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위
툴리우 마라빌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969년 6월 2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A매치 15경기 13골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44세의 나이까지 뛰면서 무려 공식전 500골을 기록했었던 90년대 브라질의 명 골게터. 환상적인 드리블 실력과 감아차기 감각, 문전 앞에서의 센스로 멋있는 골도 많이 넣었던 마라빌랴는 특히 키퍼까지 제친 뒤 빈골대에 마무리하기 전에 공을 띄운 뒤 힐킥으로 골을 넣는 일명 '툴레타' 개인기로도 유명했습니다.
이런 툴리우는 브라질의 정말 수많은 클럽들을 돌아다녔으며 고이아스라는 약팀에서 1차례의 득점왕, 2차례 전국 리그 올해의 팀에 들어 명문이었던 보타포구로 이적, 1995년의 27년만인 전국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그 해 전국 리그 올해의 팀에 들었습니다. 2연속 전국 리그 득점왕도 맛본 그는 후에 1부와 2부, 3부 리그 득점왕을 경험해본 유일한 선수라는 타이틀도 따냈습니다.
그는 국내파 선수였음에도 1995 코파 아메리카에 승선해서는 3골을 넣어 브라질의 준우승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24위
카사그란지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91cm
생년월일:1963년 4월 15일
주요 클럽:SC 코린치안스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A매치 19경기 8골
1980년대와 90년대를 걸쳐 활약한 브라질의 탑클래스 스트라이커. 강력한 피지컬을 이용한 타겟 플레이 뿐만 아니라 몸이 민첩해 아크 정면에서 발동되는 가속의 퍼스트 터치와 반박자 빠른 슛팅 타이밍, 펄스 나인에 가까운 역할도 소화할 수 있단 다재다능함을 가졌었습니다.
발테르 카사그란지는 코린치안스라는 상파울루 주의 명문 클럽에서 데뷔해 소크라치스라는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고 2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과 1982년의 득점왕을 따냈습니다. 후에 86/87 시즌, 포르투로 이적했지만 팀이 빅이어를 따냈음에도 그는 부진, 하지만 토리노로 보금자리를 옮겨서는 준수한 활약으로 91/92 시즌의 유에파컵 준우승, 92/9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23위
루이스 파비아누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5m
생년월일:1980년 11월 8일
주요 클럽:세비야 FC
주요 커리어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
UEFA컵 우승 2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45경기 28골
2004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카누테와 같이 2000년대 중반 세비야를 일으켜세웠던 실속파 브라질리언 스트라이커. 화려함은 선배 브라질 공격수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간결한 터치와 효율적인 연계 및 결정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루이스 파비아누는,
2002년 상파울루에서 전국 리그 득점왕, 04년 역시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을 따내며 스페인 비행기를 타게되었고 세비야에서 말리의 프레드릭 카누테와 환상의 투톱을 결성, 2차례의 코파 델 레이 우승과 2연속 유에파컵 우승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그는 05/06 시즌 결승에선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카나리아 군단의 품에서도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드리아누와 투톱으로 우승, 09 컨페드컵에서도 득점왕으로 우승했으며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3골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22위
마리우 자르데우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8cm
생년월일:1973년 9월 18일
주요 클럽:FC 포르투
주요 커리어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4회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 3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10경기 1골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역대 최고의 단기 퍼포먼서 중 한명. 188cm의 타고난 신체조건과 골감각을 이용하여 수많은 헤더골을 넣던 선수였으며 쫄깃한 퍼스트 터치 또한 장점이던 선수였습니다.
1995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득점왕을 따내며 그레미우의 부흥의 주역이었던 자르데우는 포르투로 이적해 커리어 최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구단 외국인 역대 최다 득점자인 그는 3번의 리그와 2번의 컵 우승을 이끌며 4년 동안 모두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리그 MVP 2회, 1998/99 시즌은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 다음 시즌은 10골로 챔스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포르투를 8강으로 이끌었습니다. 후에 스포르팅에서도 2000/01 시즌 리그 우승과 MVP,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던 자르데우였지만 프리미어 리그의 볼턴으로 이적 후에는 소홀한 자기관리로 인해 폼이 급내리막을 걷고 말았습니다.
