덕에 바르셀로나는 1928/29시즌 라리가가 창단한 해에 초대 우승자 자리를 가져갔고 더해서 6번의 카탈루냐 리그, 3차례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센터백

비로 샨드로

포지션:CB

국적:헝가리

신장:​185cm

생년월일:​1911년 8월 19일

주요 클럽:MTK 부다페스트 FC

국대 커리어

1932년 ~ 1946년

A매치 54경기 2골

1938 FIFA 월드컵 준우승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1930년대 동유럽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한명. 타고난 신체 조건과 번뜩이는 수비력 덕에 측면과 중앙, 수비와 미들진을 모두 뛸 수 있었던 비로 샨드로는,

 

MTK 헝가리아에서만 축구 선수로 뛰면서 커리어 총 2번의 헝가리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1940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는데 이르렀습니다. 그는 마자르의 품에서도 1938년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월드컵 결승에 올르는데 크게 이바지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센터백

로런트 줄러

포지션:CB

국적:헝가리

신장:185cm

생년월일:1923년 2월 6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국대 커리어

1949년 ~ 1955년

A매치 37경기 0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헝가리 대표팀 '매직 마자르'의 대들보 역할을 해냈던 명 수비수. 훌륭한 피지컬을 이용한 대인 마크 능력도 탑급이었고 강력하고 거친 수비를 즐겨하기도 했지만 미드필더처럼 볼을 차 간혹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되었던 자원입니다.

 

로런트 줄러는 부다페스트 혼베드나 페렌츠바로시 같은 당시 헝가리 리그의 강팀에서 활약했던 선수는 아니었고 주목도도 덜한 선수였지만 셰베시 구스타브 감독에게 그 발밑 능력이 눈에 띄어 대표팀 전성기의 확고한 주전으로 활약했고 1952 올림픽 금메달, 1953 중앙 유럽컵 우승, 1954 월드컵 결승 진출을 모두 같이 해냈습니다.

 

센터백

휘글 요제프

포지션:CB

국적:헝가리

신장:​177cm

생년월일:​1897년 8월 14일

주요 클럽:우이페슈티 FC

국대 커리어

1920년 ~ 1930년

A매치 37경기

 

백3가 축구계에 발명되기 전, 오직 2명의 수비수만이 수비 라인을 구성하던 시대에 헝가리 축구 최고의 레프트 풀백으로 불리던 인물. 뛰어난 수비력 이 외에도 날카로운 킥 능력까지 갖추어 팀의 세트피스를 모두 도맡았던 인물로 전해지며 때문에 한칸 위의 하프백도 볼 수 있던 인물입니다.

 

또한 휘글 요제프는 형 로이와 '휘글의 문'이라 불리는 난공불락의 수비 듀오를 형성했고 우이페슈티에서 미트로파컵 우승을 포함해 총 10번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바 있습니다. 또한 주장직까지 역임했던 그는 클럽의 원클럽맨이기도 합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오르스​ 죄르지

포지션:DM

국적:헝가리

신장:185cm

생년월일:1901년 4월 30일

주요 클럽:MTK 부다페스트 FC

국대 커리어

1917년 ~ 1927년

A매치 32경기 13골

 

MTK 헝가리아의 전설적인 왕조를 상징하는 1920년대 헝가리 리그를 대표 스타 플레이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플레이로 사람들의 이목을 한데 집중 시킬 수 있었던 오르스는 공수 양면에 걸쳐 완벽하기까지 해 현대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로 모두 활약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지미 호건 감독이 이끄는 부다페스트에서 맹활약하며 리그 8연패라는 엄청난 대기록을 세우는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1924 하계 올림픽에 참가해선 이집트에게 대패하며 광탈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고 후에 본인은 부상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며 명성과는 달리 국대와의 인연은 적은 편이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시포스 페렌츠

포지션:DM

국적:헝가리

신장:180cm

생년월일:1932년 12월 13일

주요 클럽:MTK 부다페스트 FC

국대 커리어

1957년 ~ 1966년

A매치 77경기 1골

1964 UEFA 유로 3위

 

1960년대 헝가리 축구의 약진을 대표하던 동유럽의 A급 수비형 미드필더. 강력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1대1 방어에도 능했지만 '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왕성한 활동량과 축구 지능으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하던 시포스 페렌츠는,

