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
앤디 콜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71년 10월 15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2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1990년대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던 자국 수위급 스트라이커 중 한명. 훌륭한 마무리 능력과 쏜살 같은 스피드를 바탕으로한 기막힌 침투 능력, 척척 들어맞는 연계 능력까지 장점이었던 그는 PL 통산 득점 4위에(187골)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합다.
뉴캐슬의 클럽 레코드로 이적와 2부였던 팀을 승격시킨 1993/94 시즌에는 리그 34골로 득점왕, 도움왕, 신인상까지 타는 활약으로 리그 3위의 돌풍을 만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맨유로 이적한 앤디 콜은 북중미 용병인 드와이트 요크와 '검은 쌍두마차'라고 불리는 환상의 투톱을 결성해 맹활약해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포함한 5차례의 잉글랜드 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우뚝 섰습니다. 99/00 시즌에는 리그에서 19골을 넣으며 PFA 올해의 팀에까지 뽑히기도 했던 콜이었습니다.
19위
이안 라이트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63년 11월 3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33경기 9골
앙리 등장 이전까지 아스날 FC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인물. '지루하디 지루한 아스날'이라 불렸던 당시 그레이엄 감독의 깊이 내려앉아있다가 볼을 잡으면 전방에 주구장창 롱패스만 때려넣는 뻥축구 전술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신체조건은 뛰어나지 않으나 감각적인 위치선정과 침투, 첨예한 골결정력을 겸비해 본인에게만 의존한 팀의 무지성 롱패스와 크로스를 꾸준히 골로 집어넣었던 라이트입니다.
22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데뷔한 그는 팀을 2부에서 1부로 올려놓는 대활약을 이어가면서 아스날로 이적, 1991/92 시즌 리그 득점왕과 2차례의 올해의 팀에 빛나는 그는 1차례의 리그 우승 등 여러 우승컵에 기여했지만 특히 93/94 시즌, 위너스컵 결승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1970년 인터 시티 페어스컵 이후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의 주역이 됩니다.
허나 이런 실력에도 국대에서는 리네커와 시어러의 존재에 벤치만 달궜습니다
18위
믹 섀넌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48년 11월 28일
주요 클럽:사우스햄튼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A매치 46경기 21골
1970년대 잉글랜드 1부 리그를 수놓은 사우스햄튼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감각적인 슛팅 능력과 돌풍의 스피드, 윙도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에다가 특유의 팔을 돌리는 풍차 셀레브레이션의 원조격으로도 유명했던 믹 섀년은,
소튼의 유스 출신에다가 1군 데뷔 후 바로 팀을 2부에서 승격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이후 600경기를 넘게 뛰고 200골을 넘게 넣는 훌륭한 클럽 레코드를 쌓았으며 1975/76 시즌에는 FA컵 결승에서 맨시티를 꺾고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구단 최초의 메이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후 노리치 시티에서도 80년대 약진에 기여해 84/85 시즌 리그컵 트로피를 안았던 그였지만,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은 극심한 부진을 겪던 시기였고 메이저 대회에 수차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17위
앨런 클라크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46년 7월 31일
주요 클럽:리즈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인터 시티 페어스컵 우승 1회
A매치 19경기 10골
1960년대 후반 ~ 70년대 초 잉글랜드 풋볼 리그 수위급의 포처. 타고난 뒷공간 움직임과 위치 선정, 자비 없는 피니싱 능력으로 무장한 스트라이커로 풀럼에서 영국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레스터로 이적해 FA컵 준우승을 주도,
이듬해 바로 다시 도메스틱 레코드를 갱신하며 리즈로 이적한 앨런 클라크는 주포로 활약하면서 150골을 기록, 1971/72 시즌의 FA컵 우승과 73/74 시즌의 리그 우승, 74/75 시즌의 유러피언컵 준우승에 기여합니다. 1973/74 시즌 발표한 초대 PFA 올해의 팀에 조니 자일스, 빌리 브렘너, 노만 헌터, 폴 매들리 등의 동료와 함께 이름을 올린 클라크는 1부 리그 10년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6위
테디 셰링엄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66년 4월 2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3회
잉글랜드 2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A매치 51경기 11골
프리미어 리그의 굵은 잔뼈를 가지고 있는 1990년대의 명 센터 포워드. 박스 내에서의 위치 선점 능력과 킥 센스 덕에 득점에 집중하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주로 기용되었지만 드리블, 패스도 뛰어나 미끼 역할을 하던 세컨 탑도 소화했습니다.