21위
누네스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954년 5월 20일
주요 클럽:CR 플라멩구
주요 커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우승 6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15경기 11골
'붉은 제국'을 함락시키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플라멩구를 올려놓은 골잡이. 스피드한 돌파력과 골대에 박히는 강력한 슛팅과 중요한 순간에 한건하는 주인공 기질까지 가져 '결정적인 대포'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쿠를 비롯한 엄청난 멤버들이 있던 플라멩구에서 부동의 9번이었던 누네스는 각 2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과 전국 리그 우승, 1981년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1경기 1골이 넘어가는 그의 득점 본능은 1981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 터져 리버풀을 상대로 멀티골을 뽑아내 3대0 승리를 견인하기도 했습니다.
20위
호베르투 미란다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9cm
생년월일:1944년 7월 31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3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A매치 12경기 6골
1970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의 괴수들의 그림자에 가려서 국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던 당시 브라질 최고 수준의 공격수. 뛰어난 드리블 센스와 슛팅 기술 능력을 토대로 윙어나 세컨톱까지 봤었떤 호베르투 미란다는 '돌풍'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보타포구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도 자이르지뉴, 카주 등의 선수들과 공격을 이끌어나가며 구단 최고의 전성 시대를 만들었으며 3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과 1968년 결승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사상 첫 전국 리그 우승, 2번의 리우 상파울루 컵 우승 당시에도 주역이었던 호베르투 미란다였지만 당시 국대에서는 펠레는 물론이고 그의 파트너 토스탕이라는 에이스의 존재에 벤치만 달궈야 했습니다.
19위
에이토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898년 12월 20일
주요 클럽:SE 파우메이라스
주요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5회
A매치 11경기 6골
191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2 코파 아메리카 우승
브라질의 고대 레전드,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브라질 리그와 국가대표팀을 책임졌던 전설적인 포워드. 기막힌 슛팅력을 기반으로 하는 엄청난 득점력은 9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파우메이라스 역대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에이토르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만든 SE 파우메이라스 이전에 팔레스트라 이탈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구단에서 뛰며 15년 동안 1920년의 구단 최초의 우승 트로피를 포함한 6개의 상파울루 주립 리그 트로피를 거머쥔 바 있습니다. 셀레상의 품에서도 그는 프리덴라이히, 네쿠와 같이 공격진을 만들어 전설적인 2연속 코파 우승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18위
자다 마라빌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5cm
생년월일:1946년 3월 4일
주요 클럽:아틀레치쿠 미네이루
주요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8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A매치 7경기 0골
1970년대 브라질 리그에 폭격을 감행하던 당대 브라질 최고의 No.9. 기막힌 포지셔닝과 점프, 헤더 능력으로 인해 '벌새'라는 별명을 세간으로부터 얻었던 마랴빌랴는 박스 안에서의 깔끔한 마무리와 의외의 활동량으로 인해 '강철 허파'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클럽들을 돌아다녔지만 두곳을 꼽자면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의 전성기가 가장 뛰어났던 그는 전자 소속으로는 2번의 주 리그, 1971 시즌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뤘으며 4번의 주 리그 득점왕, 2번의 전국 리그 득점왕을 따냈습니다. 후에 인테르나시오나우 유니폼을 입고도 76 시즌의 전국 리그 트로피 획득을 같이한 마랴빌랴는 커리어 종합 600골 이상을 넣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1970 월드컵 명단에도 뽑혔지만 당연히 주전까지는 힘들었고 결국 한경기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17위
파울루 발렌침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7cm
생년월일:1932년 11월 20일
주요 클럽:CA 보카 주니어스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
아르헨티나 1부 리그 우승 2회
A매치 5경기 5골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브라질 리그와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모두 최고로 인정받았던 스트라이커. 뛰어난 운동 능력과 피지컬, 더불어 간결한 발재간과 능숙한 침투 능력으로 본인의 결정력을 살리던 육각형 스트라이커에 가까웠습니다.
