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FC
< Torino FC >
홈구장: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
연고지:피에몬테 주 토리노
창설년도:1906년
최다 득점자:파올로 풀리치 172골
최다 출장자:조르조 페리니 566경기
성적: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7회
이탈리아 세리에 B 우승 3회
코파 이탈리아 5회
미트로파컵 우승 1회
역대 최고의 선수:발렌티노 마촐라
주장:발렌티노 마촐라
1) 역대 베스트 11
All Time Best XI
골키퍼
루치아노 카스텔리니
포지션:GK
국적:이탈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45년 12월 12일
클럽 커리어
1970년 ~ 1978년
262경기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반 이탈리아 세리에 A 최고의 키퍼. 우수한 펀칭력, 동물과도 같은 움직임과 유연성은 마치 '재규어' 같다고 별명까지 붙여진 그는,
AC 몬차, 토리노, 나폴리 이렇게 세 세리에 팀에서 모든 커리어를 지냈으며 간혹 세팀 모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문장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토리노에서의 카스텔리니는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으며 75/76 시즌에는 무려 27년만에 세리에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한 바 있습니다.
라이트백
알도 발라린
포지션:RB
국적:이탈리아
신장:185cm
생년월일:1922년 1월 10일
클럽 커리어
1945년 ~ 1949년
148경기 4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1940년대 유럽 축구 최강의 전력으로 불렸던 '그란데 토리노'의 라이트 풀백.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과 안정적인 커버 플레이로 이름을 떨친 발라린은,
당시 WM 시스템의 백3에서 마리오 리가몬티, 비르질리오 마로소와 함께 철옹성의 수비라인을 세웠습니다. 굳건히 골대를 지켰던 이들의 활약에 당시 토리노는 4연속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1949년, 리스본에서 토리노로 돌아오던 길에 발생한 비행기 사고로 인해 탑승 인원 전원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수페르가의 비극'이 알도 발라린에게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친동생인 디노 역시도 당시 토리노의 후보 선수로 있었기에 사고의 여파에 같이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센터백
마리오 리가몬티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922년 12월 17일
클럽 커리어
1946년 ~ 1949년
140경기 1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회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넘어서 그 명성을 유럽 전역에 알렸던 센터백. 센터하프에서 뛰었던 리가몬티는 현대로 따지면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간 위치에서 뛴 선수였으며 터프한 압박 수비와 유려한 공중볼 장악을 펼쳤습니다.
그는 당시 발렌티노 마촐라가 이끄는 토리노 FC라는 강팀에 겨우 23살에 나이에 합류했으며 빠르게 적응한 뒤 뛰어난 활약으로 무려 리그 3연패에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수페르가의 비극'이라는 사고가 1949년 일어나며 창창했던 이탈리아의 탑클래스 센터백을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센터백
조르지오 푸이아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6cm
생년월일:1938년 3월 8일
클럽 커리어
1963년 ~ 1972년
325경기 15골
코파 이탈리아 A 우승 2회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침체기에 빠졌던 60년대 토리노의 재건을 도왔던 마지막 자물쇠. 푸이아는 본래 볼을 잘다뤄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후에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학다리 태클과 타이트한 대인 수비라는 장점을 더 잘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비첸차에서 토로 유니폼을 입게되고 1963년 당시, 카테나치오의 장인이었던 네레오 로코 감독 아래서 스위퍼로 개조되어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1964/65 시즌의 리그 3위, 67/68 시즌과 70/71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구단에 바치는 호성적을 내비췄습니다.
레프트백
비르질리오 마로소
포지션:LB
국적:이탈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25년 6월 26일
클럽 커리어
1944년 ~ 1949년
103경기 2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알도 발라린 - 마리오 리가몬티 - 비르질리오 마로소로 이어지는 토리노 FC의 1940년대 전성기를 이끈 멤버 중 한명. 순수 수비 능력을 옆의 두 파트너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빠른 발과 영리한 수비 지능, 범상치않은 공격 가담 능력으로 간혹 윙어로도 뛰었습니다.