또한 타고난 축구 센스로 노장의 나이까지 활약하던 셰링엄은 토트넘 시절이 커리어 하이였고 프리미어 리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리브랜딩된 1992/93 시즌, 21골을 넣어 초대 득점왕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맨유로 이적해선 7개의 우승 타이틀과 '캄프 누의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00/01 시즌, FWA와 P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했으며 말년인 웨스트햄에선 PL 최고령 득점 기록까지 갱신하기도 합니다.
또 앨런 시어러와 투톱을 구성한 그는 1996년 유로에서 4강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15위
마크 헤이틀리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91cm
생년월일:1961년 11월 7일
주요 클럽:레인저스 FC
주요 커리어
프랑스 리그 1 우승 1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우승 6회
스코티시 컵 우승 2회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 3회
A매치 32경기 9골
온 유럽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훈족의 왕 이름을 따 '아틸라'라는 이명으로 통했던 스트라이커. 전통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힘과 파워, 공중전에서 빛을 발하는 머리를 이용한 능력이 장기이던 헤이틀리는,
코번트리 시티에서 떠서 밀란으로까지 이적, 1984/85 시즌 세리에 올해의 팀과 87년 발롱도르 17위 등극, 모나코를 거쳐 레인저스로 와서는 앨리 맥코이스트와 투톱을 결성해 6연속 리그 우승을 포함한 11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커리어 하이였던 1993/94 시즌 스코티시 리그 우승과 함께 헤이틀리는 리그 득점왕, SPFA 올해의 선수상, S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활약에 그는 1986 월드컵에 나가서도 게리 리네커와 원투펀치를 결성해 8강에 올랐습니다.
14위
마틴 치버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5cm
생년월일:1945년 4월 27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풋볼 리그컵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A매치 24경기 13골
거대한 덩치로 인해 '빅 치브'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1960년대 중후반 ~ 70년대 초중반의 리그 탑급 스트라이커. 우수한 피지컬을 이용해 수비를 밀어붙이던 치버스는 타겟터 유형의 선수였지만 워낙 킥능력이 뛰어나고 강해 프리킥도 담당일 정도로 중거리포에 자신이 있던 선수였습니다.
그는 사우스햄튼에서 영국 역대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토트넘의 지미 그리브스 후보로 낙점 받아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2차례의 리그컵 우승, 1차례의 UE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71/72 시즌 UEFA컵 결승 1차전에선 울브스를 상대로 멀티골을 꽂아넣으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더해서 그는 1971년에 발롱도르 8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3위
바비 스미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33년 2월 22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2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15경기 13골
해리 케인과 지미 그리브스에 이어 266골을 넣어 토트넘 핫스퍼 FC 구단 통산 득점 3위에 위치해있는 스트라이커. 타고난 골결정력과 평범한 키에도 단단한 신체 밸런스와 강력한 힘싸움으로 포스트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스미스는 그리브스처럼 첼시 출신으로 1954/55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고 또 다른 런던팀인 토트넘으로 이적했고 이곳에서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후에 이적한 그리브스와 투톱으로 콤비를 맞추며 토트넘 커리어 총 12회의 해트트릭을 기록, 1960/61 '더블' 시즌에 33골을 넣었으며 FA컵 2연속 우승 당시 두번의 결승에서 모두 결승골을 기록하는 위엄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폼을 대표팀에서도 이어갔었던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1958 월드컵 당시에는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용받지 못했습니다.
12위
프랜시스 리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44년 4월 29일
주요 클럽:맨체스터 시티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27경기 10골
1960 ~ 70년대 맨시티의 전성기에서 최전방을 맡았던 스트라이커. 뛰어난 전방 압박과 쾌속 드리블의 소유자로서 센터 포워드임에도 빼어난 연계와 기회창출 등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능해 측면 자원으로도 기용되었던 프랜시스 리였습니다. 특히 그는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능력과 우월한 페널티킥 성공률 덕에 'PK 제조기 리'라는 별명으로도 통했습니다.
리는 1968/69 시즌 리그 우승 외에도 70년대 초반 맨시티가 많은 우승컵을 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특히 본인은 69/70 시즌 구단 올해의 선수와 71/72 시즌 잉글랜드 1부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영에도 누린 바 있습니다. 후에 그는 더비 카운티로 넘어가서도 74/75 시즌 1부 리그 우승을 도왔으며,
삼사자 군단 유니폼을 받고서도 1970 월드컵에 참가하여 8강행에 일조한 바 있습니다.
