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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역대 최고의 선수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20

by 풋볼피디아 FootballpediA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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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

부지뉴 브라질

부지뉴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5cm

생년월일:1928년 6월 16일

주요 클럽:SC 인테르나시오나우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A매치 5경기 4골

 

카를리투스의 바톤을 이어받어 1950년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의 공격을 책임지던 주포. 인사이드 포워드나 라이트 윙어로 뛰었음에도  빼어난 헤딩 능력과 슛팅을 보유했으며 동물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수비수들을 괴롭혔다고 전해지는 부지뉴는,

 

이미 플라멩구에서 검증된 스트라이커였으며 인테르나시오나우로 이적해서도 7년간 300경기에 나와 약 250골을 기록하는 우수한 퍼포먼스를 남겼습니다. 그는 4번의 히우그란지두술 주립 리그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12개의 트로피를 얻어내며 이스타지우 베이라히우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19위

줄리우 밥티스타 브라질

줄리우 밥티스타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85cm

생년월일:1981년 10월 1일

주요 클럽:세비야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A매치 47경기 5골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07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0년대 브라질 축구와 라리가를 빛냈던 처진 공격수. 장군 소리를 듣던 장대한 피지컬과 슛팅 파워를 보였으면서도 활동량이나 테크닉도 준수해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정도로 유연한 포워드였습니다.

 

줄리우 밥티스타는 세비야에서 2년 연속 시즌 20골을 돌파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하였으나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아스날로 임대, 06/07 시즌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지만 복귀 후 다시 부진하였습니다. 심지어 로마 시절에는 '콰밥만훈'이라 불렸던 세리에 4대 먹튀로 불릴 만큼 조롱받았습니다. 그래도 좋았을 때는 국대에서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07년에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대회 베스트 11에 든 바 있습니다.

 

18위

알레샨드리 파투 브라질

알레샨드리 파투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81cm

생년월일:1989년 9월 2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A매치 27경기 10골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1회

 

2000년대 중후반 혜성처럼 등장한 브라질 축구의 골든 보이. 폭발적인 가속력과 번개같은 라인 브레이킹, 능숙한 마무리 등을 이미 10대부터 완성된 폼으로 연출했었던 파투는 이런 재능과는 달리 부족한 멘탈과 건강함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16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클럽 월드컵 결승에서 푸욜을 농락하며 결승골 어시로 바르샤를 잡고 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모든 기대를 받으며 밀란으로 이적와서 소년 가장으로 활약, 2010/11 시즌에는 즐라탄, 호비뉴와 뛰면서 스쿠데토를 얻어냈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성장세로 이후에는 실패한 경력만 쌓았습니다. 파투 역시도 아드리아누나 호비뉴처럼 기대에 못미치는 선수로 거듭나 브라질 대표팀은 한동안 부진의 늪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17위

파우히냐 브라질

파우히냐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3cm

생년월일:1967년 12월 24일

주요 클럽:상파울루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3회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16경기 5골

 

1990년대 초중반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상파울루 왕조의 주전 공격수. 뛰어난 개인기와 기회 창출 능력을 지녀 흔드는 플레이와 직접 득점하는 결정력 역시 모두 뛰어났던 세컨 탑 파우히냐는,

 

하이, 뮬레르 등의 뛰어난 공격수들과 상파울루의 최전방을 책임졌고 결국 그들의 활약에 클럽은 1992년과 93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1992 시즌에는 주리그 득점왕,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까지 그의 손에 있었으며 크루제이루로 후에 이적해서도 97 시즌 한번 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경험합니다.

 

16위

지우베르투 아우베스 브라질

지우베르투 아우베스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950년 12월 24일

주요 클럽:플루미넨시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2회

A매치 29경기 6골

1974 FIFA 월드컵 3위

 

'버팔로'라고 불렸던 1970년대 중후반 브라질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 짐승과도 같은 피지컬과 운동 능력을 이용한 돌파가 돋보였으며 당연히 뛰어난 볼컨트롤 스킬과 슛도 자랑했습니다.