파울루 발렌침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 보타포구 같은 이름있는 클럽에서 모두 뛰어난 공격력을 발산해 4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후에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서도 주포로 활약했습니다. 2번의 리그 우승을 탈환한 그는 특히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와의 더비에서 강했는데, 무려 10골을 넣어 보카 주니어스 소속 '수페르클라시코'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발렌침은 또한 1959년 코파 아메리카에 잠깐 부름을 받아 펠레와 같이 뛰며 준우승을 경험했지만 후에는 경쟁에서 밀려나 월드컵에는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16위
세르지뉴 슐라파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91cm
생년월일:1953년 12월 23일
주요 클럽:상파울루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 4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A매치 20경기 8골
1970년대 ~ 80년대에 걸쳐 브라질 리그를 수놓던 고공 폭격기. 번뜩이는 순간 드리블 돌파와 날이 서있는 슛팅력, 무엇보다도 그를 대변하는건 191cm의 거대한 체구를 바탕으로 하는 타겟팅 플레이와 운동 능력이었습니다.
상술한 능력들로 수많은 골을 기록하던 세르지뉴 슐라파는 상파울루의 품에서 1977년 전국 리그 우승을 포함한 5개의 우승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총 4차례의 주립 리그 득점왕 쟁취에도 성공했습니다. 242골로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자리에 올라있는 그는 1983년에는 각 22골을 넣어 상파울루 주 리그와 전국 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슐라파는 1982년 역대급 스쿼드라고 평해졌던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월드컵에 참여했지만 지쿠, 소크라치스, 에데르 같은 선수들이 주는 찬스들을 수많게 날려먹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게했던 주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15위
지오바니 에우베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2cm
생년월일:1972년 7월 13일
주요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주요 커리어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 4회
프랑스 리그 1 우승 1회
DFB 포칼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A매치 45경기 7골
분데스리가를 빛낸 역대 최고의 용병 가운데 하나. 에우베르는 동시대 여타 브라질리언들과는 달리 현란한 테크닉이 우선시 되기보단 박스 안에서의 간결한 퍼스트 터치와 마무리, 아크로바틱한 슛팅 혹은 헤딩을 중요시하던 정통파 스트라이커였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서의 '마법의 삼각진'을 형성해 1996/97 시즌 포칼 우승을 이끄는 활약으로 뮌헨 유니폼을 입게 된 그는 주포로 뛰며 각각 4번, 2번의 리그와 컵 우승을 이뤘고 2000/01 시즌 챔스, 8강과 4강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빅이어 획득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133골을 넣은 그는 당시 외국인 역대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으며 2002/03 시즌엔 21골로 리그 득점왕, VDV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합니다.
허나 호마리우, 베베투, 호나우두라는 당대 최고의 No.9들 때문에 국대에서는 활약은 물론 소집조차 잘되지 못했던 그였습니다.
14위
발타자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4cm
생년월일:1926년 1월 14일
주요 클럽:SC 코린치안스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3회
A매치 31경기 17골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헤딩을 잘했던 인물. 미친 점프력과 괴물같은 헤더 능력으로 수많은 골을 머리로 만들었던 발타자르는 당연히 '황금 머리'라는 이명으로 불리웠으며 뛰어난 위치선정과 움직임 또한 빛났습니다.
발타자르는 코린치안스 파크에서 뛰면서 클라우지우, 호베르투 벨랑게루, 올라부 등의 뛰어난 멤버들과 전성 시대를 밀고 나갔고 그 화려한 기간은 3차례의 상파울루 주립 리그 우승이 증명합니다. 당시 브라질 최고 레벨의 공격수였던 그는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 이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가대표팀을 대표해 뛰면서 그는 1950 월드컵에서는 후보였지만 1953 월드컵 준우승과 54 월드컵 8강 당시엔 주전으로 뛴 바 있습니다.