11위
토미 로튼
주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19년 10월 6일
주요 클럽:에버튼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1회
A매치 23경기 22골
1930년대 ~ 40년대 잉글랜드 리그에서 가장 독보적이었던 스트라이커. 토미 로튼은 양발의 자비없는 결정력과 의외의 연계 플레이, 특히 스탠리 매튜스가 세계 최고라고 언급한 엄청난 체공력과 헤더를 자랑했었습니다.
에버튼, 첼시, 노츠 카운티, 아스날에서 모두 리그 탑클래스 기량을 자랑했던 토미 로튼은 본격적인 전성기는 구디슨 파크 입성 후이며 1937/38 시즌의 곧 바로 리그 득점왕 탈환, 다음 38/39 시즌에는 2연속 득점왕 수상에다가 리그 우승까지 이뤄냈습니다. 허나 이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하늘도 뚫을 것 같던 로튼의 전성기 폼은 100% 보여주지 못하고 종전 후 첼시로 이적하는 아쉬움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독보적인 폼에 비해 전쟁 때문에 세계 무대에는 도전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그는 전시 비공식 경기까지 포함한다면 46경기 46골을 넣는 위력을 보였습니다.
10위
테드 드레이크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12년 8월 16일
주요 클럽:아스날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5경기 6골
잉글랜드 1부 리그를 빛낸 당대 최고의 골잡이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 채프먼이 닦아놓은 시스템의 주전 센터포워드로 활동했던 테드는 본인의 장점인 확실한 결정력과 위치선정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사우스햄튼에서 재능을 보인 그는 1934/35 시즌, 아스날로 이적하자마자 44골을 꽂아넣으며 팀을 리그의 왕좌에 앉혔고, 다음 시즌 아스톤 빌라의 빌라파크 원정 경기에서는 무려 7골을 넣기도 했으며 이는 아직도 1부 리그 단일경기 개인 최다골 기록입니다. 그 해 FA컵에서도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기도 한 드레이크는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군입대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었고 만약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가 얼마나 더 대단한 기록을 세웠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대표팀에서도 1934년 세계 챔피언이었던 이탈리아를 상대로 치룬 혈전, 이른 바 '하이버리의 혈투'에서 3대2 승리를 가져오는 결승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9위
로저 헌트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5cm
생년월일:1938년 7월 20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잉글랜드 2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34경기 18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1968 UEFA 유로 3위
'리버풀의 지미 그리브스'라 불리우던 구단의 부흥기를 만든 명 스트라이커. 최전방 공격수로서의 득점 능력 외에도 이타적인 플레이와 넓은 활동량을 가져 인사이드 포워드(현대의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던 로저 헌트였습니다.
그는 빌 샹클리의 총애를 받으며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에서 살아남아 팀의 주포로 2부 리그에서 득점왕으로 승격을 주도, 후에 1부 리그에서도 뛰어난 공격력으로 2차례의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고 1번의 컵 우승을 이뤄 전성기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헌트는 당대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 그리브스의 4연속 득점왕을 저지한 1965/66 시즌 득점왕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 부름을 받아서도 그는 제프 허스트와 투톱으로 1966 월드컵 우승과 1968 유로 3위를 이끌었고 특히 전자의 대회에서는 3골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했습니다.
8위
제프 허스트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1cm
생년월일:1941년 12월 8일
주요 클럽: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FA 채리티 실드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49경기 24골
1966FIFA 월드컵 우승
1968UEFA 유로 3위
월드컵 결승전 역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공격수. 골에 대한 집념을 통한 위치선정과 감각적인 양발 슛팅 테크닉, 의외의 연계 플레이를 가진 제프 허스트는 당대 월드 클래스 스트라이커이자 웨스트햄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제프 허스트는 중위권이던 웨스트햄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면서 1963/64 시즌 FA컵 우승, 64/65 시즌 위너스컵 우승, 다음 시즌에는 총 40골을 기록하며 리그컵 준우승을 캐리했습니다. 웨스트햄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한 그는 1967년부터 69년까지 3연속으로 월드 사커 선정 세계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엄청난 폼을 보인 기간도 있었습니다.
본래 지미 그리브스의 서브로 66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그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승격되었고 8강에서의 결승골, 하나가 골라인을 과연 넘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사상 최초로 서독을 상대로 한 월드컵 결승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쥘리메컵을 들었습니다. 또한 허스트는 2년 뒤 유로에서도 올스타팀에 뽑힌 바 있습니다.