'위대한 토리노'라는 역대급 왕조의 일원으로 마로소는 1945/46 시즌부터 무려 4연속 스쿠데토를 토리노로 가져왔으나 그들의 고공행진을 멈춘건 '수페르가의 비극'이라는 비행기 사고였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레나토 자카렐리
포지션:DM
국적:이탈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51년 1월 18일
클럽 커리어
1969년 ~ 1970년, 1974년 ~ 1987년
413경기 12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서 '황소 군단'을 지휘했던 구단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견실한 수비력과 뛰어난 전술안, 지능적인 볼공급과 전진 패스를 통해 미드필더 전지역부터 말년에는 리베로까지 봤었던 자카렐리였습니다.
그는 사실상 대부분의 프로 경력을 토리노에서만 보냈던 원클럽맨이며 구단의 당시 부흥을 주도해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75/76 시즌 세리에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그는 30대 중반까지 계속해서 경쟁력있는 폼을 리그에서 보였는데, 이는 35살에 성공한 1986년 세리에 올해의 선수상 수상이 입증합니다.
중앙 미드필더
발렌티노 마촐라
포지션:CM
국적:이탈리아
신장:170cm
생년월일:1919년 1월 26일
클럽 커리어
1942년 ~ 1949년
175경기 102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1940년대, 세리에를 넘어 세계 축구의 무대로 그 위용을 옮기려 했던 '그란데 토리노'의 시작과 끝. 정확한 패스와 우아한 드리블링, 밑바탕이 되는 스피드와 체력으로 엄청난 명성을 자랑했던 선수였던,
발렌티노 마촐라가 캡틴으로서 이끄는 토리노 FC는 최전성기를 맞이하며 압도적인 5번의 세리에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9년,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수페르가의 비극'이라 불리는 비행기 사고에 의해 발렌티노 마촐라는 안타깝게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고 말았습니다. 이탈리아 축구의 핵심 전력들과 그 중 가장 에이스였던 마촐라의 사망 때문에 이탈리아 대표팀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국제 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여담으로 그의 아들 산드로 마촐라 역시 인테르의 레전드 선수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아돌포 발론체리
포지션:CM
국적:이탈리아
신장:182cm
생년월일:1897년 7월 27일
클럽 커리어
1925년 ~ 1935년
194경기 101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초창기 이탈리아 무대를 누비며 토리노에게 첫 황금기를 선물한 판타지스타. 비단결 같은 볼터치와 우아한 드리블, 패스를 필드 위에서 연출하던 발론체리는 이탈리아의 유명 축구기자인 지안니 브레라에 의해서 주세페 메아차, 발렌티노 마촐라와 이태리 3대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토리노의 공격대장으로서 1926/27 시즌 압도적으로 리그 우승을 거뒀으나 세리에의 첫 흑역사 승부조작이었던 '알레만디 스캔들'로 인해 그들의 우승은 취소되었습니다. 허나 그가 이끄는 토리노는 다음 시즌도 우수한 퍼포먼스를 이어가 창단 이래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라이트 윙어
프란체스코 그라지아니
포지션:RW
국적:이탈리아
신장:180cm
생년월일:1952년 12월 26일
클럽 커리어
1973년 ~ 1981년
289경기 122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1970년대 중후반 ~ 80년대 초반 이탈리아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 골문 앞에서의 침착함을 가져 주로 스트라이커로 뛰었지만 드리블이나 연계에도 두각을 드러내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까지 소화했습니다.
그라지아니는 파올로 풀리치와 같이 '골 쌍둥이'라는 공격 듀오를 구성해 토리노 최후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1975/76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다음 시즌은 준우승과 함께 강력한 경쟁자들을 모두 따돌리고 21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 79/80 시즌은 코파 이탈리아 결승 진출을 한번 더 이뤘습니다.