 

그는 플루미넨시, 코린치안스, 보타포구 등의 브라질에서 손에 꼽는 명문팀에서 활약했으며 그중 플루미넨시 소속으로 호베르투 히벨리누와 빼어난 공격진을 형성해 2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명성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어져 1978 월드컵에서도 지쿠와 뛰며 7경기 전경기 출장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5위

마르시우 아모로수 브라질

마르시우 아모로수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50cm

생년월일:1974년 7월 5일

주요 클럽: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1회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A매치 19경기 9골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보물단지들을 쏟아내던 브라질 축구의 명품 포워드 중 한명. 엄청난 탄력성과 드리블 재간을 이용한 돌파 능력과 빼어난 슛팅 스킬로 인해 스트라이커부터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하던 아모로수였습니다.

 

1994 시즌 과라니라는 중소 클럽에서 전국 리그 득점왕, MVP를 따내는 성적으로 주목받았으며 96/97 시즌 우디네세로 이적해서 전성기 폼을 시작했고 98/9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까지 따냈습니다. 결국 2000/01 시즌에는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분데스리가 트로피를 얻었고 18골로 득점왕을 한번 더 경험했습니다. 말년에는 상파울루의 클럽 월드컵 제패를 도왔던 그의 아쉬운 점이라면,

 

호마리우, 베베투, 히바우두,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등의 괴물들에 밀려서 월드컵 무대는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아모로수는 1999년 코파에서 4골로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14위

호베르투 피르미누 브라질

호베르투 피르미누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81cm

생년월일:1984년 1월 25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55경기 17골

201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10년대 중후반 ~ 20년대 초반 위르겐 클롭발의 리버풀 전성시대를 이끈 일명 '마누라 라인'의 한축. 본인이 마무리하는 능력은 공격수치고는 떨어졌지만 특유의 지능적인 연계 플레이와 테크닉, 헌신적인 활동량과 수비가담으로 펄스나인 자리에 특화되어있던 피르미누였습니다.

 

호펜하임에서 리버풀로 이적하며 전성기를 보였던 그는 모하메드 살라, 사디오 마네 같은 공격진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고 2015/16 시즌의 유로파 준우승을 시작으로 각 1번의 리그, 컵, 챔스, 슈퍼컵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유럽 리거 중 가장 뛰어났던 브라질리언으로까지 뽑혔던 피르미누는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선 대회 도움왕까지 받으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도 했습니다.

" EPL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라고 본다. "
- 제이미 캐러거 -

 

13위

네쿠 브라질

네쿠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895년 5월 5일
주요 클럽:SC 코린치안스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7회
A매치 15경기 8골
191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2 코파 아메리카 우승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아미우카르 바르부이와 같이 브라질 축구의 창세기를 받들었던 인물. 굉장히 빠른 발과 훌륭한 기술을 통해 수비를 허무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다고 전해지는 네쿠는 특유의 승부욕 때문에 심판을 폭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코리치안스 소속으로 전성기를 보였던 그는 7차례의 주립 리그 챔피언에 오른 바 있으며 1919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프리덴라이히를 공격진에서 지원, 1919년 코파 우승을 득점왕(4골)로서 거머쥐었으며 다음 대회에서도 결승에서 골을 넣으며 트로피를 따내는 포효를 질렀습니다.

 

12위

이드문드 브라질

이드문드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7cm

생년월일:1971년 4월 2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3회

A매치 39경기 10골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우승

 

1990년대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는 악마의 재능. 비단결과도 같은 볼컨트롤 능력, 결정적인 순간에 터트리는 결정력, 이타적은 기회 창출 능력까지 겸비했던 훌륭한 센터 포워드의 표본이었으나 경기 외적으로는 폭행, 음주 운전, 훈련 불참, 동물 학대 등 구설수랑 구설수는 전부 몰고다녔던 문제아라 세간으로부터 일명 '금수(Animal)'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때문에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지만 그 중 파우메이라스 소속으로 2연속 전국 리그 우승을 탈취, 후에는 바스쿠 소속으로  1997 시즌 무려 40골을 박는 활약으로 전국 리그 득점왕과 우승 트로피, 남미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쥔 바 있습니다. 2000년 클럽 월드컵 결승에서 맨유를 상대로 보여준 골은 그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골이기도 합니다.

 

대표팀에서도 워낙 쟁쟁한 후보들과 경쟁해야했지만 1995 코파 아메리카와 97 코파, 98 월드컵에 승선하였고 그중 95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97년 대회 결승에서는 선발 출장하기도 했습니다.