7위
냇 로프트하우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6cm
생년월일:1925년 8월 27일
주요 클럽:볼턴 원더러스 FC
주요 커리어
FA컵 우승 1회
A매치 33경기 30골
볼턴에서 나고 볼턴에서 자라 볼턴을 위해 살고 볼턴에서 세상을 떴었던 볼턴 그 자체인 남자. 자타가 공인하는 볼턴 원더러스 FC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로프트하우스는 뛰어난 포스트플레이와 경이로운 헤딩 능력, 타고난 위치선정으로 수많은 골을 터트리던 선수였으며,
볼턴의 로컬보이로 자라 축구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곳에 뼈를 묻었던 그는 약 500경기에 나와서 300골 가량을 기록했고 아직까지도 구단의 제대로 된 마지막 메이저 트로피인 1957/58 시즌 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로프트하우스는 준우승에 그쳤었던 1952/53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바 있었습니다.
로프트하우스는 조국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골 순도를 자랑하며 그의 명성을 유지했고 1952년 오스트리아 원정에서는 역사적인 멀티골을 뽑아내며 '빈의 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6위
마이클 오언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79년 12월 14일
주요 클럽:리버풀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풋볼 리그컵 우승 3회
UEFA컵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A매치 89경기 40골
한 때 잉글랜드 축구를 책임질 미래로 여겨졌던 '원더 보이'. 오언은 압도적인 스피드와 기막힌 라인브레이킹, 깔끔한 칩샷으로 대표되는 결정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스피드스터였습니다.
18세의 나이에 리버풀의 주전이 된 그는 18골을 넣으며 곧 바로 득점왕을 수상, 다음 시즌 역시도 득점왕을 따내며 전세계적인 루키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대망의 00/01 시즌, 리그컵, FA컵, UEFA컵 우승의 '미니 트레블' 당시 팀을 캐리하며 역대로 두번째로 어린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으나 이른 나이에 혹사당한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그는 부상에 시달렸으며 후에 레알, 뉴캐슬로 이적해서는 부진만 거듭하며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1998 월드컵 신인상에 빛나는 그가 특히 16강 아르헨티나전에 넣은 환상적인 솔로골은 오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그 자체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오언 때문에 리버풀을 좋아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할 때도 오언처럼 하고자 했다.
- 세르히오 아구에로 -
5위
앨런 시어러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3cm
생년월일:1970년 8월 13일
주요 클럽: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A매치 63경기 30골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파이널 서드 어느 위치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파워풀한 슛팅력, 97%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완벽한 PK 처리, 블랙번 시절에는 뛰어난 돌파력과 연계를 보인 컴플리트 포워드였으며 부상 후인 뉴캐슬 시절에는 든든한 포스트 플레이, 탁월한 공간 창출 능력을 가진 타겟터로 변모했습니다.
블랙번 로버스에서 그는 크리스 서튼과 'SAS' 투톱을 구성해 1994/95 시즌 PL 우승을 이끌었으며 후에 뉴캐슬로 이적해 불멸의 존재로 군림하며 우승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팀을 각 2차례의 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으로 인도, 시어러 본인은 PFA 올해의 팀 7회, 리그 득점왕 3회, PFA 올해의 선수상 2회, 뉴캐슬 역대 최다 득점(206골), PL 역대 최다 득점(260골),PL 단일 시즌 역대 최다골(34골)이라는 범접불가의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 국대에서 3번의 국제 대회에 나간 그는 그중 1996년 유로에서 5골로 득점왕,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배하지만 4강까지 올랐으며 그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로 선정되었습니다.
일등은 일등이고, 이등이나 삼등은 아무것도 아니다.