 

MTK 헝가리아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 폼을 보였던 그는 1958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으며 특히 3번의 월드컵에 참가, 2번의 8강에 올랐으며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전 대회 MVP인 가린샤를 꽁꽁 묶는 수비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 윙어

베네 페렌츠

포지션:RM

국적:헝가리

신장:171cm

생년월일:1944년 12월 17일

주요 클럽:우이페슈티 FC

국대 커리어

1962년 ~ 1979년

A매치 76경기 36골

1964 UEFA 유로 3위

1964 하계 올림픽 금메달

 

'매직 마자르' 이 후 무너질 것만 같던 헝가리 축구를 버티게한 당대 유럽 최고의 테크니션. 뛰어난 드리블 돌파와 기막힌 라인 브레이킹, 날카로운 마무리 등을 모두 겸비해 스트라이커와 라이트 윙어의 위치에서 모두 유명했으며,

 

이런 페릭은 자국의 우이페슈티 FC 소속으로만 18년의 모든 축구 인생을 지내며 8차례의 리그, 3차례의 컵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우는 활약을 했습니다. 6번의 리그 득점왕, 4번의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팀에 포함되기까지 한 그는 국가대표로도 알베르트 플로리안과 협업해 헝가리의 공격을 이끌었고 1964년의 유로와 하계 올림픽에서 모두 3위라는 성적을 득점왕으로서 견인, 2년 뒤 월드컵에서도 날아다니며 비공식 올스타에 선정, 헝가리의 8강행을 이끌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쉬로서 임레

포지션:AM

국적:헝가리

신장:185cm

생년월일:1889년 10월 11일

주요 클럽:페렌츠바로시 TC

국대 커리어

1906년 ~ 1927년

A매치 68경기 59골

 

단순히 헝가리 축구계를 넘어서 축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역대급 득점 기계. 선수 커리어 통틀어 득점 비율이 1경기 1골을 넘는 괴물 골게터로서 발끝에서 보여주는 폭발력으로도 유명했지만 실제로는 한칸 아래서 내려와 볼을 받고 뿌려주는 플레이메이커 기질도 있었던 쉬로서였습니다.

 

그는 자국의 명문, 페렌츠바로시와 MTK 헝가리아 등 헝가리 리그에 오랜시간 머무르며 총 13번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무려 7번의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쉬로서 임레는 거기다가 그동안 유로피언 골든슈를 4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A매치에서도 최초로 50골을 넘게 넣은 선수가 되며 당시 A매치 최다 득점 1위에 올랐고 후배인 페렌츠 푸스카스가 깨기 전까지 이 기록은 30년간 유지되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닐라시 티보르

주 포지션:AM

국적:헝가리

신장:189cm

생년월일:1955년 1월 18일

주요 클럽:페렌츠 바로시 TC

국대 커리어

1975년 ~ 1985년

A매치 70경기 32골

 

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중반 헝가리 축구를 이끌어가던 명품 플레이메이커. 189cm의 거구를 이용한 볼키핑, 부드러운 드리블과 훌륭한 패스 감각 외에도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남다른 득점 능력, 직접 프리킥 능력으로 골도 많이 넣던 이였습니다.

 

닐라시 티보르는 페렌츠 바로시에서 2번의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과 1974/75 시즌 위너스컵 준우승, 80/81 시즌 리그 득점왕을 따냈으며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적해서도 3번의 리그 타이틀과 1983/84 시즌엔 리그는 물론이거니와 UEFA컵 득점왕까지 따내는 위엄을 보였습니다. 77년 발롱도르 7위에도 안착했던 그는 주장으로 1982 월드컵에서 엘살바도르를 10대1로 꺾는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 승리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 윙어

치보르 졸탄

포지션:LM

국적:헝가리

신장:169cm

생년월일:1929년 8월 23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국대 커리어

1949년 ~ 1956년

A매치 43경기 17골

1952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4 FIFA 월드컵 준우승

 

1950년대 당대를 풍미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매직 마자르'의 주전 레프트 윙어. 뛰어난 좌측 사이드 질주, 정교한 크로스 등도 뛰어났으나 졸탄의 최대 장기는 중앙 침투 및 스위칭 플레이로 득점하는 플레이였습니다.