13위
헤이나우두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57년 1월 11일
주요 클럽:아틀레치쿠 미네이루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8회
A매치 37경기 14골
1978 FIFA 월드컵 3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반 남미 최고 수준의 ST. 뛰어난 뒷공간 움직임, 간결한 발재간과 더불어 마무리 능력이 빛났는데, 특히 골키퍼를 농락하는 칩샷에 특화되어있던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이자 전성기를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보내면서 8차례의 주립 리그 우승, 전국 리그 올해의 팀 2회 선정, 구단역대 최다 득점을 달성했으며 1977 시즌에는 특히 전국 리그 득점왕에 올랐는데 18경기에서 28골을 넣어 이는 아직도 단일시즌 역대 최다 득점 기록으로까지 남아있으니 팬들이 헤이나우두를 정말 '왕'으로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겠습니다. 허나 대표팀에서는 메이저 대회 겨우 1골에 그쳤으며 1978 월드컵에서도 호베르투 지나미치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12위
쿠치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2cm
생년월일:1943년 6월 11일
주요 클럽:산투스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6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5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A매치 15경기 6골
1962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황제' 펠레의 투톱 파트너이자 산투스가 자랑했던 또 다른 센터 포워드. 펠레가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내려와 공을 받아주고 뿌리는 역할까지 한다면 치뉴는 전방에서 다부진 체구를 이용한 돌파와 굴지의 골 결정력, 번뜩이는 연계로 득점에 치중했고 그의 박스 안에서의 존재감은 펠레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습니다.
쿠치뉴는 펠레와 산투스 유니폼을 입고 공식 기록 1000골이 넘는 골을 만들어냈으며 그들의 공격력 덕에 산투스 FC는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1962년 브라질 전국 리그, 상파울루 주립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모두 우승해 '트레블'에 가까운 대기록을 작성, 본인은 전국 리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에다 결승 경기 페냐롤전과 인터티넨탈컵 벤피카전에선 골까지 넣었습니다.
그러나 펠레, 바바, 토스탕 같은 선수들을 상대로 경쟁해야했던 브라질 국가대표팀 아래서 그는 후보로 1962 월드컵을 우승하는데 그쳤습니다.
" 페널티 박스 안에서 만큼은 쿠치뉴가 나보다 더 뛰어났다."
- 펠레 -
11위
엘리누 지 프레이타스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2cm
생년월일:1920년 2월 12일
주요 클럽:보타포구 FR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2회
A매치 18경기 17골
194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0년대의 펠레'로도 묘사되는 당대 브라질의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던 '저주받은 왕자'. 엘레누는 기술, 속도, 시야, 패스, 지능, 헤딩 마저 뛰어났다고 전해지며 훤칠한 키와 우아한 움직임,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엄청난 팬들을 모으기도 했다고 합니다. 완벽주의자적 성격과 방탕한 사생활, 이기적인 멘탈 때문에 많은 선수, 감독들과 불화를 낳기도 한 엘레누였지만 그 재능만큼은 진또배기였기에 엄청난 골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차례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따냈으며 후에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한번 더 우승을 경험한 그는 특히 대표팀에서 당대 셀레상의 에이스로서 활약, 황금 세대 아르헨티나에게 2번 다 패하긴했지만 2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고 1945년 대회에서는 6골로 득점왕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 월드컵에서는 플라비우 코스타 감독에게 그 인성문제 때문에 외면받으며 승선하지 못했으며 31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한 엘레누는 결국 30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매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0위
아드리아누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90cm
생년월일:1982년 2월 17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A매치 48경기 27골
2004 코파 아메리카 우승
'제2의 호나우두'로 각광받았던 2000년대 초중반 세계구급의 스트라이커. '악마의 왼발'이라고도 불린 위력적인 파워 슛팅과 뛰어난 발재간을 토대로한 볼운반, 거기다 190의 거구를 이용해 타겟 플레이까지하던 완벽한 플레이스타일로 당대 월클 수비수도 버겁게 만들던 아드리아누는,
파르마에서 아드리안 무투와 투톱을 형성해 2002/03 시즌 리그 5위를 이끄는 활약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인테르로 팀을 옮긴 그는 '임페라토르', '주세페 메아차의 수호신'으로 불리우며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맹활약, 2004년과 05년 발롱도르 6위, 7위에 뽑힐 정도였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무절제한 사생활과 방탕한 자기관리로 인해 2006 월드컵의 부진 이후에는 미친듯이 폼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2004년 코파 아메리카와 05년 컨페드컵에서는 대회 득점왕, MVP로 우승을 이끄는 '트리플 크라운'을 보였던 아드리아누였으니 그가 폼을 잃지 않았다면 브라질의 엠블럼에는 별 하나가 더 추가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드리아누가 왼발로 슛을 쏠 때, 마지막으로 주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미사일이 골문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는 것뿐.