레프트 윙어
파울로 풀리치
포지션:LW
국적:이탈리아
신장:177cm
생년월일:1950년 4월 27일
클럽 커리어
1967년 ~ 1982년
431경기 170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70년대 토리노의 약진을 이끌었던 구단 역대 최고의 좌측면 공격수. 빠른 발을 통한 왼쪽 측면 공략도 능했지만 풀리치의 진짜 장점은 윙어치고 박스 장악력과 결정력이 좋아 우수한 득점 기록을 뽑아냈다는 것입니다.
유스 출신에다가 어린 나이에 그라나타 군단의 품에서 1군 데뷔를 알린 그는 프란체스코 그라지아니, 클라우디오 살라와 삼각편대를 형성하여 커리어 최고의 기간을 보냈습니다. 1975/76 시즌, 27년만인 스쿠데토 탈환 당시 21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던 풀리치는 구단 역대 최다 득점 2위이며 총 3번의 카포칸노니에레를 따낸 바 있습니다.
스트라이커
구글리엘모 가베토
포지션:ST
국적:이탈리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16년 2월 24일
클럽 커리어
1941년 ~ 1949년
225경기 127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이탈리아 축구사에 남을 축구 왕조, 1940년대 '그란데 토리노'의 골잡이. 창의적인 패스, 드리블 뿐만 아니라 타고난 위치 선정과 자비없는 피니셔 기질을 가졌었고 특히 바이시클킥을 잘했다고 알려져있을 정도로 유연했던 그는 분명 당시 자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였습니다.
구글리엘모 가베토는 먼저 유벤투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으며 거액에 라이벌인 토리노로 이적해 에지오 로이크, 발렌티노 마촐라와 공격을 이끌어 5번의 리그 우승과 1942/43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스타디오 올림피코 그란데 토리노로 가져왔습니다. 여담으로 그는 유벤투스와 토리노, 두 클럽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경험한 단 2명 중 한명입니다.
감독
루이지 페레로
포지션:MANAGER
국적:이탈리아
생년월일:1904년 12월 26일
클럽 커리어
1945년 ~ 1947년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2회
1940년대 중반 적수가 없었던 유럽 축구 최고의 팀이었던 '그란데 토리노'를 이끈 감독. 그는 토리노를 이끌며 당시 유행하던 WM 포메이션과 이탈리아 축구 특유의 '메토토 시스템'을 결합해 이른 바 '시스테마'라 불리는 공격 작업 강화와 포메이션 안정성을 다졌습니다.
발렌티노 마촐라를 중심으로 유연한 움직일을 보이던 강력한 스쿼드의 토리노를 이끌고 페레로 감독은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1947년에 팀을 떠났고 그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2) 서브 베스트 11
All Time Sub XI
골키퍼
리도 비에리
포지션:GK
국적:이탈리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39년 7월 16일
클럽 커리어
1957년 ~ 1969년
353경기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60년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정상급 수문장. 동물같은 반사신경와 탄력적인 점프로 골문을 지켜내는 세이브들로 찬사받았었던 리도 비에리는,
토리노의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해 프로로 데뷔까지 했으며 2부 강등이라는 시련도 버텨내고 다시 승격을 이끌었습니다. 10년 넘게 팀의 후방을 지키며 뛰어난 스쿼드를 가지며 상승세를 탄 구단과 같이 1964/65 시즌 리그 3위, 67/68 시즌에는 AC 밀란을 강호를 잡아내고 트로피를 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비에리는 62/63 시즌 세리에 올해의 키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라이트백
파브리지오 폴레티
포지션:RB
국적:이탈리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43년 7월 13일
클럽 커리어
1962년 ~ 1971년
281경기 22골
코파이탈리아 우승 2회
1960년대 황소 군단의 든든했던 오른쪽 뒷다리. 강력한 마킹을 보이면서도 본인 특유의 왕성한 오버래핑 시도를 통해 우측 공격의 활로를 뚫었던 스타일을 가졌던 파브리지오 폴레티였습니다. 킥이 특히 좋아 수비수였지만 PK를 담당했던 그는,
최전성기가 끝나고 2부 리그로 추락했었던 팀에 합류해 갈색 유니폼을 입었고 네레오 로코에 의해 개조되어 10년 가까이 붙박이 라이트백으로 맹활약, 1964/65 시즌 리그 3위, 67/6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즌인 70/71 시즌에는 2번째 컵 트로피를 들며 칼리아리로 떠났습니다.