 

이 '헝겊 다리'는 페렌츠 푸스카스 같은 스타들과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페렌츠 바로시에서 헝가리 리그를 지배했고 후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쿠발라 러슬로, 코츠시스 산도르 같은 동료들을 다시 만나 라리가 2연속 우승과 1960/61 시즌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헝가리 국가대표팀 시절에는 당시 셰베시 구스타브 감독이 원하던 '소셜리스트 풋볼' 철학을 잘 이행, 1954 월드컵 결승에서도 골까지 넣었지만 아쉽게 팀은 역전패를 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탄은 비공식 대회 베스트 11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스트라이커

젱겔러 줄러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신장:177cm

생년월일:1915년 12월 27일

주요 클럽:우이페슈티 FC

국대 커리어

1936년 ~ 1947년

A매치 39경기 33골

1938 FIFA 월드컵 준우승

 

페렌츠 푸스카 이전 헝가리 축구를 세계의 정상에 올릴 뻔했던 전설의 포워드. 감각적인 연계와 매서운 드리블에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어마무시하게 폭격해대는 천부적인 골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젱걸러 줄러였습니다.

 

자국 헝가리의 우이페슈티 FC에서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무려 5차례의 리그 득점왕과 1939년 미트로파컵 우승 타이틀을 따낸 그는 잘안풀리긴 했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AS 로마로 이적까지 성사되었습니다. 2번의 유러피언 골든슈의 주인이었던 젱겔러는 1938년도 월드컵에서 자국의 슈퍼스타 샤로시 죄르지와 함께 뛰어난 콤비를 선보이며 5골을 수립, 이태리에게 무너졌지만 헝가리는 결승 무대에 오른 바 있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

 

데타리 러요시

주 포지션:AM

국적:헝가리

신장:180cm

생년월일:1963년 4월 24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국대 커리어

1984년 ~ 1994년

A매치 61경기 13골

 

매직 마자르의 피를 이어받은 헝가리 축구의 마지막 스타 플레이어. 굴지의 플레이 메이킹 능력과 화려한 테크닉, 꽤 뛰어난 슛팅 능력으로 중무장해 직접 득점까지 잘했던 러요시는,

 

자국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3연속 리그 우승과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탈헝가리의 재능으로 해외로 진출했으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1987/88 시즌 포칼 우승을 이루는 등 올림피아코스, 볼로냐, 제노아 같은 타리그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국의 대표로는 침체되어있던 팀을 이끌고 1986년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헝가리의 마지막 월드컵 참가입니다.

 

콘라드 칼만 헝가리

콘라드 칼만

주 포지션:RW

국적:헝가리

신장:181cm

생년월일:1896년 5월 23일

주요 클럽:MTK 부다페스트 FC

국대 커리어

1914년 ~ 1928년

A매치 13경기 2골

 

헝가리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라이트 윙어 중 한명. 현란한 드리블 능력 만큼이나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뛰어났다고 평가받던 콘라드 칼만은 센터 포워드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까지 소화 가능했다고 전해집니다.

 

1920년대를 주름 잡았던 그는 MTK 헝가리아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그 시대에 대륙을 건너 북미 리그로 이적해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영국의 저명한 축구 언론 '월드 사커'가 뽑은 20세기 역대 최고의 선수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파제카시 러슬로

주 포지션:CF

국적:헝가리

신장:178cm

생년월일:1947년 10월 15일

주요 클럽:우이페슈티 FC

국대 커리어

1968년 ~ 1983년

A매치 92경기 24골

1968 하계 올림픽 금메달

 

누가 뭐라해도 1970년대 헝가리 축구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사나이. 날카로운 드리블 실력과 매혹적인 슛팅을 장착해 많은 골에 기여해냈던 파제카시 러슬로의 능력은,

 

17세라는 어린 나이부터 지도자들에 의해 발굴되었고 우이페슈티의 기둥으로 빠르게 성장해 무려 9차례의 헝가리 리그 우승, 3차례의 헝가리컵 우승, 1968/69 시즌의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연 3번의 헝가리 리그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의 영향력과 1970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이기까지 하던 그는 1968 올림픽 금메달, 2번의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데아크 페렌츠

주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신장:174cm

생년월일:1922년 1월 16일

주요 클럽:페렌츠바로시 TC

국대 커리어

1946년 ~ 1949년

A매치 20경기 29골

 