만약 오른발에서조차 똑같은 슛을 쏘게 된다면 그걸 저지할 유일한 방법은 파울뿐이다."
9위
바바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4cm
생년월일:1934년 11월 12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5회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
A매치 20경기 15골
1958, 62 FIFA 월드컵 우승
브라질의 월드컵 2연패를 이끈 주전 스트라이커. 골망에 꽂아넣는 막강한 슛팅 능력과 헤딩 감각, 최전방 스트라이커치고는 연계를 위한 활동 범위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체력이 워낙 뛰어나 '강철 폐'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렸습니다.
바바는 바스쿠 다 가마, 파우메이라스의 품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4회를 이뤄냈으며 이런 활약에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러브콜을 받아서 확고한 주전 자리는 아니었지만 코파 델 레이 2연속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도 그는 확고한 주전으로 황금기 당시 브라질의 2연속 월드컵 우승을 도왔으며 2번의 월드컵 결승에서 모두 골을 넣은 4명의 인물(펠레, 파울 브라이트너, 지네딘 지단)이 되기도 했고 1962 월드컵에서는 4골로 공동 득점왕까지 차지한 바 있습니다.
8위
호베르투 지나미치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6cm
생년월일:1954년 4월 13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A매치 47경기 26골
1978 FIFA 월드컵 3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70년대 ~ 80년대 브라질 축구의 무결점 스트라이커. 훤칠한 키와 피지컬을 바탕으로 몸싸움도 즐기며 동료를 바라보는 키패스, 연계,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하던 지나미치는 뛰어난 슈터 기질까지 지녀 공격수로서의 득점 능력마저 뛰어났습니다.
상술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브라질 전국 리그(279골)와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190골) 역대 최다 득점 타이틀과 바스쿠 다 가마 구단 역대 최다 득점, 출장 기록마저 가지고 있는 그는 당연히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어로 여겨집니다. 5차례의 주 리그 우승, 1차례의 전국 리그 우승과 3차례의 주 리그 득점왕, 2차례의 전국 리그 득점왕, 3차례의 전국 리그 MVP라는 금자탑은 지나미치를 당대 최고의 선수인 지쿠와 동등한 수준의 명성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대표 선수로 그는 3골씩을 넣으며 1978 월드컵에서 3위에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득점왕으로 준우승에 브라질을 올려놓은 바 있습니다.
7위
주제 아우타피니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이탈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38년 7월 4일
주요 클럽:AC 밀란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유러피언컵 우승 1회
A매치 14경기 9골
1958 FIFA 월드컵 우승
세리에 A 역사 전체를 논해도 손에 꼽을만한 스트라이커. 훌륭한 드리블 돌파, 어떻게든 골을 집어넣는 환상적인 피니싱, 순두부 볼컨트롤 등의 능력이 발광하던 아우타피니는,
브라질에서 이탈리아로 귀화까지했을 정도로 세리에 A서 뛰어난 활약을 했는데, 특히 밀란 소속으로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216골로 이탈리아 리그 역대 최다 득점 4위에 있는 아우타피니는 특히 1962/63 시즌, 유러피언컵 9경기에서 14골을 넣는 단일 대회 역대 최다 득점 기록(호날두에게 깨지기 전까지)을 새로 쓰며 구단 최초 빅이어의 일등공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후에 나폴리와 유베로 이적해서도 2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한 그는,
1958 월드컵에선 후보 자원으로 우승에 기여했지만 펠레라는 거물의 자리에 밀려서 이탈리아로 귀화 후에 1962년 월드컵은 아주리 유니폼을 입고 치루기도 했습니다.
6위
카레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2cm
생년월일:1960년 10월 5일
주요 클럽:SSC 나폴리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2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64경기 30골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0년대 중후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닥주전이었던 퍼스트 탑. 양발이 뒷받쳐주는 원숙한 피니싱 능력과 더불어 마성의 드리블과 침투, 동료를 정확히 보는 빼어난 연계까지 구사했습니다.