- 앨런 시어러 -
4위
게리 리네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0cm
생년월일:1960년 11월 30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80경기 48골
1990 FIFA 월드컵 4강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 초중반 유럽 축구를 대표하던 최고의 스트라이커. 골 냄새를 잘 맡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로 테크닉, 피지컬은 엄청 뛰어나지 못했지만 재빠른 민칩성과 기막힌 볼터치, 완벽한 결정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리네커는 레스터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서 에버튼, 바르샤,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펼치며 득점 본능을 발현시켰습니다. 이 팀들을 돌아다니면서 2번의 컵 대회, 1번의 위너스컵 우승을 포함해 6번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으며 개인으로는 각 3차례의 잉글랜드 리그 득점왕(최초로 서로 다른 클럽에서), PFA 올해의 팀과 2차례의 FWA 올해의 선수상, 1차례의 PFA 올해의 선수상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달았습니다.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국대에서도 리네커는 1986년 월드컵에서 6골을 터트려 득점왕으로 뽑혔으며 발롱도르 2위까지 올랐습니다. 또한 다음 월드컵에서도 4골로 조국의 4강행을 이끌었던 그는 여담으로 선수 시절, 레드는 물론 옐로카드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 '그라운드 위의 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3위
해리 케인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88cm
생년월일:1993년 7월 28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A매치 82경기 55골
2018 FIFA 월드컵 4강
2020 UEFA 유로 준우승
2024 UEFA 유로 준우승
2010년대 중후반부터 현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토트넘, PL, 잉글랜드 축구의 아이콘. 현대 축구에서 말하는 다재다능함을 모두 갖춘 이로 강력하고 날카로운 킥, 우수한 공중볼 능력, 빼어난 수비 가담과 압박, 미드필더 뺨치는 플레이메이킹까지 가졌던 이였습니다.
이런 해리 케인은 토트넘 핫스퍼의 유스 시스템에서 자라 2014/15 시즌 허리 케인같은 등장으로 1군 주전으로 자리매김해 팀의 약진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토트넘 역대 최다 득점자, 5번의 PFA 올해의 팀, 3번의 득점왕에 올랐으며 20/21 시즌엔 득점왕과 도움왕을 모두 수상했고 손흥민과 PL 역대 최다 듀오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관에 그친 케인은 결국 뮌헨으로 떠났고 16/17 시즌 리그 2위와 18/19 챔스 준우승이 그나마 우승과 가까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똑같이 국대에서도 에이스이자 주장, 대선배들의 기록을 경신한 최다 득점자로서 2018년 월드컵 4강과 2020 유로 준우승을 이끌었고 전자 대회에서는 득점왕까지 땄으나 그에게 우승 트로피 앞에서는 이는 아무 의미 없을 터입니다.
세상에서 명예보다 값진 것은 없다, 낭만 빼고.
- 해리 케인 -
2위
딕시 딘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8cm
생년월일:1907년 1월 22일
주요 클럽:에버튼 FC
주요 커리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A매치 16경기 18골
영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역사상 최초의 9번. 고환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도 끝까지 뛰는 금강불괴의 신체와 맹렬한 투지, 축구사에서도 손에 꼽는 차원이 다른 헤더 및 득점 감각으로 딕시 딘은 에버튼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잉글랜드 1부 리그를 빛낸 최고의 공격수로 널리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에버튼 FC 소속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FA컵 우승을 따내는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395골을 넣으며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클럽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2번의 리그 득점왕 수상자이자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대 득점 3위인 그는 특히 1927/28 시즌, 한 시즌 동안에만 60골을 넣어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잉글랜드 역대 한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우는 괴물같은 기력을 자랑했습니다.
베토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인물.
- 빌 샹클리 -
1위
지미 그리브스
포지션:ST
국적:잉글랜드
신장:173cm
생년월일:1940년 2월 20일
주요 클럽:토트넘 핫스퍼 FC
주요 커리어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1회
A매치 57경기 44골
1966 FIFA 월드컵 우승
'축구 종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그리브스는 '득점 기계'라는 이명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골결정력과 침투 능력을 비롯해 작은 키에도 감각적인 헤더, 적들의 수비라인을 부수는 드리블 돌파에도 능했던 만능 공격수였습니다.
첼시에서 떠서 AC 밀란에서 실패를 겪고 토트넘 소속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의 최전성기를 견인한 그는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뛰면서 2번의 FA컵 우승, 1번의 위너스컵 우승의 지대한 공헌, 더해서 4번의 리그 득점왕을 따냈고 첼시 시절까지 합쳐 6번으로 잉글랜드 풋볼리그 역대 최다 득점왕 수상자, 266골을 넣어 토트넘 역대 최다 2위, 357골로 잉글랜드 1부 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라는 파천황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1963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랭크되기도 했습니다.
6회로 대표팀 역대 최다 해트트릭 기록 보유자일 정도로 그 득점 본능은 국대에서도 멈출줄 몰랐으나 부상이라는 장애물이 그를 넘어트렸고 조국에서 열린 1966 월드컵에서는 명단에는 들었으나 결국 우승에도 메달은 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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