 

11위

호비뉴 브라질

호비뉴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7cm

생년월일:1984년 1월 25일

주요 클럽:레알 마드리드 CF

주요 커리어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튀르키예 쉬페르 리그 우승 1회

A매치 100경기 28골

2007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0년대 초중반 '제2의 펠레'라는 별명에 가장 가까웠던 소년. 현시대 네이마르 만큼의 뛰어난 개인기 능력과 좁은 공간을 뚫고 들어가는 세밀한 드리블, 의외의 연계 센스 등으로 월드클래스 포텐션을 지녔다고 평가받던 유망주였지만 게으른 자기관리와 멘탈로 인해 기대만큼 크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산투스에서 브라질 리그를 씹어먹으며 기대를 받고 레알 마드리드에 도착한 호비뉴는 라이벌팀의 리오넬 메시와 비교되면서도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그 활약이 꾸준하지는 못했으며 신흥강호로 발돋움하게 될 맨시티로 이적해서도 마찬가지, 후에 밀란에선 2010/11 시즌 세리에 A 우승에 기여하며 부활하는듯 했으나 결국 다시 기복을 보이며 유럽 커리어는 사실상 끝나고 말았습니다.

 

폼이 좋았을 때는 카카, 호나우지뉴에 밀려 후보였지만 그들이 참가하지 않은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그야말로 에이스의 품격을 보이며 6골로 득점왕, MVP로 우승을 견인한 바 있습니다.

 

10위

치차 브라질

치차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4cm

생년월일:1958년 4월 1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4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32경기 6골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80년대의 토스탕'이라고 불릴만했던 명 세컨탑.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이용한 유연한 슛팅 스킬과 패스 기술을 선보였고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까지 내려와 뛸 수 있는 유틸리티성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유럽 리그와 브라질 리그에서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그는 1980년대 초중반 지쿠가 이끄는 플라멩구의 일원으로 무려 5번의 주 리그 우승과 2번의 전국 리그, 1981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사냥에 성공했으며 그레미우로 이적해서도 한번 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분데스의 중위권이던 레버쿠젠 소속으로 차범근과 공격진에서 같이 뛰면서 87/88 시즌의 UEFA컵까지 맛봤습니다.

 

치차는 비록 월드컵에서는 선발되지못하거나 광탈만 맛봤지만 1983년 코파에선 준우승 89년 대회에서는 결국 우승을 경험합니다.

 

9위

뮬레르 브라질

뮬레르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966년 1월 31일

주요 클럽:상파울루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56경기 12골

1994 FIFA 월드컵 우승

남아메리카 클럽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인 1990년대 초중반 상파울루 전성기의 간판 공격수. 깔끔한 연계, 뛰어난 어시스트 능력 때문에 주로 좌측 윙이나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뛰었으며 뛰어난 뒷공간 공략과 통쾌한 슛팅 능력으로 최전방까지 소화가 가능했던 속공 장인 뮬레르는,

 

상파울루 소속으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비롯한 10개의 우승 타이틀을 품에 안았고 특히 1993년 인터컨티넨탈컵 결승에서는 '밀란 제너레이션' AC 밀란을 상대로 3대2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넣어 소베라노를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올린 바 있습니다. 그는 대표팀에서도 3차례 월드컵에 참가, 비록 백업이었지만 1994년에는 정상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습니다.

 

8위

에바리스투 브라질

에바리스투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5cm

생년월일:1933년 6월 22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4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 2회

A매치 14경기 8골

1957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네이마르와 비니시우스보다 훨씬 더 이전에 활약했던 1950년대 ~ 60년대 라리가 최고의 브라질리언. 다양한 드리블 기술과 동료와 척척 들어맞는 연계, 날카로운 슛팅과 헤딩을 모두 보일 수 있었던 에바리스투는,

 

이미 플루미넨시에서 자국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웠으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라슬로 쿠발라, 코츠시스 산도르, 루이스 수아레스 등과 공격진을 형성해 각 2번의 리그와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 1960/6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병 슬롯을 하나 더 얻기위해 바르샤가 제안한 스페인 국적 귀화 추진을 거절하며 레알로 이적했고 그곳에서도 2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분명 이런 유럽 탑클래스 공격 자원인 에바리스투는 1957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확고한 셀레상의 주전이었지만 58년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으로 이적한 탓에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고 놀랍게도 그 자리를 채운 인물은 17살의 소년 펠레였습니다.