카레카는 과라니 FC의 1978년 전국 리그 우승 돌풍을 주도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강팀 상파울루로 소속팀을 이전, 1986년에 득점왕이자 MVP로서 전국 리그 우승을 한번 더 캐리했습니다. 그는 결국 세리에 클럽들에 눈에 띄어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서는 디에고 마라도나, 브루노 조르다노와 공격 파트너를 구축해 이른 바 '마지카 라인'(Ma-Gi-CA)을 만들었으며 1차례의 세리에A, UEFA컵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4강 바이언 1.2차전과 결승전 1.2차전 슈투트가르전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1983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86 월드컵에서는 5골을 몰아쳐 실버부트를 받았으나 승부차기 끝에 팀은 프랑스에게 8강에서 탈락, 그래도 그는 그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 2위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5위
아데미르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6cm
생년월일:1922년 1월 8일
주요 클럽:CR 바스쿠 다 가마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6회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쉽 우승 1회
A매치 39경기 32골
1945, 46, 5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50 FIFA 월드컵 준우승
1940 ~ 50년대 브라질 축구의 얼굴과도 같던 세계 정상급의 기념비적인 공격수. 브라질 최초의 No.9으로 평가받는 그는 양발을 토대로하는 뛰어난 골 결정력과 훌륭한 침투 능력, 왼쪽 윙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만큼 빠른 스피드를 가졌고 또 유난히 큰 턱 때문에 '턱돌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주로 브라질의 바스쿠 다 가마에서 맹활약했고 다닐루 아우빙, 자이르 다 호사 등의 멤버와 클럽 최전성기 핵심 멤버로 1948년 남미 클럽 챔피언쉽을 포함해 크고 작은 수여개의 우승을 주도, 1950년에는 주립 리그 득점왕과 함께 리그 챔피언으로 우뚝 서기도 한 아데미르였습니다.
국가대표로도 194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주도, 50 월드컵에서도 6경기에서 8골을 뽑아내며 득점왕을 석권하나 우승이 달린 결승 리그에서는 우루과이전에서는 철퇴를 맞아 패배하는 눈물을 삼켜야했습니다.
" 축구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축구를 포기합니다.
선수가 선수 생활을 마치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맞서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
- 아데미르의 은퇴사 中 -
4위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8cm
생년월일:1892년 7월 18일
주요 클럽:CA 파울리스타누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7회
A매치 23경기 10골
1919, 22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2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브라질 명 스트라이커 계보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자 축구 역사상 최초의 흑인 스타 플레이어. 마르고 작은 신체였지만 뛰어난 스피드와 양발의 슛팅력 등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무려 1300여골을 기록해 축구 역사상 비공식 기록 최다 득점자로 잘 알려져있는 프리덴라이히입니다.
또한 당시 극심했던 인종차별을 견뎌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한 그는 CA 파울리스타누와 상파울루 FC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7번의 주 리그 우승과 9번의 득점왕을 차지, 프랑스 원정 투어길에 오른 팀의 10경기를 모두 승리시켰다는 기록 또한 존재합니다. 더해서 2차례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어 '호랑이'라 불렸던 그는 특히 1919년 대회에서 조국의 사상 첫 트로피를 득점왕과 MVP로서 차지하는, 축구 강국의 탄생을 알리는 포효를 내지른 바 있습니다.
" 예전까지만 해도 브라질 언론은 경마에 대한 기사만 주로 다뤘지만,
아르투르가 골을 넣기 시작하자 구석에 몇 줄 실리던 게 고작이었던 축구기사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죠!
아르투르는 축구를 인기 종목으로 만들었습니다. "
- 알레샨드리 다코스타 박사, <축구의 역사> 中 -
3위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75cm
생년월일:1913년 9월 6일
주요 클럽:상파울루 FC
주요 커리어
브라질 주립 리그 우승 8회
A매치 19경기 21골
1938 FIFA 월드컵 3위
1946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삼바 축구'를 빛내던 1930년대 ~ 40년대 브라질 축구의 별. 강력한 슛팅과 플레이메이킹이 장점으로 최전방 외에도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모습으로 뛰기도 했던 그는 펠레, 가린샤, 지지뉴 등의 브라질 레전드들도 우상으로 삼았던 인물입니다.