푸슈카시 페렌츠의 직전 세대에 활약했던 1940년대의 괴물 골잡이. 데아크 페렌츠는 페널티 안에서 발동되는 특유의 득점 센스와 슛팅으로 말도 안되는 골 기록을 보여주던 고대 괴수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비공식 기록이 무려 800골이 넘어가며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를 지칭하는유러피언 골든슈를 무려 3시즌간 수상했으며 유럽 단일 시즌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인 1945/46 시즌의 66골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다른 헝가리 스타 선수들과는 다르게 정부가 권유한 군산하팀의 부다페스트로의 이적 제안을 무시했고 이에 국가대표팀 소집 금지는 물론 반정부 인사로 체포 및 가족들의 신변으로 협박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주자 페렌츠

주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신장:178cm

생년월일:1923년 12월 21일

주요 클럽:우이페슈티 FC

국대 커리어

1942년 ~ 1956년

A매치 23경기 18골

 

푸슈카시 페렌츠, 데아크 페렌츠, 쉬로서 임레 같은 괴수 공격수들을 제치고 헝가리 1부 리그인 넴제티 버이녹샤그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 앉아있는 인물. 강력한 킥 능력과 힘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에 능해 수많은 골을 넣던 주자 페렌츠는,

 

우이페슈티 FC 소속으로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1947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리그에서 넣은 골만 무려 393골이며 이는 리그 역대 최다 득점 기록, 하지만 이런 뛰어난 폼에도 불구하고 당시 '매직 마자르'를 이끈 감독 셰베시 구스타브는 그를 기용하지 않았고 조국의 르네상스 시대를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니어스 이스트반

주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신장:​174cm

생년월일:1924년 5월 24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국대 커리어

1945년 ~ 1946년

A매치 2경기 2골

AC 밀란의 군나르 노르달와 자웅을 겨뤘던 인테르의 용병 스트라이커. 노르달이 포스트 플레이를 이용해 골을 만들었다면 이스트반 니어스는 위력적인 드리블 돌파와 슛 테크닉을 이용해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하는 영웅 기질로, 스트라이커 뿐만 아니라 윙어까지 소화하며 활약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헝가리 출생으로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쿠발라 러슬로처럼 자국의 공산화를 피해 이탈리아 무대로 보금자리를 옮긴 니어스 이스트반은 특히 인테르에서 폭발해 리그 2연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해서 데뷔 시즌인 1948/49 시즌에는 26골로 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던 그였습니다. 

 

티치 러요시

주 포지션:ST

국적:헝가리

신장:180cm

생년월일:1935년 3월 21일

주요 클럽:부다페스트 혼베드 FC

국대 커리어

1955년 ~ 1971년

A매치 72경기 51골

1964 UEFA 유로 3위

 

페렌츠 푸스카스의 뒤를 이어 헝가리 축구를 이끌어나갔던 재목이 되었던 스트라이커. 굉장히 기술적인 선수로 드리블 돌파를 즐겨했으며 직접 패스를 뿌리거나하는 플레이 역시도 능통, 본분인 득점 능력 역시도 양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이용해 '폭격기'로 불리기 충분했습니다.

 

티치 러요시는 헝가리 혁명으로 인해 주축 선수들이 조국 땅을 떠나자 기회를 잡았고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2번의 헝가리 리그 우승, 1959 시즌에는 득점왕으로 미트로파컵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1958년 월드컵과 62년 월드컵에서 모두 8강에 오르며 도합 7골을 기록한 그는 주장으로 유로 1964에 나가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삭 카로이

사보 안탈

젱트마하이 언털

 

중앙 수비수

주치 샨도르

주치 러요시

발린트 라즐로

 

측면 수비수

부잔스키 예뇌

마트라이 샨도르

샤로시 러슬로

 

중앙 / 수비형 미드필더

라자르 줄러

뵐뢰니 러슬로

자카리아스 요제프

너기 이스트반

유하스 이스트반

 

공격형 미드필더

괴뢰치 야노스

코치시 러요시

게라 졸탄

 

윙어

보스바르 가스파르

러슬로 부다이

벌라주 주자크

 

센터 포워드

톨디 게자

타카스 요제프

샤퍼 알프레드

퍼르커시 야노시

두너이 언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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