 

7위

레이비냐 브라질

레이비냐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5cm

생년월일:1949년 9월 11일

주요 클럽:SE 파우메이라스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A매치 21경기 7골

1974 FIFA 월드컵 4강

1970년대 상반기 브라질 축구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남자. 주로 처진 공격수나 좌측 날개로 뛴 그는 박스 안에서의 감각적인 헤딩 능력, 번개같은 중거리 슛 등으로 골을 넣었던 선수였습니다.

 

레이비냐는 파우메이라스에서 총 4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1972년에는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과 보타포구를 꺾고 전국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서도 1975/76 시즌 국왕컵, 다음 시즌 라리가 우승 당시 주역이었던 그는 브라질 국대에선 후보로서 1974 월드컵 4강을 함께 했습니다. 여담으로 전 리버풀의 미드필더 루카스 레이바는 이 레이비냐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6위

콰렌치냐 브라질

콰렌치냐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7cm

생년월일:​1933년 9월 15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3회

A매치 13경기 14골

 

보타포구 역사상 최고의 골게터. 명민한 오프사이드 트랩 뚫기 능력과 과감없는 결정력을 겸비했던 콰렌치냐는 클럽 소속으로 무려 306골을 기록해 보타포구 FR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0년 넘게 구단에서 뛰면서 3차례의 리그 우승을 더한 5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특히 1958년부터 60년까지 3시즌 연속으로 리우데자네이루 주 리그 득점왕을 차지해 엠블럼에 있는 론스타를 더 밝게 빛내기도 한 그였습니다. 하지만 콰렌치냐는 클럽에서의 절대존엄 포스와는 달리 대표팀에서는 펠레 및 바바, 아우타피니 같은 월클 센토 포워드 들의 존재로 인해 항시 엔트리에서는 밀려 있었습니다.

 

5위

아마리우두 브라질

아마리우두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69cm

생년월일:​1939년 7월 29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A매치 22경기 7골

1962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황제' 펠레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꾸며 월드컵 우승으로 브라질을 이끌었던 센터 포워드. 작은 키에도 감각적인 볼컨트롤 능력과 환상적인 드리블, 훌륭한 임팩트의 슛팅까지 보이던 그는,

 

글로리오소의 일원으로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알렸고 팀의 전성기를 주도, 1962년 당시 영광의 '6관왕'을 달성할 때 수많은 골을 넣으며 브라질 리그의 이례없는 대업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리우두는 이탈리아로 진출해서도 뛰어난 폼으로 밀란의 1966/6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피렌체의 68/69 시즌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그는 펠레의 백업이었으나 1962 월드컵에서 그가 부상당하자 그 공백을 티안나게 채워 가린샤를 도왔고 결국 우승에 다다랐습니다. 

 

4위

베베투 브라질

베베투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7cm

생년월일:1964년 2월 16일

주요 클럽:데포르티보 데 라코루냐

주요 커리어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일본 J리그 1 우승 1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A매치 75경기 39골

198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4 FIFA 월드컵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1990년대 브라질 축구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명. 베베투는 뛰어난 슛팅과 화려한 드리블 돌파로 득점에도 능했지만 특이점은 한칸 내려와 보여주는 플레이메이킹으로 파트너를 빛나게하는 연계플레이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브라질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20대 초중반을 보낸 그는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라리가 데포르티보에 입성하게되는데, 직전 시즌 강등권에 머물렀었던 데포르티보는 무려 29골을 넣은 득점왕 베베투의 활약에 리그 3위까지 올랐고 다음 2시즌은 리그 준우승, 1994/95 시즌은 결국 국왕컵에서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업적이 발판이 되어 그가 떠난 후에 결국 리그에서 우승하는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이 때문에 베베투는 아직도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립니다.

 

국대에서는 영혼의 단짝 호마리우와 투톱으로 1989 코파 아메리카에서 득점왕으로서 우승, 94 월드컵에서도 더 미친 시너지로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했습니다. 98 월드컵에서도 우승은 눈앞에서 놓쳤지만 부상당한 호마리우 대신 호나우두를 보좌하는 활약을 했습니다. 또한 베베투는 6골 4도움으로 90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월드컵 역대 최다 공격포인트 수립자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완벽한 콤비를 가지고 있다. 그 두명 모두 기술적이며 페널티 박스 안의 킬러다. "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

 

3위

토스탕 브라질

토스탕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47년 1월 25일

주요 클럽:크루제이루 EC

클럽 커리어

미나스제라이스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국대 커리어

1966년 ~ 1972년

A매치 54경기 32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플레이스타일로보나 재능으로 보나 가장 축구 황제에 근접해있었던 '하얀 펠레'. 자국의 역대급 재능으로 체구도 작고 발도 느렸지만 부드럽고 깔끔한 탈압박과 드리블, 창의적인 키패스와 괴랄한 득점 스탯을 쌓는 능력 등등에 최전방, 윙어, 심지어 현대의 메짤라에 가까운 미드필더로도 뛴 바 있습니다.