거기다 유연성과 탄력까지 갖춰 바이시클 킥을 최초로 시도한 여러명 중 하나라고까지 전해지는 '고무 인간' 레오니다스는 브라질 리그의 여러 명문을 돌아다니는 저니맨 생활을 하다 플라멩구, 상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무려 8번의 리그 타이틀을 쟁취했습니다.
카나리아 군단의 품에서 그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를 맛보는데 7골을 넣어 득점왕과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 3위라는 쾌사를 달성했습니다.
" 그는 살과 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고무 같았다. "
2위
호마리우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68cm
생년월일:1966년 1월 29일
주요 클럽:FC 바르셀로나
주요 커리어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 1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우승 3회
스페인 라리가 우승 1회
KNVB 베이커 우승 2회
A매치 70경기 55골
1989, 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4 FIFA 월드컵 우승
또라이짓만큼 강력했던 임팩트를 세계에 각인시켰던 스트라이커. 통산 1000골에 가까운 골을 기록할 만큼 허를 찌르는 슛팅 능력과 초월적인 결정력을 지녔고 '박스 안의 여우'라고 불렸을 만큼 빠른 주력과 현란한 드리블로로 수비진을 허무는 라인 브레이킹에 최적화 되있던 선수였습니다.
2선에서의 연계 능력 역시 탁월했던 호마리우는 이렇게 재능은 뛰어났으나 게으르고 방탕한 사생활에 커리어 내내 문제를 일으켰지만 바스쿠 다 가마, PSV, 바르셀로나 등을 거치며 1차례의 전국 리그, 3차례의 에레디비시, 1차례의 라리가 우승과 챔스 준우승 등을 실현시켰습니다.
더해서 무려 20번의 득점왕 타이틀을 얻은 호마리우는 국대에서도 사고치는 이미지로 인해 불참도 잦았지만 베베투와 투톱으로 1989 코파 아메리카를, 호나우두와 투톱으로 97 코파를 우승했으며 특히 1994년 월드컵, 브라질의 공격을 선두에서 이끌며 결승전 제외 전경기 공격포인트라는 엄청난 임팩트로 우승해 골든볼,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얻는 월드컵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 바로 그를 TV에서 보던 1994년이었다. "
- 호마리우 -
1위
호나우두
포지션:ST
국적:브라질
신장:183cm
생년월일:1976년 9월 22일
주요 클럽: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주요 커리어
스페인 라리가 우승 2회
KNVB 베이커 우승 1회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98경기 62골
1994, 2002 FIFA 월드컵 우승
1995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97, 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8 FIFA 월드컵 준우승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타이틀에 가장 가까운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의 축구 황제 '페노메노'. 헛다리 짚기로 유명한 가공할 만한 드리블, 폭발적인 스피드와 몸싸움, 원샷 원킬의 마무리까지 갖춘 그의 충격적인 기량은 곧 전술이며 하나의 현상으로 여겨질 정도 였습니다.
바르샤에서 전세계를 놀래킨 1996/97 시즌, 21세에 49경기 47골이라는 기록으로 국왕컵 우승과 최연소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인테르로 이적한 97/98 시즌은 별칭 그대로 경이로운 활약상으로 세리에 A MVP,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와 UEFA컵 우승을 따내는 저력을 보입니다. 이후 2년짜리 큰 부상에도 '갈락티코스'의 일원으로 02/03 시즌의 라리가 우승을 주도한 호나우두는 클럽 커리어 동안 6번의 득점왕 타이틀을 안았습니다. 허나 한가지 흠이 있다면 선수 시절 내내 고질적인 부상으로 인해 그 활약이 꾸준하지는 못했다는 것인데,
그런 그이지만 국가대표로는 1997 코파 아메리카를 MVP로서 우승, 1998 월드컵을 골든볼로 준우승, 1999 코파를 득점왕으로 우승, 2002 월드컵을 득점왕으로서 우승을 견인하는 등 메이저 대회마다 펠레, 마라도나와 비견되는 미친 퍼포먼스로 조국과 함께 세계 축구의 최정상 자리에 선 바 있습니다.
''호나우두가 곧 전술이다.''
- 바비 롭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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