센터백
로베르토 로사토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43년 8월 18일
클럽 커리어
1960년 ~ 1966년
153경기 8골
196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헌신적인 수비 자세, 명민한 압박 스탠스, 뛰어난 신체 밸런스 등이 장점이었만 뛰어난 신체 능력에서 나오는 포악한 사냥꾼 기질과 더티 플레이로 공격수에게 덤벼드는 무서움도 보이던 이였습니다.
빌드업마저 뛰어났던 로사토는 뛰어난 폼으로 밀란의 전사 역할을 소화하며 수많은 트로피를 든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시작은 토리노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네레오 로코 감독에 의해 월드클래스급 수비수로 성장하여 1964/65 시즌 리그 3위를 이끈 바 있습니다.
센터백
로베르토 모치니
포지션:CB
국적:이탈리아
신장:183cm
생년월일:1951년 10월 22일
클럽 커리어
1971년 ~ 1979년
235경기 11골
1970년대 이탈리아 프로 축구 무대를 향유했던 센터백. 양발잡이에다가 운동 능력이 좋아 상대 공격수를 잡아놓고 패버리는 유형의 스토퍼였으며 태클과 클리어링 모두 굉장히 터프했던 인물입니다.
로베르토 모치니는 황소 군단에서 축구 인생을 시작했으며 약 8시즌간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파울로 풀리치, 프란체스코 그리지아니 등이 뛰던 공격진의 등을 든든히 해주며 1975/76 시즌 세리에 우승을 가능케 했고 76/77 시즌도 리그 준우승을 찍었습니다. 또한 그는 79/80 시즌 인테르로 이적하자마자 본인 커리어 2번째 우승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레프트백
주니오르
포지션:LB
국적:브라질
신장:174cm
생년월일:1954년 6월 29일
클럽 커리어
1984년 ~ 1988년
86경기 12골
1980년대를 통틀어 세계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펼치던 왼쪽 수비수. 공격수 수준의 빼어난 드리블 돌파에 이은 양발에서 나오는 정확한 크로스와 패스에 페널티와 프리킥도 전담했으며 타고난 플레이메이킹 능력 역시 가져 커리어 세리에A 시절부터는 아예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뛰던 그였습니다.
플라멩구의 최전성기를 지탱했던 주니오르는 이룰걸 다 이루고서는 동료들의 세리에 엑소더스에 합류해 토리노의 키플레이어가 되었고 고작 3시즌이었지만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1984/85 시즌 리그 2위를 쟁취했던 그는 세리에 올해의 팀과 더불어 리그 MVP로까지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조르조 페리니
포지션:DM
국적:이탈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39년 8월 18일
클럽 커리어
1958년 ~ 1975년
556경기 54골
이탈리아 세리에 B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북부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토리노 FC 구단 역대 최다 출장자. 그는 기술은 분명 떨어졌지만 미친 체력으로 필드 위를 돌아다니며 강렬한 투지와 열정을 발산하던 1960년대 ~ 70년대 세리에의 경쟁력 있는 박투박 미드필더였습니다. 물론 간혹 위험한 태클로 선수들을 다치게하던 리스크도 지고 플레이하곤 했지만,
조르조 페리니는 토리노의 진정한 레전드로서 15년을 넘게 뛰면서 암흑기부터 전성기까지 모두 헌신했습니다. 556경기 출장으로 토리노 역대 최다 출장 1위인 그는 1964/65 시즌 리그 3위라는 반향에 기여했고 이후 약진을 맞이한 팀의 2차례 코파 이탈리아 우승 당시에도 모두 주역이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에지오 로이크
포지션:CM
국적:이탈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19년 9월 26일
클럽 커리어
1942년 ~ 1949년
165경기 61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40년대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가운데 하나. 현대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원숙히 소화가 가능한 강력한 체력과 더불어 당연히 부드러운 드리블, 슛팅, 패스까지 겸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에지오 로이크의 활약은 베네치아 소속으로 1940/41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캐리하면서 증명되었고 당시 최고의 팀이던 토리노로 이적하여 구글리엘모 가베토, 발렌티노 마촐라와 최고의 콤비네이션을 펼쳐 1942/43 시즌 '더블'을 포함해 5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나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주세페 도세나
포지션:CM
국적:이탈리아
신장:179cm
생년월일:1958년 5월 2일
클럽 커리어
1976년 ~ 1977년, 1981년 ~ 1987년
241경기 29골
19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탈리아의 명 트레콰르티스타 중 한명. 주세페 도세나는 감각적인 드리블, 패스, 활동량 등 공격형 미드필더의 덕목을 모두 갖췄으며 중거리슛으로 직접 득점하는 플레이도 능했었습니다.