 

토스탕은 1960년대 후반 ~ 70년대 초반 크루제이루 EC의 약진을 이끌어 5연속 주립 리그 우승과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1966년 전국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이름을 브라질 전역에 알렸습니다.

 

71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 초대 수상자이자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한 그는 1970년 월드컵에서도 펠레와 투톱을 결성해 적국들을 박살내며 우승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1969년, 안면에 공을 강하게 맞아 망막박리라는 심각한 눈 부상으로 인해 후에 26살이라는 젋은 나이에 안타깝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메시에게 이니에스타가 필요했던 것처럼 1970년의 펠레에겐 토스탕이 필요했다."
- 마크 갓프레이 -

 

2위

히바우두 브라질

히바우두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87cm

생년월일:1972년 4월 19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2회

A매치 74경기 35골

1997, 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2002 FIFA 월드컵 우승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추앙받았던 선수. 또한 역사상 최고의 왼발 스페셜리스트 중 한명으로 '악마의 왼발'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어메이징한 슛팅, 패스, 크로스와 환상적인 바디 밸런스, 아크로바틱한 테크닉을 갖춰 눈이 즐거운 여러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히밥은 1990년대 데포르티보의 에이스로 팀을 부양하다 바르샤에서 전성기를 맞았고 1997/98 시즌, 리그+컵 '더블', 98/99 시즌에도 리그 24골을 기록하며 리그 2연패를 이끈 활약에 1999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했습니다. 특히 00/01 시즌, 챔스 티켓이 걸려있던 리그 최종 발렌시아전에서 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대2 승리를 이끈 경기야말로 히바우두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로 가서도 챔스서 강팀들을 때려잡았던 그는 브라질의 10번 유니폼을 입고 1998 월드컵 준우승, 99 코파 우승, 02 월드컵 우승에 성공, 순서대로 각 대회 올스타, MVP + 득점왕, 실버슈 + 올스타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국민들의 열정을 모아 싸운다"
- 히바우두 -

 

1위

펠레 브라질

펠레

포지션:​CF

국적:브라질

신장:173cm

생년월일:1940년 10월 23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10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6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92경기 77골

1958, 62, 70 FIFA 월드컵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더 나아가 스포츠계의 상징이 되버린 사나이. '축구 황제'라는 별명 답게 당대보다 몇십년은 앞서간 초월적 기량을 보여준 컴플리트 플레이어로 자유자재의 드리블과 신박한 개인기, 완강한 운동 능력, 양발의 탁월한 슛팅 능력, 명석한 플레이메이킹, 타점 높은 헤딩까지 어느부분 빠질 것 없이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는 펠레는,

 

1960년대 산투스를 세계 최고의 위치에 앉혀놓으며 10번의 주립 리그, 6번의 전국 리그, 2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캐리했습니다.

 

국가대표로는 17세에 참가한 1958 월드컵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해트트릭, 결승전 득점 등으로 조국의 역사적인 첫 우승을 주도했고 다음과 다다음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신음했지만 1970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을 MVP급 폼으로 완벽히 조율해내며 브라질에게 영구히 쥘리메컵을 선사합니다. 펠레는 그 명성에 맞게 진기록이 굉장히 많은데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 비공식 득점이 1200골에 다다르며 산투스 역대 최다 득점 기록, 1962년의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이라 할 수 있는 성적을 견인, 해트트릭 91회 달성, 그의 해외 이적을 막기 위해 브라질 정부의 국보 지정, 프랑스 풋볼에서 진행한 발롱도르 재평가에서는 무려 7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황제의 왕좌에 오랜 기간 앉아있던 펠레입니다.

"베토벤이 음악을 위해 태어났고 미켈란젤로가 미술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나는 축구를 위해 태어났다"
- 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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