차후에 삼프도리아에서 많은 우승에 성공한 멤버로도 유명하지만 개인으로 봤을 때 최고의 폼은 단연 토리노 시절, 중위권이던 팀을 리그 경쟁할 클래스의 팀으로 변모시키고 1981/82 시즌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84/85 시즌 세리에 A 2위까지 오르며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라이트 윙어
클라우디오 살라
포지션:RW
국적:이탈리아
신장:178cm
생년월일:1947년 9월 8일
클럽 커리어
1969년 ~ 1980년
366경기 33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70년대 세리에를 주무대로 주름잡던 토리노의 오른쪽 날개. 환상적인 윙플레이와 영리한 드리블 돌파에 이은 크로스 패턴이 주무기였던 클라우디오 살라는,
토리노의 갈색 셔츠를 입고서 1940년대 전성기 이후의 오랜만인 클럽의 성공 시대를 가능케하는 활약을 해냈습니다. 10년 넘게 뛰면서 350경기를 넘게 소화한 그는 각 1번의 세리에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견인했는데, 특히 1976년과 77년은 2연속으로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선정한 세리에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커리어 피크를 찍었습니다.
레프트 윙어
지지 메로니
포지션:LW
국적:이탈리아
신장:170cm
생년월일:1943년 2월 24일
클럽 커리어
1964년 ~ 1967년
122경기 25골
이탈리아의 조지 베스트로 불리우며 토리노의 하늘을 날아다녔던 엘 토로의 '적갈색 나비'. 굉장히 빠르고 민첩했으며 창의적인 페인팅과 개인 기술로 돌파한 뒤 위협적인 패스와 슛을 쏘던 플레이 스타일부터 외모나 패션까지 여러모로 정말 조지 베스트랑 닮아있었던 그였습니다.
좌우측을 모두 소화하기까지 하던 지지 메로니는 제노바 시절부터 천재적인 퍼포먼스를 펼쳤고 21세의 나이에 엄청난 거액으로 토리노로 이적해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던 1967년 토리노 근교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했고 그의 나이는 고작 만 24세였습니다.
스트라이커
훌리오 리보나티
포지션:ST
국적:이탈리아
신장:169cm
생년월일:1901년 7월 5일
클럽 커리어
1926년 ~ 1934년
240경기 157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당시 이탈리아 축구의 황금기를 도래하게했던 '오리운디' 중 한명.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헨티나 이민자로서 탁월한 결정력 센스와 테크닉을 자랑하던 리보나티는,
이미 아르헨티나에서 192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던 실력자였으며, 뉴웰스 올드 보이즈라는 아르헨티나 클럽에서 토리노로 이적하며 최초의 대륙간 이적을 성사시켰습니다. 이탈리아 땅에 와서도 그는 지노 로제티, 아돌포 발론체리와 삼지창을 만들었고 1927/28 시즌의 첫 리그 우승과 다음 시즌 준우승을 이룩하였는데 특히 전자의 시즌에는 35골로 득점왕을 뽑혔습니다.
수석 코치
루이지 라디체
포지션:MANAGER
국적:이탈리아
생년월일:1935년 1월 15일
클럽 커리어
1975년 ~ 1980년, 1984년 ~ 1989년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그란데 토리노' 이후 27년만인 스쿠데토를 토리노로 가져왔던 감독. 본래 선수 시절에는 1960년대 밀란의 빅이어 획득의 중추였던 그는 무릎 부상으로 이르게 은퇴했고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하부 리그 팀들을 전전하다가 토리노로 이적한 라디체 감독은 1975/76 시즌 막강한 스쿼드를 형성하여 리그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해당 시즌 올해의 감독상을 탔었던 그는 1980년 선수 한명이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휘말려 팀을 떠났다가 84/85 시즌 다시 돌아오자마자 리그 2위를 찍었습니다. 허나 라디체는 1988/89 시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토리노를 완전히 등지고 말았습니다.
3) 리저브 7인
Reserve 7 Player
루카 마르케자니
주 포지션:GK
국적:이탈리아
신장:188cm
생년월일:1966년 2월 22일
클럽 커리어
1988년 ~ 1993년
183경기
이탈리아 세리에 B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90년대 '칠공주 시대'의 이탈리아 세리에 A를 빛냈던 리그 최고 수문장 중 한명. 화려한 몸놀림과 공에 대한 동체시력으로 역동작이나 골대 구석에 꽂히는 볼에 대해서도 잘 반응해내던 루카 마르케자니는,
라치오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도 불리는 인물이지만 토리노에서 본격적으로 본인의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으며, 브레시아에서 구원투수로 이적했지만 팀의 강등은 막지 못했고 1989/90 시즌 세리에 B 우승으로 다시 승격 후에는 91/92 시즌 유에파컵 준우승, 92/9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따내는 약진을 완성시켰습니다.
주세페 그레자르
포지션:DM
국적:이탈리아
신장:176cm
생년월일:1918년 11월 25일
클럽 커리어
1942년 ~ 1943년, 1945년 ~ 1949년
159경기 20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수페르가의 비극'이 앗아간 이탈리아 축구계 최초의 레지스타 중 한명. '가젤'이라는 별명 만큼 뛰어난 상황 대처 능력과 볼테크닉이 뛰어난 경기를 좌지우지하고 빌드업하는데 주력하는 플레이를 했습니다.
주세페 그레자르는 발렌티노 마촐라 만큼이나 중요한 당시 그라나타 군단의 중추로서 무려 4연속 세리에 우승과 1942/43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레자르를 포함해 당시 토리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이나 다름 없는 세계구급의 스쿼드를 가졌었으나 49년 일어난 비행기 참사로 인해 그들의 신화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잔루이지 렌티니
주 포지션:RW
국적:이탈리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69년 3월 27일
클럽 커리어
1986년 ~ 1992년, 1997년 ~ 2001년
248경기 30골
이탈리아 세리에 B 우승 2회
1990년대 이탈리아 프로 축구 무대를 강타한 거대한 재능. 마성의 몸놀림과 돌파, 천부적인 볼테크닉, 날카로운 킥을 자랑하는 윙어였으며 토리노의 전설적인 윙어를 따 '새로운 지지 메로니'로 불리웠습니다.
몰락한 명가였던 토리노에서 세리에 B 우승을 이끌어 승격을 캐리했던 렌티니는 1991/92 시즌 리그 3위와 UEFA컵 우승을 주도했으며 당시 슈퍼팀이었던 밀란의 오퍼를 받고 세계 최고 이적료로 이적하게 됩니다. 허나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인해 폼이 완전히 망가졌고 다시 친정팀에 왔을 때는 어렸을 적의 총명함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노 로세티
주 포지션:CF
국적:이탈리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04년 11월 7일
클럽 커리어
1926년 ~ 1933년, 1936년 ~ 1937년
223경기 144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창세기 토리노 FC에 당도했던 특급 골잡이. 토리노 역대 최다 득점 3위(144골)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슛팅 스킬과 노련한 위치선정을 가졌지만 주 포지션은 2선 공격수였으며 레프트 윙어로 커리어를 시작할 만큼 볼다루는 스킬도 뛰어났습니다.
지노 로세티는 토리노의 품에서 아돌포 발론치에리, 훌리오 리보나티와 '불가사의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3톱을 만들어 1926/27 시즌의 리그 우승을 만들었으나 승부조작 스캔들로 취소되었고 다음 시즌 다시 심기일전해 진짜 리그 우승에 성공합니다. 28/29 시즌은 36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이 세리에 단일 시즌 최다골 기록과 동등한 위치에 도달한 인물은 오직 곤살로 이과인, 치로 임모빌레 뿐입니다.
피에트로 페라리스
주 포지션:LW
국적:이탈리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12년 2월 15일
클럽 커리어
1941년 ~ 1948년
173경기 57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4회
1930년대와 40년대를 걸쳐 세리에를 대표했었던 공격 자원 중 한명. 매우 뛰어난 발기술을 이용한 돌파 능력, 양발에서 나오는 슛팅 정확도를 통해서 윙어와 스트라이커에서 모두 그 존재감을 발산했습니다.
주로 페라리스 2세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인테르에서 2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구글리에모 가베토, 에지로 로이크, 훌리오 리보나티 등과 공격진에서 손발을 맞춰 휘황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했고 4연속 리그 우승에 도달했습니다. 허나 그는 1947/48 시즌부터 슬슬 노쇠화로 인해 주전에서 밀렸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시즌 토리노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프랑코 오솔라
주 포지션:LW
국적:이탈리아
신장:174cm
생년월일:1921년 8월 23일
클럽 커리어
1939년 ~ 1949년
182경기 89골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5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40년대, 세리에를 넘어 세계 축구의 무대로 그 위용을 옮기려 했던 '그란데 토리노'의 마법의 날개. 뛰어난 드리블과 크로스 능력을 가졌지만 단순히 측면에 있지않고 중앙으로 들어와 직접 득점하는데 능했습니다.
그런 당시 토리노는 프랑크 오솔라 - 가글리에모 가베토 - 로메오 멘티 - 에지오 로이크 - 발렌티노 마촐라로 이어지는 환상의 5톱을 구성하여 클럽의 '시스테마'를 더 빛냈고 5차례의 리그 우승과 1941/42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하는 최전성 시대를 개척하였습니다. 이 막강한 팀은 신의 질투를 받았는지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선수단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안드레아 벨로티
주 포지션:ST
국적:이탈리아
신장:181cm
생년월일:1993년 12월 20일
클럽 커리어
2015년 ~ 2022년
251경기 113골
2010년대 토리노 FC를 상징했던 반디에라. '제2의 크리스티안 비에리'로 불리며 본인의 최대 장기인 운동 능력으로 황소 드리블을 보였고 강력한 슛과 헤더, 의외의 연계까지 보여줬습니다.
이런 안드레아 벨로티는 팔레르모를 승격시키며 그라나타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유럽 정상급 활약을 보였는데, 특히 2016/17 시즌에는 26골로 리그 득점 3위를 찍었으며 18/19 시즌에는 리그 7위로 유로파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구단 역대 득점 8위에 있기도 한 이러한 활약에 많은 빅클럽들이 군침을 흘리게 하였지만 구단은 낫 포 세일을만을 외쳤고 계약이 끝나고 로마로 이적하고는 전성기 폼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4) 아쉽게 들지 못한 선수들
Rest of the players
골키퍼
발레리오 바치갈루포
알도 올리베리
줄리아노 테라네오
측면 수비수
나탈리노 포사티
루이지 다노바
마테오 다르미안
중앙 수비수
로베르토 크라베로
안젤로 체레세르
파스퀠레 브루노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안토니오 잔니
에우세비오 카스틸리아노
알도 아그로피
루카 푸시
에랄도 페시
공격형 미드필더
피오라반테 발디
엔조 시포
윙어
피에트로 부스칼리아
로메오 멘티
호어스트 부츠
센터 포워드
오네스토 실라노
잔니 부이
뮬레르
마르코 페란테
치로 임모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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